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페이지 조선사 365 - 읽다보면 역사의 흐름이 트이는 조선 왕조 이야기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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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일 1페이지 조선사

 : 유정호

 : 믹스커피

 : 2022/04/27 - 2022/05/07


하루에 한사건씩 읽어나가게 기획되는 책들이 요즘 대세인가 보다.

한국사, 세계사, 미술등등 이런 시리즈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번엔 조선사다. 

우리 시대와 가장 가까운 왕조시대다 보니 조선왕조 실록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서와 유물들이 있어서 꽤 자세하게 알고 있는 조선시대.

이 시대에서 기억할만한 내용 365개를 뽑아 만든 책이다. 

왕조시대답게 왕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먼저 왕에 대한 간단한 역사가 나오고 왕의 가계도, 그리고 그 시대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로 구성된다.

역사라는게 결국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게 되는데 대부분은 역사책이나 개론서에서 다루던 내용들이라 읽으면서 특별히 깨달은 부분은 없다.

남존여비사상이 강한 시대라서 그런지 여자들에 대한 내용도 궁중여인들 빼면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정도가 전부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 킬링타임용으로 시간남을때마다 읽어가면 좋을 것 같다.



14% 왕자의 난의 숨은 공로자였던 원경왕후는 자신의 친정을 멸문지화시킨 태종과 자주 싸웠고, 이로 인해 폐비가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16% 세종이 예문 대제학 윤형에게 서책에 대해 질문한 일이 있었다. 윤형이 여러 책을 참고해 대답을 잘하자, 세종은 윤형에게 책을 몇 번이나 보기에 이토록 잘 기억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윤형이 30번 정도 읽는다고 대답하자, 세종 자신도 평소 여러 책을 백 번 이상 읽는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30% 조선 초는 고려시대의 풍속이 남아 있어 남녀 간에 정을 통하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종 때에 이르면서 조선은 여성의 정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칠거지악을 내세워 여성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했다.

38% 10장으로 이루어진 격몽요결은 배움의 목적이 입신양명이 아닌 성인이 되는 것임을 밝히고, 학문을 익히는 데 필요한 자세와 경계해야 할 태도를 책에 담았다. 또한 학문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소학-대학-대학혹문-논어-맹자-중용-시경-예경-서경-주역-춘추순으로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39% 야사 속 이야기이긴 하나, 동궁에 불이 났을 때 문정왕후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죽으려던 인종의 모습은 그의 효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39% 인종이 죽은 7월 1일이 다가오면 미친 사람처럼 술을 마시고 울었다. 명종은 김인후를 조정에 불러내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병이 깊어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뿐이었다. 김인후는 유언으로 인종 때 받은 옥 및 현령 이후에 받은 관직은 절대로 쓰지 못하게 해, 영원히 인종의 신하로 남기를 원했다

41% 황진이는 얼녀 대부분이 사대부의 첩으로 살아가던 당시의 일반적인 행태를 거부하고 기녀가 되었다

42% 명종은 이황을 어떡하든 자신의 옆에 두고 싶어 그에게 음식을 보내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황이 뜻을 굽히지 않자, 명종은 이황이 머무는 도산의 풍경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그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황은 평생 140여 회의 벼슬을 받았고, 그중 70여 회를 사임했다

44% 이이의 학설은 주희의 성리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조선만의 성리학을 성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45% 신사임당은 강릉 오죽헌에서 아이를 낳던 날 흑룡이 집으로 날아오는 꿈을 꿨다. 꿈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신사임당은 이이의 아명을 현룡이라 짓고, 아이가 태어난 방을 몽룡실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쓴 역사서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 이이의 출생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이가 그만큼 막대한 영향을 미친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54% 산림이 붕당의 영수로 숭상받으며 많은 제자와 관리의 존경을 받는만큼, 그들의 말 한마디는 정국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산림과 의견이 다르거나 산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비난을 넘어 최악의 경우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다

62% 송시열은 주자학만을 최고의 학문으로 여겼으며, 그중에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했다. 그는 기호학파의 학풍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은 자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이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75% 수민묘전 서문에 고금의 의서 중에 우리나라의 소용에 적합한 것은 오직 허준의 동의보감뿐이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짐작해봤을 때, 정조 스스로가 굉장히 많은 의서를 공부해 의학지식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76% 오늘날 전해지는 300여 점의 김홍도 작품은 모두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78% 정조가 필통에 술을담아 마실 정도로 주당이었고 담배를 너무도 좋아하던 애연가였던 점에서 죽음의 원인을 찾고 있다. 만 24년 동안 많은 업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았음에도 정조가 조선 왕의 평균 수명인 46세보다도 오래 살았던 점을 들어 정조의 죽음은 자연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79% 교황청은 황사영 백서를 200부 인쇄해 주요 카톨릭 국가에 배포했다. 백성의 원본은 현재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82% 그는 세한도 발문에 “날이 차가워진 연휴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공자의 글을 적었다. 많은 이가 이익을 좇아 자신을 멀리하는 것과 달리 통역관 이상적만은 경세문편 등 여러 책을 구해주며 자신을 보살펴 준 데 따른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84% 실제로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전국을 돌아다니며 답사해 만든 것이 아닌 기존에 있던 지도와 지리서를 토대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검증해 만들어졌다

89% 사람이 거주하기 전의 마라도에는 우거진 숲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기 위해 숲을 태우면서 마라도는 나무가 없는 섬이 되었다. 그러나 화전인은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고자 퉁소 소리에 몰려오는 뱀을 내쫓으려 불을 피우다 숲을 태워버렸다는 전설을 만들었다

91% 이를 막을 힘이 없던 조선 내각은 1년간의 아관파천 시기에 경인선, 경의선 등 주요 이권을 열강에 넘기며 자주국으로서의 위신을 잃었다

93% 엄귀비는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붙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엄귀비는 여성도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개이 ㄴ돈으로 1906년 진명여학교와 숙명여대 전신인 명신여학교를 세웠다. 1907년에는 양정의숙(양정고)의 경영을 도와주었다. 이 외에도 종로의 걸인을 도와주고 진명부인회에 돈과 건물을 하사며 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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