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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란 그 시대에는 없었다. 내가 '살아야 할 삶'만이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징역살이를 달달하게 때로는 쌉싸름하게, 때로는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그 무언가를 목구멍 밑으로 억누르며 그렇게 살았던 이건범씨의 말이다.
숨죽이며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주어진 대로 살 것인가, 불의에 맞서 싸우며 살 것인가? 답도 없는 고민을 1년 넘게 끌다가 결국 민주화 운동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했고, 그러고는 10년 동안 그 길에 남았다. 사실 '징역'이라는 말은 '벌금'이나 '금고'와 같은 형벌의 일종인데, 강제로 일을 하게 하는 형벌이다. 재판을 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어감이 '징'그럽고 '역'해서 그런지 빵잽이(수감자를 이르는 은어)들은 '감옥'이라는 말보다 '징역'이라는 말을 그 지겨운 세계의 지칭으로 더 많이 쓴다한다.
저자의 말대로 재수없게도 잘 못 걸려서 두번이나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징역살이의 그 시간들이 이 책의 주류를 이룬다.
광주 5.18이나 6.10민주화운동을 지금은 기록으로 역사로 만나게 되지만, 이 책에서는 이건범씨의 삶속에서 우리네의 흔적을 찾아보게도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역사로만 치부하게 되는 것들이 오래전의 나의 삶의 일부를 들춰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선배가 아니 선배라 할 수도 없는 나이차이가 나는 분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질까? 아니면 바위가 깨질까?"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짐짓 고심한 척 하면서 뒤늦게 답변이라고 내어 놓았다.
"어떻게 깨지기 쉬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데, 바위가 깨지겠어요? 차라리 돌멩이라면 모를까..."
그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선배는 다 물었다.
"그래도 계란으로 수 없이 바위를 향해 던지면 언젠가는 바위도 깨지지 않을까...."
그저 넋두리처럼, 나의 답변에 그저 혼자 되뇌이는 말처럼 나에게 다시 말을 건넸지만, 나의 그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그 화염병속에서 매퀘한 냄새에 숨조차 가누기 힘들었지만, 5.18을 직.간접적으로 체득한 나로서는 대학생들의 행위에 무심코라도 말을 내밷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하는 행동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여튼, 그들은 정말 해냈다.
계란으로 정말로 바위를 깨뜨렸고, 민주화운동의 결실들을 우리앞에 차곡차곡 내어놓게 하고 있다.
참으로 많은이들이 죽어갔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많은 이들이 그 공포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들속에서도 강하게 살아남아 있는 그들이 있었으니, 아마도 그들은 이건범씨의 징역살이와 함께 했던 이야기처럼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린 80년대의 힘이 슬픔과 분노만이 아니라 웃음과 낙관에서도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이는 감옥만이 감옥이겠는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계기도 되는 책읽기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