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이 품은 한국사 네 번째 이야기 : 서울.경기도 편 지명이 품은 한국사 4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인 이은식 교수님처럼 수년동안을 직접,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몸소 찾아다니며 예전부터 내려오던 우리것 우리지명과 얽혀 있는 역사를 다시금 밝혀주고 있는 분에게 먼저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명들에 하나 하나 붙여져 있는 그 이름들에는 때로는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할 그런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네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지명이 품은 한국사'의 네번째 이야기인 이 책에는 서울과 경기도의 지명을 쫓아 그 지명에 대한 유래를 알려주고 있다.

 

나라의 중심이라 할 수도 있는 서울이 조선의 수도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데에는 자연환경 중에서도 강과 산이 가장 중심적인 역활을 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북쪽에 화산(삼각산)으로 진산을 삼았으니 용이 내리고 범이 쭈그려 앉은 형세가 있다. 남쪽은 한강으로 금대를 삼았으며, 멀리는 왼쪽으로 대관령을 끌어당기고 오른쪽에는 발해가 둘려서 그 형세가 동방의 제일이요, 정말 산하 요해의 곳이다>라는 구절을 만나니 더욱 그리 생각을 굳히게 된다. 서울과 경기도는 역사적으로 수도를 포용한 국토의 심장부로 민족 문화의 찬란한 꽃을 피우며 발전해 온 지역이다.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지명은 행정편의상이라는 이유와 함게 지명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떠한 곳은 지명이 본뜻과 상관없이 엉뚱하게 바뀌어 역사적 의미가 퇴색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이름들은 단순히 지은 것이 아니라 오랜 우리네의 삶 속에서 역사적, 지역적인 중요성과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므로 소홀히 다룰 문제가 아님을 서울시 지명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더 깊이 느꼈으며, 사라지고 찢어진 땅의 본 이름과 연유를 밝혀 선현들의 삶의 흔적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에, 그러했기에 '지명이 품은 한국사'는 탄생을 하게 되었다한다.


 

서대문구 충정로에 대한 이름은 1905년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였을 때 격노한 민영환이 일본의 부당한 폭력성을 세상에 알리고자 자결을 하였다. 민영환이 순국한 장소가 지금의 충정로1가 자리로 그를 기리기 위해 민영환의 호인 '충정공(忠正公)을 가지고 온 것과 성북구 아리랑 고개에 담겨있는 '아리라'문화가 우리 민족의 토속신앙과 더불어 전승되면서 지금의 아리랑를 비롯한 민요로 발전하였다는 설과 박혁거세의 왕비가 되었던 알영이의 '알영설', 조선조에 살았던 이랑과 성부의 애틋한 구전, 흥선대원군과 관련되어 있는 '아이롱(我耳聾)'설, 그리고 다섯 번째의 경복궁 공사에 동원되어 혹사당한 민중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해서 부르던 '아리랑(我離郞)'이 변천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난리설'과 무려 7개의 설이 나오고 있는 '아리랑 고개'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편의 옛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현재 서울역에서 마포구 공덕동으로 넘어가는 부근의 만리 고개에서 가지고 온 지명으로 청백리 최만리가 살던 '만리동'은 퇴계로, 율곡로, 을지로에 버금가는 표현이라 한다.

 

평택시 이충동(二忠洞)은 조광조와 오달제 두 충신이 살았던 마을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800년(순조 즉위)에 조광조와 오달제가 머물렀던 동네임을 증거하는 유허비가 세워졌으며 바깥에는 두 사람의 유허비를 보호하는 비각인 충의각이 건립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을들에 이처럼 수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그 증거가 되기도 하고 있는 우리 고장에 내려오고 현재도 쓰이고 있는 여러가지 지명들의 유래를 만나면서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기도 하며, 또한 역사속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 고장들에 대한 유래와 함께  그 가치의 소중함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읽기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