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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끝이 어디일까 생각할 수도 없이 비탈진 길. 거기에다 밝은 햇빛 아래도 아닌 음지의 세상이라...
[비탈진 음지]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도대체 어느만큼 힘들어야 평지도 아닌 비탈길에다가, 양지도 아닌 음지까지. 그 두가지의 모든 모양속에서 책장을 감히 널길 수가 있을까...라는 걱정도 솟구치고 있었다.
"카알 가아씨요. 카알 가아씨요."
어느때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몇해전에도 들어본 기억은 난다. 아주 멀리서 찢어져라 외치며 골목길을 누비던 어느 아저씨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복천(福千) 영감은 소리꾼이 최고음을 뽑아내듯 있는껏 목청을 뽑아 내 외치고 골목길을 헤집고 다닌다. 목이 칼칼하다. 뜨거운 뙤약볕아래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목소리를 있는 힘껏 외치며 돌아댕기다보니 어디에서라도 물 비슷한 것이라도 목에 넣었음하는 생각만이 간절하다.
"허, 그 무신 쓸개빠진 잡생각이여, 오살허고."
목 매운 마른 입맛을 다시던 복천 영감은 사방을 두리번 거리다 골목 어귀에 구멍가게가 생각났고 그 생각에 이끌려 얼음에 채운 그 시원하다는 콜라를 한 병 들이켜면 목이 확 뚤리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입 밖으로 내밷은 말이다. 하긴 병값을 제하고 물만 마시면 40원이고, 그렇지 않으면 45원이라고 했다. 어느 가게에서는 50원을 받기도 한다는데. 가당찮은 돈이다. 돈이 많아 몸살이 나는 서울것들이나, 돈은 없어도 당장 기죽기가 싫어 뻐기는 허세 좋은 서울놈들이 할 짓이지 나 같은 촌것이, 가당찮다고 생각을 굳힌다.
"시악씨, 나 찬물 한 그럭 얻어묵었으면 쓰겄는디?"
"물요? 목마르면 콜라 사먹으세요."
"냉수는 뭐 공짠 줄 아세요? 우리도 돈내고 먹는 수돗물을 언제 봤다고 공짜로 달래는 거예요?"
복천영감이 칼갈이를 생업으로 삼아 어느덧 6년 가까이 서울에서 격은 고생 , 당한 서러움도 많았다. 하지만 복천 영감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모든 서울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니고 있는 그 몰인정이요, 매정함이었다. 언제나 차갑고 싸늘하고 냉정해서 삭막하기 엄동설한 같은 인심에 부딪힐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울분같은 것을 누를 길이 없었다. 약삭빠르기는 다람쥐 같고, 뻔뻔스럽기는 쇠가죽 같은 낯짝인가 하면, 능청떨기는 백여우요, 억척스럽기는 땅벌 같은 종자들을 대하면서 세월이 흘러가는데도 잽싸게 서울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런 괴로움에 빠지게 하는 서울 냄새를 언제까지나 맡고 있는 자신이 미웠다.
'서울냄새'
나도 서울냄새를 느껴본적이 있다. 그리고 서울에 대해 숱하게 많이도 들어왔었다.
이 책을 썼던때가 73년도였으니 나야 응애, 응애하고 있을 때지만, 언니, 오빠, 그리고 담 너머 너머의 동네분들에게 서울이 어떤곳인지, 사람살곳이 못되는 곳이 서울이라는 말을 정말이지 얼마나 많이 듣고 자랐는지 모른다.
시골에서 살길이 없어 등떠밀리듯 서울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왜 명절이면 내려오지 못하고 돈만 보냈었는지, 그러다가 꼬박꼬박 보내주던 돈도 띄엄 띄엄 오다가 어느때부터는 보내오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서울에 올라가 이의 생사마저도 흔적없이 사라졌던것을 들었었다.
삶의 거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우리가 원했던 그 삶이 펼쳐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게 되지만, 현재와는 다른 그 시대에는 정말이지 그런 생각들은 헛된꿈이라고 비웃을일이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씁쓸한 기분에 몸서리쳐진다.
'무작정 상경1세대'의 애기를 쓴것이 「비탈진 음지」란다.
40여 년 전의 '무작정 상경 1세대', 국민소득 150불 시대의 도시 빈민들이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지금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그 심각한 사실이 우리의 현실이었음에 중편 「비탈진 음지」를 장편 「비탈진 음지」로 개작해야하는 이유가 되었단다.
40여 년 전의 「비탈진 음지」를 만나면서 어렴풋이 들었던 언니, 오빠들의 그 시대의 그 고닮음이 가슴속에 맺혀서 한참을 흐느껴야했다.
그랬다. 그냥 가슴속에 헛헛한 그 무언가가, 바윗덩어리에 짓눌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 책이, 「비탈진 음지」같은 세대를 다시 찾아보기가 힘들어지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하는 작가의 그 울림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