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민심서 - 중
황인경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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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목민심서 중편에서는 '죽란시사(竹欄時社)' 즉 때가 되면 대나무아래 모인다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정약용에게 은혜를 입어 거상의 꿈까지 꾸게 되는 천만호의 정약용에 대한 보답으로 정약용의 집 뒤뜰에 만들어진 대나무정자에서의 벗들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조가 아무리 약용을 이뻐하고 그 재능을 어여삐여겨 곁에 두고자하나, 번번히 장원만을 차지하는 약용을 많은 이들이 달가워할리도 그렇다고 정조가 대놓고 약용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이니 그 어느라도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귀한 재목일수록 더 홀대하고 더 단단하게 키워야 함을 알면서도 정조의 마음에 쏙 드는 약용을 정조는 어쩌지 못하고 그저 마음을 드러내보였다. 약용에겐 앞으로의 많은 걸림돌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게의치는 않았다. 정치라는 것이 구부러질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정약용에게는 도리어 더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음이 못내 안타깝다.

 

  초야에 묻혀있는 약용을 안타까이 여기는 정조가 약용을 부르려 할 때마다 목만중, 홍낙한, 이기경 들이 날뛰었다. 상편에 나오는 암행어사편에서 약용은 경기연천현감으로 있던 서용보를 제대로 벌주었다. 약용의 성품으로 보아 절대로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과 그를 특별히 사랑해주시는 정조에 대한 신하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서용보는 약용이 늙어 죽을 때까지 18년의 강진 귀양살이에서도 결코 약용을 놓아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전 생애를 걸고 약용에게 복수를 함으로 암행어서의 잘못된 판례가 생기고 말았음은, 더 이상 정약용처럼 대쪽같이 암행어사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코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약용에게 행복한 시절을 돌이켜보라하면, 아마도 죽란시사와 더불어 한가로이 세월을 즐기고 벗들과 학문에 심취해 있었던 때일거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죽란시사의 벗들중에 한치웅은 약용을 꽤 배려해서 충고를 해주었다. 전하께서 약용에게 의사를 타진해왔었지만 사양했다는 말에.

"잘하였네. 자네는 학문을 할 사람이지 정치를 할 사람은 못 되네."

그리고 벗 이주신의 답변을 들어보건데,

"자네는 절대로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아선 안 되네. 만일 정치를 하였다가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걸세."

"정치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네. 싸움에 지면서 이길 줄 알아야 하고 남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자네는 남의 비위엔 아랑곳없이 자네 할 일만 하는 성격이니 어찌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임금이 설사 골백번을 부른다 하여도 거절하는 게 마땅하네."                          <소설 목민심서 완결판 (중) 18페이지 일부>

 

  인생이 마음먹은데로 아니면 이주신이나 한치웅의 충고와 걱정대로 약용의 인생이 움직여주었더라도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그 죽란시사의 행복하고 소중했던 때는 두고두고 약용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마다 그저 행복했던 기억으로 회상하고 그 추억으로 인해 다시금 힘을 얻는 그런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한양에서 430리 거리인 곡산은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첩첩산중에 있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구려 때는 십곡성이라고도 하였다. 곡산은 이성계의 계비인 현비 강씨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 곳에서 약용은 목민의 길을 비로소 실천해보인다. 곡산부사로 임명되어 이계심의 난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계심은 약용의 백성의 입장에서 바라다보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은혜입었으며 그로말미암아 곡산은 물론 그 주위의 모든 고을에도 정약용의 위민위국정신은 빛을 발하였다. 명사또의 과정과 목민의 길을 걷기까지 약용은 곡산에서 오롯이 백성과 함께 웃고 울며 그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워가고 있었지만, 짧은 2년의 기간으로 목민을 향한 행정가의 모습으로 있었을 적이 그나마 약용의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강진에서의 그의 집필과정은 당연 으뜸으로 정약용을 다시 바라보게 될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여지없이 신유사옥을 거쳐 천주학쟁이들을 말살하는 것은 남인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 기를 쓰고 달려드는 공서파 그리고 세월은 유배지 강진으로 정약용을 재촉한다.

 

 

 

2015.1.12. 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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