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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손님 - 룹탑 불법체류자들
이재욱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0월
평점 :
대한민국에 막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던 시기, 1990년대부터이다. 당시는 IMF 이전이었고, 겉으로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OECD 가입국이었다. 국내 건설 노동자와 공장 근로자들의 임금도 기업주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젊은 층은 임금 낮고 힘든 중소기업 근로자나 건설 노등은 마다하고 서비스 업종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노동인력 시장의 왜곡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대졸자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 일을 하는 사회 인식의 눈을 피하고 급여는 적지만 힘들이지 않고 깨끗한 근로환경의 서비스 업종에 들어갔다. 힘든 건설 노동자나 공장 근로자는 대부분 기피했다. 이른바 3D 업종을 피하고 서비스 업종으로 몰려들었다. 기업주들은 좀 불편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단순 노동엔 말이 통하지 않지만 힘들고 불결하고 위험한 업종 근무를 희망하는 외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채용했다. 그들은 높은 임금(자신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받는 임금에 약 10배에 해당된다고 한다)에 그 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우리 노동현장에서 먹고 자는 노동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업주들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신분상의 큰 약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연수 현장을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돈벌이가 되면 어려운 일이든 더러운 일이든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한 1년만 일하면 자신들 국가에서 일하는 10배에 해당하는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노동자는 더 늘어나기만 했다.
나중에는 밀항하거나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해 눌러앉아 불법체류 신분으로 산업현장 노동일을 했다. 남성들만 아니다. 여성들은 식당 주방 청소 등 닥치는 대로 돈 버는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잡히면 강제추방 당하기 때문에 신변 안전은 늘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 신분상 문제로 악덕 고용주로부터 임금을 못 받고 심한 부상을 당해도 병원마저 갈 수가 없는 등 불법체류 노동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공장이 많은 가리봉동(옛 구로공단) 일대 등에 모여 살았다. 아마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불안 심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여 살면 그래도 어떻게든 단속에 걸리는 횟수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또 수가 많아지면서 '외국인 노동자촌' 개념의 마을로 탈바꿈 해갔던 모양이다.
책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산업연수생 제도로 본래 대한민국의 3D 업종 인력부족을 해소하는 한편 주변 개발도상국들과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실시되었던 제도이다. 그러나 관련 법령과 인력 및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국하면서 불법체류와 단속, 그에 얽힌 다양한 인권 유린 문제 등이 사회 전면에 부각되어 왔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룹탑'도 옥탑방을 개조해 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 책 『아내의 손님』은 '연탄 두 장의 행복'으로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빛과 어두움, 행복과 슬픔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잔잔한 화제를 모은 이재욱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1990년대 대한민국에 들어와 허가 받지 못한 불법체류 노동자로서 고향의 가족을 위해 오도가도 하지 못하고 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룹탑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르포 형식의 글로담아냈다.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며, 그들의 생생한 삶과 사랑을 담은 연작소설이다.
고국 가족의 생계 때문에 불법체류자의 낙인에도 한국을 떠나지 못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을 듣게 된 아리엘,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홀몸의 여성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잔혹한 환경 속에서 보호자가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 여성 메리, 한국에 정착하여 살기 위해 한국 여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사무엘,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운 타국에서 동병상련을 느끼며 가까워지는 아모르와 산드라, 유달리 자신에게 잘해주는 일터의 한국인 사장님을 두고 고민에 빠지는 자스민, 한국에 있다는 남편을 찾아 간신히 입국했지만 쫒겨날 위기에 처한 훼베스의 얘기도 있다.
이 책 첫 장면은 인천공항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리엘과 비센테의 이야기에서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다.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그들은 결심하게 되고 가족과 아내를 두고 한국행을 모험한다. 공장 내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외출조차 못한다.
그들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위장 결혼도 감수해야 하는 메리,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은 국경을 넘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식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돈을 벌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이들의 삶을 작가는 조명한다.
작가에 따르면 국적과 민족에 상관없이 타국에 정착하며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소통과 외로움이라고 한다. 같은 국적의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나라에 최초로 입국한 사람들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만주로 건너간 한국인들, 고도성장기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사람들, 열사의 아라비아 사막에서 고국의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인 그들은 절박하고 외로운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더더욱 서로간의 소통에 매달리며 현실을 이겨내려고 하나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때로는 연대하며, 때로는 외롭게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담백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깊은 리얼리즘의 맛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내내 우리 60년대 미국에 돈 벌러 가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밑바닥에서 생활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많은 시절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봐왔던 사람으로서 그때의 그들 모습이 이 책 내용에 오버랩되면서 연민도 생기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룹탑 불법체류자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역시 경제력, 돈이다. 이 돈을 벌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소설의 근간이 되는 구성은 불법으로 체류하며 돈을 버는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3D 작업의 조건도 있고 언어소통의 힘든 그들에겐 이중, 삼중으로 고역이다. 배경이 되는 룹탑은 부천시 소사동을 모티브로 그려낸다.
힘든 일을 경험하는 그들의 삶을 그려가는 청사진은 머나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다. 고향집 아내가 바람이 나기도 하고 친절한 사장님에게 마음을 두기도 한다. 내로남불의 스토리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치부하게엔 슬픈 현실을 마주한다. 인간이 섞여 사는 세상이 천태만상이라든가. 룹탑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하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듯하다. 필리핀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들로 꾸며진 단편적인 소설 형식은 읽는 내내 가슴 저리게 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것 등 룹탑의 실재하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 실상을 알고 마음이 아프다. 일하는 것도 잠시 출입국관리법에 위반되어 단속되면 추방 당하는 슬픈 현실을 마주한다.
작가의 소설은 서울 도서관에서도 대출 베스트에 오른 독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못한 독자지만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아채기에는 이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하다.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작가의 문장 능력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많이 알려진 사실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는 심리묘사나 짧은 문장이 필수적이다. 독자들이 단숨에 읽어가야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이다. 느슨하고 뭔가 메시지도 없다면 누가 읽겠는가. 이 책은 불법체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실제로 그들이 있는 장소에 가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구성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룹탑'이라는 한 건물의 옥탑은 그들(불법체류자)만의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곳이고 그들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다 읽고나면 마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생생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앞서 언급한 단문 형식의 문장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의 센스에 기인한 것 같다.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명의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쓴 연작소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불법체류자들의 국적은 필리핀이다.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이유는 각자 다양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라는 그들의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고국에서는 교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퇴사를 하고 한국에 돈을 벌러 온다는 것만 해도 묘한 심정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매달 받는 월급을 고향에 보낸다고 한다. 고국의 가족들은 그 돈을 모아 집도 사고 가게도 사고 아이들 학비도 낸다고 하니 불법체류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옛날 우리들 60년대 미국 불법체류 노동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과 성희롱은 그들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일상 같은 것이라고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연민이 발동해 책을 놓기가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관련 법들이 많이 개선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말로만 외치지 않고 아직 약하고 어려운 나라 국민들이 우리가 과거 걸어오는 길로 오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격려하고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끓어오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