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이야기 나비클럽 소설선
김형규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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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거의 책을 안 읽고 지내는 바람에 출판 경향이나 독서 경향에 대해 거의 모른 채 지내왔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핑계 저 핑계로 독서를 미루다 책과 멀어젔다. 예전 같으면 약속 장소도 가급적 서점 근처로 많이 잡았는데 직장 생활 후부터는 회사 근처 아니면 번화한 밤거리 문화가 다양한 상업지구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잘 읽었던 소설마저 집에 몇 권 없을 정도로 책과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회사 근무 방침이 바뀐 후로 많은 시간이 남아 여가를 즐기기를 원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열리지도 않았다. 모여서 운동하는 시스템도 모두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다운 받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할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괴로워질 어쩌다 회사에서 나눠준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잠도 청할 겸 읽다보니 재미가 괜찮았다. 한두 권 읽다보니 에전의 독서욕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책을 구입하니 배송도 빠르고 책 구입 시스템도 편리해졌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을 책과 함께 지내다 보니 차츰 예전에 즐겨 읽었던 소설도 한두 권씩 사서 읽기 시작했다. 원래 책을 읽을 때 속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많은 책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출판계 소식도 신문이나 인터넷을 찾아 접하게 되니 읽고 싶은 책이 정말 많았다. 잃어버린 신세계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선택된 책이다. 요즘 소설은 SF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은 너도 나도 SF 소설을 즐겨 쓰는 것 같았다. 어쩌면 세계적 추세일 것이란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읽은 책을 보고 느낀 점이라서 여기에 한 줄 적어본 것이다.

 


 

이 책 『모든 것의 이야기』는 SF 분야의 소설도 들어 있지만 예전 산업화 시기에 국내에서 한참 인기를 끌었던 리얼리즘 색채가 강한 소설이란 점을 책 소개글에서 읽고 선택했던 터라 옛날 생각 많이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산업화 시대 때는 노동자, 도시 소외계층에 대한 소재가 많았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많은 수익은 회사 측이 가져가는 우리의 산업 사회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직접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은 동조하는 차원에서 그런 소설에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독자는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터라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게 어렵지만 독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산업화와 리얼리즘 문학' 정도로 표현하면 독자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이랄까. 당시 리얼리즘 문학은 서구의 산업혁명 이후 나타난 문학사조라고 학교에서는 배웠다. 사회 현실, 부정의한 현실에 노동자나 소외계층의 권리는 무시된 채 강도 높은 노동만 강요하는 것이 지배층과 부유층에 대한 반발 의식이 커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노동자의 권리 인식,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등을 파헤쳐 문제를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많은 작가들이 리얼리즘 문학의 틀에 넣어 글로 발표함으로써 일부 작가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독자들의 호응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동 현장을, 소외 계층의 삶을 묘사한다고 그들이 소설을 읽을 정도로 시간들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다. 독자층은 주로 대학생, 사무직 직장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 시대라면 노동자의 권리,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구조 등은 당연히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부는 잘살게 되기까지 모든 노동운동이나 노동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계했다. 산업체 노동자와 도시 노동자들은 책 읽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야근이니 특근이니 하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고 월급 이외로 얼마간의 수당이 더 얹어서 주는 것이 전부였다. '복지'라는 단어는 아예 산업화 시대는 사전에서 지워졌을 정도다.

 


 

그 일을 문학이 대신한 것이다. 그것을 '참여 문학'이라고 일컬었다. 작가가 노동에 참여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의식이 노동자의 권리나 소외 계층에 시선을 보내고, 그들이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이른바 '순수문학'이다. 문학은 문학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이나 사회에 참여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은 문학을 도구로 노동 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란 부정적 견해가 만만찮게 있었다. 그렇게 우리 문단은 정반대의 시선을 가진 두 부류의 작가들로 구별되던 시대가 우리의 산업화 시대이다.

이 책의 저자 김형규에 대해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저자 소개란에 변호사로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알게 됐다. 다재다능하고 박학다식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림동에서 노동변호사로 일했다고 하니 요즘 대림동은 중국 동포나 이주노동자가 많다고 들은 바 있어 그쪽 현장의 경험을 통해 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순서에 따라 적어 보면 「모든 것의 이야기」, 「대림동에서, 실종」, 「가리봉의 선한 사람」, 「코로나 시대의 사랑」, 「구세군」 등이다. 저자 김형규는 지난해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글솜씨를 인정받은 것 같다. 틈나는 대로 소설을 쓰고 여기 저기 발표를 하고 그동안 쓴 소설을 이번에 한데 묶어 책으로 냈다고 한다. 작가로서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처음 접하는 작가분이라 축하와 응원, 기대감을 함께 보내고 싶다. '장르문학의 문법'을 이용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아마 실험적 소설을 주로 쓰는 탓에 붙여진 명칭인가 싶다. 기성 작가 흉내내기보다는 훨씬 신예 작가다운 패기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의 작가정신에도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이 다섯 편의 소설들은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를 응시하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체제 안에서 ‘환대받지 못한 자들’에게 드리운 외로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자 한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문학평론가 최성실이 그의 '첫' 작품집에 대해 〈작품 해설〉을 써서 책 뒤에 붙였다. 「화성에서 식물-되기, '증상'으로 살아가기」란 제목이다. 이에 따르면 저자 김형규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로서 한 번 읽고 완전 이해가 어렸웠는데 문학평론가의 해설 조언을 들어보니 안갯속 부분이 아주 말끔하게 걷힌다. 최성실 평론가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버텨 나온 우리들이 함께 동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죽음과 질병이 '공기 중에'도 떠다니는 시간을 버텨오고 있다. 그 질병 때문에 같이 숨을 쉬면서 산다는 것, 그 공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질병은 개인이 철저하게 대처하고 방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대응으로 해결해야 하는 공공의 적이다. 붕괴냐, 아니면 대전환이냐라는 급격한 사회적 변동의 물음 앞에서 랑시에르의 말처럼 "몫 없는 자들의 몫", 즉 공동에 참여할 수 없고, 참여가 가능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 혹은 자신의 몫을 강(박)탈당한 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p.259~260)

코로나 팬데믹이 그렇듯이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몫 없는 자"들이고, 그것은 원래 몫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몫을 강(박)탈당한 것이란 의미다. 즉, 보이지 않는 사회의 벽, 우리 국민들의 그들에 대한 인식, 또 상대적 부당한 대우 등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정당한 몫을 줘야 할 사람은 우리 사회고, 우리의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는 "노동자, 소외 계층, 계급 문제로의 귀환, 김형규 소설은 여전히 등껍질로 달라붙어 있는 계층과 계급 등의문제를 정면에서 부각하고 있다."면서 "더 첨예해지고 복잡해지 자본의 논리로부터 문학적 상상력으로 놓쳐버린 그 무엇, 예컨대 세련된 착취 기제들 속에서 능력주의는 어떻게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지, 왜 자본계급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첫' 칼날은 향해 있는 것이다.

* 디지털 시대에 '계급 정치'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계급이다. 자본계급은 지금 시대의 당면과제들을 만들고 있으며, 특히 노동자 계끕 내에서의 분열을 조장하고, 피해자끼리 투쟁을 하게 한다.(이상 평론가 주)

 

 

“저 앞 다세대주택에서 사람 하나가 소리 없이 걸어 나온다. 빌라 현관에서도 한 사람이 걸어 나와 소리 없이 잰걸음으로 사라진다. 그 옆 단층집에서도, 맞은편 또 다른 다세대주택에서도 한 사람씩 나타나서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중략)

다시 또 한 명이 유령처럼 내 곁을 지나쳐 간다. 숨소리마저 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더 큰 골목으로 나아간다.

나도 물결을 따라가 본다. 좁은 골목에서 흘러나온 시내가 다른 시내를 만나 개천을 이루고 10차선 도로의 인도에서 강물이 되어 전철역 입구를 향해 흘러간다.”(p.124) - 「대림동에서, 실종」 중에서

 

위 풍경은 90년대 난곡의 산동네와 평행이론처럼 닮은 21세기 대림동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새벽마다 흐름을 형성하면서 흘러가는 행렬들, 밤이면 수없이 많은 불빛들이 빛나는 이곳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타자화를 드러낸다. 이는 AI로 일자리를 잃은 무직자들이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게임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구세군」의 배경인 근미래까지 나아간다. 우리는 매일 이 물결을 따라 흘러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삶은 죽음으로 흐르고, 당신과 내가 만나거나 헤어지고, 사랑하거나 서로 믿못하고 배신하거나 엇갈리며 그리워하거나, 두려움과 불안과 외로운 마음들의 흐름. 이 흐름을 사유하는 선 굵은 이야기를 저자는 들려준다. 이 책 『모든 것의 이야기』는 이 흐름의 밑바닥, 존재하지만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것, 21세기에 이른 ‘계급’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여자는 혼자다. 나도 혼자다. 여자는 거리의 소란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변함없는 미소로 악수를 청한다. 그제야 여자가 미르에서 보았던 '12월 혁명'의 지도자인 것을 깨닫는자.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p.256) - 「구세군」 중에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습니다. 두려울 때마다 시공간의 무한함이나 빛의 속도 같은 것을 떠올렸습니다. (중략)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래 생각하던 어느 날 당신과의 약속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세계와 사람에 대해 찬찬히 둘러보았고 우리는 머지않아 사라지지만 그 짧은 생 안에 아름다운 것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당신과 내가 겪은 고통의 크기 자체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당신과 내가 같은 고통을 겪었음을 서로 이해함으로써 고통이 남긴 흉터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p.275~277) 〈작가의 말〉 일부 발췌

 

저자 : 김형규

 

인간과 사회, 시공간과 빛의 속도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대학에서 동양사를, 대학원에서 러시아 현대사와 시베리아의 역사를 공부했다. 여러 학교에서 강의했고 대책 없이 출판사를 만들어서 된통 고생한 시절도 있었다. 역사 분야의 책을 몇 권 짓거나 우리말로 옮겼다. 2021년 〈대림동 이야기〉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 현재 변호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법률문서에 치여 살면서도 늘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학부에서 동양사를, 대학원에서 러시아 현대사와 시베리아의 역사를 공부했다. 대학에서 강의했고, 여러 분야의 책을 기획, 편집, 집필, 번역하기도 했다. 2021년 〈대림동 이야기〉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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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 루이 14세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사사키 마코토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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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과 '절대군주'라는 이미지와 함께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한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이 14세. 그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왕으로서 프랑스를 유럽의 중심 국가 반열에 올렸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당시 유럽에서 강대국에 끼지도 못한 채 주변국의 위치에 있던 프랑스를 재위 72년 동안 정치·군사·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겨 유럽 중심국으로 끌어오렸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특히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로 만든 기초를 닦았다고 알려져, 지금 프랑스 국민들에게도 프랑스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왕으로 각인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지어진 왕궁으로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서 주변 국가의 부러움을 샀다는 에피소드도 많다고 배운 기억이 독자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싶다는 왕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발레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고, 자신이 친정을 시작한 이후 예술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 책 『태양왕 루이 14세』는 그에 대한 평전(評傳)으로 쓰였다. 아버지인 루이 13세가 자신이 4살 때 타계하자 왕위를 물려받은 후 어머니의 섭정이 계속되었다. 워낙 유명한 왕이라서인지 그에 대한 문학 작품이나 각종 예술에서 그의 생애나 업적을 다룬 예술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수백 년 지났지만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독창적인 별칭 '태양왕'과 '절대군주'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이 책의 저자 사사키 마코토는 그가 근대 국가로의 길을 연, 너무 이른 개혁가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루이 14세에 대한 최신 역사 연구의 성과를 담았다. 그에 대한 올바른 시선으로 판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신화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그의 모습을 여러 방면에서 들여다보고 분석했다. 72년여에 걸친 루이 14세의 치세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저자는 루이 14세와 프랑스 귀족들의 관계에도 주목하면서, 상호 영향이 프랑스 국가 운영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아본다. 루이 14세의 의도와 성과에 유의하며 당시의 정치 및 사회와 같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루이 14세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에 나선 이유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역사학에서 개인의 의사나 행동이 역사에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고, 이에 따라 위인의 업적이나 치세가 제대로 평가된 것인지, 아니면 왜곡이나 과장된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이다. 이 취지는 역사학에서 지금까지 의견이 정립되지 않았음을 귀띔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루이 14세가 개인이 능력을 발휘해 프랑스는 물론 유럽, 세계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과장되어 신화적 요소를 강조한 것인지를 밝혀내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연구의 실마리가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루이 14세가 등장하지 않았어도 프랑스에서는 절대 왕정과 궁정 문화가 성립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말로 독자는 읽힌다. 저자는 그런 생각을 따르지 않지만 루이 14세라는 개인의 행동이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확실한 평가를 유보하는 듯한 태도다. 두 번째는 절대 왕정에 대한 평가 변화에 주목했다고 한다. 저자는 현대적 연구에서는 '관료제와 상비군으로 지지해온 강력한 왕권'이라는 해석은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절대 왕정은 '절대'적이지 않고 왕은 다양한 제약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관료제나 군대 등 절대 왕정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기구'에 대해서도 주목하며 절대 왕정의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보고 그 안에서 루이 14세의 역할에 대해 이 책에서 연구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는 사실과 신화의 구별이다. 절대 왕정과 루이 14세의 역할에 대한 논쟁 속에서 루이 14세에 대한 다양한 신화가 형성되었다. 루이 14세만큼 이미지와 실상의 괴리가 큰 왕도 드물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따라 신화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그의 모습을 이 책에서 그려내고자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세 가지 이유를 토대로 이 책은 루이 14세에 대한 평전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보적 판단의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신화나 허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아직 역사적 평가에 대해 새로운 제시하는 안(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저자는 이런 의문 때문에 최근의 역사학에서는 실태적 권력과는 별개로 왕의 권위가 문제화되었다고 전한다. 권위란 피치자로 하여금 왕권의 정통성을 수용하고 그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으로, 권위의 생성 및 전달 시스템으로서의 각종 의례와 왕권의 표상에 관한 연구가 왕성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루이 14세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군주보다도 이러한 권위 즉, 왕권의 이미지 형성에 힘썼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루이 14세의 예술 정책과 그 정수인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 다루며 루이 14세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으로 성립한 궁정 사회에서는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하나의 소우주가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그의 권위를 생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에도 루이 14세의 이미지는 계속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하면, 그 호화로움에 놀라고 그곳에서 펼쳐졌을 의례를 상상하며 화려한 궁정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루이 14세가 여전히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어린 왕 루이 14세」, 2장 「프롱드의 난」, 3장 「친정의 시작과 초기 개혁」, 4장 「대외 관계와 군대·전쟁」, 5장 「루이 14세의 예술 정책」, 6장 「베르사유 궁전」, 7장 「치세의 절정기」, 8장 「만년의 루이 14세」 등이다. 각 장의 제목으로만 보아도 루이 14세의 업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자는 부르봉 왕조가 프랑스 절대 왕정을 이끈 명문 왕가임을 서술한 일본 학자 나카노 교코의 저서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를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다. 나카노 교코에 따르면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은 각 나라별로 독립 국가로 자신들의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속국의 시대를 거쳐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각각 국가를 이룬 후 각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로마 제국 후기에 들어 공인한 기독교가 유럽 대륙을 끈끈한 유대감을 갖도록 이끌었지만 각국의 결속력과 왕권의 부침에 따라 로마 제국 때의 결속력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이후 일부 국가는 이웃 나라와 국경 분쟁을 겪고 강세에 밀려 유럽 외곽이나 아프리카로 가지만 지금처럼 엄격한 선을 그어놓은 국경이라기보다 큰 강이나 산맥을 국경으로 삼은 자연 국경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또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의 명맥을 잇는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에 16세기까지는 기독교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유대 관계를 계속할 수 있었다. 특히 이슬람교의 새 종교 세력이 급격하게 확장되면서 200년에 걸친 종교 전쟁(십자군 전쟁)을 치르느라 유럽 문명은 2대 종교권으로 나뉘어 싸우는 형국이 지속됐다. 유럽의 이렇다할 절대 강국이 없는 탓에 유럽 각 국은 왕권을 강화시켜 강국을 이루는 데 더 전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강력한 군주가 등장해 이웃 나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왕권을 휘두르는 가문이 등장한다. 합스부르크와 부르봉 왕조는 유럽 2대 가문으로서 실제 유럽을 지배하는 강력한 왕들을 배출한다. 특히 합스부르크는 교황(동로마 제국)을 비롯, 여러 나라의 왕과 왕비를 배출한 최대 가문으로 650년 이상 이어졌다. 부르봉 왕조는 프랑스의 가장 강력한 최강의 프랑스를 이끌 왕들을 배출해 명문가에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 절대 왕조를 이끈 '태양왕' 루이 14세 등 루이 왕조가 부르봉 가문 출신들이다. 사사키 마코토의 이 책 『태양왕 루이 14세』와 나카노 교코의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에서 부르봉 왕조의 태양왕 루이 14세를 보는 관점이 비슷한 것으로 보여 독자가 여기에 잠깐 서술했다. 두 저자의 분석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중점 서술된 부분이 다소 다르지만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이 태어난 이유를 역사적 필요성에 의해 절대적 통치자가 생겼다는 시각은 같지 않나 생각이 든다.

책에 따르면 루이 14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한 생활은 아닌 듯하다. 아버지인 루이 13세와 어머니 안 도트리슈(합스부르크 왕가)가 '늦둥이'를 얻었고, 루이 13세는 오랫동안 기대했던 왕태자가 출생한 지 불과 4살이 지날 무렵 결핵과 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뒤늦게 왕태자 루이 14세를 얻었지만 너무 어려 어머니가 섭정을 이어갔다. 루이 13세는 부인 안 도트리슈와 정략결혼이었을 뿐이지, 애틋한 연애 감정 등은 없었던 것 같다. 루이 13세는 더욱이 우울증에 동성애 경향이 있어 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독자 개인적 생각으로는 루이 14세는 친정을 시작한 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하나씩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근 국가와의 끊임없는 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승리를 거머쥐면서 왕권을 탄탄히 할 뿐 아니라 인근 강대국 스페인으로부터 영토를 빼앗아 편입하기 시작한다. 루이 14세의 유럽 제패의 꿈도 이 무렵 생긱지 않았나 싶다. 루이 14세는 당대 최고의 조각상 예술가들에게 의뢰해 옛 로마 제국의 황제들의 조각상을 자신의 왕궁에 수십 개씩 세웠으며, 예술 지원도 자신의 이미지 확대 강화를 위해 열정적으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점이 저자 사사키 마코토가 이 평전을 새롭게 쓰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만하다. 그가 아니어도 프랑스 절대 왕정은 성립됐을지도 모른다는 연구 이유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루이 14세는 어렸을 때 겪었던 프랑스 지방 귀족들이 일으킨 프롱드의 난으로 이 왕궁, 저 왕궁으로 피해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30년 전쟁과 인근 국가와의 패권 전쟁을 벌이는 것도 왕권 강화의 구실이 됐고, 그는 직접 각종 전쟁에 참여해 승리함으로써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오히려 강력한 왕이 나타나 안정된 국가로 만들어주기를 원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저자가 앞서 언급한 〈프롤로그〉에서의 의문이 설득력을 갖게 디는 대목이다. 비로소 독자도 저자의 말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친정 이후 행위들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로마 황제'를 꿈꾸며 이미지 강화를 추진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절대 군주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그런 시점으로 관찰하면 베르사유 궁전도 왕권 강화가 어느 정도 확립되었을 때를 이용, 유럽의 패권 국가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도 독자의 시선이 미치게 된다. 왕궁의 규모 등도 무리한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지으려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의 아버지 사망 이후 약 20년간 나라를 쥐고 흔든 마자랭이 1661년에 죽음으로써 루이 14세는 본격적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이에 1년 앞서 스페인 왕실의 마리 테레즈와 혼인함으로써 강력한 스페인의 지원도 얻게 된 그는 프랑스 고등법원의 권한을 축소하고 왕족과 대귀족의 정치참여를 제한했으며, 지방에 지사를 파견하여 중앙집권을 강화했다. 그리고 시민과 상인계급, 말하자면 부르주아 출신들 중에서 비서관들을 발탁하여 철저히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총신들로 만들어 나갔다. 그 중 한 사람이 우리도 잘 아는 콜베르이다. 리슐리외나 마자랭처럼 카리스마적이지는 않으면서 실무에는 능했던 그는 재무총감, 조영총관 등을 맡으며 루이 14세가 한껏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 해 동안 충실히 보좌하게 된다. 그가 그 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자신의 심복들과 논의했을까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추정 가능한 일 아닌가?

 


 

'짐이 곧 국가다'란 발언도 지금은 후세의 각색이라고 여겨진다고 저자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루이의 프랑스를 근대 국가의 원형으로 보는 이해는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맺음말〉을 통해 확언하고 있다. 16세기 관료제의 진전과 함께 왕권의 힘이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몇 가지 유보할 점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첫 번째는 왕권의 경제력이 약했다는 것이다. 혁명에 이르기까지 왕권은 신민을 직접 파악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관료 수는 확실히 증가했지만 근대의 기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것. 왕권은 국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오래 전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어온 단체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매개로 통치를 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특권이 부여된 단체를 사단이라고 칭하는데 당시 프랑스에는 귀족, 관직 보유자, 길드 촌락 공동체 등 다양한 사단이 존재했으며 왕권은 이들과 특권을 매개로 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각 사단을 왕권의 통치 범위 안에 편입시켰다는 사례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루이 14세가 콜베르나 르 텔리에 내각을 이용해 통치를 한 것도 문벌의 수장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후견·피후견인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수법에 의한 통치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왕권은 각 사단의 특권을 인정함으로써 사단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왕권은 오랜 관습 즉 '오래된 법' 에 의해 제한을 받았다는 반증이 된다.

17세기의 '절대 왕정'은 신장하는 왕권, 존속하는 신분제 사회, 기독교라는 상호 모순의 가능성이 있는 삼자에 의한 타협과 협조 위에 성립한 체제였다고 저자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모순을 내재한 이 삼자의 미묘한 균형을 무리하게 설명한 것이 보쉬에였다. 그는 내란 등 혼란에 대한 강한 위구에서 국왕 권력(주권)의 절대성을 주권 신수설로 설명했으며 왕권은 교황이나 중간 단체와 같은 현세의 어떤 세력에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것이 자의적 통치(전제)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왕은 신의 법과 기존 공동체의 법(왕국 기본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루이 14세의 사적을 생각하면, 루이가 왕권 강화의 방향으로 선회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루이 14세는 사망 직전 왕태자에게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될 나의 아들아, 너는 신에 대한 의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 관해서는 나를 따르지 말고, 늘 이웃나라와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힘쓰며, 신민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라. 이런 것은 불행히도 내가 행하지 못한 일이다.."(p.315)

 

저자 : 사사키 마코토

 

1961년 일본 도쿄 출생으로, 도쿄 도립 대학교 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 박사 과정 만기 퇴학. 현 고마자와 대학교 문학부 교수이다. 근세 프랑스사를 전공했다. 주요 저서로, 『루이 14세기의 전쟁과 예술―만들어진 왕권의 이미지』(2016년), 『증보 신판 도설 프랑스의 역사』(2016년), 『알기 쉬운 프랑스 근현대사』(공저, 2018년), 『알고 익히는 역사학 공부법』(공저, 2016년), 『역사와 군대』(공저, 2010년), 『근대 유럽의 탐구 12 군대』(공저, 2009년), 『국민 국가와 제국』(공저, 2005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공저, 1998년), 『프랑스 혁명과 유럽의 근대』(공저, 1996년) 등이 있다.

 

역자 : 김효진

 

외국의 다양한 문화와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독자의 눈으로 글을 옮기고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친절한 번역을 늘 마음에 새기며 현재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미국 흑인의 역사』, 『노예선의 세계사』, 『말의 세계사』, 『해적의 세계사』, 『로마 산책』, 『감자로 보는 세계사』, 『달은 대단하다』, 『중세 유럽의 레시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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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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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상한 그림』은 표제어처럼 '그림'은 있지만 이상한 소설 작품은 아니다. 다만 그림을 제시하고 추리력과 기억력 등을 동원해 범죄 등 미스터리 사건을 풀어가는 소설이다. 분명 추리소설의 새로운 형식이다. 독자로서 새로울 뿐이지 저자 우케쓰는 이번 책이 두 번째 '그림 소설'이다. 일본어로 출간한 일본 소설이지만 세계 공용어인 그림이 추리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 추리소설 독자들의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원래 추리 소설이 범인이나 용의자의 심리, 제스처 등 세밀한 부분의 묘사가 많기 때문에 번역할 경우 맛이 좀 떨어지는 것을 독자들은 감안하고 읽는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이나 오류를 줄이는 데는 전 세계 공용 언어가 더 호소력이 클 것이다. 저자 우케쓰는 이 그림 소설로 출판계는 물론 독서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짐작도 독자로서 해본다. 크게 틀린 짐작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저자 우케쓰는 전작 『이상한 집』이 ‘65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고와 함께 ‘2021년 일본 호러 미스터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단숨에 일본 문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이 두 번째 장편소설 『이상한 그림』에서 저자는 여러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오컬트 동아리원이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에 숨겨진 비밀에서 시작되는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를 푸는 데서 오는 쾌감을 넘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깊은 울림까지 전한다. 이 책도 출간 전부터 일본 출판계가 들썩였다고 한다. 이상한 추리소설이나 이상한 그림만 화제가 된 게 아니다. 이례적인 연속 흥행에도 불구하고 우케쓰는는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 세상에는 자신을 감춘 채 활동하는 복면 작가가 있지만 우케쓰야말로 진정한 복면 작가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유명 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겸 유튜버로 '인터넷계의 에도가와 란포'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에도가와 란포(1894~1965)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로서 전설적 추리작가로 명성을 날렸던 분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이며, 미국의 문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일본탐정작가클럽(이후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해 초대이사장을 지냈으며,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작가다.

 


 

저자 우케쓰가 그의 인기를 이어받은 듯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독자가 꺼낸 말이다.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독자의 궁금증이 더했기 때문이다. 저자 우케쓰는 영상 콘텐츠 전문가이고 하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목구비도 불분명한 흰색 가면과 온몸을 감싼 검은 타이츠 차림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목소리마저 변조하여 신원은커녕 성별조차 알 수 없다. 채널 구독자 수가 90만 명이 넘고 또 소설 및 드라마 영역에서도 활동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케쓰가 펴낸 두 권의 소설은 가독성 넘치는 문장은 물론 다양한 이미지와 도표를 통해 흥미로운 영상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해서 더 흥미를 끌고 인기도 높아진 것으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으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작과의 비교는 독자가 전작을 못 읽었기 때문에 출판사 측의 책 출간 소식에서 인용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우케쓰는 두 번째 소설 『이상한 그림』에서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도구로 그림을 선택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그린 그림들을 중심으로 심리 분석과 본격 추리가 진행되는데, 사건에 깊숙이 관련된 인물들의 목소리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전작보다 직관적이고 독자 몰입도 또한 강하다. 이는 일본 내 두 작품의 리뷰, 판매 속도가 증명한다. 우케쓰가 쓰는 소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글자를 읽고 있음에도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읽는 맛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림 미스터리’라고도 부르는데, 보는 것 이상의 읽는 재미가 확실한 ‘신개념 소설’임은 분명하다. 독서량이 많은 독자, 미스터리 마니아는 물론이고 처음 미스터리에 입문하는 신규 독자들도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그럼 이제 그림 한 장을 보여 드릴게요."란 한 줄만 써놓았다. 다음 문장은 책장을 넘겨야 나온다. 한 장의 그림(왼쪽)과 함께 한 페이지의 문장이 나란히 나온다. 글자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대학교 강의실 칠판에 그림 한 장이 붙여졌다.

심리학자 하기오 도미코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학생 여러분 앞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저는 예전에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수많은 분께 상담을 해드렸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심리상담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담당한 여자아이가 그린 그림을 복사한 겁니다. 이름은 'A코'라고 할까요? A코는 열한 살 때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말에 당연히 학생들이 술렁거린다. 다욱이 여자아기가 열한 살 때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책으로 읽어서 실감이 안 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열한 살 아이가 그렸을 만하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림일기 쓰는 수준?(그림 실력에 따라 이보다 잘 그린 사람도, 못 그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심리상담사로서 어머니를 살해한 아이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그는 A코의 정신분석을 위해 대상자가 그린 그림으로 심리를 파악하는 분석 기법인 '그림 테스트'를 실시했고, 내면을 파악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되묻는다. "여러분, 이 그림을 보고 뭔가 이상한 점을 못 느끼겠어요?"

 


 

화자는 그림에 그려져 있는 소녀, 집, 나무 등에 대한 심리 분석상의 이야기를 하나씩 설명한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하고 귀여운 그림으로 보이겠죠. 핮히만 군데군데 아주 묘한 부분이 있답니다. 일단 한복판에 그려진 여자아이의 '입'을 자세히 보세요. (얼굴의 입을 중심의 부분만 클로즈업 그림 사진)

모양이 분명치 않고 좀 지저분하죠. A코는 입을 잘 못 그리겠는지 몇 번이나 지우개로 지우고 선을 다시 그었습니다. 다른 부분은 한번에 깔끔하게 선을 그었는데, 왜 입만 몇 번이나 실패했을까요? 여기서 A코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A코는 어머니에게 학대받았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화내지 않도록 집에서는 항상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추었다고 해요. 속으로는 무서우면서도 겉으로는 늘 가짜 웃음을 지어야 했던 거죠. '잘 웃지 못하면 얻어맞는다.'······ 당시 느꼈던 기분이 되살아나 긴장한 나머지 손이 떨려 입을 잘 그릴 수 없었던 거예요. A코의 비통한 심정은 그림 속 왼편에 서 있는 집에서도 잘 나타나요. (집 그림 부분만 클로즈업)

이 집, 문이 없죠. 문이 없으면 안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요. 이 집은 A코의 마음 그 자체예요. '내 마음속에 아무도 들여놓기 싫다.' 혼자 틀어박혀 있고 싶다' 같은 도피 욕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림 속 나무를 잘 보세요. (나무 가지와 잎사귀가 감싸고 있는 부분 클로즈업)

나뭇가지가 가시처럼 뾰족하죠. 이런 모양의 나뭇가지는 범죄자가 그린 그림에서 자주 보입니다. '해코지하겠다', '찔러버리겠다' 같은 사나운 공격성이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심리상담사는 이러한 정보를 종합해 대상자의 상태를 적절하게 진단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사의 이름은 하기오. 하기오는 A코가 그린 한 장의 그림을 더 꺼내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보호 본능이 있고, 모성애가 강한 경향이 있어요. '나보다 약한 존재를 지키고 싶다', '안전한 곳에 살게 해주고 싶다' 같은 마음이 표출된 거죠. (중략) "현재 A코는 행복한 어머니로 살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책의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이 책이 이런 식으로 기술되어 있고, 그림과 함께 글을 읽고 추리하면서 읽으면 된다.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범인을 찾내는 단서가 주로 그림에 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랑은 심리 추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각각의 사건을 다루는 단편 소설이지만 한데 묶었다. 같은 주제라기보다 형식상 같은 그림 이야기이다. 소설이지만 각각 다른 내용의 소설들이라 장(章)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1장 「바람 속에 서 있는 여자 그림」, 2장 「집을 뒤덮은 안개 그림」, 3장 「미술 교사의 마지막 그림」, 4장 「문조를 보호하는 나무」 등이다. 1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블로그가 소재로 채택되었다. 블로그의 주인공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를 낳던 도중 아내가 사망하고, 몇 년이 흘러 아내가 남긴 그림들의 진실을 깨달은 남편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블로그를 중단하고 만다.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한 오컬트 동아리원 구리하라와 사사키는 이 그림들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블로그에 숨겨진 소름 끼치는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마침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추리 과정을 도식화하여 정리하고, 대화 위주로 사건을 진행하는 등 구성 면에서도 파격적이다. 육아일기인 줄 알았던 블로그에 나오는 그림들의 섬뜩한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한 발상의 저자의 글 구성 능력이 기막힌 반전들까지 담아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림이 함께 실려서인지 글의 분량은 짧지만 반전이 매우 강렬하다. 해당 장의 수수께끼는 장의 결말에서 완전히 풀림으로써 독립적인 완결성을 갖춘다. 책 마지막에서는 네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데 개개의 그림들에 숨겨진 진실과 허를 찌르는 진실에 독자는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몰입감 높은 스토리에 정신없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도 독자들이 ‘나라면 어땠을까’,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림과 이야기의 속성을 꿰뚫는 저자의 노련함 덕분일 것이다.

 


 

저자 : 우케쓰(雨穴)

 

호러·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일본의 웹 사이트 ‘오모코로’와 유튜브 채널 ‘雨穴’에 다양한 오컬트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2022년 10월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65만 명, 누적 조회 수 7,000만 뷰를 기록하였다. 특히 ‘이상한 집’ 영상은 1,000만 뷰를 돌파하였고, 한국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부동산 미스터리 일본의 이상한 집’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이상한 집’은 소설로 만들어져 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2021년 일본 호러 미스터리 1위에 올랐고,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또한 TV도쿄의 호러 드라마 〈뭔가 이상해何かおかしい〉의 원안을 맡고, 두 번째 저작 《이상한 그림》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雨穴(Uketsu)

트위터 @uketsuHAKONIWA

인스타그램 @uketsu_

 

역자 : 김은모

 

일본 문학 번역가. 198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도중 일본 미스터리의 깊은 바다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테후테후장에 어서 오세요』,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여자 친구』를 비롯하여 아시베 다쿠의 고바야시 히로키의 『Q&A』, 미치오 슈스케의 『투명 카멜레온』, 『달과 게』, 『기담을 파는 가게』, 이사카 고타로의 『화이트 래빗』, 『후가는 유가』 야쿠마루 가쿠의 『우죄』,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지넨 미키토의 병동 시리즈 『가면병동』, 『시한병동』,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 『프리즘』, 미야베 미유키의 『비탄의 문 1, 2』,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마안갑의 살인』을 비롯하여,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지나가는 녹색 바람』, 『검찰 측 죄인』, 『달과 게』, 『성스러운 검은 밤』, 『열대야』, 『밀실살인게임』, 『사이언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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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연주 - 연주 불안을 겪는 음악가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혜
케니 워너 지음, 이혜주 옮김 / 현익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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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음악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음악, 특히 클래식을 좋아해 매일 듣고 가끔씩 콘서트도 다닐 정도로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연주를 해볼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멀고 험한 길이라고 해서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후부터는 하루도 클래식을 듣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자주 접하고 감상한다. 이젠 일을 할 때도 클래식을 조용히 흐르도록 할 때도 많다. 이 책 『완전한 연주』도 매일 듣는 클래식 감상에 도움을 얻기 위해 선택했다. 주로 음악인, 연주자를 위한 책이라고 책 소개글도에도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소개글에는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을 뿐이며, 연주자이 연습이나 성숙 단계에서 흔히 겪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 감상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적 표현으로 쉽게 이해시켜 준다. 다만 연주자들의 연주 불안을 탈출하는 연습 단계 및 심화 단계는 일반 감상자들은 그냥 건너뛰어도 상관없다고 명기돼 있다.

그런데 '연주 불안'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본다. 자주 듣는 클래식 방송이나 음악 관련 책에서도 한 번쯤 나와야 할 이 단어를 왜 독자가 처음 들었을까. 이 책에는 「연주 불안을 겪는 음악가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혜」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듯하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두려움, 낮은 자기가치감(자존감?) 등. 음악인이나 연주자들이라면 으레 거치는 과정처럼 많은 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책은 그 점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음악인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어려움'이라는 말과 함께 극복의 과정을 세부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중 앞에 서는 연주자가 되려면 실수 없이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과, 실력을 높이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할 것 같은 방대한 연습량에 쉽게 압도되기 마련이라는 말은 쉽게 공감이 간다. 그러나 수많은 어워드를 수상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30개 이상의 음반을 발매한 작곡가로 버클리 음대의 교수이자 예술 감독으로 학생들을 지도해 온 저자 케니 워너 역시 음악가로서 많은 고뇌를 거쳐야 했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또 자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여겼고, 실력자들의 연주를 질투하면서 지독한 자기 혐오에 빠지곤 했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음악가로서 경험했던 어려움들을 진솔하게 나누며, 음악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탁월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저자 케니 워너가 고안한 단계적 마음 훈련법 코스는 세계 최다 그래미상 수상자를 배출한 버클리 음대의 정규 커리큘럽으로 들어가 있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서는 1,000개가 넘는 음악가들의 리뷰들이 이 책의 음악적 가르침을 지지한다고 소개한다. 자아를 내려놓고 연주에 몰두하도록 돕는 케니 워너의 코칭이 실제 자신의 연주법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완전한 연주』는 연주 불안을 경험한 모든 분야의 음악가에게 필독서로 이미 입증됐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더 나아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의미의 숙달을 이루길 원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바꿀 만한 힘을 가진 유의미한 깨달음을 선사한다는 소개글은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음악을 전공으로 하지도 않고, 악기라고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가르치는 피리나 하모니카 몇 번 불어본 게 전부인 독자로서는 연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예술인들이 '연주 불안'이라는 난관이 닥친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그들의 연주 못지않게 노력이 돋보인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책에서 소개하는 훈련법은 각각 다른 수준을 지닌 사람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와준다고 밝힌다. 자신의 현 상태를 객관적 방법으로 단계를 결정해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좋은 연주 실력을 갖췄으나 모종의 이유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제한다. 제대로 스윙을 해대고 연주에 있어 수행해야 할 것들을 다 하지만, 여전히 청중의 가슴에 남는 것이 없다. 이러한 유형의 연주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갇혀 그저 용인될 만한 적법한 재즈 스타일의 멜로디를 따라 음악의 접근 방식을 구성하고 계획하기 때문에, 그 음악에 달콤한 꿀이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이들 역시 의식적인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어 '창의력이 흐르게 한다'는 것이 도통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이러한 방식이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종래에는 해방감을 선사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음악에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훈련법을 소개해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가 연주자의 훈련법의 결과를 믿고 있으며, 이들 받아들이는 연주자들, 클래식 음악가들 역시 자신이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건조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밝힌다. 이는 마치 신을 사랑하지 않는 성직자의 모습과 같다는 비유적 표현을 통해 훈련이 필요한 연주자들에게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음악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도 저자의 훈련 취지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어렴풋이 짐작케 해준다. 관습은 지키지만 진정한 감정이 뒤따르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은유적 표현을 하나 더 추가 설명한다. "램프가 켜지지 않은 음악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따분하다."(p.12)

저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더 깊은 경험을 원하는 갈망은 더 나은 연주자가 되고 싶은 강렬한 충동과 함께 온다. 이 두 가지는 보통 상충한다. 진정한 음악적 깊이는 연주를 더잘하는 것보다 연주를 더 '유기적'으로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위대한 전문 연주자 중에도 낮은 자존감과 온갖 부정적인 환상에 고통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사람들이 음악을 계속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문외한인 독자가 보기에는 연주자 이전에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리고 음악인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한편 자신이 스스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 책은 또 전문 연주자들을 위해 예술성과 숙달의 본질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고 설명한다. 이미 아는 것을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깊이의 숙달까지 닿을 수 있는 등을 숙고할 것이란 이야기도 덧붙인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음악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연주할 때 긴장과 위축을 경험하는 음악가들을 위한 것이다." 이 말은 이 책의 출간 취지이기도 하다.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길 잃은 음악가들」, 2장 「연주 불안」, 3장 「힘들이지 않는 숙달」, 4장 「단계적 연습」, 5장 「마에스트로 마인드」 등이다. 1장에서는 '자아 놓아주기'와 '역기능적 소년', '우리는 왜 연주하는가?'와 '제한적 목표를 넘어서'라는 세부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작은 항목들의 제목만 듣고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면 그는 음악이든, 아니든 분명 음악이란 무엇인가?나 어떻게 해야 잘하는 연주인가?라는 기본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소년 시절부터 연주를 해오면서 많은 스승도 있었고 훌륭한 음악가들로부 영향을 받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평생 갈 확신"을 얻었다고 밝힌다. 자아를 내려놓고 음악만을 힘들이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음악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연주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음을, 그리고 타인을 위한 봉사와 자아를 굴복시키라는 영적인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나는 유한한 자신의 의식이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고, 비로소 더 나은 연주자가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음악 '본연의 목적'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진정 이 장(章)에서 하고 싶은 말은 다음의 문장에 들어 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정한 음악가이자 예술가라면 음악을 그만두지 말아야 할 진짜 이유는 3가지뿐이다. 첫째, 음악을 하는 것이 즐겁고 음악을 너무나 사랑한다. 둘째,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다. 셋째, 다른 직업에 도전하기 위해 재교육을 받기에는 너무 게으르거나, 겁이 많거나, 역기능적이다. 앞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면 당신에게는 특별한 돌봄이 필요하다."

 


 

2장 「연주 불안」에서는 '두려움에 근거한' 연주, 연습, 교육, 감상, 작곡 등 5개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는 지금 음악인, 연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쏟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이 집중돼 있다. 연주나 연습, 교육과 감상, 그리고 작곡 등으로 나뉘어 있지만 모두 공통적인 부분 즉, '두려움에 근거한' 것들에 대한 조언이다. 저자는 '두려움'은 마음에서 비롯되지만 '보편적 지성'이나 '초월적 존재' 혹은 '집단 무의식'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두려움은 우리의 '좁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들은 이 좁은 마음을 자아라고 부른다. 무엇이 자아이고 아닌지에 대한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이후 학설은 잠깐 제쳐놓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제한된 나'에 대한 의미라는 것이다. 자아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서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한다. 분리는 비교와 경쟁을 불러온다. 여기서 '저 친구는 나보다 어려', '나보다 재능이 많아' 등의 생각이 시작된다.

사실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보다 자신을 전적으로 책망하는 것을 더 마음 편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보통 첫 음을 내기도 전에 허무감에 패배하고 만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연주자라고 믿는다.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점들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들의 연주는 양극단을 오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잘한 연주는 진짜 자기 실력이고 못한 연주는 우연한 사건이라고 합리화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고치고 고려해야 할 문제를 직면하는 일을 피한다. 이러한 두 부류의 연주자들 모두 연주의 결점을 지적하면 상처를 입는다. 결점에 감정을 너무 많이 결부시켜 놓았기 때문에, 후자의 음악가들은 결점을 무시하려고 하고 전자는 결점을 자신이 실력이 없다는 증거로 삼는다. 그리고 이들의 실력은 여러 해 동안, 혹은 영원히 형성되지 않는다.

 


 

4장에서는 저자 케니 워너가 직접 고안한 4단계로 이루어진 '마음 훈련법'이 기술되어 있다. 음악가들이 연주 불안을 극복하고, 경직된 음악에서 벗어나서 음악적 자유를 만끽하며 내면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수준까지 도약하도록 돕는 훈련이다. 1단계에서는 명상을 활용하여 악기에 접근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몸의 모든 긴장을 풀고 악기와 내면 공간을 연결하는 연습이다. 보컬을 포함하여, 악기별로 각각 다른 접근법이 기술되어 있어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좋다. 2단계에서는 내면 공간에 최대한 길게 머무르면서 자유롭게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익힌다. 3단계에서는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연주를 관찰자로서 지켜보며, 무엇을 제대로 알고,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4단계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숙달로 나아가는 연습을 한다. 어려운 부분들을 따로 떼서 어떠한 방식으로 연습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연주를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 몰두할 때, 위대한 음악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쉬운 이야기 같지만, 연주할 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이러한 상태에 들어가는 일에는 자아를 내려놓고 연주하기 위해 철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음악적 테크닉을 익히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연주 기술을 익혔다 하더라도, 심리적인 요소가 해결되지 못하면 결코 청중의 마음을 두드리는 완전함에 닿을 수 없다. 델로니어스 몽크는 천재로 불리는 재즈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다. 당대에는 분명 몽크보다 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많았다. 델로니어스 몽크가 외경의 대상이 된 진짜 이유는 스스로를 천재로 허락한 ‘거만함’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가 판단하기에 몽크의 마음은 그를 제약하지 않았고, 영혼은 그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몽크의 모든 음에는 ‘이것이 진리다’라는 신념이 깔려 있었다고 말한다. 조금 결이 다른 연주의 빌 에반스는 곡의 최소한만을 연습하는 연주자였다. 최소한의 시간이 아니라 곡에서 최소한의 부분을 연습한다는 의미로,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여 그것을 이해하고, 그 부분으로 가능한 모든 변주를 탐구하며, 다른 여러 조로 옮겨서 연습하는 것이다. 이처럼 연주의 경지에 이르는 데에는 기존의 연주 방식과 다른 차별화된 과정이 필요하다. 케니 워너는 ‘연습만이 살길’이나 ‘무조건 실수 없이 완벽하게’라는 통념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나는 건반을 누를 때 어떤 소리가 나도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내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소리야.”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똑같이 해보라. 음 하나를 연주하고, 그 소리를 평가하기 전에 선언한다. (중략) 우리의 창의성에 가장 도움이 되는 신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연주하는 모든 음이 들어본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생각할 때 본인이 훨씬 자유롭고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p.125)

 

저자 : 케니 워너(Kenny Werner)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음악교육자이다. 4살에 공연을 시작하고 11살에는 텔레비전에 출연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그는 디지 길레스피, 베티 버클리, 투츠 틸레만스, 찰스 밍거스, 마리안 맥파틀랜드, 바비 맥퍼린, 루 롤스, 미셀 르그랑, 군터 슐러, 빌 프리셀, 팻 매스니, 엘빈 존스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했다. 최근까지 안토니오 산체스, 브라이언 블레이드, 존 파티투치 등이 속한 5인조 그룹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30개 이상의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수많은 주요 국제 재즈 오케스트라와 교향악단을 이끌었다. 2010년 《No Begining No End》라는 앨범으로 구겐하임 펠로십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외에도 여러 NEA 재즈 마스터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15만 부 이상 팔리며 전 세계 뮤지션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버클리 음악대학 교수이자 원서의 제목을 딴 버클리음대 소속 교육기관인 Effortless Mastery Institute의 예술 감독으로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음악적 숙달을 위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그의 독창적이고도 효과적인 음악교육법을 세계의 유명 음악 유튜버들도 극찬하며 다루어 왔다.

 

역자 : 이혜주

 

영남대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기악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번역에 뜻을 품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 한영전공 졸업하였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페니텐샤-정복당한 이들의 고행 그리고 저항』,『힘들이지 않는 숙달(출간예정)』등이 있으며. 월간지 「춤:in」을 번역하였다. 또한 「매거진B」 및 「매거진F」 영문판 홈페이지를 번역하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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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베오녹스 Beo Nox
이설 지음 / 좋은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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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년, 미래 사회의 인류는 유전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불로불사를 이룬다. 모든 인간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지지 않고 부유한 특권층 ‘칸델라’에게만 주어진다. 가난한 피지배계층은 여전히 제한된 수명으로 지배계층의 삶을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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