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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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장우진

 : RHK코리아

 : 2021/10/21 - 2021/10/29


무하는 이름만 들어봤지 사실 잘 모르는 화가다. 

프라하에 여행을 갔을 때도 성비타성당에서 무하의 작품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보긴 했지만 장식적이고 화려하다는 것만 알았지 그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 하거나 알고 싶은 맘이 들진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삶에 대해 파편적으로 알게 되었고, 무하라는 작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이 책은 무하에 대한 전기이자 그의 작품 모음집이다.

상당한 양의 무하의 작품들이 천연색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마치 무하의 도록을 보며 해설을 듣는듯한 느낌이다. 

보헤미안의 정서, 어려서부터 친숙하게 접했던 비잔틴 양식, 그의 창의성이 합쳐지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는 그를 세계적인 아르느보 기법의 대가로 만들었다.

뜬금없이 포스터를 그리게 되었고, 그 포스터는 사람들이 떼어갈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당시 사람들은 상업미술가로 폄하하고 그를 무시했지만 무하는 많은 화가들을 후원하고 도와주고 보헤미안을 잊지않는다.

슬라브 서사시를 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만으로도 애국심이 절로 솟아난다.

늙은 무하가 두려워 그를 고문하고 죽게 만든 나찌의 치졸함이 무하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지게 한다. 

애국자이자 많은 화가들의 헬퍼이며, 아름다운 장식예술을 펼쳤던 무하...

꼭 알아야 할 미술가를 알게 되서 참 좋다. 


p38 빈은 무하에게 중요한 두 가지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첫 번째는 극장과의 만남이다. 무하는 공방의 일로 자유롭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었고 그곳은 무하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과 자신을 단련시킬 교습소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스 마카르트와의 만남이다

p60 미망인인 샤를로트 부인이 운영하는 크레므리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크레므리는 가난한 학생과 예술가 무리의 아지트요, 어미 새의 품 같은 곳이었다

p67 동방 교회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모라비아에서 자란 무하에게 비잔틴식 의상과 무대, 음악은 매우 친숙한 것이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극에서 느낀 감동을 자연스럽게 스케치로 옮길 수 있었다

p87 이 포스터는 무하 양식의 전형이 된 몽환적 여인과 장식, 인상적인 타이포를 보여준다

p172 무하의 보석 디자인은 간소하고 기능적이기보다는 복잡하고 화려하며 이국적이다. 그것은 그가 오랜 극장 경험을 통해 시각적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디자인을 선호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212 무하의 작업식에서는 화려한 파티와 모임들이 이어졌고, 언제나 곤궁에 처한 예술가나 동포를 기꺼이 원조했기에 정작 그에게 필생의 작업을 위한 자금은 수중에 없었다

p234 1909년 크리스마스의 밤, 거룩하고 고요한 그 밤에 무하는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크레인으로부터 슬라브 서사시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받게 되었다

p240 체코 시대의 포스터는 파리 시대의 화려함은 사라졌고 단순하고 민속적인 요소들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p249 이미 고령의 나이임에도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를 제작하는 거의 20년 동안을 식사하고 잠자며, 잠깐 갖는 티타임을 뺀 아홉시간 내지 열 시간을 꼬박 작업실에서 보냈다. 슬라브 서사시는 그야말로 수도승에 가까운 그의 성실한 노동과 열의의 결과였다

p278 무하는 당시 나치가 가장 눈에 거슬려 하는 애국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앓았던 폐렴과 나치의 고문은 이미 고령의 무하에게 죽음을 불러들였다. 1939년 7월 무하는 80번째 생일을 열흘 남겨두고 79년의 생을 마감했다

p323 이국적이고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긴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풍만한 육체로 남성들의 환상을 자극할지언정 퇴폐적이거나 신경질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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