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페이지 조선사 365 - 읽다보면 역사의 흐름이 트이는 조선 왕조 이야기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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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일 1페이지 조선사

 : 유정호

 : 믹스커피

 : 2022/04/27 - 2022/05/07


하루에 한사건씩 읽어나가게 기획되는 책들이 요즘 대세인가 보다.

한국사, 세계사, 미술등등 이런 시리즈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번엔 조선사다. 

우리 시대와 가장 가까운 왕조시대다 보니 조선왕조 실록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서와 유물들이 있어서 꽤 자세하게 알고 있는 조선시대.

이 시대에서 기억할만한 내용 365개를 뽑아 만든 책이다. 

왕조시대답게 왕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먼저 왕에 대한 간단한 역사가 나오고 왕의 가계도, 그리고 그 시대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로 구성된다.

역사라는게 결국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게 되는데 대부분은 역사책이나 개론서에서 다루던 내용들이라 읽으면서 특별히 깨달은 부분은 없다.

남존여비사상이 강한 시대라서 그런지 여자들에 대한 내용도 궁중여인들 빼면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정도가 전부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 킬링타임용으로 시간남을때마다 읽어가면 좋을 것 같다.



14% 왕자의 난의 숨은 공로자였던 원경왕후는 자신의 친정을 멸문지화시킨 태종과 자주 싸웠고, 이로 인해 폐비가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16% 세종이 예문 대제학 윤형에게 서책에 대해 질문한 일이 있었다. 윤형이 여러 책을 참고해 대답을 잘하자, 세종은 윤형에게 책을 몇 번이나 보기에 이토록 잘 기억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윤형이 30번 정도 읽는다고 대답하자, 세종 자신도 평소 여러 책을 백 번 이상 읽는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30% 조선 초는 고려시대의 풍속이 남아 있어 남녀 간에 정을 통하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종 때에 이르면서 조선은 여성의 정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칠거지악을 내세워 여성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했다.

38% 10장으로 이루어진 격몽요결은 배움의 목적이 입신양명이 아닌 성인이 되는 것임을 밝히고, 학문을 익히는 데 필요한 자세와 경계해야 할 태도를 책에 담았다. 또한 학문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소학-대학-대학혹문-논어-맹자-중용-시경-예경-서경-주역-춘추순으로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39% 야사 속 이야기이긴 하나, 동궁에 불이 났을 때 문정왕후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죽으려던 인종의 모습은 그의 효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39% 인종이 죽은 7월 1일이 다가오면 미친 사람처럼 술을 마시고 울었다. 명종은 김인후를 조정에 불러내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병이 깊어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뿐이었다. 김인후는 유언으로 인종 때 받은 옥 및 현령 이후에 받은 관직은 절대로 쓰지 못하게 해, 영원히 인종의 신하로 남기를 원했다

41% 황진이는 얼녀 대부분이 사대부의 첩으로 살아가던 당시의 일반적인 행태를 거부하고 기녀가 되었다

42% 명종은 이황을 어떡하든 자신의 옆에 두고 싶어 그에게 음식을 보내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황이 뜻을 굽히지 않자, 명종은 이황이 머무는 도산의 풍경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그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황은 평생 140여 회의 벼슬을 받았고, 그중 70여 회를 사임했다

44% 이이의 학설은 주희의 성리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조선만의 성리학을 성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45% 신사임당은 강릉 오죽헌에서 아이를 낳던 날 흑룡이 집으로 날아오는 꿈을 꿨다. 꿈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신사임당은 이이의 아명을 현룡이라 짓고, 아이가 태어난 방을 몽룡실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쓴 역사서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 이이의 출생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이가 그만큼 막대한 영향을 미친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54% 산림이 붕당의 영수로 숭상받으며 많은 제자와 관리의 존경을 받는만큼, 그들의 말 한마디는 정국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산림과 의견이 다르거나 산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비난을 넘어 최악의 경우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다

62% 송시열은 주자학만을 최고의 학문으로 여겼으며, 그중에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했다. 그는 기호학파의 학풍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은 자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이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75% 수민묘전 서문에 고금의 의서 중에 우리나라의 소용에 적합한 것은 오직 허준의 동의보감뿐이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짐작해봤을 때, 정조 스스로가 굉장히 많은 의서를 공부해 의학지식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76% 오늘날 전해지는 300여 점의 김홍도 작품은 모두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78% 정조가 필통에 술을담아 마실 정도로 주당이었고 담배를 너무도 좋아하던 애연가였던 점에서 죽음의 원인을 찾고 있다. 만 24년 동안 많은 업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았음에도 정조가 조선 왕의 평균 수명인 46세보다도 오래 살았던 점을 들어 정조의 죽음은 자연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79% 교황청은 황사영 백서를 200부 인쇄해 주요 카톨릭 국가에 배포했다. 백성의 원본은 현재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82% 그는 세한도 발문에 “날이 차가워진 연휴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공자의 글을 적었다. 많은 이가 이익을 좇아 자신을 멀리하는 것과 달리 통역관 이상적만은 경세문편 등 여러 책을 구해주며 자신을 보살펴 준 데 따른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84% 실제로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전국을 돌아다니며 답사해 만든 것이 아닌 기존에 있던 지도와 지리서를 토대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검증해 만들어졌다

89% 사람이 거주하기 전의 마라도에는 우거진 숲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기 위해 숲을 태우면서 마라도는 나무가 없는 섬이 되었다. 그러나 화전인은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고자 퉁소 소리에 몰려오는 뱀을 내쫓으려 불을 피우다 숲을 태워버렸다는 전설을 만들었다

91% 이를 막을 힘이 없던 조선 내각은 1년간의 아관파천 시기에 경인선, 경의선 등 주요 이권을 열강에 넘기며 자주국으로서의 위신을 잃었다

93% 엄귀비는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붙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엄귀비는 여성도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개이 ㄴ돈으로 1906년 진명여학교와 숙명여대 전신인 명신여학교를 세웠다. 1907년에는 양정의숙(양정고)의 경영을 도와주었다. 이 외에도 종로의 걸인을 도와주고 진명부인회에 돈과 건물을 하사며 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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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이돌 - 또 사랑에 빠져버린 거니? 아무튼 시리즈 45
윤혜은 지음 / 제철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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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튼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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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29 - 2022/05/03


나도 아이돌을 졸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이 반갑다

저자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대부분 남자 아이돌이고 최근에 좋아한다는 아이돌은 이름도 노래도 생소하지만 저자의 행동, 마음, 눈길을 다 이해할 수 있다.

역시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한때 오빠부대, 빠순이 등등으로 불리며 주로 나쁜 모습으로 비쳐줬던 팬들이 이제는 열정적인 사람들의 대명사로 바뀐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원래 창의성과 새로움은 잉여력에서 나온다.

이런 잉여들이 모여 추억을 만들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끝까지 뜨겁게 불태웠으면 좋겠다.. 


p35 아이돌판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잠언이 하나 있다. 휴덕은 있되, 탈덕은 없다는 말

p67 그 무렵 나는 잡덕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보다 좋은 말로는 전방위 아이돌 덕후, 아이돌 박애주의 등이 있겠다.

p111 소속사가 예고 없이 던져주는, 스무 고개처럼 아리송한 떡밥과 웬만한 SF 시리즈물 저리 가라하는 대서사의 뮤직비디오 스토리를 나노 단위로 탐구하다 보면 내가 덕질을 하는 건지 비문학 지문을 해석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p116 정말로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면 결과는 딱 두 가지밖에 없어요. 자기가 원하는 걸 얻거나, 그 고정을 통해 뭔가를 배우거나. 이 두 개면 됩니다.

p160 내가 되고 싶은 건 number one이 아닌 only one. 나는 이 노래를 흥얼거릴 때마다 어느 팬이 답가처럼 남겨둔 말을 함께 떠올린다. “너희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only one이 돼. number one은 우리가 만들어줄 테니까”

p174 다이아몬드에는 중고라는 것이 없지. 천년을 가도 만년을 가도 영원히 청춘인 돌

p200 삶은 계속되어야 해. 착한 사람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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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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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의 짧은 역사

 : 앤드루 H 놀

 : 다산 사이언스

 : 2022/04/25 - 2022/04/30


재미있어서 술술 넘어간다.

빅히스토리가 유행이라 많은 책들이 나오더니 이렇게 재미있는 책도 나왔다.

과학자의 시각에서 본 지구역사는 이런 느낌이구나 깨닫는다.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진화와 생태계를 아우르며 책이 씌여졌다.

특히 실제 화석이나 퇴적지역을 알려주며 이런 저런 증거때문에 과학자들이 이렇게 해석한다는 설명은 이해하기에 좋았고, 그런 지역을 가보고 싶게 만든다.

미국의 덜떨어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며 결국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다보니 더욱 강하게 든다. 

과거의 멸종때는 외부 요인이었지만 이번 멸종은 우리 손으로 이뤄내고 있다.

재미있다. 


11% 하늘에서 보이는 알려진 모든 물체들의 질량을 더했을 때, 그들은 하늘에서 관측한 사항들을 설명하기에는 질량이 모자란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우주에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중력을 통해 일반적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면서도 빛과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천문학자들은 그것에 암흑물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3% 빛이 우주의 역사를 말해준다면, 암석은 우리 행성의 역사를 알려준다.

41% 데일스 협곡은 출발점으로 삼기에 좋은 장소다. 호주 북서부의 건조한 평원에 좁게 파인 골짜기인 이곳에는 거의 25억 년 전에 높이 쌓인 퇴적암 지층이 드러나 있다

62% 육지의 광합성이 필연적으로 물 손실을 수반하므로, 식물은 주변에서 물을 흡수하여 몸 전체로 수송하는 매커니즘이 필요하다

72% 점토층의 높은 이리듐 함량이 느린 속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서서히 축적된 것이 아니라면, 다량의 이리듐이 빠르게 쌓였다고 보아야 했다. 그런 일은 커다란 운석이 충돌하여 일어났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앨버레즈 연구진은 그 운석의 지름이 11킬로미터에 달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그런 충돌은 지구 전체에 재앙을 일으켰을 것이다. 공룡을 비롯한 온갖 동물, 식물, 미생물을 멸종시킴으로써 고제3기의 새벽을 결코 보지 못하게 만든 재앙이었다

73% 동물의 다양성은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에 늘어났지만, 오르도비스기 말에 급감했다. 그 뒤에 다시 늘어났다가 데본기 말에 다시금 급감했고, 이 주기를 세 번 더 되풀이했다. 백악기 말의 대멸종도 그중 하나였다. 지구의 생물상은 지난 5억년 동안 총 5차례 대멸종을 겪었고, 그보다 덜한 멸종 사건도 6번 일어났다.

81%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는 사람속의 유일한, 아니 사람족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살아 있는 종이다. 화석을 기준으로 삼으면, 사람속에는 적어도 13종이 더 있었는데(그중 11종은 정식으로 학명이 붙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85% 서식지 파괴, 오염, 남획, 침입종은 한 세기 넘게 자연 생태계를 없애 왔다. 유럽인이 들어온 이래로 호주의 토착 포유류 종이 10퍼센트 이상 사라졌고, 1970년 이래로 북아메리카의 조류 개체 수가 30퍼센트 줄어들었고, 지난 10년 사이에 유럽 초원의 곤충 개체 수가 거의 80퍼센트 줄었다는 뉴스를 읽을 때, 그 냉정한 통계는 대체로 이런 활동들의 결과였다

89% 우리 시대를 인류세라고 따로 구분하는 지질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류가 주변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고, 그래서 이전 세대와 달라졌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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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답법 - 개싸움을 지적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피터 버고지언.제임스 린지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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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의 문답법

 : 피터 버고지언

 : 윌북

 : 2022/04/24 - 2022/04/28


책 제목은 참 맘에 드는데 의외로 내용은 별로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법한 사람과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만 써 있어서 흥미가 떨어졌다. 

사례도 외국 사례여서인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배우고 싶은 내용이라 내가 제목을 보고 너무 기대를 했나보다.


8% 이 책에서 언급하는 말이 안 통하는 대화란, 상대방의 생각이나 믿음 또는 도덕관, 정치관, 세계관이 나와 너무 달라서 대화해봤자 도저히 소득이 없어 보이는 경우를 뜻한다

12% 안전하고 신뢰갑 있는 소통 환경을 만드는 방법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서로 대화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을 생산적 대화를 위한 협력 상대처럼 대하면 된다

15% 상대방이 얼마 전 쿠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나도 쿠바에 가보았다며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상대방의 쿠바 여행이 어땠는지 묻도록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전환해선 안된다. 그러면 라포르가 훼손된다.

22%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행동이 있다면, 내가 먼저 본보기를 보이자.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해주길 원하면,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자

24% 진보주의자는 복지 문제를 배려와 위해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보수주의자는 복지 문제를 주로 공정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26% 소셜미디어에 도발적 질문을 올리고 예의 있는 논의를 기대하는 건 순진함을 넘어 아둔한 짓이다

46% 우리는 근거를 바탕으로 믿음을 형성하는 데 대개 서투르다. 믿음이 틀렸음을 확인하기보다는 옮음을 확인하는 데 주력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60%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특별히 해당 주제의 전문가이거나, 혹은 주제가 간단하지 않은 대화라면 서로의 의견 차이는 오히려 진실에 접근하는 발판 역할을 할 수 있다. 철학에서는 이런 방법을 두루 가리켜 변증법이라고 한다. 서로 주장을 주고받으며 더 정교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73% 자그마치 정결(독극물 주입), 충성(우리 대 그들), 권위(지도자들이 국민을 지켜야 함), 배려(아이들)라는 네 개의 기반에 동시에 호소하는, 드문 경우군요. 다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대단히 광범위한 도덕 가치 기반, 즉 도덕적 직관에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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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산다는 것 -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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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비로 산다는 것

 :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22/04/16 - 2022/04/25


조선의 왕비에 대한 내용인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조선왕조의 모든 왕비에 대해 서술이 될 줄은 몰랐다.

왕이 아니라 왕비의 삶을 여러 역사서를 통해서 알게 되니 신선했다. 

신분상승의 기회일 수도 있지만 실제 조선의 왕비들은 그리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세자빈으로 들어와 일찌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쫓겨나는 경우, 대군의 부인이었는데 정변이 벌어져 왕비가 되기도 하고, 사약을 받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죽은 이후 무덤이 수난을 겪기도 한다. 

남성 중심의 조선사회에서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기 힘들었던 시대를 살아간 왕비들...

남들은 부러워했을 지 모르나 행복한 삶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성차별의 사회이긴 하지만 지금이 더 나아보인다.

책은 참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책이다. 


2% 세조의 집권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폐비가 된 정순왕후는 현재의 창신동 인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폐위된 지 230여 년 만인 숙종 때에 복권되기는 했지만, 20대 이후의 전 생애를 폐비가 된 일반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정순왕후의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7% 정안왕후는 1373년경 19세의 나이로 2세 연하의 정종과 혼인하여 40년 가까이 해로했지만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했다. 정종이 9명의 후궁 사이에서 17남 8녀를 둔 상황을 고려할 때 왕비는 인고의 세월을 담담하게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8% 원경왕후는 남편을 왕으로 만든 최고의 정치적 동지였으나 정작 남편이 왕이 된 후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친정 가문까지 철저하게 탄압받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13% 순빈은 이를 배운 지 며칠 만에 책을 뜰에 던져버렸고, 궁궐 안에서 술을 즐겨 마시며 자유분방하게 생활했다. “성품이 술을 즐겨 항상 방 속에 술을 준비해 두고는, 큰 그릇으로 연거푸 술을 마시어 몸시 취하기를 좋아하였다. 혹 어떤 대는 시중드는 여종으로 하여금 자신을 업고 뜰가운데로 다니게 하고, 혹 어떤 때는 술이 모자라면 사사로이 집에서 가져와서 마시기도 하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에서 술을 좋아하고 술주정이 매우 심했던 그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15% 현덕왕후는 세조와 큰 악연을 가져 사후에 무덤이 훼손되고 종묘에서 신주가 없어지는 등 큰 수난을 겪었다. 중종 시대에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면서 무덤도 남편 곁으로 오게 되었다

16% 세조의 왕비에 대한 사후 보복도 이어졌다. 연려실기술에는 “하룻밤에 세조가 꿈을 꾸었는데 현덕왕후가 매우 분노하여, 네가 죄 없는 애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너는 알아두어라 하였다. 세조가 놀라 일어나니, 갑자기 동궁(세조의 장자, 의경세자)이 죽었다는 기별이 들려왔다. 그 때문에 소릉을 파헤치는 변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동안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었던 현덕왕후는 중종 시대에 들어와 마침내 왕비의 지위를 되찾게 된다

18% 정순왕후는 18세 때인 1457년 단종과 사별한 후 숱한 시련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64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중종 때인 1521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세종 때 출생한 그녀는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등 무려 8명의 왕과 함께 한 세상을 보낸 셈이다. 그녀의 무덤은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 집안 중종의 산이 있는 현재의 남양주시 진건읍에 대군부인의 묘로 조성되었다.

22% 성종실록에는 공혜왕후가 후궁에 대한 투기 없이 그녀들에게 최대한 은혜를 베풀어준 정황이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혜왕후 승하 후에 바로 성종의 계비가 된 폐비 윤씨가 후궁에 대한 투기가 대단했던 상황과 묘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25% 김시습의 초상화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그대로 나타난다. 일반 유학자들은 흔히 쓰지 않는 모자하며, 목에 염주를 찬 모습은 단번에 그가 기인의 풍모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28%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문자를 잘 알고 있던 신여성 인수대비에게, 왕인 남편의 행동을 투기하고 손찌검까지 하는 며느리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극심한 갈등은 결국 조선 왕조 최초의 왕비의 폐출과 사사라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30%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란,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하되 말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하였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32% 중종은 경복궁에서도 늘 옛 왕비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단경왕후는 중종이 알아볼 수 있도록 집 근처 인왕산 자락에 붉은 치마를 걸쳐놓았고,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다. 그만큼 두 사람의 애정이 폐위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36%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중심으로 하는 외척들은 자신의 세력을 견제하는 사림파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였다. 그들은 1545년 명종의 즉위를 계기로 사림파를 대거 숙청시키는 을사사화를 일으킴으로써 4대 사화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41% 16세기의 학자 조식은 당대에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지칭된 인물로서, 특히 성리학의 실천을 중시한 학자였다. 수양의 상징으로 항상 깨어 있다는 듯을 가진 성성자라는 방울을 옷에 달고 실천을 위한 행위로 자신의 사상을 글자로 새겨넣은 칼을 차고 다닌 것은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51% 인조가 왕이 된 후에도 적극적인 내조를 하고, 광해군 세력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푸는 등 궁궐 내 야당의 역할을 했던 인열왕후는 1635년 12월 9일 산실청으로 쓰이던 창경궁 여휘당에서 승하앴다

53% 경희궁 창건은 처음부터 관료들의 동의를 얻어 공역 계획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술사, 지관, 괴승 등의 도참적 요언을 빌려 광해군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시도된 것이었다. 광해군 즉위 초부터 일방적으로 권력을 전횡하려는 신권에 대한 견제와 왕위의 정통성 확보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서 정치적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59% 왕비가 된 후에도 인선왕후는 처신에 신중을 기했다. 항상 “부인이 스스로 잘난 체하면 가정이나 나라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으니 암탁히 새벽에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경계를 신중히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고 할 정도로 조용한 내조를 실천했다

60%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남편이 왕이 되고 왕비가 되고, 아들이 왕이 되어 왕대비의 지위에 오른 왕비, 즉 조선에서 세자빈, 왕비, 대비의 세 과정을 모두 거친 경우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놀랍게도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 1명뿐이다. 이는 조선의 왕위 게승에 그만큼 변수가 많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67% 서인 측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만중은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정계에서 물러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 일부다처제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처첩간의 갈등을 그린 가정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소설 속에는 서인과 남인의 권력 쟁탈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숨겨져 있었다

72% 한중록에도 “원래 영조와 정성왕후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여, 병환이 위중하신 후에야 오신것이라”고 하여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를 증언하고 있다. 정성왕후의 회갑에 신하들이 하례하려 하자, 이를 허락하지 않는 영조의 모습도 영조실록 1752년 11월 23일의 기록에 실려있다

73% 정순왕후의 친족들은 영조 시대의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면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는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했다. 이러한 정순왕후의 정치노선은 시파의 입장에 서 있었던 정조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었다

81%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책을 좋아하는 스승을 위해 책을 보냈다. 이에 감동한 김정희는 의리를 지키는 제자를 위해 그림을 그려 화답했다. 이것이 불후의 명작 세한도로 1844년 김정희가 59세 때 그린 역작이다.

91% 명성황후가 장호원에 피난을 가 있던 힘든 시기에 그녀의 한양 입성을 거의 정확히 맞힌 무당 진령군은 이를 계기로 왕비의 최측근이 되었다. 진령군은 명성황후가 과도하게 굿에 의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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