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클래식
김호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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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부터 클래식

 : 김호정

 : 메이트북스

 : 2021/12/08 - 2021/12/13


내가 회사 다닐때 송무팀(지금의 법무팀)에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래 다니지 않고 퇴사를 했다. 

퇴사이유를 물으니 자기도 법대출신인데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변호사가 되어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자기는 서류 딜리버리만 하고 있는게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다.

결국 사법시험을 보겠다고 퇴사를 했다. 

이후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변호사가 된 친구도 있고, 결국 실패해서 다시 회사에 입사한 친구도 있다. 

같은 전문직의 길을 걷다가 결국 그 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턴을 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었던 에피소드다.

이 책은 음악을 전공했지만 음악계로 나가지 않고 음악전문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호정님의 에세이다. 

이분도 이런 느낌을 갖고 있을까? 책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얼핏얼핏 음악가의 길을 걷지 못한 아쉬움을 느꼈다.(본인은 아닐수도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음악 전공자라 그런지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는 귀가 잘 발달된 것 같다. 부럽다.

에세이는 잘썼다 못썼다 평가를 하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만큼 느끼고 공감하는 분야같다.

나도 연주자의 음악을 들으며 이분처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p19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확고해야 한다. 틀린 음은 있어도 괜찮다. 확신없는 음은 없어야 한다

p22 코트로 역시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로 연주회마다 화제가 되왔다. 그렇게 틀렸는데도 말이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해석, 꿈꾸는 듯한 소리 때문이다. 무엇보다 틀리면 좀 어때라는 듯 기존의 질서를 뭉개며 나가는 연주법은 해방감까지 준다.

p35 소리는 시간과 함께 날아가버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성실한 연주자라도 그 소리를 다시 잡아서 수정할 수는 없다

p48 나는 이런 때 이른 박수가 4악장 이후 침묵을 깨는 박수보다 낫다고 본다. 최소한 침묵을 방해하지는 않았으므로

p52 연주자가 악보를 놓고 연주하는 일은 '이 곡은 내 곡이 아니고 누군가 작곡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양심적 행동이었다는 뜻이다

p58 느리게 움직이는 선율이 꿋꿋하게 앞으로 헤쳐나가는 '님로드'는 추모할 때 자주 연주되는 앙코르다. 감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한참 지나고 아주 약간 마음을 추슬렀을 정도의 감정이 '님로드'에 들어 있다

p65 우리는 열심히 준비해 잘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나갈 꿈을 꾸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꿈일 뿐이다. 세상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준비되지 않은 우리를 등 떠밀듯 내보내곤 한다

p78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웃어도 된다는 걸 교육받기 전에는 모른다니, 이게 바로 비극이다

p90 대표적인 것이 불멸의 연인이다. 베토벤은 희극적일 정도로 숱하게 여성들에게 거절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의 언니에게 구애했다. 열렬히 구애하다가도 상대방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p97 내가 슈만에 반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대답이 없는 질문을 던진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음악의 아름다움 아래에 수많이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p106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보통 "베토벤의 소나타를 추앙했으나 미치지 못했다"거나 "지나치게 길고 뚜렷한 흐름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p108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특히 이렇게 말했다 "너무 길어서 잠들 지경이면 어떤가. 깨어나면 천국에 와 있을텐데" 슈베르트의 잊힌 교향곡을 발굴까지 한 슈만은 슈베르트 곡에 대해 "천상에서나 가능한 길이로 되어있다"라고 소개했다

p117 재능만 놓고 보면 멘델스존에 필적할 수 있는 인물은 모차르트 정도가 유일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슈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멘델스존은 19세기의 모차르트였으며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다. 서로 대비되는 시대를 연결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p122 아무리 봐도 에릭 사티는 19세기 말의 원조 4차원이다

p124 연주 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던지려 노력했다"라고 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연주였다. 레비트는 악보 840장을 경매에 부쳐 코로나19로 무대에 서지 못해 생계가 곤란해진 음악가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p135 기존의 음악 형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리스트의 작법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과시적인 제시, 갑작스러운 도약,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발전 그리고 지극히 서정적인 부분과 지나치게 상업적인 멜로디 말이다.

p140 유학길에 오를 때만 해도 그는 서양 음악의 선진적 기법을 한국에 이식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예악은 동양의 기법을 서양에 이식하고 또한 서양에서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동양의 철학을 소개하며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p151 나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전 인류가 위기에 있기 때문에 예술과 음악이 필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신호다. 우리가 당분간은 서로 떨어져 있으니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사이먼 래틀)

p165 살면서 한 번도 기계적인 원칙을 가진 적이 없었어요. 그때그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기 마음에 따라 길을 걸어도 세계의 음악계와 청중은 그를 원한다. 그의 건반이 서로 부딪치며 돌진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마르타 아르헤리치)

p171 보첼리 음성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자연스러움이다 힘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래한다. 과장 혹은 과도한 노력 없이 그저 자기 목소리로 노래할 뿐이다

p178 60년 동안 1년에 수십 회씩 무대에 오른 사람이, 악기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씨름했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다른 나라의 역사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아시아의 나라별로 다른 불규, 건축, 언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p181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그리고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 손열음의 연주는 언제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 모든 음이 제자리를 찾아 정확히 들어가고, 음악은 추진력 있게 앞으로 흘러나간다

p189 딱 떨어지는 박자와 정해진 기준에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쇼팽식 표현을 조성진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표현했다.

p195 무대 뒤에서 만나 "희한하게 쇼팽에서 화음이 제일 먼저 들렸어요"라고 하자 "그럼. 쇼팽은 화음이야. 멜로디가 아니고"라며 크고 두꺼운 손을 펼쳐 보였다

p204 밤의 여왕을 녹음한 음반도 냈고, 지금도 들을 수 있다. 못 들어줄 수준이고 코미디에 가깝다. 본인도 알았겠지만 끝까지 집착했다. 희한한 것은 이 소프라노의 팬이 지금도 많다는 점이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플로렌스의 이름은 '계속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는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p210 듣기에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음악을 쓴 의도와 동기가 흥미로워 음악을 듣게 된다.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에 귀와 마음이 지릿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뇌 한쪽이 뻐근해지는 경험은 할 수 있다

p215 연주 방향을 미리 구상하고, 단원들에게 그 뜻을 건네고, 음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다. 무대의 모습은 아주 작은 부분일 따름이다. 지휘자에 따라 같은 작품의 연주시간이 10분 이상 차이 나는 것만 봐도 안다

p234 노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악기는 배워야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악기 연주의 수준이 올라가면 결국 노래를 우러러본다. 노래는 이렇게 음악가들이 우러러보는 궁극의 음악이다. 사람 목소리같이 들렸다는 말은 악기 연주자들에게 최고 찬사다

p239 모차르트 음악은 단조일 필요가 없다. 장조 소나타에 수많은 부분이 단조보다도 어둡고 비극적이다. 이런 특징은 모차르트의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두드러진다

p254 부모는 파니에게는 "네 동생에게는 음악이 생업이고 너에게는 취미지 않느냐"고 했다. 피아노 연탄, 삼중주, 가곡을 숲하게 써내려갔지만 죽기 2년 전에야 처음으로 출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63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통찰은 이 마지막 작품에 와서 더욱 정확해진다. 그는 "모차르트는 어린아이에게 쉽고 연주자에게는 어렵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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