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 - 버닝썬 226일 취재 기록
이문현 지음, 박윤수 감수 / 포르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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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버닝썬 클럽 사건의 빅뱅 전 멤버 승리가 항소장을 제출했다. 승리는 징역 3년에 추징금 11억 5690만원을 선고한 1심 재판 결과에 불복, 19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승리는 2019년 버닝썬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강남 클럽 버닝썬은 성범죄, 마약유통, 공권력 유착 등 여러 의혹에 휩싸였고 승리는 버닝썬의 이사로 경영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여러가지 정황은 그가 사실상 버닝썬의 중요 인물이었다고 가리켰다. 이에 승리는 직접 강남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며 자신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성접대 의혹 등 혐의가 거듭 추가되며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경찰은 승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승리는 불구속 기소됐고 검찰 또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이 또한 기각되며 승리는 2020년 3월 강원도 철원에 있는 육군 6사단 신병교육대로 입소했다. 이에 승리에 대한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지상작전사령부 군사법원으로 이송됐다.

승리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알선 등, 성매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상습도박, 외국환 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 횡령, 특수폭행 교사 등 9개 혐의로 기소됐다. 승리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대부분의 범행이 배우 박한별의 남편이자 유리홀딩스 전 대표인 유인석의 독단으로 이뤄졌으며, 자신은 성매매를 하거나 성매매를 알선할

이유가 없었으며 상습도박이나 특수폭행 교사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경찰이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 수사를 펼치며 자신을 구속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찰조사와 검찰 조사, 법정에서의 진술이 계속 바뀌어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9개 혐의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지난 20일 모 스포츠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독자는 이 기사를 보고서야 버닝썬 사태를 기억해냈다. 그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 전후로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새로 들어선 정부의 개혁에 관심이 더 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강남 일부 돈 많은 집안의 일탈 행위와 일부 연예인이 관련됐다는 수사 결과를 믿었기 때문이다. 경찰 유착은 더 이상 없으며 관련된 경찰관은 이미 징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버닝썬 사건은 잊혀져 갔다. 이 책이 나와 눈에 띄기까지는.

이 책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는 당시 버닝썬 사건의 발생과 과정, 결과를 모두 기록한 일선 취재기자의 기록이다. 1년 가까운 226일의 취재 기록을 가감없이 취재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저자는 다른 내용은 지금 재판을 하고 있어 더 지켜봐야 하지만 경찰 유착 부분에 적잖은 의문점이 있어 책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버닝썬은 어떻게 강남 한복판에서 마약과 성폭행을 자행하고 법망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책에 따르면 MBC 사회부 기자였던(현 MBC 보도본부 경제팀) 저자는 버닝썬이 법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경찰과 버닝썬의 유착 관계’를 의심한다. 이를 추적하던 저자는 ‘경찰이 버닝썬 대표에게 돈을 받고 버닝썬의 문제가 될만한 사건을 덮어 줬다’는 내용의,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는다. 버닝썬 보도 이후 경찰은 셀프수사를 했지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경찰관과 뇌물을 준 것으로 의심되는 이는 결국 각각 불기소처분을 받고 무죄를 확정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버닝썬 게이트의 시작점이었던 ‘버닝썬 폭행 사건’에서 경찰이 클럽 직원에게 폭행당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 체포한 것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사관이 뇌물수수죄가 아닌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죄로 기소된 것까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법원의 공식적인 판결은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버닝썬 게이트'를 단독 최초 보도하고 계속해서 취재했던 저자는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도되지 못했던 ‘버닝썬과 경찰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전하며 독자의 생각을 묻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사건이 시작될 때 큰 관심을 갖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사건이 마무리될 무렵부터는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한 것이 우리 일반 사람들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들 일탈 사건에 대해서는 욕이나 한 번 해주고 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공인일 경우는 다르다. 공인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맞부딪치는 사람들이다. 또 일반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들에 봉사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를 했다면 마땅히 처벌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공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큰 이유다. 우리가 기억하는 ‘버닝썬’은 어떤 사건인가? 클럽에서 일어난 단순 폭행 사건일 뿐일까? 하룻밤 술값으로 수천만 원씩 쓰는 VIP들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연예인의 성매매·성폭행 사건? ‘버닝썬 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우리가 ‘버닝썬’에 관심을 두지 않는 동안 폭행을 일삼고, 마약을 하고, 탈세를 저지르는 등 악행을 저지른 ‘몸통’들은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되거나 해외로 도피해 처벌을 피했다. GHB, 이른바 ‘물뽕’을 이용한 성범죄를 막기 위해 발의되었던 ‘약물 성범죄 처벌 개정안’도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주장한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다시 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버닝썬을 다시 불러온 이유다. 버닝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개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제2, 제3의 버닝썬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무관심은 여전히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그들이 활개 칠 수 있는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피해자였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물어야 한다. “왜 그들을 처벌하지 않았습니까?”



독자 역시 일반인들처럼 사건 당시 큰 관심을 가졌지만 이내 잊고 말았다. 이후 사건 처리는 죄가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법 제도가 허점이 있었다면 법을 보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또 신종 마약인 이른바 '물뽕'이라 불리우는 GHB가 사용되고 있다면 당연히 발본색원해서 마약의 유혹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승리가 재판에 회부됐다는 보도를 끝으로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니 사건의 종결부터가 잘못된 점을 알게 되니 분노가 치민다.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했던 저자의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싶다.

저자는 버닝썬의 마약 유통 사건, 성범죄 사건, 탈세 사건, 그리고 경찰과의 유착 의혹까지, 버닝썬 게이트의 사건뿐 아니라 이후의 판결까지도 상세히 이 책에 담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의 무관심이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버닝썬 게이트는 ‘승리 게이트’라고도 불렸다.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가 버닝썬의 대표이사였기 때문이다. 승리는 유명인인 만큼 화제가 되었으며, 그 결과 승리는 군 검찰로부터 징역 5년과 벌금 2,000만 원을 구형 받았다.(앞서 승리의 유죄 내용은 1심 선고 결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약 유통책으로 지목된 자, 성범죄를 저지른 자,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의심되는 자, 승리를 도와 탈세를 주도한 자는 모두 법망을 빠져나갔고, 일부는 해외로 도주해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몇 명만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데 그쳤다. 결국, 남은 것은 이해되지 않는 판결과 가해자 없는 피해자들뿐이다. 저자는 ‘가치 있는 보도를 했다는 만족감에 취해 이후의 수사 과정을 쫓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 ‘버닝썬 게이트’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뒤늦은 보도를 한다. 그리고 버닝썬 게이트와 같은 다른 악랄한 범죄 사건에도 시민이 눈을 떼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같은 범죄는 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어쩌면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철저하게 법을 빠져나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일반 형사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암흑가나 유흥업소,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관련 법을 잘 알기도 하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데에도 거의 '신기'를 보여준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돈을 위해 범죄인 줄 알면서도 뻔뻔하게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돈을 벌어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들고, 그게 그렇게 넘기기 어려운 유혹인가도 싶다. 정직하게 땀 흘려 버는 돈의 소중함을 알고, 때문에 그렇게 번 돈을 지켜주자는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돼야 하는데... 독자의 바람은 정말로 헛된 바람인가?

저자 : 이문현

기자를 한 번 그만뒀다.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유족에게,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인의 ‘이유’를 물어보라는 취재 지시를 받았다. 납득이 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유사한 일이 반복됐고 결국 9개월 만에 첫 기자 생활을 접었다. 연봉이 높고 '워라밸' 좋은 '일반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회사와 언론사, 둘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끝까지 고민했다. 사실 그런 척했다. 결국 2014년 1월 다시 신입 기자가 되었다.

거대 담론을 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게 좋다. 그리고 그게 더 잘 맞다. 세상 떠들썩한 이슈는 못 되겠지만,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주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걸 믿는다. 그게 다시 이 직업을 택한 이유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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