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 한 잔 술에 담긴 인류 역사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정세환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신(神)은 인간에게 여러가지를 베풀었지만 과연 술도 신이 베푼 선물인가. 아니면 선악과와 같은 것인가. 이에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듯이 술 역시 그런 시험대에 들게 하는 음식이었을까. 인간은 술 역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류 역사와 거의 비슷하게 지속돼 온 술은 세상 속 각 지역별로 모습과 색, 향이 바뀌며 다양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술은 기분을 좋게 하는 '약'으로 대접받기도 했고, 인류 문명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반면 개인 건강에 막대한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독자도 술을 좋아하고 잘 마셨지만 지나친 음주가 낳는 나쁜 결과가 나타나서야 술로부터 해방됐다. 지금은 술과 담을 쌓았지만 술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 술 마실 때의 그 좋은 분위기와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의 기분 좋은 분위기나 대화를 잊을 수 없어서이다. 그렇게 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필수불가결하게 등장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로 '신의 선물'로 지칭돼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반면 인간 건강에는 지나칠 경우 많은 해악을 가져온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행복도 짓밟을 수 있는 '신의 벌'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술의 선한 영향과 해악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술은 언제 어디서나 인류 삶에 필수적으로 영향을 미친 음식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이다. 술 때문에 인류 역사는 큰 변화를 가져왔을 터 술에 대한 이야기 자체보다 술로 인해 빚어진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저자는 보통 사람과 좀 다른 의미로 술을 대했던 것 같다.

술로 세계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술로 벌어진 일은 세계사를 바꿀 만큼 영향력이 있었나? '애주가'였던 독자로서는 궁금하다. 저자는 스카치, 버번, 캐나디언 클럽, 코냑, 워커, 럼주, 와인 등은 지역을 대표하는 각양각색의 술이지만 지금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이 담긴 술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또 어떻게 세계로 확산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인류 문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주장이다. 경청하고 어떤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알아본다.

저자에 따르면 보드카, 데킬라, 소주 등 전 세계의 모든 증류주는 9세기에 이슬람에서 연금술을 위해 발명된 증류기 알렘빅에서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액체 빵’ 맥주, 흑사병의 공포가 낳은 위스키와 브랜디, 음료수 대신이었던 대항해 시대의 와인, 겨울의 추위가 낳은 기적의 술 샴페인 등 세계를 둘러싼 다양한 술의 재미있고 생생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술의 기원으로 거슬러올라가 시작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인류가 최초로 만든 술은 꿀을 발효시켜 만든 ‘봉밀주’라는 설도 있고, 원숭이가 나무 구멍 속에 모아놓은 과일이 자연 발효되어 술이 되었더라는 ‘원숭이 술’ 이야기도 있다. 독자는 후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자의 탐구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최초로 만든 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면 기록으로 남는 문자 발명 이전부터 존재해온 술의 기원을 명확하게 기록한 문서는 없을 터이니. 인간은 술의 존재를 수렵 채집 시대부터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술이 기록으로 남아 있을 리 없다. 아마도 알코올 발효를 처음 접한 인간은 좋은 향기를 풍기며 썩어가는 액체를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맛보았을 것이고, 취기라는 흥분된 기분을 알게 되면서 이 오묘한 액체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알코올 세계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생활 속에서 발효라는 신비로운 현상을 깨달은 인류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다양한 술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저자의 판단에 공감한다.

‘봉밀주(Mead)’, 우리 말로 하면 '꿀술'쯤 된다. 사실 꿀은 벌이 꽃에서 채취하였지만 벌의 체내에 있는 효소들이 분해하여 발효되기에 매우 좋은 상태라고 한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도 꿀을 채취하는 그림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인류는 최소 15,000년 전부터 꿀을 식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꿀로 술을 만드는 것은 물을 섞어 희석하는 것 외에는 별도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우 쉽고도 간단하여 아마 꿀을 채취하는 시점에서 인류는 술을 만들어 즐겼을 것이라 저자는 이야기한다.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의미하는 ‘허니문 (Honeymoon)’이라는 단어 역시 이 봉밀주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는데...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꿀 채취 그림이 봉밀주의 기원이 될까.



저자는 술의 문명을 탐구하기 위해 인류사도 끌어들인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사는 ① 장기간에 걸친 수렵과 채집 시기, ② 농경의 시작과 도시 출현 시기, ③ 유라시아 여러 문화 간 교류 시기(7~14세기), ④ 대항해 시대, 즉 신구 양 대륙의 교류 시기(15~16세기), ⑤ 산업혁명 이후의 시기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술 문화의 변모 과정도 그대로 겹쳐진다. ①시기에는 포도, 야자, 꿀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소재를 발효시켜 양조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②시기에는 곡물을 발효시켜 대량의 양조주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술이 대중화되었고, ③시기에는 이슬람 세계의 증류기가 동서로 전해지면서 아락, 소주, 보드카, 위스키, 브랜디 등의 증류주가 탄생했다. ④시기에는 신대륙과 구대륙 간의 교류가 활발해져 향신료, 과일 등이 술 문화와 얽혀 다양한 혼성주가 등장했고, ⑤시기에는 연속 증류기가 발명되어 술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고 칵테일 시장이 성장하면서 술 문화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인류의 행보와 술의 역사를 함께 생각해보면, 술도 인류 문화의 한 부분임이 틀림없다.




책에 따르면 전 세계의 무수히 많은 술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 발효시킨 ‘양조주’, 양조주를 증류시켜 알코올 순도를 높인 ‘증류주’, 증류주에 허브, 향신료 등을 섞은 ‘혼성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쉽게 알코올 발효가 되는 포도, 사과 등의 과실과 야자나 버섯 등의 수액, 꿀이나 가축의 젖을 이용해 양조주를 만들었다. 봉밀주, 와인, 마유주, 야자술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발효 기술이 발전하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으로 널리 이용되는 곡물을 원료로 삼아 대량의 양조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맥주, 황주, 일본주, 치차 등이 있다.

술의 세계가 단숨에 확대된 계기는 이슬람 세계에서 연금술로 금이나 은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증류기가 술 제조에 사용되면서부터이다. 증류기로 양조주를 가열하고 증류하여 알코올 농도를 높인 증류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증류주에는 브랜디, 칼바도스, 키르슈바서, 위스키, 진, 보드카, 아쿠아비트, 럼, 데킬라 등 종류가 매우 많다. 또한 증류주에 허브, 향신료, 과실, 사탕수수, 착색료 등을 첨가하면 혼성주가 된다. 시대에 따라 순차적으로 등장한 술 문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중첩되고 조합되어, 오늘날 세련되게 발전한 술의 세계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저자의 말에 집중한다. 궁금했던 부분이다. 인류 역사에서 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왕 제임스 1세는 청교도를 엄하게 탄압했고, 이를 참을 수 없었던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으로 향했다. 2개월이 넘는 고난의 항해 끝에 미국 연안에 닿았는데, 본래는 좀 더 남하하여 따뜻한 남쪽 땅에 식민지를 세울 예정이었으나 물 대신 마시던 맥주가 떨어져 매사추세츠만에 닻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맥주가 미국을 탄생시켰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맞는 말인가. 독자는 처음 듣는 얘기인 데다 미국의 건국의 발상지가 맥주를 마시기 만들어 마시기 위해서 내린 곳이라고? 또한 프랑스혁명은 파리 시민에 의한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바스티유 습격 3일 전부터 와인 밀수업자가 이끌던 민중에 의해 파리 주변의 관세문 습격이 잇따랐고 그 연장선상에서 바스티유 습격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혁명에서 타도의 대상이 된 부르봉 왕가의 이름을 단 위스키 ‘버번’이 혁명이 발발한 해에 미국에서 탄생해 합중국의 국민 술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놀라운 얘기고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이집트와 그리스 신화 속 와인, 액체 빵이었던 최초의 맥주, 무취와 무색투명한 보드카, 페스트를 치료하는 생명수로 불리던 브랜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위스키, 메디치가에 의해 전파된 리큐어, 용설란으로 만드는 데킬라, 감자를 원료로 만든 자양 강장주 아쿠아비트, 사탕수수 폐기물로 만든 해적의 술 럼, 추위가 만들어낸 발포주 샴페인,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이 공동으로 발전시킨 진, 에일 맥주와 라거 맥주, 고흐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압생트, 미국의 금주법을 기회로 성장한 캐나디안 위스키와 영국의 스카치, 칵테일을 대표하는 맨해트과 마티니 등 세계사 속 흥미롭고 재미있는 술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에 따르면 먼 옛날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벽을 가볍게 넘나들게 하는 술이 주는 특별한 기분을 신의 세계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취기로 인해 쾌감, 환상, 환각, 현기증을 느끼며 비일상적인 세계로 인도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과 접했다거나 신이 되었다면서 술을 신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도 술을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 술은 줄곧 인간과 함께해왔다. 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은 인류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압생트 상음자 가운데 중독자가 늘자, 노동 의욕 감퇴, 범죄 양산 등의 사회 문제가 빈발했다. 압생트를 애용한 예술가로 모파상, 베를렌, 고갱, 모네, 드가, 피카소, 헤밍웨이 등이 유명한데, 섬세한 시인으로 알려진 베를렌(Verlaine, 1844~1896)과 술집을 좋아하여 무희나 관객의 모습을 즐겨 그린 화가 툴루즈 로트렉(Toulouse-Lautrec, 1864~1901) 등은 압생트 중독으로 비참한 생애를 마감했다.

고흐(Gogh, 1853~1890)도 자화상을 그릴 때 방해가 된다며 왼쪽 귀를 절단하거나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런 행동도 압생트를 수시로 마셔 정신 이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고흐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술 압생트」 중에서


저자 : 미야자키 마사카츠


1942년에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교육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도립미타고등학교, 구단고등학교, 쓰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 세계사 교사를 역임했다. 이후 쓰쿠바대학 강사와 홋카이도교육대학 교육학부 교수를 거치며 20여 년 넘게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편집과 집필을 담당했다. NHK 고교 강좌 〈세계사〉의 전임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7년 퇴임 후, 중앙교육심의회 전문부회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NHK 방송 문화센터, 아사히 컬처센터, 도큐 세미나 BE 등에서 활발한 강의 활동을 펼치며 역사서의 저술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부의 지도를 바꾼 돈의 세계사』,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지도로 읽는다』,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 등 다수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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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시대를 앞서간 SF가 만든 과학 이야기
조엘 레비 지음, 엄성수 옮김 / 행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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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지구촌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른 이슈가 모두 묻혔다. 늘 세계의 10대 뉴스에 들어가는 미국 대통령 선거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 치러져 큰 이슈화되지 못한 채 국내 정치화되었고, 전쟁중이었던 시리아의 난민 얘기도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지구촌 뉴스에서 실종됐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렇게 강력하고 인류에 위협적이라는 반증이다. 오히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으로 1억명의 희생자를 냈다는 팬데믹 상황이 자주 회자되기도 했다. 우리 나라도 정부나 국민 모두 코로나 방역에 온 힘을 기울이느라 가장 현실적인 대북 문제나 대 중국 무역 뉴스도 묻힌 느낌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 경제도 침체되는 바람에 희망적인 뉴스는 사라졌지만 비대면 산업이 크게 부상됐다. 4차 산업 시대를 앞당기는 비대면 산업이다보니 택배 산업이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등과 함께 크게 부상된 것 같다. 문학 분야에서는 예년과 달리 SF 분야가 가장 주목 받고 있다.

아마 바이러스 해결을 위한 의학 때문이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의학은 과학의 한 분야로 4차 산업 시대에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과 의학은 직접 관련 분야 아닌가.



지금까지 누군가에게는 취향의 하나로 또는 여가의 일부로 비칠 수 있는 SF가 사실은 미래를 창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새로운 기술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과학은 정확한 것이 생명인데 상상력의 소산인 SF와는 어울리지 않은 조합 같지만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과학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는 비과학계도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술 중에는 SF에서 먼저 예견했을 뿐 아니라, 많은 경우 그것이 실현되는 데 도움까지 준 기술이 셀 수 없이 많다.

이에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From science fiction to science fact』의 저자 조엘 레비는 이 책을 통해 누군가의 상상에서 시작된 과학기술이 어떻게 현실이 되고 우리의 삶에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니콜라 테슬라, 베르너 폰 브라운 같은 혁신적인 발명가는 물론 쥘 베른, 올더스 헉슬리,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SF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와 그들의 작품, 그리고 〈스타트렉〉이나 〈6백만 달러의 사나이〉 같은 영화, TV 시리즈 등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신용카드, 휴대용 단말기 등 일상생활에 친숙한 기술부터 생명연장을 가능케 한 의학,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은 탱크, 원자폭탄 등 군사·무기기술은 물론,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인공지능, 우주과학 기술까지 혁신적이고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견과 발명이 있기까지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미래를 예측한 SF 작가들과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영화〈태양의 제국Empire of the Sun〉의 원작자이자 SF 역사가인 J. G. 발라드는 “모든 것은 SF로 통한다. 거의 보이지 않는 문학의 가장자리에서 20세기의 온전한 현실이 생겨났다. 현대의 SF 작가들이 오늘 발명하는 것들을 당신과 나는 내일 실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지력이 뛰어난 누군가의 상상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상상이 모두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상상하지 않았다면 인류가 오늘과 같은 과학기술을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SF와 과학이 만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도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저자는 과학 분야를 우주와 교통, 군사와 무기, 생활 방식과 소비자, 의학과 생체공학, 커뮤니케이션 등 5개 분야로 나눠 SF와의 연계성을 분석한다.

군사와 무기의 경우 저자에 따르면 나치 독일에서 V-2로켓을 개발하고 미국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을 이끈 천재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은 1951년『프로젝트 화성』라는 SF소설을 발표한다. ‘일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성의 지배자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인류의 화성 탐사 계획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고 있는 유인 화성 이주 계획과 상당히 유사하다. 일론 머스크가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화성 이주 계획이 폰 브라운의 SF소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혁신적인 기술들 대부분은 SF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자동차업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자율주행 자동차는 1980년대에 방영된 TV 시리즈 〈전격Z작전〉의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 1세기 앞선 1894년에 존 제이콥 애스터 4세가 쓴 소설 『다른 세계에서의 여행』에서 이미 예견된 바 있다고 설명한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패드 등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났는데, 이런 휴대용 단말기는 1890년에 이그나티우스 도널리가 쓴 소설 『시저의 칼럼 : 20세기의 이야기』에서 ‘스크린 신문’의 형태로 이미 등장했고, TV 시리즈물〈스타트렉〉이나 영화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그 디자인과 사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인류 의료기술 중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상용화된 뢴트겐의 X선은 그보다 3년 앞서 필랜더가 쓴 동화 「일렉트라: 20세기의 신체 진단 이야기」에서 예견된 바 있다. 모든 것은 SF로, 모든 SF는 과학으로 통한다는 의견이다.

이 책은 이런 SF 소설, 영화, TV 시리즈에 등장한 기술과 현실 속 기술 사이에 얼마나 밀접하면서도 놀라운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각 기술의 역사와 그 발전상을 더듬어보며, 선견지명이 있는 SF적 개념이 어떻게 현실에서 기술로 실현되었는지 그 과정을 깊이 탐구한다.



책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왕립위원회에서 처칠은 영국 군사 기술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탱크의 출현에 큰 영감을 준 것은 H. G. 웰스의 소설 「육상 철갑함」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1949년 베르너 폰 브라운이 화성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쓴 소설 『프로젝트 화성 : 기술적인 이야기』에는 ‘일론’이라는 이름의 화성 지배자가 등장한다. 실제로 유인 화성 탐사 계획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프로젝트 화성』을 읽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야심만만한 그의 화성 로켓 발사 프로그램이 베르너 폰 브라운의 비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쥘 베른, H. G. 웰스, 올더스 헉슬리,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위대한 SF 작가들의 비전은 현대 기술의 발전에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니콜라 테슬라와 베르너 폰 브라운,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과학 분야의 천재와 산업 분야의 선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또 원자폭탄(H. G. 웰스), 원격조종 드론(에드워드 벨러미), 현금 없는 사회(윌리엄 깁슨), 3D 프린터(〈스타 트렉〉), 무인 자동차(아이작 아시모프), 달 로켓(에르제), 인조인간(메리 셸리), 휴대용 단말기(스탠리 큐브릭과 아서 C. 클라크) 등 많은 SF 및 현실 속의 기술들도 접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책과 잡지의 표지, 역사적인 그림과 문서, 영화와 인기 TV 시리즈의 장면, 오늘날 현실로 재현된 기술과 관련된 사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대를 앞서간 현실’이라 일컬어지는 SF와 현실 과학의 연관성을 통해 SF 작가들과 과학자들이 어떻게 세상에 없던 미래를 창조해가는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애스터의 선견지명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먼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초기 자동차 디자인 중 상당수는 전기 자동차를 기반으로 디자인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내연기관이 다음 세기에 지배적인 자동차 모델이 되리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p. 16)


1870년에 출간한 소설 『해저 2만 리』에서 쥘 베른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꿈’이라면서 어떤 배에 대해 설명했다. 아주 꼼꼼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을 통해 그는 자신이 말하는 배가 모든 면에서 당대의 해양 기술을 훨씬 뛰어넘는 배인 것은 사실이나, 그러면서 동시에 당시의 기술로도 얼마든지 제작 가능한 배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뛰어난 예지력과 지혜와 의지 그리고 동원 가능한 자원을 가진 대담한 사람이 한 사람만 있다면 이런 배는 현재의 과학기술만으로도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다.” (p. 27)


SF 소설에서 화폐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그 역사가 아주 깊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 에드워드 벨러미Edward Bellamy는 자신의 1888년 소설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에서 ‘신용카드credit card’에 대해 예견했는데, 심지어 그 이름까지 오늘날과 똑같았다'(p. 147)



'15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 일주', '해저 2만리', '신비의 섬' 등의 공상과학 소설을 쓴 '쥘 베른'은 당시엔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를 소설로 쓴 작가이다. 그런데 쥘 베른의 소설을 읽으면 놀라운 것이 있다. 쥘 베른의 상상속에서 생겨난 것이 있는데 그건 작가의 소설에도 등장하는 '잠수함'이다. 잠수함 '노틸러스 호'는 사실 완전히 쥘 베른이 발명한 것은 아니다. 당시엔 잠수함이 만들어지는 시기였고 이후에 잠수함 디자이너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추게 된 것이다. 쥘 베른의 소설은 실제 잠수함이 출현에 일조하고 잠수함은 그 다음 전쟁에 참여해 거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게 된다. 쥘 베른은 바다나 땅속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달을 향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소설에서 로켓을 타고 달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쥘 베른은 아마도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나는 것을 물리적으로 제대로 간파한 것을 소설로 만들었다. SF 소설들이 달 로켓 발사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드론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관광지에서는 하늘에 드론이 날고 있는 경우들이 많아 가끔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드론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드론이 만들어진 초기에는 자율형 무기 또는 드론형 무기로 만들어졌다. 휴고 건스백은 잡지 편집자이자 SF 작가로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게 된다. 휴고 건스백이 드론형 무기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는데 1918년에 소개되었다. 온갖 폭탄들로부터 안전하고 화염이나 가장 치명적인 가스도 개의치 않을 강력한 병사가 필요하다고 건스백은 설명했다. 또 우리 주변에서 없으면 서운할 정도로 많은 CCTV는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빅브라더라는 말로 예견했다. 소설 '1984'는 억압적인 국가 감시, 감시 국가의 출현에 대해 다룬 소설로 알려져 있다. 소설 '1984' 주인공의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텔레스크린이 묘사되었는데 이 기계의 가시권 안에 있는 한 일거수일투족까지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나 생활이 보여지는 현대의 CCTV와 같았다.



공상과학이라는 용어는 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지만, 영화에서도 먼 미래를 가정하여 상상한 과학적인 요소에도 적용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과학기술이나 처음부터 상상으로 만들어진 과학적 창의력으로 탄생한 기술들이 많이 있다. 과거의 경험에 따르면 일부는 실제로 현실화된 것들도 있고, 일부는 아직도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과학기술이기도 하다. 50년 전에 토끼들이 살던 달나라에 지금은 인간이 여행 갈 정도로 과학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신기했던 것이 이제는 대부분 당연한 기술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미래에는 어떻게 변할지가 더 궁금해지기도 하다.


저자 : 조엘 레비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과학과 역사 전문 작가 겸 저널리스트.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턴의 노트(Newton's Notebook)』 『침대 맡에 두고 보는 화학(The Bedside Book of Chemistry)』 『성당 안의 한 마리 벌(A Bee in a Cathedral)』 등 과학과 역사에 관한 책 10여 권을 썼다. 특히 『성당 안의 한 마리 벌』은 비유와 인포그래픽으로 과학의 세계를 설명해 크게 주목받았다. 『브리티시 내셔널 프레스(British National Press)』 등의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면서 TV와 라디오 등에도 출연해 과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그 외에도 『Poison 독의 세계사』(세경북스)를 비롯해 『숫자로 끝내는 화학 100』, 『숫자로 끝내는 역사 100』, 『BIG QUESTIONS 수학』 (이상 지브레인), 『익사이팅 사이언스』(엑스오북스), 『사과는 왜 떨어졌을까?』(써네스트), 『과학자들의 대결』(바이북스) 등 다양한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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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방 암살 사건 - 정도전 죽음의 미스터리 큰 스푼
박은숙 지음, 김창희 그림 / 스푼북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궁궐 담장의 횃불이 모두 꺼진 밤, 얼굴을 가린 한 떼의 무사들이 바람을 가른다. 칼끝이 향하는 곳은 경복궁 동십자각 건너편 송현방이다. 주요 표적은 새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 조선을 설계한 일등공신이 왜 암살자들의 표적이 되었을까? 그들의 배후에는 과연 누가 있는 것일까? 정도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간다.

불교국가인 고려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은 유학자들이다. 당시 중국 대륙은 송나라의 주자학과 명나라의 왕양명이 공자와 맹자의 사상과 학문을 받아들여 유학의 꽃을 피웠다. 두 학문의 사상은 요즘 말로 이론은 다르지만 모두 뿌리가 공맹사상이다. 불교는 이념이고 사상으로 받아들여 피지배자인 백성은 불교신자이지만 지배계급인 정치와 관료 계급은 모두 유학 시험을 통해 선발되는 유학자들이 선발됐다. 불교계의 타락과 일부 관료들의 전횡으로 국세가 기울던 고려말, 유학자 정몽주, 정도전 등도 과거를 통해 관료에 등용된다. 이들은 유학의 근본인 위민 정신으로 관료 생활을 한 신흥 사대부 계급이다. 고려의 호족의 부패와 불교계 타락으로 나라는 민심이 이반되고 있었다. 정몽주 정도전은 유학 이념으로 나라를 구하고 돌아선 민심을 잡아야 하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다만 정몽주는 고려 왕을 중심으로 한 나라를 주장하고 정도전은 새 나라로 민심을 되돌리고 위민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의견이 갈렸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이와 같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이 꿈꾸던 성리학적 이상 세계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끝내는 정적의 칼에 단죄되어 조선 왕조의 끝자락에 가서야 겨우 신원되는 극단적인 삶을 살았다.

정도전의 집안은 본래 봉화 지역의 향리였다. 고려 시대까지 향리는 우리가 아는 조선조의 향리와는 그 격이 달라, 지방의 토착세력을 말한다. 정도전 집안은 경상도 봉화지역의 토착세력인 셈이다. 부친 정운경의 뒤를 이어 과거에 급제한 정도전은 22살 때 충주 사록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또한 정도전은 공민왕의 유학 육성 사업에 참여해 성균관 교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몽주?이숭인 등도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공민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정도전에게 시련의 시작이었다.





고려 말 공민왕의 뒤를 이어 우왕이 즉위하였는데, 우왕이 재위하던 때는 정도전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인임 등이 정국을 주도하였다.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하였고, 결국 원나라 사신의 마중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정도전은 오늘날의 전라도 나주에 속해 있는 회진현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회진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정도전은 그곳에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고는 위민의식(爲民意識)을 키웠다. 정도전이 회진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들녘에서 한 농부를 만났다. 그 농부는 정도전을 보고 당시 관리들이 ‘국가의 안위와 민생의 안락과 근심, 시정의 득실, 풍속의 좋고 나쁨’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헛되이 녹봉만 축내고 있다며 질책하였다. 촌로의 이러한 발언은 정도전에게 백성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기 충분하였을 것이다. 결국 그가 제시했던 민본사상은 허울 좋은 이름뿐이 아니었다. 실제 백성의 삶을 목격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진정성이 담보된 것이었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권력의 핵심에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곤경에 처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가 주창한 요동정벌 문제는 조선과 명나라의 주요한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표방하였다.

다만, 여진과 제휴한다든지, 요동에 진출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요동 진출 문제와 관련해서 정도전은 명나라에서 보면 요주의 인물이었다. 정도전은 태조에게 외이(外夷 : 중화질서 속에서 중국 이외의 민족을 지칭하는 개념)로서 중원에 들어가 왕이 되었던 사례가 있음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이는 중국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도 중원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이었다.

급기야 1394년(태조 3년)에 이른바 ‘표전문사건’이 일어났다. 표전문이란 표문과 전문의 합칭으로, 조선이 중국의 황제와 황태자에게 보내는 공식 문서를 말한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조선에서 파견된 유구와 정신의가 가지고 간 표문을 문제 삼았다. 유구 등은 결국 명나라에 구속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문제가 된 표문의 작성자로 정도전이 지목되었다. 명나라에서는 당장 정도전의 소환을 요구하였다. 명나라의 요구를 둘러싸고 조선 조정에서 설왕설래하였다. 논의 결과 표문을 작성한 사람은 정총이고, 전문을 작성한 사람은 김약항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사지로 정도전을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정총은 병을 이유로 가지 않고 김약항만이 명나라로 가게 되었다.



명나라의 요구가 거세었지만, 정도전이 가지 않은 것은 아마도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 당시 정치를 주도하던 조정 관리들이 대부분 정도전 계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후일의 태종 계열인 하륜만이 정도전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었다. 조정의 결정에 따라 김약항이 파견되었으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 명나라에서 다시 정도전을 압송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때도 역시 정도전은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국내에 있으면서 진법(陣法) 훈련을 강화하며 요동정벌을 위한 제반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병 혁파를 둘러싸고 왕자 및 공신들과 갈등을 초래하였다.

정도전은 개국 후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에 관여하였다. 태조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는 신의왕후 한씨이고, 둘째가 신덕왕후 강씨였다. 신의왕후 소생 아들로는 방우?방과(정종)?방의?방간?방원(태종)?방연 등이 있었다. 이들은 신덕왕후 소생의 아들보다도 아버지 태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공도 많았다. 그런데 정도전이 이를 다 무시하고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하였다. 훗날 태종으로 즉위한 이방원과의 갈등은 이 책에서 다루는 '정도전 암살 사건'은 무관치 않음을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살해함으로써 조선 건국이 가속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이방원 등 첫째 부인 한씨 소생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더구나 사병 혁파 문제로 서로 갈등을 보이던 중 1398년(태조 7년)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고, 정도전은 이방원이 이끄는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도전은 조선초 내내 신원 되지 않다가 고종 때 관직이 회복되었다.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건국 초에 설계 등에 참여한 정도전의 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제1차 왕자의 난 발생 원인은 개인적인 불만이 표출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방원과 정도전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이상의 차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국가체제를 어떻게 편제하고 운영할 것인가의 차이인 것이다. 정도전이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하는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표방하였다면, 이방원은 그와는 달리 강력한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에서 현실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림들이 집권하게 되면서 정도전이 꿈꾸던 이상 세계가 구현되어 갔으니, 정도전의 꿈은 꿈에서 그친 것이 아니리라….



위의 당시 정치적 배경이나 새 조선왕조의 상황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던 갈등 관계를 TV 사극이나 '조선왕조실록' 중 독자가 이해한 내용을 배경으로 임의로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는 정도전 암살 사건의 미스터리란 제목으로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돋우고 역사 의식 고취라는 차원에서 집필하다 보니 배경 설명을 자세히 할 필요가 없이 사건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또 '암살' 사건인 만큼 아직 역사적 배경에 따른 정치적 암투를 어린이들에게 너무 힘든 내용으로 받아들 것을 우려해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의 담장을 따라 환하게 켜져 있어야 할 횃불이 전부 꺼진 어느 날 밤, 얼굴을 가린 한 떼의 무사들이 바람을 갈랐다. 그리고 경복궁 동십자각 건너편에 있는 송현방에서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인 정도전이 무사들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 한편, 태종의 부마인 남휘는 우연히 자신의 할아버지인 영의정 남재의 동생 남은이 역적 우두머리 정도전과 한 무리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남휘는 태종의 첫째아들인 양녕대군과 함께 정도전의 죽음에 얽힌 매듭을 한 올씩 풀어나간다."






사건의 배경을 생략하고 사건 본문 속으로 바로 들어간 저자의 집필 취지와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썼기 때문에 모두가 고려된 기술이었다고 판단된다. 어린이에게 정확한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고 흥미를 갖게 한 후 암살 사건 전후를 추측해보게 하는 교육적 차원의 배려로 읽힌다. 에필로그에 남긴 저자의 말도 자세히 읽어보면 저자의 집필 취지와 무관치 않다.


저자 : 박은숙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월간지 〈좋은 엄마〉와 〈어린이 좋은 생각〉 편집장으로 일했어요. 좋은 어린이 책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갖고 집필 집단 ‘돋움자리’에서 활동했으며, 지금은 프리랜서로 어린이를 위한 책을 기획하여 쓰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세상에 이런 동물, 식물이?》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들》 《9,999개의 방을 가진 궁전이 있다고?》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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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 아부다비에서 찾은 인생이라는 사막을 여행하는 법
김지광 지음 / 청년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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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적 분류상 '자기계발서'이다. 독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늘 자신을 갈고 닦는 책에 붙여진 '자기계발서'를 지금까지 정확히 헤아리지 않았지만 어림잡아 수십 권은 될 듯하다. 좋은 내용이라 판단되면 내용에 따라 실천하며 열심히 노력했다. 많은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대할 때부터 제목답게 '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고' 삶을 살아가라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정작 책을 펼쳐들자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다. 책의 성격을 말해주듯 표지나 중간에 나오는 그림이 딱 에세이집이다. 지금까지 읽은 자기계발서와는 사뭇 분위기도 다르다. 물론 '자기계발서 쓰는 방법'은 따로 없다.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썼느냐'에 따라 편의상 하는 분류 기준이니까. 아마 책이 엄청 많은 데서 쉽게 찾기 위해 도서관이나 대형 서점에서 분류한 것이리라.

누구든 살면서 매순간 선택하고 결단한 대로 실천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자신이 택한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실천하기에도 더 힘이 나니까. 이 책을 읽다 불현듯 책을 내려놓고 독자 자신을 돌아본다. 저자가 자신의 선택에 관해 돌아보며 삶의 방향이나 선택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성찰하는 부분에서다. '나는 과연 내 선택의, 내 선택에 의해,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자신이 없다. '그렇다'라고 말하기엔. 일부는 그런 삶을 살았지만 대부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선택에 의해 살았기 때문에 결국 나를 위해 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결론을 미루고 읽어나간다.



이 책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는 한 공기업 간부가 날것으로 드러내 보이는 ‘욕망에 찌든 자화상’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진정한 성공, 행복,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반면교사의 글이다. 돈을 버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공 노하우를 알려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형, 선배 혹은 상사가 진솔하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삶의 이야기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고, 남들이 선망하는 기회를 잡았다. 자신의 능력이자 당연한 결과라고 믿었다. 승승장구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삶의 과정에서 필자는 좀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해 아부다비 사막의 원전건설 현장에 지원하게 되고, 생각지도 못했던 좌절, 인생의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닥쳐온 시련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분노하고 원망하던 어느 날 사막의 별보다도 더 찬란한 한 줄기 빛을 통해서 지금까지 자신은 한 마리 낙타처럼 끌려다니며 살아왔을 뿐이라는 걸 자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자신에게 스스로 지적한 '공허함'을 간직한 채 읽어나가며 저자가 말하는 '낙타의 삶'이란 걸 알게 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항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어왔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독자도 이후 스스로를 다시 돌아봤을때 공허함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자신의 삶을 이 한 권의 책으로 다 썼으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저는 항상 남들이 가진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갔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과 제가 가진 것을 비교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가지려고 했고,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발버둥쳤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중략)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열망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의 욕망을 내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왔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 들어가는 글에서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들려줄 얘기에 대해 '저자의 말'을 통해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진심어린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해외 원전건설을 위해 중동 아부다비 사막에서 근무했다. 사막은 예상보다 더욱 뜨겁고 황량한 곳이었다. 그늘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타들어 가는 태양과 푹푹 빠지는 모래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모래폭풍에 눈조차 뜰 수 없는 사막에서 한 마리 낙타를 보았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짐을 진 채 눈은 젖어 있고 발은 부르터져 있는 낙타는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주인의 손에 이끌려 걷고 또 걷지만, 그의 곁엔 하늘과 모래뿐이다. 직장생활 23년차로 접어드는 시간 동안 나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짜여진 틀에 맞추어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서 무언가에 이끌리듯 여기까지 왔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전부였던 인생은 처음에는 꽤 괜찮아 보였고, 제법 많은 것을 이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하루하루 바쁘게는 살았음에도 되돌아보면 왜 그렇게 바빴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부족함은 더욱 커져만 갔고 짊어지는 짐은 더욱 늘어만 갔다. 사막에서 만난 그 낙타처럼.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인생에 진정한 사막이 펼쳐졌다. 평생 정상을 향해 오르는 인생을 살아왔던 나는 사막을 만나자 휘청거렸고, 방향을 잃고 흔들리더니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어느덧 굳게 닫혀버린 문 앞에서 후회하고 원망하며 좌절했다.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고, 모든 길이 막힌 것만 같았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개척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위대한 승리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어쩌면 우리가 모두 '잘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애써 무시한 채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사막을 걷게 되면서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낙타처럼 천천히 걸어야만 함을 깨달았다. 사막의 낙타는 먼 곳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어간다. 최대한 힘을 아껴가며 걸어가야 끝없는 사막을 건널 수 있다는 걸 낙타는 알기에, 달릴 수 있지만 달리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글은 일반적인 에세이나 자기계발서와는 거리가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 것 같지만 진정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의 '자기 고백'이다. 그 부끄럽고 껄끄러운 고백을 굳이 꺼내는 이유는, 진정한 위로란 화려하고 거창한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먼저 내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누구나 지구만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 속 깊이 갖고 있는 법이다. 잊힐까 조심스러운 소중한 기억도 있지만, 키우고 싶어도 제대로 잊히지 않는 시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시인이 얘기한 것처럼 '내 앞에 있는 모든 길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운명처럼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살아가고, 정해져 잇는 길을 것는 것은 온전히 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끌려 다니고 정해진 대로의 삶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더 이상 진부한 옛 노래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떠나야 했다."(p. 68)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사막을 만나게 된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통은 찾아온다. 그때 기억해야만 할 것은 나만 사막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상처를 보듬고 견뎌내야 한다는 점이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 있든, 그곳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지만 동시에 잠시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오아시스를 만나 쉬어갈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오아시스를 나와 다시 사막을 걸어야만 한다. 지금 걷는 이 사막의 끝엔 또 다른 모습의 사막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기에 사막을 두려워하거나 사막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다. 순간순간 마주치는 고난과 시련에 좌절하고 흔들릴 이유도 없다.

흔들리지 않는 꿈을 꾸기 위해서는, 문이 닫히더라도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인생의 넉넉함을 가져야 한다. 문이 닫힌다는 건 한편으론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의미이고, 그건 축하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 문을 열고 인생 본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잊지 않는 길을 향해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것, 그래서 아직 못다 한 이야기를 채워 넣는 것,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말하려 하는 것이다.



이 책의 편집자의 이야기를 경청해본다. 저자의 삶이 왜 이야기가 되고, 책이 되는지를 편집자의 시선으로 판단한 것이다.

"모든 위기는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믿을 때 찾아온다. 아부다비 사막의 원전건설 현장에 지원해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달리던 필자는 갑작스레 닥쳐든 인생의 위기와 좌절을 겪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려오는 동안 상처를 주었던 많은 사람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자신의 삶이 그저 주인이 이끄는 대로 끌려갈 뿐인 낙타의 운명과 다를 바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절대 고독의 사막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별을 보며 질문을 던진다.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해본 적이 있기나 한지.’ 또한 숫자로 표시되는 경제적 성취와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하면서 남에게 보이는 성공에 매달릴수록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없는 공갈빵처럼 오히려 삶은 공허했음을 절감한다. 행복이 성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오늘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나는 주인의 손에 끌려가는 낙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행복은 항상 내일에 존재하였으므로 내일의 행복이란 명분 아래 오늘을 희생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중략) 자를 대고 그린 듯한 2차선 직선 도로의 양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영화 <십계>에서 홍해 바다가 이렇게 갈라졌으리라. 가뜩이나 밤에 보이는 사막은 그 규모와 넓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었다."(p. 128)


"내가 정한 목표를 이루고 달성하는 것이 곧 능력이자 역량이고 여겼다. 그렇지만 그러한 목표가 이루어지더라도 만족과 감사보다는 더 큰 욕심이 어느새 단단한 요새로 자리를 잡았다. 남에게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행복에 가까운 것이라 여겼다. 만약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이 행복이라면, 나는 시간이 갈수록 훨씬 행복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성취하게 될수록 더 큰 낙심과 부족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p. 191)



독자는 저자가 특별한 경험이 많고, 가장 힘들 때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정도로 심신의 수양이 돼 있다면 훨씬 많은 내용이 가슴속에 담겨 있으리라 추측해본다. 아마 어떤 계기가 있으면 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삶의 일부를 또 꺼내 독자들에게 보여주리라 믿는다.


저자 : 김지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한국전력공사에서 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공인노무사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계약, 노무, 해외 원전건설 업무 등의 다양한 경험을 하며 순조롭고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원전건설을 위해 중동 땅 아부다비 사막 한가운데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늘 하나 없는 사막은 생각보다 뜨겁고 황량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삶의 과정에서 그러한 사막이 펼쳐졌고, 눈조차 뜰 수 없는 모래폭풍을 만나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는 길을 잃고 만다. 하지만 모든 고난에는 뜻이 있으며, 상처 없이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의 욕망에 삶을 낭비하고 왔음을 알게 되었다. 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가슴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로 마음먹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과 다른 이들의 삶에 가치를 보태는 일을 하고자 결심했다.

사막이 아니었다면 발견할 수 없었던 의미와 가치를 통해 지금 인생의 사막 위를 걷고 있는 이에게 따뜻한 용기와 희망의 말을 건네고 싶어 한다. 혼자만 사막을 걷는 것이 아니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 이 다시 시작됨을 알고,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꿈과 도전을 안고 걸어가게 되길 소망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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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여행 드로잉 - 마카로 그리는 메그의 하루 한 장 여행일기
메그 지음 / 경향BP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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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는데 욕심껏 서평을 쓰겠다고 덤볐다. 이 책 소개에서 초보도 쉽게 따라그릴 수 있다는 말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어서 일어난 일이다. 마카드로잉이란 그림 그리기를 실례로 들어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소개글을 읽고 '마카' 드로잉을 쉽게 그릴 수 있다는 욕심이 앞섰다. 정확한 설명을 확인하지 않고 대충 색연필 같은 느낌이어서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평소에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아 도구가 제대로 있을 리 없다. 우선 책 소개를 대충 보고 자신감이 생겨 도구를 주문했다. 인터넷 화방을 몇 군데 뒤져 찾아낸 것이 '오일파스텔'이었다.

이런 실수를... 실수을 깨달은 것은 이미 오일파스텔과 여타 도구가 집에 도착한 후였다. 당초 주문을 잘못했기 때문에 반품도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있는 것으로라도 그림을 그려봤다. 물론 쉽지 않았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무언가를 그리고 싶고, 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지요.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에 가면 그림을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여행지나 일상에서 마주친 사람이나 물건들을 그림으로 그려 나만의 다이어리를 만들어 보세요."라는 말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덜컥 신청해 책이 오는 바람에 낭패를 본 것이다. 마카를 다시 살 시간도 없고 카페에서는 서평 마감 독촉도 오고... 책부터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책에 대한 서평만 우선 남기기로 한다.





아주 짧은 순간의 마주침이지만 그림으로 옮기면 그날이 더 기억에 남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행복했던 추억과 함께 또다시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계절에 어울리는 옷과 소품들, 여행지에서 들렀던 벼룩시장에서 마음에 들었지만 가져오기 어려웠던 빈티지 소품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이나 머물렀던 카페의 공간과 시간들을 그림으로 그려 보면 힐링도 되고 경우에 따라선 전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열정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예술 감각과 소질은 그 다음 문제다. 드로잉 다이어리를 사용하게 되면 똑같은 일상이 매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더욱 재미있고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어 실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매일 입는 옷, 좋아하는 카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등은 모두 좋은 마카 드로잉 소재예요. 마카는 잉크의 특징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까다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몇 가지 포인트만 알면 초보자도 사용하기 어렵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마카로 선과 면 그리는 법, 면을 채우는 법, 농도 조절하는 법, 색 사용하는 순서를 비롯하여 기본 색상 사용하는 법, 비슷한 톤의 색감으로 질감 표현하는 법, 브러시 펜으로 글씨 그려 넣는 법 등 마카 드로잉을 할 때 도움이 되는 다양한 팁을 실었다. 마카 드로잉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나온 그림을 따라 그리며 사물이나 공간, 사람의 특징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한 뒤에 나만의 마카 드로잉에 도전해 보면 좋을 듯하다. 마카 드로잉이 익숙해지면 좋아하는 계절의 물건들을 그려 한 장의 그림으로 만들거나, 마음이 여유로운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그림으로 그려 보아도 좋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자세히 쓰여 있어 이 글을 정확하게 보고 '마카 드로잉'을 도전했으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라는 뒤늦은 후회가 든다.







주문한 오일 파스텔과 기타 도구들이다. 참 한심한 생각이 든다. 욕심만으로 그림이 될 리 없다는 뼈저린 깨달음에 이른다. 그래도 오일 파스텔도 처음이니까 한 번 따라 그려본다.

어릴 때 그림 그리던 생각을 하니 그림 그리던 순서도 기억이 난다. 어렴풋하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연필로 스케치 하듯 밑그림을 그려본다. 하나씩 색칠하고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섬세하게 그리지 않으면 다시 그려야 한다는 생각도 떠오른다. 집중해 그려보지만 책에 나온 세밀한 부분 묘사나 형태 그리기는 역부족이다.




위 내용은 소개글에 나와 있어 서평 신청할 때 자세히 읽었어야 했다. 자세히 모르는 '마카'를 '오일파스텔'로 착각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카페에게도 미안하고 갑자기 쫒기듯 써야 하는 서평에 저자에게도 미안한 일이 발생됐다. 그러나 책을 받고 서평도 안 쓰고 핑계로 미뤄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 책을 읽어보니까 간단한 소품을 그리는 것에서부터 여행에서 만날수 있는 풍경으로 완성해 가는 부분까지해서 다양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자세하게 배우는 식으로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어 초보인 독자 입장에서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책을 갖고 있다 도구를 갖춘 후 하나하나 배우는 식으로 활용하고 싶다. 조금 더 진전되면 실제 풍경이나 집앞 모습, 실내 모습 등도 그려보고 싶고. 화가처럼 잘 그릴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혼자 만족할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 선생님 가르침 아래 그림 그리던 내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다만 좋은 활용을 못해 저자나 카페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저자 : 메그


일상과 여행에서 마주친 사람과 공간, 계절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고 싶습니다.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 작은 책을 만들거나 계절의 중심에서 작은 전시를 합니다.

- 마카 드로잉북 『사각사각 드로잉』 저자

- 여러 국내 매거진(에스콰이어, 마리끌레르, 얼루어, 컨셉진 등)에 일러스트 게재

- 브랜드(코오롱 에피그램, 아베다, 아웃백, 그린블리스 등)와 협업

- 소규모 출판물 『_DrawingsFrom_ 』 시리즈 제작

- 그림으로 만든 작은 소품들을 판매하는 온라인숍 ‘Megstudio’ 운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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