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두 개의 소설이 하나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이 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이 그렇다. 이 소설들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의 신작 장편소설로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된 독특한 실험적 작품이다.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이 작품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이다.

저자 정아은은 제 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이다. 그동안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을 펴냈다. 그리고 이 소설들 두 책이 네 번째, 다섯 번째 소설이다. 그동안 전작들을 통해 헤트헌터, 교육을 좇는 학부모, 드라마 작가 지망생, 성형외과 의사 등 우리 일상 현실에 밀접한 인물에 대해 꼼꼼한 탐구를 보여줬다. 이번에는 '젠더'가 주제이다. '도시 세태의 관찰자'라고 불리던 저자답게 특유의 관찰자적이면서도 몰입도 높은 서사를 풀어놓는다.

 


 

한꺼번에 두 편의 작품을 꺼내놓은 저자는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에서 문학평론가이자 정치평론가인 김지성의 입장에서,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는 남편과 딸 둘을 둔 주부 이화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성과 화이는 사건을 다르게 보고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두 남녀 주인공인 상대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다시 '조연'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형식을 보인다. 조연이지만 주연과 함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데 주인공과 다름없이 보이기는 하지만.

두 소설은 그 형식이 남성과 여성, 즉 ‘젠더’를 주제로 한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한국 문학에서 흔치 않은 흥미로운 시도를 완성해낸다. 젠더라는 주제를 미투, 여성의 몸, 성적 주체성, 모성, 인터섹스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해 서사에 녹여낸다. 이 두 소설은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독자는 두 소설 중 한 권만 읽어도 좋고, 두 권을 함께 읽으면 더 재미가 좋다. 다만 두 권을 모두 읽을 경우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를 먼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를 나중에 읽기를 저자와 편집자는 권한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문학평론가이자 정치평론가 지성과 지성의 오랜 동료이자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시인 민주는 지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에둘러 지성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지성은 거절한다. 민주는 제삼자의 입을 통해 지성을 미투의 가해자로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가. 지성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진보 일간지 칼럼니스트이자 정치방송 패널, 라디오 프로그램 호스트, 북토크 사회자 등으로 숱한 러브콜을 받던 그는 일순간 몰락을 경험한다.

여기서 진실은 무엇인가. 지성은 성폭행범인가. 살인자인가. 수많은 셀럽과 장난처럼 염문을 뿌렸던 민주가 그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인가. 술로 잘려나간 기억과 민주의 죽음으로 인해 지성 자신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진실을 두고, 세상은 뜨겁게 양분한다.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적과 동지가 저마다 자신이 진실임을 주장한다. 소설은 점차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매번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이것이 과연 진짜 ‘진실’인가?

 


 

저자는 보이는 현실의 이면과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비평이 업이었으나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품평의 대상'이 되어버린 김지성, 타고난 아름다움과 재능으로 때론 '부담스럽고 불길'한 존재가 되고 마는 이민주, 어느 날 나타나 몰락한 지성의 집을 장악해가는 '맹한 피조물' 나채리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하나의 캐릭터로 정형화되지 않는다.

선인과 악인, 옳음과 그름, 하물며 성별의 구분마저 점차 모호해진다. 다층적인 인간의 내면이 한 겹 한 겹 드러날수록, 진실은 거듭 반전되고 또 반전된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내지 않았다면 지성은 결백하다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쾌락에 몸을 맡긴 “짐승”이 아니고 “지성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과연 그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소설은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그 답은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쉽지 않은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독자들은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과연 소설에서 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잡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질 수도 있다.주연과 조연이 모두 어우러져 혼란을 거듭하지만 저자의 글솜씨는 노련하다. 술술 읽히는 간결한 문체와 문장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어의 배치가 정확하다. 한마디로 잘 만들어진 명품 도자기를 손에 들고 있는 기분이다.

출간 후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여성은 일생 타인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정언명령 하에 놓이면서도 정작 제 욕망을 드러내는 데는 제약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최근 자본의 영역이 인간의 신체라는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오면서 ‘성’에 관한 모든 금기가 무너지고 여성들이 성적으로 해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에서 이미지로만 보이는, 그렇기에 실생활에서는 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일종의 착시현상이죠.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인류가 이뤄온 문명들에서 ‘남성은 타고나길 넘치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늘 주장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성은 어떤가요. 여성은 성욕이 있는 존재일까요, 없는 존재일까요? 이런 모순과 오해가 가장 많이 중첩된 분야가 ‘모성’과 엮인 분야입니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 여성이 제 몸을 제 의지에 맞추어 운용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성관계는 물론이고 차림새, 체중, 흰머리 염색, 피부관리까지, 유자녀 여성은 전방위적으로 사람들의 훈수 대상이 됩니다. 화이는 사회로부터 몸에 대한 다양한 지침을 받고, 별 생각 없이 지침에 따르며 살아온 유자녀 여성의 전형이지요. 소설 속에서 화이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기보다는 자신이 뭘 원할 수 있는지, 혹은 원해도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란 말을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저자는 같은 인터뷰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두 사람의 입장에서 각각 전개하는 굉장히 독특한 소설이라는 질문에 "앉은 자리에 따라 각기 다른 지점을 보게 되는 현상에 언제나 흥미를 느꼈습니다. 『잠실동 사람들』을 쓴 뒤에 소설 속 인물들을 두 명씩 짝지어 본격적으로 차이를 드러내고 싶다는 열망을 한동안 품었고, 이번 소설도 그런 유의 열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며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한 세상을 할애해서 본격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고 독특한 소설 구상 이유를 밝혔다.

저자는 또 "동일 사건을 각각 다른 인물에 이입해서 그려야 하기에 품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성의 이야기에서 한 줄을 고치면 화이의 이야기에서 몇 개 문단을 통째로 바꿔야 하고, 그렇게 바꾼 여파로 다시 지성의 이야기를 바꿔 써야 하고. 이 과정이 계속 순환하는 거죠. 초고를 마친 뒤 다듬으며 다시 쓰는 과정이 예전에 썼던 소설들보다 더 오래 걸리고 복잡했습니다."고 힘든 과정을 거친 작품임을 표현했다. 저자는 주인공 '지성'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선과 악을 품고 있기 마련인데요. 지성은 현실 속 우리 모두가 그렇듯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는 다면적인 인간입니다. 다만 ‘지식인’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기에 그 다면성이 더 교묘하게 굴절되어 드러날 따름"이란 말을 남겨 현대인의 한 단면과 인간 본연의 깊숙한 내면을 동시에 염두에 둔 인물 창조에 힘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도 어리석고 비열하고 위선적인 주인공들이지만 각각 한 명의 인간이란 연민의 눈초리를 독자들이 보내주기를 당부한다.

 


 

여성의 육체에 멋대로 손대고 제 것처럼 구는 것은 분명 범죄고 폭력이다. 폭력으로 분류돼 처벌받아야 한다. 지성은 그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다. 남성들은 그 악습을 수십 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살아왔다. 사회의 상식이 급변했다면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갈 기회를 조금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범죄가 아니라 여겨졌던 것을 범죄로 인식하고 갱생할 기간을 주어야 하지 않은가? 예전에는 터프함 또는 과격함으로 축소되고 용납되었던 크고 작은 범죄행위들을 속죄할 방법이 죽음 또는 사회적 매장밖에 없다면,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고 낙인찍혀 남은 평생을 쓰레기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면, 어느 누가 성범죄자임을 인정하고 속죄하려 들겠는가.(p.377)

 

저자 : 정아은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공저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지금껏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로 알고 있었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 시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청소년 시절 그렇게 배웠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 때도 그렇게 알고 읽었다. 그런데 최근 영화 〈이터널스〉가 개봉된다고 해서 관련 기사를 읽다가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인 길가메시란 영웅담의 주인공을 알게 됐다. 여러 경로를 확인해 인류 최초의 신화이고, 서사시는 '길가메시'임을 확인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폭군에 불과했던 한 인간이 고대에 지혜자요 신(神)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모험과 실패, 성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이자 영웅 신화임을 알게 된 것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서사시 원문의 초기 번역서를 접한 후 환희와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정말 굉장해요!”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4,000 년 동안 잠자고 있었던 고대의 마법이 풀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척 귀한 책으로 세계 어느 누가 갖고 있는 서사시 텍스트로 삼을 만한 책 한 권 갖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해준다. 두고 두고 읽고 읽으면서 수많은 문학적 영감을 받을 있다는 생각에 꼭 한 권씩 독자들의 보관용 책으로 강력 추천한다. 한편 〈이터널스〉는 2021년 공개된 미국의 슈퍼히어로 영화이다. 클로이 자오가 감독을 맡았으며, 잭 커비의 동명 만화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26번째 개봉 작품이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인생의 본질과 성장에 관한 인류의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흡사했다. 이 서사시에는 영생을 향한 인간의 열망, 죽음을 앞둔 자의 고뇌와 분투, 인간의 한계를 경험한 후 들어선 깨달음의 길 등, 인문적인 사유가 박진감 넘치는 모험 이야기와 절묘하게 버무려진다. 인류 역사 초기에 신들이 인류를 멸하려고 일으킨 대홍수 이야기와 망자들의 음울한 세계에 대한 묘사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길가메시는 세상 끝에서 대홍수의 생존자 우타나피쉬티에게서 얻은 지혜 덕분에 나라의 사원들과 홍수 이전의 이상적인 제례들을 복원한다. 그는 고대인들이 기록한 군왕 명부에도 있으므로, 아서 왕처럼 실존했을 가능성이 높다.

편역자 앤드류 조지는 이 책에서 아카드어 바빌로니아 표준판본 및 수메르어 시들을 집대성하여 거의 모든 연구를 한 권에 담아 가장 완벽한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원어를 문자적 번역에 기초해 영어로 한 줄 한 줄 번역하고, 그 번역어 순서까지 신경 썼다. 설형문자 원판의 훼손된 부분을 과도한 해석과 윤색이 담긴 글로 채우기보다는 그대로 두어 독자가 원판을 직접 보는 감동을 전하려고 애썼다. 한글판 옮긴이 역시 운문(韻文)으로 구성된 원글의 취지를 존중하여 되도록 원서의 어순을 따라 번역했다.




우리 독자들은 두 번의 번역을 거쳐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는 셈이다. 그러나 현대지성 클래식에서 출간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연구자 수십 명의 최신 연구 결과와 새로 알려진 점토판 해석 의견을 꼼꼼히 반영했으며, 신화·종교·지혜의 맥락에서 본 서사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학적 배경, 지금도 적용되는 인문학적 의의 등의 내용이 포함된 50여 쪽에 이르는 상세한 해제까지 담아 “독자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번역본”으로 자신 있게 선보였다고 밝혀 뒤늦게 읽지만 제대로 된 책을 읽는 느낌이어서 설레기까지 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해제」를 통해 한 마디로 망나니요 폭군에 불과했던 길가메시가 여러 과정을 거쳐 지혜자요, 신들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성장한 이야기임을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한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길가메시는 난생처음 자신과 필적할 상대 엔키두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결국, 길가메시가 승리하지만 엔키두의 존재는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따분하기 그지없었던 인생에 도전할 만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괴물 훔바바를 엔키두와 함께 물리치러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훔바바를 해치운 일로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영혼의 친구 엔키두를 잃게 되고, 이로써 길가메시는 영생의 길에 눈을 뜬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작품 전체를 흐르는 기본 주제이지만, 서사시는 그 이상을 다룬다. 영생을 향한 인간의 열망을 살피면서, 시는 한 인간의 죽음에 맞선 영웅적인 분투, 거대한 실패에 직면한 인간의 절망, 업적을 남겨 영원한 명성을 얻는 깨달음의 길을 웅장한 서사시에 녹여낸다. 영생을 향해 그토록 발버둥쳤지만, 결국 허무하게 빼앗겨버린 과정을 보여주면서 서사시는 인간이 처한 진실을 깨닫게 한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길가메시가 경험했던 파란만장했던 서사는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 평생의 경험을 거친 뒤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한 “전도서”의 주제와 무척 흡사하다는 것이 해제에서의 설명이다. 인생의 목적 없이 헛돌던 길가메시가 영혼의 친구(soul mate)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변화되는 과정, 거기서 맞닥뜨린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 인간 한계 너머 새로운 열망을 품게 된 길가메시, 다른 세상(저승)에서의 모험 등이 박진감 넘치게 이어진다. 다만 독자의 고대 서사시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못해 제대로 마음에 녹여 담지는 못했지만 해제를 통하고, 한 번 쑥 훑어봄으로써 커다란 만족을 느꼈다. 제대로 된 인류 최초의 서사시 번역본을 한 번 읽었다는 만족감이다. 거기에 더해 인류 역사 초기에 신들이 인류를 멸하려고 일으킨 대홍수 이야기와 망자들의 음울한 세계에 대한 묘사도 예술적이어서(이해에 어려움이 있지만) 일이아스나 오디세이아 못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발생 배경에 대한 특별한 지식 없이도 읽고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바빌로니아 문학 작품이다. 등장인물 이름이 낯설고 장소가 기묘하지만, 서사시가 다루는 주제 중에는 평범한 인생 경험도 있어 주인공의 포부와 슬픔, 절망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나 장소나 시에 등장하는 생소한 단어들을 일일이 책의 뒷부분에 별도로 정리해 놓아 책을 읽다 막힐 때마다 펼쳐보고 확인한 후 읽어가는 바람에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두고 두고 읽을 책이니 정독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길가메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던 심연은 무엇이었을까? 망나니 왕에 불과했던 그가 신들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경험했던 심경의 변화를 보면서 인류 최초의 서사시에 담긴 지혜의 길을 찾아내는 재미에 가슴까지 설렌다.

책에 따르면 고대 메소포타미아 학자인 소르킬드 야콥슨은 이 서사시를 “현실에 맞서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리했다. 길가메시는 미숙하고 어리석은 젊은이로 시작하지만, 결국 죽음의 힘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철든 성숙에 이른다. 영웅의 자취를 기록하면서 시인은 젊음과 늙음, 승리와 절망, 인간과 신, 삶과 죽음을 심오하게 반추한다. 길가메시의 영광스러운 행위뿐 아니라 가망 없는 탐구를 지속하게 하는 고통과 고생에도 주목한다. 이 영원불멸의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택스트로 삼아도 될 만큼 충분한 서사가 들어 있고, 스케일과 내용의 완성도에 있어서도 문학의 원형으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점을 느낀 독자로서는 문학을 대하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됨을 굉장한 자긍심도 갖게 되었다.



다만 이 책의 원본인 점토판이 글자가 희미하거나 없어지는 바람에 완전 해독과 완성된 서사시를 읽을 수는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많은 해독과 번역을 거치면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책이 이 책 『길가메시 서사시』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가장 최근에 가장 권위 있는 번역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편역자인 앤드류 조지는 바빌로니아 전공 교수로서, 1983년부터 지금까지 런던대학교 산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칼리지에서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6년 영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11년에 ‘아메리카 오리엔탈 소사이어티’(AMERICAN ORIENTAL SOCIETY)의 명예 회원이 되었다. 길가메시 설형문자 해독 및 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이라크를 방문, 바빌론을 비롯한 고대 지역을 탐사했다. 현재도 바그다드, 유럽, 북아메리카 박물관을 꾸준히 방문해 고대 이라크의 필경사들이 쓴 원(原) 점토판들을 연구하고 있는 길가메시 및 당시의 언어, 문화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는 점이 이 책의 완전 해독과 번역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저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서사시 관련 설형문자 조각은 익명의 바빌로니아 시인이 지금으로부터 3700년 전에 쓴 것으로 주장한다. 바빌로니아 버전은 아카드어로 지어졌지만, 그 문학적 기원은 훨씬 오래전에 쓰인 수메르어 시 다섯 편에서 기인한다고 연구 결과 밝혀냈다(이 책의 2부에서 세계 최초로 소개했다). 수메르어 텍스트들은 기원전 21세기에 통치했던 갈대아 우르의 슐기왕을 위한 궁정 오락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4000년 이상 긴 잠을 자던 『길가메시 서사시』가 전 세계에 그 얼굴을 드러낸 것은 길게 보더라도 150년 남짓이다. 쐐기문자를 해독하는 길이 열리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현재 이라크 지역 근방)에 광범위하게 흩어진 점토판 하나하나를 수백 명의 학자가 연구하면서 한 줄 한 줄 새로운 사실이 빛을 보고 있다. 고대 언어를 다루는 분야는 한 명의 천재성보다는 수많은 학자의 성실함과 전문성이 상호 보완하고 크로스 체크하며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서로 다른 서너 시기에 서너 개 언어로, 점토판의 형태로 현재도 활발하게 출토되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원전 텍스트를 구분했고, 총 4부로 서사시의 다양성을 충분히 소개하면서, 학계 최신 연구 성과도 반영했다. 1부 원 텍스트는 기원전 10세기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표준어였던 아카드어로 되어 있고, 몇 군데의 공백(점토판의 훼손된 부분)은 더 오래된 자료를 참조하여 채워졌다. 이 책은 이 텍스트를 표준본으로 삼는다. 표준 판본은 현존하는 총 73매의 필사본으로 정리된 상황이다. 2부는 수메르어 시 다섯 편으로, 앤드류 조지는 이 책에서 세계 최초로 수메르어로 된 서사시 5편을 모두 영어로 번역해 한곳에 모아 출간했다. 1부와는 달리, 공통된 주제가 없는 개별적인 이야기로 구성된다. 기원전 18세기에 바빌로니아 필경 견습생들이 만든 필사본으로 알려졌다. 3부는 아카드어로 이루어져 있고, 1부보다 더 오래된 자료의 번역본이다. 4부는 3부에 없는 기원전 20세기의 아카드어 파편들이 실렸고, 고대 서쪽 지역(레반트와 아나톨리아)에서 나온 여러 개의 시 조각들이 포함되어 있다.



역자 : 앤드류 조지 (편역)(ANDREW GEORGE, 1955~ )

1955년 영국 서리의 해슬미어에서 태어났다. 버밍엄 대학교에서 아시리아학을 공부한 후, 1983년부터 런던 대학교 산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칼리지에서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현재 이 대학교의 바빌로니아 전공 교수다. 2006년 영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11년에 ‘아메리카 오리엔탈 소사이어티’(AMERICAN ORIENTAL SOCIETY)의 명예 회원이 되었다. 길가메시 설형문자 해독 및 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이라크를 방문, 바빌론을 비롯한 고대 지역을 탐사했다. 현재도 바그다드, 유럽, 북아메리카 박물관을 꾸준히 방문해 고대 이라크의 필경사들이 쓴 원(原) 점토판들을 연구하고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심연을 본 사람〉으로 불리는 판본이 가장 유명한데(이 책의 1부에 있다), 기원전 10세기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서 널리 읽혔다. 연구자들은 이 작품이 씬-리크-운니니(기원전 1200?~1000?, S?N-LEQI-UNNINNI)라는 우루크 학자가 수많은 관련 판본을 모아 편집한 결과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심연을 본 사람〉은 하나 이상의 이전 판본을 개작한 웅대한 편집본이다.

역자 : 공경희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소설, 비소설, 아동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책들을 번역하며 현재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역서로는 『시간의 모래밭』,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마시멜로 이야기』, 『타샤의 정원』, 『비밀의 화원』 등이 있으며, 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박미라 지음 / 그래도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쓸 때 느끼는 점은 마음이 평온할 때 가장 잘 써진다는 점이다. 분노나 우울 등 감정이 올라 있을 때 글이 잘 써질 것 같아 써놓고 나중에 다시 보면 '내가 쓴 글이 맞나?' 할 정도로 문맥이나 문의 호응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글도 많다. 여기에 감정만 앞서서인지 뭘 쓰려고 한 것인지 읽는 사람에게 공감은커녕 이해도 안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즉 글은 평온한 마음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써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쓸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감정의 찌꺼기를 남김 없이 없애는 방법은 글쓰기가 유효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상처 입은 마음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이해된다. 이 책 『상처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에서 저자 박미라가 쓰려는 것도 제목에 나타나듯이 마음의 상처 치유에 글쓰기가 좋다는 점을 말하려 한다. 주제가 마음 치유라면 나머지는 글쓰기 방법이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것인가. 글쓰기로 마음 치유를 하는 독자라면 당연한 이야기여서 쉽게 이해가 되고 굳이 이 책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겠지만 마음 치유를 위해 글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귀중한 책 읽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이 책은 글쓰기 방법을 돕는 책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는 '치유의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지난 30여년 간 '치유의 글쓰기' '글쓰기를 통한 마음 치유'에 집중했던 분이다. 저자 박미라는 이 책을 상처 곁에서 오래 서성인 독자들에게 상처 치유 글쓰기를 권유한다. 치유 글쓰기의 전제 조건은 자신의 성찰이다. 자신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도 필요할 것 같다. 그 후에 성찰을 통해 왜 글을 쓰려 하는지라는 목적에 다가가야 한다.

저자는 글쓰기로 마음을 치유한다는 게 무엇이며, 성찰적 글이 어떤 것인지, 깊은 슬픔이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가 되는지, 그들의 글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미 심리 에세이 심리 에세이 『천만번 괜찮아』, 심리상담 칼럼집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를 이미 출간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이 책들은 저자가 심리 상담사로서, 마음칼럼니스트로,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로 살면서 만난, 글쓰기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음을 증명한 현장 보고서이자 글쓰기 안내서이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기, 거리두기, 직면하기, 명료화하기, 나누기, 사랑하기, 떠나보내기,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길로 안내한다.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쓰는 편지부터 나의 핵심가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까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단계적으로 다루는 일련의 소재들을 통해 얼룩졌던 내면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우리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것만으로 치유하는 글쓰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1부에서는 ‘글쓰기, 그 치유의 힘’에서는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의 정체와 그 힘을 배가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했다. 2부 ‘무엇을 쓸까 : 글감 찾는 법’에서는 다양한 글감 찾는 방법을 소개했으며, 3부 ‘어떻게 쓸까 : 글쓰기 방법’에서는 치유를 위한 글쓰기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치유 글쓰기’란 자신을 정직하게, 뿌리까지 낱낱이 이해하고 깊게 껴안는 작업이라 말한다. 이를 위해 심리학적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했고,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쓴 진지하고 감동적인 사례 글을 많이 소개했다. 글쓰기로 마음을 치유한다는 게 무엇이며 성찰적인 글이 어떤 것인지, 깊은 슬픔이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가 되는지 그들의 글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인간의 고통과 상처가 글로 진지하게 기록될 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자기 긍정과 희망이 그것이다. 이 책의 핵심 역시 ‘자기 이해’와 ‘자가 치유’에 대한 믿음이다. 즉, 답은 자기 안에 있고, 그것을 종이 위에 발설하고 직면하는 과정에서 ‘자기 이해’와 ‘자가 치유’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참가자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 글을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자기 내면에 숨겨진 비밀을 스스로 알아내고, 깊은 위로와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들이 걸었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삶의 해답이, 자기 이해가, 통찰이 종이 위에 펼쳐질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의 과거에 들어가고, 나의 현재를 짚어보고, 나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는 것, 그리고 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는 것. 글을 써서 스스로의 내면과 이야기를 나누면 짙은 외로움이 고요한 평온함으로 바뀌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슬픔을 지닌 이들이 등장한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집 나간 어머니, 편부모 가정, 전쟁, 지독했던 가난과 상대적인 박탈감, 숨기고 싶은 치욕적인 과거, 성폭력의 아픔까지 온갖 상처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상처들은 아무 소리 없이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일상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것들을 끄집어내 종이 위에 쏟아내는 순간이 치유의 끝은 아니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외면하고 싶고, 거부하고 싶고, 그냥 덮어두고 싶은 욕망도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 것이다. 글쓰기의 탁월함은 마음 치유의 다양한 방법들이 그 안에 모두 들어 있다는 점이다. 나를 표현하기, 거리두기, 직면하기, 명료화하기, 나누기, 사랑하기, 떠나보내기, 수용하기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치유, 평화를 얻게 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일단 써라!"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글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괴로움이 옅어지면서 안개 속에 가려진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완전한 ‘자기 용서’와 ‘자기 수용’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인정하고 애도하는 것이 글쓰기의 전제 조건이다. 그것이 바로 치유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며, 어찌 보면 완성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저자는 묻는다. 이 세상 하나뿐인 ‘나’에게 행복할 권리를 스스로 뺏고 있지는 않은가. ‘치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근원적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함으로써 미래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글쓰기에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 저자는 책의 뒷부분에서 몇 가지 조언을 덧붙인다. 독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써라'는 것이다. 저자는 솔직하게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안전한 공간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는 공간, 그리고 쓴 글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내 글을 읽을지도 모른다는 감시의 눈초리를 지속해서 느끼며 글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스스로의 내면을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의 검열 장치가 나의 글을 감시한다는 데 있다는 게 저자의 충고다. 일기보다 더 솔직하게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처 부분은 일기보다 솔직하게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쉽게 짐작된다. 저자의 지적에 용기를 얻어 글을 써도 아직 남은 문제가 있다. 상처를 건드리고 회고하는 데 감정이 안 올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할 것을 주문한다.


글을 쓰다가 가슴에서 어떤 느낌이 온다면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다.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또 어떤 글쓰기 대목에서 유난히 가슴과 몸이 반응한다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무의식에 남았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감정적인 반응이 따라온다면 또 다른 차원의 의식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p.274)

모든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주체는 글을 쓰는 나 자신이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주문한 여러 가지 글쓰기 방법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알아차리고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택의 기준은 물론 ‘더 행복해지기’다.(p.302)

저자 :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로, 마음 칼럼니스트로, 그리고 심리상담자로 살아가고 있다. 존재의 본질을 찾고 싶어 하는 성격 때문에 가족학과 여성학, 나아가 심리학과 자아초월심리학까지 공부했다. 글쓰기는 이 모든 과정에서 훌륭한 도구가 돼주었다. 사회생활을 기자로 시작했으며 이후 잡지 편집장, 출판사 편집자, 인터넷 콘텐츠 팀장을 거쳐 지금은 글쓰기를 심리치료에 적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쓰기로 마음을 표현하고 어루만지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기 용서’와 ‘자신에게 따뜻해지는 법’이다.

주요 저서로는 치유 글쓰기를 경험하는 실습서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과 이 책의 인문학적 근거가 되는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가 있으며, 상담칼럼집 《천만번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오래된 지혜 차크라의 올바른 활용을 위한 심리서 《심리학자는 왜 차크라를 공부할까》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 문제의 큰 이슈는 '양극화'였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라고 알려진 현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유경쟁 체제 아래서는 이 현상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 오래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지적돼 왔다. 독자도 학창시절 배운 바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공산주의가 대두되고 20세기 세계를 휩쓸었다. 채 100년도 버티지 못하고 공산주의는 막을 내렸다.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후 새로 등장한 사회 문제는 '경계인'이었다. 사회 중심부, 상류층에 오르지 못했거나, 혹은 밀려난 사람들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사회 계층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는 계층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은 소속감이 없어 적극적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아 차츰 소외계층으로 밀려난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또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인근 동남아 국민들이나 중국 동포 등 저소득 국가의 국민들이 우리 나라에 불법 체류하며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경계인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소설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 있는 사람을 경계인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에는 늘 중심부와 소외계층,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경계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얼마 전까지 기성세대와 신세대로 구분하는 단순 계층 차이만 존재했다. 그러던 계층, 세대 차이가 10년마다 세대를 가르게 된 것은 어쩌면 급변하는 사회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낀대세이』가 의미하는 것은 70년대 기성세대와 90년대 신세대 사이에 끼어 애매해진 80년대생 끼인 세대를 지칭하며 줄여 '낀대'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낀대세이』는 위에서 짓누르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 양쪽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진 ‘불쌍한’ 80년대 세대를 위로하는 공감 에세이라고 저자 김정훈은 말한다. 중간에 위치해 이도 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낀대가 탄생하게 된 배경, 낀대들의 고충, 남들을 괴롭게 만드는 낀대 등, 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 있다.

가벼운 읽을거리이지 사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되는 세대는 아님을 저자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책 마지막 부분에서 "사실 708090의 단순한 숫자로 나누는 세대론은 큰 의미가 없다"며 "세대론이라는 건 그저, 점점 더 세분되고 첨예해지고 있는 가치 대립 전쟁 사이에서 갖고 싶은 일종의 보편적 소속감일 뿐 술자리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한 유희적 단어"라고 밝히고 있다. 아무튼 이 책에는 80년대생인 저자가 사회 생활과 일상에서 보고 느낀 점을 공감할 수 있는 글로 풀어낸 것이며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펼쳐 읽기 좋은 글이다. 더 나아가, 비단 80년대생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인 70년대생, 이미 자신이 꼰대라고 느끼는 90년대생이 읽더라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80년대생이 ‘불쌍한 세대’라고 불리워진다고 말한다. 재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온갖 실험을 당해야 했던 세대라는 것이다. 70년대 기성세대와 90년대 신세대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세대. 꼰대이긴 꼰대인데, 젊은 꼰대. 김정훈의 『낀대세이』는 이러한 80년대생 ‘끼인 세대’(이하 낀대)에 대해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낀대들의 고충 등을 재밌게 풀어냄으로써 낀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에세이다.

『낀대세이』는 특히 김정훈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자조적인 태도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흔히 말하는 ‘자해 개그’에 가까운 말투다. 그 누구보다도 찌질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애교 섞인 투덜거림이라고 하면 좋을까? 80년대생이라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하며 자조적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다른 세대 역시 이런 낀대들의 고충을 이해하며 ‘그럴 수 있지’라는 유쾌한 생각을 하게 된다.

80년대생이 유지해야 할 개인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90년대생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 부담스럽게 친한 척해서도 안 되고 70년대생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그들을 외롭게 해서도 안 되는 애매모호한 거리 두기 속 슬픈 존재여.

- p.67, 「거리 두기」 중에서



가벼운 공감 에세이임에도 읽는 이에게 힐링을 전하는 책 『낀대세이』는 ‘낀대, 왜냐하면-’, ‘낀대, 그리고,’, ‘낀대, 그래서?’, ‘낀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 ‘낀대, 왜냐하면-’에서는 80세대가 왜 낀대가 되었는지, 어떻게 낀대가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 두 번째 파트 ‘낀대, 그리고,’에서는 낀대들이 살아오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선택지들(도시락과 급식, 삐삐와 시티폰,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에 대한 공감, 세 번째 파트 ‘낀대, 그래서?’에서는 그래서 탄생하게 된 낀대들의 이야기, 마지막 네 번째 파트 ‘낀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는 이런 씁쓸함 속에서도 파이팅을 외치는 낀대의 성장통을 이야기한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길지 않아 언제 어디서든 부담스럽지 않게 꺼내 읽어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나는 80년대생 꼰대다. 7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에 껴 버린 젊은 꼰대. 끼어 있는 세대라는 의미로 '낀대'라고도 불린다. 우리는 위에서 까이고 아래에서 치이는, 양쪽 눈치 다 보느라 정신없는 '불쌍한' 세대다.

- p.11, 「프롤로그」 중에서



그렇다면 ‘낀대’는 80년대생만이 낀대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당신도 낀대였고 낀대이며 낀대일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낀대가 된다.’라고 말한다. 이미 지나간 기성세대도, 곧 다가올 신세대도 결국 낀대였거나 낀대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즉, 비단 80년대생뿐만 아니라 7090년대생 역시 『낀대세이』를 읽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세대의 공감은 80년대생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끌어내고, 화해와 친목의 장을 만들어 줄 것이다. 『낀대세이』를 통해 전 세대가 ‘낀대’와 함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휴대폰 없이 공중전화나 집 전화로만 통화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반강제로 주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외워야 했다. 나와 친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연락처를 외우는 게 당연했다. 어렵지 않았다. 그 암기 과정에서 곱씹게 되는 관계의 중요성. 그것에 묻어 나오는 반짝이 같은 애정. 그때의 낭만.

- p.284, 「코로나 시대의 사랑」 중에서

당신도 낀대였고 낀대이며 낀대일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낀대가 된다.

- p.304, 「에필로그」 중에서




80년대생은 하이브리드다. 스토리 기반이었던 세대에 태어나, 캐릭터 기반 콘텐츠의 주된 소비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캐릭터도 중요하고 스토리도 중요하다. 과정도 중요하고 결과도 중요하다. 성공한 70년대생들의 스토리를 갖고 싶고, 90년대생들의 쎈캐도 멋져 보인다.

- p.148, 「스토리 and 캐릭터」 중에서

1980년대에 태어나서 88올림픽을 아주 어렴풋이 기억하고, 국민학교를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세대. 급식도 도시락도 먹어본 세대. 삐삐와 PC통신, 시티폰과 음성사서함, 스마트폰과 인터넷, 마을버스와 메타버스까지 한꺼번에 경험한 세대.

- p.269, 「액체 괴물」 중에서

저자 : 김정훈

1984년 2월생 물고기자리, AB형. INFJ지만 가끔은 ENFJ. 불만보다 불안과 친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방송국 PD로 일하던 중 사표를 던지고 글쟁이가 됐다. 책과 칼럼을 가끔, 드라마를 주로 쓴다. 《미생》, 《동네의 영웅》, 《아는 와이프》 등의 작품에서 작가 팀으로 활동 후 《귀신데렐라》, 《완미적타 : 완벽한 내 남자친구》를 메인으로 썼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를 각색했다. 《연애의 맛》, 《박은영의 FM대행진》 등 TV와 라디오, 유튜브 출연도 종종 하지만 카메라 앞보단 뒤가 역시 편하다. ‘편식男’이란 단어를 만든 장본인인데, 편식과 미식의 경계는 여전히 어렵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는 『연애전과』, 『요즘 남자 요즘 연애』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혐오(嫌惡)란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의 이유로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으로, 불쾌, 기피함, 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강한 감정(사람이 느끼는 것을 기준으로 함)을 의미한다고 사전에는 풀이돼 있다.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 감정이긴 하지만 이 감정이 강하고 지속적으로 느껴진다면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벌어진다. 특히 대상이 물건이나 무생물일 경우에는 사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동물이나 사람에게까지 이어진다면 큰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도 하고 역사적인 비극을 불러일으킨 사례도 많다. 특히 동물이나 특히 인간에 대한 혐오는 범죄와 직결되기 때문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도록 교육이나 사회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할 테마이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차별 의식도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인종, 종교, 이념에 대해 상대적 혐오감은 인간의 감정에 의해 갈등과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도 예전에 없던 남녀 혐오감에 의한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사회문제로 발전된 후 치유되지 않고 점점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어서 우려되고 있다. 미국 사회도 오래된 인종 차별이 여전히 국가사회적 문제로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는 마녀 사냥이나 홀로코스트가 혐오감이 일으킨 커다란 문제가 된 사례로 구분된다.



현대는 '혐오의 시대'라 할 만큼 많은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역사적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 마녀사냥이나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적 사건을 접할 때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토록 잔혹할 수 있을까 하는 충격과 슬픔이 함께 밀려온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어둠은 지금도 다른 양상으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2년 동안 장기화된 코로나 팬데믹의 위협 아래 전 세계적으로 격화되는 인종차별과 증오범죄는 물론이고, 가정과 학교와 일터 등 우리 이웃의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 소식에서도 그 흔적이 뚜렷하다.

코로나 확산을 계기로 원인을 소외계층이나 소수자의 탓으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는 명백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이며 팬데믹 위기 상황을 얼마나 최악의 상황으로 끌고 갈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생명을 꺾는 잔인한 흉기가 되기도 하는 인터넷상의 독설과 악성 댓글에서도 혐오라는 것이 누구나 습격할 수 있는 위험임을 절감하게 된다. 이렇듯 인류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혐오는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 누가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혐오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중요하지만 선뜻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 ‘혐오’의 문제에 주목한 선구자적 노력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2020년부터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공감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해온 티앤씨재단이 주최한 APoV 컨퍼런스 Bias, by us(우리에 의한 편견)를 통해 심리학, 법학, 미디어학, 역사학, 철학, 인류학 등 국내 최고 학자들의 강연과 토론이 펼쳐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비롯해 십자군, 마녀사냥, 홀로코스트 등의 역사적 사례까지 혐오의 씨앗에서 자라난 비극이 주는 교훈을 조명하는 기회가 마련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토론회다. 강연의 시청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설문과 사전 신청에 기꺼이 응했고, 유튜브 업로드 후에는 사흘 만에 조회 수 1만 회 돌파하면서 열띤 호응과 관심을 증명했다. 이 책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는 바로 그 아홉 교수진의 강연과 토론, 토크 콘서트의 감동을 온전히 담아낸 결과물로서, 각 영상을 먼저 접한 이들의 간절한 요청에 응답하여 탄생하게 되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이 책은 편안하게 전달되는 해설과 생생한 대화에 담긴 토론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혐오 이슈를 고르게 진단한다. 1부에서는 ‘공감’이라는 미명 아래 나와 유사한 집단만을 옹호하며 타인을 향해서는 오히려 편향된 시선을 던지는 모순된 현실을 지적하고, 어느새 스며들고 교묘해져 그것이 혐오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배척을 일삼거나 문제 해결보다 분노를 쏟아낼 희생양을 찾는 행태에 경각심을 품게 한다. 나아가 온라인상에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혐오표현 현상을 분석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2부에서는 인류사의 중요한 비극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결코 놓쳐선 안 될 절절한 교훈을 되짚어낸다. 각 장을 거치며 혐오의 실체에 점차 다가선 독자들은 이것이 머나먼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여정은 진정한 화해와 공존을 향한 소중한 걸음이 된다. 각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이 입을 모아 이 책의 의미에 힘을 싣는 이유도 다름 아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뿌리 깊은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혐오 이슈를 다룬 1부에서는 공감이란 그저 선하고 좋은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해온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을 열어준다. 1장에서는 어느 한쪽을 향하여 치우치고 과잉된 공감은 동시에 다른 한쪽을 향한 극렬한 혐오와 폭력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통찰을 전한다. 2장의 사회 경제적 위기 속에서 나타나기 쉬운 경향, 희생양을 찾아 불안을 해소하려는 본능에 대한 설명은 현재 우리 현실에서 나타나기 쉬운 여러 위험을 일깨워준다. 인터넷이란 매체에서 더욱 극심한 혐오표현들이 넘쳐나게 되는 현상을 다양한 이론을 통해 풀어낸 3장과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이 갖는 위험과 양상을 여러 사례를 통해 진단한 4장에서는 이런 현실에서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가야 할 대항표현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역사 속 혐오의 나비효과를 돌아보는 2부에서는 5장의 홀로코스트 사례를 통해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는 혐오를 멈추지 못했을 때 빚어진 크나큰 비극에 대한 경각심을 전해준다. 6장에서는 이슬람혐오를 둘러싼 흐름을 살피면서 단편적인 인식 속에 범하기 쉬운 오해의 격차를 좁힌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르완다에서의 갈등과 화해의 사례를 다룬 7장을 통해서는 차별과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집단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추구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8장에서는 십자군 전쟁, 페스트, 마녀사냥의 역사를 통해 혐오의 속성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시대에 혐오의 만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준다. 9장은 근대 식민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인종주의가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폐해를 낳게 된 역사적 경과를 다룬다. 이를 통해 잘못된 이분법을 반성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성숙을 지향하게 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컨퍼런스 당시 이어졌던 토론 세션을 비롯해 시청자들이 직접 올린 질문과 강연자의 답변으로 채워진 토크 콘서트 1, 2부의 생생한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