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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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두 개의 소설이 하나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이 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이 그렇다. 이 소설들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의 신작 장편소설로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된 독특한 실험적 작품이다.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이 작품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이다.

저자 정아은은 제 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이다. 그동안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을 펴냈다. 그리고 이 소설들 두 책이 네 번째, 다섯 번째 소설이다. 그동안 전작들을 통해 헤트헌터, 교육을 좇는 학부모, 드라마 작가 지망생, 성형외과 의사 등 우리 일상 현실에 밀접한 인물에 대해 꼼꼼한 탐구를 보여줬다. 이번에는 '젠더'가 주제이다. '도시 세태의 관찰자'라고 불리던 저자답게 특유의 관찰자적이면서도 몰입도 높은 서사를 풀어놓는다.

 


 

한꺼번에 두 편의 작품을 꺼내놓은 저자는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에서 문학평론가이자 정치평론가인 김지성의 입장에서,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는 남편과 딸 둘을 둔 주부 이화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성과 화이는 사건을 다르게 보고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두 남녀 주인공인 상대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다시 '조연'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형식을 보인다. 조연이지만 주연과 함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데 주인공과 다름없이 보이기는 하지만.

두 소설은 그 형식이 남성과 여성, 즉 ‘젠더’를 주제로 한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한국 문학에서 흔치 않은 흥미로운 시도를 완성해낸다. 젠더라는 주제를 미투, 여성의 몸, 성적 주체성, 모성, 인터섹스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해 서사에 녹여낸다. 이 두 소설은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독자는 두 소설 중 한 권만 읽어도 좋고, 두 권을 함께 읽으면 더 재미가 좋다. 다만 두 권을 모두 읽을 경우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를 먼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를 나중에 읽기를 저자와 편집자는 권한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문학평론가이자 정치평론가 지성과 지성의 오랜 동료이자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시인 민주는 지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에둘러 지성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지성은 거절한다. 민주는 제삼자의 입을 통해 지성을 미투의 가해자로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가. 지성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진보 일간지 칼럼니스트이자 정치방송 패널, 라디오 프로그램 호스트, 북토크 사회자 등으로 숱한 러브콜을 받던 그는 일순간 몰락을 경험한다.

여기서 진실은 무엇인가. 지성은 성폭행범인가. 살인자인가. 수많은 셀럽과 장난처럼 염문을 뿌렸던 민주가 그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인가. 술로 잘려나간 기억과 민주의 죽음으로 인해 지성 자신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진실을 두고, 세상은 뜨겁게 양분한다.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적과 동지가 저마다 자신이 진실임을 주장한다. 소설은 점차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매번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이것이 과연 진짜 ‘진실’인가?

 


 

저자는 보이는 현실의 이면과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비평이 업이었으나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품평의 대상'이 되어버린 김지성, 타고난 아름다움과 재능으로 때론 '부담스럽고 불길'한 존재가 되고 마는 이민주, 어느 날 나타나 몰락한 지성의 집을 장악해가는 '맹한 피조물' 나채리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하나의 캐릭터로 정형화되지 않는다.

선인과 악인, 옳음과 그름, 하물며 성별의 구분마저 점차 모호해진다. 다층적인 인간의 내면이 한 겹 한 겹 드러날수록, 진실은 거듭 반전되고 또 반전된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내지 않았다면 지성은 결백하다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쾌락에 몸을 맡긴 “짐승”이 아니고 “지성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과연 그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소설은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그 답은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쉽지 않은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독자들은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과연 소설에서 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잡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질 수도 있다.주연과 조연이 모두 어우러져 혼란을 거듭하지만 저자의 글솜씨는 노련하다. 술술 읽히는 간결한 문체와 문장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어의 배치가 정확하다. 한마디로 잘 만들어진 명품 도자기를 손에 들고 있는 기분이다.

출간 후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여성은 일생 타인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정언명령 하에 놓이면서도 정작 제 욕망을 드러내는 데는 제약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최근 자본의 영역이 인간의 신체라는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오면서 ‘성’에 관한 모든 금기가 무너지고 여성들이 성적으로 해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에서 이미지로만 보이는, 그렇기에 실생활에서는 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일종의 착시현상이죠.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인류가 이뤄온 문명들에서 ‘남성은 타고나길 넘치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늘 주장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성은 어떤가요. 여성은 성욕이 있는 존재일까요, 없는 존재일까요? 이런 모순과 오해가 가장 많이 중첩된 분야가 ‘모성’과 엮인 분야입니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 여성이 제 몸을 제 의지에 맞추어 운용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성관계는 물론이고 차림새, 체중, 흰머리 염색, 피부관리까지, 유자녀 여성은 전방위적으로 사람들의 훈수 대상이 됩니다. 화이는 사회로부터 몸에 대한 다양한 지침을 받고, 별 생각 없이 지침에 따르며 살아온 유자녀 여성의 전형이지요. 소설 속에서 화이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기보다는 자신이 뭘 원할 수 있는지, 혹은 원해도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란 말을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저자는 같은 인터뷰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두 사람의 입장에서 각각 전개하는 굉장히 독특한 소설이라는 질문에 "앉은 자리에 따라 각기 다른 지점을 보게 되는 현상에 언제나 흥미를 느꼈습니다. 『잠실동 사람들』을 쓴 뒤에 소설 속 인물들을 두 명씩 짝지어 본격적으로 차이를 드러내고 싶다는 열망을 한동안 품었고, 이번 소설도 그런 유의 열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며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한 세상을 할애해서 본격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고 독특한 소설 구상 이유를 밝혔다.

저자는 또 "동일 사건을 각각 다른 인물에 이입해서 그려야 하기에 품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성의 이야기에서 한 줄을 고치면 화이의 이야기에서 몇 개 문단을 통째로 바꿔야 하고, 그렇게 바꾼 여파로 다시 지성의 이야기를 바꿔 써야 하고. 이 과정이 계속 순환하는 거죠. 초고를 마친 뒤 다듬으며 다시 쓰는 과정이 예전에 썼던 소설들보다 더 오래 걸리고 복잡했습니다."고 힘든 과정을 거친 작품임을 표현했다. 저자는 주인공 '지성'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선과 악을 품고 있기 마련인데요. 지성은 현실 속 우리 모두가 그렇듯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는 다면적인 인간입니다. 다만 ‘지식인’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기에 그 다면성이 더 교묘하게 굴절되어 드러날 따름"이란 말을 남겨 현대인의 한 단면과 인간 본연의 깊숙한 내면을 동시에 염두에 둔 인물 창조에 힘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도 어리석고 비열하고 위선적인 주인공들이지만 각각 한 명의 인간이란 연민의 눈초리를 독자들이 보내주기를 당부한다.

 


 

여성의 육체에 멋대로 손대고 제 것처럼 구는 것은 분명 범죄고 폭력이다. 폭력으로 분류돼 처벌받아야 한다. 지성은 그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다. 남성들은 그 악습을 수십 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살아왔다. 사회의 상식이 급변했다면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갈 기회를 조금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범죄가 아니라 여겨졌던 것을 범죄로 인식하고 갱생할 기간을 주어야 하지 않은가? 예전에는 터프함 또는 과격함으로 축소되고 용납되었던 크고 작은 범죄행위들을 속죄할 방법이 죽음 또는 사회적 매장밖에 없다면,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고 낙인찍혀 남은 평생을 쓰레기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면, 어느 누가 성범죄자임을 인정하고 속죄하려 들겠는가.(p.377)

 

저자 : 정아은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공저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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