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비밀을 간직한 연인의 속삭임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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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초초난난』은 로맨스 소설이다. '초초난난'이란 표제어와 표지의 그림만 보아도 풋풋하고, 상큼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독자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어 '초초난난'(????)이란 단어와 단어의 뜻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어감 자체만으로도 로맨스 소설임이 확실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초초난난은 우리말 발음으로는 '첩첩남남'이 되겠지만 '남녀가 서로 마음이 맞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어로 일본에서 쓰인다고 한다. 저자 오가와 이토는 우리나라에도 여러 작품이 번역 소개돼 청춘남녀가 좋아하는 러브 스토리의 대가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저자는 『달팽이 식당』과 『츠바키 문구점』이란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저자 오가와 이토는 이 작품을 20대에 썼다고 하니, 어쩌면 자전적 소설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상상과 덧대어 쓴 작품이 아닌가 하는 독자로서의 생각도 해본다. 저자의 젊은 시절 작풍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한 이 작품에 거는 기대는 더 커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작품은 한차례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찾아온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사랑은 슬프기에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난다. 사랑에 빠진 여성의 내면을 더없이 섬세히 탐구한 문장들이 곳곳에 드러나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도쿄의 옛 거리를 배경으로 계절마다 찾아오는 전통 축제와 제철 먹거리 이야기 등 각양각색 일본 전통문화를 만나는 풍부한 묘미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공감 가는 정서적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고, 이웃 나라 일본인의 감성도 엿볼 수 있다. 싸움만 안 한다는 친한 이웃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속엣 감정을 감출 수 없게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모노〉가 아닌가 독자는 생각한다. '일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모노다. 독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을 때 요즘은 '김치', '한강의 기적' 등 다양해졌지만 사실 1970~1980년대까지 '한복'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처럼 기모노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새하얀 화장에 화려한 머리장식, 그리고 약간은 불편해 보이는 높은 '게다'(下馱)를 신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일본 여성들이 그려지며 그 여성들은 모두 기모노 차림이다. 기모노도 그 화려한 전통을 뒤로 하고 오늘날에는 왕실의 결혼식, 혹은 게이샤나 가부키 등에서만 그 전통적 명맥이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한복은 명절이나 특별한 경우에만 입는 복장이 되었듯이. 우선 불편해서였을 것이다. 예전의 여성들은 일본이나 우리도 많은 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하게 했다. 물론 귀족 계급의 여성들이나 특별한 여성들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우리 한복도 그렇듯이 일본의 여성들도 일반인들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 등에는 간소화된 기모노를 입고 나가는 정도로 기모노를 입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아무튼 기모노는 혼자 입기 어려울 정도로 입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울 뿐 아니라, 그 명칭 또한 생소한 것이 많아 하나하나 살펴보기에는 이 지면에서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이만 줄이고 책 이야기로 들어간다.

작은 앤티크 기모노 가게 〈히메마쓰야〉를 운영하고 있는 ‘시오리’는 봄을 앞둔 어느 겨울 한 남자를 만난다. 신년 다회에 입을 기모노를 찾아 가게로 들어선 남자의 목소리는 특별한 관(클라리넷)을 통과해 울리는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와 닮아 시오리는 깜짝 놀란다. 왜인지 그 순간 두둥실 매끄러운 바람이 날아오른 것 같다. 거리를 두어야지 하면서도 차츰 가까워지는 둘 사이를 시오리는 “그저 살아 있어 주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그의 인생에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봄의 꽃구경으로 시작된 둘만의 약속은 한여름 불꽃놀이를 지나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며 다시 지독한 겨울 감기와 함께 사계절의 한 바퀴를 돈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인 줄 알았는데 나선처럼 조금씩 위치를 바꿔 간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오가와 이토는 그저 일상의 빛나는 아름다움과 함께 둘을 아련하게 스케치해 간다. 여주인공 시오리의 아빠는 외따로, 엄마는 여동생 둘과 임대 주택에 살고 있다. 장녀 시오리는 일찍 독립해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차렸다. 시오리에게 매년 전 남자 친구로부터 연하장이 온다. 어딘지 모르지만 전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한 사진 속의 그는 환하게 웃고 있다.

헤어지고 나서 시간을 다시 되돌려 달라고 신에게 여러 차례 빌었지만 시오리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리의 담담한 일상 속에도 다소간 북적거림이 있다. 엉뚱하고 발랄한 여동생 하나코는 종종 기모노를 빌려 달라며 찾아오고, 귀여운 할머니 마도카 씨는 매번 다른 디저트 가게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사 와 “시오리가 큰 걸로 먹어. 난 할머니니까 작은 거면 돼.”라며 시오리와 함께 나눠 먹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게 교과서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야. 안 그래, 시오리 씨?” 하며 손녀처럼 시오리를 아껴 주는 잇세이 할아버지, 언제나 약간 화나 있는 듯한 이멜다 여사, 아버지가 직접 기른 먹거리를 도쿄까지 가져다주며 “시오리는 억지로 날 엄마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는 두 번째 엄마 스즈노 씨까지, 시오리는 스스로 외톨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이웃들과 가족들의 담백한 교류 속에서 가끔은 든든한 로마음의 지원을 받으며 이럭저럭 가게를 해 나간다.

 


 

그런 가운데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하루이치로 씨가 있다. 그와 함께 맛있는 걸 먹으면 그저 마음이 몽실몽실 따뜻해진다. “이렇게 하루이치로 씨와 같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그의 몸과 내 몸을 구성하는 성분이 차츰 같아진다는 게 기뻤다.” 사랑이란 결국 같은 음식을 먹으며 성분이 같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시오리는 생각한다. 정말 우리의 일제강점기 남녀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썼던 이광수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루이치로 씨와의 관계는 시오리의 감정과 상관 없이 사계절을 돌아간다. 말 그대로 일상이 계절의 변화처럼 돌아간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안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시오리를 통해 감지될 뿐이다. 특히 하루이치로에의 감정은 조금씩 조금씩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깊은 곳으로 향한다.

봄의 꽃구경으로 시작된 둘만의 약속은 한여름 불꽃놀이를 지나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며 다시 지독한 겨울 감기와 함께 사계절을 보낸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인 줄 알았는데 나선처럼 조금씩 위치를 바꿔 간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저자는 무심한 듯 그저 일상의 빛나는 아름다움과 함께 둘을 아련하게 표현해 간다. 가게를 운영 중이지만 인터넷 판매도 안 하고 컴퓨터는 아예 없다. “메일을 보내는 법도 모르고 마우스가 뭔지 최근 들어 겨우 알았다.” 지은 지 육십 년 가까이 된 집에서 화로로 물을 끓이며 실제로 앤티크 기모노를 입고 생활하는 시오리의 삶은 한층 느리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바람이 살랑 불어 바닐라 에센스처럼 달콤한 향기가 히메마쓰야 안으로 날아들었다. 근처 절 담장 밑에 치자꽃이 활짝 핀 것이다. 이 시기면 자나 깨나 나는 치자 향기에 아련한 사랑을 하는 기분이 든다."(p.220)

 


 

도쿄의 시타마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야나카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일본인이 보아도 낯설 정도로 고유 일본의 매력을 속속들이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제로 존재하는 신사들, 식당, 계절마다 찾아오는 전통 축제 등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여 계절별 도쿄의 아름다움을 소설을 통해 누릴 수 있다. 아사쿠사만 해도 도리노이치 날이 되면 ‘운을 긁어모으는’ 즉 ‘복을 입기’ 위한 복갈퀴를 산다든가, 오랜 간논 온천에서 몸을 녹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여행만으로는 채 알지 못한 이야기가 담뿍 담겨 있다. 이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의 하나다. 또한 마음을 담아 요리하는 일본 전통 설음식에 대한 유래, 사계절의 디테일한 아름다움과 배 속이 든든해지는 각 지방의 제철 먹거리, 오래된 마을에서 엿볼 수 있는 반짝이는 지혜와 각양각색의 문화를 만나는 풍부한 묘미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베스트셀러 『달팽이 식당』, 2020년 서점대상 2위의 화제작 『라이온의 간식』 등 작가로서 저력을 끊임없이 갱신해 가는 저자는 음식 등 일본의 전통적 풍습에 대한 세심한 묘사로 누적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힘이 내재돼 있다. 『초초난난』 속 시오리 또한 언뜻 약하고 여린 소녀 같지만, 가까운 이의 배신과 일찍 깨어진 부모 사이에서 받은 상처를 감당하고도 여력을 내어 가족들을 연결하는 장녀로서 묵묵히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일본의 현대 젊은 여성이나 청소년들의 당찬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결혼할 수 없는 상대야?”

또 고개를 까닥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잇세이 씨에게 거짓말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게 교과서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야. 안 그래, 시오리 씨?”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더니 허리띠에 꽂았던 부채를 펼쳐 부쳤다. 살짝 향냄새가 나는 바람이 내게까지 불어왔다.(p.192)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선택하며 어른이 되는 것이 정답일까.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 처음 마주하는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진지하게 헤쳐나가는 시오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선택이 무엇이든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0대의 오가와 이토가 바라본 삶의 용기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새로운 계절, 무게 있는 어른의 사랑 이야기를 짐작케 하는 이 작품은 조마조마한 설렘, 닿을 수 없는 애절함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저자 : 오가와 이토(おがわ いと, 小川 絲)

일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1973년 야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200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달팽이 식당』이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0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치유 소설을 주로 선보여 온 그의 저서로는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따뜻함을 드세요』, 『트리 하우스』, 『초초난난』, 『바나나 빛 행복』,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양식당 오가와』,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등이 있다. 수많은 작품들이 영어, 한국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여러 나라에 출간되고 있다. 『달팽이 식당』은 2010년에 영화화되어 2011년에 이탈리아의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 2013년에 프랑스의 유제니 브라지에 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트리 하우스』, 2017년에는 『츠바키 문구점』이 NHK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사자의 간식』은 서점대상 후보에 올랐다. 그 밖의 저서로 『초초난난』, 『패밀리 트리』, 『따뜻함을 드세요』, 『바나나 빛 행복』,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마리카의 장갑』 등이 있다.

『마리카의 장갑』은 출생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엄지장갑과 함께 살아가는 나라 루프마이제공화국을 무대로, 한 여자의 파란 많지만 따뜻한 생애를 그리고 있다. 인생에서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없듯이 힘든 일만 계속되지 않는다는 깨우침, 베풀수록 샘물처럼 차오르는 사랑의 아이러니, 생명의 고귀함 같은 인생의 통찰과 함께 뭉클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토와의 정원』에는 가늘게 반짝이는 삶과 보잘것없이 소소한 하루하루의 소중함, 온 지구가 평화롭고 온화한, 아름다운 정원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소망을 담았다.

 

역자 : 권영주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벚꽃 다시 벚꽃』, 『형사의 아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프터 다크』,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미쓰다 신조의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온다 리쿠의 『나와 춤을』, 『달의 뒷면』, 『유지니아』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삼월은 붉은 구렁을』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제20회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빙과』, 『전쟁터의 요리사들』, 『항구 마을 식당』,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등 다수의 일본문학은 물론 『데이먼 러니언』, 『어두운 거울 속에』 등 영미권 작품도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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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와 오류의 세계사 - 딱딱한 뇌를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역사 기행
소피 스털링 외 지음 / 탐나는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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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이기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을 평생 듣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하기도 한다. 인간은 모두 어떤 생각이나 행위를 하더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또 일을 잘못 처리했을 때 위로의 말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과학자도 이런 실수를 한다고 한다. 사실 과학자들도 수많은 실수와 오류를 거듭한 후 위대한 발명에 이르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이 말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격언들을 출발시킨다.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수할까 두려워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실패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격언들이 쏟아낸 것도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 『실수와 오류의 세계사』는 이상한(실수와 오류 등) 것들이 의도하지 않은 발명으로 이어지고, 또 특이한 지식, 미신이나 풍습의 역사들을 모아놓은 재미있는 글모음이라고 보면 된다. 미신과 풍습 등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기엔 믿기지 않는 행위들도 당시에는 '믿음'에 의해 실행되었고, 괴상한 발명품, 황당한 사건 등도 끝없이 이어져 온 것이 우리의 역사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이 이래서 재미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리라고 저자 소피 스털링은 자신 있게 말한다. 스스로 '역사 덕후'라고 밝히고 있는 저자가 역사 속에서 인류가 아름다움, 지혜, 독창성을 보여주며 전설의 소재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수와 기괴함, 그리고 바보 같지만 사랑스러운 행적들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우리들은 이로써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독자들이 가진 직업을 감사하게 여기게 될 수세기 동안의 기묘한 직업들, 결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오늘날 주류 상품들의 최초 버전이었던 신기한 발명들, 흥미롭고 때론 징그러운 의학치료와 치명적인 미용 트랜드, 우리가 그랬다고?라고 의아하게 만들 황당한 인간들의 실수와 기이함. 이 책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서 달리 줄 선물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면 아주 좋아할 화장실 독자들을 위한 멋진 선물이다. 역사시간에는 결코 들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재미있는 상식 책을 즐기는 것은 지식과 상상력 또는 삶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재미있는 상식을 좋아하신다면, 지금부터 이 책과 함께 역사를 통과하는 매우 기묘한 여행을 떠나보자.

출판사 측은 독자들이 이상한 역사나 특이한 지식, 미신이나 풍습, 괴상한 발명품, 황당한 사건 등을 다룬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지금은 『실수와 오류의 세계사』를 읽을 책 목록에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린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모든 사람이 쥐덫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 쥐덫이 원래는 도난 경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있는가? 사무엘 홉킨스에게는 최초의 미국 특허를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게 왜 그렇게나 중요했을까? 수세기 동안 수많은 기이한 발명품들이 탄생했다. 이 섹션에서 작가이자 역사가인 소피 스털링은 역사에 걸친 발명가들의 호기심과 그들의 독특한 (그리고 때로는 거친) 아이디어들에 몰두한다.

 


 

이상한 아름다움과 패션의 유행은 어떤가. 대체 어떻게 생겨났을까? “고통이 곧 아름다움이다.” 라는 말은 전 세계에 걸쳐 매우 생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통스러운 패션 트랜드들과, 목재 수영복, 화장실 배관청소용구 형태의 가슴 확대기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화장품들을 발견해보라.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별짓을 다하려고 한다. 여성의 속옷 '코르셋'의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진 패션 비화라서 이 책에서 따로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왜 비소, 딱정벌레류 그리고 돼지 오줌 같은 것들이 아름다움을 위한 재료에 포함되었을까? 특이한 미신과 민속은 어떤가? 수백 년을 넘은 바나나 저주에 대해 아는가? 이빨 요정의 기원은 무엇일까? 신발에 대한 기묘한 집착은 어떤가? 일부 기묘한 믿음들은 어리석은 미신이라고 보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우리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당신은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신적일 것이다.

저자 소피 스털링은 역사학자이자 문학가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민속을 넘나들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싹하고 이상한 순간을 시간 순으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인간의 역사. 이 단순한 단어 두 개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제국의 흥망성쇠, 새로운 종교의 탄생, 전쟁, 발명, 과학적으로 중대한 발견들, 미스터리와 승리.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인류의 전설, 지혜와 독창성을 보여주지만 이면의 다른 순간들은 또한 실수와 기묘함, 사랑스러운 어리석음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인류라는 종에게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대신 이를 뒤흔드는 민망해할 가치가 있고 유쾌하게 당혹스러운 역사의 순간들을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작가의 유머러스한 전개를 따라 이상하고 재미있는 역사의 순간들과 마주치다 보면, 여러분은 어느새 역사를 관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신나게 달리면서 동시에 낄낄 웃다가도 몸을 움찔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우리가 그랬다고?-실수와 기괴함 사이」, 2장 「그걸 믿었다고?-미신」, 3장 「그걸 처방했다고?-의학적 치료와 돌팔이 의사, 그리고 미치광이」, 4장 「그걸 발명했다고?-놀랍고도 익살스러운 발명품들」, 5장 「우리가 그랬다고?-고통과 죽음은 아름다움」, 6장 「우리가 그랬다고?-희한한 직업들」 등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아인슈타인의 뇌' 분실 사건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사망하자 그의 뇌를 미국의 의학계와 관련 학계에서 영구보존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뇌'를 따로 분리해 어느 대학 연구실에 보존하고 있다고 분실하는 바람에 미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나중에 연구에 욕심을 낸 한 학자가 몰래 가져가 분석을 하고 아무런 특이할 만한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혀 흐지부지됐다고 한 사건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사실 그런 욕심은 훨씬 이전부터 미국에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미국의 위대한 시인인 월트 휘트먼이 1892년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뇌가 펜실베니아 대학에 기증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데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의 실제 뇌를 소장하는 일은 엄청난 특권이었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의 뇌 속 핏줄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시로 재배열되었으리라 저자는 확신한다. 아무튼 골상학(두개골의 모양을 보고 사람의 특성이나 운명을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글을 종종 썼던 휘트먼은 그의 뇌를 과학에 기부했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젊은 연구원이 휘트먼의 뇌가 들어있던 유리병을 떨어뜨렸고 뇌는 손상을 입고 말았다. 단 하나도 제대로 건져낼 수 없었다. 시적인 뇌를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이는 병리학 학장이었던 헨리 카텔 박사가 전한 공식 일화라고 저자는 전한다. 하지만 실제 일어난 일을 카텔은 숨겼다는 것. 그날 뇌를 관찰하는 작업이 끝난 후 실수로 밀봉하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공기 중에 노출한 채 밤새도록 놔두고 말았다. 아침이 되어 뇌는 완전히 부패해 버렸다. 카텔이 일기장에만 써놓고 숨긴 사실이다.

 


 

근대 서양에서는 유령섬의 전설이 많았던 듯하다. 대항해 시대 신대륙 발견으로 항로가 개척되자마자 서양 각국은 군대를 동원해 신대륙을 모두 점령해가는 침략전쟁을 시작했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호주·아시아·아프리카 대륙까지 눈에 띄는 육지는 하나하나 서양 제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항로가 개척되고 여러 나라가 앞다퉈 다른 대륙으로 손길을 뻗치는 과정에서 어수선하고 확정된 항로 이외의 항로를 점령한 해적들이 나타났을 것이란 말은 어쩌면 당연스러운 일이리라. 더욱이 신대륙의 금은보화를 실어 귀국하던 배는 하나만 털어도 웬만한 나라 1년 예산에 맞먹을 만큼 실려 있어 목숨을 걸고 해적은 세력을 키웠을 것이다. 보물선이 생기고 해적선이 나타나고, 침몰된 배가 유령선이 되고, 침몰된 것으로 알려진 배가 언젠가 다시 나타나고... 지금 상식으로 예상될 일이지만 당시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배의 보물만 바라고 선원들의 안녕엔 관심이 없었던 시대니까. 이에 따라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는 한때 '섬'이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200년이 넘도록 캘리포니아는 육지와 분리된 땅으로 지도에 그려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스페인의 항해사였던 포르툰 시메네스는 1533년 바하의 남쪽 해안에 다다랐는데, 그때 캘리포니아 주 전체가 섬이라고 착각했다. 지금이라도 지도 위에서 슬쩍 찾아본다면 캘리포니아 주 아래에 반도로 돌출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오해를 살 만도 하다. 당시의 항해사들에게는 구글 지도가 없었다. 그저 종이로 만든 지도만 있을 뿐이었다. 책에 실린 '지도 오류' 중 하나인데 무려 100년이 넘도록 수정되지 않았다. 1700년대 초반 한 예수회 신부가 캘리포니아만을 건너 탐험을 했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보고하면서 캘리포니아가 정말 '섬'인지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1747년에 이르기까지 조사가 더 진행되고 나서야 스페인의 국왕 페르디난드 6세는 캘리포니아가 섬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무도광: 행복한 전염병〉은 지금 생각해도 사실인가? 하는 의문점이 많다. '성 비투스의 춤'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무도광은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병으로 중세에 퍼진 전염병 중 가장 신나는 병이라 할 수 있다. 성 바투스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춤의 수호신이었다고 한다. 이 열병은 7세기에 시작되어 17세기까지 이어졌는데, 수십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이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거리로 뛰쳐나가 넋이 나간 얼굴로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병에 걸린 사람들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1518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4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한 달이 넘도록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무도광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항간에는 광적으로 번진 신앙과 신체적 질병, 심지어 악마에 홀렸다는 이론까지 난무했다. 스위스의 연금술사이자 천문학자였던 파라켈수스는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 병은 성도들의 일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병의 원인은 그들의 영혼을 너무나 잘 아는 웃음 핏줄에 있다.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그들을 간지럽혀 춤추고 들뜨게 만드는 것이다."(p.72~73)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달밤에 호수에서 술 마시다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이야기는 우리 한국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아는 실화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을 보면 과연 사고로 죽었는가 하는 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기가 막힌 죽음'은 20세기 후반에도 있었다. 풍류적이거나 낭만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미국의 폴 토마스는 코네티컷에서 온 47살 남자인데 그는 〈조지토마스 앤 선스 텍스타일〉이라는 회사의 공동 소유주였다. 1987년 8월 오후 풍차식 옷감 기계9커다란 실타래에 감긴 양털실을 작은 실에 감는 기계)를 돌리고 있는데 사고로 떨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채기도 전제, 폴은 수백 미터나 되는 실에 감겼다. 결국 그 불쌍한 남자는 700미터 털실 아래에서 질식사하고 말았다. 그는 현장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에티오피아의 황제였던 메넬리크 2세(1844년-1913년)는 몸이 조금 안 좋다고 느낄 때마다 성서를 찢어서 먹었다고 알려졌다. 신께서는어쩌다 이 남자가 모든 질병을 고치는데 성서가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는지 아시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효과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오랫동안 성서를 먹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냥 섬유질이 필요했는지도. 그의 소소한 습관은 1913년 정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중풍을 앓고 난 후, 그는 성서를 마구잡이로 먹어치워 나갔고, 급기야 책으로만 식단을 구성하여 먹기만을 고집했다. 그는 중풍에서 살아남았지만 장 폐색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주요 원인은 종이였다. 섬유질을 지나치게 많이 먹었군.(p.164)

 

내 생각에는 여성들 모두 이 유행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데에 수영복의 신에게 조용히 감사 기도를 올려도 된다. 1929년, 나무로 만든 수영복이 대유행을 했었다. 물에 뜨는 나무의 특성 덕분에 나무 수영복을 입으면 더 쉽게 헤엄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수영복은 워싱턴 호퀴엄에 있는 그레이 하버 럼버사(社)가 제작했는데, 수영하기를 가장 꺼리는 사람들도 바로 물에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만들었다. 그레이 하버는 목재 회사에서 꽤 많은 이익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이미 이름이 났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산 라인으로 수영복을 만드는 것이 차기의 ‘타당한’ 단계가 되었다.(p.217)

 

저자 : 소피 스털링

소피 스털링은 역사학자이자 문학가로, 다양한 문화권의 민속을 넘나들며 연구했다. 또한 자칭 문학 덕후이며, 아재 개그를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는 그녀는 이야기와 유머를 나누고 역사서를 읽는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더 깊은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며, 다가올 공동의 미래에 더 나은 혜안을 준다고 믿는다. 소피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뒤죽박죽 세상을 향한 사랑을 나누고자 《실수와 오류의 세계사》를 썼다.

 

역자 : 김미선

중앙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미국 마켓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어린이·청소년 책 출판 기획과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는 『미리 보는 지구과학책』, 『디즈니 무비 동화 : 모아나』, 『프레지던트 힐러리 :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꿈과 열망의 롤모델 (청소년 롤모델시리즈 8)』,『Disney 주토피아 : 디즈니 무비 픽처북』, 『어두운 건 무서운 게 아냐! (피노키오 그림책 5)』, 『안 입을 거야! (피노키오 그림책 6)』,『말썽꾸러기 플라스틱 골칫덩어리 쓰레기』 ,『위험해지는 날씨 기후변화』, 『지구를 살리는 행동하는 어린이 - 미래는 초록 이예요』, 『아홉 시에 뜨는 달』, 『헬로 젤리피쉬』, 『양말이 사라졌어!』, 『미리 보는 지구 과학책』,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 준 말』, 『바다로 간 페넬로페』, 『이게 정말 정답일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이 사랑할 거야』 등이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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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편지 - 그저 너라서 좋았다
정탁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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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하고 이별한 후 남는 감정은 더 사랑하지 못한 쓸쓸함이다. 저자의 진솔한 사랑 이야기가 이 책에서 고백처럼 흩어진다. 공감하는 사람은 그 파편을 모아보면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되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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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편지 - 그저 너라서 좋았다
정탁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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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별 편지』에는 다양한 사랑과 이별이 그려져 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항상 갑작스럽고 아프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사랑은 무엇이었고, 이별은 무엇을 남겼는지 한 번쯤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저자 정탁이 책에 담아둔 감정들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때마다 감정들은 서로 어긋나는 느낌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사랑과 이별의 모습은 그의 직접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상담해온 지인들의 이야기와 그의 사색 속에서 일어난 사랑의 장면들이 담겨 혼재돼 있다. 누구나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감정이 전부 같지는 않다. 그것은 사랑할 때도, 헤어질 때도, 그리고 헤어지고 난 다음에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른 독립적이고도 독창적인 감정을 갖고 살며, 상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정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의 감정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저자는 독자들을 자신이 사랑했던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가며, 이곳에서 우리는 그날의 햇살과 바람, 연인들 사이의 침묵과 눈빛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희생적인 고백과 사랑과 이별의 탐구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이며, 이별이 있더라도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과 어쩌면 이별이 있기에 더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다. 인연은 반드시 가장 적합한 타이밍에 만나게 되어 있고, 그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성숙한 사랑의 방법이라는 작가의 말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다.

 

 

이 책은 이별의 아픔으로 상처 입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이별로 아픈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껏 아파하도록, 그래서 더 깊은 잠에 들어 아침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하루를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집필 취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누구나 쉽게 고백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사랑의 순간을 되새긴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제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쓰다듬어주던 머리, 마주하던 눈, 맞추던 입술, 부둥켜안던 몸. 나는 어디 하나에 빠지지 않고 몸 구석 곳곳에 당신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어서 기억을 하나하나 잊으려고 하다 보니 저 자신을 잊게 될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고 그렇게 그리워하며 살아갈 참입니다." 저자의 성격과 솔직함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말들은 독자들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저자의 표현이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함'을 바탕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또 이별의 순간에 정직함은 그가 타인에게 위로와 격려를 줄 때도 받는 입장에서는 훨씬 정감 있고 현실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별을 말하는 순간으로 들어가 본다. "나의 것이었던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겪는 거다.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 중 이별이 가장 즉각적이다. 뭐든 내 곁에서 천천히 사람지지만, 연인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별의 후유증이 가장 큰 법이고. 그녀 또한 많은 이별을 겪어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지만, 어떤 이별을 맞이하냐에 따라서 사람은 많이 면이 변하게 된다. 그녀의 낯선 차가움은 분명 상처받은 아픔으로부터 기인된 것이었다. 어떤 아픔인지 꼭 들어야만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아픔은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p.35)

 


 

이 책은 4개 파트(PART)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그녀〉, 2부 〈이별〉, 3부 〈만남〉, 4부 〈사랑〉 등이다. 각 부마다 작은 항목의 장(章)을 두고 있다. 1부에는 「그녀」, 「새벽」, 「재능」, 「취미」, 「이상」, 「이별」, 「너 없이 너를 사랑하는 일」, 「하루」, 「그와 그녀」, 「내가 하고 싶은 사랑」 등 10개의 장으로 나눠 짧지만 깊은 사유가 펼쳐진다. 2부에도 「흔적을 지우는 일」, 「외로움」, 「청춘」, 「첫사랑」, 「이제 정말 이별할까요」, 「잘 가요」, 「당신은 꼭 잘 지내기를」, 「사랑은 타이밍이다」, 「첫사랑에게」, 「이별 편지」 등이 있다. 3부는 '만남'을 이야기한다. 「다툼」, 「용서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따듯한 채색」, 「기억해내자」, 「가진 것을 전부 주고도 아쉬운 마음」, 「시간을 건너」, 「사랑은 원래 기다림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나로서 마주할 것」, 「정말로 사랑한다면」, 「시작, 다시」 등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4부에는 「결혼」, 「고백」, 「단점」, 「서로에게 나들이 가는 것」 등이 짧게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의 이별 편지가 끝난다. 책의 형식을 짚어본 것이지만 각 장에 사용된 단어들을 주욱 연결하다 보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고, 여러 감정이 혼재돼 있다.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몇 명의 사례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것도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젠 당신의 소식조차 듣지 못하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지만 내 삶에 잠시나마 머물러줘서 고마웠습니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오직 당신입니다. 매일같이 내뱉던 사랑한다는 말을 이제는 과거형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날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사랑했던 기억으로 사랑하니 슬픈 과거형으로라도 내뱉겠습니다. 정말 사랑했습니다. 진심입니다. 심장을 꺼내어 보여줄 수 있다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중략) 끝이 아니길 바라도, 결국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기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모두 당신과 함께라서 소중했습니다."((p.221~225)

 


 

이 책의 주제와 형식은 앞서 말한 대로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안 풀리는 의문이 있다. 이 책의 총괄적인 〈서론〉이 되는 말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저자가 하는 말로 읽힌다. 역시 사랑과 이별, 특히 이별을 말하는 글입니다.

"사랑의 총량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

그걸 여러 사람에게 나눠서 쏟을지,

한 사람에게 온전히 쏟을지는

당신이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서 변할 것입니다.

누구나 흠 없이 사랑하고 싶겠지만

우리 사실 그 어떤 사실보다도 사랑 때문에

울고 웃으며 성장해 나갑니다.

추억을 떠올리며 한산한 기운만 머금을

차디찬 밤 같은 날만 있지는 않겠지만

사랑에 몸을 내던질 준비를 했다면

그러한 시간도 견뎌낼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략)

 


 

독자의 의문점 한마디를 보탠다. 이 책의 서두에, 4개 파트가 시작하는 맨 앞에 이 글들이 실려 있다. 사랑을 했다면 이별도 각오하고 버텨낼 내공도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그런데 "사랑의 총량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는 이 문장은 왜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특히 이별을 이야기하는 맨 앞에 두었을까 하는 의문점을 독자로서는 해석하지 못한다. 말 자체도 이해가 어렵고 이 문장을 책의 가장 앞에 둔 저자의 생각도 헤아리기 어렵다. '사랑의 총합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문장 자체가 어렵다. 누구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인용 부호도 언급도 없으니 어떤 저명한 사람의 말은 아닌 것 같고, 저자의 판단인지 알기도 쉽지 않다. 독자는 이 문장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의 전제가 되는 중요한 문장이기에 더욱 오래 숙고했다. 그러나 결국 의문부호로 남았다.

비슷한 말을 배운 적은 있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의 법칙(물리학), 제로섬에서의 '총량의 합'(경제학). 사랑이나 이별이 물리학이나 경제학에서 다루는 물건 혹은 경제 현상의 법칙에 따른 것은 아닌데 왜 사랑의 총량은 같다고 했을까. 그것도 개인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다음 문장을 읽으면 다소 의문은 풀린다. '그걸 여러 사람에게 나눠서 쏟을지, 한 사람에게 온전히 쏟을지는 당신이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서 변할 것입니다'를 바탕으로 해석해본다. 한 사람이 가진 사랑의 총량은 같은데 그것을 여러 명의 연인에게 나눠서 써야할지, 한 사람에게 쏟아넣어야 할지는 각자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 변한다? 사랑의 총량을 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물리학에서 에너지 총량은 인간이 측정 가능한 일정량의 '물건이나 물질'로부터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힘)의 총량을 말한다. 또 이 에너지의 불변의 법칙은 에너지 100이 수 차례에 걸쳐 투입되어도 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는 같은 양의 에너지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물리학의 법칙을 증명해내 '물리학'에서 채택된 법칙이다. 사랑도 감정으로 느낀다. 인간이나 다른 모든 생물은 같을 것이다. 우리 뇌속 감정뇌에서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잴 수는 없다. 잴 수 없기에 '열렬히', '많이' '하늘만큼' 등 부정확한 표현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량이 같다는 말은, 더욱이 누구에게나 같다는 말은 이 책을 읽고 동의하지 못하는 유일한 말이다.

 


 

당신을 붙잡으면 당신은 물론 내 옆에 있어 줄 테지만, 나는 다시 사랑을 이어간다 해도 당신의 차가운 말투와 눈빛을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당신과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나의 노력으로만 이어갈 수는 없었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숨길수록 상대방을 비참하게 만들 뿐. 그렇게 우리는 흔한 다른 연인들처럼 이별했다. 나를 진정 슬프게 한 것은 당신이 내 곁을 떠났다는 게 아니었다. - 「part 2. 이별」 중에서

 

그렇기에 결혼이란 참 기묘한 일이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는 허락되지 않던 것들이 허락되는 순간 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온갖 다툼거리가 많았던 연인 시절과는 다르게, 이 사람만이 이 지구에서 유일한 나의 편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툼거리는 사소한 일이 되기도 한다. 밖으로 나가면 남인 세상, 유일하게 평생을 내 편을 들어주기로 약속한 이와 다투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가장 든든한 아군을 얻는 일이 바로 결혼이기도 하다. 떠날까 하는 두려움이 사라져 소홀함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니 반드시 그대를 떠나지 않기에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이와 평생을 약속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 「part 4. 사랑」 중에서

 

저자 : 정탁

 

우리 모두 이별을 합니다.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이별한 나에게 쓰는 편지를 당신에게 부칩니다.

인스타그램 @epilogue_t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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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 한국경제 흑역사에서 배우는 오늘의 경제 교양
김정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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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는 부제 「한국경제 흑역사에서 배우는 오늘의 경제 교양」에서 보여진 것처럼 증권파동, 강남개발 등 우리 현대사에서 '흑역사'라고 사건 등을 되짚어 봄으로써 우리 미래 전망까지 가능하게 하는 경제 교양서이다. 저자 김정인은 우리나라 현대사 중에서 경제 부분의 사건의 뿌리나 유사한 사건을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반 사람들이 낯선 역사를 처음으로 공부하기에는 각종 사건·사고만 한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저자의 판단에서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불과 50년 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완성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는 등 화려한 이면에는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얼룩져 있다. 특히 정치와 경제의 유착 폐단의 고리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수많은 사건이나 사고의 중심 인물이 된 사람도 많다. 이를 우리 경제의 흑역사라고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온 국가에서 여러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그 사회가 살아 움직이며 과거를 극복해 왔다는 증거이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많은 사회였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는 저자의 경제 강의에 귀 기울여본다.

이 책은 5개 파트(PART)로 나뉘어 있다. 1부 〈부동산〉, 2부 〈노동과 복지〉, 3부 〈금융경제〉, 4부 〈정치와 경제〉, 5부 〈국제관계와 경제〉 등이다. 경제의 역사도 흐름이 있다. 이는 대부분 서양의 경제사 기술에 따르기 때문에 일반 경제사는 유명 경제학자의 이론에 따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등으로 나뉘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또는 이 이론들은 대부분 유명 학자나 학파의 이론에 의해 경제의 흐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이는 대략 애덤스미스의 시대부터 약 300년 간의 경제사이다. 즉 서양도 경제사를 애덤 스미스 이후부터 정식 체계를 갖춘 경제학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 시점은 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의 독립과 영국의 대영제국의 쇠퇴, 식민지 시대의 종말 등 굵직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이 경제의 흐름을 좌지우지 했다. 이 때문에 서양경제사는 이 점을 중요하게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도 인류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경제 활동을 해왔다. 〈호모 이코노미〉라고도 불리우는 이유다. 고대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의 생성과 화폐의 발명, 산업혁명 이후엔 노동이 경제 문제에 접합되었고, 금융 산업의 발전으로 〈금융경제〉란 말도 생겨났다. 경제가 대규모로 다루어지는(거시경제) 시점엔 자연스럽게 전문화가 따라감으로써 분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으로서 국가 경제는 사실상 해방 직후 미군정이나 6·25 전쟁으로 거의 없었다고 본다면 실제로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 시절부터를 시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우리나라 경제에 특별히 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농지 개혁은 비교적 잘해서 업적으로 평가를 받았다는 글을 어떤 책인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북한의 농지 개혁과 미군의 압력에 의해 농지 개혁은 초대 농림부 장관에 조봉암을 등용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업적으로 평가받을 일이 없고 독재를 연장하려다 결국 4·19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망명하는 불행한 일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 책은 한국경제사 입문서로 우리나라의 경제를 희망적으로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가 집필했다고 밝힌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니만큼 한국경제 전반을 스치듯 다루고 있다. 각종 이슈가 세상을 시끄럽게 할 때마다 이 책을 펼치면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 일이니까 함께 천천히 짚어가보자는 독자들의 요구가 생길 것으로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그만큼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영향을 미친 일도 빠짐없이 다뤘다는 이야기다. 1부에서 다룬 부동산 문제는 성남시 개발 당시의 일이다. 이른바 〈8·10 성남민권운동〉이다. 개발 당시 분당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와 투기까지 겹쳐 말썽이 많았으나 2000년 들어서는 '천당 위의 분당'이라 할 만큼 강남 3구를 앞지를 정도로 아파트 값이 뛰었다. 2008년까지는 성남 아파트 가격이 서울 아파트 가격보다 평균적으로 높았다고 하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도권 부존'으로 불리운 도시는 지역 정치인들이 부동산 비리나 조폭과 얽혔다는 의혹이 2000년대 들어 유독 많이 보도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소문이든 실제 상황이든 그럴 만한 배경이 있을 때 증폭되는 법이다. 이에 저자는 명백한 판교 개발 부정부패와 3,200억 원짜리 호화 청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성남의 빈민가 시절 역사인 광주대단지 사건까지 연결해 들어간다. 부동산 관련 정치인 부정부패는 서울 재개발 사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에 따르면 1970년대 부정부패 비리 없는 건설 현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건설사와 공무원이 열심히 예산을 빼돌리는 바람에 시민아파트는 날림으로 건설되고 심지어 서울 마포구의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이어진다. 또 아파트가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하자 시유지나 사유지에 집을 짓고 무허가로 살던 철거민들을 대거 이주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꽤 독특한 시위이다. 우리나라 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폭력성을 띤 동시에 정치구호 없는 생존권 시위였다. 당시 보수 우익 세력은 광주대단지 사건을 폭력 난동이라고 불렀고, 진보 좌익 세력은 민중항쟁이라고 불렀다. 민주화운동 이외의 시위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싸우기도 시간이 모자라 〈8·10 성남민권운동〉이라는 공식 명칭도 성남시청 주도로 2021년에야 결정되었다.

시위 주동자들은 경찰서에 끌려가서 간첩으로 몰려 고문받기도 했지만 시위대의 요구는 시위 이후 모두 관철된다. ① 토지 가격을 평단 1,500원 이하로 인하해줄 것, ② 총대금을 10년 동안 매년 나눠 갚게 해줄 것, ③ 향후 5년간 각종 세금을 면제해 줄 것, ④ 영세민 취로사업 일자리를 제공해 줄 것, 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환경을 개선할 구호 대책을 세울 것 등이었다. 요구 조건에 따라 정부는 1974년과 1976년 성남에 산업공단 세 곳을 만든다. 서울 성수동에 있던 공장들이 많이 이전해왔다. 도시 자급자족을 위해 독자적인 산업단지를 세우려는 성남시의 노력은 이때부터 시작된 도시 특성이다.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반발해서 개선을 이뤄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1970년대와 1980년대 열악한 노동 환경도 참지 않는다. 이렇게 천당 위의 분당의 문제는 1960년대 정부의 저곡가 정책이 나비효과를 부르고 다시 나비효과를 불러서 오늘날의 성남이 탄생된 것이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고, 신도시와 구도시 시민들도 서로 다른 성향의 정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현대사는 무척 빠르고 역동적으로 흘러왔다. 그만큼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지만, 또 그만큼 흑역사도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흑역사도 우리에게 미래를 통찰할 인사이트와 힘을 주었다는 점에서 빠짐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가령 금융 비리를 해결하는 첫걸음이었던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은 강남 아파트 10만 채 해먹은 1982년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기 사건이 없었다면 조금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은행 거래를 시작할 때 신분증을 내고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드는 것이 금융실명제이다. 사실 이런 당연한 설명을 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금융실명제는 당초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보통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고 돈을 입출금하는데 누가 차명을 쓰고 무기명을 이용하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누가 그랬을까? 지금으로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군사 작전 펼치듯 전격적으로 김영상 정부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될 만큼 예상치 못하게 실시된 것. 차명이나 무기명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돈은 대부분 '검은 돈'이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내가 내 마음대로 동생 명의로 통장을 만든다든가, 주민등록번호 확인 절차도 안 거치고 ‘아무도 저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닉네임만으로 주식 거래를 시작할 순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1993년 8월 12일까지는 이게 가능했다. (중략) 개혁이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는 만큼, 금융 시장 혼란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는 당연했다. 하지만 금융실명제 반대론자의 주장은 과격한 면이 있었다. 게다가 혼란을 핑계로 비실명제 금융거래 관행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 도입에 어떻게 성공했을까? ① 비실명제를 이용한 장영자·이철희의 어음 사기 사건이 사회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주었고(1982), ② 김영삼의 문민 정부는 그런 사건을 겪고도 부정부패에 절어 있는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으로 세워진 정부인 데다, ③ 대통령 본인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치밀한 타이밍을 계산해 단숨에 해치웠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에 비하면 가상화폐 그까짓 거〉 중에서(p.260, 265~266)

 


 

이 책의 본문에 등장하는 소제목만 봐도 내용이 막 궁금하고 당장 책을 펼쳐보고 싶어진다. 정리가 잘 돼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 한 권이면 한국경제사와 한국경제와 얽히고설킨 정치, 주택, 금융, 노동 등 거의 모든 분야와 밀접하고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많은 정책들이 제 1의 목표 앞에 '고성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환경 문제는 무차별하고 무계획한 개발에 밀려 문제 제기도 어려웠다. 노동 문제도 산업화 과정에서 당연히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산업화 과정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난 다음에는 정치 자금 규모도 턱없이 커졌다. 기업으로부터 찬조 받는 정치 자금의 부담은 오롯이 소비자 국민에게 돌아갔다. 기업 측에도 정치 자금만큼 세금을 빼주기도,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도 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런 이야기들이 흑역사 상에 드러나니 이 책을 읽을 때 지루하거나 어렵다운 생각보다 우리 경제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경제사에 따로 입문할 필요없이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우리 경제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에는 저축은행에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돈이 6조5,000억 원어치나 저금되어 있었다. 금융 사고 보호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현실적으로 피해자 구제가 어렵다. 개인의 책임 문제와 금융상품 판매 구조의 부조리함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구조를 이길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다. 이에 따라 불합리한 구조와 관행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당장 손해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인 만큼,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똑똑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물론 이렇게 속 편한 소리도 21세기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고,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 때는 그럴 수도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축은행의 탄생이 1972년이었다. 이제부터 기업이 서민들에게 사채를 빌려 쓰던 기이한 관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본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대리한테 돈을 빌려달라면?〉 중에서(p.347~348)

 


 

이렇게 시사 뒤에는 역사가 있다.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이 내린 ‘어제’의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이 되었으며, 우리의 ‘오늘’은 어떤 모습의 ‘내일’로 찾아올지 예감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경제사는 한 번쯤 펼쳐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들을 비교하고 연결하며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고 예측하게 한다. 가격이 오를 부동산을 고르는 법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명문고, 무장공비, 지하철 2호선 노선, 인구 과밀, 체비지, 경부고속도로 등으로 이어지며 강남의 탄생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식이다. 빚이 100억이면 부자일까, 거지일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해 저축은행 뱅크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PF대출, 사채, 8·3 사채동결조치, 종금사와 ‘꺾기’ 관행까지 막힘 없이 술술 풀어가며 사금융과 제2금융권의 시작과 현재까지를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는 오늘의 한국 경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재밌고 빠른 지적 여행의 길잡이이다.

 

저자 : 김정인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를 수료했다.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비플라이소프트 미디어빅데이터분석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금융·경제 전문 뉴미디어 ‘어피티’ CCO로서 금융·경제 정보를 선별하고 해석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KDI 연구원 시절, 미디어에 내보낼 경제정책 정보를 정리하며 각종 경제 현상에 재미를 느껴 경제학과에 편입해 경제 공부를 시작, 경제학 석사과정에까지 진학했다. 경제학이 재미있는 만큼 어렵기도 했기에 늘 고군분투하는 나날이었다. 미디어빅데이터 회사에서 근무하며 경제 공부를 쉬게 되었고,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어피티’에 흥미로운 경제 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2년 동안 매주 연재하다 2021년에 ‘어피티’ 정식 구성원이 되었다. 경제 공부에 재미와 어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교과서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경제 이야기를 실생활 사례들로 쉽고, 재미있고, 뼈저릴 만큼 생생하게 전하는 것이 목표다. 지은 책으로 《오늘 배워 내일 써먹는 경제상식》, 《웰컴 투 어피티 제너레이션 2022》(공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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