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뒤척여봐도끝내 잠에 빠지지 못했다.새벽 세 시.작은 불 빛에 기대고.시집을 집어든다.첫 장부터 빠져든다.그래. 나도 나의 엄마를 오래도록 기다렸지.어린시절 나의 엄마가 이쁜 원피스 입고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지.어느 날 뾰족구두에 꽃무늬 양산을 쓴 여인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며"나는 잠시 맡겨진 아이야"소공녀를 읽으며 주문을 걸었다는 시인.선데이 서울!아주 오래전에 쿵쾅 거리는 심장소리를 억누르며오라비가 바지 뒷주머니에 둘둘 말아 집어넣은 채나타났을 때, 몰래 친구들을 모아놓고 소공녀와 퀴리부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보다 선데이 서울에서 보였던 가슴 볼록한 여자들의 몽롱한 눈빛을 더 흥미로워했다는. 그리고 오라비가 금방 책 속에서 나온 듯한 여자를 데려오면서 은밀한 독서의 방은 문을 닫고, 못다 쓴 일기의 마지막 장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은 문장은 흔들렸다. 얼마간은 불량하게.비슷한 세대를 살아 온 우리네들의 이야기가 시로 탄생되어가고 있었다.시인 정현종의 방문객에서 그랬지.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라고.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라고.잠이 오지 않는 밤도 있던 날을 생전 첨으로 겪었던 그 날. 그 새벽까지 조하은 시인의 시를 모조리 읽으면서난 그 시인의 인생을 만나고 말았다.사람을 만나서 만났던 그의 일생이, 사람을 굳이 만나지 못했어도 그 사람의 인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육성회비가 없어서 집으로 쫓겨 가던 날.육성회비대신에 빈 봉투와 생고구마를 받은 담임은받은 생고구마로 머리통을 후려친다.그 날 밤 숙자 엄마가 싸다 준 거한 저녁식사와 중간고사 답안지는 담임선생의 서랍 속에 같이 잠들었고시인은 중간고사 1등을 했다. 그렇게 복수란 단어의 뜻을 그렇게 배웠다고 했다.삶의 아름다운 것을 보기 보다는삶의 모서리. 어쩌면 외면하고 싶을 그 모습들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그 아픔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의 시를 만난다. 하지만 아픔과 슬픔은 피비린내 나는 고통과 복수, 좌절로만 끝나지 않음은. 시인의 인생을 마주하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시집 한 권을 집어들면서시인의 인생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는.2020.9.13.소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