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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평화주의자 20인 ㅣ 미네르바의 올빼미 35
켄벨러 헤더체이스 지음 / 푸른나무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위대한 평화주의자 20인은 어떤 인물들을 소개할 것이가에서부터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수백 명의 평화주의자들을 검토하고, 1250명이 넘는 후보자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며 따졌던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비폭력을 위해 철저히 몸을 바쳤는가?
2. 1800년 이후에 태어났는가?(독자들이 보다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비교적 최근의 인물들을 골랐다.)
3. 그 인물에 관한 자료가 한 꼭지 분량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가?
4. 인물의 일생에 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참고할 수 잇는 자서전이나 영화, 혹은 단체가 있는가?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면서 평화를 향한 길이 다섯 갈래로 정리되었고 '비폭력의 선택, 평화의 삶, 다양성 존중, 모든 생명 존중, 지구 보호'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비폭력 선택으로 자리매김했던 이들중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름부터 생소하다.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후 고향 콩코드로 돌아와 교사 생활을 시작했지담 불과 2주 만에 그 일을 때려치웟다. 학교로부터 학생들에게 매질을 해야한다는 지시에 따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노예페지론자들의 회의장소로 선뜻 집을 회의 장소로 내놓기도 했는데 그의 사고는 그의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했다. 그는 "나는 내 운명을 속속들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의 노예제도에 대한 비폭력의 방법으로 주민세를 납부하지 않아서 읍내로 볼일을 보러가는 도중에 체포되어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엇으며, 그러한 비폭력의 생활들 속에서 마흔넷의 나이로어머니와 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히아신스 꽃향기르를 맡으며 세상을 떠나게 된다.
비폭력의 상징이 되는 마하트마 간디는 동갑내기로 열세살에 결혼한 카스투르마간지라는 소녀가 병중에 있었을 때는 영국의 약을 쓸 수가 없다하여 고통속에 부인을 저 세상으로 보냈던 오류도 범하기도 하였지만, 일생을 비폭력 평화주의를 외치며 살아온 덕분에 250년에 걸친 영국의 지배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100만 명이 넘게 장례 행렬에 참석했다.
평화주의자들의 삶과 업적에 대해 나열하면서 그 뒤로는 그들이 살아온 세월 동안의 어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어록들을 보면서 위대한 평화주의자들의 성품과 그들이 어떠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었는지에 대해 작게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소스카르 아리아스의 '우리'라는 말은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것에 대하여 그의 생각의 폭이 어느만큼 넓고 깊었는지에 대해 가늠해보게 하기도 하며, 종파를 초월한 화합을 주장했던 브루노 후사르님도 많은 평화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육신은 보잘것 없는 판자집에서 기거를 하면서 그의 큰 이상에 더 큰 힘과 에너지를 쏟아냈다는 공통점을 찾게 된다.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인종 차별에 대해 데스몬드 투투는 '모두가 하나다'라는 믿음에서 화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그의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던 비교적 평안한 가정에서 자란 그가 왜 굳이 험난한 비폭력의 길에서 외쳤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자면 많은 비폭력주의자들의 부모님의 개방적인 자유와 환경에 의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큰 범위에서 위대한 평화주의자들 20인의 후속편도 기대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하여서 우리가 지금 순간에 강해지기 위해서 눈에 보이고 효과가 탁월한 폭력적인 그런한 사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에 경계를 해야 함이나 그러한 비폭력가치관이 우리의 인생에서 지구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크나 큰 힘과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때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될것이라는 기대를 함께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