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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 한 잔 술에 담긴 인류 역사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정세환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신(神)은 인간에게 여러가지를 베풀었지만 과연 술도 신이 베푼 선물인가. 아니면 선악과와 같은 것인가. 이에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듯이 술 역시 그런 시험대에 들게 하는 음식이었을까. 인간은 술 역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류 역사와 거의 비슷하게 지속돼 온 술은 세상 속 각 지역별로 모습과 색, 향이 바뀌며 다양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술은 기분을 좋게 하는 '약'으로 대접받기도 했고, 인류 문명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반면 개인 건강에 막대한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독자도 술을 좋아하고 잘 마셨지만 지나친 음주가 낳는 나쁜 결과가 나타나서야 술로부터 해방됐다. 지금은 술과 담을 쌓았지만 술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 술 마실 때의 그 좋은 분위기와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의 기분 좋은 분위기나 대화를 잊을 수 없어서이다. 그렇게 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필수불가결하게 등장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로 '신의 선물'로 지칭돼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반면 인간 건강에는 지나칠 경우 많은 해악을 가져온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행복도 짓밟을 수 있는 '신의 벌'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술의 선한 영향과 해악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술은 언제 어디서나 인류 삶에 필수적으로 영향을 미친 음식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이다. 술 때문에 인류 역사는 큰 변화를 가져왔을 터 술에 대한 이야기 자체보다 술로 인해 빚어진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저자는 보통 사람과 좀 다른 의미로 술을 대했던 것 같다.
술로 세계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술로 벌어진 일은 세계사를 바꿀 만큼 영향력이 있었나? '애주가'였던 독자로서는 궁금하다. 저자는 스카치, 버번, 캐나디언 클럽, 코냑, 워커, 럼주, 와인 등은 지역을 대표하는 각양각색의 술이지만 지금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이 담긴 술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또 어떻게 세계로 확산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인류 문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주장이다. 경청하고 어떤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알아본다.
저자에 따르면 보드카, 데킬라, 소주 등 전 세계의 모든 증류주는 9세기에 이슬람에서 연금술을 위해 발명된 증류기 알렘빅에서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액체 빵’ 맥주, 흑사병의 공포가 낳은 위스키와 브랜디, 음료수 대신이었던 대항해 시대의 와인, 겨울의 추위가 낳은 기적의 술 샴페인 등 세계를 둘러싼 다양한 술의 재미있고 생생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술의 기원으로 거슬러올라가 시작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인류가 최초로 만든 술은 꿀을 발효시켜 만든 ‘봉밀주’라는 설도 있고, 원숭이가 나무 구멍 속에 모아놓은 과일이 자연 발효되어 술이 되었더라는 ‘원숭이 술’ 이야기도 있다. 독자는 후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자의 탐구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최초로 만든 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면 기록으로 남는 문자 발명 이전부터 존재해온 술의 기원을 명확하게 기록한 문서는 없을 터이니. 인간은 술의 존재를 수렵 채집 시대부터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술이 기록으로 남아 있을 리 없다. 아마도 알코올 발효를 처음 접한 인간은 좋은 향기를 풍기며 썩어가는 액체를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맛보았을 것이고, 취기라는 흥분된 기분을 알게 되면서 이 오묘한 액체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알코올 세계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생활 속에서 발효라는 신비로운 현상을 깨달은 인류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다양한 술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저자의 판단에 공감한다.
‘봉밀주(Mead)’, 우리 말로 하면 '꿀술'쯤 된다. 사실 꿀은 벌이 꽃에서 채취하였지만 벌의 체내에 있는 효소들이 분해하여 발효되기에 매우 좋은 상태라고 한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도 꿀을 채취하는 그림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인류는 최소 15,000년 전부터 꿀을 식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꿀로 술을 만드는 것은 물을 섞어 희석하는 것 외에는 별도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우 쉽고도 간단하여 아마 꿀을 채취하는 시점에서 인류는 술을 만들어 즐겼을 것이라 저자는 이야기한다.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의미하는 ‘허니문 (Honeymoon)’이라는 단어 역시 이 봉밀주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는데...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꿀 채취 그림이 봉밀주의 기원이 될까.
저자는 술의 문명을 탐구하기 위해 인류사도 끌어들인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사는 ① 장기간에 걸친 수렵과 채집 시기, ② 농경의 시작과 도시 출현 시기, ③ 유라시아 여러 문화 간 교류 시기(7~14세기), ④ 대항해 시대, 즉 신구 양 대륙의 교류 시기(15~16세기), ⑤ 산업혁명 이후의 시기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술 문화의 변모 과정도 그대로 겹쳐진다. ①시기에는 포도, 야자, 꿀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소재를 발효시켜 양조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②시기에는 곡물을 발효시켜 대량의 양조주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술이 대중화되었고, ③시기에는 이슬람 세계의 증류기가 동서로 전해지면서 아락, 소주, 보드카, 위스키, 브랜디 등의 증류주가 탄생했다. ④시기에는 신대륙과 구대륙 간의 교류가 활발해져 향신료, 과일 등이 술 문화와 얽혀 다양한 혼성주가 등장했고, ⑤시기에는 연속 증류기가 발명되어 술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고 칵테일 시장이 성장하면서 술 문화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인류의 행보와 술의 역사를 함께 생각해보면, 술도 인류 문화의 한 부분임이 틀림없다.
책에 따르면 전 세계의 무수히 많은 술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 발효시킨 ‘양조주’, 양조주를 증류시켜 알코올 순도를 높인 ‘증류주’, 증류주에 허브, 향신료 등을 섞은 ‘혼성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쉽게 알코올 발효가 되는 포도, 사과 등의 과실과 야자나 버섯 등의 수액, 꿀이나 가축의 젖을 이용해 양조주를 만들었다. 봉밀주, 와인, 마유주, 야자술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발효 기술이 발전하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으로 널리 이용되는 곡물을 원료로 삼아 대량의 양조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맥주, 황주, 일본주, 치차 등이 있다.
술의 세계가 단숨에 확대된 계기는 이슬람 세계에서 연금술로 금이나 은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증류기가 술 제조에 사용되면서부터이다. 증류기로 양조주를 가열하고 증류하여 알코올 농도를 높인 증류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증류주에는 브랜디, 칼바도스, 키르슈바서, 위스키, 진, 보드카, 아쿠아비트, 럼, 데킬라 등 종류가 매우 많다. 또한 증류주에 허브, 향신료, 과실, 사탕수수, 착색료 등을 첨가하면 혼성주가 된다. 시대에 따라 순차적으로 등장한 술 문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중첩되고 조합되어, 오늘날 세련되게 발전한 술의 세계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저자의 말에 집중한다. 궁금했던 부분이다. 인류 역사에서 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왕 제임스 1세는 청교도를 엄하게 탄압했고, 이를 참을 수 없었던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으로 향했다. 2개월이 넘는 고난의 항해 끝에 미국 연안에 닿았는데, 본래는 좀 더 남하하여 따뜻한 남쪽 땅에 식민지를 세울 예정이었으나 물 대신 마시던 맥주가 떨어져 매사추세츠만에 닻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맥주가 미국을 탄생시켰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맞는 말인가. 독자는 처음 듣는 얘기인 데다 미국의 건국의 발상지가 맥주를 마시기 만들어 마시기 위해서 내린 곳이라고? 또한 프랑스혁명은 파리 시민에 의한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바스티유 습격 3일 전부터 와인 밀수업자가 이끌던 민중에 의해 파리 주변의 관세문 습격이 잇따랐고 그 연장선상에서 바스티유 습격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혁명에서 타도의 대상이 된 부르봉 왕가의 이름을 단 위스키 ‘버번’이 혁명이 발발한 해에 미국에서 탄생해 합중국의 국민 술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놀라운 얘기고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이집트와 그리스 신화 속 와인, 액체 빵이었던 최초의 맥주, 무취와 무색투명한 보드카, 페스트를 치료하는 생명수로 불리던 브랜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위스키, 메디치가에 의해 전파된 리큐어, 용설란으로 만드는 데킬라, 감자를 원료로 만든 자양 강장주 아쿠아비트, 사탕수수 폐기물로 만든 해적의 술 럼, 추위가 만들어낸 발포주 샴페인,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이 공동으로 발전시킨 진, 에일 맥주와 라거 맥주, 고흐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압생트, 미국의 금주법을 기회로 성장한 캐나디안 위스키와 영국의 스카치, 칵테일을 대표하는 맨해트과 마티니 등 세계사 속 흥미롭고 재미있는 술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에 따르면 먼 옛날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벽을 가볍게 넘나들게 하는 술이 주는 특별한 기분을 신의 세계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취기로 인해 쾌감, 환상, 환각, 현기증을 느끼며 비일상적인 세계로 인도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과 접했다거나 신이 되었다면서 술을 신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도 술을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 술은 줄곧 인간과 함께해왔다. 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은 인류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압생트 상음자 가운데 중독자가 늘자, 노동 의욕 감퇴, 범죄 양산 등의 사회 문제가 빈발했다. 압생트를 애용한 예술가로 모파상, 베를렌, 고갱, 모네, 드가, 피카소, 헤밍웨이 등이 유명한데, 섬세한 시인으로 알려진 베를렌(Verlaine, 1844~1896)과 술집을 좋아하여 무희나 관객의 모습을 즐겨 그린 화가 툴루즈 로트렉(Toulouse-Lautrec, 1864~1901) 등은 압생트 중독으로 비참한 생애를 마감했다.
고흐(Gogh, 1853~1890)도 자화상을 그릴 때 방해가 된다며 왼쪽 귀를 절단하거나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런 행동도 압생트를 수시로 마셔 정신 이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고흐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술 압생트」 중에서
저자 : 미야자키 마사카츠
1942년에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교육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도립미타고등학교, 구단고등학교, 쓰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 세계사 교사를 역임했다. 이후 쓰쿠바대학 강사와 홋카이도교육대학 교육학부 교수를 거치며 20여 년 넘게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편집과 집필을 담당했다. NHK 고교 강좌 〈세계사〉의 전임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7년 퇴임 후, 중앙교육심의회 전문부회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NHK 방송 문화센터, 아사히 컬처센터, 도큐 세미나 BE 등에서 활발한 강의 활동을 펼치며 역사서의 저술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부의 지도를 바꾼 돈의 세계사』,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지도로 읽는다』,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 등 다수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