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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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화로 읽는 영국역사

 : 나가노 교코

 : 한경arte

읽은기간 : 2023/08/24 -2023/08/28


일본 작가들의 책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데 이 시리즈는 의외로 잘 읽힌다. 

명화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알아간다는 재미있는 컨셉..

아무래도 명화의 상당수가 왕, 귀족 등 권력자들이다 보니 역사를 풀어나가기에 미술만큼 좋은 도구가 없는 것 같다. 

단순히 글만 읽었을 때에는 이해가지 않던 영국의 왕실이 그림과 함께 보니 좀 더 이해가 쉬웠다.

특히 메리여왕, 블러드 메리가 다른 사람인 걸 최근에 알다 보니 이 책에서 좀 더 관심이 있었다.

메리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관계도 재미있었다.

헨델과 연관이 있었던 하노버 왕조는 대부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런 걸 보면 프랑스왕조가 내겐 더 친숙한 것 같다..

이 시리즈는 계속 읽어갈 생각이다. 재미있다. 


p23 이 책에서는 영국 왕실의 세 왕조, 즉 잉글랜드 혈통의 튜더가, 스코틀랜드 혈통의 스튜어트가, 독일 혈통의 하노버가와 하노버에서 이름을 바꾼 왕가의 이야기를, 각각의 명화 속에 감추어진 역사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 보려고 한다.

p35 육체적으로도 생리적으로도 너무 무시무시해서 오히려 강렬한 매력과 흡인력을 가진다.(튜더 시대는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8세, 앤 불린, 제인 그레이, 엘리자베스 1세 같은 네 명이나 되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다)

p37 누가 뭐라든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앤 불린의 비극일 것이다. 그녀가 헤치고 지나간 짧은 인생은, 마치 영국의 종교를 마꾸고, 이 세상에 엘리자베스 1세라는 걸출한 인물을 내놓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더구나 그녀가 죽임을 당한 이유는 엘리자베스를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p45 제인이 런던탐 안 타워그린(앤 불린과 같은 처형 장소)에서 참수당하기 직전의 모습을 들라로슈가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았다. 왕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야심가에게 이용당해 열여섯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무참히 짓밟힌 생의 가련함이 보는 이의 마음에 사무친다.

p56 증오하는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는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힌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눈 딱 감고 목을 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튜더가를 단절시키는 꼴이 된다. 죽이고 싶다. 죽일 수 없다. 흔들리며 신음하던 메리는 결국 엘리자베스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그녀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p61 카톨릭 세력은 틈만 나면 나라를 전복시키려고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와 에스파냐, 바티칸과 손잡고 여왕 암살을 계획했다. 세실은 엘리자베스 앞으로 온 선물, 특히 의상 등 몸에 걸치는 물건에 독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체크하라고 메모를 남겼다.

p68 카톨릭 세력은 메리를 이용해 엘리자베스를 쫓아내고자 여러 번 음모를 꾸몄다. 엘리자베스는 신하가 메리를 처형하라고 아무리 진언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매사에 결단이 느렸다. 우유부단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속전속결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운한 시절의 경험이 가르쳐주었다. 우선은 뒤로 미룰 것. 그러면 운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p71 엘리자베스는 아무한테나 온갖 욕설을 퍼부었을 뿐 아니라 궁녀를 때리거나 꼬집고 조정 신하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으며, 침을 뱉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준 높은 학실을 겸비한 독서가였고 유머 감각도 풍부했다.

p79 그녀가 영국에 자신을 바쳤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사소한 결점은 눈감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예뻐하던 궁녀나 신하가 결혼하면 크게 화를 내거나,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며 단기간일지언정 런던탑에 감금하거나, 노년에 접어들어 자기보다 훨씬 어린 애인을 여럿 만들거나, 궁전의 거울을 전부 떼버리라고 명령하거나 한 일 등 말이다.

p110 청교도가 이 시기 의회파의 중심 세력이었기 때문에 1642년부터 왕정복고 해인 1660년까지를 청교도 혁명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시민 혁명이다

p126 이렇게 딸 메리는 메리 2세, 그녀의 남편 빌럽은 윌리엄 3세가 돼 영국 사상 최초의 공동 통치가 시작됐다. 이미 의회 주도하에 이루어진 즉위였기에 권리장전에는 둘 다 저항 없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권력이 제한되는데 심리적 저항이 없었을 리 없다) 서명했다. 국왕의 자의적 법정지를 금하고, 모든 중요 법안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며, 카톨릭은 왕위 계승권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p140 영국 국민은 새 왕 조지 1세가 어떤 인물인지 소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물을 접하고는 소문 이상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풍모와 무례한 행동거지에 놀랐다.

p142 고향이 제일이다. 그래서 일 년의 대부분을 하노버에서 지내고 영국에는 단기간만 체재했다. 내정은 신하한테 맡길 테니 적당히 상의해서 해결하라고 하는, 영국인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정치 스타일을 일관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영국 입헌군주제는 조지 1세의 무능함과 무관심 덕분에 확립했다고 여겨지는데,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p157 이러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조지 3세의 인기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높았다.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만큼 하노버보다 영국에 더 큰 애착을 느꼈던 그는 영국인의 취미인 정원 가꾸기도 매우 좋아했다. 개인 농장이 세 개나 있었고 숲과 밭을 산책하면서 서민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친근감을 담아 국민이 붙여 준 별명은 농부 조지였다.

p194 앨버트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현명한 부군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인간은 아니었다. 자신의 역할은 경제적인 면에서 왕실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간파한 앨버트는 궁정의 불필요한 씀씀이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등 뛰어난 재정 능력을 보여줬다. 도 학문과 예술 애호가 기질을 살려 세계 최초의 만국 박람회를 개최해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p211 의자의 다리라고 말하는 것조차 품위 없고 부끄러운 짓이라고 여기면서, 창녀의 수는 런던에만 8만 명, 여섯 집 중 한 집이 매춘관이었다. 부부간에도 속읏을 입은 채 잠자리를 하면서 아카데미 회화에는 올누드가 넘쳐났고, 부유층 옆에서 빈민들이 굶어 죽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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