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랜프 1 - 거룩한 땅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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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나오는 SF 소설에는 저자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지만 때론 '음모론'의 하나로 풍문으로 들리는 소재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이 그것이다. 지구공동설을 다룬 일부 영상과 종교학대사전 등에 따르면 지동설이 승인된 18세기 이후에 나타난, 지구의 형태에 대한 이설이다. 지구 내부가 공동(空洞)으로, 거기에 생물의 거주도 가능하다는 설로, 대지를 핫 케이크처럼 평편하다고 생각하는 '지구평단설'과 함께 하는 기론(奇論)이다. 독자적인 과학적 논거(수평선이 반드시 호를 그리지는 않는다는 측량결과 등)를 제시하는 경우와, 고대의 공상적 우주관이나 성서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등, 주장의 동기는 다양하다.

지구공동설의 발단은 1683년에 할리혜성이라는 이름을 남긴 할리가 제창한 설에 의한다고 하며, 그는 지구 내부에 각각 화성, 금성, 수성과 같은 크기의 내구(內球)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 지구 내 세계에 생물이 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북극에 보이는 오로라는 지하광이 새어나온 것으로 추측했다. 1818년에는 미국의 군인 J.C. 신메스(1780~1829)가 남북 양극에 직경 수천 마일의 구멍이 뚫어져 있다고 주장, 그 내부에는 지하세계가 동심구상으로 존재하고, 지표의 바다는 극의 구멍에서 내부로 흘러간다고 주장했다. 이 〈심메스의 구멍〉을 확인하기 위한 탐정항해를 제안했는데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한 1870년에는 미국인 C.R. 티드(1839~1908)가 인류는 현재 이미 지곡의 뒤측에 살고 있으며, 태양이나 달은 지구공동의 내부에 떠있다는 설을 공표했다. 후에 그는 신봉자를 모아서 시카고에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설을 입증하기 위한 측량을 하였다. 이들 설은 레일리히 등이 신봉하는 샨바라 전설과 결부되어서 지저세계에 유토피아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공동 내부 생명체는 파충류라는 추정도 나왔다.

또한 지평평단설은 판다멘탈리스트 사이에 뿌리깊게 지지되며, W.G. 볼리바가 조직한 가톨릭의 공동체 〈시온의 그리스도 사도교회〉에서는 지구의 중심에 북극이 있으며, 남극은 원판형의 지구의 외주라고 믿었는데 평단설의 중요한 근거는 지각적으로 대지가 평면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캐나다에는 〈평지협회(Flat Earth Society)〉가 있는데, '인간의 지각과 일치하는 지구관'의 부활을 지향해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외계 침공설'에 가깝다. 외계 침공설이란 공식 명칭은 없지만 UFO(미확인비행물체) 발견 때부터 외계 침공설은 꾸준히 제기돼 온 음모론이다. 일부는 미·소 냉전 시대에 많이 발견돼 양측의 비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계 침공설과 상관없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설에 대해서는 현재까지의 우주과학·천체물리학에서는 이미 인정하고 있다. 이 책 『홀랜프』는 외계 생명체에 의한 지구 정복 이후의 세계를 그린 SF 소설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사이먼 케이의 첫 장편소설이자 SF 소설이다. 20대부터 여러 단편영화를 만들며, 이야기의 감각을 익혀온 그는 단편영화 〈키라잇(Keylight)〉으로 뉴욕 시네마 영화제에 초청받아 수상했고, 이는 미국 아마존을 통해 개봉, 동명의 소설책으로도 출간됐다. 

미국에서 성장한 저자는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활성화된 SF 장르 문화를 직접 느끼고 경험해왔다. 이제 그가 마음속에서 키워온 SF 스토리를 그만의 생생한 시각적 감각을 담은 소설로 완성했다. 이 책 『홀랜프』는 지구를 침공한 정체불명의 외계 생물체에 맞서 싸우는 청소년들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에 따라 『홀랜프』는 암울한 인류의 묵시록이자 그 안에서 힘겹게 희망을 싹틔우는 청소년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외계 생명체의 식민지가 된 지구에서 그들은 인류를 구원할 전사들로 성장해간다. 그리고 그 계획은 외계인 침공 후 발견된 ‘예언서’에 모두 적혀 있었다. 등장 인물 중 한 명인 최 박사는 인류를 구원할 7인의 아이들을 키워온 인물로, 사실 예언서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 지구는 외계 생명체 홀랜프에게 복종하여 새로운 육체를 얻은 자들, 인류의 마지막 존엄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자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전쟁 중 태어난 새로운 인류도 존재한다. 이제 인류의 새 역사는 묵시록과 창세기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건 생물체가 가진 불변의 법칙이야. 강한 생물이 지배하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고. 인간은 굳이 홀랜프가 아니어도 망했을 종이야. 다행히 홀랜프의 축복이 내려 우리를 이렇게 새로운 진화체로 만들어준 게 아니겠나?”

이 작품 『홀랜프』의 표제어로 쓰인 '홀랜프'는 외계 생명체다. 또 홀랜프에 맞서는 7인의 아이들은 '어빌리스'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인간의 정신적 힘과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최 박사가 설계한 뉴컨밴드를 통해 어빌리스는 물리적 힘으로 변환할 수 있다. 뉴컨밴드를 머리에 착용한 아이들은 이와 통신이 되는 멘사보드를 타고 공중을 날기도 하고, 뉴컨밴드 자체가 방패나 칼이 되어 홀팬프를 공격할 수 있다. 뉴컨밴드와 멘사보드 그리고 어빌리스로 작동되는 하이퍼 컴퓨터를 갖춘 아이들이 홀랜프에 맞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움스크린은 임부의 자궁을 본떠 만든 인공 자궁이다. 스크린의 형태이기에 태아의 성장을 그래도 볼 수 있다. 책의 '4장 4절 소속감'이란 항목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움스크린은 최 박사가 개발한 실험 프로젝트였다. 여자의 자궁을 복제해 스크린으로 옮겨 보이게 한 후, 여성이 임신했을 때 나오는 각종 성분들이 그 스크린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여자가 자신의 몸으로 임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임신할 수 있는 첨단기술이다. 여성이 임신의 위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더 많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수많은 반대 의견으로 정식 판매 허가가 나지 않았고 결국 프로젝트는 중지된 상태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p.60)

움스크린을 통해 태어난 선우희는 소설의 주인공인 선우필과 리브 사이에서 탄생한 아이다. 선우희는 인류 구원의 열쇠를 쥔 가장 중요한 인물로 성장해 간다. 

또 〈ACT 3〉 '10장 2절 능력'에서는 어빌리스와 뉴컨밴드, 멘사보드에 대한 설명도 서 집사의 입을 통해 민수에게 설명하는 장면도 나온다. “선우민 사범이 어빌리스를 발견했고 박사님은 뉴컨밴드와 멘사보드를 개발하셨지. 그리고 이 기계는 군용무기로 채택되었었다. 괴생물체들이 공격하기 전에 군에서 테스트하도록 한정적으로 만들어 보냈지만, 군에서 어빌리스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지.”

서 집사가 멘사보드를 타고 자유자재로 공중을 날아다닌다. 머리에 장착된 뉴컨밴드에서는 더 강렬한 빛이 나온다. 아이들이 멘사보드를 타고 훈련실의 공중을 날아다니는 서 집사를 신기한 듯 따라다닌다. 서 집사가 현란하게 멘사보드와 함께 공중에서 몇 번 돌더니 다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온다. 멘사보드에서 내린 그가 잠시 숨을 헐떡거리다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기를 여러 번 한다.

『홀랜프』는 1권 〈거룩한 땅의 수호자〉, 2권 〈메시아의 수호자〉 등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권 모두 「프롤로그」, 「ACT 1」, 「ACT 2」, 「ACT 3」,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1, 2권 동일한 구성이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제목 또한 같다. 프롤로의 제목은 '인간은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이고, 에필로그의 제목도 '······신은 자기 뜻대로 실행한다'로 똑같다. 물론 내용은 다르다. 1권 〈거룩한 땅의 수호자〉의 프롤로그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관찰하던 인간의 시각으로 서술되고 있다. "어둡고 광활한 우주의 시선에서 푸른 바다색, 황토색 그리고 청록색이 한데 어우러진 지구가 천천히 돌고 있다. 그 지구 앞에 제법 큰 규모의 국제우주정거장이 있다. 이 정거장은 지구를 관찰하며 돌고 있다. 지구는 다른 별에 비해 보잘것없이 작지만 저런 둥근 사람 머리 같은 곳에 저렇게 다양한 색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p.9)

저자의 서술은 지구 안의 인간이 우주 전체의 시각에서 본다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독자들에게 깨닫게 하도록 시각 조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주비행사들의 대화가 뒷받침한다. "결국 인간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살아갈 계획을 세워야 해.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뇌부터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지."

저자의 서술은 이어진다. 수많은 행성의 존재를 알게 된 인류로서는 이제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을 지배하는 생물체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그가 지금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몇 달이 지났고, 지구에서의 추억이 떠오르고, 그곳에서의 생활이 그립다. 저자는 이어 "우주정거장에 정박해 있던 우주비행선들 위로 커다란 원형 비행물제의 그림자가 덮고 있다."(p.13)로 프롤로그를 마치면서 침공체가 나타났음을 암시한다.

이후 본격 장(章)으로 지구에서의 현재를 제3자 관찰자 시점으로 지구의 상황을 조명한다. 「ACT 1」에서 '1장 1절 에덴동산', '1장 2절 신의 열매'에서는 지구에서의 평범한 생활이 펼쳐진다. 출근길 묘사 모습, 학생들의 교내 생활, 음식과 웃고 떠드는 모습 등 우리가 현재 지구에서 사는 모습이 그려진다.

『홀랜프』는 인류가 외계 생명체의 지배를 받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외계 생명체 홀랜프는 ‘파라다이스’라는 거대 도시를 살아남은 인류에게 제공한다. 여기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물자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그리고 홀랜프와 유사한 몸으로 변환한 새로운 인류인 '페카터모리'는 상위 계급으로 인정받는다. 결국 식민지에서 인간 사회의 계급은 더욱 심화된 결과를 낳는다.

이로 인해 인류를 해방할 7인의 아이들은 권력을 얻은 인간에게는 이단자가 되며, 파라다이스를 벗어나 궁핍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구원자가 될 운명이 된다. 저자는 메시아라는 존재가 이렇듯 역사에서 늘 모순적인 존재로서 비쳤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종교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책의 구성 역시 종교의 경전을 따른다. 홀랜프와 페카터모리가 최상위, 차상위 계급에 속하고 인류는 하층 계급으로 몰락한다. 원래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직 모습을 잃지 않고 있지만 인간들이 지배하던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하층 계급으로 떨어진 인간들은 옛날 자신들이 지배하던 지구에서의 삶을 마치고 타 행성을 개발해 이주하든지 아니면 지배게층에 맞서 싸워 이겨야 할 운명에 처해진 상태다. 이에 아이들로 구성된 7인의 어빌리스 활약은 청소년들이다. 청소년들로 구성한 이유는 아마도 지구의 미래는 지금의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달렸다는 복선이기도 하다. 『홀랜프』는 역사와 종교, 과학과 기술, 사회와 권력이라는 주제를 아이들의 성장기로 훌륭하게 펼쳐내고 있다.

“하늘의 도시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읽기 쉽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배포하였고 사람들은 그 책을 예언서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우리는 인류의 계획을 설명한 계획서로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지.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예언서라고 부르고 우리 나름대로 해석하기 시작했어. 박사님은 모호한 말을 자주 하셨기에 내용이 애매한 부분이 많아. 우리가 알아서 해석해야 했지. 하지만 모두가 공통으로 믿고 해석한 것이 있어. 바로 자네들과 관련된 부분이야.”(p.319)

갑자기 나타난 괴생물체들의 공격에 온 세상이 폐허가 되어간다. 인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괴생물체들에게 죽어간다. 하늘에서 비행하는 대형 괴생물체들은 인간들이 이제껏 지어온 건축물들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대형 괴생물체 위에 탑승하고 있던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중형, 인간의 반 크기인 소형 괴생물체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들을 공격한다. 중형 괴생물체들은 한 손에 총과 비슷한 무기를 들고 알 수 없는 빛을 쏴대고 돌기가 나 있는 날카로운 팔로 사람들을 베어 죽인다. 괴생물체들은 흡사 해파리와 물곰을 섞어놓은 모양이다.(p.140)


“이전 것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났다. 난 나를 속박하던 모든 것에서 이제 자유로워졌다.”

페카터모리 알파가 사람의 머리를 던진다. 죽은 사람의 머리가 사내 앞으로 굴러온다. 입을 벌린 그 표정이 슬퍼 보인다. 울었는지 하얗게 뜬 눈 밑에 눈물이 말라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죽은 표정이다. 사내가 페카터모리 알파를 바라본다.

“인간이었을 때 나의 아버지다.”(p.330~331)


저자 : 사이먼 케이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며 어릴 때부터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에서 일했다. 20대부터 여러 단편영화를 촬영하며 쌓은 경험으로 만든 단편영화 [키라잇(Keylight)]이 뉴욕 시네마 영화제에 초청받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미국 아마존을 통해 개봉되었고 동명의 소설책도 출판되었다.

미국에서 활성화된 SF 장르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자란 저자는 이제 한국에도 반드시 있어야 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야 할 한국형 SF 소설을 개척해나가고자 한다. 《홀랜프》는 저자의 첫 장편소설로 지구를 침공한 정체불명의 외계 생물체에 맞서 싸우는 청소년들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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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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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집 『가연물(可燃物)』은 수수께끼가 있고, 독자들에게 단서가 제공되며, 반복되는 검증과 뜻밖의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른바 '경찰 소설'이란 일반적인 용어 대신 ‘경찰 미스터리’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쓰였다. 탐정이 개입해 범죄를 규명하고 범인을 추적해 들어가는 추리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사건(범죄)을 추적해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범죄 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경찰이 탐정을 대신하며 독자들과 함께 사건을 추적하고 풀어간다는 점에서 탐정 소설에 가깝다. 특히 저자는 독자들에게 사건 현장을 보여주고 수집한 단서 등을 공개하면서 경찰과의 수사 경쟁을 벌이게 된다. 담백하고 명백한 단서를 기반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데서 '경찰 미스터리'라고 이름 붙인 듯하다. 독자들은 여느 추리 소설과는 다르게 주어진 단서에 따라 경찰처럼 범인을 추적하는 듯한 느낌을 소설에 몰입할 수 있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자 요네자와 호노부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동경하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아르바이트로 소설을 쓰는 일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습작을 거듭하던 저자는 2001년 『빙과』란 소설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 '영 미스터리 & 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정식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일본 역사상 최초로 일본 미스터리 4대 랭킹을 모두 석권하고, 나오키상을 비롯해 무려 9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미스터리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 소설집 『가연물』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잡지 〈올 요미모노〉에 게재된 5편의 이야기를 묶어 출간했다. 이 소설집은 〈가쓰라 경부 시리즈〉로 '가쓰라' 경부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촘촘한 수사, 경험과 통찰력 있는 추리력이 돋보인다. '경부'는 우리나라에서 '총경'에 해당하며, 경찰서장급의 간부이다. 가쓰라는 화려함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하고도 묵직한 수사경찰의 면모를 보여준다. 현실적이란 이야기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모두 가쓰라 경부가 맡은 사건으로 연작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이 소설집은 "쓰레기 방화에서부터 토막 살인 사건까지 다루면서 저자 호노부가 다채로운 트릭과 깔끔한 결말까지 완벽하게 소설 속에 장치했다"고 평가한다

저자 호노부는 "경찰소설은 주로 경찰 조직이나 경찰관 개인을 그리는 소설을 지칭하지만 『가연물』은 명탐정이 중심인 소설이다. 다만 경찰관이 탐정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찰 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경찰소설은 ‘경찰 조직, 경찰관의 묘사’가 중심이 되는데 비해, ‘경찰관이 탐정 역할을 하는 미스터리’인 이 작품을 나타내기 위해 '경찰 미스터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집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대도시와 인적이 뜸한 산악 지방이 공존하는 일본 군마현을 무대로 하고 있다. 군마현의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이야기 곳곳에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연물』은 조직을 드러내기보다 경찰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작품집이며 따라서 ‘경찰 소설’이 아니라 ‘경찰 미스터리’라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소설집에는 연쇄 방화의 동기를 파헤친 표제작 「가연물」을 비롯해, 발견되지 않는 흉기를 찾는 「낭떠러지 밑」, 공통된 목격 증언의 위화감을 파고든 「졸음」, 눈에 띄는 장소에 유기된 토막 시신에 집중하는 「목숨 빚」, 인질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진짜인가」 등이 실려 있다.

수수께끼에 담백함과 공정함을 더하는 수사 인물은 군마 현경 수사1팀을 이끌고 있는 가쓰라 경부이다. 불필요한 것은 말하지 않고, 간부들은 거리를 두며, 부하들도 결코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뛰어난 수사 능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과 관련 없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힘든 사건이 발생하면 사흘 동안 4시간 정도밖에 잠들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혹사하고, 두뇌 회전을 위해 달콤한 빵과 카페오레로 간단하게 식사한다. 용의자의 사소한 언동, 현장의 미묘한 위화감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증거와 숨겨진 동기를 기어코 발견해 낸다. 

특히 캐릭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묘사 방식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지점이라고 한다. 직업이자 삶의 일부로서 한 걸음씩 사건 해결로 나아가는 경찰상을 보여준다. 우리가 묵직한 사건들을 쫓는 일선 형사의 집요함과 우직한 수사법을 보고 감탄하듯 사명감과 직업 정신 또한 뚜렷하다. 말 그대로 형사다운 형사이다.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성으로 인해 작품은 더욱 공정해지고, 독자는 더 과감하게 가쓰라 경부와 지혜를 겨룰 기회를 제공받는다. 모두 저자 요네자와 호노부가 소설의 구성 능력과 미스터리 소설의 특수한 표현 등이 두루 갖춰졌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우리나라에 이번에 번역 출간된 이후 〈예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남겼다. 5편의 단편 모두가 ‘독자와의 경쟁’처럼 느껴져 인상적이었고, 미스터리 독자들이 정답을 맞히기에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단편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아마도 「진짜인가」의 정답률이 가장 낮을 겁니다. 다른 네 작품은 미스터리로서 명확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령 「낭떠러지 밑」은 무엇이 흉기인지 맞히는 미스터리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그 선언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인가」만큼은 대체 무엇을 묻는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증언을 종합해서 숨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 질문에 올바르게 답해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질문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미스터리는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질문의 유무마저 숨기는 것은 미스터리로 공정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어떤 점이?'라는 질문은 재미있을 것 같아 「진짜인가」에 적용해 보았습니다."고 답했다.

또 미스터리 장르는 어디까지나 독자들에게 정답을 숨기는 것이 관례이자 기법인데 나름의 노하우가 있나요?란 질문에는 "누가 뭐라 해도 ‘대담함’입니다. 단서는 숨기지 말고 제시해야 합니다. 노골적일 만큼 당당하게 단서를 표현하면서, 그래도 여전히 독자가 '그랬구나! 알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을 맛보게 하는 것이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충분히 고민을 거듭해 최고의 진상을 마련해 둬야 합니다. 수수께끼가 너무 평이한 경우 독자의 정답률을 제어하려면 단서를 몰래 숨기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란 답변으로 소설 속 주인공 인물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쓰라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인이고, 그 개성은 기발하거나 특이한 면모가 아니라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가쓰라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려로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동시에 정의를 위해 확실성을 중시하는 것도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요인이란 답변도 더하고 있다. 소설적인 효과를 노렸다기보다 현실과 접해 있는 인물상을 확립하려는 목적이 더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첫 번째 소설 「낭떠러지 밑」은 스키장 실종 사건을 그리고 있다. 정규 코스에서 벗어나 스노보드를 즐기러 간 네 명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은 수색을 시작한다. 과다 출혈로 죽은 채 발견된 시신. 범인은 함께 조난 중이었던 또 다른 남자일 수밖에 없지만, 흉기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눈이 쌓인 낭떠러지 밑에서 어떻게 흉기를 처분했을까? 

고개를 숙여 파일을 넘기며 현장 사진을 보았다. 낭떠러지 밑, 경사면에 기대어 있는 고토의 목에 난 생생한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의 몸 절반을 물들이고 있었다.

"고토는 무엇으로 살해당했나?"

어쩌면 뭔가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이것은 살인이 아니라 사고, 혹은 자살일 가능성은 없을까? 용의자는 정말 미즈노뿐인가? 놓친 것은 없는가······.

두 번째 작품 「졸음」에서는 강도치상 사건의 용의자를 확정했으나 결정적 증거가 없다. 수사관들이 계속 미행하던 중에 용의자가 접촉 사고를 당한다. 새벽 사고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목격자가 나타나고 모두 용의자가 신호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가쓰라 경부는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보통 목격 증언 수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야 3시에 발생한 사고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네 건이나 되는 목격 증언이 쉽게 모인 기묘한 상황이 가쓰라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의 뒤에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위화감이 깔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여러 목격자의 증언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략) 인간의 관찰력과 기억력은 불확실하다. 때로는 엉터리가 되고, 때로는 정확해진다. 가쓰라는 두 사람의 목격자 증언이 일치한다고 의문을 품지는 않는다. 세 사람이 하는 말이 똑같다면 조금 의심한다. 그리고 네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증언을 했다면, 무턱대고 믿을 수 없다.(p.117~118)

「목숨 빚」에서는 누군가 시체를 토막내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방치한다. 군마현의 명산 하루나산 기스게 회랑 부근에서 토막 난 위팔이 발견된다. 해부 결과 톱의 흔적이 발견돼 가쓰라 팀이 수사를 맡는다. 차례차례 나타나는 다른 부위들. 범인은 왜 시체를 자르고,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산책로에 유기했을까?

그렇다, 시체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누군지는 몰라도, 어째서 시체를 토막 냈을까?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면, 설령 모든 부위를 찾아내고 피의자를 알아내도 이 사건의 진상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쓰라는 결국 모든 것은 이 ‘어째서’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감했다.(p.138)

표제작이자 네 번째 소설 「가연물」은 방화 사건을 다룬다. 군마현 오타시 곳곳에서 연속으로 가연성 쓰레기 방화 추정 사건이 발생한다. 다행히 화재 규모는 작지만, 12월이라는 계절상 언제든 큰 화재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가쓰라 팀이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방화는 딱 멎는다. 감시를 들킨 걸까? 범행의 동기는 무엇일까?

가쓰라는 직감이란 차곡차곡 쌓인 관찰경이 경고를 보내는 신호라고 여겼다. 직감을 맹신하는 표적 수사는 최악이지만, 근거가 직감뿐이라는 이유로 의혹을 각하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나쁘다. 사토는 가쓰라 팀에서도 우수한 형사로, 그의 직감이 그렇다고 한다면 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범인 판명을 의미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중략) 가쓰라는 사건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다. 추궁하면 오노하라는 십중팔구 자백하리라. 하지만 가쓰라는 '십중팔구'로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사는 어차피 사람의 소행, 완벽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딘가 운명적인 틈이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오라기의 차이라도 완벽에 다가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p.205)

마지막 작품 「진짜인가」에서는 교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농성 사건이 발생한다. 특수부가 도착할 때까지 기본 수사만 도와주기로 하고 현장 파악에 나선 가쓰라 팀. 무사히 빠져나온 직원들의 증언으로 레스토랑 안에 남은 이들을 추정한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범인은 손에 총 같은 물체를 들고 있었는데.

가쓰라의 시선이 농성범에게 꽂혔다. 갈색으로 염색한 짧은 머리, 암갈색 터틀넥을 입고 있다. 얼굴밖에 보이지 않아 신장이나 체격은 알 수 없지만 뺨은 살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그 얼굴은 흉악한 인상과 거리가 멀었다. 가쓰라의 눈에는 당혹감과 절망이 묻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농성범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들이 술렁거린 것은 아니었다. 그 손에 검은 권총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무라가 중얼거렸다.

“……진짜인가?”(p.274)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よねざわ ほのぶ, 米澤 穗信)


1978년 기후 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요네자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가가 되기 위해 집필 활동에 매진했고, 2001년, 『빙과』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 영 미스터리&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졸업 후에도 이 년간 기후의 서점에서 근무하며 작가와 겸업하다가 도쿄로 나오면서 전업 작가가 된다. 클로즈드 서클을 그린 신본격 미스터리 『인사이트 밀』로 제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 다섯 개의 리들 스토리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집 『추상오단장』으로 제63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후보, 제10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다. 2011년에는 판타지와 본격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러진 용골』로 제6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상쾌하고 빠른 터치로 특히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미스터리계의 유망주로,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을 위시한 '소시민 시리즈', 『빙과』를 비롯한 '고전부 시리즈 등, 일상의 사건들을 주로 다룬 청춘 미스터리를 많이 발표했다. 요네자와 작품의 근간이 되는 ‘고전부’ 시리즈는 고등학생의 일상에 미스터리를 접목시켜 독특한 분위기의 청춘 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청춘의 밝은 면만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 어두운 면을 함께 그려 내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싸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 블랙 유머 미스터리 단편집 『덧없는 양들의 축연』, 『개는 어디에』, 청춘 SF 미스터리 『보틀넥』, 『안녕 요정』, 『리커시블』, 『개는 어디에』, 『덧없는 양들의 축연』 등의 작품이 있다.


역자 : 김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특히 일본 미스터리 문학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소시민’ 시리즈, 『야경』, 『엠브리오 기담』, 『쌍두의 악마』,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진실의 10미터 앞』, 『왕과 서커스』, 『러시 라이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손가락 없는 환상곡』, 『고백』, 『클라인의 항아리』, 『열쇠 없는 꿈을 꾸다』, 『종말의 바보』, 『이별까지 7일』, 『완전연애』, 『경관의 피』, 『흑사관 살인 사건』,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꿀벌과 천둥』, 『고백』, 『리버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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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관하여
요한 G. 치머만 지음, 이민정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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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엔 당연히 '고독(孤獨)'이란 단어가 등재돼 있다. 사전적 풀이로는 ①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과 ②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를 일컫는다고 쓰여 있다. 우리는 주로 첫 번째 뜻으로 '고독'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홀로 있다는 의미에서 외로움과 비슷한 의미로도 보인다. 미국의 신학자 파울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고독(loneliness)에 대해 "Language has created the word 'loneliness' to express the pain of being alone, and the word 'solitude' to express the glory of being alone(홀로 있음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외로움', 홀로 있음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는 말을 남겼다. 홀로 있음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영광이기도 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강준만 교수는 그의 저서 《교양영어사전2》에서 틸리히의 말에 대해 "여기선 '외로움'으로 번역했지만, loneliness는 일반적으로 고독으로도 번역한다. 정작 구분해야 할 것은 고독과 고립이다. 둘 다 홀로 있음을 뜻하는 말이지만, 고독은 주관적 심리상태인 반면, 'solitude', 'aloneness', 'isolation'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있는 객관적 상태를 의미한다고 구별짓는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 일부러 고립을 택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고독과 고립 사이엔 필연적인 연관은 없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으며,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대체적으론 고립되어 있을 때 고독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강 교수는 설명했다.

외로움과 고독은 우리말에서 별다른 차이를 두고 있지 않지만 뉘앙스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사회학·생물학·심리학을 연구한 '사회신경과학'의 대가인 존 카치오포(John T. Cacioppo) 시카고 대학 교수는 윌리엄 패트릭(William Patrick)과 함께 쓴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Loneliness: Human Nature and the Need for Social Connection)』(2008)에서 외로움은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 김종목은 "외로움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위축되는 경향이 강했다. 반대로 외로움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실패하면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하고, 성공하면 '내가 잘해서 그랬다'고 여긴다. 외로움의 악영향은 외로움을 벗어나라는 신호지만, 사실 외로운 상태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외로우면 사회적 인지, 판단 능력이 떨어지고, 이것이 외로움을 강화하는 부정적인 피드백 고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객관적 현실이 부정적 인식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현실에 자리를 내준다."고 주장했다. 고독은 이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이자 감정 중의 하나이다. 고독이 '생각'을 연상케 하는 이유는 철학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고독에 대해 명언을 남긴 위인들도 많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착하게 살면 외롭게 된다."고 말했다.(이하 영문 생략)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G. Jung, 1875~1961)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알면 외로워진다."고 주장했다. 또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 제프리 프랜시스 피셔(Geoffrey Francis Fisher, 1887~1972)는 "도시에선 조용한 사람은 없지만 많은 이가 외롭고, 농촌에선 모두 조용하지만 외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영국 시인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은 "불신보다 외로운 게 있을까?"라고 언급했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1983)는 "실패로 인한 외로움보다 큰 외로움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1910~1997)는 "고독은 최악의 빈곤이다."고 말했으며,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도 고독에 대해선 "외로움은 이젠 너무도 널리 퍼져서 역설적으로 공유된 경험이 되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영어 'solitude'는 다소 다른 느낌으로 사용된다고 강준만 교수는 앞선 책에서 말했다. "물리적으로 홀로 있다고 해서 반드시 외로운 건 아니기 때문에, solitude는 loneliness(외로움)의 감정을 느끼지 않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Solitude is the nest of thought(고독은 생각의 둥지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지식인들이 비교적 solitude를 예찬하는 명언을 많이 남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른 몇 개의 명언을 덧붙인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행복의 최상은 바쁜 고독이다."는 말을 남겼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고독은 정신력을 발전시킬 수도 있지만, 사람을 우둔하고 고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상대적 의미를 되새겼다.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도 "홀로 있는 나무가 자라기만 한다면 강하게 자란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강준만은 전한다. 

독자는 이처럼 '고독'에 대한 많은 위인들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 고독의 정의에 접근했다. 그러나 강준만의 저서 중에 있는 "지식인들은 고독을 좋게 보는지 몰라도 대중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가수들은 고독은 절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에 절대 공감한다. 독자가 고독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해본 적이 없으니 외로움의 대상인 '사랑의 부재'에 더 신경이 쓰여서일까? 한때 선풍적 유행을 일으켰던 팝 가수 닐 다이아몬드의 〈Solitary Man〉의 가사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번번이 배신만 당하는 남자가 어찌 고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독이란 역시 철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가장 많이 연구되는 단어가 아닐까? 철학자를 두고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애매한 지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철학과 고독은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한 듯하다. 그런데 철학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도 왜 철학자들은 고독에 대하여서는 책을 쓰지는 않는가? 아직 생각이 끝나지 않았을까? 독자의 의문의 일부가 풀리는 책이 바로 이 책 『고독에 관하여』이다. 코로나 팬데믹 발생 이후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우리 서점가를 몰아쳤다. 먼저 니체, 그리고 그 열풍이 쇼펜하우어로 이어졌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삶 자체를 '고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현대인이 처한 '삶의 위기'에 가장 적절한 상황이고, 그들의 사상이 현대인의 '위기 극복'에 힘이 되어서일 듯싶다. 쇼펜하우어보다 수십 년 전에 태어난 한 사상가가 '고독'에 대해 매우 놀랍고도 괄목할 만한 책을 썼다. 

이 책 『고독에 관하여』(원제 : Ueber die Einsamkeit)의 저자는 18세기 후반 유럽을 대표하는 의사이자 사상가인 스위스 출신 요한 치머만(Johann Georg Zimmermann)이다. 이 책은 원래 1784년과 1786년 두 번에 걸쳐 네 권으로 나왔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번역본을 발간했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서구 철학사에서 ‘근대 고독 담론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치머만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사상가들의 연구와 업적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의 철학자’이다. 『고독에 관하여』는 치머만의 역작이자 세기의 고전이다. 이렇듯 유명한 책이지만 독자의 독서가 짧았던 점을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닫게 됐다. 

앞서 살펴본 대로 고독은 우리에게 늘 외롭고 쓸쓸함을 나타내는 추상명사로 인식돼 있다. 철학자나 사상가, 영웅이 되는 위대한 인물들이 갖는 필수품 정도로 생각했던 것 아닐까?라고 독자는 이제서야 반성한다. 앞서 책의 원제에서도 밝혔듯 독일어로 고독은 ‘하나인 상태’를 뜻하는 Einsamkeit(아인잠카이트)라고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고독은 단지 즐기는 대상이 아니다. 저자는 고독에 빠져서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이라며 강력하게 고독 '예찬론'을 펼친다. 저자 치머만은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전에 태어난 명의이자 철학자다.

이 책 『고독에 관하여』는 당시 지식인들의 머리와 마음을 사로잡았고, 쇼펜하우어를 비롯한 개인주의 철학자들이 본인의 사상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고독 담론’을 형성하는 원전 역할을 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저자는 「고독은 '도피'가 아닌 '피난처'다」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란 외적 자원을 구하는 만큼이나 내면으로부터 행복의 의미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게 마련이다. 또 자신의 노력과 행위를 신뢰하는 법을 터득해 나가는 동시에 행복함으로 인해 얻는 힘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따라서 어찌 보면 '고독한 작업'이란 인간에게 지극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세상의 방탕과 쾌락, 그것에 따른 탐욕을 가치 없게 여기듯 나는 사회적 활동을 전적으로 저버리는 황당한 제도에도 반대한다. 제대로 들여다보면 둘 다 똑같이 낭만적이고 실현 불가능하다. 타인의 지원 없이 오직 자기 힘만으로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인간 정신의 고귀한 노력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즉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위대하고 품위 있는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와 함께 "비록 내가 일시적 은둔의 이점에 주목하도록 독자들에게 권하긴 하지만, 동시에 철학을 공부하는 일부 학도들이 빠지곤 하는 위험한 무절제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바다. 이러한 무절제는 이성과 종교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고독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 2장 〈고독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 3장 〈은둔의 일반적 이점〉, 4장 〈추방지에서 누리는 고독의 이점〉, 5장 〈노년과 임종 시 고독의 이점〉 등이다. 저자는 5개 장에서 고독의 다양한 측면에 천착해, 결국 사람은 언제든 “외적 교류와 쾌락에서 잠시 벗어나 고독을 통해 나를 마주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0년이 훌쩍 넘은 책임에도 읽다 보면 외부 세계와 내면을 바라보는 인식은 현대인의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각종 외적 자극에 쉼 없이 노출되는 현대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

저자는 고독을 ‘우리의 정신이 스스로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지적인 상태’라고 본다. “무엇보다 명백한 고독의 이점은 그로 말미암아 정신이 생각하도록 길들어 간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저자는 고독을 단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물리적인 상태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떠들썩한 도시에서 생활하든 평화롭기 그지없는 전원에서 은둔하든 혼자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종종 고독의 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철학에서도 같은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철학자들이 사색하고 길을 걷는 자체가 고독과 가장 가까운 행위이며 반가사유상의 모습에서도 고독을 읽어낼 수 있는 것도 치머만의 고독에 대한 명료한 정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상태인 고독에 빠져듦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장점을 꼼꼼하게 소개하는 ‘고독사용법’이라고 한 서평가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책은 고독의 정의부터 시작해 어떻게 고독을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통찰력 있는 견해를 독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독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와 고독이 낳은 사유가 어떻게 인류와 인간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았다. 2장 〈고독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 가운데 '여가와 휴식'이란 글에 따르면 '지상 최고의 행복'이라 할 수 있는 여가는 고독 안에서가 아니라면 좀처럼 완벽한 행복을 선사하지 못한다. 나태와 무심함이 늘 여가를 제공하진 않는다. 진정한 여가란 힘겨운 임무를 문학과 철학이라는 유쾌한 소일거리로부터 분리시키는 휴식 시간을 통해 찾게 되는 까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키피오(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옳긴이)가 "자신은 여가를 즐기며 제일 여유로울 때 가장 게으르지 않았으며, 홀로 있을 때만큼 혼자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라는 말을 저자는 인용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여가는 지적으로 무감각한 상태가 아니라 추후의 활동에 대해 새롭게 제시된 보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여가는 강인하고 활동적인 정신을 통해 추구되며, 활동의 ‘끝’이 아닌 잃어버린 활기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누구든 그저 조용하기만 한 상태에서 행복을 좇는다면 잡히지 않는 환영을 좇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가는 단지 휴식하는 가운데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활동에 대한 최초의 충동을 그러잡는 이에게 찾아드는 것이다. 단, 노동이 따르지 않는 보상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즐거움을 보장하는 활동이 아닌 다양한 능력에 따른 범위와 특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것을 택해야겠다."(p.123)

현대 사회에서 고독은 간혹 터부시되기도 한다. ‘혼자 지낸다’는 것은 곧 ‘외롭고 쓸쓸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또 정신의학적 측면에서는 혼자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지는 일은 정신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점차 ‘혼자 있는 시간’이나 ‘고독’의 의미는 사회 속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고독한 상태의 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신이 되는 것 같다. 고독은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에서 최대한 벗어나 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이들도 많다. 저자 치머만이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균형’이다. 저자는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개인이 행복해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저자는 다만 혼자 있는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이점이 너무나 많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고독이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을 깊이 검토하기 위해’ ‘평온한 정서를 지니기 위해’ ‘거짓과 편견에 맞설 용기를 얻기 위해’ 고독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고독은 곧 ‘온전히 스스로에 집중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는 인생의 많은 장면에 도움이 된다. 고독한 집중 시간을 통해 수많은 선지자들은 인류 역사에 남을 과업을 성취했다. 사랑하는 이들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상대방을 향한 애정을 키웠다. 일터에서 지친 이들은 혼자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고 돌아갈 힘을 얻었다. 위대한 작가는 혼자 보내는 인고의 시간 동안 탄생했다. 이처럼 고독이 가지는 장점은 무궁무진하며 이는 인간에게 '광장'과 '밀실' 모두 필요하다는 말과 같이 현대 사회에선 필수적인 인간 삶의 조건이 된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저자 : 요한 G. 치머만(Johann Georg Zimmermann)


18세기 후반 유럽을 대표하는 의사이자 사상가. 1728년 스위스의 브뤼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영제국 국왕 조지 3세의 개인 의사,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의 자문 의사로 각각 활동했다. 요한 게오르크 치머만은 의사보다는 사상가로 더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저서 《고독에 관하여》 덕분이다. 1784년과 1786년 두 번에 걸쳐 총 네 권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19세기 초반 ‘고독’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며 당대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사상가들 중에서는 드물게 ‘혼자이고자 하는 개인의 상황’에 관심을 가졌던 치머만은 의사로서의 다양한 임상 경험과 의학 지식, 분야를 가리지 않는 독서로 얻어낸 실존 인물 탐구를 통해 ‘고독’에 관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을 완성시켰다. 치머만에 따르면 고독이란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하는 지적인 상태’이며, 고독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모든 사회적 사슬을 벗어 던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치머만이 말하는 고독은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것’이며, 치머만은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고독을 통해 스스로를 다듬을 수 있으며,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역자 : 이민정


계명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며, 국내 유수의 기업에서 통번역가로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했다. 여행과 책을 좋아하고 특히, 인문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어트랙션》, 《모스트 오브 미》,《스탠딩 톨》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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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두런두런
신평 지음 / 새빛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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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변호사�대학교수 등 법의 세계에서 찌든 마음을 시골살이로 풀어내면서 저자는 관대함을 얻었다. 이 관대함은 과거에 대한 아쉬움보다 성찰로 이어졌고, 저자는 죽음과의 경계까지의 삶도 관조하는 시선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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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두런두런
신평 지음 / 새빛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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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시골살이 두런두런』은 저자 신평 변호사의 '시골살이'에 대한 소회를 시와 산문으로 쓴 것을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자신이 수십 년 간 몸담았던 법조계와 대학 교수직을 떠나 조용히 노년생활을 하면서 떠오르는 단상이나 계절 변화에 따른 시골 풍경을 담담히 써낸 것이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저자의 '노년생활'이라고 표현한 독자의 잘못일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 이 책은 시와 산문이 번갈아 가며 페이지를 채우고 있지만 산문은 시의 해설이라기보다 그 시와 관련해 가진 단상 형태의 독백에 가깝다. 어쩌면 과거의 삶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별로 시일의 선후에 따라 그대로 배열하여 계절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담으려고 했다."며 "오래된 시골살이의 이모저모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혹은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리운 사람에게 속삭이듯이 두런두런 말하려고 했다."고 〈서문〉을 대신한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시와 산문들에는 대체로 시골살이의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에 기반한 의식이 내장되어 있다. 농사지으며 사는 삶의 생생한 모습, 그리고 내면에 간직해온 사상, 세상을 향한 시선의 방향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 끈질기게 의문을 던진다. 도시 생활이든 농촌 생활이든 우리의 삶은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한 삶이란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끝없이 탐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늘과 구름과 별,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과 여린 풀길, 잠자리, 나비가 어우러지며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글에서 밝히지만 중간중간 도시 생활 때의 기억을 드러내기도 한다. 판사, 교수, 변호사 등 남이 부러워할 직업을 두루 거친 지식인의 삶의 기억에서 도시 생활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라는 독자의 느낌이다. 저자의 글 안에는 도시 생활 때의 회한이 언뜻언뜻 비치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도시 생활의 포부나 삶의 목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일까?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법에 대한 빈틈 없는 지식과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 사법시험을 통해 판사직에 임용된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판사직을 수행했으나 판사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하는 등 순탄치 않은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다.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됐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판사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한다. 법관 연임제도는 제헌 헌법 제79조부터 규정되어 있었다. 다만 1987년 개헌 때 '법원조직법'으로 옮겨갔다. 이 법에 따라 "법관은 헌법상 10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받아 연임할 수 있으며, 국회의 탄핵소추나 금고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한 법관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10년의 임기가 만료된 판사는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법관회의의 재임용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제도는 결격 사유도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저자의 경우 결격 사유 중 한 개의 조항에 걸렸다고 재임용 때 탈락됐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독자로서 알 수 없으나 대개의 경우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써 저자의 판사직 수행은 끝났지만 고향인 대구로 옮겨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러나 대법원장과 싸우다 나왔다는 꼬리표가 붙은 저자에게 개업 초기엔 사건 의뢰가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개인적 일과 재임용 탈락으로 우울증까지 얻을 정도로 힘들었으나 절치부심 노력한 끝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사건 수임 1위를 기록하는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은 듯하다. 이를 계기로 대학 교수직 제안도 있어서, 변호사직을 뒤로 하고 수입이 10분의 1 정도인 교수직을 수락했다. 어쩌면 돈에 대한 미련보다는 법에 대한 열정이 더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독자는 이해한다. 아무튼 낙향 후 변호사 생활과 대학 교수직을 하면서 심적인 안정과 법에 대한 혜안, 깊은 경륜을 쌓는 시기로 볼 수도 있다는 독자의 생각이다. 그의 글에서 세상을 향한 따스함과 어려움에 대한 극복의 집념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까닭이다. 저자의 글에서 독자들은 삶에서 받는 무자비한 할퀸 상처에 대해 위로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서 거친 삶에 길들여 있는 우리들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잔잔한 물가에 앉아 눈물 속에 떠오르는 행복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시와 산문은 사실 조금은 독특하다. 시만 실린 시집, 시와 그림이 함께 실린 시화집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간혹 시와 더불어 '시작 노트'라는 산문을 곁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시에 대한 설명이나 덧붙인 감상이다. 그러나 이 책 『시골살이 두런두런』에 실린 산문은 시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별도'의 에세이다. 독자가 '별도'의 산문이라고 지적하는 데는 시작 노트의 성격을 벗어난 산문들이 많다는 점에서다. 

「월성 산책」이란 시에 대한 산문 하나를 여기에 적어본다. 


느릿느릿 저녁답

경주 남천에 

노을을 지고 가면 

월정교 물소리 

원효 스님 염불 소리 

코 끝 매운 환영에 젖어 

이리저리 헤매는데

연꽃 가득 월성 해자에 

달 그림자 길게 끌더니 

풍덩 물 속으로 빠진다


신라가 멸망한 지 천년을 훌쩍 지났으나, 경주에서 그래도 옛날 신라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 월성 주변입니다. / 최근 월정교를 정비해 놓았는데 야경이 특히 멋있습니다. 월정교는 남천을 건너는 다리로 월성의 입구입니다. 옛날 원효 스님이 연인 요석공주를 만나기 위하여 바로 이 다리를 건너 요석궁으로 갔습니다. / 아내는 어린 시절 남천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고 하는데, 그 추억이 그리고 지금도 그 앞을 오갈 수 있는 것이 참 부럽습니다. 대구의 제 고향은 급격한 도시화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다시 찾아갈 가능성마저 빼앗겨버린 고약한 실향민입니다.(p.49)

저자에 대해, 그의 이력을 아는 분들은 '그는 시대의 현자인가? 아니면 단순한 삶의 루저(loser)인가?'로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를 현세의 ‘태공망’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아니다, 그는 시대와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시골에서 은둔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 아주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하는 저자가 시와 산문을 합하여 출간한 이 책은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시골살이를 엮어낸 조금은 유별난 형식의 책이라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시’만으로 치면 저자의 네 번째 시집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저자의 시와 산문은 어렵지 않은 어구와 단정하고 정갈한 수사, 그리고 풍부한 여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맑은 지성과 학자적 고고함을 따스하게 표현한다. 흔들리는 자아를 다독여 자아를 통합하고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큰 물줄기에 도달하는 모습을 잘 녹여 낸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시와 산문이 따라붙은 점은 기존의 시집과는 조금은 결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시와 산문의 서정은 현실을 초월해 순수의 진공상태에 있는 게 아니다. 시인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올곧게 살아온 시간, 경륜에서 나온 현실적이며 사실적인 서정이다. 그런 명징한 서정이기에 올곧고 힘이 세다는 게 출판사 측은 강조한다. 저자의 〈작가의 말〉에도 과거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는 한편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나이가 드니 재빠른 인지의 능력은 내려가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좀 더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는 듯합니다. 제가 저지른 과오가, 의도를 했건 아니면 의식하지 못한 채이건 간에 정리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저는 이 과오들을 불편하지만 좀 더 솔직히 바라보며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국가의 통계상 농업인으로 등록된 사람입니다. 농업협동조합에 조합원이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논농사도 지었지만 지금은 집 둘레에 펼쳐진 500평 가량의 밭농사만 합니다. 제초제를 비롯한 농약을 쓰지 않고 비닐 멀칭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눈에 보던 고향 대구의 평화로운 전원풍경을 재현하려는 것이 어쩌면 제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온갖 작물이 자라고, 또 여러 종류의 유실수들이 있습니다.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 밤의 별이 있고 바람과 나비와 잠자리, 새가 있으며, 간밤에 내린 논이 살포시 쌓이고 어떤 때는 거센 비가 내리기도 하는 곳입니다. 이런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저와 제 아내에게는 이곳이 작은 파라다이스입니다. 종생(終生)의 아름다운 터입니다."(p.10)

이 책은 계절을 나타낸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부로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계절이 지나가는 순리처럼 책을 만들고 싶었던 저자의 바람일 터다. 봄을 나타내는 시어가 많이 띈다. 「다시 일어서기」, 「봄비」, 「벚꽃 무렵」, 「모란 꽃」, 「오월 어느 날」, 「그리움」, 「종일 내리는 비」 등이다. 2부 여름에는 「여름날의 고백」, 「능소화」, 「매미의 꿈」, 「나팔꽃」, 「썬크림」, 「논일 소묘」 등이 눈길을 끈다. 3부는 가을의 서정이 드러난다. 「가을, 그대」, 「사람 살만한 곳」, 「가을나비」, 「가을 소리」, 「11월 풍경」, 「늦가을 일상」, 「추수」, 「늦가을」 등이 보인다. 4부 겨울엔 「겨울나무」, 「겨울 나그네」, 「겨울소리」, 「시를 쓰는 이유」, 「나이 들어보니」, 「노년의 빛」, 「눈 내리던 날」 등 겨울의 풍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독자는 읽다가 「가을 소리」와 「겨울소리」에 주목해본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그만의 독특한 소리가 있는가? 시인은 가을의 '시끄러운 여운'에 '이마 주름살 하나 더 느는구나'라고 표현한다. 계절이 지는 느낌이 사람이 늙는 느낌과 비슷한 모양새다. 저자만 그렇게 느꼈을까? 어쩌면 대부분의 독자도 같은 느낌일 것이다. "만추가 되면 왠지 미리 쓸쓸해집니다. 곧 황량한 겨울이 닥쳐올 것을 짐작하니까 그렇습니다. 가을걷이가 다 끝나갑니다. 따다 남은 호두와 밤은 지붕 위에 콩콩 떨어지며 적막을 깹니다."

「겨울소리」는 무엇일까. 

태양이 산마루를 넘어가며 빛을 잃고

산이 감추어둔 어둠이 어느새 산을 넘어와 세상에 퍼지고

어둠이 깐 정밀(靜謐-고요하고 편안함, 독자 주)의 숨소리가 굴뚝 연기 따라 낮은 하늘로 오르고

이제는 저 처절한 생존의 다툼이 잦아들길 기대하니(이하 생략)

"저울이 되면 뜬금없이 저 멀리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아버지는 저에게 작고 둥근 오봉(알루미늄으로 만든 탁자)에 저를 앉혀 공부하게 해놓고 라디오 연속극을 들었습니다. 〈섬마을 선생님〉 같은 것이었지요. 그런데 저 멀리 기차가 지나가며 내는 아련한 소리가 어린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라는 산문이 뒤따르고 있다. 저자에게는 가을의 소리든 겨울소리든 모두 추억의 소리인 듯 아득한 그림이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나이가 되어서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행복의 제1조건은 더 많은 것을 가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소박한 것들에 만족하며 너그럽게 사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끝없는 가짐의 추구는 허무와 낙망의 심연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 저자는 시골에서 매일 육체적인 노동으로 농사를 지으며 산다고 하더라도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누구도 뭐랄 수 없는 하나의 독립된 존엄한 개체라고 주장한다. 그런 만큼 저자 또한 세상을 향해 열린 호흡을 하며 기꺼이 광대무변한 세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완성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두런두런 이야기한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경계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저자는 이 책에 담은 글을 통해 아직 창창한 날들을 가진 이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을 주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자신에게 남겨진, 훌륭한 삶을 향한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않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우리 자신들의 참된 행복을 위한 공감이 이루어지고 그 동심원이 점점 더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저자의 소박한 바람이다.

저자는 “이 책이 과연 그런 의도에 맞게 되었을까요?”라고 스스로 묻기도 한다고 회고한다. 별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는 점만은 이해받고 싶단다. 특히, 먼저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왜 그가 한국 사회에서 최근 벌어져 온 여러 격랑의 고비를 거의 모두 정확하게 예견했는지를 이 책의 내용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가진 ‘시대정신’에 대한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이 이 책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와 산문의 정서를 투영한 다수의 삽화는 시골 출신의 누구에게나 옛날 자신이 살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리움이 일 것이다. 


저자 : 신평


30년 전,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들을 위하여 경주에 집을 짓고 이곳에서 농사를 시작하였다. 농토에 자기만의 작은 파라다이스를 만들어놓고 안분지족의 삶을 살려고 한다. 대구의 경북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서울, 인천, 대구, 경주의 법원에서 판사를 역임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주립대학, 중국의 런민(人民)대학 및 쩡파(政法)대학, 일본의 히토쯔바시(一橋)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하였으며,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외국재판관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경북대 로스쿨 교수, 한국헌법학회장, 한국교육법학회장, 앰네스티 법률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헌법학자들을 규합하여 아시아헌법포럼(The Asia Costitution Forum)을 창설했다. 대한민국 법률대상, 국회의장 공로장, 철우언론법상 등 수상했으며, 현재 공익사단법인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재직중이다. 시와 수필 두 부문에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지금까지 시집으로 ‘산방에서’, ‘들판에 누워’, ‘작은 길’ 세 권을 출간했으며, 일송정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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