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 모모푸쿠 - 뉴욕을 사로잡은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이 들려주는 성공하는 문화와 놀랍도록 솔직한 행운의 뒷이야기
데이비드 장 지음, 이용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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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이라 하면 흔히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미화시키거나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은 대부분 그렇다. 그래도 과장이나 미화 정도면 괜찮다. 자신의 일생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쓰니 약간의 과장은 이해 가능한 수준일 경우 누구든 시비 걸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왜곡도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다. 정치인이라면 자칫 과장이나 왜곡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자들이 이미 겪고 알고 있는 사실이다. 때문에 독자도 거짓을 쓰라는 말이 아니라 드러낼 필요가 없다면 안 써도 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일반 사람들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볼 때 한해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자서전이라기보다 참회록에 가깝게 읽힌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쓴 자서전보다는 열심히 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이 후세를 위해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교훈적인 의미에서 쓴 것처럼 자신의 과거 잘못된 행동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위 사진은 저작권법 위배 없이 사용 가능한 사진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네이버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진은 토론토 모모푸쿠.


이 책 『인생의 맛 모모푸쿠』의 저자 데이비드 장은 지난 201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예술가 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이 분야 25명 중 19번째라고 한다. 그는 2004년 뉴욕에 일본식 라멘을 재해석한 ‘모모푸쿠 누들 바’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쌈 바’, ‘코’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평단과 미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그는 한인 2세대 교포로 미국에서 수십 년간 이방인처럼 살아왔다. 그런 그를 지탱해온 것은 우울증, 마약, 술과 같은 중독된 삶이었다. 어떻게든 버텨내기 위해 요식업계에 뛰어들었지만, 녹록지 않은 이 세계에서 그는 자주 좌절했고 방황하면서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 책은 성공한 셰프, 사업가, 방송인이라는 찬란한 겉모습 뒤에 감춰진 데이비드 장의 솔직한 자기 고백으로 자서전 성격의 책이다. 저자 역시 자서전임을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인 데이비드 장은 지난 2004년 뉴욕 이스트 빌리지 1번가 163번지에 색다른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차렸다. ‘모모푸쿠 누들 바’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 식당의 주인인 데이비드 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뉴욕 요리학교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The French Culinary Institute)를 졸업하고, 유명 레스토랑인 크래프트와 카페 불뤼에서 경력을 쌓은 후 이곳에 개업했다. 그때 그는 ‘족보도 실력도 없고, 존중할 줄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경험이 미천한 초보 셰프였다.

그리고 10년 후 그는 미쉐린 별 두 개를 받은 ‘모모푸쿠 코’를 비롯해 20여 개의 유명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모모푸쿠 레스토랑 그룹을 이끄는 기업주이자 성공한 셰프가 됐다. 저자는 이후 넷플릭스 [어글리 딜리셔스], [데이비드 장의 맛있는 하루] 등에도 출연하며 미국에서 손꼽히는 셰프이자 사업가가 된 것이다. 그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한인 2세대 교포로 사업을 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밑에서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자라났다. 어려서는 골프 신동으로 잠깐 성공의 맛을 보기도 했지만, 슬럼프를 겪으며 프로 무대는 밟아보지도 못한 채 금세 그만두게 되었다. 결국 그는 20대 초반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 주방에서 칼을 잡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조울증을 앓고 있을 정도로 힘든 상태였으나 오히려 미친 듯이 요리에 매달리며 ‘죽지 않기 위해’ 모모푸쿠 누들 바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다행히 사업은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사실 그의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소용돌이와 다르지 않았다. 저자에 책을 통해 밝혔듯 주방에서는 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실패했고, 밖에서는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릴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게다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도 미숙해서 정신과 약과 상담으로 연명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막다른 골목에서 답을 찾아냈다. 만족시키기 어려운 고객과 꼬장꼬장한 음식 평론가와 답답한 행정 부서와 늘 옥죄는 은행과 온갖 문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평단과 미식가들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거머쥐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을 통해 성공에 대한 열망과 달콤한 복숭아 같은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은 데이비드 장의 어린 시절과 모모푸쿠의 성장을 담은 1부, 사업이 무르익으면서 겪은 부침과 요식업계 전반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담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2부에서 저자는 그간 거의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요식업계의 성 불평등 문제, 주방의 폭력적인 문화 등을 이야기하며 자신도 그에 일조했음을 반성한다. 솔직하고 용기 있는 결정이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성추행 문제가 터지면서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요식업계 역시 이 문제를 비껴가지 못했다고 한다. 존 베시 레스토랑 그룹을 운영하는 미국의 유명 셰프 존 베시가 수십 명의 부하 직원을 성추행하고 다른 남자 셰프의 성추행도 방임한 일이 드러난 것이다. 데이비드 장은 이 문제를 언급하며 레스토랑 업계에 만연한 성차별과 폭력적인 분위기를 언급했다. 남성 요리사이자 권력을 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애써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고 밝힌다.

그 연장선으로 그는 모모푸쿠 그룹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한 여성을 CEO 자리에 앉히고, 그룹 내에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시스템을 개선해나갔다. 아울러 전통적인 주방의 군대 문화가 조직 운영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 회사 내에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창구도 마련했다. 그는 여전히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주방을 떠나지 않고도 성장의 기회를 잡기를 희망한다.” 자신을 살렸지만, 다른 많은 이에게 상처를 입히고 배신한 이 업계가 변화하길 바란다. 물론 이 일은 그의 바람대로 모두가 함께 “그렇게 만들려고 애써야만 가능”하다고 기꺼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한 서른세 가지 규칙’을 실었다. 이것으로 주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절대 녹록지 않은 현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기꺼이 함께하자는 마음으로 손을 내민 것이다. 이제 데이비드 장을 단순히 셰프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이제 공적으로는 사업을 운영하고, 책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며, 개인적으로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온갖 일을 저글링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 문화와 사건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보듯 복잡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다 보면 결국 그의 메시지는 삶에 대한 집념과 요리에 대한 애정이라는 중심으로 모임을 발견하게 된다. 치열한 자기만의 철학으로 온갖 난관 속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수 있다.

 

저자 : 데이비드 장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셰프. 한인 2세대 교포로 대학 졸업 후 여러 나라와 직업을 전전했다. 자신이 책상에 앉아 일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뉴욕 명문 요리학교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The French Culinary Institute)에 들어갔다. 이후 그저 그런 요리사였지만 2004년 ‘언더그라운드 음식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올 수 있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겨 맨해튼의 좁고 구석진 공간에 모모푸쿠라는 이름의 작은 누들 바를 차렸다. 주변에서 다들 뜯어말린 이 ‘멍청한 선택’ 덕분에 2010년과 2012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이름을 올리며 요식업계 트렌드를 이끄는 전 세계적인 셰프가 됐다.

그는 ‘누들 바’를 연 이래 평단과 마사 스튜어트 등의 미식가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나날이 성장했다. ‘쌈 바’, ‘코’, ‘푸쿠’, ‘메이저도모’, ‘밀크 바’ 등 거의 매년 새로운 레스토랑을 개업했고, 현재 뉴욕, LA, 라스베이거스, 워싱턴 DC, 시드니, 토론토 등의 도시에 20개가 넘는 레스토랑·카페·바 등을 거느린 ‘모모푸쿠 레스토랑 그룹’을 운영 중이다.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최고 영예인 ‘최우수 요리사’를 포함해 네 차례나 수상했고, 2008년 ‘코’로 미쉐린 가이드 별 두 개를 받은 이래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넷플릭스 <셰프의 정신> <어글리 딜리셔스> <데이비드 장의 맛있는 하루> 등을 제작하고 출연하는 등 각종 방송 활동, 잡지 발간, 칼럼, 팟캐스트 진행 등 다양한 매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뉴욕의 맛 모모푸쿠』가 있다. 솔직함과 치열함, 유머로 가득한 『인생의 맛 모모푸쿠』는 데이비드 장의 굴곡진 연대기인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일상에서도 맛있게 인생을 요리하는 노하우를 전수해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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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월중 행사표 옵빠야! 5
엘튼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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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원래 기능은 언어로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안정케 하는 데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억눌린 감정이나 욕구를 분출시켜 내버리고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것이 시로, 소설로, 또 다른 문학적 장르로 나나타는 것은 표현의 영역이다. 문학은 언어(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文, 글)학이고, literature(letter)이다. 옛날에는 글(문자)은 귀족, 양반(조선시대) 등 지배층이 사용하고 일반인(농부, 어부, 상인, 천민, 노예)이 사용할 수 없었다. 글을 알면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깨우치게 되고 피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문자다. 언어는 남 따라 하면서 배울 수 있지만 글은 별도로 배워야 소통하는 본래 목적에 다가갈 수 있다. 한자(漢字)는 한나라 때 발명된 문자지만 그 이전부터 갑골문자 등 상형문자가 발전돼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서 수천 년 전부터 발명돼 사용돼 왔다.

공자가 살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에 글자는 지배층 권력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남성 위주의 시대다. 여성은 사회 생활(당시에는 관직에 등용되는 것)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공자는 인간의 삶의 원칙을 제시한 학문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학문으로 정치를 해야 하고, 인(仁)으로써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사상은 지금도 유효해서 널리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때도 사람의 감정은 같지만 표현은 피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달랐다. 화가 나서 분노를 말로 표시할 때 사용하는 것이 욕, 욕설이다. 주로 사람 몸의 일부분이나 동물을 일컫는 것이 많다. 특히 문자로 표현할 때는 여성을 비하는 표현이 많이 들어간다. 노비, 간음 등의 문자 표현엔 모두 계집 여(女)가 사용되는 이유다. 여성은 차별이 아니라 비하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시인들은 표현의 자유가 있다. 어떤 글, 문자를 사용하더라도 협박, 허위 등의 표현이 아니라면 법적 제재를 받지 아니한다. 비웃는 표현도 폭넓게 허용되고 있다. 특히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표현이라면 허위가 아닐 경우 신랄한 비판도 허용된다. 그만큼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신장된 탓이다. 민주주의 국가이어서 그렇다. 이를 바탕으로 풍자시, 해학적인 시에서의 거친 표현, 성 비하 표현 등이 허용된다. 다만 비하적 표현이 글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으면 윤리적 제재를 받을 뿐이다. 정치적 풍자를 하는 시에서 자주 보여지는 비유적 표현들이 허용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말과 글의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다고 호평을 받기도 한다.그러나 사회 현상을 해학적으로 하는 표현에 있어서는 스스로 윤리적 잣대를 시인 자신에게 들이대는 것 같다. 이는 시인에게 윤리적으로 부적절하고 도덕적 결함이 있다는 비판을 독자들로 받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그 생각의 틀은 쉽사리 깨지지 않는 틀이다. 시인 스스로 도덕적 결함을 드러내는 순간 시인으로서의 대접 받기를 포기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관념 또한 깨기 어려운 틀이다. 시인은 말을 조탁해서 가꾸고 아름다운 말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인식 말이다.

이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 시를 보는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풍자와 해학도 점잖은(?) 표현을 써야 한다는 게 시인, 독자 모두의 생각이다. 그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은 독자이지 시인이 아니다. 독자가 허용하면 시인들은 거친 표현이나 비하 표현을 쓰는 데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도 대부분 글을 아는 사람이고 세상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이다. 다른 표현도 있는데 굳이 시인이 거칠고 비속어를 남발하는 시를 쓴 데 대해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공동 사회를 살 만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굳이 거친 언어와 비속어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 『카사노바의 월중 행사표』를 읽으면서 독자의 생각이 착잡하다. 시집에 비속어나 거친 표현이 많아서가 아니다. 시인이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욕망에 사로잡히고, 성 문화가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왜 시인은 거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을까? 표제어가 된 시 「카사노바의 월중 행사표」에서 시인은 30일 한 달 동안 30명(하루 쉬니까 29명)의 각기 다른 여성들과 만날 계획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헤서 화자(話者)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여성들을 농락하고 거기에 여성들은 장단을 맞출 것으로 화자는 생각한다. 화자가 그렇게 생각하기까지는 그 여성들의 속성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표현들이 줄을 잇는다.

'날밤 까기' '취한 척 개기고 자고 와야지' '원나잇' '끌어안고 비벼대야지' '모텔' '못 해본 체위 다 해봐야징' 헤어지기 위해 '불치병이라고 속이기' '차에서 모모' 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차박' '키스만 가지고 되겠나' 떡실신 시켜야지' '밤 봉사 활동' '홧김에 서방질' '복상사' 등의 말이 난무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일들이 예사처럼 번져 있다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건 아닐까. 옛날 풍속 우화집 『고금소총』이 생각난다.

 


 

이후 수십 편의 시들은 좀 더 구체적인 남녀의 관계에 대해 노골적인 표현으로 일관한다. 주제가 꼭 성(性)이 아니더라도 성적 결합을 연상케 하는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 알고 보면 비유적 표현임이 확실한 것들도 많다. 다음은 퇴근 후 독수공방하며 TV를 보는 남자에 대한 시다.

 

이 남자가 사는 법

 

나는 현재 마누라가 7명이다

그리고 가정부가 한 명 있다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가종부 지니에게 말한다

지니야 티비 틀어줘!

 

그리고 티비 드라마에서 열심히 열연하고 있는

첫 번재 마누라에게 말한다

여보 당신 연기 너무 잘한다

역시 내 마누라야!

 

(중략)

 

드디어 쌍둥이 아빠가 되다...

저의는 오늘부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동안 저를 흠모해주셨던 여성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고

그녀와 동침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 쌍둥이를 낳고 말았습니다.

 

(하략)

 


 

시인은 이 시집의 마지막 시 「봄바람」을 동화처럼 썼다. 앞의 수십 편의 시와 다르게 맑고 여린 마음을 봄바람을 표현한다. 이 시는 시인의 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궁금하다. 강하고 저돌적인 표현들로 위험 수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던 표현의 기세가 다름을 느끼는 것은 독자 한 사람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봄바람이 분다

내 가슴에

 

님의 향기가 난다

봄바람 속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님의 소리가 들린다

 

님은 벌써 가고 없다

여름을 만나러

 

내 마음만

봄바람에 살랑거린다 (전문, 全文)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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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 아픔을 딛고 일어선 청소년들의 살고 싶다는 고백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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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지난날의 아픔을, 목격하거나 직접 겪었던 상처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우울한 시기를 지나는 개인도, 침체된 분위기의 사회도 우울을 동력 삼아 움직일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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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 아픔을 딛고 일어선 청소년들의 살고 싶다는 고백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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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 소통이 꽉꽉 막힌 지 거의 2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수억 명이 확진되고 수백만 명의 사람이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각 미디어는 전하고 있다. 사람간 일상을 유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소통마저 막히자 우울증세를 호소하는 등 감염의 간접 피해를 겪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겨났고,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팬데믹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자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블랙(사망)이라는 단어마저 나돌았다. 물론 백신 발명 및 치료제 생산 등의 희소식도 들려왔지만 아직도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젠 '위드 코로나'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형국이다.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의 중증 악화를 감소시키고 사망률을 떨어뜨리는 의학적 성과를 이룬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코로나 세균이 없어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백신과 치료제로 버티면서 일상을 서서히 되찾아야 한다는 각 나라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위드 코로나는 백신 2차 접종 완성률이 70%를 넘긴 상태에서 경제 활동 등 최소한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고도로 발전된 현대 의학도 아직까지는 정신ㆍ심리적 이상 증세에 대한 특효약이나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상태다. 상태 악화를 중단시키거나 더 이상 발전을 늦추는 정도가 현재의 의학이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직접 감염으로 인한 피해보다 간접 피해 상황에 대한 대처 태세로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신ㆍ심리적으로 한참 밝고 긍정적인 발전을 해나가야 할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예민한 상태다. 어렸을 때의 심리적ㆍ정신적 안정 없이 심한 충격은 이상 증세를 보일 수 있고 이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기도 한다.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이상 심리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적절한 약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불가피하게 사회로부터 격리 치료를 한다지만 이마저도 약물보다는 '격리'에만 무게를 둬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과 의사들은 이들 청소년의 심리를 이해하고 돌보기 위한 서적과 상담을 통해 병행 치료법을 쓰지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지속적 반복 발생에는 가끔 인권마저 유린되기도 하는 등 의학적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환자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격리할 경우 증상은 더욱 악화될 뿐 치료해 발병 이전의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악순환을 반복한다. 상담 치료자와 의사들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치료에 임하지만 그들과 함께 같은 병을 앓는 사람으로서의 치료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수한 아픔과 우울을 겪었던 이들 청소년들은 이제, 고통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몸소 발견해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치유해가는 방법에 이른다. 이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는 쉽지만은 않았을 이들 청소년의 지난한 경험들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다.

 

 

누군가는 10대를 아름답고 빛나던 소중한 시절로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몸서리치는 고통의 시절로 기억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빛났건 어두웠건 상관없이, 10대 시절에 경험한 뚜렷한 것이 있다. 바로 ‘격한 감정의 기류’다. 이 감정의 기류 한가운데를 지나는 청소년들이 용기를 내 글로써, 그 나이대에만 겪을 수 있는 사건과 감정들을 솔직한 언어들로 기록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아픔의 크기와 종류도 제각각이지만, 개인적인 상처에서 우리는 충분히 자신들의 아픔을 발견해낼 수 있다. 생생한 그들의 목소리는 모두가 한 번쯤은 겪었던 과거의 날카롭고 아픈 감정들을 선명하게 재생시킬 수도 있다. 저자들이 묘사하는 상처와 고통의 순간이 이 책 안에서 TV처럼 생생히 펼쳐진다.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치료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독자는 기대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청소년 시절은 그 시기에만 겪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 이전에도 이후에도 경험하기 쉽지 않은 감정들로 점철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이 책 저자들이 그랬듯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 자해 경험 등 극한의 정신적ㆍ신체적 어려움을 겪었다면 더더욱 잊을 수 없다. 아픔의 폭과 깊이는 다를지언정 우리는 ‘상상’과 ‘공감’이라는 능력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치열한 고백의 목소리에서 잊고 있었던 당신만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아직, 어떤 몸짓도 되지 못한 상처를.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오며 아픔의 연대는 더욱 거대해졌다. 마음이 괜찮지 않은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면 더 이상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왜?”라는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자신들의 문제가 되자 사람들은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애써 외면했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문제나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부족한 정보 문제가 많이 해결되었다고는 하나, 이 문제를 몸소 겪은 청소년들은 입을 모아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주장한다. 책 곳곳에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개인적인 방법부터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정신 건강 서비스 발전 방안까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이 꼼꼼히 적혀 있다. 그렇게 이 기록은 우울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우리의 과거를 되살리는 일기장이자 꼭 필요한 지침서가 된다.

 

 

이 책을 자신의 정신 건강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에 그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구체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정신 건강 서비스 이용 방안들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자해 예방을 지지하는 아이들의 자해 관련 상담 및 치료 후기는 것은 물론, 정신과나 상담소의 이용이 처음인 소비자들을 위한 가이드북까지 수록되어 있다. 책 속의 내용을 따라가본다. 의사의 자격과 숙련성에 대해 조사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병원 홈페이지의 의료진 소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의사 약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원장 약력이 아예 없는 병원도 있으니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느 의과대학을 나왔고, 석사ㆍ박사는 어느 대학에서 수료했으며, 어디서 수련을 받았는지, 전공의와 전문의 자격은 어디서 취득했는지 파악하자. 졸업 및 취득 연도까지 공개한 병원이라면 가기 전부터 기본적인 신뢰가 생긴다. 경력이 몇 년인지 파악할 수도 있으니까.

저자들은 과거의 상처를 단순히 곱씹고 회복에 집중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아픔의 경험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치환한다. 가장 큰 위로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또래의 고통을 공감하고 지지해준다. 자신의 고통에 몸서리치던 청소년이 아픔의 경험 전문가이자 슈퍼히어로,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상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지난날의 아픔을, 목격하거나 직접 겪었던 상처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우울한 시기를 지나는 개인도, 침체된 분위기의 사회도 우울을 동력 삼아 움직일 수 있음을. 상처에서 돋아난 날개로 날 수 있음을. 이 책은 치열한 고통으로 얼룩진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픔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당신도 답을 찾을 수 있다. 달라진 눈빛과 생각을 통해, 마침내 몸짓으로 깨어난 당신의 상처를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우울을 겪는다고 해서, 우울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사람들을 짓누르고 다치게 하며 때로는 목숨도 앗아간다. 우울의 보편화는 우울을 평범하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우울과 관련된 정신 건강의 문제를 ‘소수의 문제’로만 취급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저자 중의 한 사람이 책에 적은 글이 귓전을 맴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죽을 수 없으면 사는 것이 인생인걸.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 조금씩 말라가는 큰 숲을 바라보며 슬퍼할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시들어가는 한 송이의 꽃에 물을 주고, 추위에 떠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챙겨주자. 그 누구도 당신이 숲을 살리지 못한다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스트레스 받으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사소하더라도 가까운 누군가에게, 또 본인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작지만 단단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면 어떨까?"

 

 

이제 정신 건강 문제는 4분의 1이 아닌 ‘누구나’의 문제가 되었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더 이상 우울하고 불안한 것이 나만이 겪는 특별하고 이상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울한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시대. “잘 지내지?”란 안부 인사보다 “요즘 마음은 괜찮아? 어때?”란 인사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요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 질문을 용기 내 해본다면 어떨까. 말하지 않아 몰랐을까, 물어보지 않아 말하지 못했을까. 누구의 마음속에도 물어보지 않아 평생 혼자 감당해야 하는 아픔이 남지 않기를 바라본다.

- 「말하지 못해 몰랐던, 물어보지 못해 말 못했던」 중에서

 

저자 :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

 

이 책의 공동 저자,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은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며, 삶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청소년으로서 국내 최초로 정신 의학 학회 및 국회 자살 예방 학술대회에서 연설하였으며, 국립정신건강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자살과 자해 예방 강연을 펼쳤다. 유튜브와 SNS상에서 활발한 피어 서포트 활동을 펼치며 청소년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신 건강 의학과에 대한 편견, 가정 및 학교 문제, 자해와 자살, 심리상담, 정신 건강 소비자로서의 권리 등을 청소년의 입장에서 솔직히 언급한다. 정신 건강 문제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내면서,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희망적인 길을 제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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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땅끝으로 - 로마에서 산티아고 3,018km 순례길
정양권 지음 / 선한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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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역만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만큼 친숙하다. 순례길이라 해서 기독교인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 어떤 목적으로 가든, 언제 가든 원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리라.(물론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된 요즘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 순례길의 감상을 글로 남겨 이젠 다녀오지 않은 사람도 잘 알고 있을 정도다. 특히 TV 프로그램으로도 수없이 방영돼 독자가 본 프로그램만 해도 7~8개에 이른다. 길이 특별히 아름답거나 특별한 경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많은 사람들이 찾을까. 우선 이 길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움을 뜻하는 '산토'와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인 '라고'가 합쳐진 단어로 '성 야고보'를 의미한다. 이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이다. 저자의 목적지이자 땅끝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동쪽, 갈라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이자 성당 이름으로, 교황청에 의해 1189년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3대 기독교 성지가 되었다. 특히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과 함께 사람들이 더욱 많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독자들은 저자의 글과 그림뿐 아니라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서, 로마에서 산티아고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이 책 『세상에서 땅끝으로』는 2019년 여름 저자가 로마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이다. 세상의 땅끝이자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된 북한을 마음에 품고 신학교에 입학한 저자가 로마에서 피니스테레까지 87일간 3,018km의 순례길을 걸으며 지난날들의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본다. 저자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기쁨과 감사함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내일'에 대해 확신을 더했던 시간들을 기록했다고 밝힌다. 철저히 기독교인 입장에서 순례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안은 순례길 위의 이야기보다는 저자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더 풍성히 채워져 있다.

저자는 산악인들이나 전문 하이커들만이 찾는 길이 아니라, 아이들과 노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코스를 찾았다. 그저 걷는 맛이 있는 기다란 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같이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이 책이 "성경 '말씀'이 교회와 예배당 안에서만 외쳐지는 소리가 아니라, 매일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설교가 되고, 말씀이 성경책 안에 박제되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온몸으로 체험한 여행기"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가 길 위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사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세상에서 땅끝으로』에는 총 41개의 우상(IDOL) 이야기들과 그와 함께 41개의 은혜(GRACE) 이야기가 겹쳐 있다. 각 소제목마다 새겨진 말과 그림, 그리고 사진이 여행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되길 저자는 바란다.




책에 따르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이번 여행의 출발지, 곧 '세상'이다. 저자는 대성당 축성과 종교개혁 과정을 되짚으며 여전히 '죄와의 전쟁' 중인 우리 시대 '나'의 믿음을 돌아본다. 요한복음 2장의 성전 척결 사건, 성전 된 자로서의 '나'의 모습까지 묵상이 이어진다. 이렇듯 예배자의 삶을 일깨우는 내용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열왕기상 21장에 나온 '나붓의 포도원' 이야기를 적용하면서, 각자 받은 소명과 달란트를 자신의 소욕에 따라 쓰는 것과 주의 뜻대로 행하고 사용하는 것을 대비시킨다.

로마에서 시작된 여정의 3일째, 저자가 찾은 숙소는 수드리 수녀원은 카타콤으로 둘러싸인 순교지다. 증인된 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과 묵상, 찾는 장소마다 그곳의 역사와 오늘날의 의미, '나'를 향한 질문을 해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저자는 르네상스 중심지인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서 여러 조각상을 바라보며 교회와 교인, '나'의 삶에 침투한 인본주의를 경계한다. 이후 바닷가에 인접한 친퀘 테레의 첫 마을인 리오마조례를 자나는데, 사진상으로 보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이 인상적이다. 강풍과 해일이 몰아치면 좀 위험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프랑스 니스까지 19일간 저자는 같은 신학교에 다니는 태형과 동행한다. 그런데 니스의 한 초밥집에서 태형의 가방이 없어지고 만다. 순례길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 두 대, 여권, 현금, 신용카드 전부. 낯선 여행지에서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다면 정말 당황스럽고 막막할 듯하다. 저자 역시 10여년 전 배낭 여행 때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행 가방을 도난당한 일이 있다고 한다. 독자도 스페인 여행 때 도난은 아니지만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적이 있다. 여권은 따로 보관했기 때문에 여행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여행경비를 다른 분에게 빌린, 씁쓸한 기억이 있다.

저자는 태형의 여권 재발급을 위해 니스에 3박4일을 머문 후 그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도난 사건은 '여행의 꽃'이라고. 우리가 손에 쥔 것들 모두가 사라지는 순간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여행길은 우리 노력이 아니라 미리 예비하신 하나님 은혜로만 채워진다는 의미다. 이 대목을 보면서, 여행길과 인생길, 인간의 욕심과 노력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떠올려보게 된다. 이쯤 되니 이 책은 여행 에세이자 동시에 신앙 간증서 같은 느낌도 든다.



책 내용 중에는 길 위에서 배우는 인내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라는 깨달음, 20대 때 붙든 세상의 헛됨과 그런 '나'를 찾아온 하나님을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물론 간증이나 묵상과 더불어, 순례자의 여정은 계속된다. 저자는 프랑스 '로데브'라는 도시에서 아프리카 여행 때 종종 보던 가택 건물 같은, 빈민가 숙소를 찾기도 하고,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제도'라는 섬에서 온 순례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또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기 위해 순례길을 잠깐 벗어나 박물관을 가기도 한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길 위의 사람들이 저자에게 질문한다. 어디까지 가는지,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순례길 이후 계획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왜 믿는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그런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인생 좌표 위에 복음을 또렷이 새겨간다. 지금까지 독자가 읽은 책은 비종교적인 이유로 걷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가장 종교적인 분위기의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스페인에서 시작하는 길만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겐 또 다른 정보 제공과 안내서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영적 방황을 서른 전에 끝내고, 서른 중반에도 도전과 믿음의 순례길을 자처했으며, 그 체험과 심경을 고스란히 글과 그림, 사진으로 담아냈다. 책 말미에는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요약한다. 하루 평균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숙소 찾기와 언어 사용은 어떠했는지, 자신에게 순례길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등등. 이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안내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국경을 통과해 87일 동안 총3,018km를 걸었다. 그리고 현재 '천로역정'을 썼던 존 번연처럼, 일상의 순례길에 서 있다. 여행길의 상징성은 뻔한 듯하면서도 늘 새롭게 다가온다. 비슷해 보이는 여행 에세이들 속에서 저자만의 색과 향이 있듯이. 저자는 제한된 지식과 경험으로 머릿속에 잘못 각이되어 있던 '선교사의 역할'과 '북한의 정의'에 대해 순례길 위에서 묵상하며 우상적인 생각들을 떼어내고 또 떼어내기를 반복한다.

이 책과 함께하며 독자도 지금의 자리에서 성찰을 시작하며 삶의 길 내내 성찰과 '땅끝' 삼은 곳에 가는 여정을 차분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진 보람이 있다. 순례길 위는 아니지만 책을 통해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저자에 감사하는 마음 가득 전한다.








저자 : 정양권

2010년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현재까지 74개국을 여행하며 일상이 여행이 되는 여행생활자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복음을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으로 전하는 삶을 소명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 로마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앞서 네팔의 히말라야 ABC,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아이슬란드의 라우가베구르, 칠레의 파타고니아 W트랙, 스페인의 프랑스 길, 한국의 올레길과 해파랑길 등 하이킹 및 트레킹 경험 다수. 아이슬란드 NGO에서 2013-2014년 사진 워크캠프 코니네이터로 일했으며, 2014-2016년 서헌강 사진연구소에서 서헌강 사진작가와 주병수 사진작가에게 도제교육을 받으며, 한국문화재단,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사진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

또한, MNJ문화복지재단, MMC PROJECT,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다음세대재단, 아이슬란드 구세군, 제로그램,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재단, 한국방송통신위원회, 한국후지필름등과 함께 공익에 힘쓴 바 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와 트리니티 복음주의 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수학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부터 총신대학교 기독교 유아교육팀 안에서 성경동화 그림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기고한 잡지에는 ARTRAVEL(아트래블), SOMEWHERE(안그라픽스, 코오롱스포츠). 저서로는 〈빛이 되어라(라이트교육)〉, 〈일곱 날의 빛 아이슬란드(홍성사)〉, 그리고 〈길을 잃고 너를 만나다(채륜서)〉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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