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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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영화를 처음 접할 때부터 예술보다는 즐거움(스토리나 화면 중심)으로 선택했다. '종합예술'이라고 학교에서는 배웠지만 예술성보다는 관객의 마음을 끌어모으는 선정적인 화면, 폭력적 장면에 더 눈이 갔고,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심의를 통과한 작품이 더 인기가 있기도 했다. 1970년대 얘기다. 그때는 영화가 예술성(자체로는 작품성이라 표현)보다는 대량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다. 영화 제작사나 감독, 스탭이나 배우까지 모든 영화인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당장 제작비와 관객 동원 가능선을 점치고 흥행이 되지 않은 영화는 감독, 배우, 심지어 제작사도 다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기 힘들 정도로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마 당국의 검열과 제작비 때문에 영화 환경은 최악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영화에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드디어 한국 영화는 90년대부터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사전 검열로부터 벗어나면서 비약적 발전을 무서운 속도로 해 나아갔다. 관객 100만 동원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수백만은 보통이고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것이다. 짧은 기간 우리 영화가 이렇게까지 발전한 것은 누가 뭐래도 영화인들과 관계자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됐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지금은 아다시피 우리 영화는 세계 최고의 작품(아카데미상 수상 등)을 배출하고 배우들도 '한류'와 함께 세계 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선까지 올랐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영화 발전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개인적으로 "본 영화 중에서 당신의 인생작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받으면 이것저것 주워대느라 땀을 흘린다. 그때 봤던 영화는 외국영화는 하나같이 좋아보였고, 우리 영화는 상대적으로 작품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책 『오늘의 시선』에서 '혹시 영화가 끝났는데도 좀처럼 의자를 떠나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김시선의 일상에 매우 공감하게 될지도'라는 말이 나온다. 독자는 영화를 본 다음 늘 약 5분 정도 앉아 있다 나온다. 지금은 습관이 돼 같이 간 사람 중에 먼저 나갔던 사람이 다시 찾으러 오는 것도 몇 번 있었다. 이 책은 영화 채널 ‘김시선’으로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영화 친구)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김시선의 첫 에세이다. 땅끝마을 해남의 작은 영화관, 비디오 대여점에서부터 시작된 영화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과 영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화로 가득한 그의 모든 순간 중, 방콕하며 정주행하고 싶은 하이라이트 장면만 모았다고 한다.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일상은 온통 영화로 가득 차 있다. 책에 따르면 하루에 5편, 1년이면 700편의 영화와 함께하는 김시선의 하루는 말할 것도 없이 영화로 빼곡하다. 유튜브 채널 영상 준비, 팟캐스트 방송 준비, 라디오 게스트, 무비 토크 참석, 넷플릭스ㆍ왓챠 작품 리뷰, 모더레이터, GV 진행, 각종 영화제 참석, 인터뷰 등 김시선의 영화 생활을 고스란히 담는 동시에 사람을 대하는 시선, 세상을 대하는 시선,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 등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그의 일상이 그대로 책 한 권이 된 셈이다. 대충 훑어봐도 열정과 흥미만으로는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일상 같다. 체력도 뒷받침 돼야 가능할 정도로 다른 일에 눈 돌릴 틈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사랑하려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어는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은 공식을 외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수치화되는 시대에, 문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에, 안타깝게도 ‘영화’는 문제집은커녕 교과서조차 없었다.” 저자의 말은 앞서 언급한 우리 영화에 대한 역사(?)를 독자보다 훨씬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책에 따르면 영화를 추천받고 싶을 때, 영화를 더 잘 알고 싶을 때, 영화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영화 친구 김시선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3종 세트.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지.’ ‘어떻게 영화를 좋아하게 됐는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아무리 물어도 김시선의 답은 두루뭉술할 뿐이다. “그저 우연히 사랑해서, 그냥 계속 사랑하고 있고, 아마도 사랑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 전부.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가 아니라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지금’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는 오늘이 가장 행복한 그의 일상은 무언가를 최대치로 사랑해본 사람만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이 가득하고, 그래서 ‘오늘의 시선’은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이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힘든 순간에 힘을 주는 ‘영화가 위로가 되는 순간’, 유튜버로서 일로 만난 일들을 담은 ‘유튜버 김시선의 하루 모음’, 시선만큼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는 사람입니다‘, 영화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시선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영화로 살아남기‘, 마음과 특별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 ’시선이 머무르는 곳‘, 쭉 계속될 영화 관련 이야기 ’네버 엔딩 영화 생활‘까지. 유튜브 채널에서 영화 친구들과 친근하게 수다를 떨던 김시선과 또 다른 꾸밈없이 솔직한 김시선의 오늘을 만날 수 있다.



개인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독자는 이 책에서 저자의 영화에 대한 열정도 있지만 영화 철학도 읽힌다.

자신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즐기는 나머지 노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데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저자의 행보를 보면 영화 산업의 발전을 원하고 더불어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도 이견 없이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미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이런 모습은 타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옛 선현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말도 생각나기도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그게 본업이 된 것이니 행운아이고 행복감도 충만하지 않을까. 무언가에 미쳐 있는 모습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도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성의 시간도 된다. 좋아서 열심히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삶이 주체적인가. 혹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 책은 관심과 즐거움에서 시작해 자성과 반성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는가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된다.



또 간단하게 영화를 설명해주고 내용과 연계시키는 데 독자로서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말이 곧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책 내용 중에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공감백배다. 서양 유명한 철학자가 한 말처럼 멋지기도 하다. 곧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행복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 아닌가라는 자성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것 외에 또 하나 설득력 있는 일은 저자가 일부러 균형을 깨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정해진 틀이나 자신이 살아온 관습, 습관은 좀처럼 깨기 힘들다. 변화고 싶다면 기존의 것들을 버려야 한다. 기존의 것들을 지닌 채 변화할 수 없다. 그런데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지만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은 힘들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니 변화와 기존 습관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고 어느 정도 이루면 변화를 포기한다. 살 만 하다는 판단이 섰으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자신이 변하지 않고는 주변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분명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그 선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점이 독보적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심정으로 끈기 있게 변화시켰다. 그리고 분명히 변화했을 것이다. 그도, 주위 사람들도, 그리고 그가 그토록 좋아하고 바라는 영화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본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이 대사를 가끔 떠올린다. 진짜 아름다운 것들은 누군가의 관심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글로 읽으면 쉬운데, 입으로 세 번만 소리 내보면 어렵게 느껴지는 대사다. 아마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아름다운 것이 관심 받는 세상에서 살아왔으니까. 새로 산 다이어리 앞에 이 문장을 멋들어지게 적어두면 왠지 모를 '쿨함'이 몸을 감싼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그걸 찍어서 SNS에도 올려본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니 기분은 좋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올린 게시물과 상황이 맞지는 않는다. 갑자기 그 관심이 따끔거린다. 나는 관심 받아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아름답다고 믿는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일까?"


저자 : 김시선


1세대 영화 유튜버. 2014년 9월에 영화 유튜브 채널 ‘시선 플레이’로 시작해, 현재는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김시선’ 채널로 영화계 최고의 인기 유튜버로 거듭났다. 1세대 독립영화잡지 《시선일삼》을 발간했고, ‘찰리 채플린에서 스탠리 큐브릭까지’라는 영화사 100주년 강의, KBS2 라디오 〈음악이 있는 풍경 이정민입니다〉에서 ‘김시선의 무비어게인‘,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수업, 좀비기획전 영화 토크 등 다양한 곳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KBS 라디오 〈김태훈의 시대음감〉 ‘시선의 시선’의 고정 게스트, 영화감독에게 직접 영화 이야기를 듣는 팟캐스트 〈김시선의 영화코멘터리〉 운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 외에도 넷플릭스ㆍ왓챠의 공식 리뷰어, 모더레이터, GV 진행, 인터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마음껏 영화를 보고 듣고 말하는 중이다.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는 게 마지막 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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