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야말로 인생이다 - 고통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는 법
켄포 소달지 지음, 원정 옮김 / 담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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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누구든지 한 번쯤 생각해본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을 집중하고 여러 날 생각해도 한마디로 요약해 낼 수 없다. 대개는 여러 날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삶이 무엇이냐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훨씬 쉽게 답이 나오는 것 같고, 현실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행복한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을 받든, 받지 않았든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지만 그 중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삶의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옳은 판단인지, 그른 판단인지 따질 필요도 없고, 따질 수도 없다. 각 개인마다 환경이 다르듯,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사람이듯 삶이나 삶의 행복이 각기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철학자나 인간의 삶을 가르치는 많은 학자들도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하는데 누가 감히 삶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종교의 성인이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 『괴로움이야말로 인생이다』는 하버드대, 예일대, 스탠퍼드대, 베이징대 등 세계 100여 곳의 명문 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온 티베트 불교의 큰 스승 켄포 소달지의 인생ㆍ수행 지침서이다. 이 책은 부처의 가르침은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삶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의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 켄포 소달지는 삶의 고통에 대처하고, 나아가 고통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인생 조언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불법(佛法)의 지혜를 전하는 동시에, 생로병사ㆍ인과응보ㆍ말ㆍ부모ㆍ친구 관계 등 우리네 삶 전반에 걸친 공통의 화두에 대한 사유를 펼친다. 이 책을 통해 불교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티베트 고승 중 한 명인 저자의 수행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며, 불교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독자들 또한 시대ㆍ종교ㆍ언어를 초월하는 인류 공통의 문제를 맞이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매우 힘든 고통에 직면했을 때 우선 고통의 근원은 아집, 즉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고통을 완전히 없애려면 먼저 그 근원을 끊어야 합니다. 그 근원을 끊으려면 불교의 가르침을 배워 이기심을 대승불교의 무아(無我) 정신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중략) 불교에서 고통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고통을 수행의 도구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원래는 고통이지만 생각을 바꾸어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수행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 「고통을 없애는 다섯 가지 방법」 중에서

 


 

저자는 「서문」을 통해 부처의 말씀을 전한다. 부처가 "인생은 모두 괴로움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은 제쳐 두더라도,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 미운 사람과 함께하는 고통, 얻으려 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은 피할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을 전제하고, “인생에는 분명 즐거움도 많은데 왜 괴로움만 과장하고, 붙들고 있나요?”라고 반문한다. 저자는 또 사실 불교에서 ‘괴로움’을 말하는 것은 삶에 즐거움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런 즐거움은 금방 지나가 버리며 우연으로 잠시 생긴 것이어서 인생의 ‘바탕색’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라고 밝힌다. 권세가 높은 사람도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고, 서로 죽고 못 사는 관계도 일시에 원수가 될 수 있는 게 세상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생은 모두 괴로움'이라는 말의 뜻이라는 것. 이에 따라 인생은 모두 괴로움임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이 세상의 참모습을 똑똑히 보지 못하고, 세상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으면 고통에서 영영 벗어나기 힘들다며 고통에 '직면'해야만 즐거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러 번 읽지 않으면 알쏭달쏭할 수도 있지만 뜻을 완전히 깨우치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진리인 것이다. 이 진리는 부처님의 뜻에 한 발 나아가는 데 이용되리라 독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고통과의 직면’이다. 고통과의 직면을 통해 역설적으로 고통 해소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 책은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 대처법(〈고통을 없애는 다섯 가지 방법〉)과 인과응보의 이치(〈인과응보를 믿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등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통 관심사를 예로 들면서 친절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설명으로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쉽게 접할 수 없는 티베트 불교의 진언(〈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부르는 진언〉)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고통에 직면하기 위해, 그리하여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기 위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공(空)’과 ‘무상(無常)’의 이치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모든 것이 비어 있다’는 공의 이치를 깨달으면 허무에 빠지게 되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의 이치를 알면 삶의 동력을 잃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공의 이치를 깨달아야 일체의 허상이 사라질 수 있고 무상의 이치를 알 때 비로소 인생이 찬란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무상’을 모르는 것.” 이것이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켄포의 진단이다. 우리는 “우선 고통의 근원은 아집, 즉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단계는 '고난을 동력으로 바꾸기'이다. 굳센 사람은 고난을 전진하는 동력으로 바꾸어 성공에 도움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4장 「역경에 감사하다」에서 “나는 단지 실패하기를 바란다”는 홍일대사의 말과 “아집을 버리려면 항상 스스로 실패를 취하라”라는 롱첸빠 존자의 말을 들려준다. 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용기 있게 받아들여 발전의 계기로 삼았던 고승대덕들이다. 『괴로움이야말로 인생이다』는 책 전반에 걸쳐 예수, 공자, 셰익스피어, 마크 트웨인 등 풍부한 예시와 교훈을 전하는 저자의 처방은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며 사는 것이다.

“불법을 깊이 이해할수록 그 심오함과 광대함에 놀란다.”고 말하는 저자는 책의 2장 「부처님처럼 되기」에서 청정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청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5장 「언어 수행」에서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부드럽고 온화한 말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6장 「부모가 바로 보살」에서는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효(孝) 정신을 역설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인 9장은 「켄포 소달지와의 대화」로, 저자가 실제 강연 현장에서 대중들과 주고받은 생생한 문답을 기록해 놓았다. 이를 통해 ‘사랑의 좌절에서 벗어나는 법’, ‘상대를 용서하는 법’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조금의 고난도 없는 편안하고 나태한 삶은, 마치 아무 짐도 싣지 않은 바다 위의 빈 배와 같아서 ‘세찬 바람과 큰 파도’를 만나면 쉽게 뒤집힙니다.

- 「이겨 내지 못한 고난은 굴욕이 됩니다」 중에서

 

저자 : 켄포 소달지

티베트 불교의 큰 스승이자 저명한 불교학자이다. 1962년 티베트 캄에서 출생하여 쓰촨성 오명불학원에서 출가하였다. 오명불학원 설립자이자 대성취자인 직메 푼촉 린포체의 가장 가까운 제자로 닝마파의 전승을 온전하게 계승하였다. 더욱 많은 사람이 불법(佛法)의 참뜻을 깨닫고 현실 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강연 및 서적, 교육 영상 등 현대적이고 친근한 방식으로 불법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특히 젊은 지식인들과의 소통을 중시해 하버드, 옥스퍼드, 베이징대학교 등 세계 100여 곳의 명문 대학에서 불법과 삶의 지혜에 대해 강연을 해 오고 있다. 불법을 전하는 시간 외에는 티베트어, 중국어 경전 상호 번역과 자선 활동에 힘쓰고 있다. 그는 늘 “배우는 사람이 단 한 명일지라도 그를 위해 불법을 전하겠다.”라고 말한다. 저서 『무엇 때문에 바쁘십니까』 『능단, 집착을 끊어라!』, 편역서 『온전한 머무름』 등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역자 : 원정

켄포 소달지의 제자로 오명불학원에서 수학하고 있다. 켄포 소달지의 『무엇 때문에 바쁘십니까』의 감수를 맡았고 『온전한 머무름』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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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
전민식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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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 작가는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여러 편의 장편소설로 이미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이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13월』, 『불의 기억』, 『알 수도 있는 사람』, 『9일의 묘』 등을 발표해 독자들의 소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는 한때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다. 로또 당첨과 같은 일확천금은 아니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 못지 않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누릴 배경을 거머쥐고 있던 그는 한순간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손안에 쥐고 있던 것들을 아련하게 잃어버리고 만다.

한순간의 실수란 산업스파이였던 여자친구에게 자료를 유출시킨 바람에 회사에서 잘린 것이다. 그는 불판닦이 아르바이트와 역할 대행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개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대기업 연봉과 비슷한 아르바이트비와 남몰래 그를 응시하고 있는 개의 여주인. 그는 서서히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된다. 이 내용과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이 책 『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는 현재 우리의 삶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문제들을 도출해낸다.

 


 

이 작품은 한때 번화했다가 쇠락해가는 과정 속에 놓여 있는 인간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에 저자의 시선이 멈춘다. 독특하게도 건물의 시점에서 건물이 말하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설마리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개된다. 한 지역과 공동체가 낡아가는 과정과 거기에 녹아 있는 여러 개인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는 단절된 채 제각각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연결된 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맞물려 돌아간다. 보통의 삶이 더욱더 간절해진 시대에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각각의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분투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통의 삶을 살아내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슈퍼마켓 주인, 공장 노동자, 학원 강사, 택배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보통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그려내고 있다. 조금만 방심해도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그 선택을 바로잡을 기회는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 『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 속 인물들은 뭔가를 해보려다가 미처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의 폭격을 맞고 빠르게 늙어버리는 것만 같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설마리 오피스텔’이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루해져 철거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고 미스테릭하지도 않으며 스펙터클하지도 블록버스터적이지도 않은 이 이야기”는 각 인물들의 하루를 조금씩 채워 넣으며 완성되었다. 보통의 삶이 더욱더 간절해진 시대에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의 민낯과 마주하게 되는 이 소설을 통해 각자가 원하는 보통의 삶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시작은 독특하게도 건물을 의인화해 오피스텔 건물의 독백처럼 시작한다. 오피스텔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과 오피스텔 건물의 배경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이 독백처럼 하는 말의 대상은 건물주 이안 사장이다. "이안 이제 우리 그만하지. 나도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자네도 할 만큼 했고. 이제 몸 곳곳에 금이 가고 있어. 지난봄엔 하수관이 막혀서 하수들이 역류하지 않았는가. 관들도 이젠 녹슬고 낡았어, 냄새는 또 어떻고. 다른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보이겠지. 이안 자넨 알지? 자네나 나나 이젠 늙었어. 우리가 원해서 늙은 건 아니지만 핏줄이 좁아지고 살비듬 떨어지고 음습한 부위에선 더 이상 싱그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자네도 아네. 철근이 들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바람만 불면 시큰거린다네. 이젠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네. 알던 사람들도 모두 어디론가 흩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자네나 나나 더 이상 세월을 견딘다는 건 무리네. 지하에 사는 상훈이라는 청년도 아는 거 같고, 편의점 하는 창범이란 사람도 아는 거 같던데……. 우리 이제 그만하지."(p.7~8)

 


 

배경 설명에 귀 기울인 독자들은 작가의 배경 처리에 이 이야기의 전개나 스토리 등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평범한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도시의 변두리에서 하루하루를그리고 있다. 역시 집단 공동 생활의 삶터라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사이에 숨겨진 다른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 것은 독자들의 권리다. 화려한 직업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인 슈퍼마켓 주인, 공장 노동자, 학원 강사, 택배 노동자 등이 나온다. 독자들의 삶 근처에서 항상 보아온 사람들이리라.

그러나 이들이 어우러지고 비틀리며 엮어내는 일은 이 소설의 근간이 된다. 이 오피스텔에 있는 슈퍼마켓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슈퍼마켓 주인 창범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영업을 했고, 입주민들을 관찰한다. 그의 시선과 관심은 높은 곳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힘든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괜찮은 이웃집 아저씨'다. 그는 오피스텔 입주들에게 외상을 주고 떼이기도 한다. 이런 그를 아내 말자가 타박을 주지만 그녀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산업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도시의 주변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 그 자체다. 이런 창범의 시선과 소설의 또다른 시선인 오피스텔 건물의 시점은 결이 다르다. 어떤 대목에서는 의도적인 배제를 통해 소설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숨긴다. 건물주 이안 사장에게 말하는 방식인데 인간과 인간의 삶을 제 3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오피스텔은 인기가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전철역에서 가깝고 깨끗한 곳에 지어 돈 없는 사업자의 사무실 용도로 지어졌으나 차츰 개인의 생활주거 공간 공간으로 변모했다. 지금의 '원룸' 임대주택쯤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사무실 용도여서 사업자에게는 싼 임대료와 세제 혜택 등을 주면서 공급자와 수요자가 많아 가격이 뛰면서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이 오피스텔이 리모델링돼 사용되고 있는 곳이 많다. 역세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적은 돈으로 훌륭한 사무 주거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이래서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거네. 슈퍼집 노파 말이네. 세상 둘도 없는 악녀처럼 굴기도 하는 데 어느 때 보면 보살이 따로 없다니까. 자네 그때 생각나는가? 용달차 보니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부산 아줌마라고 불렀던 여자 말이네. 딸이 둘 있었고. 모른 척하지 말게. 넉 달인가 월세 밀렸다가 내쫓은 사람이 모를 리가 있겠나? 하긴 내쫓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요즘은 안 그런다고? 자넨 어쩜 그렇게 변하는 게 없는가. 지금이야 비서 시켜서 하지 자네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안 하는 건가. 그래 자네 말도 옳네. 여기 월세가 싼 편이지. 그래도 없는 사람들한테는 월세가 높네. 보증금 낼 돈 없다고 무지막지하게 받으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겠나. 요즘 세상이 다시 월세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꼭 자네 같은 사람 아닌가. 아무튼 그때 쫓겨난 그 부산 아줌마는 어찌 사는지 궁금하네. 없어도 남 어려운 거 보면 푼돈이라도 내놓던 사람이었는데. 자네도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면 좀 봐주고 그럴 법도 했을 텐데. 어려웠던 시절을 겪은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 더 괄시한다고 하던데. 안 그런 사람이 더 많긴 하지만.(p.97)

 


 

“보호자가 없단 말이죠?”

“이 양반이 가족 이야기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던데.”

“죽은 지 사흘은 된 거 같은데…….”

“요즘 흔한 일이야.”

구급대원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창범의 귀를 찌른다. 술병 하나 꿰차고 유통기한 지난 핫 스파이스 버거 두 개를 들고 노인을 찾아갔다가 노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돌아서려다 섬뜩한 생각이 들어 문을 돌려보니 문이 열렸다. 창범이 젊었다면 그 섬뜩한 기분 같은 거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늙은 탓이다. 이런 엄한 일에 시간 빼앗기는 걸 말자는 극도로 싫어한다. 남 일 참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건 죽음이다. 황천길 가는 노인 배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다 건너가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p.77)

 

저자 : 전민식

 

1965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나 평택에서 자랐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진했고, 20년 넘게 한길만 고집한 끝에 마흔일곱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13월』, 『불의 기억』, 『알 수도 있는 사람』, 『9일의 묘』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강의를 하며 파주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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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질량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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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상황이나 사물에 대한 문학적 표현을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나 궁금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는 또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소설 독자의 상당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유로 읽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특히 소설은 '허구'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마치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처럼 독자들은 '의도적(?) 착각'을 즐긴다. 그것은 저자가 의도하는 소설 창작의 기본에 독자로서 충실히 호응하고 있는 셈이다.

설령 소설이 과거나, 미래 또는 시공을 초월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해도 독자들은 마치 현실의 일인 양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며 기꺼이 즐긴다. 이런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작가들의 묘사는 어찌 그리 생생한지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지 못한 채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 채 읽는 재미를 맛본다.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두세 번씩, 혹은 그 이상 읽으면서 즐긴다. 두세 번 읽어도 재미를 느끼는 것은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 『우리의 질량』이 그렇다.

 


 

이 작품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만이 가는 사후세계가 그려지고 있다. 이곳에 떨어진 모두에겐 의무가 있다. 자기 목 뒤에 엉킨 실타래 매듭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이 매듭을 전부 풀어야만 안식을 취할 수 있고, 매듭은 타인과 스킨십을 해야만 풀린다. 작가의 상상력이지만 설득력이 크다. 그것은 작가의 글솜씨와 문학적 소양일 터다.

남편 장준성의 폭력에 시달리다 한강에 몸을 던져 이 세계로 떨어진 서진이 이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이 (사후)세계의 사람들이 있는 힘껏 관계를 맺으려는 모습에 겁을 먹고 숨어 버린다. 가장 막막한 순간, 서진은 장준성을 발견하고, 옛 애인 건웅과도 마주친다. 이 세계를 떠돌던 서진과 건웅은 우연히 중학생 선형과 가족처럼 지낸다. 살아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가족이라는 행복. 그러다 선형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장준성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서진은 자신과 건웅, 선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준성과의 악연을 맺음하려 한다.

 


 

주인공 서진은 전 남편의 손에 지속적 폭력을 당하가다 급기야 한강에 뛰어든 후 이쪽 세계로 넘어왔다. 그녀는 매듭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어떻게 하면 이 세계를 탈출할지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기 위해 너무 급하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채 숨는다. 사후 세계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작가의 소설을 쓴 의도와 설정 등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전 남친이었던 건웅을 만나게 된다.

서진이 쓰레기 같은 전 남편과 결혼하기 전, 그들은 열렬히 서로를 사랑하던 연인이었으나 곱게 자란 건웅에게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서진의 결정으로 헤어졌었다. 서진은 사실 부모에게도 배신당하고 가난에 찌들리면서 살아가다가 돈밖에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마음이 크게 다친 상태였다. 순수한 건웅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할까. 서진과 건웅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와중에 그들이 나눈 사랑의 면면이 보였다. 아름답고 순수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끝이 보였던 그들의 사랑. 서진에게는 자신들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부모가 그녀를 쪽쪽 빨아먹었고, 엘리트였던 건웅의 부모는,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간 건웅을 무시하고 막 대했다. 둘 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랬기에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던 듯 보인다.

 


 

타인의 삶과 무게에 조심스럽게 건네는 응원, 위로, 그리고 뭉클한 애정을 그리는 이 소설이 재미 있고 독자들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사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지만 생전에 자신이 저지른 죄나 잘못에 대해 사후에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중력 안으로 타인의 고통을 가져다 놓고 그 무게를 가늠하려 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보다 가볍게 여기기 쉽다.

소설에서는 서진이 주로 그러한 실수를 저지른다. 청년 빈곤의 상징이라 할 만큼 절박하고 힘들게 살아온 서진으로서는 자신과 반대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건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건웅 역시 서진을 사랑하면서도 서진의 처지를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결국 죽고 난 뒤에야 각자의 사정이 지닌 ‘질량’을 알게 된다. 사후세계의 탐정 역할을 자처하며 매듭 풀 생각은 않고 눌러앉은 ‘삼촌’이라는 인물과 어쩌다 건웅과 함께 돌봐주게 된 중학생 남자아이 선형의 등장과 함께 각자의 삶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흡인력 있는 사건들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가늠해보고 공감하고 위로받게 된다. 제목에 '무게'가 아닌 '질량'으로 표기한 것도, 사후 세계를 빌어온 것도 저자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키워드다.

 


 

"당연히 우리 건물과 똑같은 구조일 줄 알았는데 층마다 우리 건물보다 호수가 세 개씩 더 많았다. 그래서 복도가 더 길었고, 그래서 더 많이 뛰어야 했다. 가슴이 아프고 피 냄새가 목구멍을 통해 비리게 올라올 때까지 층계를 올라야 했던 것 치고 장준성의 집을 찾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시끄러운 곳이었으니까. 십 층 오 호였다. 일 층에서부터 소리는 들려왔는데 몇 층일지 정확히 가늠할 순 없으니 계단으로 계속 올랐다. 혹여 놓칠까 봐서. 내가 십 층에 도달했을 때, 삼촌은 아마 한 오 층쯤을 따라 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삼촌에겐 꾸준한 운동이 필요했다. 죽은 사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p.256)

 

저자 : 설재인

 

1989년생. 한때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인생이 요상하게 흘러가서, 이제는 하루 종일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을 한다. 근육이 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걸 아주 잘 알지만 그래도 술을 오래 마시기 위해 매일 세 시간씩 체육관에 머무른다.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 『사뭇 강펀치』,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 『붉은 마스크』,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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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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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우리가 결국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작디작은 존재란 착각 아닌 착각이 불쑥 몸을 내민다. 그리고 그것은 평정을 되찾은 내면의 반가운 손짓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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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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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는 매화향 가득한 봄이 오는 무렵 살며시 독자에게 다가왔다. 이 산문집은 시인 문태준의 계절별 제주의 매력을 노래하고 제주 삶의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가는 마음으로 쓴 에세이다. 시인은 매 시절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 접한 부드러운 자연과 고유한 사물, 생명과의 교감에서 길어 올린 샘물 같은 사유를 책으로 엮었다. 시인의 이번 산문은 이야기의 정서에 꼭 맞는 시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독자에게 산문의 따스한 감각과 함께 시적 상상력을 한껏 선물한다. 독자에게는 봄이 오늘 길목에서 맞은 산문집이어서 더욱 기대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시인이 써 내려간 진실한 깨달음은 시와 어우러지며 여태 몰랐던 색깔로 아름답게 빛난다. 독자들은 그냥 시인이 이끄는 대로 시인의 삶과 제주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그의 심상(心像)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글과 문장, 문학의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

 

문장이 올 때 이 세상에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장은 개개의 사물과 사람과 생명이 고유하게 간직한, 꺼지지 않는 빛을 발견하는 일인 까닭이다.(p.5, 「저자의 말」 중에서)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은 매번 새롭고 두려우며, 차갑고 외롭고 고통이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저자의 말」을 통해 "문장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고 말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된 지도 25년이 지났지만, 시의 첫 말을 내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이야기다. 시인은 시를 짓는 이유가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살려는,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전한다. 시인이 보고 듣고 살던 삶으로부터 비탄처럼 태어난 시의 첫 문장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시인은 문장을 얻으려는 때에는 좋은 예감이 있고, 흥이 있다고 고백한다. 건반이나 현을 통해 음악이 세상으로 나오려는 순간처럼. 은유를 통해 시를 짓는 일이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임을 감추지 않는다. 때문에 문장을 얻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고 한다. 비록 혼자의 밤과 고립은 힘에 겹지만.

 

한 편의 좋은 시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움직인다. 자족하는 시는 움직이지 않는다. 관계를 경험하고 관계를 사유하는 좋은 시는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세계를 움직이게 한다.(p.28, 「부드러운 자연」 중에서)

 


 

독자로서는 오래 전에 그의 시를 통해 만난 지 꽤 오랜만에 이 산문집을 통해 다시 만났다. 그의 산문집이 처음이니만큼 그가 제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시인은 자신이 제주에 살면서 서너 번 찾은 제주도의 오름이 자신에게 평화의 시간을 안겨주었다고 토로한다. 문태준 시인은 이성복 시인이 제주 오름을 마주한 때의 감회를 쓴 글을 소개하며, '도도록하게 나온', '소복하게 솟은' 하나의 오름처럼 우리 내면의 평화는 일렁거리고 찰랑거릴 뿐 깨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읖조린다. 소박한 행복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글에서 특별하지 않는 보통의 시간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독자도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시인은 자신의 시는 생명 세계의 살림에서 태어난 노래에 가깝다고 밝힌다. 부드러운 자연과 공유의 생명 세계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시인은 한 편의 좋은 시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관계를 경험하고 관계를 사유하는 좋은 시는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세계를 움직이게 한다는 시인의 글이 유독 봄이 오는 길목에서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 시인은 사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인생에 비유하며 다채로운 시와 소설, 영화 등의 예술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 시인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도시 오랑을 휩쓴 전염병 공포에 직면한 다양한 인간 군상과 동시에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그러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시인은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균의 함의에는 우리를 공포와 불행의 수렁에 몰아넣는 여러 가지 것들, 즉 전쟁과 폭력과 부조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인은 우리는 소설 <페스트>를 통해서도 한 개인이 사회적인 몸이라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고통에 빠질 수 있는 이 공동체가 우리가 직접 가꾸어야 할 하나의 정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시인은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태어난 듯하다. 익숙함에 속아 잊어버리기 쉬운 일상과 계절의 이야기가 시인의 섬세한 문장을 만나 쉬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들의 직업병, 아니 천부적인 재능일지도 모른다. 계절의 한가운데 오롯이 서서 삶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시인은 ‘요즘 가장 오래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솔방울’이라고 답한다. 작은 솔방울에서 바람과 별과 낮, 빗방울, 새의 지저귐을 읽어낸다. 어떤 현상에 불과했던 움직임이 울림이 되고 마음이 되는 순간이다. 바깥 세계에서 만난 고유의 사물, 인연, 자연, 세계의 일면까지 끌어와 자신의 내면에 담으며 그 신선함으로 육체와 마음을 가꾸고 기른다. 햇빛과 물을 받으며 씨에서 돋아나는 하나의 풀잎처럼, 세계를 향한 시인의 여린 진심은 그렇게 싹을 틔운다.

먹이를 깨물어 먹는 토끼의 입 같은,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 같은 순수함은 저릿한 감동을 준다. 부드러운 자연과 공유의 생명 세계에 마음을 맡긴 시인의 문장이야말로 과장 없이 순수하다. 이 순도 높은 글을 접하는 순간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의 움직임에서 저마다의 깨끗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마주하는 모든 인연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된다. 한 편의 시, 한 줄의 문장이 우리의 마음을 길들이는 과정이다.

 


 

윤동주, 정지용, 김용택, 최하림··· 시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 본 시인의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문단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시인의 시 역시 때로는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름다움을 위해 씌었다는 시조차 그 아름다움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도움을 받기 위해 시 해설을 들여다보아도 그 해석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러워 포기하고 만다. 시인은 평소 삶의 근경에서 시적 순간을 길어 올려 시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산문집은 삶이 녹아들어 짙은 농도를 띄는 그의 시 구절의 출생기록이기도 하다. 저자의 오랜 추억과 미래의 시공간, 현재의 상념이 뒤섞여 깊은 통찰을 지닌 문장이 태어난다. 암소를 몰고 지게를 지며 집에 돌아오던 건강한 아버지와 잠이 늘어 돌아누워만 계시는 아버지의 뒷모습, 풀을 뽑고 돌멩이를 캐고 텃밭을 가꾸는 일상에서 시를 끄집어왔으니 그의 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화자가 독자에게 말을 걸지 않는 시가 아닌, 친숙하게 손을 내미는 시를 소개하며 독자가 ‘시의 정수’를 맛볼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동시를 소개하며 덧붙인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시간이 작은 종이 구멍을 통해 만나게 되는 반짝이는 아침의 햇살”이라는 주석은 그 자체로 새 아침을 맞은 듯 눈부시고 희망차다. 독자들은 그의 이번 산문을 접하며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물론, 삶의 지표가 될 ‘첫 문장’을 품을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된다. 가르침을 청하러 간 어떤 이가 “그런 덕담쯤은 누구나 할 줄 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한 어른은 답한다. 별것 아닌 깨달음조차 얻기 위해 평생을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자신의 내면을 기르는 일을 꼭 독서에 일임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시인은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때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들려오는 발소리, 벌레 울음소리, 흔들리는 마른풀의 소리에서 ‘나 아닌 존재’들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다정히 일러준다. 작은 솔방울과 눈송이를 뚫고 피어나는 매화를 쥐어보며, 항아리에 고인 물을 쪼아 먹는 이름 모를 새와 매일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바다를 바라보며 뭇 생명의 존재 방식을 배우면 된다고. 봄에서 겨울까지 순환하는 계절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마음자리를 돌아보는 일을, 자연과 생명 그리고 존재와 존재 사이의 눈부신 관계를 구석구석 헤아리면 된다고.

 

저자 :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시 해설집으로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 산문집으로 『느림보 마음』,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가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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