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 여행 - 황윤 역사 여행 에세이, 개정증보판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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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여행

 : 황헌

 : 책읽는 고양이

 : 2022/07/18 - 2022/07/31


재미있는 답사책이 나와서 요즘 읽고 있다.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이번에는 백제다. 

백제라고 하면 공주와 부여만 생각하는데 사실 한성백제 시절이 제일 길다.

온조왕부터 시작해서 개로왕까지 있었으니 백제시대의 대부분은 한성시절이다.

그렇지만 한성백제는 유물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대부분 아파트 밑에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몽촌토성 등이 남아 있어 그 흔적을 추정할 수 있다.

백제여행이다 보니 몽촌토성, 풍납토성을 비롯하여 서울에 있는 고분군등을 먼저 답사한다.

이후 공주를 방문하고, 부여를 방문하고, 이후에 익산도 방문한다.

아무래도 익산은 무왕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미륵사지 석탑이라는 멋드러진 탑도 있으니 백제여행이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니는 것도 이 책의 특이한 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백제답사에서 불편한 교통수단에 대한 투정도 책에서 튀어나온다.

사진이 좀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나름 재미있는 답사책이다.

아직 백제유물을 보러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보니 더 흥미가 갔다.

재미있다. 


p5 그 실체적 모습을 반드시 전문가라야만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백제 수도가 있었던 곳을 따라 서울에 위치한 한성백제박물관, 공주에 위치한 국립공주박물관, 부여에 위치한 국립부여박물관, 익산에 위치한 국립익산박물관, 그리고 각 지역에 산재된 유적지를 쭉 방문하다보면 누구나 쉽게 백제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9 313년, 고구려 미천왕이 드디어 낙랑군을 한반도 밖으로 쫓아내면서 그 명성은 사라진다. 그런데 때마침 한강 이남의 백제가 낙랑토성 규모 이상의 거대한 성을 만들었으니, 이는 동시대 삼국 수도인 고구려 국내성, 신라 월성과 비교해도 훨씬 더 큰 규모였다

p12 게이타이 덴노 이전까지는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럽게 일본서기를 살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p15 백제 왕이 낙랑 태수가 되었으니 낙랑과 대방의 지배권을 백제가 가져왔음을 공식적으로 알린 것이다. 또한 이 일은 나름 큰 의미가 있으니 이 뒤로는 중국의 군현이 아닌 한반도 국가가 직접 중국, 한반도, 일본 간의 무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후로도 통일신라, 고려, 조선까지 이런 방침은 쭉 이어졌다

p21 고구려는 처음 시작할 때 졸본부여라 칭했고 백제는 나중에 남부여라 자신을 칭했으니, 이처럼 부여를 뿌리로 둔 두 국가가 한반도를 대표하는 국가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p22 청자는 기본적으로 차를 마시기 위한 그릇으로 개발된 것으로 완벽하게 청자의 미감을 즐기려면 당연히 차를 마시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어봐야 완성되는 감각이다. 한때 옥으로 차를 마시던 중국인들이 옥과 비슷한 푸른색을 지닌 그릇에 집착한 결과가 바로 청자이기 때문이다

p29 흥미로운 점은 고분마다 1호부터 10호까지 숫자가 매겨져 있는데, 입구 왼쪽으로 4기는 각기 1호, 2호, 3호, 6호이고 오른쪽 4기는 각기 7호, 8호, 9호, 10호이다. 즉 방이동 고분 안에는 4,5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본래 있었던 4, 5호 고분 위치에는 현재 빌라가 들어서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p31 목표한 대로 장수왕은 개로왕을 비롯하여 백제 왕족 대부분을 죽이고, 남녀 8000명을 잡아 포로로 삼아서 고구려로 돌아간다. 8000명의 상당수가 백제 고위층이라 볼 때 백제는 지배층이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p33 그리고 1400여 년이 지나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은 이곳을 세밀히 조사하여 고분 분포도를 도면으로 남겼다. 그 결과 당시만 해도 총 290기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왕의 능과 그 외 왕족 및 귀족의 무덤 등이 위계에 따라 구분된 채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는 불과 8기만 남긴 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p43 이곳에는 고분 내부를 비어 있는 상태로 보여주는 곳 외에도 백제 시대 닫혔던 무령왕릉 문을 처음으로 열었을 때 내부에 유물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실제 크기 형태로 모형을 만들어 전시해두고 있다

p52 2018년 1월, 당간지주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 신식 한옥을 만들려고 땅을 팠는데, 이곳에서 대통이라 새겨져 있는 기와 등 2만 여 유물이 쏟아져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목탑 내 중심 기둥을 가리기 위해 장식되었던 나한상 조각의 일부가 출토되기도 하였으니, 즉 과거에 이곳에는 목탑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크다 하겠다. 더해서 일부 기와에는 붉은 색의 단청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p55 현재 공산성은 대부분이 돌로 만들어진 성이지만, 백제 시대에는 서울의 풍납토성처럼 토성이었다. 조선 시대에 돌로 성을 개축하면서 현재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p60 전장을 책임지는 태자를 지원하기 위해 성왕이 태자가 있는 곳으로 직접 이동하다가 그만 매복된 신라군에게 공격당하면서 사로잡혀 목이 베이고 만다. 성왕은 이렇게 위대한 백제의 꿈을 마저 완성시키지 못하고 서거하고 말았다.

p66 정림사지는 유명한 곳이기는 하나 여전히 비밀이 많은 백제 옛 사찰 터로 언제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 전혀 기록이 없다. 다만 부여의 딱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국보 9호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어 백제 시대에 중요한 절로 자리매김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p70 평양에 낙랑이 있던 시절부터 낙랑-가야-일본으로 연결된 루트가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일본서기를 보면 유독 가야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일본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철을 생산하지 못하던 일본에게 가야는 중요한 철 공급처이기도 했다.

p74 부여로 수도를 옮긴 뒤로부터의 왕들이 묻힌 곳인데, 유물은 이미 도굴된 상황이라 거의 남은 것은 없지만 고분군과 부여 외곽 성벽이었던 나성, 그리고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던 능산리 절터가 함께 자리잡은 장소다

p77 김제평야 하니까 330년 백제가 만들었다는 벽골제가 생각나는 걸. 기로강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와 제방으로 그 위치가 현재의 김제평야이다. 지금도 벽골제는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그 옆에는 벽골제민속유물전시관이라 하여 박물과도 있으니 혹시 관심 있는 분은 가보도록 하자

p82 석탑의 조상 중 조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미륵사지 석탑이다. 미륵사지 석탑 이후 돌로 탑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p85 정리하면 1. 무왕은 익산으로 천도하여 국가를 운영했고 2. 639년 제석사라는 절에 번개가 쳐서 화재로 타서 사라졌으며 3. 초석 안에 보관해두었던 사리도 사라져 있었다. 4. 이에 왕이 승려를 불러 참회하고 다시 사리병을 열어보니 사리 6개가 나타났고, 5. 절을 지어 이를 봉안했다라는 내용이다

p87 여러 자료가 더 쌓이면서 최근에는 백제 탑으로 왕궁리 석탑을 보는 이가 크게 늘어났다. 물론 통일신라~고려 초 주장도 약해졌지만 여전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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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주의의 탄생 -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 보리 인문학 3
김희교 지음 / 보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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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깨주의의 탄생

 : 김희교

 : 보리

 : 2022/07/22 - 2022/07/31


일단 중국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더욱 더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하지 않았으면 이런 책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추천한다고 이 책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왜 했는지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이와 비슷한 주장방식을 몇 번 들었다. 

아주 옛날에는 유신정부때... 한국은 북한의 남침위헙에 처해있는 특수한 상황이라 한국식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헌법도 바꾸고 권력구조도 바꿨다. 

그 이후에 들은 때는 80년대 후반 대학에서 수령론을 이야기하면서 북한 바로알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다 잘못된 정보를 통해 받은 것이고 북한은 북한에 맞는 사회주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중국은 서구의 프레임으로 알 수 없는 나라며, 중국 나름대로의 구조를 잘 펼쳐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은 패권국가가 될 생각이 없다는 것.

중국은 수천년간 중화사상으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그 DNA가 뼛속까지 들어가 있는 나라인데 패권국가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니 좀 어리둥절하다. 

저자의 주장이 맞는지는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알 것 같다. 

미국의 이익에 따라 우리가 중국을 보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로 있다보니 우리나라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 맞춰 우리나라가 운영될 것이 걱정스럽다. 

사례를 들어 우리가 중국을 지금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정도의 주장이었으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나에겐 유신정권이나 수령론때 듣던 주장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아쉽다. 


p7 중국이 문제라는 자유주의 프레임이나 중국도 문제라는 이상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이 땅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중국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p47 한국과 일본은 반주권국가였고, 중국은 세계체제에 편입되는 것이 차단된 봉쇄된 국가였다.

p56 키신저 시스템의 철회였다. 트럼프행정부가 지향한 대중국 정책은 약 50년 동안 진행해 온 키신저 시스템을 파기하고 다시 신냉전적 동맹체제를 결성하여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이었다

p107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고, 중국공산당은 중국을 전체주의적으로 지배하며, 중국공산당은 중국민을 통제하고 수탈하며,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은 결국 세계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는 짱깨주의의 기본 틀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p353 중국이 문제다라는 프레임과 시진핑의 중국이라는 프레임, 그리고 나쁜 중국이라는 프레임 위에 쓰여진 기사인데, 이는 한국의 보수주의 프레임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기사들이었다.

p408 중국은 일찍부터 불임, 산아제한, 범죄자로부터 아동격리 같은 정책을 국가적으로 시행해 오던 나라이다. 불임이나 산아제한은 중국의 인구가 세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 시행되었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p423 마이클 샌덜이 쓴 책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는 엘리트와 엘리트주의가 장악한 대의제가 어떻게 비민주적으로 바뀌는가를 말하고 있다.

p448 포털저널리즘에 무한정 노출된 20대는 가장 강한 반중주의자이자 가장 강한 친미주의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미국의 신식민주의도 경계하고, 부상하는 중국의 신팽창주의도 경계하는 전후체제 너머의 신세대가 아니다. . 김준호 씨가 지적한 대로 오히려 중국인을 혐오하는 것이 놀이문화가 된 신식민국의 신세대였다

p535 트럼프행정부는 중국을 대체하는 국가를 찾는 데 실패했다. 대외 의존적인 일본과 달리 중국 경제는 국내경제 중심으로 돌아간다. 한때 60%를 상회하던 중국의 대외경제 의존도는 최근 30%대로 떨어졌다.

p538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봉쇄 정책이 실패한 것을 두고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칼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은 더 나아졌고 우리는 더 나빠졌다. 고맙다. 트럼포”라고 비꼬면서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p561 서초동 집회는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 소셜네트워크, 팟캐스트의 힘이 기존 언론의 힘을 뚫고 나온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다.

p595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주변 어느 국가보다도 반대한다. 중국이 유달리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한반도의 안정이 중국의 국익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p641 메릴랜드대학 미셀 갤펀드 교수는 대만과 미국의 캘리포니아에는 약 2,000만 명으로 비슷한 인구가 사는데, 2021년 5월 기준으로 코로나 19 사망자를 따져보면 대만은 사망자가 23명만 나왔는데 플로리다는 왜 3만 6,000명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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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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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 비행

 : 리차드 도킨스

 : 을유출판사

 : 2022/07/18 - 2022/07/26


이기적 유전자라는 멋진 책을 쓰신 분이자 기독교 독설가로 유명한 리차드 도킨스의 신작.

진화론에 입각해 비행이라는 멋진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새, 곤충, 그리고 날기 위해 노력한 사람까지... 

비행을 위해서는 선제조건이 무엇이고 어떤 과학적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어떤 새들은 나는 기술을 포기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나, 곤충이나, 새나 날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고안한 게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긴, 물리법칙이 그러니 그렇게 맞춰질 수 밖에...

진화라는 게 우연히 개체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그 변화가 자연선택이 될 만큼 조금은 우월해야 하다보니 상당한 믿음이 필요하다. 다만, 화석 등을 통해 진화론에서 생각하는 방식이 꽤 입증되고 있어 진화가 있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모든 걸 진화로 설명해야 하고, 진화 자체의 특성상 목적성이 없어야 하니 그냥 그렇다는 것 이상 설명하기는 난감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재미있고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도킨스는 정말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기적 유전자는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분량만 늘려 설명하는 느낌이라 후반부에서는 흥미가 많이 떨어졌었다.

이 책은 후반부까지 재미있게 이끌고 같다.

물론 그림이 예쁘다는 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가벼운 킬링타임용 과학도서로 그만이다. 


p24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게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몸을 잘 만드는 유전자가 좋은 유전자다.

p54 박쥐를 제외하면, 외딴섬은 포유류가 아니라 조류의 세상이다. 대개 땅 위에는 포유류가 돌아다니기 마련인데, 섬에서는 대신 새들이 돌아다닌다.

p70 섬에서 새가 날지 못하도록 진화한 이유를 박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그저 아직까지 그런 박쥐가 눈에 띄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101 포스터 법칙은 원래 작은 동물은 섬에 와서 커지는 경향이 있고, 큰 동물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그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p114 동물이 체중에 비해 표면적이 클수록, 공중에서 떨어지는 속도는 더 느려지며, 비행에 필요한 앙력을 얻기는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p140 뒤쫓는 다랑어의 눈에는 날치가 갑작스럽게 사라진다. 전반시라는 현상 때문이다. 물속에 있는 포식자가 수면 위로 뛰쳐나간 먹이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p163 맥크레디는 무게를 1그램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비행기 부품들을 접합하는 데 쓰는 접착제도 아주 가벼운 특수한 종류를 썼다. 무게가 대단히 중요했으니까! 비행하는 동물도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든다.

p204 수소는 가연성이 크다. 즉,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1937년에 일어난 거대한 힌덴부르크 비행선이 폭발하는 비극적인 사고를 기억하기에, 이제 비행선 설계자들은 두 번째로 가벼운 기체인 헬륨을 선호한다.

p224 우주 비행사와 체중계, 우주 정거장과 그 안의 모든 것이 떠 있는 이유는 자유 낙하를 하기 때문이다. 모두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세계를 돌면서 추락하고 있다.

p235 높은 대기 권역으로 올라가면 이른바 공중 부유 생물, 즉 공중 플랑크톤과 마주친다. 꽃가루, 홀씨, 바람에 날리는 씨, 요정파리, 거미줄이라는 작은 낙하산에 매달린 조그만 거미 등 많은 생물로 이루어진 혼합 집단이다.

p253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강력한 이유라는 것은 분명하다. 거의 모든 동식물은 비용과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데도, 짝짓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가 수정을 하면, 암수가 있는 목적에 어긋난다.

p284 진화에서 새로운 착상의 궁극적인 원천이 돌연변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성 생식은 유전자들을 뒤섞어서 많은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며, 그것들은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된다.

p315 유카탄반도의 공룡은 운이 좋은 쪽이었다. 즉사했으니까. 살아남은 공룡들은 그들이 의지하는 식물들이 햇빛 부족으로 죽어 감에 따라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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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 개정증보판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2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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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 경주여행

 : 황윤

 : 책읽는고양이

 : 2022/07/11 - 2022/07/15


재미있는 스타일의 여행에세이가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혼자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1인 투어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답사를 하는 컨셉이다. 

경주는 이탈리아의 로마, 일본의 교토처럼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말은 하루이틀로 다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저자는 일박이일로 경주를 다니며 경주의 문화유산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유명한 불국사, 석굴암을 포함하여 거대고분군, 남산 그리고 최근에 핫한 황리단길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꼭 가야할 유적지가 많이 있지만 초보자나 가벼운 답사자가 다녀야 할 곳은 거의 다 흝는 것 같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문무왕릉으로 알려졌던 원성왕릉이 현재의 대왕암으로 바뀌는 에피소드는 참 재미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를 유적지에서 해야 하는데...

다른 시리즈도 계속 읽어봐야겠다.

역시 스토리텔링이 잘 된 책이 읽기도 쉽고 재미있다. 


p19 봉황대와 황남대총 같은 거대한 무덤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신라 시대 마립간이라 불리던 왕들이 즉위하던 때로, 17대 내물왕부터 22대 지증왕까지의 기간이다

p23 당시 일본인들은 고분 안에 묻혀 있던 유물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봉분은 대충 걷어내어 놀랍게도 경주 철도 공사에 필요한 흙과 돌로 사용해버렸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지만 당시 문화재에 대한 인식 수준 및 식민지를 낮춰 보는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 증거이기도 하다.

p36 다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예가이자 고증학자였던 추사 김정희는 경주 대릉원과 봉황대의 언덕을 왕릉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완당집에 따르면 “경주에 조산이 하나 무너졌는데, 석축이 나온 것으로 보아 왕릉이 틀림없다”하며 남다른 그의 통찰력을 남기고 있다

p37 발굴된 5개의 금관 중 3개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중이며, 나머지 2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3개의 금관은 각각 금관총, 서봉총, 천마총 금관이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황남대총, 금령총 금관이다.

p49 신라 왕릉으로 알려진 고분은 38기이고 이중 경주 내 왕릉으로 알려진 고분은 총 36기인데, 이 중 상당수는 위치가 삼국사기 또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맞지 않아 근현대들어와 여러 연구자들이 위치를 새롭게 비정하기도 했다. 다만 학자마다 주장들이 조금씩 달라서 정확하게 누구의 무덤이다라고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다.

p69 5-6세기 초반 마립간 시대 신라 왕들이 경주 중앙에 거대한 고분을 만들어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면, 6-7세기 신라왕들은 평지에 거대 사찰을 만들어서 왕가의 힘을 과시했다.

p73 이렇게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고려시대인 954년, 벼락을 맞고 불타 사라지면서 약 300년 간의 생애를 마감한다. 그럼 역사책에서 배운 몽고 침입으로 불타서 없어졌다는 황룡사 9층 목탑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몽고에 의해 불타 사라진 목팝은 고려 시대 때 복원한 황룡사 9층 목탑으로 고려 현종 때인 1012년, 이전에 벼락을 맞아 사라진 탑을 새로 올리며 만든 것이다. 다름 아닌 이것이 1238년, 몽고 침입으로 사라지게 된다. 결국 신라가 만든 탑은 300년, 고려가 만든 탑은 200년, 총 합쳐서 약 500년을 경주의 기둥으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p81 황룡사가 진흥왕과 선덕여왕의 전설이 함께하는 절이라면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만든 절이다

p100 문무왕은 이처럼 위급하던 674년, 이곳에 못을 파고 인공 산을 만들며 화초와 진기한 동물을 기르려 하고 있었다. 여유를 부리 ㄴ것이 아니라 문무왕은 신라 왕으로 봉해진 동생의 저택을 왕실 정원으로 만들어버려 내부 반발을 막고자 한 것이다. 당 편에 선다면 왕의 동생일지라도 신라에 돌아올 자리는 없다는 의미였다

p113 항복 문서를 보내고 그대로 항복했으면 한반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겠으나, 문무왕은 이후 한반도 역사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그런 왕들과는 격이 달랐다.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은 해내는 인물이었기에 뒤로 물러나는 척하며 준비한 반격을 통해 결국 당나라로부터 승리를 거둔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가장 걸맞는 인물이 한반도에서는 문무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실리를 위해서는 잠시 고개를 숙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난 저 비굴한 표문에 오히려 문무왕의 진면목이 숨겨 있는 듯하여 좋아한다

p118 문무왕은 당시 사람들의 불교 세계관으로 볼 때 인간에서 오히려 짐승으로 격하될지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짐승도 될 수 있다는 사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전 성골 의식이나 부처 재림을 이야기하던 신라 왕들과는 확실히 인품의 격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p125 고고학자 황수영 박사는 동국대 총장 시절인 1982년, 한국 종의 유별난 개성에 대하여 이는 만파식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에 따르면 원통형 긴 음통은 다름 아닌 피리를 형상화한 것이며 용은 피리를 전해준 문무왕을 의미한다 하겠다. 즉 삼국 통일의 영웅이자 만파식적의 주인공인 문무왕의 업적을 종에 장식한 것으로 보자 만파식적이 단순한 전설이 아닌 구체적 모습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p151 석가탑뿐만 아니라 신라의 석탑에서 무구정경 혹은 소탑이 봉안된 사례가 여럿 발견된다. 결국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탑을 짓고 관리, 유지시키는 데에 거대한 원동력이 된 경전이었던 것이다.

p165 절이 많아지자 이렇듯 본래 신성되던 남산이 더욱 신성시되면서 불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중요한 장소로서 인식되어진다. 이에 거의 300여 년 동안 특히 통일신라 시대 동안 경주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과 집안을 위한 사찰, 또는 사찰이 자금상 한계가 있다면 탑이라도, 그것도 힘들면 돌에 부처를 조각하는 마애불이라도 새기면서 기복 신앙의 꽃을 피웠다. 김대성이 불국사를 만든 것처럼 신라인 하나하나가 남산에 자신만의 불국사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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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탈박물관 -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나
댄 힉스 지음, 정영은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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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약탈박물관

 : 댄힉스

 : 책과함께

 : 2022/07/11 - 2022/07/18


유럽이 아프리카, 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뺏은 유적물에 대해 쓴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프랑스를 비롯해 많은 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 문화재를 강탈당한 역사가 있어 더 관심이 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넓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베닌이라는 나이지리아 쪽에 있던 아프리카 부족을 영국군이 파괴하면서 약탈한 문화재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직 한 사건만 기록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학자로서 자신의 나라의 치부를 이렇게 자세하고 집요하게 조사하고 책을 냈다는데 놀라웠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라든가, 영국에 가지고 왔기 때문에 잘 보존할 수 있었다는 등의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 이야기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류보편의 발전이라는 허황된 박물관의 목표에 대한 위선도 까발려진다. 

내가 잘 모르는 역사적 사실이라 따라가기가 좀 어렵긴 했지만 어떻게 아프리카의 문화와 문명이 파괴되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도 외국 박물관 수장고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우리나라 문화재를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의 아픔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런 학자가 있다는 데 놀라웠고, 존경스럽다. 


p19 이 책은 1897년 2월 베닌시티에서 벌어진 영국 군대의 폭력적인 약탈에 관한 책이다.

p45 아프리카 약탈은 제국주의가 진행되며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 아니라 수탈적,군국적 식민주의와 간접적 통치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된 핵심적인 기술이었다.

p51 사물의 생애와 상대적 얽힘이라는 두 개념은 기존의 인류학 이론과 연결되며 1990년대부터 서구 박물관들의 주된 사고방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p56 푸코의 글 중 박물관을 주제로 한 것은 거의 없다. 푸코는 아마 박물관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부흥한 박물관학은 직서, 통제, 계보학, 규율, 권력 등 푸코식 용어를 적극 사용했다.

p65 드라큘라 이야기처럼, 2897년 베난에 대한 서사에서 엿보이는 고딕의 현대화는 제국주의의 도덕성에 대한 빅토리아인들의 우려, 서구 문명의 불안정성과 유럽 내부에 존재하는 위험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적극 이용한 것이었다.

p68 콜웰은 1868년 영국군의 막달라 공격이나 1874년 아샨티 왕국 공격, 1892년 프랑스군의 다호메이 공격 등 상대가 준 모욕을 되갚고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적을 처벌하기 위해 벌인 공격에는 사실 대개의 경우 숨은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외국 땅에 질서를 세우기 위해 실행된 일종의 정략적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p71 영국 해군은 야만을 종식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원주민 마을에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했다. 영국은 문명을 보편 가치로 내세우며 아프리카의 왕궁과 성소를 파괴했다.

p103 이들 부대는 영국 해군의 지원하에 응징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마을을 주기적으로 공격하며 지속적이고 폭력적인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p111 나이저회사는 여전히 이러한 행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흙을 파먹고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 괴롭히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온 이 땅에서 굶어죽느니 그들과 싸우다 죽는 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p133 방법은 똑같았다. 상대에게 대화를 청한 후 만남을 거절당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이를 앞세워 보복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p144 서아프리카 해안 지역에 대한 지배가 어느 정도 안정되며 영국은 더 큰 상업적 이익을 좇아 점차 내륙으로 진출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노에제 근절은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p147 일로린은 항복했으나 회사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시에 포격을 퍼붓고 약탈했다.

p171 역설적으로 1897년 베닌 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기록의 부재다. 공식적인 문서는 물론 비공식적인 기록에서도 공격 이후 발생한 포로, 부상당한 원주민을 위해 운영된 병원, 환경 파괴로 인한 기근 등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p177 역사인류학적으로 볼 때, 앞서 언급한 베닌시티의 흙 건축물과 베닌시티 서쪽에 위치한 베냉공화국 사비의 흙 건축물은 기존에 생각했던 방어 등의 기능 외에도 공공건물로서 복합적인 정치적, 우주론적 중요성을 지녔을 것으로 예측된다. 수세기에 걸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으로 건설됐을 이 건축물은 종교적 공간과 자연적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했다.

p182 영국은 베닌의 주권을 빼앗고 그것을 자신이 바라는 형태의 통치로 대체하기 역사와 왕권이 살아 있던 한 도시를 통채로 파괴했다.

p207 베닌 왕의 모든 산호와 청동 조각, 상아가 영국군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단절되어버린 역사 그 자체다. 그 단절의 크기를 이해하고 그것에 시각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애사의 층위를 더하기보다는 그 단절된 역사를, 생명 약탈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p218 약탈에는 성직자와 정부관리, 심지어 박물관 큐레이터들도 동참했다. 우리는 이들이 무엇을 약탈했는지, 그들이 가져간 약탈물들이 어떻게 됐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아무런 기록도 없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p220 서양 국가들은 집단 학살을 통해 상대의 물건을 빼앗아 와서는 야만에 대한 문명의 승리를 보여주겠다며 본국 곳곳에서, 그리고 박물관에서 전시하며 백인우월주의 이념을 확장했다

p235 약탈품으로서 영국에 도착한 베닌의 물건들은 패배한 적의 원시적인 부족 예술로 전시됐다.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가져왔다는 변명이 무색하게 이 약탈품들은 박물관 내에서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p242 박물관은 전시하는 물건에 공간의 차이가 아닌 시간의 차이를 덧씌웠고, 그렇게 전시된 물건들은 인종주의를 시각화하는 대용물이 됐다.

p250 인류학 박물관들은 새로운 물질주의적 증거와 전시를 통해 이러한 편견을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증오로 재탄생시켰다.

p254 베닌은 타락하고 퇴보한 문명으로 묘사됐다. 영국은 베닌의 예술품을 퇴락한 예술로 전시했고, 열등한 베닌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했으며,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들을 파괴했다. 이러한 행위는 곧 다가올 20세기의 폭력의 예고편이었다.

p268 영국박물관은 세계 문화재에 대한 보편적 비전을 담은 근대적 박물관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신세계 농장 귀족이 모은 장식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영국박물관이 인류보편의 이상을 바탕으로 설립됐다는 주장은 의도적인 조작이자 신화인 것이다.

p271 대량살상무기 제거는 폭력의 명분이 되어 이라크에서 벌어진 강탈과 점유를 정당화했다. 인권침해를 근절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세운다는 명분은 과거 영국이 내세웠던 노에제와 식인풍습, 인신공양 근절 등 인도주의적 명분을 연상시킨다.

p274 신화학을 연구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2005년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절대로 인류보편의 박물관이 아니다. 그곳에는 프랑스와 서구사회의 전통을 형성한 것들만 모여 있기 때문이다”

p295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대영제국의 역사는 편리하게도 해적으로 시작해 노예무역 철폐로 끝난다. 박물관들 역시 많은 경우 1838년 노예제 철폐에서부터 2차 보어전쟁에 이르는 기간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영국박물관의 수장고에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p311 약탈물의 서양 박물관으로의 이동은 이중의 과정이다. 이 행위는 약탈물을 원래의 주인에게서 빼앗았고, 동시에 우리를 풍요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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