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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역사 - 신의 탄생과 정신의 모험
카렌 암스트롱 지음, 배국원 외 옮김 / 교양인 / 2023년 7월
평점 :
제목 : 신의 역사
작가 : 카렌 암스트롱
출판사 : 교양인
읽은기간 : 2023/11/23 -2023/12/28
신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역사에서 신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유명한 책이라고 하더니 꼼꼼하게 역사를 추적해가며 썼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책이 쓰여 있어서 종교인이 읽으면 좀 반감이 갈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시대별로 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기에 이만한 책이 없을 것 같다.
작가의 믿음과 신념의 결정체인 책을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여러번 읽으면서 공부해야 할 책이다.
p47 성서는 우리가 고대 이스라엘 민족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세의 신 야훼에 대한 충성심으로 결속한 여러 다양한 종족 집단의 연합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p67 서는 이스라엘인들이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전시, 즉 야훼의 능숙한 군사적 보호가 필요한 때에는 계약을 기억했으나 평시에는 옛 관습을 좇아 바알, 아나트, 아세라를 숭배했다.
p74 우리가 흔히 힌두교라고 부르는 종교는 체계를 피하는 데다 한 가지 해석만 적절하다는 배타적 입장을 거부하기에 일반화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파니샤드는 신을 초월하지만 만물 안에 밀접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독특한 신성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p77 신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은 부정되기보다 초월된다. 브라흐만이나 아트만의 경험은 음악이나 시의 경우처럼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예술작품은 창작하고 감상하는 데 지성을 필요로 하지만 순전히 논리적 능력이나 두뇌의 기능을 넘어서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신의 역사에 변함없는 주제가 될 것이다.
p97 예언자는 주로 신의 임재를 대신하는 사람이지만 이 초월적 경험은 불교에서처럼 앎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진다. 예언자는 신비로운 깨달음이 아니라 복종으로 특징지어질 것이었다.
p104 그 계약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며, 따라서 모두가 온당하게 취급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신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해 역사에 개입한 것이었다.
p128 야훼는 유일신이 되었다. 그의 주장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늘 그렇듯 새로운 신학이 성공하는 이유는 합리적으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절망에 빠지는 것을 막고 희망을 고취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p139 한 유대인이 지혜서를 써서 동료 유대인들에게 주변의 유혹적인 그리스 문화에 저항하고 그들의 전통에 충실하라고 경고했다. 참된 지혜를 구성하는 것은 그리스 철학이 아니라 야훼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p147 탄나임은 구전 율법-모세의 율법을 시대에 맞춰 새롭게 해석해 온 것이다-을 성문화한 미슈나를 편찬했다. 이후 아모라임으로 불린 학자들이 미슈나에 주석을 달기 시작ㅎㅆ고, 이를 집대성해 탈무드를 만들었다.
p154 랍비들은 신은 인간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인간의 육체는 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했다. 신이 인간의 기쁨을 위해 선물한 술이나 성관계 등 즐거움을 기피하는 것은 죄가 될 수도 있었다.
p180 로마인의 에토스는 보수적이어서 가부장제 전통과 고대 관습의 권위를 존중했다. 진보란 옛 황금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지, 미래를 향해 겁 없이 행진하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p215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을 지지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압력 덕분에 공의회 참석 덕분에 공의회 참석자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고, 니케아 신조가 그의 신학적 입장에 근거해 작성되고 공표되었다.
p225 성부, 성자, 성령은 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에네르게이아)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쓰는 용어”일 뿐이다. 하지만 성자, 성부, 성령이라는 용어는 불가해한 실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옮겨준다는 점에서 상징으로서 가치가 있었다. 인간은 신을 초월자(접근할 수 없는 빛 속에 숨은 성부), 창조자(로고스), 내재자(성령)로 경험해 왔다
p227 그리스 정교도와 러시아 정교드들은 삼위일체를 관조를 통한 종교적 영감의 경험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많은 서방 기독교인은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파도키아 신학자들이 삼위일체의 케리그마적 속성이라고 부른 것만을 고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
p238 아우구스티누스는 서구인들에게 곤혹스러운 유산을 남겼다. 인간성의 만성적 결함을 가르치는 종교는 사람들을 자기 소외에 빠뜨릴 수 있다. 그의 원죄론에서 비롯된 인간 소외는 섹슈얼리티의 폄하, 특히 여성에 대한 폄하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본래 기독교는 여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종교였으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부터 서구 문화에 여성혐오의 경향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p266 아랍어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는 서구인에게 쿠란은 반복적이고 지루해 보인다. 쿠란은 같은 주제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러나 쿠란은 개인이 정독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서 암송을 위한 것이다.
p271 쿠란은 신의 징표와 메시지를 해독하는 지성이 필요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무슬림은 이성을 버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주의 깊게 그리고 호기심을 푸고 바라봐야 한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훗날 무슬림은 자연과학의 건강한 전통을 세울 수 있엇고, 기독교와 달리 자연과학이 종교를 위협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p289 무슬림은 이슬람 시대의 시작을 무함마드가 탄생한 해나 그가 계시-결국 새로운 것은 없었다-를 처음 받은 해가 아니라 이슬람을 정치적 현실로 만듦으로써 신의 계획을 역사에 구현하기 시작한 히즈라의 해로 본다.
p295 기독교인이 무슬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이상하게 여긴다면, 난해한 신학적 논쟁에 대한 자신들의 열정이 유대인이나 무슬림에게 똑같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p302 우리가 신을 이해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신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인간의 투영일 뿐이다. 신은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초월하며 인간의 기준과 기대에 얽매이지 않는다.
p325 그리스 정교도에게 타보르산의 그리스도가 신화된 인간을 나타낸 것처럼, 붓다가 모든 인류가 이룰 수 있는 깨달음을 구현한 것처럼, 이맘의 인간 본성도 그가 신을 완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변모되었다.
p343 어떤 사람들은 이성보다 더 높은 힘을 지니는데, 알-가잘리는 이를 예언자적 정신이라고 불렀다.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예언자적 정신이 존재함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p363 안셀무스는 언젠가 신조가 이해되기를 바라며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사실 이렇게 번역되어야 한다 “이해할 수 있기 위해 나 자신을 헌신한다”
p368 그러므로 인간이 신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신이 인간 이해의 영역을 초월함을 깨닫고 인간이 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의 마지막 문장을 구술할 때 갑자기 탄식하며 머리를 양손으로 감쌌다는 이야기가 있다. 필경사가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본 것에 비하면 자신이 쓴 모든 것이 지푸라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p401 이 글은 라비아의 유명한 기도문과 유사했다. “오 신이시여, 만일 제가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차라리 저를 지옥 불에 태워 없애소서. 만일 제가 낙원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소서. 그러나 만일 제가 오직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을 섬긴다면 당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의 은총을 제게서 거두어 마소서”
p411 신비주의는 유일신 종교에 더 고요한 영성을 도입하고 있었다. 외부의 실제와 충돌하는 대신 신비주의자 내면에서 빛이 나왔다. 사실의 전달은 없었다. 그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순수한 이미지의 세계’인 알람 알-미탈을 도입함으로써 사람들이 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p417 이븐 알-아라비도 수피즘을 신봉하는 이슬람 신비주의자들과 유사하게 인간의 상상력에 중심을 둔 고도의 개인적 영성 수행에서 출발해 초인격적 신 이해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는 신 이해와 관련해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p452 에스파탸 무슬림은 오랜 세월 유랑 생활을 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몰락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에게 닥친 가장 큰 재앙으로 여기며 슬퍼했다. 에스파냐 유대인의 추방 경험은 그 어느 때보다 유대 종교의식에 깊이 자리 잡았고, 새로운 형태의 카발라와 새로운 신 개념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p455 15세기와 16세기에 세 개의 새로운 무슬림 제국이 창건되었다. 소아시아와 동유럽의 오스만 튀르크, 이란의 사파비, 인도의 무굴. 이러한 새로운 모험은 이슬람 정신이 결코 죽어 간 것이 아니라 재앙과 붕괴 이후에도 무슬림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었음을 보여준다.
p460 아크바르는 자신이 만든 수피 교단인 신성한 유일신교에 헌신했는데, 올바르게 인도된 종교라면 어느 종교에서든 유일신이 자신을 드러낸다는 신념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p478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교서를 내렸다. 이는 16세기와 17세기 유럽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마녀사냥 광풍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공동체를 똑같이 괴롭힌 마녀사냥은 서구 영성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냈다. 이 끔찍한 박해 속에서 수천 명의 남성과 여성이 놀라운 죄를 자백할 때까지 잔혹하게 고문받았다.
p491 성서를 상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그 신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해진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말 그대로 책임이 있는 신을 상상하는 것은 모순을 초래한다. 성서의 신은 초월적 실재의 상징이 되기를 멈추고 잔혹하고 독재적인 폭군이 된다. 에정설은 그러한 인격화된 신의 한계를 드러낸다
p497 16세기와 17세기에 무신론자라는 말은 논박을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무정부주의자나 공산주의자로 부른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어떤 적이든 무신론자로 부르는 것이 가능했다
p500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카톨릭 교회가 지동설을 비난한 것은 창조자 신에 대한 믿음을 위협해서가 아니라 성서에 나오는 신의 말씀과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p514 본질적으로 비주의적인 이 체험은 파스칼의 신이 이 장에서 고찰한 다른 과학자나 철학자의 신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신은 철학자의 신이 아니라 계시의 신이었다.
p517 기독교인은 삶의 무의미와 절망에 직면하여 신앙을 키우고 신에 관한 감각을 쌓음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할 것이다. 파스칼에게 신은 살아 움직이는 실체였으며, 신앙은 지적 확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막연한 어둠의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 있는 결단이자 윤리 의식을 일깨우는 체험이었다.
p536 스피노자는 유럽의 어떤 종교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서구에서 하나의 추세가 될 자율적이고 비종교적인 이념의 원형이었다. 20세기 초 많은 사람들이 스피노자를 근대성의 영웅으로 존경했는데 그의 상징적 추방과 소외, 비종교적인 구원을 위한 탐색에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p544 웨슬리가 전한 신앙은 거듭남의 체험이 핵심이었다. 그는 이 체험을 끊임없이 인간 영혼 속에 살아 숨 쉬는 신을 경험하는 것이며, 넘치는 감사의 마음으로 신을 사랑하고 온유와 인내의 마음으로 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p550 조지 폭스는 퀘이커교도에게 침묵 속에서 신을 기다릴 것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동방 정교회의 헤시카즘 또는 중세 철학자의 부정의 길을 연상시켰다. 삼위일체 신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무너지고 있었다.
p587 내가 비록 무신론자들과 잘 지내지만, 나는 신을 믿습니다. 독미나리를 파슬리로 착각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하는 문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디드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매우 정확히 짚었다. 신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 속에서만 존재한다.
p592 디드로, 돌바크, 라플라스는 그러한 시도로부터 고개를 돌렸고,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저편 어딘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다른 과학자들과 철학가들이 의기양양하게 신의 죽음을 선언하게 된다.
p608 서방 기독교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인간의 죄와 악, 투쟁과 고통을 강조했는데, 이런 경향은 가령 동방 정교회 신학에서는 낯선 것이었다. 좀 더 낙관적인 인간관을 지녔던 포이어바흐와 오귀스트 콩트 같은 철학자들이 과거 기독교인들에게서 자신감을 빼앗아 갔던 이 같은 신을 제거하고 싶어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p613 아들러에게 신은 (인간이 추구하는) 탁월성을 보여주는 훌륭하고 효과적인 상징이었다. 카를 융의 신은 각 개인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심리적 진실이었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자의 신과 닮았다
p620 프로이트는 현명하게도 어떤 식으로든 종교를 강제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섹슈얼리티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의 욕구에 해당한다. 종교에 대한 억압은 극심한 성적 억압 못지않게 폭발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p645 미국의 종교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역사 해석에 대한 지적은 매우 의미심장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당대와 비교할 때 흔히 이중 기준을 지니게 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역사적 과정을 이해할 때, 과거는 철저히 상대화해 분석하지만 현재 상황은 절대화해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고는 한다.
p659 순례자는 카바에 도착해 신전이 비어 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 “이곳은 너의 종착지가 아니다. 카바는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다” 카바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었으며 신에 대한 모든 인간적 표현을 초월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p674 신비주의자들은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로 보는 대신 존재의 바탕에서 신비롭게 경험되는 주관적 체험이라고 주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