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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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완〉은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다.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우리에게는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일본의 탑배우 구사나기 츠요시와 이 영화 한편으로 최고의 스타덤에 오른 신예 핫토리 미사키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2021년 제44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동명의 이 책 『미드나잇 스완』은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영화 개봉에 맞춰 동시 출간한 소설 작품이다. 물론 내용도 같다.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영화·출판계의 평에 따라 영화 못지않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인공 ‘나기사’는 자신이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긴 채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트랜스젠더 바에서 쇼걸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엄마는 조카 ‘이치카’를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무작정 나기사가 있는 도쿄로 이치카를 올려 보낸다. 이치카는 엄마 `사오리`의 방치와 학대로 마음을 닫아버린 소녀이다. 당연히 남자인 줄 알고 삼촌을 찾은 이치카는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은 나기사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 나기사는 이치카에게 약간의 연민을 느낀다.

나기사를 찾아오기 전 히로시마에서 우연한 기회로 발레를 배웠던 이치카는,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위해 친구가 소개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 간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나기사는 이치카에게 발레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간 무심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나기사는 발레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이치카를 응원하면서, 이치카를 위해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게 된다.

 


트랜스젠더 바에서 쇼걸로 일하는 트랜스젠더. 히로시마의 가족에게조차 이를 비밀로 하고 있다. 이치카와 같이 살게 되자, 아이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귀찮아한다. <사진=영화스틸컷>

 

이 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선보인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영화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영화 개봉과 동시에 책 출간을 한 것이다. 다양한 연기 변신을 통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쿠사나기 츠요시가 트랜스젠더 역할을 소화해 내며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개봉에 앞서 공개된 포스터에는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발레 연습을 하는 ‘이치카’(핫토리 미사키 분)의 우아한 모습과, ‘나기사’’(쿠사나기 츠요시 분)의 쓸쓸한 표정이 담긴 모습을 위아래로 배치했다. 이런 상반된 배치는 우아해 보이는 백조의 다리가 수면 아래에서 분주하듯, ‘이치카’의 꿈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하는 ‘나기사’의 모습을 암시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영화 〈미드나잇 스완〉을 보질 못했다. 때문에 이야기의 연결이나 문장이 잘 이어져 나갈지 조금 우려를 했었다. 영화감독이 쓴 소설이라니 생략과 영상으로만 표현 가능한 것과 영상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책에서 어떻게 구현해낼지 궁금하기도 했다.

"소녀는 눈부신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좋았다." 책의 첫 문장이다. "어릴 적, 스케치북에 그렸던 태양은 늘 빨강 아니면 주황색으로 칠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본 후부터 소녀는 태양이 무서우리만치 티 없는 흰색임을 깨달았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후 소녀의 행동에는 이상하리만큼 태양에 집착한다. 태양을 바라보던 소녀의 시선은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모래사장은 따가운 햇살을 반사하며 맹렬히 소녀의 눈을 찔렀다. 소녀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내렸는데도 빛에 찔린 눈이 띠끔거렸다. 눈을 감으면 유달리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신나게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 괴성을 질러대는 남자들의 광란에 소녀는 입술을 더욱 굳게 깨물었다. 피 맛이 난다. 소녀는 더 꽉 제 살을 이로 깨물었다. 장면은 나기사로 옮겨간다. 검정이 묵직하게 녹아든 듯한 깊은 붉은 빛. 그 매니큐어 병을 나기사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줄곧 갖고 싶었던 명품 매니큐어였다. 몇 주를 고민한 끝에 겨우 구입한 물건이다. 주인공 나기사를 설명하는 문장은 길게 이어진다. 이 문장들은 나기사가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화장대 앞에 자리를 잡은 나기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나기사의 외모와 성격 묘사를 표현한다. 마치 영상을 보는 듯이 눈에 선하게 세밀한 묘사가 나온다. "가늘고 길게 째진 눈과 뾰족한 턱. 나기사의 외모는 개성이 넘친다는 말을 손님에게서 자주 들었다.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이라고." 이어지는 문장은 주인공 나기사가 여장이고 트렌스젠더임을 드러내고 있다. "남자였을 때 '미국 영화에 나오는 동양인 얼굴"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는 문장도 이어진다. 드디어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난다. 손님을 접대하는 트렌스젠더. 예쁘장한 화장이나 의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한 색이 아닌 강렬한 색, 개중에서도 빨간색을 즐겨 입었다. 빨간색에 잘 어울리는 윤기 나는 긴 흑발은 나기사의 자랑거리였다.

거울의 라이트를 켜면 강한 빛에 잔주름과 눈 밑 다크서클이 날아가 아기 피부처럼 보인다. 처음 가게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이젠 마법의 효력이 다했음을. 세월은 확실하게 얼굴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다. 손과 손가락에도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나기사는 천천히 매니큐어 뚜껑을 열었다. 효과가 떨어져 가는 마법은 그간 쌓아온 화장 기술과 값비싼 화장품이 보완해 주었다. 비싼 화장 도구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한껏 가라앉은 기분을 들뜨게 하는 데는 제법 효과가 있었다. 매니큐어 브러시를 엄지손톱에 천천히 물질렀다. 색을 거듭할수록 빨강은 진해졌다. 나기사는 각 단계의 색을 즐기며 꼼꼼하게 발랐다. 완전히 손톱 매니큐어를 칠하는 데 몰입해 있는 나기사를 위협적인 목소리가 깨운다.

"에헤이, 무슨 잡담들을 하고 있어.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대기실 입구에 요코 마마가 장승처럼 서 있다.(p.10)

 


 

영화의 등장 인물들의 이모저모를 살피면 이 소설의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앞 부분이 배우의 이름이고 뒤가 역할의 이름이다. 독자 임의로 10명만 번호를 매겨 여기에 소개한다. 영화로 보든, 책으로 읽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① 핫토리 미사키-사쿠라다 이치카 역(마치 말없는 소녀의 코오트처럼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자란 중학생 소녀. 결국 히로시마를 떠나 도쿄의 삼촌에게 왔는데, 사진 속 남자였던 삼촌은 트랜스젠더였다. 발레를 하는 것에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② 미즈카와 아사미-사쿠라다 사오리 역 ③ 타구치 토모로오- 코 마마 역 ④ 마토부 세이-카타히라 미카 역 ⑤ 타나카 슌스케-미즈키(나기사의 동료) 역 ⑥ 요시무라 카이토-캔디(나기사의 동료) 역 ⑦ 사나다 레오-아키나(나기사의 동료) 역 ⑧ 우에노 린카-쿠와타 린 역 ⑨ 사토 에리코-쿠와타 마유미(린의 어머니) 역 ⑩ 히라야마 유스케-쿠와타 쇼지(린의 아버지) 역 등이다.

저자는 영업 대기 중인 나기사와 동료들과의 대화와 사업장 묘사로 나기사의 현재 위치나 신분, 그리고 일하는 곳의 분위기 등을 일목요연하게 한 명씩 등장시키며 대강의 성격 묘사를 마친다. 영화에서는 얼굴이 영상으로 보이기에 별로 자세히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을지 몰라도 책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심리묘사도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자신들의 과거사를 잡담처럼 이야기하며 울고 웃던 등장인물들은 "아무튼, 남자한테 빨아 먹히면 끝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이라는 나기사의 말을 끝으로 일제히 옷을 갈아 입는다. 아키나, 캔디도 화장을 고치고 의상을 가다듬으며 손님 앞에 나설 준비를 했다.

"이제 그만 울어."

나기사는 눈물을 닦고 아이라인을 예쁘게 다시 그린 아키나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키나는 사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안 울게."

 


 

나기사와 이치카의 첫 만남도 문학적 표현이 다분히 들어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나기사는 소녀 이치카의 발레리나로서의 성공을 위한 엄마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암시할 수 있는 만남이다. 처음 나기사가 이치카를 볼 때의 모습을 나기사의 심중 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싫은 타입이다." 약속 장소인 계단에 앉아 있는 소녀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나기사가 조금 늦었음에도 불안한 기색 없이 그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마른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랗고 빨간 가방을 멘 모습이 마치 가출한 아이 같았다. 하긴, 법적으로도 돌봐줘야 할 범위에 있는 친척 아이이기는 하다. 게다가 어른으로서 지켜줘야 할 미성년자. 즉, 나기사가 보호해 줘야만 하는 어린 소녀다. 그러나 감싸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소녀는 가엾은 아이 그 자체였다. 언뜻 보기에도 학대를 받은 양, 독특한 어둠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기사는 남의 동정을 받는 것도 싫었고, 자신에게 동정심을 들게 하는 일이나 사람도 싫었다. 나기사의 첫 마디는 무뚝뚝하다.

 

“닮았네.”

그것이 나기사가 소녀, 이치카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삐뚤어져 있던 중학교 시절의 사오리와 정말 꼭 닮아 있었다.

“닮았어, 엄마랑.”

한번 더 말을 건넸지만 이치카는 반응이 없었다. 안 들리나 싶어 한 발 다가가자, 이치카는 무표정 그대로 나기사를 올려다보았다. 나기사를 보는 눈에도 감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기사는 왜인지 비난을 받는 듯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눈은 불쾌하기까지 했다.

“따라와.”

나기사는 짧은 한마디를 던진 다음, 이치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걷기 시작했다.(pp.33~34)

 


 

두 사람의 만남이 마뜩찮은 것처럼 두 사람은 자주 의견 충돌과 엇박자의 마음으로 각자의 행동을 취하는 등 티격태격하지만 발레에 대한 집착은 무서우리만큼 강렬하다. 한 사람은 발레리나로서, 다른 한 사람은 최고의 발레리나를 키우는 보호자인 엄마처럼. 중간의 많은 이야기는 책을 직접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돌리고 어느 정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 결승 무대에 선 장면을 조금 인용해 본다.

 

“68번, 사쿠라다 이치카. 〈백조의 호수〉 2막 중 오데트 바리에이션.”

안내방송이 들렸지만 이치카의 다리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들러붙은 듯했다. 무대 입구에 선 미카는 당황했다.

“이치카, 이치카.”(pp.239~241)

 

저자 : 우치다 에이지

 

리우데자네이루 출생. 주간 플레이보이 기자를 거쳐 영화감독이 되었다. 2014년 영화 <그레이트 풀 데드>가 해외에서 주목받은 것을 계기로 <3류들의 사랑>이 대 히트를 기록했다. 도쿄국제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등 50개 이상의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 영국과 독일 등에서도 개봉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리메이크도 했다. 작가성을 앞세운 오리지널 각본을 중요시하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영화 제작을 하고 있다. 201...

 

역자 : 현승희

 

그림쟁이 번역가. 도쿄에서 만화를 전공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만화책을 원서로 읽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일본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한 번역가이자 외서 기획자, 그리고 웹툰을 종이책으로 편집하는 단행본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원문이 지닌 뉘앙스와 분위기까지 우리말로 옮겨 표현하고자 노력중이다. 옮긴 책으로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보기왕이 온다』(코믹스판) 『고양이 서점』 『고양이 일기』 『어서 오세요, 멍냥 동물병원입니다』 등이 있으며, 편집작으로 『막내 황녀님』 『악역의 구원자』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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