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 개정 증보판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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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작가 : 최용범

출판사 : 페이퍼로드

읽은날 : 2021/02/27 - 2021/03/13


아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은 아니다

한국사라고는 하지만 통사는 아니고 이곳저곳 스팟으로 뽑아서 쓴 책이다.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꼭지를 뽑은 것도 아니고, 이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내용을 쓴 것도 아니라서 책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사실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환단고기같은 엉터리 유사역사학을 들이밀며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알아?' 하는 부류들도 어이없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먹이며 일본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듯이 글을 써제끼는 인간들 때문에 짜증난다.

그래서인지 역사책을 읽을 때 저자가 어떤 부류인가를 확인하면서 읽게 된다. 

이 분은 최소한 알면서 거짓말을 쓸 분은 아닌 것 같다. 

여러 에피소드들의 짜깁기이긴 이 책에 더 살을 부쳐가면서 역사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 듯하다.

몇 개의 시리즈가 있는듯하니 더 읽어봐야겠다.

줄거리를 잡아가면서 역사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별로일듯한 책이다. 


2% 서희장군은 협상전에서 이긴 뒤 거란의 재침략에 대비해 병력을 증강해 조련한 뒤 쳐들어온 거란군을 귀주에서 완파했다

4% 고인돌은 바로 청동기 시대의 일반적인 무덤 형태였던 것이다

6% 기원전 195년, 연나라의 고위 관료였던 위만이 고조선으로 도망왔다

7% 고조선 정벌전에 관계됐던 고위직 사신, 장군 모두 극형에 처해진 것이다. 고조선에서 항복한 왕자와 국상 등만이 제후로 대접받았다. 사마천 사기와 반고의 한서가 전하는 전쟁 전후다. 이상한 정복전쟁이었다

11% 일본이 고대국가 체제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 불교를 처음 전해준 사람도 백제의 성왕이 보낸 노리사치계였다

16% 단재 신채호는 "연개소문은 4,000년 한국사에서 첫째로 꼽을 수 있는 영웅"이라며 그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연개소문의 쿠데타는 바로 영류왕을 비롯한 실세 귀족들의 당에 대한 굴욕적인 태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19% 발해 땅이 중국과 러시아에 있었던 관계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학자들 역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입장에 따라 발해사를 자국의 역사나 말갈의 역사, 혹은 만주의 지역사로 보고자 한다

20% 발해는 당의 견제와 입지조건의 열악함을 활발한 대외교류를 통해 극복해가면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24% 장보고는 청해진을 기반으로 중국의 칭다오, 양정우, 쑤저우 등 10여 곳 이상의 신라인촌과 네트워크를 구축, 신라를 무역강국으로 키우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30% 원본이 불타버렸다던 훈요10조는 우연히 경주 출신 최항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종에게 바쳐졌다. 현종은 신라계를 외가로 하고, 지지기반 역시 신라계열의 신하들이었던 왕이다

38% 아무 장식 없는 순청자에 돋을새김을 하는 양각청자, 반대로 꽃이나 풀을 새겨 넣는 음각청자, 유약을 바르기 전 붓에 철분 안료를 묻혀 무늬를 입히는 철화청자 등등 무늬를 새기는 데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했다

39% 마이클 H 하트에 따르면 구텐베르크는 활자, 인쇄기, 잉크, 종이 등 인쇄출판에 필수적인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연구 끝에 대량 인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의 발명은 지식의 대량 보급을 가능케 해 서양의 역사를 전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6%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이혼률을 기록해 송의 사신이 고련견문기에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져 그 예법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56% 세조의 정권욕이 부른 쿠데타는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십보후퇴를 초래한 일보전진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했다

61% 일본은 전쟁 중에 수많은 도공과 인쇄공, 학자들을 끌고 갔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에도 막부의 문화중흥시대를 열었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문화산업 발전의 계기를 만들었던 셈이다

67% 경종이 즉위하면서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 측과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 측의 당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70% 박제가는 더 나아가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비생산적인 양반들을 상업에 종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신분제의 틀을 넘어섰다

71% 반유교적인 태도로 인해 신윤복은 그 자신에 관한 행적은 물론이고 생몰연대조차도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주변부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72% 평안도 농민전쟁은 홍경래라는 몰락양반이 10년간 동조자를 규합해 자금과 조직을 꾸려서 거사를 한 유일한 혁명이었다

86%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에게서 "조선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어찌하여 위임통치 청원자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임명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말 못할 곤란에 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망언을 일삼았다

92% 미군정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지방에서 자치적인 권력체의 위상을 가지고 있던 인민위원회의 반발은 거셌다. 이군정과 인민위원회 간의 대립은 대구인민항쟁, 여순항쟁, 제주 43항쟁 등 숱한 인민항쟁을 가져왔다

94% 프랑스의 2,071건의 사형선고와 3만 9,900여건의 징역판결, 벨기에의 5만 5,000건의 징역형, 일본의 21만여 명 공직 추방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김성수나 이은상, 이갑성(일제 밀정활동) 등 적지 않은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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