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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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신뢰 연습』은 미국의 한 공연예술 특목고에서 연기지망생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 교사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 교사 킹슬리의 수업인 '신뢰 연습'이 제목이다.

총 3부작이며 1부의 주인공은 세라와 데이비드이며, 이들의 사랑의 시작과 주변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상처받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2부는 미래의 캐런이 경험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1부는 세라에 의한 소설임을 밝히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스토리를 캐런이 얘기해준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3부에서 시작된다. 또 한번 주인공이 바뀌면서 이번엔 클레어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1부와 2부가 이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3부를 위한 이야기인 것 같다. 클레어의 시점에서 진실을 밝혀나가는데, 저자는 이를 통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신뢰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통해 삶의 진실과 타당한 의심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다.





1980년대 미국 남부의 한 예술고등학교 연극과 학생들은 음악과 동작, 셰익스피어를 추구하고, 특히 연기 수업에 열심이다. 서로 다른 집안 환경과 재능을 지닌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며 학교와 가정 등 관계들 속에서 성장해간다. 카리스마 있는 연기 교사인 킹슬리가 가르치는 ‘신뢰 연습’ 시간을 매개로 만 열다섯 살인 세라와 데이비드는 사랑에 빠진다. 세라와 데이비드의 서로를 향한 열정은 곧 동급생들에게 알려지고 킹슬리 선생의 귀에도 들어간다. 한편, 영국의 예술고등학교 연극팀이 세라네 학교를 방문하고, 영국인 연출 교사 마틴과 24세인 배우 지망생 리엄은, 세라 그리고 같은 반 캐런과 함께 어느 날 오후를 보내게 된다.

설정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 공연계의 성 인지 감수성으로 공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과 공연예술학교 재단의 비리로 사회 문제화돼 결국 법정으로까지 이어진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독자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소설의 이야기는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책의 1부와도 같은 첫 번째 ‘신뢰 연습’은, 14년이 흐른 뒤 30세가 된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두 번째 ‘신뢰 연습’이야기 속의 ‘소설’이다. 화자가 바뀌면서 전제가 뒤집히고, 세라와 캐런의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아가는 가운데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불완전한 기억 속에서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화자와 독자 간 ‘신뢰 연습’처럼 충격의 소용돌이 같은 사건들이 전개되며, 끝에 이르러서야 한 여성의 가슴 아픈 과거의 진실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듯 연극 무대 위에서 밝혀진다.

이 소설 속 서로 관련 있는 세 여성 화자가 들려주는 세 이야기들은 책의 제목처럼 누구를 믿어야 할지 선택, 성적 합의에 관한 복잡한 문제를 담고 있다. 독자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깊은 울림과 여운을 느낄 것이다.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유사한 일들을 겪어온 우리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며, 청소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른들의 권력과 책임, 우정과 신뢰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 대한 미국 사회의 평은 대단히 폭발적이어서 작년(2019년) 전미도서상 소설상을 수상했다. 포스트모던 기법을 지적으로 적용한, 시의적절하고 완전히 넋을 빼놓으며, 결국 마음을 동요시키는 이야기이다. 인물들의 서로 다른 관점을 탐구하여 자아에 관한 신화 창작의 모습, 거짓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입히는 피해를 드러낸다. 작가로서의 뛰어난 성취가 문장에서 드러나며,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이야기는 진행 방향에서는 비전통적이지만 탁월함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수준을 맞춘다. - 2019년 전미도서상 소설상 심사평


세 편의 연극을 본 듯한 다양한 느낌과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읽는 마음에 따라 아주 다른 소설이 될 수 있어 매력적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세라의 이야기는 『신뢰 연습』 2부에서 캐런이 등장하면서 주인공이 캐런이 되어 스토리가 흘러간다. 캐런은 30대로 고등학교 시절 킹슬리 선생에게 수업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예술학교에서 연극을 하였지만 성공한 동창은 극소수였고 스타덤에 오른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그 중 데이비드와 여전히 만남을 가지고 있는 캐런의 기억은 데이비드의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성인이 된 세라는 소설을 출간하는데 데이비드는 세라와 고등학교 졸업 후 한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세라의 소설이 출간되자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굴었다. 세라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런은 우연히 만나는 동창일 뿐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캐런과 세라는 단짝의 친구였고 당시 세라가 없던 차가 있는 친구였다. 이렇게 작은 기억들도 소설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이런 엇갈리는 기억에서 어떤 것이 진실일까?

소설 『신뢰 연습』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주인공이 달라지면서 같은 사건을 보는 시점도 달라진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읽은 것일까?



이 소설에서 일부 드러나는 사랑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문제다.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이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각종 문제를 일으켰으며 철학과 사회학의 주된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 문제이다. 권력이란 단순히 그 이름처럼 정치나 경제 제도권 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 일상에 있는 권력은 훨씬 사람들을 더 잘 억압하고, 이에 대한 남용 또한 적지 않다. 더욱이 일상에 묻혀 비밀리에 권력 남용이 가능하고 교묘하고 피해자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행해지는 '범죄'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이런 문제가 촉발돼 사회 문제로 비화돼 터진 게 '미투'다. 그리고 이 책 『신뢰 연습』은 작품의 배경과 관련이 깊은 공연예술고등학교라는 점, 공연계의 시스템에 관련됐다는 점 등에서 일상의 권력과 관련된 것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상의 권력이란 말, 혹은 일상에서의 정치란 말이 일반 사람들에겐 생경스러운 단어일 수 있다. 자신의 일상이 아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상 중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신경 쓸 수 없으니까.

이 소설은 이 같은 범죄적 사랑을 전면에 드러내지만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희생이 필요한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합의의 영역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한 사람이 권력을 남용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또한 그의 권력 남용을 어떻게 방지하고, 다시는 권력을 그렇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굴복시킬 것인지 등 많은 문제점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 책은 고고하면서도 유유희 사람과 사람간의 정치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 태연하게 이를 일상적 이야기를 통해저 전하고 있다. 『신뢰 연습』이란 제목은 조금은 딱딱하게 들린다. 소설의 제목보다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에 등장할 말인 듯하다. 그러나 공연 수업시간에 들어가 있는 제목인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으니 독자로서는 공연계의 현실을 잘 모른다고 고백하는 셈이 됐지만 내용은 읽고 싶은 충동이 크게 일었다. 그리고 작가는 제목이 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훌륭한 제목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독자의 생각을 진전시켜 놓았다. 배운 것도 많고 생각거리도 많은 훌륭한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으로 서평을 대신한다.


저자 : 수전 최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한국인 교수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텍사스주에서 성장했다. 1990년 예일대학교를 졸업했고 1995년에 코넬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저자는 1998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외국인 학생》으로 ‘아시아계 미국 문학 작가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미국 여자》는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세 번째 장편소설 《요주의 인물》은 2009년 펜/포크너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작가는 2010년에 세 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제발트상을 수상했다. 네 번째 장편소설 《MY EDUCATION》은 2014년 래미상을 수상했다. 이 책 《신뢰 연습》은 다섯 번째 장편소설로,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2019년 전미도서상 소설상을 수상했다. 미국예술기금과 구겐하임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그녀는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며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SUSANCHOI.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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