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 처음 만나는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
서희석.호세 안토니오 팔마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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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저자 : 서희석
옮긴이 : 
출판사 : 을유문화사
읽은날 : 2017/01/15 - 2017/01/27

 

역사만큼 재미있는 과목이 있을까?

수천년전 살았던 조상들의 이야기, 유물, 유적들을 보고 읽으면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해보고 또 지금 나의 생활도 돌아볼 수 있는 과목이 역사다.

그리고 역사는 사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면 그 역사는 반복된다고.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다.

이 책은 스페인의 역사책이다. 정확히는 가벼운 스페인 통사다.

유럽 대륙의 서쪽에 자리잡은 거대한 나라 스페인.

한때 전세계를 호령하며 첫번째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던 곳.

지금 나에겐 집시, 남유럽 경제위기, 와인등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스페인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이 책은 스페인의 처음 시작인 타르테소스 왕국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페인의 거대제국의 몰락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까지가 시대별로 기록되어 있다.

땅이 커서 그런가, 정말 다양한 민족들이 들어와서 살며 전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종교로 인한 싸움도 무척 많았다. 기독교의 이단으로 알려진 아리우스파, 로마 카톨릭, 이슬람 세력은 전쟁을 하기도 하고, 화해를 해서 공존하기도 하고, 서로 씨를 말려버리는 학살도 있곤 했다.

스페인의 몰락도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종교개혁으로 나타난 개신교를 탄압하느라 네델란드와 오랜 전쟁을 치르는 스페인.

대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용과 타협이 중요한데 강력한 종교탄압은 국민들의 민심이반을 일으켰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역사는 상당히 재미있는데 책은 상대적으로 재미는 덜한 편이다. 가계도가 복잡한데 그림도 없고, 이곳저곳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쓰다보니 상당히 헷갈린다.

스페인처럼 복잡한 왕가는 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는 것이 필수다.

유럽, 참 재미있는 곳이다. 사는 사람은 참 고단했겠지만 말이다.

 

작가 : 서희석 

읽은날 : 2017/01/15 - 2017/01/27 

분류 : 일반 

 

P19 카람블로의 보물이 중요한 이유는 전설로만 있던 타르테소스 왕국의 존재를 증명해 준 최초의 유물이었기 때문이다 

P29 로마신화와 그리스신화의 관계처럼 페티키아 신화는 그리스 신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 신화를 만든 사람들은 페니키아의 신격화된 멜카르트를 참고하여 헤라클레스를 만들어냈다. 즉, 멜카르트가 헤라클레스다 

P36 아틀란티스가 지진과 해일로 순식간에 가라앉은 것처럼 타르테소스 왕국은 알수 없는 이유로 기원전 500년경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도에서 사라졌다 

P46 기원전 500년경 타르테소스 왕국이 사라진 뒤 페니키아인의 후예인 카르타고인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왔다 

P55 갈바는 루시타니아인들에게 만약 로마와 싸우지 안흔다면 그들에게 땅과 양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때가 기원전 150년이었다. 3만명의 루시타니아인들이 갈바와 협정을 맺고자 무장을 하지않고 갈바가 약속을 지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어기고 루시타니아인들을 공격했다 

P57 "로마는 반역자에게 보상을 주지 않는다"라는 말보다 "로마는 약한자에게 보상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P59 프랑스 지역은 점령하는데 기원전 58년에서 기원전 51년에 걸쳐 7년이 걸렸다. 반면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는데는 200년의 시간이 걸렸다 

P63 세비야에 있는 헤레스의 문에는 "헤라클레스는 나를 세웠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성벽과 높은 탐으로 둘러쌌다'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P75 정말로 후스타와 루피나가 히랄다 탑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89 서고트족에게는 그들의 문자가 있었다. 그들은 로마 치하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라틴어와 서고트족 언어 두 가지를 모두 쓸 줄 알았다. 그래서 현재 스페인어에는 서고트어의 흔적이 남아있다 

P100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된다는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천만한 일이었다 

P118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이슬람의 거대한 식민지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면서 유지될 수 있었다 

p123 수니파는 마호메트와 혈연관계가 있지 않다 하더라도 칼리프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시아파는 칼리프가 마호메트의 혈통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p131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플라멩고는 아랍계열 이주자들의 음악과 기존에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던 전통음악이 어울려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의 형태이다 

p176 그는 주군이 카톨릭교도이든 무슬림이든 가리지 않고 그를 섬기는동안 충성을 다했다. 엘시드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딱 그가 보상받을 수 있을만큼 성실하게 봉사했다 

p183 히랄다탑의 기초는 알모아데족이 로마 건축물의 돌을 다 빼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로마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히랄다 탑을 해체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p195 왕조가 바뀌면 예전의 건물을 바꾸고 새롭게 건물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p212 혼자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을 염탐할만큼 용감한 왕이 얌전히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사실 숭고하기보다도 다소 측은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p215 페르난도 3세는 세비야의 영웅이다. 세비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누에바 광장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는 말을 탄 페르난도 3세의 동상이 서 있다 

P221 이 뜻은 스페인어로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이다. 박식했던 알폰소 10세는 죽기전까지 재치를 발휘하여 그에게 충성을 다한 세비야에 멋진 심볼을 선물한 것이다 

p275 소설 카르멘에서 보면 카르멘이 마리아 데 파디야의 가호를 비는 주문을 외우는 장면이 나오고, 마리아 데 파디야가 보헤미안의 위대한 여왕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p280 페드로왕은 마리아 데 파디야가 죽은 뒤 예전 결혼을 모두 취소하고 그녀 혼자 정식 부인인 것으로 호적을 갈아엎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정부였다 

p288 1391년의 유대인 학살이 비합법적이었다면 종교재판은 교회에 의한 합법적인 탄압이라 부를만 했다 

p291 그 유언대로 그녀의 목은 해골로 변할때까지 집 앞에 백 년 넘게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집이 있던 길은 해골 덕분에 '죽음의 길'이라고 불리다가 '수손나의 길' 바뀌었다. 산타쿠르스 유대인 지구에 있는 그 길에 가면 지금은 해골이 걸려있던 자리에 해골대신 해골 모양의 타일이 장식되어 있다 

p318 비인권적인 종교재판을 국가에서 용인했던 까닭중 하나는 종교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 재산이 국가에 압류되었기 때문이다 

p330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히 모험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는 그를 믿고 따라온 선원들과 그의 항해를 지원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황금이었다 

p332 그는 스페인에 대한 불만으로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내 시신은 신대륙에 묻어라. 내가 다시는 이곳 스페인의 땅을 밟지 않게 하라" 

P364 세르반테스는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했다 

P374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는 카를로스 1세는 종교보다 제국의 통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유연함, 관용은 넓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이었다. 나라가 넓으면 자연히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이 함께 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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