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질량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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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상황이나 사물에 대한 문학적 표현을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나 궁금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는 또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소설 독자의 상당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유로 읽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특히 소설은 '허구'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마치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처럼 독자들은 '의도적(?) 착각'을 즐긴다. 그것은 저자가 의도하는 소설 창작의 기본에 독자로서 충실히 호응하고 있는 셈이다.

설령 소설이 과거나, 미래 또는 시공을 초월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해도 독자들은 마치 현실의 일인 양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며 기꺼이 즐긴다. 이런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작가들의 묘사는 어찌 그리 생생한지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지 못한 채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 채 읽는 재미를 맛본다.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두세 번씩, 혹은 그 이상 읽으면서 즐긴다. 두세 번 읽어도 재미를 느끼는 것은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 『우리의 질량』이 그렇다.

 


 

이 작품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만이 가는 사후세계가 그려지고 있다. 이곳에 떨어진 모두에겐 의무가 있다. 자기 목 뒤에 엉킨 실타래 매듭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이 매듭을 전부 풀어야만 안식을 취할 수 있고, 매듭은 타인과 스킨십을 해야만 풀린다. 작가의 상상력이지만 설득력이 크다. 그것은 작가의 글솜씨와 문학적 소양일 터다.

남편 장준성의 폭력에 시달리다 한강에 몸을 던져 이 세계로 떨어진 서진이 이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이 (사후)세계의 사람들이 있는 힘껏 관계를 맺으려는 모습에 겁을 먹고 숨어 버린다. 가장 막막한 순간, 서진은 장준성을 발견하고, 옛 애인 건웅과도 마주친다. 이 세계를 떠돌던 서진과 건웅은 우연히 중학생 선형과 가족처럼 지낸다. 살아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가족이라는 행복. 그러다 선형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장준성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서진은 자신과 건웅, 선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준성과의 악연을 맺음하려 한다.

 


 

주인공 서진은 전 남편의 손에 지속적 폭력을 당하가다 급기야 한강에 뛰어든 후 이쪽 세계로 넘어왔다. 그녀는 매듭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어떻게 하면 이 세계를 탈출할지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기 위해 너무 급하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채 숨는다. 사후 세계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작가의 소설을 쓴 의도와 설정 등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전 남친이었던 건웅을 만나게 된다.

서진이 쓰레기 같은 전 남편과 결혼하기 전, 그들은 열렬히 서로를 사랑하던 연인이었으나 곱게 자란 건웅에게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서진의 결정으로 헤어졌었다. 서진은 사실 부모에게도 배신당하고 가난에 찌들리면서 살아가다가 돈밖에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마음이 크게 다친 상태였다. 순수한 건웅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할까. 서진과 건웅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와중에 그들이 나눈 사랑의 면면이 보였다. 아름답고 순수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끝이 보였던 그들의 사랑. 서진에게는 자신들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부모가 그녀를 쪽쪽 빨아먹었고, 엘리트였던 건웅의 부모는,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간 건웅을 무시하고 막 대했다. 둘 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랬기에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던 듯 보인다.

 


 

타인의 삶과 무게에 조심스럽게 건네는 응원, 위로, 그리고 뭉클한 애정을 그리는 이 소설이 재미 있고 독자들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사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지만 생전에 자신이 저지른 죄나 잘못에 대해 사후에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중력 안으로 타인의 고통을 가져다 놓고 그 무게를 가늠하려 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보다 가볍게 여기기 쉽다.

소설에서는 서진이 주로 그러한 실수를 저지른다. 청년 빈곤의 상징이라 할 만큼 절박하고 힘들게 살아온 서진으로서는 자신과 반대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건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건웅 역시 서진을 사랑하면서도 서진의 처지를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결국 죽고 난 뒤에야 각자의 사정이 지닌 ‘질량’을 알게 된다. 사후세계의 탐정 역할을 자처하며 매듭 풀 생각은 않고 눌러앉은 ‘삼촌’이라는 인물과 어쩌다 건웅과 함께 돌봐주게 된 중학생 남자아이 선형의 등장과 함께 각자의 삶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흡인력 있는 사건들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가늠해보고 공감하고 위로받게 된다. 제목에 '무게'가 아닌 '질량'으로 표기한 것도, 사후 세계를 빌어온 것도 저자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키워드다.

 


 

"당연히 우리 건물과 똑같은 구조일 줄 알았는데 층마다 우리 건물보다 호수가 세 개씩 더 많았다. 그래서 복도가 더 길었고, 그래서 더 많이 뛰어야 했다. 가슴이 아프고 피 냄새가 목구멍을 통해 비리게 올라올 때까지 층계를 올라야 했던 것 치고 장준성의 집을 찾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시끄러운 곳이었으니까. 십 층 오 호였다. 일 층에서부터 소리는 들려왔는데 몇 층일지 정확히 가늠할 순 없으니 계단으로 계속 올랐다. 혹여 놓칠까 봐서. 내가 십 층에 도달했을 때, 삼촌은 아마 한 오 층쯤을 따라 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삼촌에겐 꾸준한 운동이 필요했다. 죽은 사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p.256)

 

저자 : 설재인

 

1989년생. 한때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인생이 요상하게 흘러가서, 이제는 하루 종일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을 한다. 근육이 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걸 아주 잘 알지만 그래도 술을 오래 마시기 위해 매일 세 시간씩 체육관에 머무른다.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 『사뭇 강펀치』,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 『붉은 마스크』,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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