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테스 샤프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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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의 주인공 노라는 겉으론 여느 10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실제 이름도 노라 오말리가 아니다. 그것은 많은 이름 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이름일 뿐이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노는 듯 보여도 그건 단지 연기이자 엄마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방식일 뿐이다. 노라는 그렇게 다양한 성격, 외모뿐만 아니라 여러 이름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레베카,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 애슐리. 이들은 모두 노라의 엄마가 그녀 자신이 목표로 삼고 싶은 잠재적인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기반으로 훈련시킨 소녀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모두 현재의 사기꾼에 걸맞게 설계된 모녀의 외관이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노라는 그 모든 소녀에게서 벗어났다. 한때 자기처럼 엄마의 제자로 단련되었던 언니 덕분에 노라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재구성한 끔찍한 엄마로부터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전직 사기꾼 노라는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인 다역'이 가능한 영화처럼. 하지만 은행 강도 사건의 인질이 되었을 때 노라는 극한의 시험에 들고 만다. 이번만큼은 탈출 계획이 없다. 이제 친구들을 살려내려면 한때 그 소녀였던 ‘딸들’의 모든 사기 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총잡이들이 노라 오말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전에.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소설의 스토리는 은행 강도의 인질이 된 노라와 친구 아이리스, 웨스의 현재 시점과 노라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노라와 언니 리가 어떻게 엄마로부터 벗어났는지, 노라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짓까지 저질러야 했는지 과거 회상식으로 이어진다. 노라의 친구 두 명의 과거도 함께 저자 테스 샤프는 보여준다. 그들간의 관계와 현재 노라의 처지에 대해서도 천천히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 스토리 전개에 쌓는다. 소설은 모두 6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영화의 신 넘버처럼 장면이 바뀌고 넘버가 바뀐다. 소설 읽는 동안 영상처럼 머리를 스치는 장면들이 오래 남을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 노라 오말리는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여러 인생을 살았다. 사기꾼의 딸로 태어난 노라는 자연스럽게 사기를 배웠고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제자로 자란다. 하지만 엄마가 목표물과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 노라는 궁극의 사기를 치기로 결심한다. 엄마와 그 목표물로부터의 탈출. 그 후 5년 동안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평범한 생활을 하던 노라는 녹슨 기술을 다시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것이다. 한때 희대의 사기극 중심에 섰던 노라의 정체에 대해 은행강도범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이 인질이 바로 그 유명한 여자아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노라는 레베카,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 애슐리라는 이름을 상황에 맞춰 변신하고 변신했다. 실제 변신은 아니지만 상황에 맞게 이름을 바꾸고 적절하게 대처해왔다. 작품 속 주인공은 독백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나는 이런 소녀들을 거쳐왔다. 우리 엄마가 먹잇감을 완벽하게 사기 치기 위해 분신하는 여자들의 완벽한 딸. 이 딸들은 나였지만 모두 제각각 달랐다. “최고의 사기꾼은 그럴듯해야 해. 진실의 향기가 나야 한단다.”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진실의 향기를 뿜기 위해 엄마는 이야기를 지어내었는데, 너무나 그럴듯한 사연들을 지어내서, 사람들은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p.53)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운 없게도, 정말 운 없게도 마음 잡고 사는 중에 은행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10대 사기꾼 노라 오말리. 노라는 여자친구인 아이리스, 그리고 전 남자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웨스와 함께 초조하게 탈출을 계획하고 있다. 저자 테스 샤프는 거짓말과 폭력의 삶 속에서 태어난 노라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노라의 엄마는 폭군(학대라는 의미로 들린다),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사기꾼으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딸에게 각기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여 그에 맞는 성격과 머리 색깔을 갖도록 했다. 따라서 노라는 착하고 순진한 소녀나 여린 피해자 같은 역할을 맡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니 지금 은행에서 총을 들고 있는 자들은 노라에게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임수를 써 자신과 친구들이 살아남도록 해야 하는 목표물일 뿐이다.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노라가 엄마로부터 배운 기술을 활용하는 동안, 저자는 노라의 과거 정체를 하나씩 공개하고 노라의 언니 리가 어떻게 엄마를 벗어났고 또 어떻게 노라를 엄마에게서 떼어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는지 이야기해나간다.

 

어쨌든 우리 자매는 깨진 조각들을 억지로 갖다 붙인 그런 여자를 엄마로 두고 자란 상처투성이의 아이들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사기꾼이었으니까, 나는 사기꾼의 딸로 태어났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엄마처럼 미소로 상대를 현혹하는 자질도 타고났다. 사람들은 이걸 ‘매력’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것을 ‘유용한 것’이라 부른다.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이에 따라 어느 상황에서건 그에 적응하여 상대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거울처럼 행동하는 능력. 이건 자질도 저주도 아니었고 그냥 쓰기 좋은 도구였다. (p.37)

 


 

이로 인해 소설은 기상천외한 사기 행각과 거대한 슬픔 그리고 10대들의 누아르가 결합돼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 데 이어 마침내 영화화됐다. 〈기묘한 이야기〉, 〈에놀라 홈즈〉 스타 밀리 바비 브라운 주연의 넷플릭스 스릴러 영화로 제작키로 했다. 또한 소설은 노라와 리, 웨스, 아이리스, 이 인물들 간의 연결고리를 밝히면서 이들을 충격적인 가치나 싸구려 스릴의 도구로 그려내기보다 10대들의 상처를 세심하게 살피고 보듬어준다. 이 캐릭터들이 경험한 모든 폭력 행위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에 무게를 더하고 그들이 어떤 자아를 지닌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노라는 놀랍도록 강한 주인공이지만, 소설에서 밝히고 있듯이 노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내 엉덩이에는 휘어진 말발굽처럼 보이는 흉터가 있고, 그 흉터는 웨스 어깨에 깊이 새겨진 그 마디처럼 생긴 흉터와는 달랐다. 하지만 웨스는 우리가 아직 어렸던, 10대가 채 되기도 전이었던 시절 내 흉터를 보고 한번 더듬어보더니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한 거야?”라고 물었다. 웨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그 긴장감, 그리고 웨스가 피부 위에 그런 흉터를 남길 수 있는 게 부츠 뒷굽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에 난 흉터를 더듬으며 되물었다. “누가 널 이렇게 때린 거야?” 그때 우리는 서로의 인생이 어떠했을지 짐작했다. 웨스의 어깨에 난 이상한 사각형 모양의 흉터가 허리띠 벨트버클 때문에 생긴 거란 사실을 난 알았다. 우린 그런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흉터…… 그리고 흉터에 얽힌 사연과 애초 안락은커녕 최소한도의 ‘안전’도 제공해주지 못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란 걸. 우리 둘의 차이점이라면 웨스는 그런 나무에서 자랐지만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고, 나는 속으로부터 썩어버렸다는 것인데, 그 사실을 나는 열심히 숨기고 있었지만 썩은 건 어쩔 수 없었다.(p.67~68)

 

 

노라의 어린 시절엔 의지할 어른이라고는 엄마뿐이었다. 그것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기꾼 엄마다. 범죄자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엄마의 남자들은 노라의 삶에 더 끔찍한 불운을 안겨준다. 계부라고 해봤자 소아성애자이거나 학대와 폭력을 일삼는 자들이다. 웨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체적으로 심한 학대를 가하고 아이리스의 아버지가 딸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라 역시 이렇듯 끔찍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다 악마일까?” 아이리스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소설은 단지 은행 강도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을 헤쳐 나가는 스릴러물을 넘어서 부모의 학대와 폭력, 거기다 성 정체성 및 종교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이슈들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가 주목한 이유다.

 

“이제 레이먼드가 너의 아빠란다.”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는 그게 아주 멋지고 신나는 일이라도 되는 양 이렇게 선언했고, 그런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은 미칠 것 같았다. 엄마는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아니라 정말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엄마의 사랑 병이 깊었던 것이다. (중략) 내가 아는 한 상대를 통제하려 하는 성향 그게 바로 부성이었다. 그것도 상대방의 마음과 육체를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게 부성이었다. 엘리야가 헤일리에게 원했던 것이 바로 그거였다. 끊임없이 상냥하고 정숙해야 한다고 주문했으니까. 결국 내 손으로 그만두게 만들 때까지 조셉이 케이티에게 원한 것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레이먼드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주도권은 레이먼드에게 있었고, 그가 내 아버지 역할을 하기로 했다면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p.325~326)

 


 

엄마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후 노라는 가짜 소녀로서의 삶이 아닌, 진짜 삶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잠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뒤엎을 만한 위협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앞서 말한 대로 절친 둘과 함께 동네 은행을 찾은 날 불시에 은행 강도 인질이 되었던 것이다. 은행 안의 다른 인질들이 두려움에 떨며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동안 노라는 즉시 몸에 밴 훈련 방식대로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치밀한 계획 세우기에 돌입한다. 그러는 사이 소설은 노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아슬아슬했던 삶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웨스, 아이리스와의 관계를 통해 숨겨왔던 사연을 폭로한다. 은행에 갇힌 인질들과 노라를 비롯한 세 명의 10대, 그리고 총으로 무장한 두 명의 은행 강도,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치닫게 될지, 소설은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드라마틱한 전개로 흐른다.

 

“네 진짜 이름은 뭐야? 애슐리 킨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아.”

나는 입이 바싹 말랐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손목에 짱짱한 고무줄을 끼워 조여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넌 레베카야, 탁. 넌 사만다야, 탁. 넌 헤일리야, 탁. 넌 케이티야, 탁. 난 그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이들은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내 안 어디엔가 안전하게 숨어 있어야 했다. 나는 언니와 플로리다의 그 호텔방을 뜬 이후로 딱 한 번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리고 웨스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해주었는데 그때는 웨스가 그 이름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까, 결국 그것으로 우리 관계가 산산조각 나는 것은 아닐까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웨스는 그렇게 일그러지고 너덜너덜한 나를 프랑켄프렌드로 만들어주었고, 그는 항상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연민을 보여주었다. 아이리스도 그런 연민을 가진 아이인데 오늘 내가 그걸 산산조각 내버린 듯했다.

“지금 나는 애슐리일 수밖에 없어.”(p.213)

 


 

필요하다면 싸울 것이다. 레이먼드가 내 뒤를 쫓아온다면, 머리 회전은 빠르지만 제대로 총을 쏘지는 못했던, 공포에 떠는 애슐리를 맞이하는 대신 내가 나의 분신으로 살았던 모든 소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레베카는 나에게 거짓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사만다는 숨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헤일리는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케이티는 나에게 두려움을 가르쳐주었고 애슐리는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노라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어. 레베카 내 이름은 레베카야. 일어나 사만다. 내 이름은 사만다야. 눈물 닦아. 헤일리. 내 이름은 헤일리야. 어깨를 활쫙 펴. 케이티. 내 이름은 케이티야. 한 걸음씩 차근차근. 애슐리. 내 이름은 애슐리야. 문을 열고 나가자. 노라. 나는 빛을 향해 걸어갔다. 내 이름은 로라.((p.465~466))

 

저자 : 테스 샤프(Tess Sharpe)

 

산속 산장에서 펑크 음악을 좋아하는 엄마의 딸로 태어난 테스 샤프는 캘리포니아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다. 지금도 깊은 산속에서 여러 무리의 개와 갈수록 대가족으로 늘어나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작가이자 문학 작품집 편집자로 일하면서 여러 편의 수상작을 집필했으며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린이, 성인을 위한 책을 쓰고 있다. tess-sharpe.com

 

역자 : 고상숙

 

연세대학교 영문과, 한국외대통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KBS에서 외신 번역과 통역을 담당하다가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레드 세일즈 북』, 『아이를 바꾸는 교육의 절대 원칙 11』,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희망과 함께 가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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