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 서양 음악사의 잃어버린 순간들
유윤종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작가 :  유윤종

번역 : 

출판사 : 을유문화사

읽은날 : 2020/01/07 - 2020/02/03

분류 : 일반


클래식의 음악과 작곡가들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

느낌으로는 그동안 썼던 칼럼등을 엮은 책이 아닐까 싶다.

아는체 하기 좋은 책..


P23 1악장 전개부, 벽력이 치는 듯 질풍 같은 관현악의 총합주가 휘몰아치다 잦아든 뒤, 트롬본과 트럼펫이 독립된 선율을 약하고도 침통하게 낮은 음역에서 읊조린다. 러시아의 신심 깊은 정교회 신자들에게 너무도 친숙한, 진혼 성가의 선율(성자들과 함께 당신의 종이 영혼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그리스도여)이다. 최소한 이 부분에서는 작곡가가 악상의 전개를 죽음과 연계시키려 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P33 뉴불드는 이 부분을 슈베르트가 B단조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으로 쓰려다 로자문데에 전용한 것으로 보았고, 교향곡의 완성판 피날레에 가져왔다 

P52 레이첼 웨이드를 비롯한 음악학자들이 면밀한 검토결과 '이들 작품은 실제  작품이 아니며 카자드쉬가 이들의 이름을 빌려 발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기 대문이다 

P53 널리 알려진 음악사상의 위작은 주로 바로크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이 시대에 쏟아진 호기심에 비해 문헌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P64 요아힘의 조카 손녀들이 '유령이 알려 주었다'고 주장한 바이올린 협주곡에 작곡가 슈만 자신이 '유령이 불러 주었다'고 말한 선율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P77 말러가 이 텍스트를 선택한 의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당대의 평론가들이 음악가가 주는 감동보다는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따라 가치를 판정해 버리는 것을 비꼬며 불만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P82 지휘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바로크 시대에서 베토벤, 나아가 낭만주의 중기에 이르는 시대의 작곡가들은 오늘날처럼 현악기에 '시종일관' 비브라토를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대부분의 ㅣ휘자들이 해석했다. 이때문에 이들의 모차르트나 베토벤 연주는 현악 합주의 질감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P9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활성화된 원전 연주 운동은 1970년대 이후 바흐, 헨델, 비발디로 대표되는 바로크 음악과 모차르트로 상징되는 고전주의 음악을 중심으로 풍요한 꽃을 피워 냈고 빠르게 팬 층을 늘렸다 

P95 음악학자 차를리노는 1558년 이 수법을 설명하면서 '말에서 모음만 파내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 기법은 '모음 파내기'로 불리고 있다 

P96 크리스마스 코랄 '높은 하늘에서 나는 왔도다'에 의한 변주곡 등 여러 작품에 이 B-A-C-H의 음형이 모습을 보이지만, 이 문자열을 사용한 대표적 악곡은 바흐 만년의 대위법적 걸작 '푸가의 기법'이다 

P101 그 하나는 주제에 이어지는 15개의 각 변주가 C.A.C, H,D.S-P, Ysobel같은 약자 도는 명칭을 갖고 있어 각각 그와 친한 지인들을 묘사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작곡자 자신이 '각각의 변주 이외의 이 곡 전체를 관통하는 숨은 주제가 있다'고 밝힌 점이다 

P112 드보르자크는 기차와 증기선의 등장에 따른 운송 혁명의 혜택을 받아 전 세계를 손쉽게 주유할 수 있었던 예술가의 첫 세대였다 

P114 매일 아침 배달되는 <<뉴욕 포스트>>지에 상세한 시간표가 나와 있었다. 그는 지도를 구해 이 시간표와 매일 대조해 보고 백지에 당일의 항해 일정을 그렸다. 

P124 그의 생전에 이미 전기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고독한 성자' 베토벤의 모습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으며, 저자와 베토벤의 관계도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P129 2000년대 초 영국 음악학자 배리 쿠퍼는 "신들러가 쓴 베토벤에 대한 모든 기록은 조작됐거나 미심쩍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단지 그가 한 말을 뒷받침할 다른 근거가 있을 때만 그의 기록은 유효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P133 편지는 1812년 7월 6일과 7일에 쓰인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엄격하고 외골수인 베토벤의 상을 깨는 절절한 사랑 표현이 담겨 있다 

P139 살리에리의 전기를 쓴 모젤에 따르면 살리에리 자신이 만년에 베토벤의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세기가 (18세기에서 19세기로) 바뀔 즈음엔 사람들이 음악 취향이 나의 시대로부터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의를 기울여 얻은 단순함보다는 유별난 것, 장르 간의 벽 깨기가 우선시됐다"고 탄식했다 

P143 자리에 모인 손님들은 모차르트가 받은 대본엔 결함이 많았음을 느끼고 있었으며, 공식적으로 한편의 '승리'가 선언된 바는 없다. 모차르트가 크게 상처를 받을 일은 아니었다 

P156 말러의 삶에 대해 알마가 가한 조작은 베토벤의 비서 실들러가 행한 조작과도 비교할 만하지만, 그 영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P161 필적을 알아보기 힘들었던 알마의 일기가 1997년 마침내 책으로 공개되면서 그의 회상에 대한 불신은 훨씬 커졌다. 회상록에 쓴 얘기들이 실제로는 읽기 내용과도 상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P163 유대인 천재 예술가 두 명과 결혼했고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여인이 나치 인종주의자와 다름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P171 지금까지 쓴 각각의 교향곡마다 나는 특별한 기법을 발전시켰다. 그것(특별한 기법)은 피상적인 것이어서는 안되며, 내가 '온전히 살아온' 그런 무엇이어야 한다. 새 작품에서도 이 문제로 힘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P174 시벨리우스는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았다. 일기장에는 'S.A'라는 약자가 거의 매일 등장했다. 'Sine Alcohol',즉 술을 마시니 않은 날이라는 뜻이었다. 가끔 '위스키'라는 말이 나왔지만, 그는 폭음의 악습을 완전히 버리는 데 성공했다 

P176 자신이 세워 둔 영광에 흠집이 갈 수 있는 행위는 (신작 발표를 포함해) 할 수 없었고,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P178 교향곡 3번 이후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표현을 줄곧 간소화하고 줄여 나가는, 응축의 작업이었다. 아마도 그에게 묻는다면 "나의 마지막 30년을 대변한 교향곡은 끝없는 응축의 결과 결국 무로 돌아간 교향곡이다"라고 답하지 않을까? 

P186 한국어에서 교양이란 한 사람이 갖추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뜻하는 '상태'적인 개념이지만, 독일어의 교양은 한 사람이 자신을 쌓아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개념을 동반한다 

P190 공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땅을 일구고 행복하게 살 것을 예감하면서 기쁨에 도취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외친다 

P191 작품속에서 천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분투하는 한 길을 잃는다. 끊임없이 분투하는 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P198 긴 평온에 하나이 뚜렷한 금을 긋고, 다가올 격변을 예고한 사건이 바로 1858년 전 유럽을 흔든 시민 혁명이었다 

P215 네메트 의장의 회상에 따르면 야유회와 동독인 탈출, 국경 개방은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피셔 이반은 상징적이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P218 운명의 월요일이 돌아왔다. 10월 9일, 병원들은 다량의 혈액을 확보하고 비상 대기에 들어갔다. 눈물을 흘리며 나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부모와 포옹한 뒤 집을 나서는 학생들의 모습이 골목마다 보였다 

P223 바이에른의 수도원에서 발견된 11-13세기의 세속가요가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자연의 찬미, 술과 음식에 대한 탐닉, 거리낌 없는 성애의 묘사는 그때까지 알려진 '엄격하고 도덕적인 중세'와 거리가 있었다 

P227 나치에 대한 오르프의 진정한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대부분의 시각은 "오르프는 나치와 좌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기회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나치 당적을 갖지는 않았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나이 들어 퇴직하고 나치가 유럽을 정복하면 제국 음악의 총책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P235 "독일 방송에서 곧 모종의 발표가 있겠다며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2악장을 내보내고 있다. 이 악장은 브루크너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죽음을 추모하며 쓴 것이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경모했던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히틀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P239 브루크너는 생의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음악계의 인정을 받았던,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작곡가로 꼽힌다 

P243 이 논문에서 당대의 인기 오페라 작곡가였던 마이어베어와, 절대 음악 분야에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멘델스존의 작품을 예로 들며 바그너는 "유대인은 독일인의 깊이 있는 세계에 결코 다다를 수 없으며, 독일 음악을 본받는다고 해도 외면적인 피상성의 모방에 이를 뿐"이라 주장했다 

P256카니발은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순절 기간에 들어가기 직전 진탕 마시고 노는 축제다 

P267 흔히 오해받는 것처럼 이들이 차이콥스키나 루빈시타인 형제로 대표되는 이른바 '서구파'와 등을 돌리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차이콥스키나 루빈시타인 그룹은 이들과 늘 긴밀하게 교류했으며, 서로 작품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들을 서로 구분하며 논전을 펼친 것은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이 시대의 음악평단이었다 

P278 유전자가 생물 개체의 특징을 생식을 통해 퍼뜨리듯, 밈은 특정 문화의 표현 양식과 의미 요소를 세상에 퍼뜨린다. 그리스인이 열주를 세운 양식, 언어와 하나하나의 단어,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작돼 대중이 입에 올리는 유행어 등이 모두 '밈'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