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
전민식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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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 작가는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여러 편의 장편소설로 이미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이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13월』, 『불의 기억』, 『알 수도 있는 사람』, 『9일의 묘』 등을 발표해 독자들의 소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는 한때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다. 로또 당첨과 같은 일확천금은 아니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 못지 않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누릴 배경을 거머쥐고 있던 그는 한순간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손안에 쥐고 있던 것들을 아련하게 잃어버리고 만다.

한순간의 실수란 산업스파이였던 여자친구에게 자료를 유출시킨 바람에 회사에서 잘린 것이다. 그는 불판닦이 아르바이트와 역할 대행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개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대기업 연봉과 비슷한 아르바이트비와 남몰래 그를 응시하고 있는 개의 여주인. 그는 서서히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된다. 이 내용과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이 책 『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는 현재 우리의 삶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문제들을 도출해낸다.

 


 

이 작품은 한때 번화했다가 쇠락해가는 과정 속에 놓여 있는 인간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에 저자의 시선이 멈춘다. 독특하게도 건물의 시점에서 건물이 말하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설마리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개된다. 한 지역과 공동체가 낡아가는 과정과 거기에 녹아 있는 여러 개인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는 단절된 채 제각각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연결된 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맞물려 돌아간다. 보통의 삶이 더욱더 간절해진 시대에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각각의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분투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통의 삶을 살아내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슈퍼마켓 주인, 공장 노동자, 학원 강사, 택배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보통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그려내고 있다. 조금만 방심해도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그 선택을 바로잡을 기회는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 『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 속 인물들은 뭔가를 해보려다가 미처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의 폭격을 맞고 빠르게 늙어버리는 것만 같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설마리 오피스텔’이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루해져 철거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고 미스테릭하지도 않으며 스펙터클하지도 블록버스터적이지도 않은 이 이야기”는 각 인물들의 하루를 조금씩 채워 넣으며 완성되었다. 보통의 삶이 더욱더 간절해진 시대에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의 민낯과 마주하게 되는 이 소설을 통해 각자가 원하는 보통의 삶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시작은 독특하게도 건물을 의인화해 오피스텔 건물의 독백처럼 시작한다. 오피스텔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과 오피스텔 건물의 배경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이 독백처럼 하는 말의 대상은 건물주 이안 사장이다. "이안 이제 우리 그만하지. 나도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자네도 할 만큼 했고. 이제 몸 곳곳에 금이 가고 있어. 지난봄엔 하수관이 막혀서 하수들이 역류하지 않았는가. 관들도 이젠 녹슬고 낡았어, 냄새는 또 어떻고. 다른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보이겠지. 이안 자넨 알지? 자네나 나나 이젠 늙었어. 우리가 원해서 늙은 건 아니지만 핏줄이 좁아지고 살비듬 떨어지고 음습한 부위에선 더 이상 싱그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자네도 아네. 철근이 들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바람만 불면 시큰거린다네. 이젠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네. 알던 사람들도 모두 어디론가 흩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자네나 나나 더 이상 세월을 견딘다는 건 무리네. 지하에 사는 상훈이라는 청년도 아는 거 같고, 편의점 하는 창범이란 사람도 아는 거 같던데……. 우리 이제 그만하지."(p.7~8)

 


 

배경 설명에 귀 기울인 독자들은 작가의 배경 처리에 이 이야기의 전개나 스토리 등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평범한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도시의 변두리에서 하루하루를그리고 있다. 역시 집단 공동 생활의 삶터라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사이에 숨겨진 다른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 것은 독자들의 권리다. 화려한 직업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인 슈퍼마켓 주인, 공장 노동자, 학원 강사, 택배 노동자 등이 나온다. 독자들의 삶 근처에서 항상 보아온 사람들이리라.

그러나 이들이 어우러지고 비틀리며 엮어내는 일은 이 소설의 근간이 된다. 이 오피스텔에 있는 슈퍼마켓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슈퍼마켓 주인 창범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영업을 했고, 입주민들을 관찰한다. 그의 시선과 관심은 높은 곳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힘든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괜찮은 이웃집 아저씨'다. 그는 오피스텔 입주들에게 외상을 주고 떼이기도 한다. 이런 그를 아내 말자가 타박을 주지만 그녀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산업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도시의 주변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 그 자체다. 이런 창범의 시선과 소설의 또다른 시선인 오피스텔 건물의 시점은 결이 다르다. 어떤 대목에서는 의도적인 배제를 통해 소설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숨긴다. 건물주 이안 사장에게 말하는 방식인데 인간과 인간의 삶을 제 3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오피스텔은 인기가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전철역에서 가깝고 깨끗한 곳에 지어 돈 없는 사업자의 사무실 용도로 지어졌으나 차츰 개인의 생활주거 공간 공간으로 변모했다. 지금의 '원룸' 임대주택쯤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사무실 용도여서 사업자에게는 싼 임대료와 세제 혜택 등을 주면서 공급자와 수요자가 많아 가격이 뛰면서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이 오피스텔이 리모델링돼 사용되고 있는 곳이 많다. 역세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적은 돈으로 훌륭한 사무 주거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이래서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거네. 슈퍼집 노파 말이네. 세상 둘도 없는 악녀처럼 굴기도 하는 데 어느 때 보면 보살이 따로 없다니까. 자네 그때 생각나는가? 용달차 보니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부산 아줌마라고 불렀던 여자 말이네. 딸이 둘 있었고. 모른 척하지 말게. 넉 달인가 월세 밀렸다가 내쫓은 사람이 모를 리가 있겠나? 하긴 내쫓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요즘은 안 그런다고? 자넨 어쩜 그렇게 변하는 게 없는가. 지금이야 비서 시켜서 하지 자네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안 하는 건가. 그래 자네 말도 옳네. 여기 월세가 싼 편이지. 그래도 없는 사람들한테는 월세가 높네. 보증금 낼 돈 없다고 무지막지하게 받으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겠나. 요즘 세상이 다시 월세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꼭 자네 같은 사람 아닌가. 아무튼 그때 쫓겨난 그 부산 아줌마는 어찌 사는지 궁금하네. 없어도 남 어려운 거 보면 푼돈이라도 내놓던 사람이었는데. 자네도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면 좀 봐주고 그럴 법도 했을 텐데. 어려웠던 시절을 겪은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 더 괄시한다고 하던데. 안 그런 사람이 더 많긴 하지만.(p.97)

 


 

“보호자가 없단 말이죠?”

“이 양반이 가족 이야기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던데.”

“죽은 지 사흘은 된 거 같은데…….”

“요즘 흔한 일이야.”

구급대원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창범의 귀를 찌른다. 술병 하나 꿰차고 유통기한 지난 핫 스파이스 버거 두 개를 들고 노인을 찾아갔다가 노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돌아서려다 섬뜩한 생각이 들어 문을 돌려보니 문이 열렸다. 창범이 젊었다면 그 섬뜩한 기분 같은 거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늙은 탓이다. 이런 엄한 일에 시간 빼앗기는 걸 말자는 극도로 싫어한다. 남 일 참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건 죽음이다. 황천길 가는 노인 배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다 건너가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p.77)

 

저자 : 전민식

 

1965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나 평택에서 자랐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진했고, 20년 넘게 한길만 고집한 끝에 마흔일곱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13월』, 『불의 기억』, 『알 수도 있는 사람』, 『9일의 묘』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강의를 하며 파주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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