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으로 본 조선 3 : 경기, 충청, 전라, 경상 - 과연 조선은 아름다운 실경의 나라 옛 그림으로 본 시리즈
최열 지음 / 혜화1117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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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그림으로 본 조선 3

 : 최열

 : 혜화 1117

읽은기간 : 2024/10/08 -2024/10/17


이런 책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꽤 여러 권이 나왔는데도 몰랐다.

역시 서점에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면서 책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꾸준히 가져야 한다.

책은 매우 두껍지만 그림이 많아 읽기가 어렵지는 않다.

다만 그림과 책의 내용이 어떨 때는 앞에, 어떨 때는 뒷페이지에 있다보니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것은 좀 힘들었다.

조선의 실경을 그린 그림이 이렇게 많다는 데 놀라고, 또 그 그림이 매우 정교하다는 데 또 놀랐다. 

정교하다고 해서 사진처럼 그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그 고을이 그려진다. 

중요한 건물이나 길, 강은 다 그려져 있고, 내가 볼 때는 그 고을이 또 정겹게 그려져 있다.

오래 보게 된다.. 

다른 책들도 조만간 빌려서 봐야겠다.. 좋았다. 


p31 조선시대 이루어진 유람 가운데 가장 희귀한 경우를 꼽자면 강원 원주 사람 김금원의 유람이다. 여자인 그는 남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동을 비롯해 갖출 것은 다 갖추었는데 모두 집안에서 마련한 것이다. 그의 유람 사실을 지금 알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가 호동서락기라는 유람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p58 송악산은 경기 5악의 으뜸가는 산이었다. 경기 5악은 송악산과 더불어 연천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편의 화악산, 안양의 관악산이다

p61 땅은 그곳과 인연을 맺은 유명한 사람 때문에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지 다만 경치가 빼어나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p72 수도에 가까우나 섬이서 멀리 떨어진 강화는 권력에서 밀려난 학자의 은신처로 제격이었다. 하곡 정제두를 중심으로 하는 강화학파는 성리학 일변도의 학풍에서 양명학의 계보를 이어 기라성 같은 사상가를 배출했다.

p82 남쪽의 감악산은 신령한 산이다. 봉우리 정상에 높이 170센티미터의 감악산비라는 비석이 서 있어 신비를 더하고 있다.

p126 김시습이 수락산에 머물며 읊은 수락산에 남은 노을의 마지막 구절은 그리도 서글프다. “하늘 끝이 가없으니 뜻오 어찌 가 있을까. 붉은 빛 머금은 노을에 밝은 빛 흔들리네”

p137 용문사 은행나무는 후손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에 서 있는, 나이 600살 넘은 바로 그 은행나무다

p160 안산의 성호 땅과 단원 땅은 특별한다. 단원은 단원구 일대를 말하고 성호는 지금 경기도립미술관 앞 호수를 가리킨다. 이곳에서 두 사람이 태어났다. 성호 이익과 단원 김홍도다. 그들은 자신의 아호를 그 땅 이름에서 취했다.

p196 단양팔경은 그 아름다운 땅의 하나일 뿐 예부터 사람들은 충북 전역을 일러 맑은 바람 밝은 달이라는 뜻을 담아 청풍명월의 땅이라 하였다

p214 옛 그림 속에서 옛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다. 실경화에는 거의 모두 유람객이 등장한다. 하지만 숨은 그림처럼 아주 작다. 그래서 자칫 놓치기 일쑤다.

p297 전쟁이란 더욱이 약소국가가 치르는 전쟁이란 왕족과 대신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가장 참혹하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물론 일제를 상대로 하는 의병들의 독립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을 돌이켜보면 그때마다 왕족과 대신,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통치자들은 더욱 번창했고 백성과 민인은 더욱 비참했다.

p350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펼쳐진 김제만경 너른 들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벌판이다. 한눈에 천리를 본다는 일목천리의 땅이라고 부른다.

p355 이매창으로 말미암아 부안에 자주 내려온 교산 허균은 이곳에서 위대한 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는데, 그와 함께 이매창이 읊은 시편은 조선문학사를 비단처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p367 8킬로미터에 이르는 강천계곡 구비마다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1981년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강천사며 귀래정, 합미성, 홀어미산성 그리고 삼인대가 있어 이 땅이 아주 오랜 세월 사람의 역사가 쌓인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p399 온화하고 평화로운 나루터라는 뜻을 품은 강진은 북으로 달빛 월악산이 하늘을 향하고 남으로 쪽빛 탐진강이 바다로 들어간다. 기름진 땅이라 곡식 또한 기름진데 그 흙으로 빚은 청자가 아름답다

p407 처음에는 몇 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16명에 이르는 국사를 배출할 정도의 대가람으로 거듭났다. 불가의 세 가지 보물인 부처, 경전, 승려, 다시 말해 삼보를 갖춘 절을 삼보 사찰이라고 하는데,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최고의 경전인 대장경을 지닌 해인사와 더불어 이른바 승보 사찰로서, 삼보 사찰의 하나로 우뚝 섰다

p438 20세기까지 거의 모든 강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모래톱이 참 많았다 하지만 양쪽에 도로를 내고 뚝을 쌓는가 하면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이라며 수수만년을 흐르던 강물을 가로막는 보를 여기저기 설치해놓고보니 저 금모래 은모래는 거의 다 사라지고 말았다.

p474 화폭 맨 아래쪽 물길은 바위까지 쓸어내릴 듯 엄청난 기세다. 겸재 정선은 뒷날 개성의 박연폭포, 한양의 청풍계와 인왕산을 그렸는데 마치 그 예고편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이런 기법이 아직 숙성한 건 아니어서 거친 붓질과 흩어진 구도가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다.

p521 통영은 고난에 빠진 이 난민 화가를 따스하게 품어준 고장이다. 전쟁의 참화속에서 병든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아픔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난민 이중섭이 이곳 통영에 왔다.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 근무하고 있던 공예가이자 절친한 벗 유강열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통영은 외로움에 방황하던 이중섭에게 숙식과 더불어 작품 제작에 필요한 물품을 안겨주었다. 그 사랑에 힘입은 이중섭은 도원은 물론 들소 연작을 비롯해 숱한 걸작을 탄생시킨 뒤 홀연히 진주로 떠나갔다.

p526 물금이란 이름은 신기하다. 아닌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금지하는 게 없다는 뜻을 지닌 물금의 유래는 신라와 가락국이 대립할 때에도 믈굼나루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으로부터다. 막힘 없는 낙동강변의 자유무역 지대인 물금역은 뜻을 알아서인지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여겨진다.

p561 그동안 내가 깨우친 건 이 나라 조선은 실경의 나라요, 실경의 천국이라는 점이다. 조선에 불었던 유람 열풍이 그것을 가능케했다. 이름난 산하를 찾아 훌쩍 떠나는 탐승 열풍이 일어난 건 18세기였다. 이에 호응해 유명한 명승지를 그린 그림을 방안에 걸어두고 누워 서 유람하는 와유가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화가들마다 앞을 다퉈 금강과 관동, 단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토대가 마련되자 빼어난 화가들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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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책방 문화 탐구 - 책세상 입문 31년차 출판평론가의 유럽 책방 문화 관찰기 책방 탐구 시리즈
한미화 지음 / 혜화1117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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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책방 문화 탐구

 : 한미화

 : 혜화 1119

읽은기간 : 2024/09/28 -2024/10/06


이런 책 너무 좋다.

유럽을 여행하는 데 한가지 주제로 다닐 수 있게 만든다.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도 가능하면 그곳의 동네 책방을 들리곤 하는데 유럽에 있는 동네책방을 들러볼 수 있는 가이드라서 더 좋다.

사실 동네책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유명하고 큰 곳이 많다. 그만큼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리라. 

유럽도 아마존의 등장이후 동네책방이 쇠락을 겪고 있다. 그래도 잘 버텨주고 있어서 참 좋다.

없어지기 전에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뿐...



p20 긴 역사를 듣고 나면 세실 코트는 어떤 곳일까 기대되지만 막상 가보면 좀 놀란다. 아주 좁고 작은 골목에 자리한 앤티크 상점 거리다.

p43 책 좋아하는 이들이 대책 없이 빠져드는 공통 품목이 있다. 연필, 펜, 노트 등의 문구류다. 하나를 더하면 에코백이다. 정확히는 캔버스 가방이다. 그래서인지 책 관련 상품으로 많이 나온다

p49 울스틴 크로프트는 대형 체인서점 매대는 출판사의 입김으로 만들어지지만 돈트북스는 직원들의 안목과 단골 고객의 리뷰로 꾸며진다며 자부심을 내보였다. 그는 또한 돈트북스의 멤버십 회원들이 쓴 리뷰는 일반 고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도 했다.

p66 구텐베르크 이후 500여 년이 넘는 동안 책방은 값비싼 사치품인 책을 파는 곳이자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엄숙한 지식의 전당이었다.

p82 파리에서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파리 시청은 정말로 두 곳의 지베르 죈을 매입했다. 미국보다 어쩌면 더한 자본주의 국가가 된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이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p84 작고 개성있는 가게들은 모두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거리를 떠나고, 그 자리에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이 들어선다. 정겨운 골목길 풍경은 사라지고 그저 그런 동네가 되고 만다

p90 3개 층을 모두 책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스와 에든버러에 있는 토핑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볼 만한 멋진 곳이었다. 궁극의 책방을 만난 느낌이었다. 보르헤스의 말을 써먹자면 책방의 천국이 있다면 바로 바스와 에든버러의 토핑이다

p107 프랑스에는 독일처럼 민족도 없고, 영국처럼 구심점이 될 여왕도 없다. 프랑스에는 오직 피를 흘리며 만들어온 공화주의 전통만이 있을 뿐이다. 공화주의 전통의 핵심은 사회 정의다. 프랑스 사람들은 사회 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말이 있다

p113 자본주의가 탄생한 나라 영국에서 서비스를 결정하는 건 돈이다. 모든 가치를 돈에 따라 정확하게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간혹 가격은 싸지만 품질 좋은 물건이나 맛있는 음식을 접할 때가 있다. 영국에서 이런 기대는 접는 편이 좋다. 지불한 돈만큼만 서비스를 받는다.

p126 이때 실비아 비치가 나선다. 책방을 운영하던 그는 겁도 없이 이 원고를 직접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세익스피어앤드컴퍼니와 제임스 조이스는 이렇게 역사에 기록된다

p127 조지는 숙박계 대신 책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는 이들에게 각자의 인생에 대한 글을 쓰게 했다. 일종의 창작연습을 시킨 셈이다. 책방을 거친 이들이 쓴 약 3만 편의 글은 2016년 3대 사장인 실비아 휘트먼이 ‘내 마음의 넝마와 뼈의 책방’이라는 회고록으로 출간했다

p139 레 되 마고와 이웃한 카페 드 플로르는 1885년 시작했다 드 풀로르의 단골 명단은 어마어마하다. 생택쥐베리, 앙드로 말로, 피카소, 헤밍웨이, 기호학장인 롤랑 바르트, 대통령이 되기 전 미테랑도 있다.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나 디자이너 라거펠트도 이곳을 좋아해 무시로 드나들었다.

p155 에든버러의 책방 중에는 조앤 롤링과 관계가 있는 곳은 없을까. 그럴리가! 로열 마일 남쪽의 주택가에 있는 에든버러 북숍에 종종 조앤 롤링이 나타나 책을 산다고 한다. 가디언은 “이런 책방이 바로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 책방의 진가를 명쾌하게 표현했다.

p184 글래드스턴 도서관은 영국에서 유일하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우리도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스테이는 여럿 있다. 나 역시 해본 적 있지만, 도서관 스테이는 처음이었다. 방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대신 검박한 침대와 나무 책상이 있다.

p204 파리 사람들은 부키니스트가 없는 파리는 곤돌라가 없는 베네치아와 같다고 여긴다. 그런 프랑스 사람들이니 안전은 명분으로 몇백 년 동안 파리 중심부에 자리잡아온 부키니스트에게 내려진 올림픽 기간 폐쇄 명령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르 몽드에 곧장 실린 반박 칼럼의 첫 문장은 알베르 카뮈의 말로 시작한다. “문화를 타락시키는 모든 것은 노예의 길을 앞당긴다”

p223 긴 세월동안 블랙웰스를 사랑한 사람도 많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은 블랙웰스에서 외상으로 책을 산 적이 있다. 그는 외상값을 시로 갚았다. 고블린 발이라는 톨킨의 첫 시는 이런 이유로 블랙웰스 출판사에서 발표됐다. 옥스퍼드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쓴 톨킨과 루이스를 기념하는 코너가 블랙웰스에 별도로 있다.

p237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척 넓은 메인홀에 입이 벌어진다. 네 벽에 손으로 짝 서가가 높이 서 있다. 서가가 높으면 독자는 책 속에 파묻힌 기분이 든다. 현실과 거리를 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 책들의 신전이다.

p251 기차역 말고 마터북스에는 유명한 게 또 있다. keep calm and carry on 이라고 쓴 포스터다. 우리말로는 침착하게 계속 나아가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문구가 새겨진 머그잔이나 열쇠고리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시작이 이곳이다.

p267 서점 일기와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를 읽어보면 손 비델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영국 코미디를 보고 있는 듯하다. 가까운 동네책방 주인 중에 책방의 민낯을 약간은 시니컬하게 드러낸 서점 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도 있었다.

p267 헤이온와이가 성공한 것은 왜일까. 헤이온와이에 가보기 전에는 특색 있는 책방들이 이루어내는 조화 덕분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막상 가보니 책도 책이지만 평온한 자연 환경이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바쁜 현대인에게 책 읽는 시간은 휴식과 같다. 아름다운 자연 아래 책방을 거니는 시간을 만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가 아닐까

p288 P&G 웰스에는 못 갔지만, 상상의 나래 덕분에 새로운 제인 오스틴을 만났다. 200여 년 전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제인 오스틴의 작가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제인 오스틴이 자신을 작가로 여겼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인 오스틴은 여성을 가정의 꽃 정도로 여겼던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고,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없어 결혼이 필수인 시대를 살았다.

p304 이 책은 1791년 9월에 집필을 시작해 1792년 충분한 퇴고 없이 서둘러 출간되었다. 문법적 오류가 많고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울스턴 크래프트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었겠지만 상업적인 용도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p317 당시 부모들은 어린이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으면 버릇없고 난폭해질 거라며 질색했다. 이 쓸데없는 걱정을 200년도 훨씬 더 지난 요즘 부모도 한다.

p335 정말로 대단한 건 따로 있다. 포터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개발 위험에 처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땅을 사들이고 이를 모두 내셔널 트러스트에 유증했다. 1943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사들인 토지는 농가 15채와 농장 20곳을 포함, 약 1,750만제곱미터, 530만 평이 이른다. 1,75만제곱미터란 얼마나 넓은 땅일까. 경기도 고양 일산 신도시가 1,551만 제곱미터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으로 보호되는 지역은 모두 포터의 땅이라고 여겨도 된다. 이토록 넓은 땅을 개발위험으로부터 지켜낸 것이다. 그가 해 낸 일이 이렇게나 크고도 넓다

p339 성당에는 중요한 유물이 여럿 있다. 하나는 1217년 마그나카르타 사본이다. 또 1300년 경 만들어진 세계지도 마파문디도 남아있다. 할딩햄의 리처드라고 불리는 무명의 성직자가 송아지 가죽에 세계 지도를 새겼다. 우리가 지금 보는 세계지도와는 많이 다른, 그래서 중세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p357 당시 서적상이 그렇듯 래킹턴 역시 출판을 겸했다. 1818년 래킹턴은 무명 작가 메리 셀리의 소설을 500부 정도 출판했다. 그 소설이 프랑켄슈타인이다. 뮤즈의 신전은 19세기 영국 출판업과 서적 유통업이 정점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p363 1812년 존 머레이 2세는 바이런의 장편 시집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를 출간해 자신의 책방에 진열했는데, 단 5일만에 매진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바이런의 말이 여기서 나왔다. 바이런은 뭇 여성에게 환호를 받았던 문학계 최초의 아이돌이자 우상이었다.

p381 구텐베르크는 인쇄술을 발명했지만 가난헤 허덕였다. 푸스트와 쇠퍼는 발명가는 아니지만 수완이 좋았고, 결정적으로 인쇄술 발명으로 생긴 사업 이익을 충분히 얻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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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 천 년간 풀지 못한 한국어의 수수께끼
향문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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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문천의 한국어비사

 : 향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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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4/09/23 -2024/09/27


매우매우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사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분야다.

한국어의 어원을 찾아본다라는 주제..

내용이 쉽지는 않다. 일단 매우 낯설다. 

우리나라 언어와 일본, 거란, 중국, 여진의 언어를 비교하다니... 

더구나 현대어도 아닌 고대 한국어를 찾기위해서... 

단순히 발음이 비슷하니 이 단어가 이 단어에 영향을 받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음운의 규칙성과 문화교류에 따른 음원 변화를 고려하여 찾아가는 길이라 더더욱 어려웠다. 

더구나 거란어까지 한국어의 영향을 주었다는게 신기할 따름..

사실 옆에 있는 나라들인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더 이상할 수 있겠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역이다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역사란 정말 다양한 흥미를 끄는 분야다. 


p32 고려는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기 때문에, 고려 시대에 확립된 한국어의 뿌리는 어쩌면 고구려어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43 한국어 계통론에 대한 국어학계의 전통적인 통설은 고구려어, 백제 귀족어를 부여계 언어로, 신라어, 백제 대중어를 한계 언어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p54 백제가 고대 일본에 미친 문화적 영향을 잘 알려진 그대로이며, 고대 일본어가 백제어로부터 많은 어휘를 차용한 것 또한 맞습니다. 하지만 차용어는 계통적 동원어가 될 수 없습니다. 동원어는 친족 언어들 사이에서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들의 집합입니다. 하지만 차용어는 원래는 없던 단어를 어느 시점에 다른 언어에서 받아들이면서 발생합니다.

p75 고대 일보넝의 위와 거란어의 우이는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언어와 천연 관계에 있는 다른 언어에서는 이 단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곧 위와 우이가 고유어가 아니라 차용어임을 시사하며, 실제로 고대 일본어와 거란어의 사용 지역은 모두 한반도와 가까워 고대 한국어와 언어 접촉이 일어나기 쉬운 지역이었습니다.

p85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던 거란인의 언어는 고대 한국어와 오랜 기간 접촉했지만, 한국어족에서 유래한 불교 관련 단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거란인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을 경유해 불교 문화를 수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p89 한국어족 집단은 역사적으로 숙신, 읍루, 물길, 말갈, 여진, 만주로 이어지는 한반도 인근의 퉁구스어족 세력 및 선비, 거란, 몽골 등의 선비, 몽골어족 세력과 오랜 세월 상호 언어적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p120 한국어족은 일본어족으로부터 자연과 농경에 관한 어휘를 차용했습니다. 반면 일본어족은 한국어족으로부터 기술과 문명에 관한 어휘를 차용했습니다. 이처럼 언어 접촉에 의한 영향은 쌍방향으로 발생합니다.

p143 조선의 대외전략은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 나라와 화친하는 사대교린이었기에, 외국어 교육은 중대한 국책 사업이었습니다.

p148 노걸대는 몽골어, 만주어, 그리고 현전하지는 않지만 일본어로도 번역해, 흡사 전근대 동양의 로제타석이라고 불러도무방할 정도로 학술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p169 이사금은 자비로운 지배자라는 뜻이었지만, 앞서 설명한 [네세] > [노세] “자비롭다”의 음운 변화에 따라 이러한 어원 의식이 상실되었고, 대신에 발음이 같은 “이의 금”을 통해 ‘이사금’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한편 일부 학자는 이사금을 현대 한국어의 임금과 관련 짓곤 하는데 ㅅ이 ㅁ으로 변화할 개연성이나 동기가 전혀 없으므로 둘은 별개의 단어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p175 이란국립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역사학자 다르유시 아크바르지데가 페르시아의 대서사시에서 극적으로 발견한 신라, 페르시아 해상 교류의 증거는 한국을 떠들석하게 했습니다. 설화상의 인물인 아비틴 왕자가 중국을 거쳐 신라로 망명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웅 서사시 쿠시나메에는 베실라라는 섬나라가 등장하는데, 베실라 왕 태후르, 왕자 카람, 공주 프라랑이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p266 중국에는 소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ㅇㅇ리하게 음역된 기업명이 정말로 많습니다. 가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스웨덴 기업 이케아는 “가정이 화목하다”는 뜻의 이자로, 프랑스의 소매 기업 까르푸는 “집이 즐겁고 복스럽다”는 뜻의 자러푸로, 대한민국의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은 “처음 마시는 첫 즐거움”이라는 뜻의 “추인추러”로 음역되었습니다.

p278 중화요리 이름에서 보이는 현대 중국어의 ao와 ai가 한국어의 ㅗ와 ㅐ에 대응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중국을 통해 한반도 북부를 거쳐 들어온 성경 속 고유명서 파라오와 시나이산이 한국어 성경에서 바로와 시내산으로 옮겨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p293 우리가 문학 작품에서 접하는 관용구,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날마다 접하는 굳은 표현들 가운데 어느 것이 한국어 고유의 것이고 어느 것이 일본어의 표현을 빌려온 것인지 가려내기란 문자언어로 된 정보가 모든 방면에서 흘러넘치는 이 시대의 일반 언중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p302 이것 말고도 일본어의 영향을 받기 전의 전통 한자어 혹은 한국어 고유의 신어가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어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된 것은 단순히 아쉽다는 감상으로 끝날 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한국어가 품고 있는 옛 전통과의 단절을 통렬히 실감하게 해주는 역사언어학적 증거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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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블루다 - 느릿느릿, 걸음마다 블루가 일렁일렁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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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은 블루다

 : 조용준

 : 도도

읽은기간 : 2024/09/16 -2024/09/22


포르투갈에 여행을 가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보니 언제 다 읽나 이런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다.

유명한 포르투와 리스본뿐만 아니라 여행책에는 나오지도 않는 작은 지역까지 알려주고 있어서 포르투갈을 자세히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한때는 강대국이었으나 이제는 옛날의 영광의 흔적만 가지고 있는 나라를 아줄레주로 엮어내는 글솜씨가 빼어나다. 

생각지도 못한 동네를 가보고 싶어지고, 거닐고 싶어진다. 

포르투갈의 에스프레소를 마셔보고 싶고,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포르투갈 맥주를 마시고, 포투와인은 들고 석양을 즐기고 싶다. 

여행책이란 자고로 이래야지.. 


p28 유럽 열강들은 세우타를 정복하기 위해 경쟁했지만 포르투갈 아비스 왕종의 넷째왕자 엔히크가 선수를 쳤다. 싸움은 아침에 시작해 환홍 무렵에 싱겁게 끝났다. 포르투갈이 무려 238척의 배에 4만 5,000여 병력을 실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세계사의 흐름을 갈랐다. 바로 이때부터 유럽이 주도하는 대항해시대와 지리상의 발견, 식민지 건설 경쟁이 봇물처럼 터졌다.

p42 이렇게 알코올 도수는 올라갔지만 발효를 도중에 막았기 때문에 포도즙 본래의 과일향이 나는 단맛이 느껴진다. 주로 적포도주가 많고 단맛 때문에 디저트 와인으로 애용된다. 반면 스페인 셰리 와인은 발효를 끝내고 브랜디를 첨가하기 때문에 굉장히 드라이하다. 주로 화이트 와인이고 아페테리프로 애용한다.

p50 도루 관광의 중심지답게 피냥 역은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포르투갈은 거의 모든 역들이 아름다운 아줄레주로 장식하고 있지만 포르투의 상 벤투 역을 제외하면 아마도 피냥역이 포르투갈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p70 포르투는 포르투갈에서 제일가는 아줄레주 야외 전시장이다. 리스본의 명품 아줄레주가 잘 드러나지 않은 실내에 숨어 있는 반면, 포르투의 걸작들은 야외에 위풍당당한 풍채를 드러내놓고 있다.

p87이제 히베이라 지역의 대성당으로 가보자. 정식 명칭은 성 클라라 성당이지만, 포르투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서 그냥 대성당으로 불린다. 1387년 주앙 1세가 영국의 공주 랭커스터의 필리파와 결혼하고, 그들의 아들인 항해왕 엔히크 왕자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다

p163 리스본 파두가 서민들의 애환과 눈물, 이별의 슬픔 등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다면, 코임브라 것은 대학 도시의 노래답게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시적이거나 낭만적인 주류를 형성한다.

p176 당시는 포르투갈이 식민지 확대로 부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 덕에 도서관에는 탐험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에서 대량으로 가져온 금이 아낌없이 쓰였다. 아울러 귀중한 자단과 흑단 나무의 섬세한 목공 조각이 곁들어지고 중국풍의 금세공에다 화려한 프레스코 천장화가 입혀졌다. 금과 대리석, 정교한 프레스코 천장화로 휘황찬란하게 꾸민 도서관의 화려함에는 그 누구라도 압도되고 만다.

p218 미학적 완결성과 자연스런 형태를 비교하자면 주제파의 것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주제파의 이 그림이야말로 가슴을 드러내놓은 마돈나, 성모 마리아의 가장 완벽한 구현이다. 오비두스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도 주제파의 그림을 당연히 볼 수 있다. 성당 제단화가 바로 그녀가 그린 그림들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열 살의 왕 아폰수 5세가 여덟 살의 사촌 이사벨과 1444년 결혼식을 올린 유서 깊은 곳이다.

p226 이처럼 유럽 기독교 문명의 상징은 조각상에서부터 술집 간판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매우 광범위하게 일치해서 나타난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이다.

p238 켈트족 언어로 달을 뜻하는 신트라는 켈트족들이 달의 여신을 숭배하는 성지였고,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의 정착지였다. 또한 중세에는 수도사들의 은둔처였으며, 19세기에는 유럽 낭만주의 건축의 실험장소였다.

p243 물의 소중함을 알기에 요란하고 장중한 폭포보다는 소박하고 잔잔한, 고요한 연못을 좋아했다. 분수도 높이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물줄기가 졸졸졸 흘러내리는, 그야말로 아기자기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폰치 무리스카 황동 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너무 맑고 시원하다. 정말 약수 같다. 주변의 파란 계열 타일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p248 포르투갈로 돌아온 그는 신트라 왕궁을 스페인 아줄레주로 장식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레콩키스타 이후 포르투갈의 첫 아줄레주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수입한 타일로 장식됐다. 어떤 백과사전에서 신트라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타일이라고 잘못 기술해놓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못 알고 있다.

p259 이 장식은 하늘의 별을 형상화한 문양으로 이슬람 장식 가운데 가장 미학적 완성도가 높아서 이슬람 왕궁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요소다. 그런데 그것이 이토록 버젓이 카톨릭 군주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예배실의 제단 뒤 천장 장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니.

p269 페나 궁전은 양파 모양의 돔, 무어식 문, 돌로 만든 뱀, 분홍색과 레몬색의 탑 등 뭔가 전체적으로 잘 조화되지 않아서 기묘하다. 여기저기 독특한 부분만 끌어다 쓰다 보니 라스베가스나 디즈니랜드처럼 놀이공원에 온 것 같고 전체적으로 일관된 특징이 없고 매우 어수선하다. 전체적인 외관도 어떻게 보면 예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유치한 레고 조립물 같아 보인다.

p279 호카 곶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십자가 탑의 글귀다. 바로 카몽이스의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에서 표현한 ‘여기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구절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p335 대학은 폐쇄 당시로부터 214년이나 지난 1973년 다시 문을 열었지만, 오늘날 에보라의 인구는 중세 때보다도 더 적다.

p339 이 성당에는 안토니우 아센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신부의 다음과 같은 시문도 내려온다. 여행자여,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가. 멈추어라. 더 나아가지 말아라. 지금 네 시선에 보이는 이것보다 네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없다.

p344 프란시스코라는 이름이 주는 청빈함과는 정반대로 이 성당은 한창 잘나가던 시절 포르투갈 해외 팽창의 기념비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당에는 주앙 2세와 마누엘 1세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벽의 장식도 대항해시대를 찬양하는 항패 관련 모티프들로 채워져서 번영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p365 베자 수녀원의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이 독자적으로 장식 타일을 생산하기 이전의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더 있다. 이 타일은 리스본 인근 신트라 궁전의 것과 함께 포르투갈에 남아 있는 15세기 마니세스타일로, 정작 스페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포르투갈이 수입산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만든 타일로 아줄레주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503년께 한 기념비가 시초라고 한다.

p378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는 1242년 알가르브의 타비라 전투로 마지막 남은 무어인들이 축출되면서 종료되었다. 타비라는 모로코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무어인들의 포르투갈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무어인들이 쫓겨나자 이번에는 북아프리카로 향하는 원정대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대항해시대에 이 도시는 탐험대의 식료품을 보급하는 병참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p382 엔히크와 포르투갈의 도전이 현실적으로 매우 수익성 높은 무슬림 노예무역에서 확고한 기반을 챙기고, 서아프리카의 금과 상아를 독점하는 무슬림 사하라 카라반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엔히크 원정대의 성적이 이교도와의 전쟁으로 확고하게 규정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엔히크 왕자가 출범시킨 모든 포르투갈 범선의 돛에는 항상 십자가가 크게 그려져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p395 엔히크는 청교도적 삶을 산 인물은 아니었다. 사생아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열정이 있었다. 권력에의 유혹을 뿌리치고 오로지 부국에의 열망과 종교적 신념에 의한 자신의 목표가 분명히 있었다.

p415 실브스는 정말 예쁜 곳이다. 왜 아일랜드 사람인 캐서린과 영국 사람이 로제가 이곳에 왔는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날씨 화창하고 살기 좋은 곳이면 이렇듯 기후 조건이 열악한 섬나라 출신 사람들이 모여든다. 프랑스 코트다쥐로 해안의 니스나 칸도 이렇게 영국 사람들의 휴양지로 시작해 지금처럼 커진 도시다.

p434 그 구슬픈 기타하 선율과 목소리를 듣다 보면 포르투갈은 왜 슬플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리스본에 와보면 그 모든게 다 저절로 이해된다. 한때는 영롱한 빛깔로 반짝반짝 빛났을 다채롭고 때깔 좋은 아줄레주로 장식한 거리와 성당과 집들. 그러나 지금은 때가 끼고 금이 가고 이빨이 빠져서 광택을 잃은 처연한 모습으로 벽을 덮고 있을 뿐이다.

p443 알파마를 얘기하면서 처음으로 손꼽아야 하는 것은 단연 파두다. 알파마야말로 파두의 자궁, 탄생지다. 파두의 출생지라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알파마, 리카르도 히베이루의 파마 드 알파마 등 이곳에 바쳐진 곡들이 많다. 파두는 알파마의 거리, 술집과 사창가에서 처음으로 불려졌다.

p477 정작 스페인에서는 스위스의 미늘창병이 이처럼 예술작품의 대상으로 묘사돼 있는 것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들을 고용했던 스페인이 아니라 싸움을 벌였던 포르투갈에서 오히려 아름다운 아줄레주로 만났다.

p485 이렇게 공을 들인 성당이니만큼 중세 포르투갈의 역사에 있어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여러모로 성당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포르투에 대성당이 있다면, 리스본에는 상 비센트가 있다. 12세기에 상 빈센트의 주검이 알가르브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브라간사 가문의 가족 묘지가 모셔진 신전도 있다

p494 포르투갈도 마찬가지로 어디를 가든지 파케에 서서 비카 한 잔 홀짝 마시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그 비카가 시작된 곳, 고향이 바로 카페 브라질레이라다. 그러니 리스본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브라질레이라에서 비카 한 잔쯤은 마셔봐야 한다.

p499 트린다드 맥줏집은 말이 맥줏집이지, 고품격의 레스토랑이면서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첫 번째 맥주 양조장이다. 일단 이 맥줏집의 위치나 건물이 갖고있는 역사부터 장난이 아니다. 1294년에 세 명의 수도승이 세운 산티시마 트린다드 수도원이 대지진 이후 한동안 버려졌다가 1836년 맥주 양조장으로 변했고, 최종적으로 레스토랑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p506 이 혼혈 효모는 와인 저장고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여 새롭고 감칠맛을 가진, 차고 신선한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상면발효 방식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맥주라고 하면 그 유명한 옥토버페스트와 함께 가장 먼저 이름이 떠오르는 도시인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이야말로 하면발효 방식의 출발지가 되었다

p509 그 옛날에 수백 명의 장인들을 동원해 예배당을 조각조각 만들어 이를 무려 3척의 배에 실어 나른 다음 다시 맞추었으니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예배당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짜맞춘 탓에 성당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면 비례와 구도가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p517 오늘날 설탕과 담배의 글로벌화 역시 출발점이 포르투갈이다. 지금은 두 물품 모두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탄을 받지만, 한때 설탕과 담배가 낭만주의의 발흥에 얼마나 이바지를 했던가. 설탕은 연인과의 달콤한 사랑에, 담배는 지식인의 사색과 낭만적 고뇌에 빠져서는 안 되는 기호 품목이었다

p518 사회적 자본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조했어야 할 재화들이 온통 수도원과 성당 건립, 내부의 치장에 들어가고, 그것마저도 온통 수입품으로 대체했으니 국내 문화에술의 발전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전 분야에서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p524 시아두 옆 동네 바이후 알투는 저녁 때 가야한다. 바이후 알투는 밤에 빛나는 밤의 거리다. 좁을 골목마다 바와 비스트로가 즐비하고 흥겨운 파티가 끊이지 않는다

p528 운 좋으면 이곳에서도 제대로 된 파두를 들을 수 있지만, 격이 떨어지는 파투 공연을 볼 확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파투 공연장을 찾기 전에 적당한 알코올 섭취를 권장한다. 취기가 좀 오르면 감정에 취해 싸구려 파두도 싸구려로 들리지 않을 테니까

p538 정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아주 안락한 소파를 갖다 놓은 사실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이 평소 사는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그곳에서 차한잔 마시며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졸고 싶었다. 이곳의 이름을 포른테이라 궁전이다. 이 궁전, 엄격하게 얘기해서 사냥을 위한 별장은 17세기 리스본 근교에 지은 궁전 가운데 당시의 모습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p549 그렇게 10여 년 동안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본 경험으로 볼 때, 포르투갈을 다섯 가지 오브제로 정리된다. 파두, 정어리, 포트와인, 블루 아줄레주 그리고 아프리카다. 이 다섯 오브제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 다섯 가지를 알면 포르투갈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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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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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박태균

 : 창비

읽은기간 : 2024/09/08 -2024/09/13


제목을 보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한국사에서 이슈라는 말이 붙으면 보통 2군데다. 하나는 한국 고대사, 다른 하나는 일제 강점기.

그런데 이 책은 과감하게 현대의 이슈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흥미가 있었다. 

그런데 현대사는 함부로 이슈라는 말을 부치면 안될 것 같다. 특히, 첨예하게 대립되는 내용이라면...

나처럼 뭔가 새로운 발견이나 새로운 학문적 업적이 나온줄 알았는데 이슈와 대립을 설명하는 수준.. 

다른 책과 다른 것은 이슈의 원전을 실었다는 것. 예를 들어 독도에 대한 내용이라면 독도에 대한 이슈가 발생한 조약과 협의문이 번역되어 실려 있어서 원전을 읽고 더 궁금하면 책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사료도 적고, 판단할 만한 내용도 적다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립된 양측에게 모두 공격을 받을 테니까...

대립을 해소하고 더 나은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좀 더 선명하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더 선명한 결론이 있는 책을 원한다. 


p17 일본이 장악한 섬들은 대부분 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들이었죠. 이것 외에 또 하나의 핵심적인 요구는 바로 한국과 타이완의 해방 문제입니다. 특히 한국의 해방을 언급한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죠.

p27 원래는 일본을 무력화시켜서 더이상 말썽을 피우지 못하게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중국이 공산화되자 일본을 다시 한번 부활시켜서 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한 미국의 파트너로 삼기로 했던 것입니다.

p104 영어로 개척을 의미하는 익스플로이테이션을 사전에 찾아보면 두 가지 상반된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이용한다 즉 수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p165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이 불안정한 상황인데도 유엔이 새로운 협정이나 체제를 고민하는 과정에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정전체제의 가장 큰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94 우리는 베트남에서 철수한다. 우리에게 베트남은 중요하지만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 사람들이 해결하라라고 발을 빼는 거죠. 이것이 바로 1969년의 닉슨독트린입니다.

p208 우리는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취해왔기 때문에 해외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아무리 잘사는 나라라도 무역의존도는 대부분 20퍼센트 이하이고 내수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우리의 경우는 무역의존도가 60퍼센트 이상입니다. 즉 우리 경제는 해외 경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많이 흔들리게 됩니다.

p213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서 미국과 우리나라가 환율 문제에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장면 정부에서 환율이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때 다시 한번 환율 문제가 정상화되는 거죠.

p221 초기인 1963년에서 1964년으로 넘어갈 때 경제개발계획이 한 번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수출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바뀐 거죠. 이전의 경제개발계획과 다른 성격의 경제개발계획이 나온 거에요. 그래서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중심의 경제개발계획이 실행됩니다.

p227 8.3 조치는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는 시장논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시장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시장논리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점입니다. 1969년과 1970년의 청와대 보고서만 보더라도 시장논리가 살아 있었지만 8.3조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기업가 윤리를 명확하게 세워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p233 이런 한계 상황들이 70년대 말에 왔습니다. 미국의 정책이 바뀌고 세계경제가 바뀌고, 또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그 구조가 복잡해지니까 박정희식 모델로 가는 것이 어려워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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