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 - 버닝썬 226일 취재 기록
이문현 지음, 박윤수 감수 / 포르체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강남 버닝썬 클럽 사건의 빅뱅 전 멤버 승리가 항소장을 제출했다. 승리는 징역 3년에 추징금 11억 5690만원을 선고한 1심 재판 결과에 불복, 19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승리는 2019년 버닝썬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강남 클럽 버닝썬은 성범죄, 마약유통, 공권력 유착 등 여러 의혹에 휩싸였고 승리는 버닝썬의 이사로 경영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여러가지 정황은 그가 사실상 버닝썬의 중요 인물이었다고 가리켰다. 이에 승리는 직접 강남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며 자신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성접대 의혹 등 혐의가 거듭 추가되며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경찰은 승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승리는 불구속 기소됐고 검찰 또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이 또한 기각되며 승리는 2020년 3월 강원도 철원에 있는 육군 6사단 신병교육대로 입소했다. 이에 승리에 대한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지상작전사령부 군사법원으로 이송됐다.

승리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알선 등, 성매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상습도박, 외국환 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 횡령, 특수폭행 교사 등 9개 혐의로 기소됐다. 승리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대부분의 범행이 배우 박한별의 남편이자 유리홀딩스 전 대표인 유인석의 독단으로 이뤄졌으며, 자신은 성매매를 하거나 성매매를 알선할

이유가 없었으며 상습도박이나 특수폭행 교사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경찰이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 수사를 펼치며 자신을 구속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찰조사와 검찰 조사, 법정에서의 진술이 계속 바뀌어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9개 혐의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지난 20일 모 스포츠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독자는 이 기사를 보고서야 버닝썬 사태를 기억해냈다. 그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 전후로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새로 들어선 정부의 개혁에 관심이 더 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강남 일부 돈 많은 집안의 일탈 행위와 일부 연예인이 관련됐다는 수사 결과를 믿었기 때문이다. 경찰 유착은 더 이상 없으며 관련된 경찰관은 이미 징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버닝썬 사건은 잊혀져 갔다. 이 책이 나와 눈에 띄기까지는.

이 책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는 당시 버닝썬 사건의 발생과 과정, 결과를 모두 기록한 일선 취재기자의 기록이다. 1년 가까운 226일의 취재 기록을 가감없이 취재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저자는 다른 내용은 지금 재판을 하고 있어 더 지켜봐야 하지만 경찰 유착 부분에 적잖은 의문점이 있어 책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버닝썬은 어떻게 강남 한복판에서 마약과 성폭행을 자행하고 법망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책에 따르면 MBC 사회부 기자였던(현 MBC 보도본부 경제팀) 저자는 버닝썬이 법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경찰과 버닝썬의 유착 관계’를 의심한다. 이를 추적하던 저자는 ‘경찰이 버닝썬 대표에게 돈을 받고 버닝썬의 문제가 될만한 사건을 덮어 줬다’는 내용의,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는다. 버닝썬 보도 이후 경찰은 셀프수사를 했지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경찰관과 뇌물을 준 것으로 의심되는 이는 결국 각각 불기소처분을 받고 무죄를 확정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버닝썬 게이트의 시작점이었던 ‘버닝썬 폭행 사건’에서 경찰이 클럽 직원에게 폭행당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 체포한 것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사관이 뇌물수수죄가 아닌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죄로 기소된 것까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법원의 공식적인 판결은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버닝썬 게이트'를 단독 최초 보도하고 계속해서 취재했던 저자는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도되지 못했던 ‘버닝썬과 경찰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전하며 독자의 생각을 묻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사건이 시작될 때 큰 관심을 갖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사건이 마무리될 무렵부터는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한 것이 우리 일반 사람들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들 일탈 사건에 대해서는 욕이나 한 번 해주고 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공인일 경우는 다르다. 공인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맞부딪치는 사람들이다. 또 일반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들에 봉사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를 했다면 마땅히 처벌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공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큰 이유다. 우리가 기억하는 ‘버닝썬’은 어떤 사건인가? 클럽에서 일어난 단순 폭행 사건일 뿐일까? 하룻밤 술값으로 수천만 원씩 쓰는 VIP들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연예인의 성매매·성폭행 사건? ‘버닝썬 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우리가 ‘버닝썬’에 관심을 두지 않는 동안 폭행을 일삼고, 마약을 하고, 탈세를 저지르는 등 악행을 저지른 ‘몸통’들은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되거나 해외로 도피해 처벌을 피했다. GHB, 이른바 ‘물뽕’을 이용한 성범죄를 막기 위해 발의되었던 ‘약물 성범죄 처벌 개정안’도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주장한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다시 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버닝썬을 다시 불러온 이유다. 버닝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개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제2, 제3의 버닝썬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무관심은 여전히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그들이 활개 칠 수 있는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피해자였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물어야 한다. “왜 그들을 처벌하지 않았습니까?”



독자 역시 일반인들처럼 사건 당시 큰 관심을 가졌지만 이내 잊고 말았다. 이후 사건 처리는 죄가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법 제도가 허점이 있었다면 법을 보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또 신종 마약인 이른바 '물뽕'이라 불리우는 GHB가 사용되고 있다면 당연히 발본색원해서 마약의 유혹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승리가 재판에 회부됐다는 보도를 끝으로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니 사건의 종결부터가 잘못된 점을 알게 되니 분노가 치민다.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했던 저자의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싶다.

저자는 버닝썬의 마약 유통 사건, 성범죄 사건, 탈세 사건, 그리고 경찰과의 유착 의혹까지, 버닝썬 게이트의 사건뿐 아니라 이후의 판결까지도 상세히 이 책에 담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의 무관심이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버닝썬 게이트는 ‘승리 게이트’라고도 불렸다.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가 버닝썬의 대표이사였기 때문이다. 승리는 유명인인 만큼 화제가 되었으며, 그 결과 승리는 군 검찰로부터 징역 5년과 벌금 2,000만 원을 구형 받았다.(앞서 승리의 유죄 내용은 1심 선고 결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약 유통책으로 지목된 자, 성범죄를 저지른 자,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의심되는 자, 승리를 도와 탈세를 주도한 자는 모두 법망을 빠져나갔고, 일부는 해외로 도주해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몇 명만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데 그쳤다. 결국, 남은 것은 이해되지 않는 판결과 가해자 없는 피해자들뿐이다. 저자는 ‘가치 있는 보도를 했다는 만족감에 취해 이후의 수사 과정을 쫓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 ‘버닝썬 게이트’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뒤늦은 보도를 한다. 그리고 버닝썬 게이트와 같은 다른 악랄한 범죄 사건에도 시민이 눈을 떼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같은 범죄는 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어쩌면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철저하게 법을 빠져나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일반 형사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암흑가나 유흥업소,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관련 법을 잘 알기도 하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데에도 거의 '신기'를 보여준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돈을 위해 범죄인 줄 알면서도 뻔뻔하게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돈을 벌어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들고, 그게 그렇게 넘기기 어려운 유혹인가도 싶다. 정직하게 땀 흘려 버는 돈의 소중함을 알고, 때문에 그렇게 번 돈을 지켜주자는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돼야 하는데... 독자의 바람은 정말로 헛된 바람인가?

저자 : 이문현

기자를 한 번 그만뒀다.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유족에게,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인의 ‘이유’를 물어보라는 취재 지시를 받았다. 납득이 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유사한 일이 반복됐고 결국 9개월 만에 첫 기자 생활을 접었다. 연봉이 높고 '워라밸' 좋은 '일반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회사와 언론사, 둘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끝까지 고민했다. 사실 그런 척했다. 결국 2014년 1월 다시 신입 기자가 되었다.

거대 담론을 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게 좋다. 그리고 그게 더 잘 맞다. 세상 떠들썩한 이슈는 못 되겠지만,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주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걸 믿는다. 그게 다시 이 직업을 택한 이유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 한 권으로 읽는 오리지널 명작 에디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독자가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읽었던 때는 청소년기 때다. 작품성보다는 '연애 소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격정의 사랑을 그린 이 책이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특히 작가가 러시아(구 소련) 작가라는 점도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독자가 청소년 때는 소련 해체 전이라 우리로서는 적성 국가였고 그들의 정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마저 국내 유입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통제를 통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 소설은 소련이 들어서기 전 제정 러시아 시절의 이야기이고 당시 러시아의 정치 및 사회가 왕과 귀족 중심의 체제였고, 국민은 도탄에 빠진 상태여서 인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소련 공산주의가 들어서기 좋은 토양이었다.

더욱이 이 소설은 당시의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부패 등을 정확하게 담고 있어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 타파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소설에서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문학적 한계선에 정확히 닿아 있다고 봐야 한다. 제정 러시아의 부패 정치와 귀족들의 향락의 재정을 담당한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표현함으로써 반정부, 반왕정, 반귀족의 민주주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독자도 청소년기 때는 러시아(소련)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소식이라고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차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 상태였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러시아는 공산주의 종주국이며 6.25때 남침을 묵인하고 북한에 무기를 원조해준, 우리로서는 적성국가였고 원수의 나라라는 사실만 학교에서 배웠을 뿐이다. 이 책 『안나 카레니나』는 대문호의 작품이라는 것과 정치적 이념이 없는 단순 문학적 성과만 높이 평가돼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롭게 번역 출판됐으리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도스도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하면 3대 대문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인간 삶'에 맞춰져 있어 도스토옙스키와 대조되는 듯하다.

아무튼 그때는 톨스토이는 사회적 신분에서 작품 평가가 조금 절하되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 도스도옙스키와 달리 백작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귀족 계급으로서 이룬 러시아 문학의 최고봉 중의 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격정적인 연애소설이 가능했던 것도 그가 귀족 출신의 작가라는 점이 한몫 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해본다. 그러나 이 소설이 안나 카레니나와 그 남편 카레닌, 안나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브론스키의 이야기만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격정적인 연애소설로서만 한 자리를 선점하였을 것이다. 연애소설 자체가 주는 매력과 불안과 괴로움, 질투, 증오, 광기의 감정들이 가져오는 인간적 고뇌, 심리적 통찰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에 대비되는 레빈과 키티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 놓음으로써 독자들이 더욱 극명하게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고찰하도록 만든다. 레빈과 키티가 인연을 맺기까지, 안나와 브론스크가 인연을 맺기까지 그들 모두의 인연의 고리가 얽혀 있음도 소설의 긴장감과 상처를 극대화시키며 한 단계 높은 진지한 성찰을 하도록 이끈다. "안나 카레니나의 당신의 나내로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자'는 말에는 인간의 도덕과 시선이란 것이 얼마나 넘어서기 힘든 현실인가를 분명히 담고 있다. 그녀 또한 순진하게 행복을 그려 보는 듯하지만 결국 이곳,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세상 모두로부터 버림받더라도,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던지더라도 당신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격정. 가슴 안에 생의 불꽃을 구원과도 같이 달고 있던 사람이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대상을 만났을 때 할 수밖에 없는 선택. 마음속에 폭발하기 직전처럼 부풀어 오른 열망을 간직하던 사랑이 그 촉매제를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도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전부를 걸고 만다."(「에필로그」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이유는 치명적인 사랑이야기가 주는 흡입력은 물론 제도와 가족의 문제, 19세기 러시아 귀족계급의 생활, 계급 간 갈등과 인간의 도덕적 모순, 농업 경영 문제,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박애주의 등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발전시킨 뛰어난 작가적 역량에 있다. 일찍이 토마스 만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고 한 점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라고 격찬하였으며, 실로 이 소설은 그 찬사에 어긋남이 없는 걸작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또 하나의 장점은 전지적 시점임에도 내면의 독백을 통해 인물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 계승자답게 탁월한 사실성, 사람의 내면을 다루는 심리적 통찰, 역사적 특징을 포착하는 능력에 감탄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소설은 격정적 사랑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삶에 대한 허무주의와 싸우는 등장인물(레빈으로 대표되는)의 이야기가 심도 있게 진행된다. 이는 톨스토이 자신이 젊은 시절 거부하지 못하고 즐겼던 쾌락적 유희와 뒤따라오는 허무함, 자괴감, 무의미함을 뼈저리게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처절히 괴로워하며 힘들어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귀족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직접 개선하지 못하는 자책감과 이렇게 살아서는 '인간도 나라'도 안 된다는 뼈저린 반성의 성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무상함, 정서적 불안정함과 여기에서 오는 정신적 위기는 톨스토이 자신이 고작 9살이던 때에 부모를 잃은 경험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적 자아와 실제 모습 간의 격차, 자신의 부부 사이도 『안나 카레리나』에 그려 놓은 레빈과 키티처럼 이상적이길 바랐으나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했던 현실, 문학을 포기하고 종교에 깊이 빠질 정도로 힘겹게 겪었던 삶의 위기 등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소설의 진정성을 더한다.



마음속에 폭발하기 직전의 열망을 간직하던 사람이 그 촉매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촉매제와 그로 인해 생성된 세상이 자기 세계의 전부인 듯 여겨지며, 자기 일생을 구원하여 신세계를 열어 줄 유일무이한 기적으로 여겨진다. 그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만큼 열망하기 때문에, 세상의 규범에 기반한 시선이 올바르게 느껴지지 않고 세상의 시선 따위는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모두에게 까발려진 인간의 도덕에 반하는 사건 뒤에 남겨지는 것은 한 인간의 성장이 아니라 파멸로의 귀결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더구나 불안정한 안나의 위치로 인해 사랑의 균형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위태로운 현실, 이어 오는 혼돈, 세상에 퍼지는 은밀한 소문들,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안나가 느끼는 압박감. 안나가 보이는 불안한 모습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거부하기 힘든 매력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녀가 한 남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이 멀어지면서 느끼는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그가 떠날까 봐 두려움에 급급하게 만드는 것이다.

‘안나는 그가 자기를 무거운 짐으로 아는 것도 자유를 버리고 자기한테 돌아오기가 서운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아무튼 그가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리고 그(사랑)에게 이끌려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에도 ‘안나는 제정신이 들어 자기의 결심을 깨뜨린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일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기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는 본문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 제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신을 부르짖으면서도 자신의 갈망을 이겨 내지 못하고 만다.



일반적인 자유라는 것의 매력을 맛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갈구할 대상을 만났을 때,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들을 말릴 수는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난 쾌락을 추구했고 그 유희를 탐하고 난 이후 몰려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더불어 작가적 명성에 뒤따라오는 막대한 부의 소유로 인한 괴로움,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사람들의 관심과 개인 사이에서 느끼는 모순 등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격차 때문에도 힘들어했고, 세상에서 그를 위선자로 바라보는 시선과 가족의 요구 사이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로 인해 톨스토이는 중년 이후 삶의 깊은 위기를 겪게 된다. 말년에 이르러서도 청빈함과 금욕을 추구하면서도 안락한 생활을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자신의 이상적 모습에 실제의 자신을 도달하게 하고자 저작권을 포기하려는 결심까지 한다. 이는 가족 간 불화를 절정으로 치닫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 풍부한 감수성을 갖는 톨스토이가 포용하는 감정적 영역이 컸던 만큼이나,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이성으로 인해 일상을 심각히 괴롭힐 정도의 자기반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청렴한 삶을 추구하고자 한 톨스토이의 의지는 그를 신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결과로 이끈다.



톨스토이의 오랜 고뇌가 반영된 『안나 카레니나』에는 오랫동안 소망하던 것의 완전한 실현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행복하다고는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의 면면이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결국 그 실물을 움켜쥐지만 대개의 경우 그 만족스런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왜 그러는 것인지는 본문의 다음 내용이 잘 말해 준다. ‘그는 곧 그러한 욕망의 실현은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행복의 커다란 산에 비하면 불과 한 알의 모래알을 얻은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행복이 욕망의 실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는 예의 과오를 범하고 또 깨달은 것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부제로 '복수는 내가 하리라. 내 이를 보복하리'라고 썼다. "이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세상의 어떤 만남은 아름다운 사랑과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어떤 만남들은 상처를 낳고 분노와 증오를 낳고 보복을 낳고 파국을 맞는다. 톨스토이가 그와 같은 성경 구절을 부제로 인용한 이유는 인간사에 어쩌지 못하게 벌어지는 그 일들을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인간의 자격 바깥에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터이다. 또한 『안나 카레니나』가 단순한 애정 소설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이 된 것은 사랑으로 인하여 변모하는 인간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제도와 도덕, 인간의 모순되는 부분까지 뛰어난 통찰력을 작품 안아 녹여낸 데 있다."(「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과 아홉 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 - 조선시대 살인사건 수사일지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다. 그는 개혁군주 정조 때 실학을 바탕으로 조선 부흥을 최일선에서 이끌던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그의 일생은 학자로서는 그의 학문이 꽃 피웠지만 정치가로선 오랜 유배 생활 등 파란만장했다. 더욱이 천주교 집안으로 낙인 찍힌 후 가문이 몰락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등 그야말로 불운의 정치인이다. 오랜 유배 생할 동안 집필한 수많은 책은 당시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한 총 5백여 권에 이른다고 하니 그의 학문의 깊이와 넓이에 감탄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가운데 그의 3대 저서로 일컬어지는 『목민심서(행정)』, 『경제유표』(경제), 『흠흠신서』(사회)는 독보적이고 신선한 저서로 알려져 후세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 중 『흠흠신서』(欽欽新書)는 18세기 조선의 과학수사 지식을 집대성한 한국 법제사상 최초의 판례 연구서다. 정약용은 당시 조선 사회에 강력사건의 수사 과정이 매우 형식적이고 불공정하게 처리되는 현실을 개탄하며, 지방관들이 사건의 진상을 올바르게 판단하여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수사의 기술과 지식을 담은 책을 집필했다.



『흠흠신서』는 한마디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이 저술한 형법서(刑法書)이다. 30권 1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508권의 정약용 저서 가운데 『경세유표(經世遺表)』·『목민심서』와 함께 1표(表) 2서(書)라고 일컬어지는 대표적 저서이다. 정약용은 살인 사건의 조사·심리·처형 과정이 매우 형식적이고 무성의하게 진행되는 것은 사건을 다루는 관료 사대부들이 율문(律文)에 밝지 못하고 사실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기술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에 다산은 생명존중 사상이 무디어져가는 것을 개탄하였다. 이를 바로잡고 계몽할 필요성을 느껴 집필에 착수한 것이고, 1819년(순조 19)에 완성 1822년에 편찬되었다.

내용은 경사요의(經史要義) 3권, 비상전초(批詳雋抄) 5권, 의율차례(擬律差例) 4권, 상형추의(詳刑追議) 15권, 전발무사(剪跋蕪詞)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사요의」에는 당시 범죄인에게 적용하던 『대명률』과 『경국대전』 형벌 규정의 기본 원리와 지도 이념이 되는 유교 경전 가운데 중요 부분을 요약, 논술하였다. 그리고 중국과 조선의 사서 중에서 참고될만한 선례를 뽑아서 요약하였다. 또, 중국 79건, 조선 36건 등 도합 115건의 판례가 분류, 소개되어 있다. 「비상전초」에는 살인 사건의 문서를 작성하는 수령과 관찰사에게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청나라에서 발생한 비슷한 사건에 대한 표본을 선별해 해설과 함께 비평했다. 독자로 하여금 살인사건 문서의 이상적인 형식과 문장 기법·사실인정 기술, 그리고 관계 법례를 참고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논술하였다.



「의율차례」에는 당시 살인 사건의 유형과 그에 적용되는 법규 및 형량이 세분되지 않아 죄의 경중이 무시되고 있는 사실에 착안하여 중국의 모범적인 판례를 체계적으로 분류, 제시하여 참고하도록 하였다. 「상형추의」에는 정조가 심리하였던 살인 사건 중 142건을 골라 살인의 원인·동기 등에 따라 22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각 판례마다 사건의 내용, 수령의 검안(檢案), 관찰사의 제사(題辭), 형조의 회계(回啓), 국왕의 판부(判付)를 요약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자신의 의견과 비평을 덧붙였다. 「전발무사」에는 정약용이 곡산부사·형조참의로 재직 중 다루었던 사건과 직접·간접으로 관여하였던 사건, 유배지에서 문견(聞見)한 16건의 사례에 대한 소개와 비평·해석 및 매장한 시체의 굴검법(掘檢法)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한국법제사상 최초의 율학 연구서이며, 동시에 살인사건을 심리하는데 필요한 실무 지침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법의학·사실인정학(事實認定學)·법해석학을 포괄하는 일종의 종합재판학적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 책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는 『흠흠신서』에 나오는 위 내용을 요약 발췌해 읽고 이해하기 쉽게 한자어를 우리말로 옮기고 것이다. 특히 36건의 살인사건을 선별하여 흥미진진한 해설과 함께 평역(評譯)했다. 정조가 직접 심리했던 사건의 구체적인 이야기와 진상을 밝히는 과정, 판결의 법률적 논리,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의견이 서로 얽히고설켜 한 권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정약용은 이 책에서 수사의 방법, 올바른 법률 적용, 나아가 판결의 원칙 등을 세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모든 사건에는 때로는 일치하지만 때로는 대립되는 정조와 정약용의 관점 차이를 볼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흠흠신서』에 등장하는 사건과 판례들을 보면 학연과 혈연을 방패로 은폐하고 왜곡하는 수사, 위정자들에 의해 무너지는 법질서 등 오늘날과 똑같은 부분들이 매우 많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사건들과 정약용과 정조의 생각을 읽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공감하는 가운데, 전혀 달라지지 않은 오늘의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산이 던진 질문을 곱씹어 보게 된다. “법은 누구의 편인가,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은 당시 그랬듯이 한자로 쓰인 책이다. '흠'자가 한글세대인 요즘 세대는 물론 한자 병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도 자주 대하는 글자는 아니다. '欽'자는 '공경할 흠'자로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겹쳐 쓴 것으로 보인다. 수사나 법 적용 등에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5개의 장은 역자가 간추리고 비슷한 조항을 묶어 한 개의 장으로 만들어 모두 5개 장으로 만들었다.



조선의 법 체계는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간통이나 가족의 살인에 대한 복수로 인한 살인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해 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심지어 형을 아주 가볍게 받거나 주범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을 경우 형을 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살인과 폭력은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허용이 안된다.

또 정조가 '서얼 철폐'나 '관노비 해방'이 시행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서얼제도를 철폐하여 서자도 관리로 등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실제로 규장각의 검서관에 4명의 서얼을 등용하였다. 이처럼 그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정책을 펼쳤는데 살인 사건의 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도 백성들에게 관대한 형벌을 내린 것 같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가 누가 주범인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형을 면해 주거나 가벼운 형벌을 내렸다. 억울한 옥살이를 피하게 해야 한다는 정조의 법 신념인 듯 하다. 옮긴이는 이에 대해 정조는 강력한 법으로 처벌을 하기보다는 죄를 지은 백성에게도 베풂(정치적 배려)으로써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히 했을 거라고 평가한다.



간통죄는 심각한 형벌이 가해진다. 간통한 배우자나 간통 상대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흠흠신서에 자주 등장한다. 그때는 간통이 빈번한 사회 문제였던 듯하다. 유교가 국가의 근본 이념이던 시절에 간통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은 역시 사회가 안정이 안 되고 형벌제도가 엄격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살인 사건에 대해 형벌을 주는 데 있어서 지금과 다른 잣대, 기준이 있었다. 간통 때문에 일어난 살인이나 가족의 살인의 경우 복수로 인한 살인이 어느 정도 허용이 되었던 것도 지금과는 다르다. 책에서 '윤덕규의 살인 사건'의 경우 본처의 아들이 첩의 아들을 죽인 후 내장을 꺼내어 목에 걸고 다녔다고 했다. 현재도 살인 후 시체를 훼손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사체 훼손 및 유기에 대한 형벌이 추가된다. 조선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다.

15세 미만(지금 만 14세 미만은 형사처벌 면제)의 살인사건 범죄자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다. 15세로 연령을 정한 것은 성인식을 해서 성인으로 인정 받는 나이가 15세였기 때문이란다.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친족의 살인사건 복수에 대한 살인에 대해서는 감형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현대는 사적 복수를 절대 허용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것이 놀랍다. 신분과 관습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마치 이슬람 사회에서 간통한 여인에 대한 '가족에 의한 살인' 뉴스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슬람 국가들은 대부분 가족에 의한 형벌이 인정되는 것 같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한다고 들었다.



저자 : 정약용

조선 말기의 실학자. 정조 때의 문신이며, 정치가이자 철학자, 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이며, 천주교 교명은 요안,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76년 정조 즉위 호조좌랑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 보고 그 학문에 감동받았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가 되었고,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를 거쳐 검열이 되었으나, 가톨릭 교인이라 하여 탄핵을 받고 해미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고, 1799년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 신유교난 때 장기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저서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정다산전서』 『아방강역고』 『마과회통』 『자찬묘지명』 『맹자요의』 『논어고금주』 『춘추고징』 『역학제언』 『상서지원록』 『주역심전』 『사례가식』 『상례사전』 『악서고존』 『상서고훈』 『매씨서평』 『모시강의』 『삼미자집』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다시 강에서 만난다 1 - 나의 친구 두우쟁이에게
이상복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누구나 사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을 가진다. 첫 번째 부모(가족)와의 만남이고, 두 번째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우자와의 만남이다. 이 가운데 이 책 『우리는 다시 강에서 만난다』는 친구와의 만남이 주제가 된 소설이다. 물론 평생 함께 지낼 친구와의 만남은 대부분 아무 이해 관계가 없는 어린 시절에 그 관계가 시작된다. 또 그런 사이여야 평생 어떤 곡절이 있어도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사회에서 만나 친구 관계를 맺는 경우도 좋은 우정이 오래 지속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린 시절의 '죽마고우', 'OO친구'를 가장 친한 친구도 꼽는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속담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닐 터다.

친구는 오래 될수록 정도 쌓이고 우정이 굳세어져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고사(故事)에서도 친구의 관계를 찬양하는 글이 많다. 동서고금에 모두 친구와의 만남은 개인의 가장 중요한 인간 관계의 하나로 친다. 사실 '좋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는 말도 친구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우정이 깊은 친구 사이는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우정(친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도 심심찮게 듣는 미담이다. 이 소설은 친구에 대한 헌사로도 읽힌다.



이 소설은 우리 나라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저자의 자서전적 작품이다. 가난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내일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으려 성실하게 몸부림치는 소년 이칠복의 먹먹하면서도 따뜻한 성장 이야기다. 이 작품은 여덟 살 칠복이의 세 동생 중 첫째 동생인 숙이가 폐렴으로 세상과 작별하는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된다. 병원은커녕 물에 소금만 넣어 끓인 소금국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지독히도 가난했기에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무력하게 숙이를 떠나보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서러운 눈물 냄새를 맡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날, 칠복이의 그림자에 문신처럼 결코 지울 수 없는 짙은 우울이 드리운다. 한 달 뒤 둘째 동생 순이마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자 부모님은세상과의 이별을 마음 먹는다.

"아부지, 죽지 마요. 내가 있잖아요. 아부지하고 엄마가 죽으면 나하고 철이는 어떻게 살아요."

칠복은 눈물로 호소하고 남은 식구 4명은 하염없이 부둥켜안고 눈물만 흘린다. 암담한 심정을 생각하면 독자의 코끝이 찡하다.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지난하고 지난한 시절, 갈등과 방황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무와 염세에 빠진다.



어려운 때를 생각하고 지금을 견뎌내는 지혜를 전해주려 하면 '꼰대' 소리나 들을 그 말이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가슴 먹먹한 감동과 공감을 준다. 가난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내일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으려 소년 이칠복은 성실하게 몸부림친다. 지난하고 지난한 시절, 갈등과 방황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무와 염세에 빠져 있던 칠복이 앞에 동급생 명훈이가 나타난다. 마치 농사에 있어 중요한 절기인 4월 곡우 때 비와 함께 나타난다는 귀하디귀한 물고기 두우쟁이처럼. 저자는 친구 명훈을 '두우쟁이'로 표현한다.

세상살이에 들볶이고 가난에 허우적대는 나날에도 생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온 칠복이.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봄여름가을겨울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만 되면 어둠을 뚫고 나가 숨이 차도록 달리며 신문을 배달하던 소년 이칠복의 성실한 생명력과 즐거운 날에도, 친구들과 노는 날에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왈칵 느닷없이 떠오르는 수많은 죽음과 이별의 파편에 잠식되는 소년 이칠복의 예민한 감정선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고 자신에게조차 들키지 않으려 초조해하던 산업화 세대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어느 사람을 불현듯 떠오르게 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겐 말로 표현해봐야 알아주지도, 알아듣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아부지, 죽지 마요. 내가 있잖아요. 아부지하고 엄마가 죽으면 나하고 철이는 어떻게 살아요.”

나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아버지 팔에 매달렸다. 서러움에 복받친 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면서 서러운 울음을 토해 냈다.

내 볼을 타고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도 몸을 떨며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우리는 울음을 멈췄고 방 안에는 쉽게 깨어지지 않을 정적만이 감돌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팠다. 하지만 차마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윙윙거리는 찬 바람이 거세게 불며 방문과 창문을 뒤흔들고 있었다. 춥고 긴 이 밤이 지나면 그 무엇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텅 빈 내일이 오리라. 차라리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1권, pp.21~22)

아직 분을 삭이지 못한 아버지는 연거푸 담배를 빨아대면서 호통을 쳤다. 아버지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준다면 나는 얼마든지 착하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무슨 일이고 저질러놓고야 말테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던 나는 속으로 결코 아버지가 들어줄리 만무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그날 나는 동철이와 싸우면서 굳게 결심했었다.

‘나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걸면 어느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겠다.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이 있으면 기꺼이 죽어 주겠다.’(1권, pp.61~62)



반 아이들 중 누구에게도 내가 신문 배달하는 것을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신문 배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조차 두려웠다. 신문 배달을 한다는 것은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가난한 집 아이들은 사고뭉치가 흔하다고 여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가 가난한 집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반 아이 중 어떤 놈도 나와 사귀려 들지 않을 거라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철저하게 혼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집 근처까지라도 동행할 만한 친구를 아쉬워했다.(2권, pp.30~31)

그때 나는 몹시 외로움을 탔고, 인생살이에 힘겨워했고, 사람이 몹시도 그리웠고, 누군가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던 때였다. 나는 유년 시절의 어둡고 막막한 통로를 지나면서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 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다. 신문을 돌리고부터는 고달픈 세상살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 학교에 대한 싫증과 짜증으로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이때 명훈이가 나타났고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농사에 있어 중요한 절기인 4월 곡우 때 나타난다는 두우쟁이는 내게 있어서 명훈을 두고 한 말 같았다. 때를 맞추어 내게 나타났던 두우쟁이는 내게 물보라를 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두우쟁이의 죽음으로 내겐 또 하나의 외로움이 오한처럼 엄습하고 있었다.(2권, pp.96~97)



이러한 기적은 내 뒤에 명훈이가 있었기에 일어난 것이었다. 명훈이가 내 친구라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나는 내 석차를 확인한 후 명훈이에게 달려갔다. 명훈이네 반 교실에 가서 명훈을 불러냈다.

“명훈아, 내가 우리 반에서 6등을 했대. 담임한테 지금 확인한 거야. 완전 기적이야. 기적!”

이때 명훈이가 좋아하면서 기뻐했던 그 표정이 내 뇌리에 완전히 박혀 있다.

“그래, 칠복아. 정말 잘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2권, p.138)

저자 : 이상복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법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전문분야 법학연구과정(금융거래법)을 이수했다. 사법연수원 28기로 변호사 일을 하기도 했다. 미국 스탠퍼드 로스쿨 방문학자,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거쳐 서강대학교 금융법센터장 및 법학부 학장, 법학전문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외부감사법》, 《외국환거래법》, 《금융소비자보호법》, 《자본시장법》, 《금융법강의 1~4》 등 법학 관련 20여 종이 있다. 철학과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행복을 지키는 法》, 《자유·평등·정의》, 에세이 《방황도 힘이 된다》를 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저자 로버트 판타노가 제목처럼 죽음과 동행하며 자기 내면의 지도를 따라 스스로 문답한 내용을 꼼꼼이 적은 기록이다. 내게 남은 모든 순간에 죽음이 함께한다는 뼈아픈 인식 아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다양한 철학적 주제는 저자 자신뿐 아니라 그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서른다섯의 소설가인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의 이른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악성 뇌종양이었다. 갑작스럽게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그는 자신의 삶을 억지로 변화시키지 않고 자신이 이제껏 살아왔던 대로 살기로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글쓰기는 그가 언제나 해왔던 일이었다. 평소에는 멀리 있는 것처럼 인식하지 않고 살지만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 중에 가장 두려운 질문은 단연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급적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 살아가는 동안 일상 대화에서 누군가 죽음을 얘기하면 불길하게 생각하거나 제지한다. 내 일은 아니라는 듯이.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데 붙어 있다. 그래서 더욱 애써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살아 있는 동안 삶에 더욱 집중할 뿐이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감춰둔 죽음은 우리 일상에서 일견 자취를 감춘 듯이 보인다. 특히 평소엔 절대 마주칠 일이 없던 '나의 죽음'은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와 같은 죽음의 실재를 다루는 이야기를 통해 불현듯 나타나기도 한다. 자기 자신과 이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던져진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애써 피해왔던 그 질문, 죽음을 마주하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죽음은 필연적으로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애써 피해 왔던 죽음의 문제가 마치 자신에게 다가온 것처럼 느껴질 땐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유쾌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 다가올 것이면 한 번쯤 미리 생각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죽음의 문제를 수용하게 되면 경건해지고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이지만 새로운 삶을 사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에게 시간이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삶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등 곰곰이 곱씹어볼 만한 질문부터 확실한 답이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한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복잡한 사람 사이의 관계, 대화의 어려움, 남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가족,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진심 등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삶의 불확실성에 근거한 답이 없는 우리 삶의 미완의 문제들을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겹쳐 보다 보면, 자기 안에서 단서를 찾는 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끝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자기 자신과의 화해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저자의 의지를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나약함과 동시에 그를 뛰어넘는 강인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단서가 타인이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죽음의 문제는 이로써 새로운 삶을 위한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또는 죽음을 앞당기는 불만족한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간혹, 아주 간헐적으로.

 


 

책에 따르면 죽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삶의 불안과 공허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쳇바퀴 안에서 똑같이 돌고 도는 우리의 삶에 긴장감을 더하기도 한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죽음이라는 혼돈 속에서, 균형을 잡고 일종의 평화를 찾은 저자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아주 무겁고 어두운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죽음 곁에서 그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유한한 삶에 어떤 가치와 경이로움을 찾을 수 있는지, 온 힘을 다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우리 삶에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결국 삶과 죽음은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고 오롯이 혼자 겪는 일이다. 때문에 그의 여정을 함께하는 일은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살면서 나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수만의 군중 속에 있을 때도 각각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개별적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두뇌마다 다르게, 순간마다 다르게, 한 번이자 영원토록 홀로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희망이어야만 한다.” (p.75)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시작점을 선택할 수 없다. 최초의 우리는 우연에 의해 자신이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태어났든 우리는 ‘나와 조화를 이루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다.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으며 진짜로 빛나고 있는 바로 지금’이다. 죽음에 대한 질문은 그렇게 바로 이 지금에 대한 의미를 상기시킨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지금의 우리에게 생의 감각을 일깨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이해나 완벽한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이 여정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여정과 모르는 여정은 분명 차이가 있다. 죽음은 내 안에 고여 있던 생의 감각, 삶을 향한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나 자신과의 대화는 나 자신뿐 아니라 주위를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내 안의 감정, 말과 행동, 가족, 친구, 흘려보낸 하루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이 생 안에서의 딱 하루, 오늘, 지금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으며 진짜로 빛나고 있는 바로 지금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뿐이지 않을까. 나의 자아와 모든 시공간을 딱 한 번만 지나가는 이 시점의 나. 이것이 내가 믿는 전부다.” (p.91)

 


 

삶에 정답은 없다. 죽음을 곁에 두고 쓴 그의 글도 결국은 정답 없는 질문뿐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기록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하루가, 그의 마음이 언젠가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생의 끝자락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끝에서 남긴, 존재의 증명이기도 한 그의 기록은 그래서 삶을 향한 열렬한 고백으로도 느껴진다.

그의 글을 통해 죽음이 당장 나의 이야기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나의 이야기의 가장 끝에 올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마지막 날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 : 로버트 판타노(ROBERT PANTANO)

 

165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PURSUIT OF WONDER〉와 같은 이름의 프로덕션 회사의 창업자이자 기획자이다. 〈PURSUIT OF WONDER〉는 철학, 과학, 문학에 바탕을 둔 주제와 단상을 짧은 이야기와 영상 에세이 안에 담아 소개하는 채널이다.

 

역자 : 노지양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와 EBS에서 라디오 방송작가로 활동하다 번역가가 되었다. 『트릭 미러』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동의』 『케어』 등 90여 권의 책을 옮겼고, 에세이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와 『오늘의 리듬』을 펴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