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비밀을 간직한 연인의 속삭임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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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초초난난』은 로맨스 소설이다. '초초난난'이란 표제어와 표지의 그림만 보아도 풋풋하고, 상큼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독자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어 '초초난난'(????)이란 단어와 단어의 뜻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어감 자체만으로도 로맨스 소설임이 확실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초초난난은 우리말 발음으로는 '첩첩남남'이 되겠지만 '남녀가 서로 마음이 맞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어로 일본에서 쓰인다고 한다. 저자 오가와 이토는 우리나라에도 여러 작품이 번역 소개돼 청춘남녀가 좋아하는 러브 스토리의 대가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저자는 『달팽이 식당』과 『츠바키 문구점』이란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저자 오가와 이토는 이 작품을 20대에 썼다고 하니, 어쩌면 자전적 소설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상상과 덧대어 쓴 작품이 아닌가 하는 독자로서의 생각도 해본다. 저자의 젊은 시절 작풍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한 이 작품에 거는 기대는 더 커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작품은 한차례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찾아온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사랑은 슬프기에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난다. 사랑에 빠진 여성의 내면을 더없이 섬세히 탐구한 문장들이 곳곳에 드러나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도쿄의 옛 거리를 배경으로 계절마다 찾아오는 전통 축제와 제철 먹거리 이야기 등 각양각색 일본 전통문화를 만나는 풍부한 묘미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공감 가는 정서적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고, 이웃 나라 일본인의 감성도 엿볼 수 있다. 싸움만 안 한다는 친한 이웃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속엣 감정을 감출 수 없게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모노〉가 아닌가 독자는 생각한다. '일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모노다. 독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을 때 요즘은 '김치', '한강의 기적' 등 다양해졌지만 사실 1970~1980년대까지 '한복'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처럼 기모노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새하얀 화장에 화려한 머리장식, 그리고 약간은 불편해 보이는 높은 '게다'(下馱)를 신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일본 여성들이 그려지며 그 여성들은 모두 기모노 차림이다. 기모노도 그 화려한 전통을 뒤로 하고 오늘날에는 왕실의 결혼식, 혹은 게이샤나 가부키 등에서만 그 전통적 명맥이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한복은 명절이나 특별한 경우에만 입는 복장이 되었듯이. 우선 불편해서였을 것이다. 예전의 여성들은 일본이나 우리도 많은 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하게 했다. 물론 귀족 계급의 여성들이나 특별한 여성들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우리 한복도 그렇듯이 일본의 여성들도 일반인들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 등에는 간소화된 기모노를 입고 나가는 정도로 기모노를 입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아무튼 기모노는 혼자 입기 어려울 정도로 입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울 뿐 아니라, 그 명칭 또한 생소한 것이 많아 하나하나 살펴보기에는 이 지면에서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이만 줄이고 책 이야기로 들어간다.

작은 앤티크 기모노 가게 〈히메마쓰야〉를 운영하고 있는 ‘시오리’는 봄을 앞둔 어느 겨울 한 남자를 만난다. 신년 다회에 입을 기모노를 찾아 가게로 들어선 남자의 목소리는 특별한 관(클라리넷)을 통과해 울리는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와 닮아 시오리는 깜짝 놀란다. 왜인지 그 순간 두둥실 매끄러운 바람이 날아오른 것 같다. 거리를 두어야지 하면서도 차츰 가까워지는 둘 사이를 시오리는 “그저 살아 있어 주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그의 인생에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봄의 꽃구경으로 시작된 둘만의 약속은 한여름 불꽃놀이를 지나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며 다시 지독한 겨울 감기와 함께 사계절의 한 바퀴를 돈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인 줄 알았는데 나선처럼 조금씩 위치를 바꿔 간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오가와 이토는 그저 일상의 빛나는 아름다움과 함께 둘을 아련하게 스케치해 간다. 여주인공 시오리의 아빠는 외따로, 엄마는 여동생 둘과 임대 주택에 살고 있다. 장녀 시오리는 일찍 독립해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차렸다. 시오리에게 매년 전 남자 친구로부터 연하장이 온다. 어딘지 모르지만 전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한 사진 속의 그는 환하게 웃고 있다.

헤어지고 나서 시간을 다시 되돌려 달라고 신에게 여러 차례 빌었지만 시오리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리의 담담한 일상 속에도 다소간 북적거림이 있다. 엉뚱하고 발랄한 여동생 하나코는 종종 기모노를 빌려 달라며 찾아오고, 귀여운 할머니 마도카 씨는 매번 다른 디저트 가게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사 와 “시오리가 큰 걸로 먹어. 난 할머니니까 작은 거면 돼.”라며 시오리와 함께 나눠 먹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게 교과서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야. 안 그래, 시오리 씨?” 하며 손녀처럼 시오리를 아껴 주는 잇세이 할아버지, 언제나 약간 화나 있는 듯한 이멜다 여사, 아버지가 직접 기른 먹거리를 도쿄까지 가져다주며 “시오리는 억지로 날 엄마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는 두 번째 엄마 스즈노 씨까지, 시오리는 스스로 외톨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이웃들과 가족들의 담백한 교류 속에서 가끔은 든든한 로마음의 지원을 받으며 이럭저럭 가게를 해 나간다.

 


 

그런 가운데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하루이치로 씨가 있다. 그와 함께 맛있는 걸 먹으면 그저 마음이 몽실몽실 따뜻해진다. “이렇게 하루이치로 씨와 같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그의 몸과 내 몸을 구성하는 성분이 차츰 같아진다는 게 기뻤다.” 사랑이란 결국 같은 음식을 먹으며 성분이 같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시오리는 생각한다. 정말 우리의 일제강점기 남녀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썼던 이광수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루이치로 씨와의 관계는 시오리의 감정과 상관 없이 사계절을 돌아간다. 말 그대로 일상이 계절의 변화처럼 돌아간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안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시오리를 통해 감지될 뿐이다. 특히 하루이치로에의 감정은 조금씩 조금씩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깊은 곳으로 향한다.

봄의 꽃구경으로 시작된 둘만의 약속은 한여름 불꽃놀이를 지나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며 다시 지독한 겨울 감기와 함께 사계절을 보낸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인 줄 알았는데 나선처럼 조금씩 위치를 바꿔 간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저자는 무심한 듯 그저 일상의 빛나는 아름다움과 함께 둘을 아련하게 표현해 간다. 가게를 운영 중이지만 인터넷 판매도 안 하고 컴퓨터는 아예 없다. “메일을 보내는 법도 모르고 마우스가 뭔지 최근 들어 겨우 알았다.” 지은 지 육십 년 가까이 된 집에서 화로로 물을 끓이며 실제로 앤티크 기모노를 입고 생활하는 시오리의 삶은 한층 느리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바람이 살랑 불어 바닐라 에센스처럼 달콤한 향기가 히메마쓰야 안으로 날아들었다. 근처 절 담장 밑에 치자꽃이 활짝 핀 것이다. 이 시기면 자나 깨나 나는 치자 향기에 아련한 사랑을 하는 기분이 든다."(p.220)

 


 

도쿄의 시타마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야나카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일본인이 보아도 낯설 정도로 고유 일본의 매력을 속속들이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제로 존재하는 신사들, 식당, 계절마다 찾아오는 전통 축제 등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여 계절별 도쿄의 아름다움을 소설을 통해 누릴 수 있다. 아사쿠사만 해도 도리노이치 날이 되면 ‘운을 긁어모으는’ 즉 ‘복을 입기’ 위한 복갈퀴를 산다든가, 오랜 간논 온천에서 몸을 녹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여행만으로는 채 알지 못한 이야기가 담뿍 담겨 있다. 이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의 하나다. 또한 마음을 담아 요리하는 일본 전통 설음식에 대한 유래, 사계절의 디테일한 아름다움과 배 속이 든든해지는 각 지방의 제철 먹거리, 오래된 마을에서 엿볼 수 있는 반짝이는 지혜와 각양각색의 문화를 만나는 풍부한 묘미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베스트셀러 『달팽이 식당』, 2020년 서점대상 2위의 화제작 『라이온의 간식』 등 작가로서 저력을 끊임없이 갱신해 가는 저자는 음식 등 일본의 전통적 풍습에 대한 세심한 묘사로 누적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힘이 내재돼 있다. 『초초난난』 속 시오리 또한 언뜻 약하고 여린 소녀 같지만, 가까운 이의 배신과 일찍 깨어진 부모 사이에서 받은 상처를 감당하고도 여력을 내어 가족들을 연결하는 장녀로서 묵묵히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일본의 현대 젊은 여성이나 청소년들의 당찬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결혼할 수 없는 상대야?”

또 고개를 까닥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잇세이 씨에게 거짓말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게 교과서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야. 안 그래, 시오리 씨?”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더니 허리띠에 꽂았던 부채를 펼쳐 부쳤다. 살짝 향냄새가 나는 바람이 내게까지 불어왔다.(p.192)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선택하며 어른이 되는 것이 정답일까.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 처음 마주하는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진지하게 헤쳐나가는 시오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선택이 무엇이든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0대의 오가와 이토가 바라본 삶의 용기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새로운 계절, 무게 있는 어른의 사랑 이야기를 짐작케 하는 이 작품은 조마조마한 설렘, 닿을 수 없는 애절함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저자 : 오가와 이토(おがわ いと, 小川 絲)

일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1973년 야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200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달팽이 식당』이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0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치유 소설을 주로 선보여 온 그의 저서로는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따뜻함을 드세요』, 『트리 하우스』, 『초초난난』, 『바나나 빛 행복』,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양식당 오가와』,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등이 있다. 수많은 작품들이 영어, 한국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여러 나라에 출간되고 있다. 『달팽이 식당』은 2010년에 영화화되어 2011년에 이탈리아의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 2013년에 프랑스의 유제니 브라지에 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트리 하우스』, 2017년에는 『츠바키 문구점』이 NHK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사자의 간식』은 서점대상 후보에 올랐다. 그 밖의 저서로 『초초난난』, 『패밀리 트리』, 『따뜻함을 드세요』, 『바나나 빛 행복』,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마리카의 장갑』 등이 있다.

『마리카의 장갑』은 출생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엄지장갑과 함께 살아가는 나라 루프마이제공화국을 무대로, 한 여자의 파란 많지만 따뜻한 생애를 그리고 있다. 인생에서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없듯이 힘든 일만 계속되지 않는다는 깨우침, 베풀수록 샘물처럼 차오르는 사랑의 아이러니, 생명의 고귀함 같은 인생의 통찰과 함께 뭉클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토와의 정원』에는 가늘게 반짝이는 삶과 보잘것없이 소소한 하루하루의 소중함, 온 지구가 평화롭고 온화한, 아름다운 정원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소망을 담았다.

 

역자 : 권영주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벚꽃 다시 벚꽃』, 『형사의 아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프터 다크』,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미쓰다 신조의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온다 리쿠의 『나와 춤을』, 『달의 뒷면』, 『유지니아』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삼월은 붉은 구렁을』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제20회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빙과』, 『전쟁터의 요리사들』, 『항구 마을 식당』,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등 다수의 일본문학은 물론 『데이먼 러니언』, 『어두운 거울 속에』 등 영미권 작품도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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