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땅끝으로 - 로마에서 산티아고 3,018km 순례길
정양권 지음 / 선한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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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역만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만큼 친숙하다. 순례길이라 해서 기독교인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 어떤 목적으로 가든, 언제 가든 원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리라.(물론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된 요즘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 순례길의 감상을 글로 남겨 이젠 다녀오지 않은 사람도 잘 알고 있을 정도다. 특히 TV 프로그램으로도 수없이 방영돼 독자가 본 프로그램만 해도 7~8개에 이른다. 길이 특별히 아름답거나 특별한 경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많은 사람들이 찾을까. 우선 이 길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움을 뜻하는 '산토'와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인 '라고'가 합쳐진 단어로 '성 야고보'를 의미한다. 이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이다. 저자의 목적지이자 땅끝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동쪽, 갈라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이자 성당 이름으로, 교황청에 의해 1189년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3대 기독교 성지가 되었다. 특히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과 함께 사람들이 더욱 많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독자들은 저자의 글과 그림뿐 아니라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서, 로마에서 산티아고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이 책 『세상에서 땅끝으로』는 2019년 여름 저자가 로마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이다. 세상의 땅끝이자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된 북한을 마음에 품고 신학교에 입학한 저자가 로마에서 피니스테레까지 87일간 3,018km의 순례길을 걸으며 지난날들의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본다. 저자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기쁨과 감사함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내일'에 대해 확신을 더했던 시간들을 기록했다고 밝힌다. 철저히 기독교인 입장에서 순례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안은 순례길 위의 이야기보다는 저자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더 풍성히 채워져 있다.

저자는 산악인들이나 전문 하이커들만이 찾는 길이 아니라, 아이들과 노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코스를 찾았다. 그저 걷는 맛이 있는 기다란 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같이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이 책이 "성경 '말씀'이 교회와 예배당 안에서만 외쳐지는 소리가 아니라, 매일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설교가 되고, 말씀이 성경책 안에 박제되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온몸으로 체험한 여행기"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가 길 위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사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세상에서 땅끝으로』에는 총 41개의 우상(IDOL) 이야기들과 그와 함께 41개의 은혜(GRACE) 이야기가 겹쳐 있다. 각 소제목마다 새겨진 말과 그림, 그리고 사진이 여행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되길 저자는 바란다.




책에 따르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이번 여행의 출발지, 곧 '세상'이다. 저자는 대성당 축성과 종교개혁 과정을 되짚으며 여전히 '죄와의 전쟁' 중인 우리 시대 '나'의 믿음을 돌아본다. 요한복음 2장의 성전 척결 사건, 성전 된 자로서의 '나'의 모습까지 묵상이 이어진다. 이렇듯 예배자의 삶을 일깨우는 내용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열왕기상 21장에 나온 '나붓의 포도원' 이야기를 적용하면서, 각자 받은 소명과 달란트를 자신의 소욕에 따라 쓰는 것과 주의 뜻대로 행하고 사용하는 것을 대비시킨다.

로마에서 시작된 여정의 3일째, 저자가 찾은 숙소는 수드리 수녀원은 카타콤으로 둘러싸인 순교지다. 증인된 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과 묵상, 찾는 장소마다 그곳의 역사와 오늘날의 의미, '나'를 향한 질문을 해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저자는 르네상스 중심지인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서 여러 조각상을 바라보며 교회와 교인, '나'의 삶에 침투한 인본주의를 경계한다. 이후 바닷가에 인접한 친퀘 테레의 첫 마을인 리오마조례를 자나는데, 사진상으로 보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이 인상적이다. 강풍과 해일이 몰아치면 좀 위험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프랑스 니스까지 19일간 저자는 같은 신학교에 다니는 태형과 동행한다. 그런데 니스의 한 초밥집에서 태형의 가방이 없어지고 만다. 순례길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 두 대, 여권, 현금, 신용카드 전부. 낯선 여행지에서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다면 정말 당황스럽고 막막할 듯하다. 저자 역시 10여년 전 배낭 여행 때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행 가방을 도난당한 일이 있다고 한다. 독자도 스페인 여행 때 도난은 아니지만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적이 있다. 여권은 따로 보관했기 때문에 여행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여행경비를 다른 분에게 빌린, 씁쓸한 기억이 있다.

저자는 태형의 여권 재발급을 위해 니스에 3박4일을 머문 후 그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도난 사건은 '여행의 꽃'이라고. 우리가 손에 쥔 것들 모두가 사라지는 순간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여행길은 우리 노력이 아니라 미리 예비하신 하나님 은혜로만 채워진다는 의미다. 이 대목을 보면서, 여행길과 인생길, 인간의 욕심과 노력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떠올려보게 된다. 이쯤 되니 이 책은 여행 에세이자 동시에 신앙 간증서 같은 느낌도 든다.



책 내용 중에는 길 위에서 배우는 인내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라는 깨달음, 20대 때 붙든 세상의 헛됨과 그런 '나'를 찾아온 하나님을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물론 간증이나 묵상과 더불어, 순례자의 여정은 계속된다. 저자는 프랑스 '로데브'라는 도시에서 아프리카 여행 때 종종 보던 가택 건물 같은, 빈민가 숙소를 찾기도 하고,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제도'라는 섬에서 온 순례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또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기 위해 순례길을 잠깐 벗어나 박물관을 가기도 한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길 위의 사람들이 저자에게 질문한다. 어디까지 가는지,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순례길 이후 계획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왜 믿는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그런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인생 좌표 위에 복음을 또렷이 새겨간다. 지금까지 독자가 읽은 책은 비종교적인 이유로 걷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가장 종교적인 분위기의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스페인에서 시작하는 길만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겐 또 다른 정보 제공과 안내서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영적 방황을 서른 전에 끝내고, 서른 중반에도 도전과 믿음의 순례길을 자처했으며, 그 체험과 심경을 고스란히 글과 그림, 사진으로 담아냈다. 책 말미에는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요약한다. 하루 평균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숙소 찾기와 언어 사용은 어떠했는지, 자신에게 순례길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등등. 이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안내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국경을 통과해 87일 동안 총3,018km를 걸었다. 그리고 현재 '천로역정'을 썼던 존 번연처럼, 일상의 순례길에 서 있다. 여행길의 상징성은 뻔한 듯하면서도 늘 새롭게 다가온다. 비슷해 보이는 여행 에세이들 속에서 저자만의 색과 향이 있듯이. 저자는 제한된 지식과 경험으로 머릿속에 잘못 각이되어 있던 '선교사의 역할'과 '북한의 정의'에 대해 순례길 위에서 묵상하며 우상적인 생각들을 떼어내고 또 떼어내기를 반복한다.

이 책과 함께하며 독자도 지금의 자리에서 성찰을 시작하며 삶의 길 내내 성찰과 '땅끝' 삼은 곳에 가는 여정을 차분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진 보람이 있다. 순례길 위는 아니지만 책을 통해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저자에 감사하는 마음 가득 전한다.








저자 : 정양권

2010년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현재까지 74개국을 여행하며 일상이 여행이 되는 여행생활자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복음을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으로 전하는 삶을 소명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 로마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앞서 네팔의 히말라야 ABC,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아이슬란드의 라우가베구르, 칠레의 파타고니아 W트랙, 스페인의 프랑스 길, 한국의 올레길과 해파랑길 등 하이킹 및 트레킹 경험 다수. 아이슬란드 NGO에서 2013-2014년 사진 워크캠프 코니네이터로 일했으며, 2014-2016년 서헌강 사진연구소에서 서헌강 사진작가와 주병수 사진작가에게 도제교육을 받으며, 한국문화재단,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사진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

또한, MNJ문화복지재단, MMC PROJECT,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다음세대재단, 아이슬란드 구세군, 제로그램,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재단, 한국방송통신위원회, 한국후지필름등과 함께 공익에 힘쓴 바 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와 트리니티 복음주의 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수학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부터 총신대학교 기독교 유아교육팀 안에서 성경동화 그림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기고한 잡지에는 ARTRAVEL(아트래블), SOMEWHERE(안그라픽스, 코오롱스포츠). 저서로는 〈빛이 되어라(라이트교육)〉, 〈일곱 날의 빛 아이슬란드(홍성사)〉, 그리고 〈길을 잃고 너를 만나다(채륜서)〉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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