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 - 나의 하루를 덮어주는 클래식 이야기
나웅준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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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속 클래식 콘서트

 : 나웅준

 : 피스메이커

 : 2022/02/08 - 2022/02/13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클래식책이라는 의미로 제목을 지은 것 같다.

클래식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려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매달 한 권 이상씩은 읽는 것 같다.

제목은 달라도 형식이나 내용은 비슷하다.

그만큼 대중들이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고 싶은 열망이 많다는 뜻이리라...

다만 바로크에서 초기 현대음악까지를 소개하는 책이 대부분이다보니 내용이 많이 겹친다. 

나중에는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헷갈릴 것 같다.

비슷한 책임에도 계속 읽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나오는 족족 읽어줘야지.


p18 어느 날 한 제자가 바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많이 작곡하실 수 있나요?” 그러자 바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누구나 나만큼 열심히 산다면 할 수 있다”

p23 짐노페디는 직역하자면 ‘발가벗은 소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나체로 춤을 추고 의식을 치르는 것을 짐노페디라고 했다. 벌써부터 안락함과는 점점 더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할 텐데, 결정적으로 악보에 표기된 음악 용어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악보 첫 소절 위에는 ‘느리고 비통하게’라고 써 있다

p30 트리치 트라치 폴카의 연주시간은 빠르기에 따라 2분 30초에서 3분 정도다. 보통 권장하는 양치질 시간이 3분이기에 양치하며 듣기 좋다.

p38 1900년대 초반 스트라빈스키는 프랑스에서 파격적인 발레음악 작곡가로 유명했다. 그의 대표작인 불새와 페트르슈카 그리고 봄의 제전을 묶어서 흔히 스트라빈스키 3대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p48 식탁음악은 총 3개의 프로덕션으로 이뤄져 있고 지금 소개하는 음악은 세 번째 프로덕션의 첫 번째 음악이다. 요즘 말로 하면 텔레만은 총 3개의 식탁음악 앨범을 제작했는데 3집의 첫 번째 수록곡이라고 할 수 있다.

p54 베를리오즈는 그 시련의 아픔에 아편을 먹고 취하게 되는데 그때 만났던 환상이 음악으로 표현되면서 환상교향곡이 탄생하게 된다.

p100 오바데의 깊은 뉘앙스를 살펴보면 새벽음악이다. 새벽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부르는 노래인데, 실은 저녁에 세레나데를 부르고 함께 밤을 보낸 뒤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나올 때의 아쉬움을 부르는 음악이 바로 오바데인 것이다.

p112 변주곡은 하나의 멜로디를 다양한 방식으로 바꿔서 연주하는 형식을 말하는데, 이 음악 역시 2개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면증을 위한 음악, 여러분의 숙면을 위해 바흐가 보내는 음악이다

p127 봄의 제전 또한 거침없는 표현으로 주목받게 되었는데, 선율적이고 화성적이기보다 굉장히 리드미컬하고 자유분방한 음악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 아닌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p131 대학축전 서곡의 또 다른 매력은 브람스의 다른 음악에서는 느끼기 힘든 발랄함이다. 마치 진지한 교수님이 어느 날 친근하게 느껴지는 아재개그를 했을 때, 혹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아주 빈틈없는 사람이 허당과 같은 어리숙한 모습을 보일 때, 그 모습들은 색다른 반전 매력으로 다가온다

p153 작가의 의뢰에 따라 그리그는 총 26곡의 음악을 만들었고 나중에 그 음악 중 8곡을 추려서 오케스트라 연주용으로 다시 편곡했다. 4곡씩 묶어서 2개의 모음곡을 발표했는데 음악을 순차적으로 들어보면 소설의 내용과 장면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p159 공허하거나 쓸쓸함이 느껴질 때면 그 기분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 순간 함께 사용하면 좋은 클래식을 소개하려고 한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교향곡 4번 1악장이다.

p170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다 보면 금관악기는 쉬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호른은 멜로디면 멜로디, 반주면 반주 심지어 호른만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음악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작곡가에게 호른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평균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만능 양념인 셈이다

p175 오래전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도 아침마다 다양한 음악을 스피커를 통해 틀어주곤 했는데 보통 등교시간에 나오는 행진곡의 대부분이 수자의 행진곡이었다.

p178 무언가 곡집은 멘델스존이 평생에 걸쳐 조금씩 작곡한 피아노 소품집이다. 총 49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6곡씩 묶어서 8권으로 이루어졌다.

p208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대부분 대자연의 느낌을 준다. 예외적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든 음악인 핀란디아나 연극을 위한 음악들을 제외하고 그의 음악들은 대부분 자연이 떠오른다. 그 이유는 시벨리우스의 성장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p211 이 선율의 바탕에는 체코 민족의 부활, 미래의 행복과 영광이 도사리고 있다. 스메타나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나의 조국 맺음시에서 한 말이다

p219 홀스트의 행성은 지금 우리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우주 행성들의 모습이 아닌 점성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음악을 풀어냈다. 여기서 점성술이란 천체에 나타나는 천문현상을 가지고 인간생활을 예측하는 점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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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강좌
박윤덕 외 지음 / 아카넷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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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 강좌

 : 박윤덕

 : 아카넷

 : 2022/01/30 - 2022/02/20


대학생등 일반인들의 교양을 위한 서적인것 같다.

서양사를 특별한 감정이입없이 역사적 사실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책 두께도 만만치 않아 읽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교과서 읽는 느낌이라 재미는 없었지만 통사로 읽어나가기에는 참 좋았다. 

어려서 미국, 서양의 것은 모든게 좋은 것이고 본받아야 할 문화라고 배워서인지, 서양의 문화는 나에겐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고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여행도 자꾸 유럽만 가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거칠게, 그리고 나쁘게 말하면 서양의 역사라는 게 과거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수입한 문화로 짜깁기했고, 근대 이후에는 아프리카와 동양의 피와 황금을 착취해서 쌓은 것이다

알면 알수록 서양의 잔인함에 몸서리쳐지게 된다.

그래도 그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부럽다.

유럽을 볼 때 느끼는 이중적 시각은 책을 읽을때도 똑같다. 



1% 고대 그리스 세계의 역사는 크게 나누어 크레타 문명(기원전 2500년경-1400년경), 미케네문명(기원전2000년경-1100년경), 암흑기(기원전 1100년경-800년경), 상고기(기원전 8세기-479년), 고전기(기원전 479년-338년), 헬레니즘 시대(기원전323년-30년)로 구분된다

2% 그리스의 많은 폴리스들은 초기에 귀족정 체제를 유지했다. 귀족정은 전통적인 혈연귀족들의 권위와 그들의 토지재산에 바탕을 둔 소수의 지배체제다

4% 기원전 6세기에 등장한 이오니아 지방의 자연철학은 신화적 사유가 아닌 합리적 추론을 통해 자연계의 이치를 파악하고자 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철학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는 관점을 내포한 것이었다

6% 로마 민회의 특징은 오직 하나의 민회만 있던 아테네와 달리 네 개의 민회(쿠리아 민회, 켄투리아 민회, 트리부스 인민회, 트리부스 평민회)가 있어서 각기 자신이 속한 쿠리아, 켄투리아, 트리수브별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각 투표 단위안에서는 과반수 원칙이 적용되었지만, 전체 민회의 최종 결정은 각 투표 단위(30쿠리아, 193켄투리아, 35트리부스)가 각각 한 표를 행사하는 단위투표제였다

6% 그라쿠스 형제 개혁에서 드러났듯 원로원과 귀족들은 중소 자영농의 몰락과 도시로 집중한 무산시민들의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개혁운동을 저지하다가 정국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서 사병화된 군대를 배경으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군인정치가들은 내전을 전개해서 국력을 약화시키고, 카이사르의 독재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던 것이다

7% 디오크레티아누스는 권력 투쟁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광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293년에 제국을 동과 서로 나누고 2인의 정황재(아우구스투스) 밑에 각기 한 사람의 부황제(카이사르)를 임명해서 4인의 황제들이 제국을 분할 통치하는 4제 통치를 도입했다

8% 아우구스투스를 시작으로 해서 1세기의 황제들은 로마나 이탈리아 출신이었지만, 2세기에 오면 히스파니아 출신, 3세기가 되면 아프리카와 발칸반도 출신이 황제가 되어 로마를 통치하기도 했다. 노예와 자유인, 시민과 비시민의 구별이 있었지만 재능과 능력에 다라 신분상승이 가능했던 로마사회의 역동성의 배경에는 인간주의가 가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0% 성경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박해는 중앙 정부가 아니라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0% 트라야누스는 “기독교 신자들을 사형시킨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수색해서 찾지는 말 것이며, 주민들이 고발한 경우에만 재판해서 처형하라. 이때 익명으로 제기된 고발은 무시할 것이며 고발당한 기독교인이 뉘우친다면 용서하라”라고 대답했다. 트라야누스의 이 대답은 이후 데키우스의 대박해가 일어날 때까지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다루는 기본 원칙이 되었다

11% 3세기 중엽 초기 기독교의 최고 교부인 오리게네스는 신약성경에 포함되는 문서들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모든 교회가 동의하고 있는 문서인데 여기에는 사복음서, 사도행전, 13개의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1서, 요한 계시록이 들어가 있다. 둘째는 성경에 포함해야 할지 의심을 받고 있는 문서들인데 베드로후서, 요한2, 3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가 있다. 셋째는 배격되어야 할 문서인데 애굽 복음서, 도마 복음서 등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12% 4세기 말과 5세기에 로마 제국 변방의 이민족들은 미개한 야만족이 아니라, 로마 제국을 비롯한 여러 주변 문명들의 영향을 받으며 이미 충분히 독자적인 문명으로 발전하고 있던 집단이었다

12% 최종적으로 왕국의 건설에 성공한 게르만 부족으로는 앵글로색슨족, 부르군트족, 서고트족, 동고트족, 반달족, 프랑크족 정도를 들 수 있다. 게르만이 건설한 왕국들은 고ㅜㄴ사적 지배자인 게르만 전사들과 문화적으로 우월한 제국 내 거주민들이 타협해서 결성한 이질적인 공동체였다

13%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후대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로마법이다. 그는 로마의 영광을 회복하고 국각행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로마법을 정비했다

14% 교황은 800년 성탄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 참여한 카를루스에게 황제의 관을 수여함으로써 서유럽 지역에 새로운 황제를 출현시켰다. 카룰루스가 사전에 그 대관식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다소 논란이 있지만, 주목할 부분은 그 대관식을 주도한 것이 로마 교황이었으며, 로마인들의 전폭적인 환호 속에 그 의식이 거행됐다는 사실이다.

24% 대학과 아울러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중세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미술 분야, 특히 교회와 수도원 등의 종교적 건축이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리 위고의 표현처럼 중세인들은 그들의 사상을 뜰에 기록했다. 교회 건축은 아마도 중세에 최대의 자금과 인력이 동원되고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사업이었을 것이다

25% 십자군은 원래 이슬람에 대한 종교 전쟁으로 시작되었지만 지중해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29% 잔 다르크는 전리품을 위해 싸우는 기사나 용병들과는 달리 프랑스와 국왕을 위해 싸웠다. 즉 공공의 선을 위해서 싸운 것이다. 이러한 공의 개념은 로마 제국 이후 거의 찾아볼 수 없던 것이었다. 중세 봉건사회가 사적 관계에 근거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공공성의 등장은 중세의 봉건적 관계가 근대적 관계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0% 모스크바의 통일군주 이반 3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조카딸과 결혼하고 비잔티움 황실의 문장인 쌍두 독수리 문장을 넘겨받고 비잔티움의 관습을 도입했다. 이리하여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가 되었다

30%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인들을 장거리 여행에 지속적으로 나서도록 추동할 만한 지적 호기심이나 물질적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32% 인도양은 중세 이래 수백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교역의 중심 무대였으며 엄청난 부의 근원지였다. 유럽인들이 중히 여기는 후추와 각종 향신료도 이런 아시아 상업 네트워크의 중개를 통해서 인도양을 횡단하고 페르시아 만이나 홍해 루트를 지나 레반트 지역에 전해진 다음 이탈리아 상인들에 의해서 유럽에 들어온 것이었다

33% 1520년 이후 약 30년 동안은 직업적 정복자들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정복 사업에서 국왕이나 국가는 형식상의 주체에 불과했고, 실제 정복은 사적인 인간의 집단들에 의해 그들 자신들의 비용으로 수행되었다

33%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유럽이 1500년 이후 비유럽의 부를 엄청난 규모로 약탈했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말에 이를 때까지 유럽은 아시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시아가 부와 권력의 면에서 아주 늦게까지 세계 중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34%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가 역사적, 문헌학적 지식을 동원해 교황의 세속적 지배권의 근거가 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진장이 중세 교회에서 주장한 것처럼 4세기가 아니라 8세기에 와서야 만들어진 위조문서임을 밝혀낸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39% 앙리 4세의 치세로부터 루이 14세에 이르는 1715년까지 이어진 프랑스의 위대한 세기는 이렇게 첫걸음을 내딛었다

43% 근대 초에 과학혁명으로 신앙에 대한 이성의 승리가 확인된 듯 보였지만, 그 시대는 마녀사냥이 성행하던 광기의 시대이기도 했다

46% 인권선언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선언했지만, 당대에 그것이 갖는 의미는 명백히 계급적이었다. 인권선언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포했지만(3조), 실상 그 국민은 재산 자격에 의해 선거권을 행사하는 능동시민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이유에서 역사가들은 프랑스 혁명을 재산을 소유한 시민의 혁명, 즉 부르주아 혁명으로 지칭했다

55% 1856년 3월 말 체결한 파리조약에 따라 흑해 지역에서 군함 설치와 군함의 항해가 금지되어 러시아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61% 1852년 탄생한 프랑스 제2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센 지사에 임명한 오스만이 1870년 제2제국의 몰락까지 수행한 파리의 대대적인 변모는 근대적 도시정비의 전형이었다

77%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장기전이요 세계 전쟁이었다는 시,공간적 특징 외에도 역사상 유례없는 총력전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민족주의의 시대에 전 국민의 에너지와 자원을 하나의 전쟁에 쏟아 부은, 전선과 후방의 구별이 없는 총력전이었다

81% 전쟁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오히려 전쟁 도발을 부추겼고 그 과정에서 약소국을 희생시킨 것은 뮌헨 협정의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나 불가침조약의 소련이나 마찬가지였다

82% 제2차 세계대전의 결정적인 반전은 사실상 동부전선에서 벌어졌다. 1942년 늦여름부터 여러 달째 계속된 독일과 소련 사이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결국 1943년 2월, 독일군의 항복으로 끝났다. 이어서 7월에 쿠르스크 전투에서도 승리한 소련군은 이후 계속해서 독일군을 서쪽으로 도로 밀어냈다. 많은 역사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나라가 소련이었다고 평가한다

84% 불가리아는 독일의 이송 압력을 끝내 물리쳤고 이로써 5만 명의 불가리아 유대인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헝가리와 달리 자생적 파시스트 운동이 미약했다는 점, 동유럽 대부분 지역과 달리 반유대주의 전통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왕과 의회, 정치인, 성직자 및 주민 상당수가 유대인 이송에 적극 반대했다는 점이 작용했다

87% 네루(인도), 수카르노(인도네시아), 저우런라이(중화인민공화국), 나세르(이집트) 등을 비롯해 29개국 정상들이 참가한 반둥회의는 수카르노의 표현대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두 대륙에 걸친 유색인종의 회의”였다.

89% 1968년은 혁명적인 물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알았던 해였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물론 일본과 동구에서도 시위, 점거, 농성, 진압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분도, 동양과 서양의 구분도 없었다. 그야말로, 윌러스틴에 따르면, 1848년에 이은 두 번째 세계혁명이었다.

90% 이에 염증을 느낀 신세대는 성해방, 로큰롤, 청바지, 미니스커트, 마약을 즐기는 등 ‘금지를 금지한다’라는 구호를 외차며 이전 세대가 금기한 사항들로부터 이탈을 꿈꾸었다

91%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대의명분에 따라 자원입대했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이들은 ‘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징집에 반대했다

92% 여성운동, 평화운동, 반핵운동, 생태운동은 68운동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일상에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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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보다 2 - 남북국.후삼국.고려 한국사를 보다 2
박찬영.정호일 지음 / 리베르스쿨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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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한국사를 보다2

 : 박찬영

 : 피카

 : 2022/02/02 - 2022/02/07


한국사를 보다 1권을 읽다가 다 못읽었는데 반납을 하게 됐다.

그래서 2권을 먼저 읽었다.

청소년 한국사 통사책으로 보면 딱 맞다.

사진이 많아서 역사공부하기에도 좋다. 

한국사 공부할 때 항목으로만 외우던 내용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박물관에 들고 가서 유물을 보며 비교해 보고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2권은 신라후기와 고려시대가 대상이다. 

저자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자주적이지 않고 영토확장에 급급한 모습이라고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후세의 입장에서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당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과 여자 왕이 다스린다고 당나라에 무시받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삼국통일 이후 보인 신라의 모습은 충분히 비판받고 외세에 굴종적인 것은 맞다. 

고려시대에 대한 부분도 몽골과의 전쟁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니 좋았다.

역사는 배워도 배워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할 내용이 끊임없이 나온다.

재미있게 읽었다. 


p40 대조영은 나라를 세우면서 천통이라는 연호를 사용했고, 뒤를 이은 무왕은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어요

p42 이를 통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동과 만주를 호령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구려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발해로 연장된 것을 의미합니다.

p50 신문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도입했어요

p84 은제 사리병의 발굴로 무왕과 선화 공주가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설에 의문이 제기됐고 선화 공주가 무왕의 후비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p128 견훤은 경상도 상주 출생이고, 궁예는 신라 왕족 출신이에요. 백제나 고구려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지요. 그런데도 후백제와 후고구려라고 국호를 정한 이유는 지역 백성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는 후기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유민을 포섭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p181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화폐도 발행됐습니다. 성종 때는 철전인 건원중보를 만들었고 숙종 때는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의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들었으나 널리 유통되지는 못했어요.

p193 외교는 언제나 자기 나라의 주권과 관련이 있어요. 외교적으로 대응할 때는 무엇보다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원칙만을 고수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권을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요.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민족의 이익과 주권을 고수하는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p199 거란은 안융진에서의 패배가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어요. 거란은 고려를 간단하게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고, 결국 송의 협공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소손녕이 모를 리 없었지요

p230 삼국사기에서 인용한 사서가 중국 측의 관점을 반영한 자료라는 데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수,당과 싸운 부분을 기록한 내용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이에 비해 삼국유사는 불교적이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자료를 인용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p261 개성 근처의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려청자가 많이 출토됐지요.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알아본 외국인들은 수많은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880~1920년대까지 고려청자는 도굴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p303 고종때 대장도감에서는 약재의 자급자족을 위해 향약구급방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 서적인데 각종 질병에 대한 처방과 국산 약재 180여 종을 소개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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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숨소리
치아(治我) 지음 / FIKA(피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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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의 숨소리

 : 치아

 : 피카

 : 2022/01/24 - 2022/01/28


제목만 봤을 때는 가벼운 에세이인줄 알았는데 성상담책이다

내 기준으로는 상당히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이 꽤 많이 나왔다.

수위가 높다.

요즘은 이런 내용으로 상담하고 의견을 나누나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독후감을 쓰기에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 과거의 생각들이 너무 강하다. 

내가 어릴때는 성이나 섹스라는 단어만 내보여도 문제아로 취급받던 시절이니까...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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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추리반 - 청소년을 위한 그림 속 세계 역사
송병건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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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세계사 추리반

 : 송병건

 : 아트북스

 : 2022/01/20 - 2022/01/23


단순히 세계사를 나열만 해서는 인기가 없다. 뭔가 특색이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고른 특색은 그림이다.

세계사를 통사로 써내려갔는데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림들은 대부분 처음보는 그림이지만 시대를 설명하기에는 좋은 도구였다.

덕분에 시대별로 큰 흐름을 아는데 도움이 됐다.

구석기 신석기시대의 그림들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그림역사를 설명하기에는 BC200년경부터가 적당한지 진시황부터 나온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코로나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p13 기원전 221년에 통일 왕조를 연 진나라는 기존의 봉건제를 대신해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인 군현제를 실시하고 법가를 통치의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p18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았던 한자를 통일했고, 우리의 엽전과 비슷하게 생긴, 둥근 모양에 네모난 구멍이 뚫린 반냥전이라는 단일 주화를 제작해 전국으로 유통시켰습니다. 수레바퀴의 폭을 포함해 도량형을 표준화했으며, 법가사상에 기초에 생활을 규제하는 법률제정에도 힘을 썼습니다.

p20 문서 마지막에 이사는 “태산이 거대한 것은 어떤 흙도 뿌리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비유를 남겼습니다.

p34 바루스 전투는 1909년 독일 화가 오토 알베르트 코흐가 그린 토이토부르크숲 전투 장면입니다.

p46 훈족의 전성기는 강력한 지도자 아틸라가 활약한 5세기 전반입니다. 그는 지금의 루마니아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카스피해, 서쪽으로 라인강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지요

p60 말리제국은 이슬람권 전역에 금을 공급하는 국가로 명성을 떨쳤지요. 1324년 독실한 이슬람교도였던 만사(황제) 무사는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이슬람교도는 모두 일생에 한 번은 성지순레를 가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여겼습니다.

p72 흑사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1347년 흑해에 위치한 카파라는 무역항에서 창궐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당시 카파는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제노바의 무역 기지였습니다.

p104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한 후 100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의 80퍼센트가량이 목숨을 잃었다고 역사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경제의 중심지였던 멕시코 중부지역은 1530년대에 인구가 1600만 명을 넘었지만 불과 70년 후에는 16분의 1 수준인 100만명으로 줄어드렀습니다. 전쟁, 착취, 그리고 무엇보다도 낯선 질병이 가져온 재앙적 결과였지요

p117 위그노의 경우 교육 수준이 높고 직업적으롣도 상공업자와 기술자가 많았기 대문에, 이들의 해외이주는 프랑스에서의 심각한 두뇌 유출을 의미했습니다. 실제로 비단 제조, 보석 가공, 시계 제조, 가구 제작에 정통한 위그노 장인들이 외국에서 새롭게 산업 발달의 기틀을 마련해갔습니다.

p125 1783년 오스트리아의 카톨릭 신부 고트프리트 울리히가 쿨치츠키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지어냈던 것이지요. 이야기가 너무 그럴싸하다보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사실로 오해하고 있을 정도지요. 사실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쿨치츠키보다 1년 앞서 문을 열었습니다.

p127 차의 역사는 커피보다 훨씬 깁니다. 차는 중국 남서부 지역이 원산지인데 이미 한나라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는 증거가 있어요.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전파될 만큼 차의 인기가 폭넓었지요.

p153 굴뚝청소부 아이들은 사고뿐만 아니라 직업병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팔꿈치와 무릎에 난 상처가 감염되어 악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검댕 탓에 각종 암의 발병률도 높았지요. 아이들은 장시간의 노동, 비위생적 환경, 영양실조 탓에 건강 악화를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p165 중국의 역사에서 17-18세기 청 왕조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통치한 134년의 기간을 강건성세라고 부릅니다.

p170 세상의 중심에 중국이 있고 서구 국가들은 문명 수준이 낮은 오랑캐일 뿐이었습니다. 영국 사절단에게도 중국의 이런 태도가 느껴졌던지 한 외교관은 이런 기록을 남겻습니다. “우리는 거지처럼 입성했고 죄수처럼 지냈으며 부랑아처럼 떠났다”

p175 반세기 후인 1840년 중국에 영국인들이 다시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교사절이 아닌 중무장한 군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건륭제에게 중국어로 인사를 올렸던 어린아이 조지 토머스 스타운턴이 중년의 정치가로서 영국 의회에서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합니다.

p197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이르는 운송비가 1870년에서 1913년 사이에 55퍼센트나 줄어들게 된 결정적 요인도 바로 수에즈운하였지요

p206 정글북의 저자로 잘 알려진 키플링은 이 시에서 서구 중심적이고 백인 우월주의적인 색채를 유감없이 드러냈어요. 식민지 주민들은 “절반은 악마, 절반은 어린애”와 같아서 백인들이 가져다주고자 하는 문명개화, 경제발전, 질병정복의 가치를 몰라보고 그저 원망과 불평만 쏟아냅니다.

p233 1917~91년은 역사가들이 짧은 20세기라고 표현하면서 따로 시대를 구분할 만큼 인류의 역사에 독특한 색깔을 부여한 시기였습니다.

p241 피를 말리는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은 곧 트로츠키를 숙청하고 국외로 추방해버렸지요. 그런데 이것으로 부족했는지 스탈린은 소련의 모든 기록에서 트로츠키의 흔적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과거의 경쟁자가 되살아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였지요

p246 공공사업진흥국이 실시한 사업 중에는 연방미술프로젝트라는 것도 있었지요. 전국적으로 100여 개의 센터를 마련하고 곤궁에 처한 미술가들에게 급료를 주고 벽화, 포스터, 조각, 사진 등의 작품을 제작할 기회를 제공했지요. 이 사업 덕택에 1만 명에 달하는 미술가들이 생계 걱정 없이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p255 전례없이 험난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 속에서, 뉴딜정책은 경기회복기가 도래할 때까지 사회 구성원들이 민주적 사회기반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고된 시절을 버텨갈 수 있도록 한 나름의 대타협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뉴딜정책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p261 이렇게 오염된 공기를 미아스마라고 불렀습니다. 부패한 물질에서 나오는 작은 입자가 가득한 독성 증기를 뜻하지요. 미아스마가 중세의 흑사병에서 19세기 전반의 콜레라에 이르기까지 각종 질병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견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사람들에게 의심없이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p268 OECD 국가 중 최악의 대기오염 수준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도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 수준의 대기오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인해 연간 10조 원을 훌쩍 넘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연구도 있지요.

p277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창궐했을 때 엄청나게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6-17세기에 평균기온이 낮아지는 이른바 소빙기가 찾아왔을 때는 많은 여인들이 마녀사냥의 제물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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