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신뢰 연습』은 미국의 한 공연예술 특목고에서 연기지망생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 교사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 교사 킹슬리의 수업인 '신뢰 연습'이 제목이다.

총 3부작이며 1부의 주인공은 세라와 데이비드이며, 이들의 사랑의 시작과 주변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상처받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2부는 미래의 캐런이 경험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1부는 세라에 의한 소설임을 밝히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스토리를 캐런이 얘기해준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3부에서 시작된다. 또 한번 주인공이 바뀌면서 이번엔 클레어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1부와 2부가 이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3부를 위한 이야기인 것 같다. 클레어의 시점에서 진실을 밝혀나가는데, 저자는 이를 통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신뢰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통해 삶의 진실과 타당한 의심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다.





1980년대 미국 남부의 한 예술고등학교 연극과 학생들은 음악과 동작, 셰익스피어를 추구하고, 특히 연기 수업에 열심이다. 서로 다른 집안 환경과 재능을 지닌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며 학교와 가정 등 관계들 속에서 성장해간다. 카리스마 있는 연기 교사인 킹슬리가 가르치는 ‘신뢰 연습’ 시간을 매개로 만 열다섯 살인 세라와 데이비드는 사랑에 빠진다. 세라와 데이비드의 서로를 향한 열정은 곧 동급생들에게 알려지고 킹슬리 선생의 귀에도 들어간다. 한편, 영국의 예술고등학교 연극팀이 세라네 학교를 방문하고, 영국인 연출 교사 마틴과 24세인 배우 지망생 리엄은, 세라 그리고 같은 반 캐런과 함께 어느 날 오후를 보내게 된다.

설정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 공연계의 성 인지 감수성으로 공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과 공연예술학교 재단의 비리로 사회 문제화돼 결국 법정으로까지 이어진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독자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소설의 이야기는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책의 1부와도 같은 첫 번째 ‘신뢰 연습’은, 14년이 흐른 뒤 30세가 된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두 번째 ‘신뢰 연습’이야기 속의 ‘소설’이다. 화자가 바뀌면서 전제가 뒤집히고, 세라와 캐런의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아가는 가운데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불완전한 기억 속에서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화자와 독자 간 ‘신뢰 연습’처럼 충격의 소용돌이 같은 사건들이 전개되며, 끝에 이르러서야 한 여성의 가슴 아픈 과거의 진실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듯 연극 무대 위에서 밝혀진다.

이 소설 속 서로 관련 있는 세 여성 화자가 들려주는 세 이야기들은 책의 제목처럼 누구를 믿어야 할지 선택, 성적 합의에 관한 복잡한 문제를 담고 있다. 독자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깊은 울림과 여운을 느낄 것이다.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유사한 일들을 겪어온 우리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며, 청소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른들의 권력과 책임, 우정과 신뢰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 대한 미국 사회의 평은 대단히 폭발적이어서 작년(2019년) 전미도서상 소설상을 수상했다. 포스트모던 기법을 지적으로 적용한, 시의적절하고 완전히 넋을 빼놓으며, 결국 마음을 동요시키는 이야기이다. 인물들의 서로 다른 관점을 탐구하여 자아에 관한 신화 창작의 모습, 거짓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입히는 피해를 드러낸다. 작가로서의 뛰어난 성취가 문장에서 드러나며,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이야기는 진행 방향에서는 비전통적이지만 탁월함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수준을 맞춘다. - 2019년 전미도서상 소설상 심사평


세 편의 연극을 본 듯한 다양한 느낌과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읽는 마음에 따라 아주 다른 소설이 될 수 있어 매력적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세라의 이야기는 『신뢰 연습』 2부에서 캐런이 등장하면서 주인공이 캐런이 되어 스토리가 흘러간다. 캐런은 30대로 고등학교 시절 킹슬리 선생에게 수업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예술학교에서 연극을 하였지만 성공한 동창은 극소수였고 스타덤에 오른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그 중 데이비드와 여전히 만남을 가지고 있는 캐런의 기억은 데이비드의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성인이 된 세라는 소설을 출간하는데 데이비드는 세라와 고등학교 졸업 후 한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세라의 소설이 출간되자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굴었다. 세라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런은 우연히 만나는 동창일 뿐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캐런과 세라는 단짝의 친구였고 당시 세라가 없던 차가 있는 친구였다. 이렇게 작은 기억들도 소설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이런 엇갈리는 기억에서 어떤 것이 진실일까?

소설 『신뢰 연습』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주인공이 달라지면서 같은 사건을 보는 시점도 달라진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읽은 것일까?



이 소설에서 일부 드러나는 사랑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문제다.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이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각종 문제를 일으켰으며 철학과 사회학의 주된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 문제이다. 권력이란 단순히 그 이름처럼 정치나 경제 제도권 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 일상에 있는 권력은 훨씬 사람들을 더 잘 억압하고, 이에 대한 남용 또한 적지 않다. 더욱이 일상에 묻혀 비밀리에 권력 남용이 가능하고 교묘하고 피해자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행해지는 '범죄'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이런 문제가 촉발돼 사회 문제로 비화돼 터진 게 '미투'다. 그리고 이 책 『신뢰 연습』은 작품의 배경과 관련이 깊은 공연예술고등학교라는 점, 공연계의 시스템에 관련됐다는 점 등에서 일상의 권력과 관련된 것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상의 권력이란 말, 혹은 일상에서의 정치란 말이 일반 사람들에겐 생경스러운 단어일 수 있다. 자신의 일상이 아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상 중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신경 쓸 수 없으니까.

이 소설은 이 같은 범죄적 사랑을 전면에 드러내지만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희생이 필요한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합의의 영역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한 사람이 권력을 남용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또한 그의 권력 남용을 어떻게 방지하고, 다시는 권력을 그렇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굴복시킬 것인지 등 많은 문제점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 책은 고고하면서도 유유희 사람과 사람간의 정치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 태연하게 이를 일상적 이야기를 통해저 전하고 있다. 『신뢰 연습』이란 제목은 조금은 딱딱하게 들린다. 소설의 제목보다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에 등장할 말인 듯하다. 그러나 공연 수업시간에 들어가 있는 제목인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으니 독자로서는 공연계의 현실을 잘 모른다고 고백하는 셈이 됐지만 내용은 읽고 싶은 충동이 크게 일었다. 그리고 작가는 제목이 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훌륭한 제목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독자의 생각을 진전시켜 놓았다. 배운 것도 많고 생각거리도 많은 훌륭한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으로 서평을 대신한다.


저자 : 수전 최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한국인 교수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텍사스주에서 성장했다. 1990년 예일대학교를 졸업했고 1995년에 코넬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저자는 1998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외국인 학생》으로 ‘아시아계 미국 문학 작가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미국 여자》는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세 번째 장편소설 《요주의 인물》은 2009년 펜/포크너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작가는 2010년에 세 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제발트상을 수상했다. 네 번째 장편소설 《MY EDUCATION》은 2014년 래미상을 수상했다. 이 책 《신뢰 연습》은 다섯 번째 장편소설로,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2019년 전미도서상 소설상을 수상했다. 미국예술기금과 구겐하임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그녀는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며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SUSANCHOI.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는 영화를 처음 접할 때부터 예술보다는 즐거움(스토리나 화면 중심)으로 선택했다. '종합예술'이라고 학교에서는 배웠지만 예술성보다는 관객의 마음을 끌어모으는 선정적인 화면, 폭력적 장면에 더 눈이 갔고,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심의를 통과한 작품이 더 인기가 있기도 했다. 1970년대 얘기다. 그때는 영화가 예술성(자체로는 작품성이라 표현)보다는 대량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다. 영화 제작사나 감독, 스탭이나 배우까지 모든 영화인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당장 제작비와 관객 동원 가능선을 점치고 흥행이 되지 않은 영화는 감독, 배우, 심지어 제작사도 다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기 힘들 정도로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마 당국의 검열과 제작비 때문에 영화 환경은 최악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영화에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드디어 한국 영화는 90년대부터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사전 검열로부터 벗어나면서 비약적 발전을 무서운 속도로 해 나아갔다. 관객 100만 동원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수백만은 보통이고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것이다. 짧은 기간 우리 영화가 이렇게까지 발전한 것은 누가 뭐래도 영화인들과 관계자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됐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지금은 아다시피 우리 영화는 세계 최고의 작품(아카데미상 수상 등)을 배출하고 배우들도 '한류'와 함께 세계 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선까지 올랐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영화 발전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개인적으로 "본 영화 중에서 당신의 인생작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받으면 이것저것 주워대느라 땀을 흘린다. 그때 봤던 영화는 외국영화는 하나같이 좋아보였고, 우리 영화는 상대적으로 작품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책 『오늘의 시선』에서 '혹시 영화가 끝났는데도 좀처럼 의자를 떠나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김시선의 일상에 매우 공감하게 될지도'라는 말이 나온다. 독자는 영화를 본 다음 늘 약 5분 정도 앉아 있다 나온다. 지금은 습관이 돼 같이 간 사람 중에 먼저 나갔던 사람이 다시 찾으러 오는 것도 몇 번 있었다. 이 책은 영화 채널 ‘김시선’으로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영화 친구)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김시선의 첫 에세이다. 땅끝마을 해남의 작은 영화관, 비디오 대여점에서부터 시작된 영화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과 영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화로 가득한 그의 모든 순간 중, 방콕하며 정주행하고 싶은 하이라이트 장면만 모았다고 한다.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일상은 온통 영화로 가득 차 있다. 책에 따르면 하루에 5편, 1년이면 700편의 영화와 함께하는 김시선의 하루는 말할 것도 없이 영화로 빼곡하다. 유튜브 채널 영상 준비, 팟캐스트 방송 준비, 라디오 게스트, 무비 토크 참석, 넷플릭스ㆍ왓챠 작품 리뷰, 모더레이터, GV 진행, 각종 영화제 참석, 인터뷰 등 김시선의 영화 생활을 고스란히 담는 동시에 사람을 대하는 시선, 세상을 대하는 시선,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 등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그의 일상이 그대로 책 한 권이 된 셈이다. 대충 훑어봐도 열정과 흥미만으로는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일상 같다. 체력도 뒷받침 돼야 가능할 정도로 다른 일에 눈 돌릴 틈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사랑하려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어는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은 공식을 외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수치화되는 시대에, 문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에, 안타깝게도 ‘영화’는 문제집은커녕 교과서조차 없었다.” 저자의 말은 앞서 언급한 우리 영화에 대한 역사(?)를 독자보다 훨씬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책에 따르면 영화를 추천받고 싶을 때, 영화를 더 잘 알고 싶을 때, 영화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영화 친구 김시선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3종 세트.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지.’ ‘어떻게 영화를 좋아하게 됐는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아무리 물어도 김시선의 답은 두루뭉술할 뿐이다. “그저 우연히 사랑해서, 그냥 계속 사랑하고 있고, 아마도 사랑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 전부.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가 아니라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지금’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는 오늘이 가장 행복한 그의 일상은 무언가를 최대치로 사랑해본 사람만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이 가득하고, 그래서 ‘오늘의 시선’은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이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힘든 순간에 힘을 주는 ‘영화가 위로가 되는 순간’, 유튜버로서 일로 만난 일들을 담은 ‘유튜버 김시선의 하루 모음’, 시선만큼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는 사람입니다‘, 영화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시선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영화로 살아남기‘, 마음과 특별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 ’시선이 머무르는 곳‘, 쭉 계속될 영화 관련 이야기 ’네버 엔딩 영화 생활‘까지. 유튜브 채널에서 영화 친구들과 친근하게 수다를 떨던 김시선과 또 다른 꾸밈없이 솔직한 김시선의 오늘을 만날 수 있다.



개인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독자는 이 책에서 저자의 영화에 대한 열정도 있지만 영화 철학도 읽힌다.

자신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즐기는 나머지 노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데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저자의 행보를 보면 영화 산업의 발전을 원하고 더불어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도 이견 없이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미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이런 모습은 타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옛 선현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말도 생각나기도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그게 본업이 된 것이니 행운아이고 행복감도 충만하지 않을까. 무언가에 미쳐 있는 모습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도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성의 시간도 된다. 좋아서 열심히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삶이 주체적인가. 혹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 책은 관심과 즐거움에서 시작해 자성과 반성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는가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된다.



또 간단하게 영화를 설명해주고 내용과 연계시키는 데 독자로서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말이 곧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책 내용 중에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공감백배다. 서양 유명한 철학자가 한 말처럼 멋지기도 하다. 곧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행복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 아닌가라는 자성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것 외에 또 하나 설득력 있는 일은 저자가 일부러 균형을 깨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정해진 틀이나 자신이 살아온 관습, 습관은 좀처럼 깨기 힘들다. 변화고 싶다면 기존의 것들을 버려야 한다. 기존의 것들을 지닌 채 변화할 수 없다. 그런데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지만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은 힘들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니 변화와 기존 습관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고 어느 정도 이루면 변화를 포기한다. 살 만 하다는 판단이 섰으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자신이 변하지 않고는 주변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분명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그 선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점이 독보적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심정으로 끈기 있게 변화시켰다. 그리고 분명히 변화했을 것이다. 그도, 주위 사람들도, 그리고 그가 그토록 좋아하고 바라는 영화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본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이 대사를 가끔 떠올린다. 진짜 아름다운 것들은 누군가의 관심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글로 읽으면 쉬운데, 입으로 세 번만 소리 내보면 어렵게 느껴지는 대사다. 아마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아름다운 것이 관심 받는 세상에서 살아왔으니까. 새로 산 다이어리 앞에 이 문장을 멋들어지게 적어두면 왠지 모를 '쿨함'이 몸을 감싼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그걸 찍어서 SNS에도 올려본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니 기분은 좋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올린 게시물과 상황이 맞지는 않는다. 갑자기 그 관심이 따끔거린다. 나는 관심 받아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아름답다고 믿는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일까?"


저자 : 김시선


1세대 영화 유튜버. 2014년 9월에 영화 유튜브 채널 ‘시선 플레이’로 시작해, 현재는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김시선’ 채널로 영화계 최고의 인기 유튜버로 거듭났다. 1세대 독립영화잡지 《시선일삼》을 발간했고, ‘찰리 채플린에서 스탠리 큐브릭까지’라는 영화사 100주년 강의, KBS2 라디오 〈음악이 있는 풍경 이정민입니다〉에서 ‘김시선의 무비어게인‘,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수업, 좀비기획전 영화 토크 등 다양한 곳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KBS 라디오 〈김태훈의 시대음감〉 ‘시선의 시선’의 고정 게스트, 영화감독에게 직접 영화 이야기를 듣는 팟캐스트 〈김시선의 영화코멘터리〉 운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 외에도 넷플릭스ㆍ왓챠의 공식 리뷰어, 모더레이터, GV 진행, 인터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마음껏 영화를 보고 듣고 말하는 중이다.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는 게 마지막 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런던의 아침에 태양의 꽃을 장식하다
홍승훈 지음 / 젤리판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 영국인들은 어떻게 살까. 뜬금없는 소리지만 독자가 영국을 방문했다가 서유럽 선진국들 중 가장 건전하고 합리적이며,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고 듣고 느꼈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 시대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하는 말이다. 뉴스를 통해 들은 바로는 잉글랜드 국민들은 다른 서유럽과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국경 폐쇄 조치를 했을 때도, 다중 집합 금지를 했을 때도 대체적으로 잘 따랐다는 것.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따랐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같은 지역 같은 문화권 사람들과는 결을 좀 달리한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얘기될 만큼 전 세계 지구상 어디에도 식민지를 건설하고 부가 넘쳐 흐르는데도 향락에 치우치거나 향락적이지 않았다는 사람들이다. 미국에게 그 지위를 넘겨줬지만 긍지는 잃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세게 쵝고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 세상에도 인종 차별도 있고, 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욕심이 지나친 사람도 있을 터다. 그러나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의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자신들이 스스로 불렀겠지만 새로 세게의 주인 역할을 하는 미국인들과 사뭇 다르다. 이민 갈 생각은 없지만 한 1~2년 살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면 독자는 당연히 '영국'을 꼽는다. 우리 유학생이나 교포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런던 등 잉글랜드 시민들의 삶의 모습은 언제나 지나치지 않고 겸허하며, 남을 멸시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 『런던의 아침에 태양의 꽃을 장식하다』도 이런 영국의 모습에 관심이 높아서 자연스럽게 읽게 됐다.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서다. 그러나 자기계발을 위해 참고하는 책이 아니라 저자의 삶의 모습에서 영국인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여 더 애착이 갔기 때문이다. 저자의 성격이나 삶의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끼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는,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실의에 빠져 자칫 삶의 가치를 잃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으며, 지금의 시련 뒤에 반드시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게 섭리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매우 호감가는 분이라는 게 단 몇 줄의 글에 그대로 나타난다. 겸양과 배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을 기꺼이 남과 나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 만나는 시련의 의미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기계발서와 차원을 달리한다는 설명은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특히 누구에게나 잠재된 슬픔, 자학, 비통함, 배신감, 절망감 등의 심리상태를 건강하게 해소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시련의 폭풍우 한가운데서 감정과 영혼의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는 등대 같은 공감 가는 내용들로 꾸며져 있다.

삶이 힘겨운 사람들을 위한 7가지 인생 테라피. 삶 속에서 다양한 시련과 위기, 전환점을 맞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안겨주는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20년 넘게 경제 심리 전문가로 활동해 온 저자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사례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아픔을 껴안는 심리적ㆍ정신적 치유법을 제시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끌어안고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러한 역경 속에서 건져 올린 가치들이 ‘인생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이제야 터득하게 된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 다양한 우화와 깊이 있는 가르침을 통해 들려준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민낯은 각종 수치로 드러난다. 하루 평균 자살자 수 42명, 교통사고 23만2000건, 하루 평균 341쌍 이혼, 각종 질병 사망자 하루 677.(이상 2017년 조사결과) 이 수치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도 뜻밖의 시련과 싸우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경제적으로는 그동안 엄청난 노력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고, 앞으로도 그 순위는 큰 변동 없이 갈 것 같다고 많은 경제학자나 미래학자들이 강조하는데 '희망의 나라' 아닌가. 그러나 국내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잦은 대립과 갈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책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영 싸움은 왜 이렇게 질기게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가. 먹고 살 만해졌으면 이제 너나 없이 서로 격려와 즐거움을 나눌 만하지 않은가. 독자의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욕심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우울증 증가, 자연재해의 지속적 악화 등 누구나 믿기 싫거나 피하고 싶은 시련들마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매달 거금을 보험과 연금에 쏟아 부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삶의 준비에는 소홀하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뿐 아니라 언젠가는 닥쳐올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인생의 통찰력을 선물한다고 다짐한다. 이래도 이 책을 읽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나아가 눈앞에 닥친 절박한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따듯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동시에 시련을 통해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정한 용기와 지혜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강조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가면서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 다음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으며, 왜 거기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그런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할지 탐색하게 되며 마지막으로, 당신을 지지하는 동지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던지는 삶의 질문은 당신이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는 모든 개인적·직업적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전망과 명료성을 제공해준다.

저자가 들려주는 삶이 힘겨운 사람들을 위한 7가지 인생 테라피가 눈길을 끈다. 이 책이 '영국인들이 선정한 내 인생의 책'이라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저자는 의미요법, 초심, 포용, 끈기, 긍지, 사랑, 기도를 꼽는다.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옳은 말이고 좋으 멘토가 토닥토닥해주는 느낌이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에세이처럼 향기가 나는 말도 많고, 아름다운 표현도 줄지어 있다.



내용은 더 알차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하나의 긴 경기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삶의 단계나 굴곡에 따라 여러 토막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자신이 정한 지점을 용기와 끈기로 완주하는 성실함이 자신의 랠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선물이라는 말을 써놓았다.

굉장히 인상적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처럼 정겹기까지 하다. 저자의 경험을 통해 얻은 "용기는 근육과도 같아서 많이 써본 사람이 더 잘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은 깊고 깊은 영혼까지 다가가 울림을 준다. '내 인생의 책'이 공연한 치사가 아니구나는 느낌이다. 어쨌든 걸어가야 하는 길인데, 그 길이 무섭다고 흔히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한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용기가 이때 중요하고 이때 힘을 발휘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로 마음을 다잡을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가진 게 없다고 여겨질 때 용기를 내어 꿈꾸는 삶을 실천하는 것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말은 큰 위안을 준다. 똑같은 기회가 왔을 때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 넘어졌을 때는 다시 일어서는 법도 배워야겠다. 누에고치는 고치를 찢고 나오는 고통의 과정을 겪지 않으면 나비가 될 수 없다.

고치를 찢는 것이 힘들어 보이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누군가 대신 고치를 찢어주면 나비의 모습이 갖춰지더라도 결국 날지도 못한다는 비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내일은 오늘의 내가 선택한 결과라는 것을 기억하고(이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처럼 낯익다),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은 평생 머릿속에 간직하고 싶다.



저자 : 홍승훈(Craig H. Mcklein)


영국 케임브리지 출판사 멀티미디어 콘텐츠 CPU 수석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유럽에서 아시아 기업 투자분석 전문 애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국내에서 유명 신사업 및 마케팅 전문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이끌었으며 최근 5년간 세계의 기업인, 정치인, 예술가, 미래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교우했다. 2013년에는 영국 텔레그래프에서 해외 문화언론인상을 수상하며, 저널리스트 출신 에디터로 국내활동을 시작했고 꿈과 열정의 강연자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미래 전략가로 정진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2017년 대표작 『꿈은 삼키는 게 아니라 뱉어내는 거다』로 영국 워터스톤즈(waterstone's) 인터내셔널 TOP 10 수상 및 서울 동산영흥문화재단 작품 신인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꿈은 삼키는 게 아니라 뱉어내는 거다』, 『이미 와 있는 미래』, 『이니셔티브』 등이 있으며, 국내 북 콘서트 “내가 힘들 때 그토록 찾았던 한 마디” 전국 강연은 연회 만석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려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Biological Science 에서 analytic psychology (분석 심리학) 박사 과정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2 - 얽혀진 혼동의 권세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여년』의 흡인력은 이번에도 강력했다. 오히려 전편보다 더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다. 당연한 구성이겠지만. 중국 소설을 옛 고전 아니고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책을 읽고 중국 드라마까지 보고 싶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끝날 때까지 참았다가 마지막 책을 덮고 드라마 시청을 결정할 예정이다.

상1은 판시엔이 황실의 딸인 린완알과 혼인해 궁에 입궐하면서 끝을 맺었다. 부부가 된 두 사람 다 사연 있는 몸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권력 다툼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 책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한 덕분에 거침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부제도 '얽혀진 혼동의 권세'라여서 예상 적중의 기분부터 흥분된다.

사실 독자는 학교 다닐 때 무협지는 읽지 않았다. 무협지를 좋아하던 어떤 친구들은 시험공부한다고 함꼐 모여 무협지를 여러 권 앉은 자리에서 독파한 이도 있었다. 그때 무협지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독자는 "시험공부 하려고 모여서 무협지만 보다 갈 거냐"고 핀잔을 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의 답변은 기상천외했다. 무협지를 읽고 내공을 쌓으면 답이 몇 번인지 다 보인다는 것이다. 모두 웃고 말았지만 그 친구는 묘하게 시험 전날 그렇게 딴짓을 하고도 시험은 무난히 치렀다. 성적이 내려가거나 지적을 받을 만큼 이상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지나서 웃으며 한 말이지만 '신기하다'고 생각은 했다. 다른 날을 잡아 무협지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때는 세로로 씌어 있는 데다 한 면에 열 줄 정도밖에 써 있지 않았다. 빨리 읽으면 만화보다 속도가 빠를 정도였다. 그래서 옆에 20~30권을 쌓아놓고 밤새워 읽는구나... 처음 알았다. 독자는 6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접었다.

도무지 만화보다 재미가 없었다. 만화는 그림이나 재미 있게 볼 수 있지만 이건 한자말에서 따온 것인지 한자어가 많고(물론 한글로 썼지만 '금라수'란 단어도 보이고 무슨 뜻인지도 몰랐었다) 줄거리도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이라고는 학교나 선생님이 지정해주신 세계명작, 혹은 한국 유명 소설이 읽은 게 전부니 중국의 무협소설이 어떤 줄거리인지조차 모르는 것은 당연했을 터다. 이후로 무협지와는 완전 불통했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달랐다.

물론 무협지가 아니라 판타지 무협소설이며 타임슬립물이다. 요즘말로 SF판타지이다. 주인공 판시엔이 현대에서 병에 걸려 병원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다른 세계에서 환생하는 이야기. 우리나라 소설이 아니라 중국스타일이어서 약간은 스토리의 진전에 익숙지 않지만.

중국소설이라고는 삼국지나 반금련전(나중에 금병매라는 걸 알았다)밖에 못 읽어봤으니 좀 생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빠른 전개에 반전의 반전이 나온다. 더 햇갈릴 것 같지만 정독을 해서인지 등장인물을 복사해서 옆에 놓고 읽어서인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판시엔과 황제를 둘러싼 음모와 사건들, 뻔할 것 같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소설이어서 독서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앞서 상1권에 나온 이야기지만 이 소설은 2019년 88억뷰 최대 화제 드라마 <경여년>의 원작소설이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미지의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 알 수 없는 이유로 해하려 하고, 또 알 수 없는 이유로 도우려는 자들로부터, 그는 자라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속에서 신비의 존재들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가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간 속, 숙명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진정한 나의 동지와 나의 적을 묻는다.

과거의 비리를 조사하는 황제의 명에 판시엔은 과거시험의 이름을 확인하는 거중랑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어 조사에 착수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판시엔에게 청탁 등이 들어오지만 판시엔은 명단을 감시원에 넘긴다. 그리고 그의 일에 지지를 보내는 쪽과 반기를 들어 판시엔을 음해하려는 쪽으로 나뉜 세력에 판시엔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겨우 소용돌이 속을 빠져나온 판시엔은 북제의 밀정 옌빙윈과 샤오은을 교환하는 임무를 맡아 북제로 향하는 도중 쿠허의 제자인 하이탕을 만나 위험에 빠지게 되지만 무사히 샤오은을 넘긴다.



애초에 북제로 향할 때 판시엔은 옌빙윈을 구해 협상을 잘 이끈 다음 샤오은을 죽인 후 홍수초 작전까지 성공시키고 신묘까지 조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 북제가 시간을 끌며 옌빙윈을 빨리 넘겨주지 않자 북제의 태후와 황제를 둘러싼 권력과 내고의 비리를 조사한 판시엔은 옌빙윈을 넘겨받자 임무를 마치고 경국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판시엔을 도와주지 않는 황제, 의도치 않게 권력의 소용돌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판시엔, 자신의 어머니인 예칭메이와 샤오은의 만남과 마지막으로 남긴 말까지 더욱 흥미진진함과 인간의 권력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경여년』, 권력의 중심으로 점점 다가가는 그의 앞날에 등장할 사건들이 어떻게 그려질지 이어질 시리즈가 더욱 궁금하다.



복제에서 옌빙원을 만나 내고의 비리를 조사하며 복제의 국사 제자 하이탕둬둬와의 우정을 쌓는 등 판시엔에게 닥치는 불운만큼은 아니지만 그를 지원하는 세력도 있음을 통해 서늘한 간담이 조금은 완화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경국에 돌아온 판시엔에, 아니 판씨 집안의 경사(?)를 피해 동생 뤄뤄는 징왕세자와의 혼인을 피해 도망가려 하고 이는 사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기방의 살인사건을 통해 2황자의 덫을 파악하고 친구로 생각했던 징왕세자의 흑심을 알게 되는 등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과 이유들이 한 편의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기억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황제 암살 시도의 범인을 쫓던 판시엔의 진기 폭발로 인해 정신을 잃게 되는데 암살범은 과연 누구일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판시엔의 활약과 그를 제거하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음모들이 얽혀진 혼동의 권세를 익히 느끼게 해준다. 여전히 갈증으로 마무리되고기대되는 3권을 재촉하게끔 한다.



중국 인명과 지명에 대한 낯설음에 인물관계도와 등장인물에 대한 요약페이지(책 앞부분을 복사해 책갈피에 끼워놓았다)를 중간중간 다시 보긴 하지만 이해도는 더 높아진다. 작가의 상상력도 굉장하고 문학작품 쓰는 문장력도 탁월하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최소한 필사를 해놓고 싶을 정도로멋진 문장도 많다. 중국 고전에 나온 말인지 모르지만 매우 인상 깊은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는 읽는 즐거움에 지식욕도 채워주기 때문에 독서의 흥미는 점점 높아만 간다.


"정도란 무엇인가? 정도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때 기분은 아주 좋다. 무엇보다 강력하다."(p. 74~75)


"어느 누구도 판시엔의 고민을 알지 못했고, 그 또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먼 타국의 땅에서 우쥬 삼촌도 없고, 어느 누구와 말할 수도 없었다. 모든 일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지만, 이 일만은 말로 할 수도 말을 할 상대도 없었다."(p. 228)


"일 년에 두 번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신묘. 칠 척 정도 되어 보이는 신묘. 마치 신이 인간 세계에 던져 놓은 한 권의 책처럼 보인다. 북위국 황궁은 신묘 문의 축소판처럼 보이지만, 그 웅장함만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는 신묘의 문으로 걸어가서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거대한 문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다.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수록, 문은 이상한 방식으로 뒤로 물러선다. 신묘가 눈앞에 있지만, 저 먼 하늘 끝자락에 있는 것 같다."(p. 319)



천핑핑과 스리리의 약속과 스리리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해당화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인물들이 나온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서 북제로 간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된다. 신묘의 행방. 또한 검객과의 대결에서 진기가 모두 빠져나가 그는 일격에 당해 쓰러지고 만다. 이렇게 상 2권의 마지막,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충격적인 배후도 드러나기도 한다. 판시엔과 친구가 되는(아니면 친구처럼 보이는 걸지도?) 여성 고수도 나타나고,

자기가 직접 구해서 부하로 만들고 싶어하는 인물등 주인공 외에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의 주변 사람들도 충분히 이야기를 즐기는 데 중요한 맥점이다.

소설은 독자의 흥미를 한껏 끌어들이고 궁금증을 남기면서 상2권은 끝난다. 다음 권을 읽게 하려는 의도인 줄 알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렸을 때 친구가 무협지에 빠져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의 손님 - 룹탑 불법체류자들
이재욱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에 막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던 시기, 1990년대부터이다. 당시는 IMF 이전이었고, 겉으로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OECD 가입국이었다. 국내 건설 노동자와 공장 근로자들의 임금도 기업주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젊은 층은 임금 낮고 힘든 중소기업 근로자나 건설 노등은 마다하고 서비스 업종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노동인력 시장의 왜곡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대졸자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 일을 하는 사회 인식의 눈을 피하고 급여는 적지만 힘들이지 않고 깨끗한 근로환경의 서비스 업종에 들어갔다. 힘든 건설 노동자나 공장 근로자는 대부분 기피했다. 이른바 3D 업종을 피하고 서비스 업종으로 몰려들었다. 기업주들은 좀 불편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단순 노동엔 말이 통하지 않지만 힘들고 불결하고 위험한 업종 근무를 희망하는 외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채용했다. 그들은 높은 임금(자신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받는 임금에 약 10배에 해당된다고 한다)에 그 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우리 노동현장에서 먹고 자는 노동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업주들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신분상의 큰 약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연수 현장을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돈벌이가 되면 어려운 일이든 더러운 일이든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한 1년만 일하면 자신들 국가에서 일하는 10배에 해당하는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노동자는 더 늘어나기만 했다.

나중에는 밀항하거나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해 눌러앉아 불법체류 신분으로 산업현장 노동일을 했다. 남성들만 아니다. 여성들은 식당 주방 청소 등 닥치는 대로 돈 버는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잡히면 강제추방 당하기 때문에 신변 안전은 늘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 신분상 문제로 악덕 고용주로부터 임금을 못 받고 심한 부상을 당해도 병원마저 갈 수가 없는 등 불법체류 노동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공장이 많은 가리봉동(옛 구로공단) 일대 등에 모여 살았다. 아마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불안 심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여 살면 그래도 어떻게든 단속에 걸리는 횟수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또 수가 많아지면서 '외국인 노동자촌' 개념의 마을로 탈바꿈 해갔던 모양이다.

책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산업연수생 제도로 본래 대한민국의 3D 업종 인력부족을 해소하는 한편 주변 개발도상국들과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실시되었던 제도이다. 그러나 관련 법령과 인력 및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국하면서 불법체류와 단속, 그에 얽힌 다양한 인권 유린 문제 등이 사회 전면에 부각되어 왔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룹탑'도 옥탑방을 개조해 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 책 『아내의 손님』은 '연탄 두 장의 행복'으로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빛과 어두움, 행복과 슬픔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잔잔한 화제를 모은 이재욱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1990년대 대한민국에 들어와 허가 받지 못한 불법체류 노동자로서 고향의 가족을 위해 오도가도 하지 못하고 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룹탑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르포 형식의 글로담아냈다.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며, 그들의 생생한 삶과 사랑을 담은 연작소설이다.

고국 가족의 생계 때문에 불법체류자의 낙인에도 한국을 떠나지 못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을 듣게 된 아리엘,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홀몸의 여성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잔혹한 환경 속에서 보호자가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 여성 메리, 한국에 정착하여 살기 위해 한국 여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사무엘,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운 타국에서 동병상련을 느끼며 가까워지는 아모르와 산드라, 유달리 자신에게 잘해주는 일터의 한국인 사장님을 두고 고민에 빠지는 자스민, 한국에 있다는 남편을 찾아 간신히 입국했지만 쫒겨날 위기에 처한 훼베스의 얘기도 있다.




이 책 첫 장면은 인천공항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리엘과 비센테의 이야기에서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다.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그들은 결심하게 되고 가족과 아내를 두고 한국행을 모험한다. 공장 내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외출조차 못한다.

그들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위장 결혼도 감수해야 하는 메리,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은 국경을 넘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식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돈을 벌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이들의 삶을 작가는 조명한다.



작가에 따르면 국적과 민족에 상관없이 타국에 정착하며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소통과 외로움이라고 한다. 같은 국적의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나라에 최초로 입국한 사람들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만주로 건너간 한국인들, 고도성장기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사람들, 열사의 아라비아 사막에서 고국의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인 그들은 절박하고 외로운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더더욱 서로간의 소통에 매달리며 현실을 이겨내려고 하나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때로는 연대하며, 때로는 외롭게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담백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깊은 리얼리즘의 맛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내내 우리 60년대 미국에 돈 벌러 가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밑바닥에서 생활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많은 시절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봐왔던 사람으로서 그때의 그들 모습이 이 책 내용에 오버랩되면서 연민도 생기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룹탑 불법체류자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역시 경제력, 돈이다. 이 돈을 벌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소설의 근간이 되는 구성은 불법으로 체류하며 돈을 버는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3D 작업의 조건도 있고 언어소통의 힘든 그들에겐 이중, 삼중으로 고역이다. 배경이 되는 룹탑은 부천시 소사동을 모티브로 그려낸다.

힘든 일을 경험하는 그들의 삶을 그려가는 청사진은 머나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다. 고향집 아내가 바람이 나기도 하고 친절한 사장님에게 마음을 두기도 한다. 내로남불의 스토리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치부하게엔 슬픈 현실을 마주한다. 인간이 섞여 사는 세상이 천태만상이라든가. 룹탑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하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듯하다. 필리핀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들로 꾸며진 단편적인 소설 형식은 읽는 내내 가슴 저리게 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것 등 룹탑의 실재하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 실상을 알고 마음이 아프다. 일하는 것도 잠시 출입국관리법에 위반되어 단속되면 추방 당하는 슬픈 현실을 마주한다.




작가의 소설은 서울 도서관에서도 대출 베스트에 오른 독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못한 독자지만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아채기에는 이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하다.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작가의 문장 능력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많이 알려진 사실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는 심리묘사나 짧은 문장이 필수적이다. 독자들이 단숨에 읽어가야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이다. 느슨하고 뭔가 메시지도 없다면 누가 읽겠는가. 이 책은 불법체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실제로 그들이 있는 장소에 가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구성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룹탑'이라는 한 건물의 옥탑은 그들(불법체류자)만의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곳이고 그들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다 읽고나면 마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생생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앞서 언급한 단문 형식의 문장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의 센스에 기인한 것 같다.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명의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쓴 연작소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불법체류자들의 국적은 필리핀이다.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이유는 각자 다양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라는 그들의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고국에서는 교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퇴사를 하고 한국에 돈을 벌러 온다는 것만 해도 묘한 심정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매달 받는 월급을 고향에 보낸다고 한다. 고국의 가족들은 그 돈을 모아 집도 사고 가게도 사고 아이들 학비도 낸다고 하니 불법체류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옛날 우리들 60년대 미국 불법체류 노동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과 성희롱은 그들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일상 같은 것이라고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연민이 발동해 책을 놓기가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관련 법들이 많이 개선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말로만 외치지 않고 아직 약하고 어려운 나라 국민들이 우리가 과거 걸어오는 길로 오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격려하고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끓어오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