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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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헌의 그리스로마신화

 : 김헌

 : 을유문화사

 : 2022/09/18 - 2022/09/28


김헌교수님이 쓴 그리스로마 신화.

신화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화이야기의 의미와 현대세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의미를 함께 이야기한다. 

제우스의 바람기를 협치로 해석해서 독특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여러 책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는 것도 흥미거리다. 

대표적인 예가 오리온에 대한 이야기. 어쩐지 읽다보면 같은 신의 이야기인데 책마다 아른 이야기를 해서 헷갈렸던 적이 많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 유럽의 그림이나 조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읽기는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도 많아서 참 난처할 때가 있다. 특히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읽게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만화로 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더더욱 난감하다.

그런 면에서 에피소드와 해석이 같이 있는 이런 그리스로마 신화는 아이에게 읽히기에도 좋은 것 같다. 아무래도 아이는 만화책을 더 좋아하긴 하겠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p22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제가 잡고 있던 것들을 놓고 빈손이 되자, 저는 새로운 일을 향해 떠날 수 있었고, 비워 놓은 그삶의 빈터에 비로소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p34 죽음은 잠과 닮은 점이 참 많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하고, 잠을 죽음의 연습이라고도 합니다.

p35 대부분의 부정적 현상들과 감정, 요소들이 모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낳은 자식들이라는 상상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아주 흥미롭지 않습니까?

p43 경쟁에서 패하면 실제로 비참한 상태에 몰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지옥 같겠지요. 그리스,로마인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타르타로스로 상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졌겠지요. 강한 자가 되라. 승자가 되라. 그렇지 않으면 타르타로스로 떨어지리라

p46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에로스를 태초에 생겨난 최초의 신들 가운데 하나로 소개했습니다. 태초에 공간의 신 카오스가 맨 처음에 생겼고, 그다음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그러고 나서 지하의 신 타르타로스가, 마지막으로 에로스가 생겼다고 했지요.

p66 진짜 아버지를 죽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성세대 권위와 모순에 겁먹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시대와 역사를 열어 나가라는 뜻입니다.

p88 꼭 필요한 협력자를 얻기 위한 제우스의 집요한 노력을 보면서 저는 자문해 보았습니다. ‘나는 내게 꼭 필요한 친구나 동료, 협력자를 얻기 위해 제우스처럼 나 자신을 얼마나 변신시켰나?’

p125 니체는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오류다라고 했는데, 무사 여신들과 무시케 덕택에 우리의 삶은 바로 잡히는 셈입니다.

p152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태어나 해와 달의 신이 되면서 섬의 이름이 찬란하다는 뜻의 델로스로 바뀌었고, 비로소 바다 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p154 남매의 사적 보복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공격적인 오만함에 대한 신성한 응징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운 때문에 기고만장해서 다른 이를 질투하고 무시한다면, 그 오만함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신화입니다.

p176 아르테미스 여신의 손에 죽은 건데요, 여신이 화살을 쏴서 직접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오리온에게 전갈을 보내서 독침으로 찔러 죽였다는 이야기가 훨씬 더 유명합니다.

p179 아레스는 전쟁을 일으켜 신들과 사람들에게 죽음과 고통, 슬픔을 안겨줄 뿐, 정작 전쟁에서는 그 어떤 빛나는 활약도 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지도 못합니다.

p180 로마 신화에서 마르스는 단순히 전쟁의 신이 아니라, 한 해가 비로소 시작되는 3월의 신이듯, 겨울을 깨고 피어나는 봄의 신이며,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 그렇듯 활력이 넘치는 젊음의 신이었습니다. 봄에 시작되는 힘찬 농업의 신이기도 했죠.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로마 신화 고유의 특징입니다.

p186 헤파이스토스는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담하고 우울의 수렁에 빠지는 대신, 피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닦은 탁월한 기술은 그가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나가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데에 큰 기여를 합니다.

p201 신화 속 헤르메스는 한쪽의 뜻을 잘 헤아려서 다른 쪽으로 오해의 여지없이 전달하여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p214 디오뉘소스는 자수성가형 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극복했고, 죽은 어머니도 부활시켰기 대문이지요. 옛 그리스 사람들은 디오뉘ㅗ스가 죽음을 이기고 새롭게 태어난 데다가 어머니르 ㄹ하데스에서 데려오고 봄에 세상을 다시 피어오르게 하기 때문에 부활의 신이라 생각했습니다.

p221 봄이 되면 땅에는 부활하듯이 만물이 소생하고, 하늘에는 처녀자리가 환하게 나타나는 겁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처녀자리를 보고 페르세포네가 엄마를 만나려고 지하 세계에서 나온다고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거죠. 반면 가을과 겨울이 되면 하늘에서 처녀자리가 사라지니까 페르세포네가 다시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고 생각한 거고요. 이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봄에 나타나는 처녀자리가 손에 곡식을 들고 있다고 상상했지요

p227 신화의 상징을 풀어 보면, 최고 권력인 제우스가 정의인 테미스와 결합하니까 인간 사회는 정의롭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p232 시칠리아섬의 에트나산이면 지금도 화산이 폭발한다는 그 활화산인데, 사람들은 그 화산이 그때 산 밑에 깔려 바다 아래 지하에 갇힌 튀폰이 불을 뿜기 때문에 용암을 뿜어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건, 튀폰이 발작을 일으키고 다시 지상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거라고 말했던 겁니다. 또 거대한 돌품을 동반한 태풍은 튀폰의 거친 입김이라고 합니다.

p244 1994년에 네메이아 경기를 부활시키는 협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의 보통 사람들이 4년마다 모여 고대 그리스인들의 복장을 입고 맨발로 경기를 벌이는 축제를 재생시킨 건데요. 현대 올림픽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운동선수들만 참여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멀어졌고, 게다가 너무 상업적이고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지나치자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겁니다.

p254 아마도 아테나 여신은 포세이돈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면서도 권위를 지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메두사에게 해코지를 한 것 같습니다.

p261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여름철 밤하늘에 빛나는 궁수자리를 보면서 훌륭한 품성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케이론을 기억했고, 자식들에게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며 교육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p263 원초적인 신인 에로스는 세상 만물이 탄생하는 창조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남녀가 사랑해야 아이가 생겨나듯, 이 세상 모든 것이 에로스에서 비롯된 겁니다.

p266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프쉬케와 에로스의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며,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겁니다.

p269 그 악기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팬파이프이고 그것을 연주하는 것이 판이 쉬링크스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었습니다. 처음에 판은 사랑하던 뉨페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그 악기를 쉬링크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팬파이프를 쉬링크스라고 부릅니다.

p277 물병자리의 주인공인 가뉘메데스는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거나 심지어 죽지도 않고 하늘로 올라가, 그대로 별자리가 된 거의 유일한 예인 것 같습니다.

p301 어떻게 남신과 여신 사이에서 인간이 태어날 수 있을까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신과 뉨페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불멸의 신이 아니라 인간인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p309 이오는 세상을 이리저리 떠돌다가 이집트로 갔고, 거기서 텔레고노스와 결혼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집트 최고의 여신인 이시스가 되었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p318 미노아 문명은 대략 기원전 2,700년에서 1,450년까지 번영을 누리다가, 기원전 1,100년경에 몰락했지요. 몰락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일어난 뮈케네 문명과의 충돌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원인은 천재지변 때문인데요. 크레타섬 북쪽에 있는, 지금은 산토리니라 불린는 섬에서 일어난 거대한 화산 폭발 때문이었습니다.

p348 숱한 역경을 이겨 낸 벨레로콘테스가 이런 말들을 곱씹어 봤다면, 오만한 인간이 아닌, 위대한 영웅으로 남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도 뜻하지 않는 허망한 몰락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p362 잔혹한 상상이지만, 테세우스는 그럴 만한 영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아이게우스는 따뜻한 아버지는 아니었으니까요

p364 테세우스는 친구인 페이라이토오스와 함께 하데스로 내려가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천신만고 끝에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지만, 오랫동안 궁궐을 비운 사이 아테네에 반란이 일어나 결국 추방당하고 맙니다. 그는 스퀴로스섬의 뤼코메데스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뤼코메데스 왕은 테세우스가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의심하고 그를 절벽으로 유인하여 바다로 밀어 떨어뜨리지요

p370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에 실린 힘폴뤼토스와 파이드라의 이야기는 인간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노력하고 고결하게 행동해도 뜻하지 않게 비극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인생의 얄궃고도 아픈 단면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줍니다.

p390 운명에 짓밟혀 불행한 삶을 산 오이디푸스였지만, 우리가 그를 영웅으로 존중하는 것은 고귀한 도덕적 결단과 스스로를 응징하면서까지 백성들과의 약속을 지켜 낸 행동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운명에 부력하게 순응하는 대신 모든 것을 걸고 그가 결국 도전하며 보여 준 고귀한 도덕적 결단과 용기, 지혜 때문에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p418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참혹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권력과 사랑,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각자의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무엇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요? 그들을 통해 우리를 비춰 봅니다.

p440 소포클레스의 비극 마지막 장면을 보면, 헤라클레스는 그 소녀를 자기 첩으로 데려온 게 아니라, 며느리로 삼으려고 데려온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헤라클레스에게 사랑을 빼앗겼다는 전령의 보고와 데이아네이라의 분노는 모두 오해인 셈이죠. 오해가 오해를 낳고, 모든 것이 엉킨 가운데 헤라클레스가 어이없이 죽은 겁니다.

p444 뒤돌아 보지 말라는 경고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오르페우스를 보면서, 우리가 열망하는 것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르페우스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었다면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실패하고 말았지요.

p472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는 두 가지 운명의 길이 놓여 있단다. 네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다면, 너는 전쟁터에서 일찍 죽을 운명이다 그 대신 너는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네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너는 건강하게 오래 편안히 살 것이다. 하지만 너는 불멸의 명성을 얻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다

p512 전쟁의 신 마르스의 아들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웠다는 이 신화는, 로마인들이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전쟁의 신의 자손들이니까, 어던 전쟁에서도 이길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신화로부터 얻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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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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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 곰출판

 : 2022/09/13 - 2022/09/18


과학분야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몇주간 하고 있는 책.

책에 대한 평을 보면 스포일러 없이 읽어야 한다는둥 마지막에 짜릿한 반전이 있다는 둥 호기심을 갖게 하는 내용이라 기대감이 생겼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느끼는 생각은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 1위를 이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는거지?'다. 

반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암시가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거 아닌가싶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 책의 제목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쭉 나온다. 지루하다.

과학책인줄 알았는데 에세이를 읽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분류학자에 대한 탐구가 쭉 나온다. 

나는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이 사람에게 꽂힌거 보니 과학계에서는 유명한 사람인가보다. 

어류분류를 위해 인내를 가지고 하나하나 수집해나가는 모습을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의 죽음 이야기가 나오고 내용은 의문의 죽음에 대한 은폐의혹과 우생학으로 넘어간다. 

마지막엔 뜬금없이 어류분류란 건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밝히며 우리가 하는 분류라는 건 의미없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다양성을 획일적으로 분류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것 같다.

획일적 분류의 위험성으로 우생학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그 우생학을 집요하게 밀어붙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우생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제거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저자가 양성애자로 분류되며 받는 불이익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자기의 주장을 내놓기에는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책을 읽는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좀 답답했다. 

이런 책은 과학책이 아니라 에세이로 분류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책은 별루다. 



p38 마치 이제는 때리거나 구기거나 내다 버려도 자신의 열정을 없앨 수 없다는 듯이. “나는 내가 동정한 다양한 식물의 이름을 그 순서대로 벽에 장식했는데, 마침 벽히 흰색이어서 장식하기에 알맞았다. 이런 행동은 아마 그렇게라도 내 의지를 분명히 밝히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p54 실제로 아가시가 쓴 글을 보면 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p72 그 안식처에서는 계피 냄새가 났고, 어설픈 언어유희와 서투른 라임으로 만들어진 안식처의 벽은 점점 더 높이 쌓여 올라가 세상의 냉기를 막아주었다

p75 데이비드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아, 이 문장 때문에 내가 그를 얼마나 흠모하게 되었던가

p87 수전이 데이비드가 출장 다니는 것을 한탄하며 외롭다는 글을 쓰고, 그가 너무 많은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보내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던 반면, 제시는 그냥 자기도 함께 가도 되냐고 물었다

p141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p147 데이비드가 연구실 바닥에서 유리 파편을 쓸어 담고 있을 때, 부서진 자기 인생의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려는 노력을 끌어내고 있을 때 그가 자신에게 속삭인 건 거짓말이었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p149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몇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다. 몇 가지는 건강하지 않은 특징들 항목에서 건강한 특징들 항목으로 옮겨졌다. 기만이라는 용어는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p153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한 논문을 쓴 역사가 루서 스피어도 똑같은 현상을 눈여겨보았고, 데이비드가 자신의 이미지를 해칠 수 있는 정보는 교묘하게 편집하거나 삭제하는 재주가 있음을 포착했다

p174 제인의 증상들과 뱃속과 약병에서 발견된 스트리크닌을 볼 때 제인은 독살당한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인의 사망 이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한 행동들을 추적해본 뒤로는, 데이비드가 독살을 은페하려 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p186 그가 책을 하나 쓰기 시작했다. 자선과 호의가 부적합자 생존을 초래하는 일이라 믿고, 그러한 자선의 위험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게 그 책을 쓰는 목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이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권고하는 책, 겨우 몇십 년 전에 처음 생겨난 한 단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책이었다

p189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신실한 청교도라 법을 어기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생학적 불임화의 합법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p192 다윈은 종의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주는지, 심지어 완벽하게 자기 복제할 수 있는 벌레들과 식물들까지도 새로운 변이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유성생식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실들은 정말로 이상하고나” 하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p194 연구자들은 데이터를 조작하고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끼워 넣는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가난이나 범죄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은 소용돌이처럼 복잡하고 은밀하게 작용하는 환경요인들 때문이라는 것이 지금은 확고히 규명된 상태다

p198 캐리 벅 소송의 대법원 판결은 이후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우리가 도달한 가장 높은 발전 단계에서도, 만약 당신이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정부는 당신을 집에서 끌어내 당신의 배를 칼로 긋고 당신의 혈통을 끊어버릴 권리를 지금도 갖고 있는 것이다

p229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개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p238 한 국가가 낳은 최고의 인재들을 파괴하는 일에 내보내면, 차선의 사람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울 것입니다. 약한 자들, 악한 자들, 낭비하는 자들이 번식하고… 나라를 다 차지해버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p244 실상 물속 세상을 들여다보면, 비늘로 된 의상 밑에 산꼭대기 산어류들만큼이나 서로 다른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숨어 있다

p269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과학자의 딸인 나로서는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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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 2022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선정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6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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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 황윤

 : 책읽는 고양이

 : 2022/09/11 - 2022/09/16


예전에 어느 책 머릿말에서 본 글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때 책을 쓴다.

국립중앙 박물관을 여러번 방문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박물관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금과 동, 불교미술을 엮어 박물관 구경하기라니.. 참신했다.

시대순으로 죽 훑어보거나, 아니면 시간을 길게 들여서 시대별 유물을 보는 게 전부였는데, 이런게 테마를 잡아서 본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알아야 테마를 잡아서 보는게 가능하다.

덕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유물을 보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이런 맛에 책을 읽는다. 또 하나 배웠다. 


p20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과거의 불교 문화재 및 일본 옛 유물을 실패한 구시대 것으로 인식하여, 오히려 자국민인 일본인에 의해 크게 훼손당하는 일이 무척 잦았다.

p30 무엇보다 반가사유상은 단순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일반 불상과 달리 좌우 균형이 맞지 않고 포즈도 무척 복잡해서 주조과정의 난이도가 훨씬 높은 편이었다.

p44 사실 이 청동기는 제사를 주관하던 마을의 지배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몸에 걸쳐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p69 이런 이집트보다 먼저 금제품을 사용한 집단이 있었으니, 불가리아 동부 흑해에 인접한 항구 도시 바르나에서 1972년 거대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까마득한 과거의 놀라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p77 여기까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무덤의 주인공은 북방, 그러니까 부여에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세력이자 낙랑과도 깊은 관계를 지닌 인물일 수도 있겠다.

p82 자세히 보니 기린인지 천마나 사슴인지 모르겠지만, 뿔이 달린 기묘한 동물이 새겨져 있고 주위에는 붉은 구슬 같은 보석이 6개 박혀있다. 무엇보다 이와 유사한 유물이 몽골, 즉 과거 흉노 지역에서 출토된 적이 있기에 흉노와 연결된 유물임을 알 수 있다.

p88 낙랑 전시실의 하이라이트다. ㄷ자 형태의 낙랑 전시실에 전시 중인 유물 45% 정도가 한 인물의 무덤 부장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평양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p97 지금은 중국으로 편입되어 그렇지 그 옛날에는 황하 문명으로 대표되는 중원 외에도 수많은 독자적 문명이 주변에 존재했던 것이다.

p104 지금까지 보았듯이 황금은 기원전 3000년경 유라시아 대륙 서쪽부터 크게 흥행하다 드디어 동아시아까지 본격적인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p107 고구려는 오랜 집념과 노력끝에 드디어 미천왕 때인 313년 낙랑을 축출하여 한반도 밖으로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미천왕은 위대한 업적과 이름을 한민족 역사에 단단히 새긴 것이다.

p110 낙랑인은 백제로도 이주했다. 백제 역사서를 썼다는 고흥, 백제에 의해 일본으로 파견되어 논어, 천자문을 알려주었다는 왕인 등이 바로 그들이다

p111고대 한반도에서 낙랑은 단순히 한나라 군현이라는 의미를 넘어 중국과 연결되는 문화적 다리 이미지로서 존속했다.

p132 고구려의 예시를 보듯 아무리 굴욕적인 역사라 할지라도 이를 제대로 갚아준다면 과거의 실패는 위대한 역사를 위한 일부로서 기억될 뿐이다.

p136 신라측 사신이 광개토대왕 제사에 참가한 김에 제사 그릇 중 일부를 받아왔던 모양이다. 왜 그렇게 예상을 하냐면 이 그릇이 고구려에서 제작된 것임에도 신라 경주 고분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었기 대문이다.

p152 학계에서는 황남 대총의 주인을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중 한 명으로 보는 중. 즉, 아무리 늦어도 황남 대총이 만들어진 시기를 5세기 중반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p174 당시 신라 왕은 고구려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교체될 정도의 존재에 불과했다. 이를 통해 장수왕은 젊은 고구려 왕의 신라에 대한 통제력을 여실히 보여주고자 했던 것.

p194 식리총의 금동신발을 다시 살펴보니, 이게 웬걸? 제작 방식이 신라 형식이 아니라 백제 형식으로 만들어진 신반이었다. 즉, 백제 신발이 신라에 와서 부장품으로 묻혔던 것

p211 백제에게 중요도가 큰 세력에게는 용과 봉황을, 중요도가 조금 떨어지는 세력에게는 일반 무늬로 구별했던 것.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백제 금동관이 바다 건너 일본에도 부여되었다는 사실이다.

p225 일본이 강한 시절에는 한반도 유물을 가져갔듯이 반대로 한반도가 강한 시절에는 일본 유물이 한반도로 유출되었구나라는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 즉, 이러한 작품 수집이 미래 세대의 근현대 역사 이해에 중요하다는 의미

p228 한반도의 고리자루 큰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의 칼이 있다. 둥근 고리 안으로는 용의 얼굴을 배치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육각형 틀 안에 봉황을 새긴 은판으로 장식했다.

p247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그의 사후 200년 뒤 불교에 귀의한 아소카왕이 인도 통일 왕국의 역량을 다해 널리 알리면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춘다.

p252 고구려는 372년, 백제는 384년, 신라는 527년에 각각 불교를 도입하면서 대승 불교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종교로 우뚝 서게 된다. 이때 고구려,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처음 불교를 받아들였다.

p254 삼국시대 불교 조각 이야기를 할 때 한반도에 영향을 준 인도, 중국 불교 조각을 직접 보면서 관찰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반대로 만일 일본 불교 조각이 있드면 한반도에서 영향을 받은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겠다.

p267 학계에서는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디자인을 534년까지 중국에 존속했던 북위의 불상 디자인과 비교하여 그 시기를 539년으로 파악한다. 즉, 고구려 안원왕 9년이라 하겠다

p276 사실 아소카왕과 진흥왕 사이에는 800년이라는 시간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이런 일화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사찰을 만들고자 했던 신라왕의 의지를 멋지게 포장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p302 중요한 점은 석가모니 사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등장한 미륵은 석가모니의 법통을 잇는 새로운 부처이자 그의 세 번의 법회로 무려 282억 명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는 곧 미륵이 불교세계관에서는 메시아이자 구세주 같은 존재임을 뜻한다

p314 이 뒤로도 한인 엘리트들의 불교 견제는 여러 국가를 이어가며 지속되었지만 결국 불교는 중국 전역에서 황제부터 민중까지 믿는 대중적 종교가 되었으니, 이런 결과에는 이민족 출신의 황제가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하였다.

p326 간다라 미술에서는 미륵을 포함한 보살이 보여주는 여러 자세 중 하나에 불과했던 X자로 다리를 꼰 형식을 중국에서는 미륵 특유의 디자인으로 확립시켰다는 의미. 이에 X자로 꼬고 있는 중국 불상의 경우 보통 미륵으로 본다

p348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미륵은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역시 미륵이 미래에 석가모니를 재현하는 인물임을 의미한다 하겠다

p355 조선 시대에 조선왕조실록을 평화 시기에 미리 여러 지역에 배분해둠으로써 임진왜란으로 수도를 포함한 전 국토가 참화를 경험했음에도 그 역사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

p363 불경에 따르면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올 시기는 다름 아닌 진륜성왕이 통치하는 시점이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남조의 양 무제는 정치적 행동으로 살아있는 전륜성왕의 모습을 중국에서 선보였다.

p367 진흥왕은 태자인 동륜이 한반도 남부의 전륜성왕이 되고 손자 대에서는 새로운 석가모니가 탄생될 왕실 기반을 만든 후, 증손자 대에서는 드디어 석가모니가 신라 왕실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놀라운 스토리텔링을 구성했다.

p369 신라 왕은 미륵을 화랑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이처럼 본래 미래의 부처가 될 인물이 신라에선느 오히려 신라 왕을 도와 불국토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된 것이다.

p382 사유의 방에 두 반가사유상을 따로 전신하기 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에서 한 점씩 교체 전시했는데, 이러한 전시 방식이 오히려 불교 세계관과 어울린다고 하겠다. 유물 보호 이외에도 오래전부터 반가사유상을 한씩 교체하며 공개하던 이유가 다 있었던 것

p393 상황이 이러하다면 7세기 중반쯤이 되면 한반도에서도 반가사유상 형태의 미륵 조각 역시 인기가 점차 사그라지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사유의 방에서 만날 수 있는 반가사유상의 한계선을 보통 7세기 초중반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p399 조상기가 남겨진 불상을 통해 살펴보니 6세기 북위 시절에는 석가모니와 미륵이 주로 만들어졌으나, 7세기 당나라 시대로 오니 아미타부처와 관세음보살이 압도적으로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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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는 세계에서 목적 찾기 - 우주를 이끄는 손길은 없어도 우리는 의미를 찾아 나선다
랠프 루이스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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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없는 세계에서 목적찾기

 : 랠프 루이스

 : 바다출판사

 : 2022/09/03 - 2022/09/10


나 같은 유신론자는 이런 책을 읽을 때 아무리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읽으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기본 전제가 다르다 보니 편견을 가지고 읽을 수 밖에 없다.

항상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이와 관련된 질문을 했을 때 한 번도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답변하겠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해서 차근차근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유신론 환자들이 신의 뜻이나 목적을 생각하며 치료시기를 놓치고 좌절하는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며 유신론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나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이후 신이 없어도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는 사례를 제시한다. 다중우주론 등 최근의 과학이론을 이용하여 무신론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다중우주론은 쉬운 책이나 아티클을 통해 읽어보았지만 잘 이해는 되지 않는 내용이다. 무신론자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부분이라 '무신론자들의 해석은 이렇구나'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후 내가 가장 궁금하던 질문에 대해 답을 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우주는 목적이 없지만 우리는 도덕이나 의미를 찾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목적이 없는 세상에서도 의미를 찾자라는 것이다. 

이게 무신론자들이 생각하는 삶의 목적에 대한 대답인가?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위대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그외의 인종을 배제하는 것도 문제없겠네.. 그 민족에게는 그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니...

책에서도 인종차별과 배척이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이야기하니까 말이다. 

이런 대답은 강자가 되어 모두에게 내 사상을 강요하겠다는 독재자나 사이코패스가 잘못됐다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나? 

하긴... 목적이 없이 랜덤하게 이루어진 세계를 가정하면 답은 이렇게 나올 수 밖에 없을 것같다.

좀더 멋진 답을 기대했는데... 역시 무신론의 세계의 답은 잔인하다.

잔인하더라도 그게 사실이라고 말하겠지? 

별점은 답이 내맘에 들지 않아서 주는 완전히 주관적인 점수다.. 책의 전개는 나쁘지 않았다. 


p15 루이스는 인간이 가진 인지력의 버그(또는 특징이라고 할까?), 곧 의미 없는 잡음에서 의미로운 패턴을 찾아내게끔 하는(이것을 나는 패턴 보기라고 부른다) 버그가 있음을 보여 주는데, 신이라든가 신이 부여하는 목적 같은 것도 이런 패턴에 해당하며, 이 모두는 오로지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p32 이 책에서 내가 염두에 두는 목표는 엘리너 포터의 소설 속 주인공인 폴리아나처럼 무조건 낙관만 하는 세계관이 아닌, 동기를 부여하면서도 신중한 낙관론이 담긴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p41 믿음은 동기를 부여하고 합목적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강력한 조절 장치이다. 내용과 맥락에 따라 믿음은 용기를 주기도 하고 사기를 꺾기도 한다.

p61 패스트푸드는 진화에 의해 우리가 가지게 된 지방과 당에 대한 갈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문화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p62 목적론적으로 추리하는 직관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식의 직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 학부교육이 제공하는 것보다도 더 엄격하게 비판적 사고와 과학적 추리를 연습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p68 이 책에서 우리는 본래 목적, 도덕, 의미가 없었던 우주에서 어떻게 목적, 도덕, 의미가 떠올라 상당히 일관된 흐름으로 진화할 수 있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p85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적 감각을 신뢰하고, 아무리 괴상해도 자기 뇌가 그렇다고 말해 주면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p105 신앙은 증거 없이 믿음에 기초하는 반면, 과학은 믿음 없이 증거에 기초한다

p139 항우울제를 써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정말로 항우울제로 효과를 본 경우가 많았고, 환자 개인의 철학적 관심사는 희망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단순한 지적 사색으로 바뀌었다

p144 우리도 목적에 이끌리도록 진화해 왔으며, 우주에 목적이 있든 없든 우리에게 내재하는 동기 부여는 궁극적으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p159 다윈의 시대 이후로 과학은 이 광막하고 경이로운 우주가 눈먼 우연의 결과라고 이해하는 일에 실로 매우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p186 만일 우주의 수가 대단히 많다면-심지어 무한히 많을 수도 있다면- 우주 하나하나는 저마다 무작위적으로 물리 법칙들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생명은 커녕 복잡한 물질은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할 법칙들을 가진 우주가 대부분이겠으나, 우주의 수가 무한한 만큼, 법칙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미세 조정되어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어떤 유형이든 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필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우주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p201 설사 가능성이 낮은 사건이라고 해도, 우리 우주가 아득히 넓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구와 비슷하게 생명의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행성(또는 경우에 따라 행성의 위성)의 수 또한 지극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p208 스티븐 호킹과 레너드 믈로디노프는 큰 물음들에 대한 학계의 접근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진술을 시원하게 내질렀다. “전통적으로 이 큰 물음들은 철학의 물음들이었지만, 철학은 이제 죽었다. 철학은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현대에 이루어진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앎을 찾아나서는 여정에서 이제 과학자들이 발견의 횃불을 든 자가 되었다”

p218 과학적 환원주의와는 대조되게, 복잡성 이론은 복잡계에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가정한다. 곧,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말이다

p236 현대 신경과학에서 우세한 시각은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이다. 곧, 마음이란 다름 아닌 뇌에서 떠오른 산물이라는 것이다

p247 빈틈이 있으면 메우려 들기 때문에 오류를 저지르기 쉬워서, 패턴이 없는 곳에서도 패턴을 보는 것이다. 이 오류는 오류감지 메커니즘들이 식별해서 바로잡을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p271 많은 마약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도파민을 자극하고, 종종 극적인 수준으로 도파민이 쇄도하게 만든다. 그 결과 뇌의 동기 부여 회로를 탈취해서 사람의 행동을 장악해 버린다.

p287 시간이 지나면서 해럴드는 이마엽 퇴행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모두 보였다. 초기에는 집중력, 동기 부여, 결정력이 저하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계획, 조직, 문제 해결, 의사결정, 억제적인 자제력 및 충동제어, 자기 인식, 통찰, 판단, 추상적 사고를 비롯해 집행부 기능의 다른 측면들까지 모두 쇠퇴한 것이다

p292 실천의 관점에서 정의하면, 가치란 여느 행위가 개별 생물의 생존 또는 종 전체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지는 이로움이다

p309 인종을 차별하고 국수주의적인 정권들은 이방인 혐오적 선전 활동과 세뇌를 통해 다른 인종집단과의 일체감을 못 느끼게 해서 그 집단을 사람으로 보지 않도록 만드는 전략을 이용해먹는다. 그 극단적인 한 예가 바로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인간 이하의 해충, 오염, 병균, 또는 악성 존재라고 딱지를 붙여 유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만들었던 선전 활동이다.

p313 자제력은 집중력 및 동기 부여와 밀접하게 연결된 집행부 기능으로서, 성격을 구성하는 5대 기본 요소의 하나로 생각하는 성실성 가까이에 자리한다(다른 네 요소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 의향성, 우호성, 신경성이다)

p330 핑커는 역사를 긴 안목에서 보면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흘러가는 강력한 경향이 있다는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그는 믿음 체계들로부터 미신과 비일관성을 이성이 차근차근 숙청해 왔으며, 비판적 사고에 기초한 더욱 세련된 형탱의 현대적 교육에 의해 이성이 향상되면 특히 그렇게 된다고 논한다

p345 그들은 이 고대 경전들이 궁극의 권위를 가지며 궁극의 지혜와 진리를 담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 모습은 과학적 방법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과학적 방법은 과거의 모든 가정과 학설을 의심을 품고 다루기 때문이다. 종교에 따르면, 최선의 생각은 과거에 이미 계시되었다. 그러나 과학에 따르면, 최선의 생각은 미래에 발견될 것이다

p356 나 자신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곧, 의식을 가지고 있고 지능이 있고 자기를 인식하고 의도를 가진 어떤 높은 자연의 힘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서 현재 알고 있고 지구상 생명의 진화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조금도 양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p364 진보적 종교들은 이 자연의 규칙을 저마다의 도덕률에 합쳐 넣었으며, 따라서 그 규칙을 강화하는 구실을 그 종교들이 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진보적 종교들의 윤리, 단체, 신자들은 휴머니즘적 대의에 힘을 쏟는 수준이 높으며, 바로 이런 점에서 사회에 가치 있는 이바지를 하고 있다

p373 의미는 목적 감각과 살짝 다른다. 목적 감각은 동기를 가진 목표 지향성 또는 우리 인생에 어떤 의도된 목표가 있다는 감각을 말하지만, 의미는 인생에 담겨 있다고 우리가 해석하는 가치 또는 의의를 말한다

p379 비록 우주는 보살피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들의 삶도 보살필 수 있으며 실제로도 보살핀다는 것이다

p409 서로서로를 살펴주고, 서로 곤경에 처할 때마다 연민을 갖고 보살피자. 우리가 가진 통제력은 생각보다 훨씬 약하고, 우리가 가진 탄력성의 크고 작음은 순수한 선택이나 태도의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더 나아지도록 우리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과 실패했을 때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균형을 잡아 나가야 한다.

p421 로마의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인 루크레티우스가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다시피,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주가 존재했던 그 모든 시간 동안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슬퍼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와 똑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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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클래식 이야기
손열음 (Yeoleum Son)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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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 손열음

 : 중앙북스

 : 2022/08/25 - 2022/09/05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손열음님의 칼럼모음집

피아노도 잘치고 예술감독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얼굴도 예쁘고...

뭐하나 빠질게 없는 친구...

피아니스트의 음악이야기는 또다른 맛이 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그렇게 이쁜데 치기는 엄청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연주하는 것과 듣는 것은 정말 다르구나..

30분 연주하기 위해 300시간 연습한다는 말에서 우아하지만 엄청나게 물질을 해야하는 백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죽어라 연습해서 올라오니 넋놓고 보게 만들지...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살아가서 참 좋다.


p27 순간적으로 현을 때린 해머는 곧장 제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건반을 계속 누르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상 그 음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한 번 만들어낸 소리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p32 절대음감을 소유했던 작곡가들의 음악은 음계 자체가 특정한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는 같은 장조라도 장난스러운 분위기에는 C장조를, 우아한 분위기에는 G장조를 주로 사용했고, 같은 단조라도 쓸쓸한 느낌일 때는 주로 A단조, 격정적인 느낌은 주로 C단조로 표현했다. 또한 E플랫장조는 매우 즐겨사용하면서도 이와 가까운 A플랫장조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p36 내 리듬감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건 바로 이 점에서였다. 나는 분명 박자는 잘 맞추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을 움직이게 할 만한 리듬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도 폼 나는 리듬감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41 실로 접해본 적 없는 최악의 반응이라고 느껴졌다. 웃어지지도 않고,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에 커튼콜에도 제대로 임하지 못하다 결국 박수도 그쳤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나를 보러온 사람들마다 ‘반응이 그렇게나 좋은데 왜 웃지도 않고 금방 들어갔느냐’는 거였다

p44 그는 집을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못 되어, 죽은 막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청춘을 송두리째 흔든 사랑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버린 것에, 프로코피예프는 음악으로 화답했다.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 G단조 Op16이다

p49 피아노 협주곡 23번 A장조 K.488의 2악장 역시 마찬가지다. 아주 기꺼이, 깊숙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이 악장은 그 어떤 실낱같은 희망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끝나버린다. 주목할 것은 그 뒤에 등장하는 3악장이다. 이전 악장과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는 듯 다시없을 유쾌함을 자랑하는 이 악장은 마치 슬펐던 건 슬펐던 거고, 이젠 이미 지나버린 일, 그만 다음으로라며 아무렇지 않게 삶의 다음 장에 스스로를 내맡겨버리는 그의 자세, 모차르트 음악의 진정한 근간을 보여준다

p57 다른 말로는,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음악들의 시작이었다

p60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려본 적 없는 부분에서 어이없이 틀려버린다거나 완전히 까먹어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예사다. 그 정도 무대의 배신은 모두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다만 손, 머리, 귀 모두가 완벽하게 곡을 외우고 있으면, 한쪽 기관이 배신당했을 때 다른 기관이 재빨리 수습해 줄 수도 있게 된다.

p65 페달은 이런 식으로 연주자의 취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손은 아무래도 테크닉 없이 취향을 담아내기가 힘들지만, 발은 상대적으로 단순해 피아니스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p68 아르투르 루빈스타인도 그랬다. 그는 본 연주가 모두 끝나고 바로 다시 무대에 나와 3-5분 남짓한 쇼팽의 연습곡, 왈츠, 폴로네즈, 멘델스존의 무언가 등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을 무척 사랑했다. 이것을 잘 아는 청중들 역시 그의 음악회에서는 진짜 마지막 곡, 마누엘 드 파야의 Danza del fuego를 듣기 전까지는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p73 문제는 내게 그 느낌이 예전 A 440Hz의 도를 낼 때의 안정된 느낌과는 비할 바 없이 별로였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 도는 도가 아닌 것 같은데 도이긴 하니까 할 수 없이 도라고 내는 도인 것이다.

p87 그렇게 반강제로 인민의 음악가가 된 쇼스타코비치. 그의 인생은 곧 한 번 더 박살이 났다. 나치의 선전음악으로 십분활용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처럼 인민 화합을 꾀하는 대작을 원한 스탈린에게 하이든의 중기 교향곡처럼 장난스럽게 시작해 갖은 풍자와 해학을 일삼은 교향곡 9번 Op70.을 바치자, 지다노프로부터 타락한 부르주아의 형식주의를 추종한다는 열띤 비판을 받았다. 이내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인민 영화음악이나 담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p92 이런 자리에 서는 베토벤에게는 자신의 음악성과 기교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신개념 곡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피아노 소나타 2,3,4번은 스케일, 아르페지오, 트릴, 더블옥타브, 3/4도 동시 진행, 연타 등 어려운 기교들로 점철되었다

p96 평생의 친구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부인 아델레가 사인을 요청하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 소절을 그려주며 “애석하게도 브람스가 안 썼음”이라고 적었다 하니… 유머 있게를 강박적으로 강조하던 슈만과는 다른 형태의 융통성을 지녔던 건지도 모르겠다.

p99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 한 음도 뺄 것이 없다고 했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말처럼, 모든 음이 각자 놓여야 할 위치에 저절로 가 있는 것 같은 이 완벽한 매무새는 그의 자필 악보를 보면 또렷이 알 수 있다. 수십 번을 고쳐 쓴 흔적이 역력한 베토벤의 악보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마치 누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기만 한 것 같은 그의 악보, 지운 흔적 한 번 없이 써내려간 그것들을 보노라면 흡사 인간세계 저 너머엔 분명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p100 영화 아마데우스의 또 다른 장면에서 모차르트가 한탄하며 뱉는 그 대사처럼 “저는 상스러운 놈입니다. 하지만 제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p102 슈베르트는 히트작만 수십 곡이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이 모든 작품이 별 이유 없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p104 아직까지는 슈베르트를 연주하며 손이 꼬이지 않는다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스케일은 불규칙해서 도전히 손에 익지 않고, 화성 전개마저 엉뚱하기 그지없어 머리로도 익혀지지 않는 이 곡들의 문제는, 전혀 다른 듣는 이의 사정, 떠오르는 시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긴 뿐인 그의 음악이 어렵게 들릴 리 만무하다. 보기에는 한없이 우아한 백조 같은 슈베르트의 음악. 물 속에서 쉬지 않고 발 굴러야 하는 음악가들에게는 손해 보는 장사임이 틀림없는데도 여전히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다.

p114 자산, 생계수단, 자유까지 모두 잃은 그는 마침내 12월 22일,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인과 두 딸과 함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금 수탉과 자신의 미완성작 오페라 모나 바나의 스케치, 단 두 개를 품에 안고 뚜껑도 없는 썰매에 올라 헬싱키로 도망쳤다

p118 가장 거슬렸던 점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은 구조였다. 교향곡 1번의 실패로 와싱상담을 한 결과가 이것? 좀 비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p123 문제의 희생의 춤, 그 첫 페이지는 각각 한 마디씩, 3/16~5/16~3/16~4/16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뀌면서 시작해, 다시(단위는 16분음표) 5-3-4, 3-3-5-4, 3-4-5-5-4로 진행된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이해할 필요가 없다. 아무런 패턴도 없다는 얘기이니까. 거꾸로 말해 그 어떤 장단도 허용치 않는, 리듬에의 속박인 셈이다.

p129 그날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보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여기엔 매우 이상한 슬러(이음줄)가 있네? 두 마디, 두 마디, 또 두 마디에 사용했다가 여기 딱 한 마디에만 안 썼지? 왜일까?” 매일 봐 왔던 악보인데… 맹세코 생전 처음 발견하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신기한 것을 이렇게까지 몰랐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p133 1950년대 후반, 그의 경력이 내리막길을 걷자 음반사가 그를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그의 가장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파가니니 무반주 카프리스 앨범, 차이콥스키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이나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소나타 앨범 등은 모두 그가 20대 초반에 녹음해 놓은 것들이다.(그런데도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은 훗날 자신의 파가니니 무반주 카프리스 앨범을 가리키며 마이클 래빈이 이 곡을 녹음한 줄 알았더라면 난 절대로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단다)

p142 피아노 현이 다 부서질 것 같은 러시아산 강철 타건으로 흡사 북한의 선전가요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그의 젊은 시절을 보고 있노라면, 천재의 삶이란 참 고달픈 것이구나 싶다. 시간이 흘러 그의 가르침으로 자란 내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똑같이 2위에 입상할 동안, 그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았다.

p146 눈부신 미모도, 자극적인 무대 매너도, 눈물을 짜낼 스토리도 없는 데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중국인이기까지 한 그가 아무리 독일 음악을 독일 사람보다 몇만 배 더 잘 연주한들, 팔리기 어려운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할 정도로 그의 인생은 영 풀릴 줄을 몰랐다

p153 전 미국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밴 클라이번은 클래식 음악가로는 최초로 뉴욕 시가지에서 색종이 테이프 퍼레이드를 가졌고, 그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은 클래식 음반 최초로 100만 장이 팔리며 빌보드 차트에 125주나 머물렀다. 유럽에 비해 턱없이 짧은 역사와 그에 따르는 문화적 열등감을 단박에 해소시켜 준 이 청년이야말로, 당시 미국사회가 꿈에 그리던 영웅이었던 것이다.

p158 내가 차이콥스키 협주곡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자 그가 1악장 중간 카덴차 부분을 연주해 주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좀 더 심장이 커지는 느낌으로, 벅차는 느낌, 참을 수 없는 느낌…” 그와 그의 음악은 진짜 그랬다. 러시아 음악에 대한 사랑이 벅차오라는 느낌, 조국에 대한 차오르는 애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나에게는 그가 바로 러시아다

p163 릴리 크라우스의 미친 연주에 빠져 나처럼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겐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 시몬 골드베르크와 함께 작업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을 추천한다

p164 가곡이라는 것은 당연히 가사를 모르고 듣는 것과 알고 듣는 것이 천양지차다. 하지만 난 슈베르트의 가곡들이라면 가사를 모르고 듣는 것도 죽을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종 대단치 않은 시들마저 천상의 음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슈베르트니가

p175 그의 곁에는 일당백의 친구들이 있었다. 슈파운, 포글, 쇼버를 위시한 슈베르티아데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들조차 슈베르트를 “남들에게 인정 못 받는 무능력한 작곡가”로 여겨 지지를 멈추었다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슈베르트는 없었을지 모르다.

p186 몇몇 교수들의 비상식적인 형태가 낳은 여러 폐단, 이를 모두 피해 최대한 공정하고자 짜낸 방책들은 예술성을 묵살하는 도구로 되돌아왔다. 애초에 우리의 잘못이었으니 법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문제는 그 피해가 애꿏은 음악 영재들에게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p194 독일과 미국 청중의 반응을 모두 섞어 놓은 가장 뜨거운 청중은 바로 한국 청중이라는 것이다. 연주자가 악기에서 손을 놓는 시점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며 연주자를 몇 번이고 무대로 다시 불러내는 한국 청중은 이미 전 세계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p202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왜 이렇게 죽도록 연습을 할까? 제일 간단하게는, 피아노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건반을 누르는 게 아니라 한 음 한 음을 일일이 잡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 같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내 친구들은 모두 이 감각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항상 불안해한다

p207 다른 천재가 깔아놓은 초석 없이, 다른 천재로부터 받은 영감 없이, 또 다른 천재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안겨주고픈 욕심 없이 천재는 결코 탄생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집념, 부모의 희생, 훌륭한 스승, 헌신적인 추종자… 그 모두의 결과물이 천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보고 싶다면 우리 모두 TV를 켜자

p211 피아노 치러 다니는 와중이지만 한 번 무대에 서는 시간은 길어 봤자 2시간, 짧으면 20-30분에 불과할 뿐이니, 누군가는 음악가를 두고 30분간 무대에 서기 위해 300시간을 무대 밖에서 준비만 하는 인생이라고 했다는 데, 정말 그런 것도 같다

p216 내가 음악을 함으로써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기량을 쌓기 위해 자기 스스로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그 과정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p223 우리 아빠가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거기 수돗물은 나오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니… 도대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한 강원도는 어떤 모습이었기에!

p228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던 그 일을 그분은 하나하나 조용히 실천했다. 수십억대의 고악기를 사서 아무 대가도 없이 재능 있는 음악도들에게 빌려주었고,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직접 찾아가 이들과의 협연 무대를 주선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이들을 내세울 변변한 무대조차 없다는 안타까움에 직접 금호영재콘서트라는 무대를 마련해 매주 어린아이들을 무대에 세웠다. 나 역시 이 무대에서 그분을 처음 뵈었다

p236 어쩌다 전혀 준비 안 된 새 곡을 가지고 당장 내일이나 모레 외워서 연주해야 할 때의 마음가짐은 대략 이렇다.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계속 같은 부분에서 기억이 막히고 아무리 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암기 과정, 어느새 어둠의 목소리가 깃든다. “이러지 말고 쳤던 곡으로 바꾸지?”

p240 연주도, 무대도 혼자 올라가는 독주회가 오히려 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내가 혼자 감당하면 그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나 앙상블 연주에서는 행여나 남에게 피해를 입힐까 봐, 아니면 남에게 방해를 받을까 봐,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서 독주회가 더 좋냐고? 당연히 아니다. 독주회 한 번 할 에너지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열 번에 앙상블만 스무 번은 하겠다. 그럼 혼자가 좋은 건 아니네. 음… 그런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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