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2 - 자본주의부터 세계대전까지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오미야 오사무 지음, 김정환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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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벽두부터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팬데믹이 공포됐다. 바이러스의 인류 대공습이 100년 만에 또 시작된 것이다. 그때는 바이러스의 공습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몰랐다. 의학자들과 각 나라 정치인들은 팬데믹이 얼마나 갈지 모르고 더 큰 문제는 치료제는 물론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암담하고 막막한 국경 폐쇄와 자국 내에서도 이동이 제한될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우리나라 환자 발생, 사망, 확산 등의 공포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아무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적절한 대처 시스템도 능력도 없었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의사나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오로지 예비 감염자 예방 수칙만 되풀이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역학 추적 조사하던 일마저 너무 많은 감염자 앞에서는 손을 들었다.

이젠 개인 방역 철저, 외출 자제밖엔 답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암담해졌다. 연인 수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보고되며 마치 시간이 갈수록 숫자가 올라가는 자동미터기처럼 사망자 수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사망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 만을 넘어서자 사망자 수 발표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된 이후 답답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아무도 백신과 치료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일부 나라에선 집단 방역 체계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했다.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가운데 돈을 벌어야 그날 먹고 사는 돈 없는 서민들이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침묵의 행진을 계속했고, 이젠 코로나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엔데믹 선언도 있었다. 물론 백신과 치료제도 발명돼 엔데믹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한다.

 


 

이 책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2』는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느낀 인류의 생존 문제를 최일선에서 다루는 학문인 '화학 이야기' 두 번째 책이다. 전편에 이어 시대 배경은 19~20세기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제국주의가 횡행하는 와중에 세계 열강의 끝간 데를 모르는 욕망이 서로 충돌하다가 종국에 제1·2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격동의 시기였다. 지금까지 수천 년간 전쟁을 해온 인류의 역사는 화학 등의 발전으로 근현대에 200년 간 치른 전쟁의 사망자 수에 못 미친다. 화학 등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이로운 점을 접목시키기 이전에 전쟁과 무기 발달을 가져왔다. 당초 전쟁 무기를 목적으로 발명되거나 발달하지 않았지만 전쟁은 꾸준히 과학 지식을 전쟁에 이용한 것이다. 욕망과 이기심이 빚어내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욕망과 이기심이 그대로 또 적용되는 악순환 현상이다. 이전 교보문고 65주 연속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교보문고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2021년 교육청 학생교육문화원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교보문고 CEO를 위한 북모닝도서(『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우주 탄생부터 산업혁명까지』) 등 주요 온·오프라인서점에서 베스트&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꾸준히 판매되어 왔다. 특히 내용과 가치 면에서도 평론가들이나 독자들로부터 모두 인정받은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책 중 하나다.

 


 

이 책에는 인류가 수천 년간 해결하지 못한 식품 장기 보존 문제를 해결하여 세계 전쟁사를 바꾼 프랑스 요리사 아페르의 ‘밀폐 보존 용기’와 양국 발명가 듀란드의 ‘통조림’ 발명 이야기에서부터 영국의 ‘로켓 개발 실패’가 초강대국 미국 탄생의 원동력이 된 아이러니한 이야기,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고층빌딩 건설을 가능케 하는 영국 벽돌공 조지프 애스프딘의 ‘포틀랜드시멘트’ 발명 이야기, 산모에게 치명적인 산욕열의 원인을 밝혀내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하고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학대받다가 비참하게 죽은 헝가리 의사 겸 과학자 제멜바이스의 가슴 아픈 이야기, 19세기 중반 무렵 발명된 초기 냉장고·냉동고의 냉매로 ‘독가스’가 사용된 섬뜩한 이야기, 20세기 초반에 엄격히 시행된 ‘금주법’이 ‘코카콜라 제국’의 버팀목이 된 이야기, 평범한 일하는 여성의 위상을 왕후·귀족의 위상과 동등하게 만들어준 인조 견직물 ‘레이온’ 이야기,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 양상을 크게 바꾼 투명 아크릴 플라스틱 ‘유기유리’와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열쇠였던 ‘성능이 향상된 휘발유’ 이야기 등 화학을 둘러싼 흥미진진하면서도 뇌세포를 활성화시킬 만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이 가운데 몇 가지만 뽑아서 알아본다. 모두 다 굉장한 발명이고 발견이지만 여기에 내용을 다 쓸 수는 없기에 독자가 임의로 좋아하는 몇 개의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건축 패러다임을 바꾼 ‘철근 콘크리트’ 개발, 자동차 사회의 주춧돌이 된 ‘공기를 넣은 고무 타이어’ 발명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문명을 꽃피운 물질의 중심에는 ‘화학’이 있었다. 독자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화학이란 물질의 정체와 변환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의 핵심 분야이다. 화학은 물질의 정체와 성질을 원자와 분자의 수준에서 설명하고,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는 화학 반응의 특성을 연구한다. 인류는 50만 년 전 불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화학적 변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화학은 수천 년 전부터 여러 문명권에서 발달했던 다양한 형태의 '연금술'이나 '연단술'에서 비롯되었고, 오늘날 화학은 자연과 인간의 정체와 생명 현상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첨단과학으로 발전했다. 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화학산업은 인류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소재와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풍요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삶은 화학에 의해 마련된 물질적 기반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화학 기술의 무분별한 오용과 남용에 의한 환경 오염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화학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전 지구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학 기술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운명이라고 하면 너무 문학적 표현이 될까? 콘크리트는 석회암 지대에서 가장 먼저 발명되고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대 로마가 콘크리트를 발명해 수많은 곳에 적용함으로써 완벽한(?) 건축물을 완성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2,000년이 지나서야 고층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철근콘크리가 발명되고 건축 패러다임이 바뀐다.

프랑스 정원사 조제프 모니에가 철근과 콘크리트의 장점을 결합해 만든 ‘철근 콘크리트’가 건축 패러다임을 바꾸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돌렸다는 것이다. 특허를 취득한 지 19년째 되던 1885년, 독일 건축가 구스타프 바이스가 모니에의 ‘철근 콘크리트’의 뛰어난 내구성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200만 마르크라는 거액에 특허권을 사들이면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였다. 이후 바이스는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빌딩·교량·콘서트홀 등 대규모 건설에 폭넓게 활용하며 건축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해 나갔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계기로 ‘철근 콘크리트 공법’은 20세기 건축의 확실한 주류로 자리 잡았고 현대 문명의 발전 방향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대지진으로 초토화된 거리에 파손되지 않고 건재한 창고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이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였다.

 


 

오늘날의 자동차 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 격인 ‘공기를 채운 타이어’를 발명하고 상용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세계사를 바꾼 의외의 인물이 있다. 존 보이드 던롭으로, 그는 과학자나 공학자가 아닌 아일랜드 출신 수의사였다. 그는 어떻게 ‘공기를 채운 타이어’라는, 시대를 바꾸고 세계사를 바꾸는 혁신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던롭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당시 열 살이던 아들의 자전거 경주 대회 참가 준비를 돕는 과정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나무 바퀴에 고무 막대를 붙여서 만든 자전거 바퀴의 고무가 닳아서 끊어지고 만 탓이었다. 난감한 문제를 해결할 묘책을 궁리하던 던롭의 머릿속에 갑자기 쌈박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지! 예전에 내가 치료한 적 있는 어느 동물의 배가 팽팽하게 부풀어 몸이 팽창했었지? 그런 식으로 공기를 불어 넣어 팽팽해진 고무 튜브를 바퀴에 붙이면 되지 않을까?’

그는 지체 없이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바람이 잔뜩 들어가 팽팽해진 고무 튜브를 나무 바퀴 바깥쪽에 도넛 모양으로 붙여본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공기를 채운 고무 타이어’는 던롭의 아들에게는 자전거 경주 대회 우승 트로피를, 던롭에게는 특허와 함께 엄청난 부와 명예를 선사해주었으며, 오늘날의 자동차 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이 되었다. 이는 아일랜드 수의사 존 보이드 던롭이 자신의 동물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의 자전거 경주 대회 참가를 돕고자 바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던 중 일어난 ‘세렌디피티’이자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흥미진진한 일화다.

 

"제1병동의 산욕열 발병률이 제2병동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1847년 이후의 상황이다. 이는 전적으로 제멜바이스가 깨끗이 손을 씻고 철저히 소독하도록 한 덕분이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848년부터 소독 대상을 의료기구로까지 확대하자 산모가 산욕열로 사망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제멜바이스는 논문을 통해 의사의 손이 산욕열을 전염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온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산욕열을 예방하려면 염소수를 이용한 소독이 필요하다는 점을 호소했다. 그러나 의사회는 “의사를 살인자 취급하다니!”라고 거세게 비난하며 그를 의사회에서 추방해버렸다. 결국 제멜바이스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는 모욕적이고도 참담한 일까지 당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질게 학대받는 과정에 생긴 상처가 원인이 되어 감염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잔혹한 운명에 농락당하면서도 인류를 구원한 비운의 천재였다."(p.102~103)

 


 

앞서 언급한 대로 바이러스 습격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죽이는 물질을 발견한 것도 필연과 우연이 겹친 결과이다. ‘우연한 생물학적 발견과 발명’으로 인류사의 난제 중 난제였던 ‘높은 영유아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세계인의 평균 수명을 크게 늘리는 데 공헌한 인물이 있다.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플레밍은 어떻게 그런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런던 세인트메리병원에서 세균학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무렵 그는 한천 배지를 많이 만들어 황색포도상구균(감기에 걸렸을 때 콧물이 노래지는 원인이 되는 균과 같은 부류)을 샬레에 배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휴가 기간 동안 다른 연구자에게 연구실을 빌려주기 위해 정리하느라 그 샬레들을 그늘진 구석으로 치워두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급하게 치우느라 미처 뚜껑을 덮지 못한 샬레도 몇 개 있었다.

긴 휴가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온 플레밍은 배지에 푸른곰팡이가 생긴 샬레를 발견했다. 그는 다시 황색포도상구균을 배양하기 위해 소독을 하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푸른곰팡이가 생긴 이상 순수 배양은 실패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플레밍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번뜩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푸른곰팡이가 생긴 샬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푸른곰팡이가 번식한 곳 주변의 포도상구균이 죽어서 배지가 투명해져 있었다. 플레밍은 그 푸른곰팡이가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배출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푸른곰팡이 연구와 배양에 착수했다. 이후 플레밍은 그 푸른곰팡이가 생산하는 미지의 물질을 ‘페니실린’으로 명명했다. 그는 또 푸른곰팡이의 배양액을 여과한 물질이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플레밍은 194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알렉산더 플레밍에게 영예를 안겨주고 세계 의학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푸른곰팡이는 어디서 날아왔을까? 그의 연구실에서 공기를 타고 올라와 샬레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그야말로 우연히 발견된 푸른곰팡이와 페니실린 등의 항생물질이 1900년대에 31세였던 세계인의 평균 수명을 오늘날 73세 정도까지 획기적으로 늘려놓았으니 세계 의학사는 물론이고 세계사 그 자체를 크게 바꾸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저자 : 오미야 오사무(おおみや おさむ, 大宮理)

 

도립 니시고등학교, 와세다대학교 이공학부를 졸업하고 대형 입시학원 화학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가와이주쿠(河合塾, 대형 입시학원으로, 일본 전국에 수백 개의 지점 보유) 나고야 지구 강사로 나고야와 도쿄를 오가며 강사 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독서, 식도락, 술, 요리, 미식, 자전거, 바다 수영, 여행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사는 저자는 인문학, 그중에서도 특히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시리즈 전작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 우주 탄생부터 산업혁명까지』와 이 책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 자본주의부터 세계대전까지』는 그 값진 첫 열매라 할 수 있다.

 

역자 : 김정환(金廷桓)

 

건국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외국어전문학교 일한통번역과를 수료했다. 21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 한 권에 흥미를 느끼고 번역 세계에 발을 들였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자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경력이 쌓일수록 번역의 오묘함과 어려움을 느끼면서 항상 다음 책에서는 더 나은 번역,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번역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공대 출신 번역가로서 논리성을 살리면서도 문과적 감성을 접목하는 것이 목표다. 야구를 좋아해 한때 iMBC스포츠에서 일본 야구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번역 도서로는 『재밌어서 밤새 읽는 화학 이야기』『법칙, 원리, 공식을 쉽게 정리한 수학 사전』『자동차 구조 교과서』『비행기 조종 교과서』『근현대 전쟁으로 읽는 지정학적 세계』『세상의 모든 법칙』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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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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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한 전설로부터 비롯된다. 전설의 내용이 책의 「프롤로그」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에 이탈리아 트레스피아노 마을에 얼굴도 심성도 별로인 필로미나 폰타나라는 소녀가 살았다. 소녀는 폰타나 가문의 모든 둘째딸들에게 평생 사랑 없이 살라는 저주를 내렸다. 소녀의 여동생 마리아는 미모를 타고나는 복을 받았다. 소녀는 갓난아이 마리아가 엄마의 품에 다정히 안겨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순간부터 그 아이를 원망했다.

세월이 흘러 두 자매는 십 대가 되었고 필로미나의 어린 시절 시샘은 곪아 터질 정도로 깊어졌다. 필로미나의 애인인 코시모는 바람기가 다분한 청년이었는데 마리아를 보자마자 홀딱 반했다. 마리아는 피하려 했지만 그는 끈질겼다. 필로미나는 마리아에게 경고했다. "네가 내 애인 코시모를 뺏으면 넌 모든 둘째딸들과 함께 평생 저주를 받을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코시모가 폰타나 가족과 소풍을 갔을 때, 그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겠다 싶은 강가로 마리아를 몰아갔다. 코시모는 마리아를 와락 붙들고 억지로 입을 맞추었다. 마리아가 코시모를 홱 밀치려는 찰나 필로미나가 나타났다. 입맞춤하는 장면만 본 필로미나는 격분했다. 그녀는 강가에서 돌멩이를 집어들어 동생에게 던졌다. 돌멩이가 마리아의 한쪽 눈에 맞았다. 마리아는 시력을 잃었다. 다친 쪽 눈이 갈수록 찌그러져 내려앉았다. 마리아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으며 끝내 결혼하지 못했다. 이 일이 우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말이 씨가 된 경우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사실이 있다. 200여년 전에 필로미나가 저주를 내린 이래로 폰타나 가문의 둘째딸 중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람을 찾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저자가 이 저주의 전설을 자세하게 프롤로그를 대신해 쓰는 이유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세 여성이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시민들이고 지금은 주인공 에밀리아의 가족이 운영하는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는 스물아홉 살의 미혼이기 때문이다. 또 사촌인 스무 살의 루시아나, 이모할머니 포피도 모두 둘째딸이다.

 


 

토스카나(Toscan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광역행정구역이며 주도는 르네상스 발상지로 유명한 도시 피렌체다. 이곳에는 우피치 미술관, 피티 궁전 등 유명한 건축물이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회화의 아버지 치마부에, 조토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유명한 문인으로는 피렌체 출신으로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가 있다. 카라라의 대리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인기 있는 여행지는 피렌체, 피사, 그로세토, 시에나 등이다. 카스티글리오네 델라 페스카아 마을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찾는 해변 휴양지이다. 토스카나주에는 피렌체의 역사적 중심지(1982년), 피사의 대성당 광장(1987년), 산지미냐노의 역사 중심지(1990년), 시에나 역사 중심지(1995년), 피엔자 역사 중심지(1996년), 발 도르시아의 역사 중심지(2004년), 메디치 빌라를 포함한 7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유럽지명사전에 따르면 토스카나라는 지명은 BC 1000년경 이곳에 정착한 에트루스칸 부족에서 유래되었다. 3세기 고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어 롬바르드 왕국과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1세기 이미 카노사, 모데나, 레지오, 만투아를 소유하고 있던 아토니 가문이 토스카나 주를 지배하면서 이탈리아 중부의 주요 세력이 되었다. 1115년 토스카나주 도시들은 독립을 지향하며 서로 투쟁하였다. 피사와 피렌체가 연이어 지배권을 차지했다. 1434년 메디치 가문이 등장하고 권력이 통합되면서 토스카나 공국으로 변모했다. 1737년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공작 지안 가스톤이 사망하자 합스부르크-로레인 가문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 마리아 테레사의 남편인 프란츠에게 배속되었고, 그의 아들 레오폴트 1세가 물려받았다. 당시 교회 특권이 취소되며 내부 무역 장벽이 제거되고 사형이 폐지되는 등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어 페르디난트 3세가 토스카나 공국을 다스렸다. 1790년대 프랑스의 지배가 시작됐고 1808년 프랑스 제국에 합병되었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페르디난트 3세가 대공의 지위를 회복하고 다시 통치자로 복권했다. 프랑스인들이 도입한 개혁 중 상당수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1848년 이탈리아 전역에 자유주의 혁명이 확산되면서 1849년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860년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이탈리아 왕국으로 합병되었다. 이토록 길게 독자가 토스카나에 대해 여기에 적고 있는 것은 주인공 세 여성이 이곳을 방문하는 여정이 이 소설에 담겼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은 베이커리에서 파티시에로 일하는 스물아홉 살 에밀리아와 사촌인 스물한 살 루시아나는 모두 둘째딸임이 밝혀지는 과정이다. 둘은 또 다른 둘째딸이자 집안에서 만남이 금지된 이모할머니 포피의 여든 번째 생일맞이 이탈리아 여행에 초대된다. 포피는 여행에 동행해준다면 자신이 여든 살 생일에 라벨로 대성당 계단에서 평생의 사랑과 재회해 폰타나 가문 둘째딸들의 저주를 완전히 깨주겠다고 약속한다. 저주를 믿지 않는다면서도 내심 스스로 희생자를 자처하며 싱글의 삶에 만족하는 에밀리아와, 저주를 믿기에 오히려 그것을 깨고자 어디서든 적극적으로 남자들에게 접근하는 루시아나는 가문의 ‘이단아’ 포피 이모할머니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이 8일간의 여정에는 이탈리아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이탈리아 음식의 그윽한 풍미가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날 무렵,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이야기가 그들을, 독자들을 기다린다.

옛 노래가 울려 퍼지고 옛 이탈리안 레시피가 그대로 살아 있는 뉴욕 브루클린의 베이커리. 토스카나 출신 가족이 운영하는 이 가게에서 주인 할머니 로사 폰타나 루케시가 올리브와 구운 고추와 페타 치즈를 정리하고, 사위가 얇게 썬 프로슈토를 진열대에 옮기는 사이 스물아홉 살의 손녀 에밀리아는 주방에서 72개의 카놀리를 채울 크림을 만든다. 에밀리아는, 자신이 만든 이탈리안 디저트들에 대한 수많은 칭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손님들 앞에 자랑스레 파티시에로 내세우지 않는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집과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있고 빚이 없는 데다, 폰타나 가문 ‘둘째딸의 저주’를 갖고 태어났으니까. 둘째딸은 영원히 사랑을 찾을 수 없다는 저주를 에밀리아는 물론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연애 관계의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안전한 싱글의 삶에 만족하는 데 유용한 구실이 되어주는 게 사실이다.

 

 

오래된 저주와 가족 미스터리, 러브스토리가 함께 녹아든 이 소설은 자지 스필먼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딸, 할머니와 손녀, 자매들처럼 가족 내 여성들의 관계를 중심에 두면서도 유럽의 냉전 시대와 이민자 세대의 고달픈 삶, 향기로운 이탈리아 여행기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전개된다.

에밀리아와 달리 저주를 철석같이 믿는 사촌 루시아나(루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지만 역시나 저주 탓인지 아름다운 외모에도 연애 운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아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발신인은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이모할머니(외할머니의 여동생) 포피 폰타나.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올 때 가족과 불화를 일으킨 탓에 집안 전체에서 만남을 금지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에밀리아는 사이 좋게 지내는 돌피 삼촌이 가져다 준 우편물 속에 보라색 봉투를 발견하고 확인한다. 필라델피아 소인이 찍혀 있고 손으로 주소를 쓴 봉투다. 에밀리아의 미소가 사라진다. 몸이 굳는다. 화려한 서체로 적인 이름과 주소가 왼쪽 위 구석에서 확 띈다. 포피 폰타나. 할머니랑 돌피 삼촌과 소원해진 여자 형제. 파올리나. 멀리 있지만 항상 에밀리아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수께끼 같은 이모할머니의 이름이다. 그는 할머니 가운데 에밀리아가 만나는 것이 금지된 유일한 친척이다.

 

"사랑하는 에밀리아에게,

부탁을 하려고 편지를 쓴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부탁은 이나구나. 사실 내가 네 부탁을 들어주려고 해. 있잖아, 내가 하려는 제안이 네 인생을 바꿔놓을 거란다. (중략) 나는 여든 살 생일을 기념해서 올가을에 내 고국 이탈리아로 돌아간다단다. 너랑 함께 가면 좋겠구나. 헉 소리가 나온다. 이탈리아에? 나랑? 나는 이모할머니를 잘 모른다. 그래도 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해바라기 들판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가득 차오른다. (중략) 나와 이탈리아에 가면, 너와 루시아나는 저주에서 벗어나 돌아오게 될 거야.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중략) 무엇이 진실인지 네가 스스로 결정해서 믿을 때 생길 일을 상상해보렴.”(p.32~33)

 


 

이모할머니 포피가 계획한 여행 일정에 따르면 그들은 8일간의 여정 마지막 날인 포피의 여든 살 생일에 아말피 해안의 마을 라벨로에 꼭 도착해야 한다. 수십 년 전 약속에 따라 일생에 단 하나뿐인 사랑과 라벨로 대성당에서 재회하고 집안의 저주를 깨기 위해서다. 에밀리아는 외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시와 함께 포피를 따라 이탈리아로 떠난다. 포피는 날렵한 몸에 건강한 올리브색 피부를 가졌으며 팔과 어깨를 드러낸 원피스를 즐겨 입는 멋쟁이로 유쾌하고 다정하며 매혹적이다. 초반에는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세 사람은 여행길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베니스에서 토스카나를 거쳐 아말피 해안에 이르는 동안 포피는 가족에 얽힌 이야기와 스무 살 무렵 이탈리아에서 만난 첫사랑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애절한 사연을 들려준다.

그 속에서 에밀리아와 루시는 자신도 모르게 갇혀 있던 거짓 믿음에서 빠져나와 주체적으로 변해간다. 엄마 대신 키워준 외할머니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늘 소심했던 에밀리아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을 깨닫게 되면서 더욱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루시는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하루하루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들 앞에 가족사의 숨겨진 진실이 비로소 드러난다.

세대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은 물론 성격도 제각각인 세 여성의 이탈리아 여행은, 동시에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죽어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에 대해 에밀리아가 물어볼 때마다 포피의 입에서 한 타래씩 풀려 나오는 폰타나 가문의 이야기는, 1959년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 트레스피아노에서 소작농이었던 가족들이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미국 이주를 꿈꾸던 시기로부터 시작된다. 땅을 가진 자들만이 부유하던 이탈리아의 호황기에 미국에서의 새 출발을 준비하던 이들, 다른 한편 가족을 떠나고 환경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던 이들이 한 지붕 아래 살던 그 시절은, 냉전 시대 동독을 탈출하거나, 탈출했다가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장벽 건설로 그곳에 유폐된 사람들도 함께하던 시절이었다.

 


 

이 소설은 에밀리아와 포피 두 사람의 화자가 이끌어간다. 포피가 에밀리아와 루시에게 들려주는 독백 같은 말속에서 포피의 비밀스러운 과거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아룸다우면서도 서글프게 펼쳐진다. 여행에 따라나선 것을 후회하고 포피에게 회의적이던 두 사람은 점차 포피의 아픔과 그리움에 공감하고 여든 살 생일날에 아말피 해안의 성당 계단에 도착해야 한다는 오랜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자유와 사랑이 있는 삶을 꿈꾸는 젊은 세대가 전통을 혹은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하는 가족들과 부딪치며 얽히고설킨 역사가 포피의 입을 통해 또 다른 세대인 에밀리아와 루시아나에게 전해진다. 이 이야기 전승과 달콤하고 때로는 씁쓸한 우여곡절 가득한 이탈리아 여행으로 그들은 가족이라는 엉킨 매듭 안에서 서로의 뿌리를 이해하고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공감에 이른다.

에밀리아와 루시는 자신도 모르게 갇혀 있던 헛된 믿음에서 빠져나와 주체적으로 변해간다. 엄마 대신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구박을 감수하는 데다 언니에게도 늘 이용당하던 에밀리아는 그들에게 당당히 맞서게 되고 스스로 선택하여 자유롭게 살기로 한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을 깨닫게 되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잘 소개돼 있다고 이 책의 역자 신승미는 「이탈리아로 떠난 세 여자의 자아와 사랑 찾기」란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확인해준다. 그리고 에밀리아와 루시는 모든 고정 관념처럼, 진짜 저주는 미신이 일으키는 절망감, 자신감 붕괴,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불신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우리 안에 감춰진 회복력을 깨어나게 하는 이 가족 성장소설에서 ‘둘째딸들’은 두려움과 죄책감과 거짓 믿음을 떨치고 운명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이름이 된다.

“언젠가 알게 될 게다, 에밀리아. 삶이 항상 동그란 원은 아님을. 그보다는 우회로와 막다른 길, 거짓된 시작과 가슴 아픈 이별이 있는 뒤얽힌 매듭일 때가 더 많단다. 길을 찾을 수 없고 지도가 있어봐야 소용없는, 부아가 치밀고 어찔어찔한 미로지.” 포피가 내 손을 꽉 쥔다. “하지만 모퉁이 하나도, 커브 길 하나도 절대로,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된단다.”(p.330)

 


 

어둠 속에서 포피의 눈이 반짝인다. “결국 삶은 간단한 방정식이란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마다-그 대상이 남자든 아이든, 고양이든 말이든-이 세상에 색채를 더하게 되지.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면 색을 지우게 되고.” 포피가 씩 웃는다. “암울한 흑백의 연필 스케치에서 진정 아름다운 유화로 가는 이 여정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란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p.444~445)

 

저자 : 로리 넬슨 스필먼(Lori Nelson Spielman)

 

미국 미시간주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언어치료사와 생활지도 상담사, 가정방문 교사로 일하다 첫 소설 『라이프 리스트』로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라이프 리스트』는 30여 개국에서 27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독일, 이스라엘, 대만 등 6개국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20세기 스튜디오에서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 데뷔작의 놀랄 만한 성공 이후 두 번째 소설 『달콤한 용서(Sweet Forgiveness)』와 세 번째 소설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The Star-Crossed Sisters of Tuscany)』을 발표하며 계속해서 작가로서의 저력을 입증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어머니와 딸, 할머니와 손녀, 자매들처럼 가족 내 여성들의 관계에서 반짝이는 이야기가 탄생하곤 한다. 이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와 활기 넘치는 모험은 늘 독자를 가슴 뛰는 발견으로 이끈다. 스필먼은 현재 미시간에서 남편과 말썽쟁이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역자 : 신승미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잡지 기자로 일했다. 국문학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 인문,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살인 플롯 짜는 노파』 『파친코』(전2권)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여보세요, 제가 지금 죽고 싶은데요』 『진홍빛 하늘 아래』 『인형의 집』 『몽키 마인드』 『나는 나부터 사랑하기로 했다』 『살며 사랑하며 글을 쓴다는 것』 『언브로큰』(전2권)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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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테스 샤프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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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의 주인공 노라는 겉으론 여느 10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실제 이름도 노라 오말리가 아니다. 그것은 많은 이름 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이름일 뿐이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노는 듯 보여도 그건 단지 연기이자 엄마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방식일 뿐이다. 노라는 그렇게 다양한 성격, 외모뿐만 아니라 여러 이름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레베카,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 애슐리. 이들은 모두 노라의 엄마가 그녀 자신이 목표로 삼고 싶은 잠재적인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기반으로 훈련시킨 소녀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모두 현재의 사기꾼에 걸맞게 설계된 모녀의 외관이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노라는 그 모든 소녀에게서 벗어났다. 한때 자기처럼 엄마의 제자로 단련되었던 언니 덕분에 노라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재구성한 끔찍한 엄마로부터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전직 사기꾼 노라는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인 다역'이 가능한 영화처럼. 하지만 은행 강도 사건의 인질이 되었을 때 노라는 극한의 시험에 들고 만다. 이번만큼은 탈출 계획이 없다. 이제 친구들을 살려내려면 한때 그 소녀였던 ‘딸들’의 모든 사기 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총잡이들이 노라 오말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전에.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소설의 스토리는 은행 강도의 인질이 된 노라와 친구 아이리스, 웨스의 현재 시점과 노라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노라와 언니 리가 어떻게 엄마로부터 벗어났는지, 노라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짓까지 저질러야 했는지 과거 회상식으로 이어진다. 노라의 친구 두 명의 과거도 함께 저자 테스 샤프는 보여준다. 그들간의 관계와 현재 노라의 처지에 대해서도 천천히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 스토리 전개에 쌓는다. 소설은 모두 6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영화의 신 넘버처럼 장면이 바뀌고 넘버가 바뀐다. 소설 읽는 동안 영상처럼 머리를 스치는 장면들이 오래 남을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 노라 오말리는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여러 인생을 살았다. 사기꾼의 딸로 태어난 노라는 자연스럽게 사기를 배웠고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제자로 자란다. 하지만 엄마가 목표물과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 노라는 궁극의 사기를 치기로 결심한다. 엄마와 그 목표물로부터의 탈출. 그 후 5년 동안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평범한 생활을 하던 노라는 녹슨 기술을 다시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것이다. 한때 희대의 사기극 중심에 섰던 노라의 정체에 대해 은행강도범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이 인질이 바로 그 유명한 여자아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노라는 레베카,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 애슐리라는 이름을 상황에 맞춰 변신하고 변신했다. 실제 변신은 아니지만 상황에 맞게 이름을 바꾸고 적절하게 대처해왔다. 작품 속 주인공은 독백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나는 이런 소녀들을 거쳐왔다. 우리 엄마가 먹잇감을 완벽하게 사기 치기 위해 분신하는 여자들의 완벽한 딸. 이 딸들은 나였지만 모두 제각각 달랐다. “최고의 사기꾼은 그럴듯해야 해. 진실의 향기가 나야 한단다.”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진실의 향기를 뿜기 위해 엄마는 이야기를 지어내었는데, 너무나 그럴듯한 사연들을 지어내서, 사람들은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p.53)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운 없게도, 정말 운 없게도 마음 잡고 사는 중에 은행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10대 사기꾼 노라 오말리. 노라는 여자친구인 아이리스, 그리고 전 남자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웨스와 함께 초조하게 탈출을 계획하고 있다. 저자 테스 샤프는 거짓말과 폭력의 삶 속에서 태어난 노라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노라의 엄마는 폭군(학대라는 의미로 들린다),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사기꾼으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딸에게 각기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여 그에 맞는 성격과 머리 색깔을 갖도록 했다. 따라서 노라는 착하고 순진한 소녀나 여린 피해자 같은 역할을 맡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니 지금 은행에서 총을 들고 있는 자들은 노라에게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임수를 써 자신과 친구들이 살아남도록 해야 하는 목표물일 뿐이다.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노라가 엄마로부터 배운 기술을 활용하는 동안, 저자는 노라의 과거 정체를 하나씩 공개하고 노라의 언니 리가 어떻게 엄마를 벗어났고 또 어떻게 노라를 엄마에게서 떼어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는지 이야기해나간다.

 

어쨌든 우리 자매는 깨진 조각들을 억지로 갖다 붙인 그런 여자를 엄마로 두고 자란 상처투성이의 아이들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사기꾼이었으니까, 나는 사기꾼의 딸로 태어났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엄마처럼 미소로 상대를 현혹하는 자질도 타고났다. 사람들은 이걸 ‘매력’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것을 ‘유용한 것’이라 부른다.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이에 따라 어느 상황에서건 그에 적응하여 상대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거울처럼 행동하는 능력. 이건 자질도 저주도 아니었고 그냥 쓰기 좋은 도구였다. (p.37)

 


 

이로 인해 소설은 기상천외한 사기 행각과 거대한 슬픔 그리고 10대들의 누아르가 결합돼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 데 이어 마침내 영화화됐다. 〈기묘한 이야기〉, 〈에놀라 홈즈〉 스타 밀리 바비 브라운 주연의 넷플릭스 스릴러 영화로 제작키로 했다. 또한 소설은 노라와 리, 웨스, 아이리스, 이 인물들 간의 연결고리를 밝히면서 이들을 충격적인 가치나 싸구려 스릴의 도구로 그려내기보다 10대들의 상처를 세심하게 살피고 보듬어준다. 이 캐릭터들이 경험한 모든 폭력 행위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에 무게를 더하고 그들이 어떤 자아를 지닌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노라는 놀랍도록 강한 주인공이지만, 소설에서 밝히고 있듯이 노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내 엉덩이에는 휘어진 말발굽처럼 보이는 흉터가 있고, 그 흉터는 웨스 어깨에 깊이 새겨진 그 마디처럼 생긴 흉터와는 달랐다. 하지만 웨스는 우리가 아직 어렸던, 10대가 채 되기도 전이었던 시절 내 흉터를 보고 한번 더듬어보더니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한 거야?”라고 물었다. 웨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그 긴장감, 그리고 웨스가 피부 위에 그런 흉터를 남길 수 있는 게 부츠 뒷굽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에 난 흉터를 더듬으며 되물었다. “누가 널 이렇게 때린 거야?” 그때 우리는 서로의 인생이 어떠했을지 짐작했다. 웨스의 어깨에 난 이상한 사각형 모양의 흉터가 허리띠 벨트버클 때문에 생긴 거란 사실을 난 알았다. 우린 그런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흉터…… 그리고 흉터에 얽힌 사연과 애초 안락은커녕 최소한도의 ‘안전’도 제공해주지 못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란 걸. 우리 둘의 차이점이라면 웨스는 그런 나무에서 자랐지만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고, 나는 속으로부터 썩어버렸다는 것인데, 그 사실을 나는 열심히 숨기고 있었지만 썩은 건 어쩔 수 없었다.(p.67~68)

 

 

노라의 어린 시절엔 의지할 어른이라고는 엄마뿐이었다. 그것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기꾼 엄마다. 범죄자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엄마의 남자들은 노라의 삶에 더 끔찍한 불운을 안겨준다. 계부라고 해봤자 소아성애자이거나 학대와 폭력을 일삼는 자들이다. 웨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체적으로 심한 학대를 가하고 아이리스의 아버지가 딸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라 역시 이렇듯 끔찍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다 악마일까?” 아이리스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소설은 단지 은행 강도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을 헤쳐 나가는 스릴러물을 넘어서 부모의 학대와 폭력, 거기다 성 정체성 및 종교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이슈들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가 주목한 이유다.

 

“이제 레이먼드가 너의 아빠란다.”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는 그게 아주 멋지고 신나는 일이라도 되는 양 이렇게 선언했고, 그런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은 미칠 것 같았다. 엄마는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아니라 정말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엄마의 사랑 병이 깊었던 것이다. (중략) 내가 아는 한 상대를 통제하려 하는 성향 그게 바로 부성이었다. 그것도 상대방의 마음과 육체를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게 부성이었다. 엘리야가 헤일리에게 원했던 것이 바로 그거였다. 끊임없이 상냥하고 정숙해야 한다고 주문했으니까. 결국 내 손으로 그만두게 만들 때까지 조셉이 케이티에게 원한 것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레이먼드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주도권은 레이먼드에게 있었고, 그가 내 아버지 역할을 하기로 했다면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p.325~326)

 


 

엄마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후 노라는 가짜 소녀로서의 삶이 아닌, 진짜 삶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잠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뒤엎을 만한 위협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앞서 말한 대로 절친 둘과 함께 동네 은행을 찾은 날 불시에 은행 강도 인질이 되었던 것이다. 은행 안의 다른 인질들이 두려움에 떨며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동안 노라는 즉시 몸에 밴 훈련 방식대로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치밀한 계획 세우기에 돌입한다. 그러는 사이 소설은 노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아슬아슬했던 삶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웨스, 아이리스와의 관계를 통해 숨겨왔던 사연을 폭로한다. 은행에 갇힌 인질들과 노라를 비롯한 세 명의 10대, 그리고 총으로 무장한 두 명의 은행 강도,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치닫게 될지, 소설은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드라마틱한 전개로 흐른다.

 

“네 진짜 이름은 뭐야? 애슐리 킨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아.”

나는 입이 바싹 말랐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손목에 짱짱한 고무줄을 끼워 조여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넌 레베카야, 탁. 넌 사만다야, 탁. 넌 헤일리야, 탁. 넌 케이티야, 탁. 난 그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이들은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내 안 어디엔가 안전하게 숨어 있어야 했다. 나는 언니와 플로리다의 그 호텔방을 뜬 이후로 딱 한 번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리고 웨스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해주었는데 그때는 웨스가 그 이름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까, 결국 그것으로 우리 관계가 산산조각 나는 것은 아닐까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웨스는 그렇게 일그러지고 너덜너덜한 나를 프랑켄프렌드로 만들어주었고, 그는 항상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연민을 보여주었다. 아이리스도 그런 연민을 가진 아이인데 오늘 내가 그걸 산산조각 내버린 듯했다.

“지금 나는 애슐리일 수밖에 없어.”(p.213)

 


 

필요하다면 싸울 것이다. 레이먼드가 내 뒤를 쫓아온다면, 머리 회전은 빠르지만 제대로 총을 쏘지는 못했던, 공포에 떠는 애슐리를 맞이하는 대신 내가 나의 분신으로 살았던 모든 소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레베카는 나에게 거짓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사만다는 숨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헤일리는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케이티는 나에게 두려움을 가르쳐주었고 애슐리는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노라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어. 레베카 내 이름은 레베카야. 일어나 사만다. 내 이름은 사만다야. 눈물 닦아. 헤일리. 내 이름은 헤일리야. 어깨를 활쫙 펴. 케이티. 내 이름은 케이티야. 한 걸음씩 차근차근. 애슐리. 내 이름은 애슐리야. 문을 열고 나가자. 노라. 나는 빛을 향해 걸어갔다. 내 이름은 로라.((p.465~466))

 

저자 : 테스 샤프(Tess Sharpe)

 

산속 산장에서 펑크 음악을 좋아하는 엄마의 딸로 태어난 테스 샤프는 캘리포니아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다. 지금도 깊은 산속에서 여러 무리의 개와 갈수록 대가족으로 늘어나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작가이자 문학 작품집 편집자로 일하면서 여러 편의 수상작을 집필했으며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린이, 성인을 위한 책을 쓰고 있다. tess-sharpe.com

 

역자 : 고상숙

 

연세대학교 영문과, 한국외대통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KBS에서 외신 번역과 통역을 담당하다가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레드 세일즈 북』, 『아이를 바꾸는 교육의 절대 원칙 11』,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희망과 함께 가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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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 당신이 지나친 미술사의 특별한 순간들
이원율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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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은 르네상스부터 현대의 팝아트까지 모두 23개의 미술사조를 다루는 한편, 각 사조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선구적 예술가 23명을 작품과 함께 소개한다. 그런 면에서 표제어의 '사적'은 '私的'이 아니고 '史的'의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저자 이원율은 미술 간련 일을 하는 분이지만 최근의 '미술 열풍'이 말 그대로 한때의 유행처럼 퍼진 열풍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코로나19로 인한 전시회 관람 불가 상태의 대리만족을 위해 미술 애호가나 그림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으로나마 전시회 부재 현상에서 나온 일시적 열풍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사실 그 점은 독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발발 선언을 계기로 일상이 올스톱되는 답답함 속에서 안전한 탈출구로선 집으로 배송되어 오는 미술 관련 책을 읽고 보는 일이었으니.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이건희 컬렉션’ ‘마우리치오 카텔란: WE’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등 굵직하고 의미 있는 전시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어 미술 열풍을 이어가고 있어 미술 애호가들의 기쁨과 즐거움은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열리는 이들 전시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열띤 ‘피켓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을 해야 겨우 갈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이에 자신의 〈헤럴드 경제〉 최고의 인기 칼럼 시리즈 ‘후암동 미술관’에 연재한 글들을 첫 책으로 묶었다. 이렇게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은 독자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힘입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화가의 대표작에 관한 단편적인 해석에서 멈추지 않고 그의 일생과 그 사조의 특징까지 전체를 아울러 조망한다. 목차를 따라가며 읽다 보면 어느새 미술 화풍의 흐름을 자연스레 외울 수 있고, 빈센트 반 고흐와 구스타프 클림트 중 누가 ‘선배’인지 더는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이름이 우리말로 비슷한 마네와 모네의 그림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제대로 된 생애 첫 미술사 수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안성맞춤일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의 목표는 모든 독자를 마니아 단계로 이끄는 것이라고 장담한다. 유명한 그림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 이를 창조한 인기 있는 예술가의 파편적인 사연 소개에서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역사를 바꾼 가장 파격적인 그림에 관한 유기적 해석, 시대를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를 끈질기게 추적해 찾은 내용을 추가로 담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를 통해 미술사의 흐름과 각 사조의 아름다움이 손에 잡히게끔 만만하게 엮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한 작품을 보고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술 공부에 첫걸음을 뗀 독자들은 '완전한 생애 첫 미술사 수업', 적당한 수준을 넘어 미술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진 독자들은 '제대로 된 생애 첫 미술사 수업'이 되도록 기초와 심화 단계의 해석과 그림 감상에 더해 미술사조, 즉 미술사의 흐름을 직조해 넣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독자들은 왜 우리에게 미술이 필요할까? 왜 전시회에 가고, 미술에 정을 붙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까?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어찌 보면 무용한 지식일 뿐인데 말이다. 저자의 질문에 답해보는 여유를 갖기 바란다. 현 시점에서 이 책을 읽을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부란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말에서 차용한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말로 종종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한다고 한다. 로코코 양식을 접한 후 유럽의 골동품 가게를 둘러볼 때, 인상주의를 공부한 뒤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볼 때, 표현주의를 이해한 다음 요동치는 별과 흔들리는 밀밭을 볼 때 등, 더 많은 순간을 더 풍부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일상 속 장면들이 가슴 벅찰 만큼 뭉클해지는 순간이 생기고, 그로 인해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미술이 새로운 가치를 가지는 순간이다. 많은 사람이 인생에 ‘자신만의 그림’ 하나쯤은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매혹되는 순간의 감정을 일컫는다. 〈헤럴드경제〉 기자이기도 한 이원율은 운명처럼 마주친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미술에 흠뻑 빠져들었다.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친 기자가 무작정 미술과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스탕달 신드롬에 비견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이후로 저자는 무려 10년 동안 미술과 관련된 글을 써왔고, 이 책은 그 10년의 결과물이다. 일방적인 짝사랑에서 시작해 완성한 이 책을 두고 그가 미술에 대한 자신의 ‘러브레터’라고 칭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혹시 당신도 미술을 짝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좀처럼 그림과 가까워질 수 없어 애만 태우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 사람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가 미술 애호가에서 마니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 스탕달 신드롬 :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겪은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자신의 저서 『로마, 나폴리, 피렌체(Rome, Naples et Florence)』(1817)에서 묘사하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스탕달이라는 이름은 작가 마리 앙리 베일(Marie-Henri Beyle)의 필명으로 독일 작센안할트주(SaxonyAnhalt) 알트마르크 지역(Altmark region)에 위치한 도시인 ‘슈텐트할(Stendhal)’에서 따온 것이며, 『로마, 나폴리, 피렌체』를 출간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된 필명이다.(두산백과 참조)

 


 

이 책은 모두 2파트(부) 2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 2부에서는 〈신인상주의부터 팝아트까지〉를 다룬다, 1장 「‘인간처럼 우는 천사가 있네?’ 인간의 눈을 가진 최초의 화가-르네상스 선구자: 조토 디 본도네」 2장 「벽을 파낸 게 아니라 그림입니다! 600년 전 그림에서 풍기는 3D의 향기-원근법 선구자: 마사초」 3장 「결혼식이야 약혼식이야? 중요한 건 도장이라고!-유화 선구자: 얀 반 에이크」 4장 「‘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 정말로 악마의 아들인가요?-초현실주의 선구자: 히에로니무스 보스」 5장 「아리따운 금발 여인, 누구 목을 베고 있는 거야?-바로크 선구자: 카라바조」 6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섬, 무거운 이야기는 두고 오세요!-로코코 선구자: 장 앙투안 바토」 7장 「시대의 선택을 받은 남자. 그 진심이 궁금해!-신고전주의 선구자: 자크 루이 다비드」 8장 「‘뗏목 위에 있던 게 정말 사람일까?’ 표류가 남긴 격정적인 낭만-낭만주의 선구자: 테오도르 제리코」 9장 「“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프랑스에서 가장 오만한 남자-사실주의 선구자: 귀스타브 쿠르베」, 10장 「“내가 화가가 될 상인가?” 조선의 얼굴 중 우리가 몰랐던 사실-사실주의 특별 편: 윤두서」, 11장 「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인상주의 선구자⑴: 에두아르 마네」 12장 「“실력도 없으면서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900억이라고요?-인상주의 선구자⑵: 클로드 모네」로 1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어 13장 「수백만 개의 점으로 완성한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신인상주의 선구자: 조르주 쇠라」 14장 「반 고흐 최애작? 별밤도 해바라기도 아닌 ‘이 사람들’-표현주의 선구자: 빈센트 반 고흐」 15장 「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고? 도대체 왜?-근대 회화 선구자: 폴 세잔」 16장 「‘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근대 조각 선구자: 오귀스트 로댕」 17장 「금빛으로 빛나는 애절한 키스, 주인공은 누구일까?-분리파 선구자: 구스타프 클림트」 18장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 정글, 사실 꿈에서 본 겁니다!-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앙리 루소」 19장 「헐크색 피부를 갖게 된 이 여성, 그놈의 남편 때문에!-야수주의 선구자: 앙리 마티스」 20장 「화폭 위에 음악을 담은 잘생긴 법학 교수님-추상회화 선구자⑴: 바실리 칸딘스키」 21장 「“이건 나도 그리겠다!” 아니, 아마 그리다 도망칠걸?-추상회화 선구자⑵: 피터르 몬드리안」 22장 「스파게티 면발 아니야?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액션페인팅 선구자: 잭슨 폴록」 23장 「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팝아트 선구자: 리처드 해밀턴」 등이 2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독자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라 어느 한 사람, 한 작품을 '최애 작품', '최애 작가'로 꼽을 수 없지만 직접 그림을 본 작가들 중 클림트의 그림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순전히 직접 봤기 때문이지 작품의 경향이나 질, 가치 등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임을 밝힌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입맞춤, 클림트의 그림 〈키스〉는 정말 압도적 위압감마저 주었다. 황금색이 주는 위엄 때문일까. 독자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그래서 기억이 생생하고 클림트에 주목한 이유이다. 그의 이야기가 실린 미술 도서를 찾아 읽고, 그의 그림이 실린 책들도 한두 권 소장했다. 저자는 일반적인 해석 후에 꽤 사적(私的)인 질문으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끌어낸다.

"〈키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또 "거장 피카소로 하여금 살롱전 참가를 포기하게 만든 화가는 누구일까?", "팝아트의 ‘팝’이란 글자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와 작품들에 관해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비하인드를 풀어 놓는다. 앞서 언급한 '사적'이란 의미가 '史的'에서 '私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독자의 흥미와 관심이 있다면 '史的'이든 '私的'이든 관계치 않는다는 태도다. 독자 위주의 글쓰기와 그림 해석, 책 설명 등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작가적 의무일 것이다. 이는 화가의 주요 작품, 유명한 작품에만 설명의 한계를 국한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신념에 의한 것일 터 존경할 만한 작가적 태도로 믿는다.

단편적인 해설이나 흥미 위주의 파편적인 사연 소개에서 멈추지 않고, 역사를 바꾼 가장 파격적인 그림에 관한 유기적인 해석, 시대를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를 끈질기게 추적해 찾은 내용도 곁들인다. 사회부 출신 기자다운 집요함과 꼼꼼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책에 따르면 원근법을 그림에 시도한 최초의 화가인 마사초는 “내 그림은 삶과 같았다. 나는 인물들의 움직임, 열정, 혼을 실었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 또한 미술사조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화가들의 삶과 혼, 열정과 끈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미술 지식뿐만이 아니다. 희망과 용기, 꿈과 열정 같은 감정들도 지식 끝에 자연스레 따라붙을 것이다. 저자는 각 미술사조의 선구자들은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고 다른 환경에서 살았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그들 모두 자신의 작품이 비난과 조롱을 받아도, 주변인들이 등을 돌려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개는 늘 앞을 향해 있었고, 검증된 과거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면 중간은 갈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쳤다. 기성 화단에는 욕을 먹고, 대중에겐 조롱받고, 살롱전에서는 낙선하고, 그림은 잘 팔리지 않는 온갖 수모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렇게 견디고 버텨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마네는 미술 역사상 가장 많은 욕을 먹은 화가였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로 문제작 2연타를 친 덕에 최고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는 끝내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 된다. 또 세잔은 주변인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다. 재능 없는 미련한 둔재라며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는 결국 근대 화가들의 스승으로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섰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루소는 40살을 넘기고서야 전업 화가로 활동했다. 모두가 그의 아집을 비웃었다. 그런 그는 피카소도 인정한, 최고의 4차원의 예술가로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찬가지로 괴짜라고 손가락질 받던 쿠르베 품만 잡는다고 지적당한 모네, 야한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받던 클림트 또한 진짜 혁명가, 빛의 마술사, 항금의 화가가 돼 미술사의 주역을 차지했다.

 

바토는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창시자입니다. 로코코 미술은 우아하고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화풍입니다. 대표적인 장르가 「키테라섬의 순례」에서 파생한 ‘페트 갈랑트’입니다. 주요 소재는 우아한 차림새의 남녀, 사랑을 속삭이는 자세, 전원 풍경 같은 한가로운 배경, 섬세하고 럭셔리한 소품 등입니다. 지금도 골동품 가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체입니다. 로코코 미술을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한 게 “바토의 정원(그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라는 말일 겁니다. 그만큼 밝고, 가볍고, 유희적이기만 했다는 뜻입니다.(p.117)

 


 

한창 그림을 내지르던 루소가 한번은 사기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루소가 그때 재판관과 나눈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판사님! 제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제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면 누가 제일 피해를 본다는 거요?” “예술이요. 예술 그 자체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훗날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 된 점도 흥미롭습니다. 루소는 회화 무대를 현실에서 환상,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한 장면에서 다른 차원 내지 미래의 한 시점으로 넓히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아울러 루소의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구성은 입체파와 추상회화, 단순화된 형태는 팝아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p.374)

 

이 거장들이 벌인 일종의 ‘투쟁의 미술사’를 읽어내리다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게 무엇이든 자기 확신만 있다면 신념대로 밀고 나가도 된다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렇듯 역사적 의미를 지닌 그림에서 내 인생과 닿아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그 그림은 ‘사적인 그림’이 된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나만의 그림’을 찾아보자. 이전과는 다른 해상도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저자 : 이원율

 

〈헤럴드경제〉 기자이자 미술 스토리텔러. 2013년,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아 미술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미술 비전공자이기에 오히려 어떻게 표현해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다. 그 결과 누적 조회 수 700만 회 이상, 〈헤럴드경제〉 화제의 칼럼 ‘후암동 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친 기자답게 집요하고 꼼꼼하게 사실을 되짚고 풍부하게 설명한 글로 화제를 모은 그의 칼럼에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흥미롭게 읽게 된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없는데도 이해할 수 있다.” “토요일만 되면 기다려지는 기사.”라는 호평이 가득하다.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인다.”라는 말을 믿으며, 독자들에게 미술로 인해 풍부해지는 일상을 선물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저서로는 《하룻밤 미술관》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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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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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완〉은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다.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우리에게는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일본의 탑배우 구사나기 츠요시와 이 영화 한편으로 최고의 스타덤에 오른 신예 핫토리 미사키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2021년 제44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동명의 이 책 『미드나잇 스완』은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영화 개봉에 맞춰 동시 출간한 소설 작품이다. 물론 내용도 같다.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영화·출판계의 평에 따라 영화 못지않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인공 ‘나기사’는 자신이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긴 채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트랜스젠더 바에서 쇼걸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엄마는 조카 ‘이치카’를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무작정 나기사가 있는 도쿄로 이치카를 올려 보낸다. 이치카는 엄마 `사오리`의 방치와 학대로 마음을 닫아버린 소녀이다. 당연히 남자인 줄 알고 삼촌을 찾은 이치카는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은 나기사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 나기사는 이치카에게 약간의 연민을 느낀다.

나기사를 찾아오기 전 히로시마에서 우연한 기회로 발레를 배웠던 이치카는,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위해 친구가 소개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 간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나기사는 이치카에게 발레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간 무심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나기사는 발레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이치카를 응원하면서, 이치카를 위해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게 된다.

 


트랜스젠더 바에서 쇼걸로 일하는 트랜스젠더. 히로시마의 가족에게조차 이를 비밀로 하고 있다. 이치카와 같이 살게 되자, 아이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귀찮아한다. <사진=영화스틸컷>

 

이 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선보인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영화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영화 개봉과 동시에 책 출간을 한 것이다. 다양한 연기 변신을 통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쿠사나기 츠요시가 트랜스젠더 역할을 소화해 내며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개봉에 앞서 공개된 포스터에는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발레 연습을 하는 ‘이치카’(핫토리 미사키 분)의 우아한 모습과, ‘나기사’’(쿠사나기 츠요시 분)의 쓸쓸한 표정이 담긴 모습을 위아래로 배치했다. 이런 상반된 배치는 우아해 보이는 백조의 다리가 수면 아래에서 분주하듯, ‘이치카’의 꿈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하는 ‘나기사’의 모습을 암시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영화 〈미드나잇 스완〉을 보질 못했다. 때문에 이야기의 연결이나 문장이 잘 이어져 나갈지 조금 우려를 했었다. 영화감독이 쓴 소설이라니 생략과 영상으로만 표현 가능한 것과 영상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책에서 어떻게 구현해낼지 궁금하기도 했다.

"소녀는 눈부신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좋았다." 책의 첫 문장이다. "어릴 적, 스케치북에 그렸던 태양은 늘 빨강 아니면 주황색으로 칠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본 후부터 소녀는 태양이 무서우리만치 티 없는 흰색임을 깨달았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후 소녀의 행동에는 이상하리만큼 태양에 집착한다. 태양을 바라보던 소녀의 시선은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모래사장은 따가운 햇살을 반사하며 맹렬히 소녀의 눈을 찔렀다. 소녀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내렸는데도 빛에 찔린 눈이 띠끔거렸다. 눈을 감으면 유달리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신나게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 괴성을 질러대는 남자들의 광란에 소녀는 입술을 더욱 굳게 깨물었다. 피 맛이 난다. 소녀는 더 꽉 제 살을 이로 깨물었다. 장면은 나기사로 옮겨간다. 검정이 묵직하게 녹아든 듯한 깊은 붉은 빛. 그 매니큐어 병을 나기사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줄곧 갖고 싶었던 명품 매니큐어였다. 몇 주를 고민한 끝에 겨우 구입한 물건이다. 주인공 나기사를 설명하는 문장은 길게 이어진다. 이 문장들은 나기사가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화장대 앞에 자리를 잡은 나기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나기사의 외모와 성격 묘사를 표현한다. 마치 영상을 보는 듯이 눈에 선하게 세밀한 묘사가 나온다. "가늘고 길게 째진 눈과 뾰족한 턱. 나기사의 외모는 개성이 넘친다는 말을 손님에게서 자주 들었다.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이라고." 이어지는 문장은 주인공 나기사가 여장이고 트렌스젠더임을 드러내고 있다. "남자였을 때 '미국 영화에 나오는 동양인 얼굴"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는 문장도 이어진다. 드디어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난다. 손님을 접대하는 트렌스젠더. 예쁘장한 화장이나 의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한 색이 아닌 강렬한 색, 개중에서도 빨간색을 즐겨 입었다. 빨간색에 잘 어울리는 윤기 나는 긴 흑발은 나기사의 자랑거리였다.

거울의 라이트를 켜면 강한 빛에 잔주름과 눈 밑 다크서클이 날아가 아기 피부처럼 보인다. 처음 가게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이젠 마법의 효력이 다했음을. 세월은 확실하게 얼굴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다. 손과 손가락에도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나기사는 천천히 매니큐어 뚜껑을 열었다. 효과가 떨어져 가는 마법은 그간 쌓아온 화장 기술과 값비싼 화장품이 보완해 주었다. 비싼 화장 도구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한껏 가라앉은 기분을 들뜨게 하는 데는 제법 효과가 있었다. 매니큐어 브러시를 엄지손톱에 천천히 물질렀다. 색을 거듭할수록 빨강은 진해졌다. 나기사는 각 단계의 색을 즐기며 꼼꼼하게 발랐다. 완전히 손톱 매니큐어를 칠하는 데 몰입해 있는 나기사를 위협적인 목소리가 깨운다.

"에헤이, 무슨 잡담들을 하고 있어.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대기실 입구에 요코 마마가 장승처럼 서 있다.(p.10)

 


 

영화의 등장 인물들의 이모저모를 살피면 이 소설의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앞 부분이 배우의 이름이고 뒤가 역할의 이름이다. 독자 임의로 10명만 번호를 매겨 여기에 소개한다. 영화로 보든, 책으로 읽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① 핫토리 미사키-사쿠라다 이치카 역(마치 말없는 소녀의 코오트처럼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자란 중학생 소녀. 결국 히로시마를 떠나 도쿄의 삼촌에게 왔는데, 사진 속 남자였던 삼촌은 트랜스젠더였다. 발레를 하는 것에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② 미즈카와 아사미-사쿠라다 사오리 역 ③ 타구치 토모로오- 코 마마 역 ④ 마토부 세이-카타히라 미카 역 ⑤ 타나카 슌스케-미즈키(나기사의 동료) 역 ⑥ 요시무라 카이토-캔디(나기사의 동료) 역 ⑦ 사나다 레오-아키나(나기사의 동료) 역 ⑧ 우에노 린카-쿠와타 린 역 ⑨ 사토 에리코-쿠와타 마유미(린의 어머니) 역 ⑩ 히라야마 유스케-쿠와타 쇼지(린의 아버지) 역 등이다.

저자는 영업 대기 중인 나기사와 동료들과의 대화와 사업장 묘사로 나기사의 현재 위치나 신분, 그리고 일하는 곳의 분위기 등을 일목요연하게 한 명씩 등장시키며 대강의 성격 묘사를 마친다. 영화에서는 얼굴이 영상으로 보이기에 별로 자세히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을지 몰라도 책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심리묘사도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자신들의 과거사를 잡담처럼 이야기하며 울고 웃던 등장인물들은 "아무튼, 남자한테 빨아 먹히면 끝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이라는 나기사의 말을 끝으로 일제히 옷을 갈아 입는다. 아키나, 캔디도 화장을 고치고 의상을 가다듬으며 손님 앞에 나설 준비를 했다.

"이제 그만 울어."

나기사는 눈물을 닦고 아이라인을 예쁘게 다시 그린 아키나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키나는 사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안 울게."

 


 

나기사와 이치카의 첫 만남도 문학적 표현이 다분히 들어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나기사는 소녀 이치카의 발레리나로서의 성공을 위한 엄마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암시할 수 있는 만남이다. 처음 나기사가 이치카를 볼 때의 모습을 나기사의 심중 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싫은 타입이다." 약속 장소인 계단에 앉아 있는 소녀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나기사가 조금 늦었음에도 불안한 기색 없이 그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마른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랗고 빨간 가방을 멘 모습이 마치 가출한 아이 같았다. 하긴, 법적으로도 돌봐줘야 할 범위에 있는 친척 아이이기는 하다. 게다가 어른으로서 지켜줘야 할 미성년자. 즉, 나기사가 보호해 줘야만 하는 어린 소녀다. 그러나 감싸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소녀는 가엾은 아이 그 자체였다. 언뜻 보기에도 학대를 받은 양, 독특한 어둠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기사는 남의 동정을 받는 것도 싫었고, 자신에게 동정심을 들게 하는 일이나 사람도 싫었다. 나기사의 첫 마디는 무뚝뚝하다.

 

“닮았네.”

그것이 나기사가 소녀, 이치카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삐뚤어져 있던 중학교 시절의 사오리와 정말 꼭 닮아 있었다.

“닮았어, 엄마랑.”

한번 더 말을 건넸지만 이치카는 반응이 없었다. 안 들리나 싶어 한 발 다가가자, 이치카는 무표정 그대로 나기사를 올려다보았다. 나기사를 보는 눈에도 감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기사는 왜인지 비난을 받는 듯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눈은 불쾌하기까지 했다.

“따라와.”

나기사는 짧은 한마디를 던진 다음, 이치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걷기 시작했다.(pp.33~34)

 


 

두 사람의 만남이 마뜩찮은 것처럼 두 사람은 자주 의견 충돌과 엇박자의 마음으로 각자의 행동을 취하는 등 티격태격하지만 발레에 대한 집착은 무서우리만큼 강렬하다. 한 사람은 발레리나로서, 다른 한 사람은 최고의 발레리나를 키우는 보호자인 엄마처럼. 중간의 많은 이야기는 책을 직접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돌리고 어느 정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 결승 무대에 선 장면을 조금 인용해 본다.

 

“68번, 사쿠라다 이치카. 〈백조의 호수〉 2막 중 오데트 바리에이션.”

안내방송이 들렸지만 이치카의 다리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들러붙은 듯했다. 무대 입구에 선 미카는 당황했다.

“이치카, 이치카.”(pp.239~241)

 

저자 : 우치다 에이지

 

리우데자네이루 출생. 주간 플레이보이 기자를 거쳐 영화감독이 되었다. 2014년 영화 <그레이트 풀 데드>가 해외에서 주목받은 것을 계기로 <3류들의 사랑>이 대 히트를 기록했다. 도쿄국제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등 50개 이상의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 영국과 독일 등에서도 개봉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리메이크도 했다. 작가성을 앞세운 오리지널 각본을 중요시하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영화 제작을 하고 있다. 201...

 

역자 : 현승희

 

그림쟁이 번역가. 도쿄에서 만화를 전공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만화책을 원서로 읽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일본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한 번역가이자 외서 기획자, 그리고 웹툰을 종이책으로 편집하는 단행본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원문이 지닌 뉘앙스와 분위기까지 우리말로 옮겨 표현하고자 노력중이다. 옮긴 책으로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보기왕이 온다』(코믹스판) 『고양이 서점』 『고양이 일기』 『어서 오세요, 멍냥 동물병원입니다』 등이 있으며, 편집작으로 『막내 황녀님』 『악역의 구원자』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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