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내 이름은 샤드샤드-아랍어로는 "희망희망"이지만, 영어로는 "슬픔슬픔"이란 뜻이다.

 

언제부터였을까...샤드샤드에게 불행의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부시는 이라크 바드다드에서 도대체 무얼 찾을려고 그리 무모한 짓을 한걸까.

나오는 것이라곤 석유밖에 없구, 그래도 그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되뇌이면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던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샤드샤드에게 그의 절실한 장래까지도 생각했던, 그래서 소중하게 아끼고 숨겨두었던 그 친구가 수니파들에게서 해방되었다고 환호하던 그 때에 그 집에 폭탄이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다니...

오랜동안의 자유스럽지 못한 생활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통치를 해준다니 마음을 놓고 희망을 가졌는데..

매형과 아버지 가족들 모두가 하나 둘 스러져 가면서 이젠 바그다드가 더 이상 예전의 바그다드가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 집에 있는 모든 것을 팔아도 입에 풀칠한다는 것이 호사로만 생각되기 시작하자 샤드샤드는 결심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다시 샤드와 엄마의 행동에서 움직이며 동조하고, 샤드샤드가 드디어 희망을 찾아 떠난것에 같이 동행을 해주니.

샤드샤드의 앞길에 희망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었다.

하지만 샤드샤드에게는 미국인과 이라크를 벗어나면 다 될 것 같았던 모든 것들이 결코 이방인에게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음을 처절히 깨우쳐야 했다.

샤드샤드의 삶은 이라크 모든 국민의 삶이요. 예전 6.25를 끝내고 살아가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기도 했다.

모든 삶이 망가진다고 해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그것은 희망이었으니.

그 희망을 찾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샤드샤드의 기나긴 여정이 가느다란 끄나풀처럼 나의 눈을 끌고 있었음이다.

 

이라크의 현실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주고 했을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님의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아직까지도 그 무언가에 대해 결단을 내리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일진대, 소설로 바그다드의 샤드샤드를 통해서 미국의 허황된꿈으로 인해 이라크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인간폭탄도 스스럼 없이 행하는 그들에겐 어떤 종교적인 힘으로 그런일들을 할까. 그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맘으로 그리 행동을 한다는 것에는 면죄부가 주어질 리 없겠지만,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의 외면속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희망'-'샤드샤드'는 영원히 존재했으면 한다. 그들의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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