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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이야기 ㅣ 나비클럽 소설선
김형규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8월
평점 :
독자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거의 책을 안 읽고 지내는 바람에 출판 경향이나 독서 경향에 대해 거의 모른 채 지내왔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핑계 저 핑계로 독서를 미루다 책과 멀어젔다. 예전 같으면 약속 장소도 가급적 서점 근처로 많이 잡았는데 직장 생활 후부터는 회사 근처 아니면 번화한 밤거리 문화가 다양한 상업지구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잘 읽었던 소설마저 집에 몇 권 없을 정도로 책과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회사 근무 방침이 바뀐 후로 많은 시간이 남아 여가를 즐기기를 원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열리지도 않았다. 모여서 운동하는 시스템도 모두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다운 받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할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괴로워질 어쩌다 회사에서 나눠준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잠도 청할 겸 읽다보니 재미가 괜찮았다. 한두 권 읽다보니 에전의 독서욕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책을 구입하니 배송도 빠르고 책 구입 시스템도 편리해졌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을 책과 함께 지내다 보니 차츰 예전에 즐겨 읽었던 소설도 한두 권씩 사서 읽기 시작했다. 원래 책을 읽을 때 속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많은 책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출판계 소식도 신문이나 인터넷을 찾아 접하게 되니 읽고 싶은 책이 정말 많았다. 잃어버린 신세계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선택된 책이다. 요즘 소설은 SF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은 너도 나도 SF 소설을 즐겨 쓰는 것 같았다. 어쩌면 세계적 추세일 것이란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읽은 책을 보고 느낀 점이라서 여기에 한 줄 적어본 것이다.
이 책 『모든 것의 이야기』는 SF 분야의 소설도 들어 있지만 예전 산업화 시기에 국내에서 한참 인기를 끌었던 리얼리즘 색채가 강한 소설이란 점을 책 소개글에서 읽고 선택했던 터라 옛날 생각 많이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산업화 시대 때는 노동자, 도시 소외계층에 대한 소재가 많았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많은 수익은 회사 측이 가져가는 우리의 산업 사회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직접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은 동조하는 차원에서 그런 소설에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독자는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터라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게 어렵지만 독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산업화와 리얼리즘 문학' 정도로 표현하면 독자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이랄까. 당시 리얼리즘 문학은 서구의 산업혁명 이후 나타난 문학사조라고 학교에서는 배웠다. 사회 현실, 부정의한 현실에 노동자나 소외계층의 권리는 무시된 채 강도 높은 노동만 강요하는 것이 지배층과 부유층에 대한 반발 의식이 커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노동자의 권리 인식,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등을 파헤쳐 문제를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많은 작가들이 리얼리즘 문학의 틀에 넣어 글로 발표함으로써 일부 작가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독자들의 호응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동 현장을, 소외 계층의 삶을 묘사한다고 그들이 소설을 읽을 정도로 시간들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다. 독자층은 주로 대학생, 사무직 직장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 시대라면 노동자의 권리,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구조 등은 당연히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부는 잘살게 되기까지 모든 노동운동이나 노동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계했다. 산업체 노동자와 도시 노동자들은 책 읽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야근이니 특근이니 하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고 월급 이외로 얼마간의 수당이 더 얹어서 주는 것이 전부였다. '복지'라는 단어는 아예 산업화 시대는 사전에서 지워졌을 정도다.
그 일을 문학이 대신한 것이다. 그것을 '참여 문학'이라고 일컬었다. 작가가 노동에 참여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의식이 노동자의 권리나 소외 계층에 시선을 보내고, 그들이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이른바 '순수문학'이다. 문학은 문학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이나 사회에 참여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은 문학을 도구로 노동 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란 부정적 견해가 만만찮게 있었다. 그렇게 우리 문단은 정반대의 시선을 가진 두 부류의 작가들로 구별되던 시대가 우리의 산업화 시대이다.
이 책의 저자 김형규에 대해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저자 소개란에 변호사로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알게 됐다. 다재다능하고 박학다식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림동에서 노동변호사로 일했다고 하니 요즘 대림동은 중국 동포나 이주노동자가 많다고 들은 바 있어 그쪽 현장의 경험을 통해 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순서에 따라 적어 보면 「모든 것의 이야기」, 「대림동에서, 실종」, 「가리봉의 선한 사람」, 「코로나 시대의 사랑」, 「구세군」 등이다. 저자 김형규는 지난해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글솜씨를 인정받은 것 같다. 틈나는 대로 소설을 쓰고 여기 저기 발표를 하고 그동안 쓴 소설을 이번에 한데 묶어 책으로 냈다고 한다. 작가로서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처음 접하는 작가분이라 축하와 응원, 기대감을 함께 보내고 싶다. '장르문학의 문법'을 이용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아마 실험적 소설을 주로 쓰는 탓에 붙여진 명칭인가 싶다. 기성 작가 흉내내기보다는 훨씬 신예 작가다운 패기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의 작가정신에도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이 다섯 편의 소설들은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를 응시하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체제 안에서 ‘환대받지 못한 자들’에게 드리운 외로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자 한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문학평론가 최성실이 그의 '첫' 작품집에 대해 〈작품 해설〉을 써서 책 뒤에 붙였다. 「화성에서 식물-되기, '증상'으로 살아가기」란 제목이다. 이에 따르면 저자 김형규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로서 한 번 읽고 완전 이해가 어렸웠는데 문학평론가의 해설 조언을 들어보니 안갯속 부분이 아주 말끔하게 걷힌다. 최성실 평론가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버텨 나온 우리들이 함께 동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죽음과 질병이 '공기 중에'도 떠다니는 시간을 버텨오고 있다. 그 질병 때문에 같이 숨을 쉬면서 산다는 것, 그 공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질병은 개인이 철저하게 대처하고 방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대응으로 해결해야 하는 공공의 적이다. 붕괴냐, 아니면 대전환이냐라는 급격한 사회적 변동의 물음 앞에서 랑시에르의 말처럼 "몫 없는 자들의 몫", 즉 공동에 참여할 수 없고, 참여가 가능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 혹은 자신의 몫을 강(박)탈당한 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p.259~260)
코로나 팬데믹이 그렇듯이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몫 없는 자"들이고, 그것은 원래 몫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몫을 강(박)탈당한 것이란 의미다. 즉, 보이지 않는 사회의 벽, 우리 국민들의 그들에 대한 인식, 또 상대적 부당한 대우 등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정당한 몫을 줘야 할 사람은 우리 사회고, 우리의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는 "노동자, 소외 계층, 계급 문제로의 귀환, 김형규 소설은 여전히 등껍질로 달라붙어 있는 계층과 계급 등의문제를 정면에서 부각하고 있다."면서 "더 첨예해지고 복잡해지 자본의 논리로부터 문학적 상상력으로 놓쳐버린 그 무엇, 예컨대 세련된 착취 기제들 속에서 능력주의는 어떻게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지, 왜 자본계급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첫' 칼날은 향해 있는 것이다.
* 디지털 시대에 '계급 정치'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계급이다. 자본계급은 지금 시대의 당면과제들을 만들고 있으며, 특히 노동자 계끕 내에서의 분열을 조장하고, 피해자끼리 투쟁을 하게 한다.(이상 평론가 주)
“저 앞 다세대주택에서 사람 하나가 소리 없이 걸어 나온다. 빌라 현관에서도 한 사람이 걸어 나와 소리 없이 잰걸음으로 사라진다. 그 옆 단층집에서도, 맞은편 또 다른 다세대주택에서도 한 사람씩 나타나서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중략)
다시 또 한 명이 유령처럼 내 곁을 지나쳐 간다. 숨소리마저 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더 큰 골목으로 나아간다.
나도 물결을 따라가 본다. 좁은 골목에서 흘러나온 시내가 다른 시내를 만나 개천을 이루고 10차선 도로의 인도에서 강물이 되어 전철역 입구를 향해 흘러간다.”(p.124) - 「대림동에서, 실종」 중에서
위 풍경은 90년대 난곡의 산동네와 평행이론처럼 닮은 21세기 대림동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새벽마다 흐름을 형성하면서 흘러가는 행렬들, 밤이면 수없이 많은 불빛들이 빛나는 이곳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타자화를 드러낸다. 이는 AI로 일자리를 잃은 무직자들이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게임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구세군」의 배경인 근미래까지 나아간다. 우리는 매일 이 물결을 따라 흘러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삶은 죽음으로 흐르고, 당신과 내가 만나거나 헤어지고, 사랑하거나 서로 믿못하고 배신하거나 엇갈리며 그리워하거나, 두려움과 불안과 외로운 마음들의 흐름. 이 흐름을 사유하는 선 굵은 이야기를 저자는 들려준다. 이 책 『모든 것의 이야기』는 이 흐름의 밑바닥, 존재하지만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것, 21세기에 이른 ‘계급’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여자는 혼자다. 나도 혼자다. 여자는 거리의 소란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변함없는 미소로 악수를 청한다. 그제야 여자가 미르에서 보았던 '12월 혁명'의 지도자인 것을 깨닫는자.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p.256) - 「구세군」 중에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습니다. 두려울 때마다 시공간의 무한함이나 빛의 속도 같은 것을 떠올렸습니다. (중략)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래 생각하던 어느 날 당신과의 약속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세계와 사람에 대해 찬찬히 둘러보았고 우리는 머지않아 사라지지만 그 짧은 생 안에 아름다운 것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당신과 내가 겪은 고통의 크기 자체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당신과 내가 같은 고통을 겪었음을 서로 이해함으로써 고통이 남긴 흉터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p.275~277) 〈작가의 말〉 일부 발췌
저자 : 김형규
인간과 사회, 시공간과 빛의 속도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대학에서 동양사를, 대학원에서 러시아 현대사와 시베리아의 역사를 공부했다. 여러 학교에서 강의했고 대책 없이 출판사를 만들어서 된통 고생한 시절도 있었다. 역사 분야의 책을 몇 권 짓거나 우리말로 옮겼다. 2021년 〈대림동 이야기〉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 현재 변호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법률문서에 치여 살면서도 늘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학부에서 동양사를, 대학원에서 러시아 현대사와 시베리아의 역사를 공부했다. 대학에서 강의했고, 여러 분야의 책을 기획, 편집, 집필, 번역하기도 했다. 2021년 〈대림동 이야기〉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