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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망, 로마 ㅣ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19년 6월
평점 :
제목 : 나의 로망, 로마
작가 : 김상근
번역 :
출판사 : 시공사
읽은날 : 2019/08/24 - 2019/09/10
분류 : 일반
르네상스를 전공한 분답게 로마에 대해 정말 재미있게 쓰셨다.
다른 책에 비해서 쉽게 넘어간다.
로마 여행 가이드북 겸 해설서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로마 원데이 투어 하듯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그곳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알려주기 때문에 로마 여행할 때 가지고 가면 정말 좋을 듯 하다.
재미있게도 꼭 봐야할 10가지처럼 그 장소에서 꼭 봐야할 것들을 짚어준다.
바티칸 박물관처럼 볼게 너무 많은 곳에 가면 도움이 될 듯하다.
왜 이 작품이 의미가 있는지도 설명을 있어서 나중에 아는체 하기에도 좋다.
요즘 이런 여행기가 인기인가 보다.
나도 좀 써보고 싶다.
P9 위에 열거된 로마의 고전들은 약 2,000년 전부터 집필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서점에서 살 수 있고, 2,000년 동안 세계 각국의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온 책들입니다. 2,000년 동안 고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P10 흔히 르네상스를 문예부흥이라고 번역하곤 하는데, 주의해야 할 점은 고대 그리스의 부흥이 아니라 고대 로마의 부흥이었다는 것입니다
P28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책은 군주론으로 잘못 알려져 왔지만 사실이 군주론은 로마사 논고의 요약본에 불과하며, 그의 전체 사상이 담겨 있는 로마사 논고와 함께 읽지 않으면 왜곡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P28 그 천하의 리비우스가 로마 탄생의 비밀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으니, 로마는 비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도시이고 다양한 범죄자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장소였다는 것이다
P38 그는 처음으로 로망의 인구조사를 실시했고 로마 사회를 다섯 개의 계급으로 나누었으며, 로마 성벽을 쌓아 외국의 침공을 막으려 했다
P41 로마의 왕정이 무너진 것은 외국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 때문이었으며, 오만한 왕의 폭정이 그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P50 스페인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까지 이 광장에 끼어들었으니 독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P59 원론원들은 그를 고소해 세 번이나 로마 법정에 세웠다. 그것도 공금을 횡령했다는 치졸한 죄목을 뒤집어씌웠다. 전형적인 창피 주기였으니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장군을 흔들어놓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P59 다만 그가 남긴 유언은 위대한 영웅이 어떻게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정한 조국이여, 그대는 내 뼈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P63 폴리비우스는 한 나라가 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한 인물이 영웅의 면모를 보이며 특정 시대를 바꾸고, 어떤 조직이 세계인의 시선을 주목하게 만드는 혁신을 이루게 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오직 우연의 산물, 즉 행운의 여신 티케의 역할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P75 우선 입장권을 구매한 후,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 포로 로마노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조망해봄으로써 여행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만 보이기 때문에, 우선 포로 로마노라는 역사의 숲 전체를 살펴보고 방향을 가늠해보는 것이 좋다
P79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학문과 건축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당대의 건축가들과 함께 건축미의 본질에 대해서 학문적인 토론이 가능했던 인물이었다
P112 카밀루스 장군은 "나라를 구하는 것은 금이 아니라 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로물루스의 뒤를 잇는 로마의 두 번째 창건자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P134 로마 공화정 말기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철저한 유물론적 입장에 서서 이런 환원주의적 사고를 일축했으니, 로마인들이 받았을 충격은 지금 우리가 받는 것보다 절대로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P148 제국에 대한 큰 야심을 가졌던 강심장들이나 다른 나라를 침탈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카이사르를 좋아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P161 4월 21일, 정확하게 정오가 되면 거대한 돔 한가운데 있는 오쿨루스를 통해 태양빛이 사선으로 내려와 판테온의 출입구와 일치하게 된다
P183 역사가 리비우스, 문학가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 시인 호라티우스와 티불루스가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황금기를 구가한 대표적인 문학가들이다
P201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69년의 대혼란을 종식시키고 플라비아누스 가문의 통치를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P204 모든 인간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찾아 움직인다. 명분은 언제나 구실 좋은 허울일 뿐, 로마 제국의 시민들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과 손실을 먼저 따지면서 황제의 이름을 연호할지, 아니면 그에게 돌을 던질지를 결정했다
P220 이곳에 갇힌 가장 유명한 죄수는 이단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했던 조르다노 브루노다. 그는 산탄첼로 감옥에 6년간 갇혀 있다가 지동설을 포함한 이단적인 견해를 펼쳤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P226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느라고 너의 삶을 낭비하지 말라
P228 그 계획을 세운 자가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다. 네가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의 무대에 만족하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라. 너를 무대에서 떠나게 한 자는 예의 바르고 친절한 자이다
P242 로마인들은 외면적으로는 쾌락을 추구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스토아적으로 살았다.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금욕과 절제의 삶이 더 가치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P256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그가 황제로 취임한 지 10년이 되는 해인 315년에 완공되었다
P256 이 개선문 장식에 사용된 많은 부조와 조각 작품들은 다른 황제의 개선문이나 유적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독창성은 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260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은 단순히 포로 로마노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 즉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를 향해 입을 벌린 거대한 역사의 문이었다
P284 상갈로와 미켈란젤로의 차이는 건축과 조각의 차이에 있다. 건축가였던 상갈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을 하나의 거대한 건물로 생각했다면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이해했다
P294 출구 벽면에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박물관 표지가 보인다
P302 전망 좋은 이란 단어 자체가 건물의 이름이 되었으니 벨베데레라 부른다
P303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물을 지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조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P319 첫 번째 작품이 조토라는 것은 바티칸 피나코테카 소장품의 역사가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다
P326 1482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다빈치의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P333 이탈리아 최초로 북유럽에서 개발된 유화 기법을 수용하고 다양한 채색의 기술을 발전시켜온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을 혼합하는 기법을 통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P336 교황의 부름을 받고 로마에 도착한 라파엘로는 1508년부터 거장 미켈란젤로와의 피 말리는 경쟁을 시작한다. 그해부터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그리고 라파엘로는 서명의 방에서 아테네 학당을 그릭 위한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
P339 서명의 방으로 돌아온 그는 갑자기 아테네 학당의 빈 계단에 철학자 헤라클리토스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철학자의 얼굴은 영락없이 미켈란젤로의 얼굴이었고, 긴 장화를 신고 있는 모습은 프레스코 작업을 하면서 장화를 신고 일하던 미켈란젤로를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P352 율리우스 2세는 평소 습관대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미켈란젤로를 윽박질렀고, 미켈란젤로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천장화 작업을 억지로 떠맡게 된다
P361 카톨릭 교회에 대한 반감에 가득 찬 독일 용병들은 시스티나 성당을 마구간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P366 천사가 최후의 순간을 알리는 나팔을 불 때, 제일 먼저 그 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천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P377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은 순전히 시피오네 보르게세라는 한 사람의 취향만을 드러내는 사적인 소장품에서 출발한 미술관이다. 그러니까 예술을 사랑하는 개인이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장르에 상관없이 모으는 근대적인 예술 소비 형태가 처음 드러난 곳이 바로 보르게세 미술관인 것이다
P382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은 역동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작품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다
P400 하지만 왜 모든 일에 꼭 실용적 가치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P40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로 독일 문학을 단숨에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최고 공직자였던 괴테 역시 인생에는 오직 의무밖에 없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로마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