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
노은주.임형남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때 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정취, 그 사람의 성품이 그 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걸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더더욱 누군가의 집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 집에 모양을 보고 위치 그리고 그 집 색깔에 대해 눈여겨 살펴보고 집 안에 들어가서는 그 집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고, 식기를 소중하게 다루는지, TV를 소중하게 많이 사용하는지, 아니면 함부로 사용하는지, 가구들에 대해 애착을 가지는지, 집을 안식처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잠깐 잠만 자고 나갈 그런 여관같은 곳으로 생각하는지 등등 그 집 주인의 성품까지도 그 집안의 가구들 배치까지 보면 어느정도 가늠이 되곤 했었다.

 

 

  혹은 사람들이 알아챌 수 없는 움직임이 담겨 있듯, 한국의 많은 공간들이 멈춘 듯 움직이는 그런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높이 세우지 않으면서도 주변을 압도해 버리는 수평적 랜드마크의 건축인 조선의 왕들의 영혼을 모시는 종묘. 그 종묘에 들어가면 모든 소리와 생각과 시각이 압도된다. 인간의 척도가 아닌 신의 척도로 지어진 그 수평적 무한성과 공간감은 우리의 감각을 넘어선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가장 크게   이 책을 쓴 이는 내가 느낀 시기보다도 훨씬 이전에 어린시절 경복궁에 있는 자경전이라는 건물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시대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온갖 핑계를 다 가져다 붙이며 쥐가 쏠아내듯이 야금야금 파먹어서 그 너른 터에 건물이라곤 근정전과 경회루 그리고 사정전 등만 몇 개 남은 황량한 공간이었단다. 그 황량한 공간의 한 중간에 있는 자경전이라는 집에 저자는 공연히 그냥 가서 앉아 있곤 했으며, 여기저기 쓸어보고 구멍 뚫린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지 마시요'라고 적힌 삼각현 팻말 너머의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한다.  세상의 시계 초침들이 순간 멈춘듯한 그런 그곳에서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떤 동네에 솜씨 좋은 한복집이 있었는데, 어머니와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딸이 합류해서 운영하는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에서 한복을 맞추어보면 딸과 엄마의 한복이 조금 달랐다고 한다. 옷의 치수나 색이 이상하다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었는데 결론은 어머니와 딸이 쓰는 '자'가 달랐기 때문이란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딸은 미터법이 새겨진 줄자를 사용했고, 어머니는 나무로 된 예전 도량형의 굽은 곡자를 썼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척도가 다르니 결과물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기억해두어야 할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자는 옛 공간의 의미나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를 바꿔야 한다. 저자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던 '살풀이 춤'에서처럼 사진에는 들어오지 않는 움직임 움직임을 얻는 정중동의 미학을 구현한 한국 건축 미학의 완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비어있지만, 비어있기에 오히려 가득 찬 역설적 공간인 마루, 충남 옥천에 가면 '이지당'이라는 오래된 서당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 몸과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경주의 '독락당'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이언적이 벼슬길에서 잠시 나와 겹겹이 담을 걸고 바위 위에 걸친 정자에 기대에 세상을 건너다보며, 홀로 몸을 숨기고 또한 마음들 숨기려 했던 독락당의 계정을 보자면 이언적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것이다. 우리나라의 이곳 저곳에 널려 있는 건축물들을 예사로 보지않고 그 건물들의 주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떤 생각을 했고, 또한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건축물을 보고서 알아가는 것으로 색다른 역사여행까지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주인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집 구조나 집의 건축물들 단순히 보아 넘기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역사 속 그들의 삶까지 만나볼 수 있는, 서양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양 우리네의 잣대로 우리네 건축물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2015.1.25. 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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