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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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집 『가연물(可燃物)』은 수수께끼가 있고, 독자들에게 단서가 제공되며, 반복되는 검증과 뜻밖의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른바 '경찰 소설'이란 일반적인 용어 대신 ‘경찰 미스터리’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쓰였다. 탐정이 개입해 범죄를 규명하고 범인을 추적해 들어가는 추리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사건(범죄)을 추적해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범죄 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경찰이 탐정을 대신하며 독자들과 함께 사건을 추적하고 풀어간다는 점에서 탐정 소설에 가깝다. 특히 저자는 독자들에게 사건 현장을 보여주고 수집한 단서 등을 공개하면서 경찰과의 수사 경쟁을 벌이게 된다. 담백하고 명백한 단서를 기반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데서 '경찰 미스터리'라고 이름 붙인 듯하다. 독자들은 여느 추리 소설과는 다르게 주어진 단서에 따라 경찰처럼 범인을 추적하는 듯한 느낌을 소설에 몰입할 수 있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자 요네자와 호노부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동경하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아르바이트로 소설을 쓰는 일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습작을 거듭하던 저자는 2001년 『빙과』란 소설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 '영 미스터리 & 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정식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일본 역사상 최초로 일본 미스터리 4대 랭킹을 모두 석권하고, 나오키상을 비롯해 무려 9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미스터리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 소설집 『가연물』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잡지 〈올 요미모노〉에 게재된 5편의 이야기를 묶어 출간했다. 이 소설집은 〈가쓰라 경부 시리즈〉로 '가쓰라' 경부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촘촘한 수사, 경험과 통찰력 있는 추리력이 돋보인다. '경부'는 우리나라에서 '총경'에 해당하며, 경찰서장급의 간부이다. 가쓰라는 화려함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하고도 묵직한 수사경찰의 면모를 보여준다. 현실적이란 이야기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모두 가쓰라 경부가 맡은 사건으로 연작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이 소설집은 "쓰레기 방화에서부터 토막 살인 사건까지 다루면서 저자 호노부가 다채로운 트릭과 깔끔한 결말까지 완벽하게 소설 속에 장치했다"고 평가한다

저자 호노부는 "경찰소설은 주로 경찰 조직이나 경찰관 개인을 그리는 소설을 지칭하지만 『가연물』은 명탐정이 중심인 소설이다. 다만 경찰관이 탐정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찰 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경찰소설은 ‘경찰 조직, 경찰관의 묘사’가 중심이 되는데 비해, ‘경찰관이 탐정 역할을 하는 미스터리’인 이 작품을 나타내기 위해 '경찰 미스터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집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대도시와 인적이 뜸한 산악 지방이 공존하는 일본 군마현을 무대로 하고 있다. 군마현의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이야기 곳곳에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연물』은 조직을 드러내기보다 경찰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작품집이며 따라서 ‘경찰 소설’이 아니라 ‘경찰 미스터리’라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소설집에는 연쇄 방화의 동기를 파헤친 표제작 「가연물」을 비롯해, 발견되지 않는 흉기를 찾는 「낭떠러지 밑」, 공통된 목격 증언의 위화감을 파고든 「졸음」, 눈에 띄는 장소에 유기된 토막 시신에 집중하는 「목숨 빚」, 인질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진짜인가」 등이 실려 있다.

수수께끼에 담백함과 공정함을 더하는 수사 인물은 군마 현경 수사1팀을 이끌고 있는 가쓰라 경부이다. 불필요한 것은 말하지 않고, 간부들은 거리를 두며, 부하들도 결코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뛰어난 수사 능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과 관련 없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힘든 사건이 발생하면 사흘 동안 4시간 정도밖에 잠들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혹사하고, 두뇌 회전을 위해 달콤한 빵과 카페오레로 간단하게 식사한다. 용의자의 사소한 언동, 현장의 미묘한 위화감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증거와 숨겨진 동기를 기어코 발견해 낸다. 

특히 캐릭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묘사 방식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지점이라고 한다. 직업이자 삶의 일부로서 한 걸음씩 사건 해결로 나아가는 경찰상을 보여준다. 우리가 묵직한 사건들을 쫓는 일선 형사의 집요함과 우직한 수사법을 보고 감탄하듯 사명감과 직업 정신 또한 뚜렷하다. 말 그대로 형사다운 형사이다.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성으로 인해 작품은 더욱 공정해지고, 독자는 더 과감하게 가쓰라 경부와 지혜를 겨룰 기회를 제공받는다. 모두 저자 요네자와 호노부가 소설의 구성 능력과 미스터리 소설의 특수한 표현 등이 두루 갖춰졌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우리나라에 이번에 번역 출간된 이후 〈예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남겼다. 5편의 단편 모두가 ‘독자와의 경쟁’처럼 느껴져 인상적이었고, 미스터리 독자들이 정답을 맞히기에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단편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아마도 「진짜인가」의 정답률이 가장 낮을 겁니다. 다른 네 작품은 미스터리로서 명확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령 「낭떠러지 밑」은 무엇이 흉기인지 맞히는 미스터리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그 선언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인가」만큼은 대체 무엇을 묻는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증언을 종합해서 숨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 질문에 올바르게 답해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질문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미스터리는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질문의 유무마저 숨기는 것은 미스터리로 공정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어떤 점이?'라는 질문은 재미있을 것 같아 「진짜인가」에 적용해 보았습니다."고 답했다.

또 미스터리 장르는 어디까지나 독자들에게 정답을 숨기는 것이 관례이자 기법인데 나름의 노하우가 있나요?란 질문에는 "누가 뭐라 해도 ‘대담함’입니다. 단서는 숨기지 말고 제시해야 합니다. 노골적일 만큼 당당하게 단서를 표현하면서, 그래도 여전히 독자가 '그랬구나! 알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을 맛보게 하는 것이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충분히 고민을 거듭해 최고의 진상을 마련해 둬야 합니다. 수수께끼가 너무 평이한 경우 독자의 정답률을 제어하려면 단서를 몰래 숨기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란 답변으로 소설 속 주인공 인물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쓰라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인이고, 그 개성은 기발하거나 특이한 면모가 아니라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가쓰라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려로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동시에 정의를 위해 확실성을 중시하는 것도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요인이란 답변도 더하고 있다. 소설적인 효과를 노렸다기보다 현실과 접해 있는 인물상을 확립하려는 목적이 더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첫 번째 소설 「낭떠러지 밑」은 스키장 실종 사건을 그리고 있다. 정규 코스에서 벗어나 스노보드를 즐기러 간 네 명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은 수색을 시작한다. 과다 출혈로 죽은 채 발견된 시신. 범인은 함께 조난 중이었던 또 다른 남자일 수밖에 없지만, 흉기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눈이 쌓인 낭떠러지 밑에서 어떻게 흉기를 처분했을까? 

고개를 숙여 파일을 넘기며 현장 사진을 보았다. 낭떠러지 밑, 경사면에 기대어 있는 고토의 목에 난 생생한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의 몸 절반을 물들이고 있었다.

"고토는 무엇으로 살해당했나?"

어쩌면 뭔가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이것은 살인이 아니라 사고, 혹은 자살일 가능성은 없을까? 용의자는 정말 미즈노뿐인가? 놓친 것은 없는가······.

두 번째 작품 「졸음」에서는 강도치상 사건의 용의자를 확정했으나 결정적 증거가 없다. 수사관들이 계속 미행하던 중에 용의자가 접촉 사고를 당한다. 새벽 사고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목격자가 나타나고 모두 용의자가 신호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가쓰라 경부는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보통 목격 증언 수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야 3시에 발생한 사고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네 건이나 되는 목격 증언이 쉽게 모인 기묘한 상황이 가쓰라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의 뒤에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위화감이 깔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여러 목격자의 증언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략) 인간의 관찰력과 기억력은 불확실하다. 때로는 엉터리가 되고, 때로는 정확해진다. 가쓰라는 두 사람의 목격자 증언이 일치한다고 의문을 품지는 않는다. 세 사람이 하는 말이 똑같다면 조금 의심한다. 그리고 네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증언을 했다면, 무턱대고 믿을 수 없다.(p.117~118)

「목숨 빚」에서는 누군가 시체를 토막내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방치한다. 군마현의 명산 하루나산 기스게 회랑 부근에서 토막 난 위팔이 발견된다. 해부 결과 톱의 흔적이 발견돼 가쓰라 팀이 수사를 맡는다. 차례차례 나타나는 다른 부위들. 범인은 왜 시체를 자르고,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산책로에 유기했을까?

그렇다, 시체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누군지는 몰라도, 어째서 시체를 토막 냈을까?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면, 설령 모든 부위를 찾아내고 피의자를 알아내도 이 사건의 진상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쓰라는 결국 모든 것은 이 ‘어째서’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감했다.(p.138)

표제작이자 네 번째 소설 「가연물」은 방화 사건을 다룬다. 군마현 오타시 곳곳에서 연속으로 가연성 쓰레기 방화 추정 사건이 발생한다. 다행히 화재 규모는 작지만, 12월이라는 계절상 언제든 큰 화재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가쓰라 팀이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방화는 딱 멎는다. 감시를 들킨 걸까? 범행의 동기는 무엇일까?

가쓰라는 직감이란 차곡차곡 쌓인 관찰경이 경고를 보내는 신호라고 여겼다. 직감을 맹신하는 표적 수사는 최악이지만, 근거가 직감뿐이라는 이유로 의혹을 각하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나쁘다. 사토는 가쓰라 팀에서도 우수한 형사로, 그의 직감이 그렇다고 한다면 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범인 판명을 의미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중략) 가쓰라는 사건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다. 추궁하면 오노하라는 십중팔구 자백하리라. 하지만 가쓰라는 '십중팔구'로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사는 어차피 사람의 소행, 완벽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딘가 운명적인 틈이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오라기의 차이라도 완벽에 다가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p.205)

마지막 작품 「진짜인가」에서는 교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농성 사건이 발생한다. 특수부가 도착할 때까지 기본 수사만 도와주기로 하고 현장 파악에 나선 가쓰라 팀. 무사히 빠져나온 직원들의 증언으로 레스토랑 안에 남은 이들을 추정한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범인은 손에 총 같은 물체를 들고 있었는데.

가쓰라의 시선이 농성범에게 꽂혔다. 갈색으로 염색한 짧은 머리, 암갈색 터틀넥을 입고 있다. 얼굴밖에 보이지 않아 신장이나 체격은 알 수 없지만 뺨은 살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그 얼굴은 흉악한 인상과 거리가 멀었다. 가쓰라의 눈에는 당혹감과 절망이 묻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농성범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들이 술렁거린 것은 아니었다. 그 손에 검은 권총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무라가 중얼거렸다.

“……진짜인가?”(p.274)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よねざわ ほのぶ, 米澤 穗信)


1978년 기후 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요네자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가가 되기 위해 집필 활동에 매진했고, 2001년, 『빙과』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 영 미스터리&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졸업 후에도 이 년간 기후의 서점에서 근무하며 작가와 겸업하다가 도쿄로 나오면서 전업 작가가 된다. 클로즈드 서클을 그린 신본격 미스터리 『인사이트 밀』로 제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 다섯 개의 리들 스토리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집 『추상오단장』으로 제63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후보, 제10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다. 2011년에는 판타지와 본격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러진 용골』로 제6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상쾌하고 빠른 터치로 특히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미스터리계의 유망주로,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을 위시한 '소시민 시리즈', 『빙과』를 비롯한 '고전부 시리즈 등, 일상의 사건들을 주로 다룬 청춘 미스터리를 많이 발표했다. 요네자와 작품의 근간이 되는 ‘고전부’ 시리즈는 고등학생의 일상에 미스터리를 접목시켜 독특한 분위기의 청춘 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청춘의 밝은 면만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 어두운 면을 함께 그려 내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싸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 블랙 유머 미스터리 단편집 『덧없는 양들의 축연』, 『개는 어디에』, 청춘 SF 미스터리 『보틀넥』, 『안녕 요정』, 『리커시블』, 『개는 어디에』, 『덧없는 양들의 축연』 등의 작품이 있다.


역자 : 김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특히 일본 미스터리 문학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소시민’ 시리즈, 『야경』, 『엠브리오 기담』, 『쌍두의 악마』,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진실의 10미터 앞』, 『왕과 서커스』, 『러시 라이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손가락 없는 환상곡』, 『고백』, 『클라인의 항아리』, 『열쇠 없는 꿈을 꾸다』, 『종말의 바보』, 『이별까지 7일』, 『완전연애』, 『경관의 피』, 『흑사관 살인 사건』,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꿀벌과 천둥』, 『고백』, 『리버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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