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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2 - 얽혀진 혼동의 권세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1월
평점 :
『경여년』의 흡인력은 이번에도 강력했다. 오히려 전편보다 더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다. 당연한 구성이겠지만. 중국 소설을 옛 고전 아니고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책을 읽고 중국 드라마까지 보고 싶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끝날 때까지 참았다가 마지막 책을 덮고 드라마 시청을 결정할 예정이다.
상1은 판시엔이 황실의 딸인 린완알과 혼인해 궁에 입궐하면서 끝을 맺었다. 부부가 된 두 사람 다 사연 있는 몸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권력 다툼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 책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한 덕분에 거침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부제도 '얽혀진 혼동의 권세'라여서 예상 적중의 기분부터 흥분된다.
사실 독자는 학교 다닐 때 무협지는 읽지 않았다. 무협지를 좋아하던 어떤 친구들은 시험공부한다고 함꼐 모여 무협지를 여러 권 앉은 자리에서 독파한 이도 있었다. 그때 무협지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독자는 "시험공부 하려고 모여서 무협지만 보다 갈 거냐"고 핀잔을 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의 답변은 기상천외했다. 무협지를 읽고 내공을 쌓으면 답이 몇 번인지 다 보인다는 것이다. 모두 웃고 말았지만 그 친구는 묘하게 시험 전날 그렇게 딴짓을 하고도 시험은 무난히 치렀다. 성적이 내려가거나 지적을 받을 만큼 이상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지나서 웃으며 한 말이지만 '신기하다'고 생각은 했다. 다른 날을 잡아 무협지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때는 세로로 씌어 있는 데다 한 면에 열 줄 정도밖에 써 있지 않았다. 빨리 읽으면 만화보다 속도가 빠를 정도였다. 그래서 옆에 20~30권을 쌓아놓고 밤새워 읽는구나... 처음 알았다. 독자는 6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접었다.
도무지 만화보다 재미가 없었다. 만화는 그림이나 재미 있게 볼 수 있지만 이건 한자말에서 따온 것인지 한자어가 많고(물론 한글로 썼지만 '금라수'란 단어도 보이고 무슨 뜻인지도 몰랐었다) 줄거리도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이라고는 학교나 선생님이 지정해주신 세계명작, 혹은 한국 유명 소설이 읽은 게 전부니 중국의 무협소설이 어떤 줄거리인지조차 모르는 것은 당연했을 터다. 이후로 무협지와는 완전 불통했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달랐다.
물론 무협지가 아니라 판타지 무협소설이며 타임슬립물이다. 요즘말로 SF판타지이다. 주인공 판시엔이 현대에서 병에 걸려 병원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다른 세계에서 환생하는 이야기. 우리나라 소설이 아니라 중국스타일이어서 약간은 스토리의 진전에 익숙지 않지만.
중국소설이라고는 삼국지나 반금련전(나중에 금병매라는 걸 알았다)밖에 못 읽어봤으니 좀 생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빠른 전개에 반전의 반전이 나온다. 더 햇갈릴 것 같지만 정독을 해서인지 등장인물을 복사해서 옆에 놓고 읽어서인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판시엔과 황제를 둘러싼 음모와 사건들, 뻔할 것 같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소설이어서 독서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앞서 상1권에 나온 이야기지만 이 소설은 2019년 88억뷰 최대 화제 드라마 <경여년>의 원작소설이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미지의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 알 수 없는 이유로 해하려 하고, 또 알 수 없는 이유로 도우려는 자들로부터, 그는 자라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속에서 신비의 존재들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가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간 속, 숙명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진정한 나의 동지와 나의 적을 묻는다.
과거의 비리를 조사하는 황제의 명에 판시엔은 과거시험의 이름을 확인하는 거중랑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어 조사에 착수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판시엔에게 청탁 등이 들어오지만 판시엔은 명단을 감시원에 넘긴다. 그리고 그의 일에 지지를 보내는 쪽과 반기를 들어 판시엔을 음해하려는 쪽으로 나뉜 세력에 판시엔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겨우 소용돌이 속을 빠져나온 판시엔은 북제의 밀정 옌빙윈과 샤오은을 교환하는 임무를 맡아 북제로 향하는 도중 쿠허의 제자인 하이탕을 만나 위험에 빠지게 되지만 무사히 샤오은을 넘긴다.
애초에 북제로 향할 때 판시엔은 옌빙윈을 구해 협상을 잘 이끈 다음 샤오은을 죽인 후 홍수초 작전까지 성공시키고 신묘까지 조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 북제가 시간을 끌며 옌빙윈을 빨리 넘겨주지 않자 북제의 태후와 황제를 둘러싼 권력과 내고의 비리를 조사한 판시엔은 옌빙윈을 넘겨받자 임무를 마치고 경국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판시엔을 도와주지 않는 황제, 의도치 않게 권력의 소용돌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판시엔, 자신의 어머니인 예칭메이와 샤오은의 만남과 마지막으로 남긴 말까지 더욱 흥미진진함과 인간의 권력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경여년』, 권력의 중심으로 점점 다가가는 그의 앞날에 등장할 사건들이 어떻게 그려질지 이어질 시리즈가 더욱 궁금하다.
복제에서 옌빙원을 만나 내고의 비리를 조사하며 복제의 국사 제자 하이탕둬둬와의 우정을 쌓는 등 판시엔에게 닥치는 불운만큼은 아니지만 그를 지원하는 세력도 있음을 통해 서늘한 간담이 조금은 완화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경국에 돌아온 판시엔에, 아니 판씨 집안의 경사(?)를 피해 동생 뤄뤄는 징왕세자와의 혼인을 피해 도망가려 하고 이는 사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기방의 살인사건을 통해 2황자의 덫을 파악하고 친구로 생각했던 징왕세자의 흑심을 알게 되는 등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과 이유들이 한 편의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기억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황제 암살 시도의 범인을 쫓던 판시엔의 진기 폭발로 인해 정신을 잃게 되는데 암살범은 과연 누구일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판시엔의 활약과 그를 제거하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음모들이 얽혀진 혼동의 권세를 익히 느끼게 해준다. 여전히 갈증으로 마무리되고기대되는 3권을 재촉하게끔 한다.
중국 인명과 지명에 대한 낯설음에 인물관계도와 등장인물에 대한 요약페이지(책 앞부분을 복사해 책갈피에 끼워놓았다)를 중간중간 다시 보긴 하지만 이해도는 더 높아진다. 작가의 상상력도 굉장하고 문학작품 쓰는 문장력도 탁월하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최소한 필사를 해놓고 싶을 정도로멋진 문장도 많다. 중국 고전에 나온 말인지 모르지만 매우 인상 깊은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는 읽는 즐거움에 지식욕도 채워주기 때문에 독서의 흥미는 점점 높아만 간다.
"정도란 무엇인가? 정도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때 기분은 아주 좋다. 무엇보다 강력하다."(p. 74~75)
"어느 누구도 판시엔의 고민을 알지 못했고, 그 또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먼 타국의 땅에서 우쥬 삼촌도 없고, 어느 누구와 말할 수도 없었다. 모든 일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지만, 이 일만은 말로 할 수도 말을 할 상대도 없었다."(p. 228)
"일 년에 두 번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신묘. 칠 척 정도 되어 보이는 신묘. 마치 신이 인간 세계에 던져 놓은 한 권의 책처럼 보인다. 북위국 황궁은 신묘 문의 축소판처럼 보이지만, 그 웅장함만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는 신묘의 문으로 걸어가서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거대한 문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다.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수록, 문은 이상한 방식으로 뒤로 물러선다. 신묘가 눈앞에 있지만, 저 먼 하늘 끝자락에 있는 것 같다."(p. 319)
천핑핑과 스리리의 약속과 스리리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해당화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인물들이 나온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서 북제로 간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된다. 신묘의 행방. 또한 검객과의 대결에서 진기가 모두 빠져나가 그는 일격에 당해 쓰러지고 만다. 이렇게 상 2권의 마지막,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충격적인 배후도 드러나기도 한다. 판시엔과 친구가 되는(아니면 친구처럼 보이는 걸지도?) 여성 고수도 나타나고,
자기가 직접 구해서 부하로 만들고 싶어하는 인물등 주인공 외에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의 주변 사람들도 충분히 이야기를 즐기는 데 중요한 맥점이다.
소설은 독자의 흥미를 한껏 끌어들이고 궁금증을 남기면서 상2권은 끝난다. 다음 권을 읽게 하려는 의도인 줄 알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렸을 때 친구가 무협지에 빠져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