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세계사 - 세 대륙이 만나는 바다, 그 교류와 각축의 인류사
제러미 블랙 외 지음,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엮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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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 세계사

 : 제러미 블랙

 : 책과 함께

읽은기간 : 2023/05/15 -2023/07/02


흥미로운 주제인데 읽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중간중간 다른 책도 읽다 보니 그런것 같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골랐는데 내용이 생각보다 딱딱했다.

스토리 중심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책이 씌여있으니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주제를 나눠 책을 써서 그런지 한 권의 책을 읽는게 아니라 긴 논문 여러 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특이하게 1장이 지중해의 지리와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고대, 중세를 거쳐 현대 국가들의 각축까지 다양한 내용을 커버한다.

세계사 개론만 읽다가 각론으로 들어가기에 적당한 내용과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다음번에 읽을 때는 좀 더 짧게 임팩트있게 읽어야겠다. 



p6 이집트 문명, 미노스 문명, 미케네 문명, 그리스 문명, 에트루리아 문명, 로마 문명 등이 대표적이다. 레반트 해안 쪽에서는 페니키아 상인들(그들의 문자에서 서양 언어들의 알파멧이 나왔다)이 퍼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유일신 신앙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서 나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핵심적이 요소가 됐다.

p27 일본의 항구 하카타(후쿠오카)는 한국 및 중국 무역을 활용했고, 심지어 중국 상인들의 거주를 유치하기도 했다. 이 교역로는 책과 종교사상도 실어 날라서 불교가 일본에 굳건하게 뿌리내는 기반을 제공했다. 이 일본 지중해와 원조 지중해 사이에 유사성이 많기 때문에 두 바다의 해양사의 접근법을 비교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p38 이슬람 세계는 또한 중세 동안 유럽으로 보내진 향신료 상당수의 공급지였다. 사실 이름난 향신료 가운데 지중해 지역에서 재배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p84 새로운 정치 구조는 네 개의 참조 짖점에서 관찰할 수 있고, 대략 십자가의 형태로 도식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그 네 개의 팔은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 파라오 이집트, 에게해의 미노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들을 합쳐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 제국들로 부른다.

p87 특히 미케테와 페니키아 교역망이다. 이들이 처음으로 지중해를 장악했고 이에 따라 그 문화적 외양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92 미노스 문화에서 미케네 문화로의 이행은 세심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고고학 자료는 두 문화가 줄곧 서로 적대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기전 1450년 무렵에는 미케네가 우세했다)

p104 동지중해 지역의 삶은 초기와 특히 중기 청동기시대에 고질적인 전쟁으로 인한 거의 상시적인 긴장으로 점철돼 있었다. 땅과 자원과 사람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충돌과 정복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p112 현대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것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다. 청동기 시대 사회,경제 체제(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동지중해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서로 뒤얽힌)가 붕괴하고 거의 즉각 새로운 사회 질서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국가가 뒤로 물러서고 훨씬 개방적이며 기업 논리에 의한 경제가 들어섰다.

p114 히타이트가 철기 기술을 독점했다는 생각이 불합리한 것으로 입증됐고 철제춤들이 서기전 14-13세기에 이미 동지중해 지역에서 나타났다는 사실과 별개로, 키프로스가 이 시기에 철기 생산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들과 아울러 서기전 15세기 발칸 북부 유적지에서 주철이 만들어졌다는 증거도 있다.

p120 현대의 연구는 대개 기독교 성서의 이야기를 역사라기보다는 문학으로 취급하며, 고고학 기록은 아브라함, 모세와 기타 성서 속의 주요 인물들이 다녔던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p131 서기전 제1천년기 초의 특징은 미케네 시대의 굥역 연줄이 무너진 위에 새로운 연줄의 물결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 국면의 지배세력은 에게 및 에트루리아의 티레니아인, 에우보이아의 그리스인, 붉은 페니키아인이었다.

p132 이와 대조적으로 서지중해의 중,북부는 오랫동안 에트루리아 선단이 지배하게 된다. 에트루리아의 교역이 서기전 7세기에서 서기전 4세기 사이에 리루리아에서 프로방스로 뻗어나간 것은 고고학 기록에 잘 남아있다.

p147 포도주와 함께 그 소비와 관련된 의식, 특히 심포시온, 즉 향연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민족 사회에 포도주와 그 소비와 관련된 사교 행위가 들어오자 그에 수반되는 일이 일어났다.

p155 고전기는 서기전 6세이와 비교할 때 주로 교역망의 주인이 바뀐 것이고, 수송되는 상품의 산지와 배송지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지중해 교역의 핵심에 있던 이들 상품의 운송로와 생산 방식과 교환의 진정한 변화는 서기전 4세기 후반에 일어났다.

p156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신들과 영웅들의 이름이 그리스어에서 에트루리아어를 거쳐 라틴어로 넘어가면서 변형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p263 기독교도들이 이슬람 치하의 이베리아를 정복하면서 인간 상품인 노예가 늘어났다. 레콩키스타가 한 단계씩 진전될 때마다 많은 수의 노예가 시장에 쏟아졌고, 바르셀로나와 제노바는 그 주요 매매장소였다.

p272 13세기 전반기 내내 이어진 지중해의 13세기 호시절은 인구학적 균형을 뒤흔든 진짜 재앙과 함께 끝났다. 바로 흑사병이었다. 크림반도 카파의 무역 기지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 엄청난 전염병은 지중해 전역에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p292 갤리선 전투는 무지막지하게 비싸졌다. 함대 하나가 아니라 갤리선 한 척만 전개하는 데도 군수품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이미 제한된 작전 범위가 더욱 좁아졌다. 16세기 중반이 되면 오스만은 튀니스 이서로 나가 겨울 폭풍우가 시작되기 전에 장기 포위전을 벌일 시간을 기대하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p313 메디치가는 또한 능숙하게 리보르노를 포르토 프랑코로 홍보했다. 통과무역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으며 외국 상인이 다른 어느 곳보다 세금을 덜 내고 도시에 정착할 수 있다고 말이다.

p360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북유럽 기관들이 지중해의 것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오려 했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박물관, 베를린 박물관은 계속해서 자기네의 고전기 및 르네상스 미술품 수장을 늘렸다.

p397 그리스와 터키 모두 나토 회원국이 됐고 이론상으로는 동맹이지만, 그리스인과 튀르크인의 관계는 수백 년 동안 서로를 향한 의심 위에 형성됐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토 가입과 유럽연합 가입은 에게해 양쪽의 두 나라에게 모험주의에 대한 확실한 제동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p402 1900년 이전, 하인리히 슐리만은 트로이와 미케네를 발굴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헜지만, 지중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시간을 더 끌어올렸다.

p411 영국식 또는 독일식 술집, 밤샘 나이트클럽, 게이 바 등등 외국인 방문자들의 자극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시설의 개발은 지중해 해변 주민들의 가치관을 북유럽인의 기호에 즉석에서 맞추었다기보다는 상업적 고려에서 추진한 것이었다.

p419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는 유럽에 못지않은(어느 시기에는 더 수준이 높은) 문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세 지역은 역사 속에서 활발하게 교류했다. 이 세 지역에 공평한 눈길을 주면 새로운 모습의 세계사를 볼 수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실크로드 세계사의 지중해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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