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에도 풍경은 있다 - 길에서 만난 인문학, 생각을 보다
김정희 지음 / 북씽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앞으로 나아가는 길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것이 길인 줄 알았다. 나의 인생의 길은 그렇게 직진 또는 무작정 앞으로 전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의 삶의 방법, 삶의 모습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돌아가는 길'이라니 벌써 나에겐

돌아가는 길을 눈여겨 보아야 할 나이였던가 그런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찬찬히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메세지다.

 

올해 추석은 슈퍼 문으로 보름달이 컸다고 한다. 추석 당일보다 추석날 다음 날에 더 큰 슈퍼 문을 봤었던 것을 기억하며, 달빛을 벗 삼아 걷기라는 저자의 한 페이지을 읽는다. 근처 사는 지인을 만날 겸 해서 걷게 되는 길이 지리산 둘레길이라했다. 숙소인 중왕마을 순이네에서 등구재를 거쳐 금계마을까지 걷기로 한 3코스 전체는 약 19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야 하지만 숙소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시작하면 대략 10킬로미터 정도. 상황마을의 다랑이논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등구재로 올라가는 입구부터의 흙길을 걸으며 쏟아지는 저자의 마음 속에 담겨있는 책 속의 구절들이 줄줄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거북등을 닮아 이름 붙여진 등구재, 경북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고, 인월장 보러가는 길, 새색시가 꽃가마타고 넘던 길. 마을과 마을, 그리고 사람을 이어주었던 길 그 길의 높은 곳에 올라 임철우의 <달빛 밟기>를 기억속에서 끄집어내 알려준다. 밤길의 묘미는 무엇보다 달빛 구경이라고 했던 옛 선비들은 주로 물가에서 달빛을 즐겼는데 하늘에 떠 있는 달빛과 그 달빛이 투영된 강물의 조화야말로 풍류의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풍류를 즐기면서 빠지면 안되는 것은 역실 술일터,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달타령이라는 노래에서도 등장한 달을 사랑한 시인인 이태백의 <월하독작> 시까지 겸하여 선물받는다. 정약용의 <월파정야유기>에서 배를 타고 한강가 월파정에서 달놀이를 했다는 장면, 다산은 멋진 풍경을 보고 시를 짓자는 사람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수염을 꼬면서 어려운 시를 짓는 것이 월파정의 풍경에 맞지 않는다며 술을 실컷 마셨다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월산대군의 제천정에서 달놀이를 즐기며 <제천완월>이라는 글까지 더불어 감상하게 된다. 달 밝은 밤이면 마당에 나와 앉아 피리를 불었다고 하는 수필가 구활이 쓴 <풍류의 샅바>에서 임희지의 풍류에 대한 글까지 만나고 저자 김정희님을 따라 등구재를 내려온다. 이렇게 이 책의 마력은 저자가 따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과거와 소설속 때로는 시를 흥겹게 읊어보게 되는 그렇게 하면서 책 속으로 책 속에 있는 저자가 거닐 고 있는 그 풍광속으로 빠져들게 되기까지 숨돌릴 틈 없이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길을 따라 길이 끝나는 곳까지 오래도록 걸어가고 싶었던 유년의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저자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되고'에서는 김동률의 <출발> 노래를 들어며 길을 걸어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정말 때 묻은 지도도 좋지만 이브 파칼레의 <걷는행복>이라는 책을 들고 걸오보는 것은 어떨지 저자는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산티아고길에서 많은 모티프를 따왔다고 하는 제주의 올레길의 서명숙 이사장은 산티아고를 홀로 걷다가 고향인 제주에서 걷는 길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산티아고 기행기는 많지만 그 중에서 김남희의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은 여자라면 제목부터 동질감을 느끼게 될것이라고,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으며 "산이 높다는 걸 알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라는 구절을 읽으며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어보기로 다짐도 해본다. 그렇게 이 책은 이브 파칼레의 <걷는 행복>을 거쳐 다시 첫차를 기다리게 되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까지 다다른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평역, 남평역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는 있을것이나 여행을 통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어느 곳이라도 사평역일 수 있고 이상향일 수 있다.

 

길을 걸으며 그렇게 나는 저자의 발걸음따라 같이 걸으며 옛사람들의 흔적을 같이 찾을 수 있었으며 그 장소에 대한 과거에서 현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났다는 삶의 여유와 깨달음을 저자의 끝없는 책 속의 이야기 그 책 속의 또 다른 이야기터널속에서 자꾸만 빨려들어가는 몽롱한 여행, 하지만 어느 길 위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그 설레임이 좋았던 책읽기 시간이었다.

 

 

 

2014.9.15.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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