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격언집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임경민 지음 / 노마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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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격언집을 언제부터 눈여겨보기 시작했는지 특별한 기억은 없다. 다만 어느 해 연말 서점(당시 오프라인 매장)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무척 예쁘게 생긴 책 한 권이 눈에 띄어 사 읽다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연말쯤 되면 한 권씩 구입하기도 했느데 벌써 10년은 넘은 것 같다. 때문에 집 책장에는 격언집이나 '한 줄 명언집', '1일 1명언' 등 비슷한 책이 10권 가량 꽂혀 있는 것 같다. 물론 가끔씩 펼쳐보긴 하지만 처음 샀을 때처럼 열심으로 읽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욕심이 지나쳐 외우려고 애썼고, 다음엔 이해하려 애썼지만 한 권도,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하루 한 줄이라지만 일년이 모이면 앞에 읽었던 것이 잘 기억이 안 나는 경우도 많다. 지금껏 기억속에 저장돼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명언은 몇십 개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꼭 읽고 가능하면 라틴어도 배워볼까 하는 심정이었다. 우리가 아는 많은 명언이나 격언 중에 그리스 로마의 것임을 확실히 아는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로마제국에 대한 무한 동경심을 갖고 있다. 로마사를 자세히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아는 지식으로는 로마제국이 멋진 나라였다는 생각이다. 결정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 책을 읽기로 한 것도 라틴어 격언이니만큼 로마제국 시대의 격언이 많으리라 생각하니 더 기대되고 궁금해졌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격언은 당대 집단지성의 핵심이자 시대를 초월한 지혜일 것이다. 그 격언들은 때로는 비수와 같은 날카로움으로 때로는 미소를 자아내는 풍자로 현재 우리의 삶과 사유에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우리 속담보다 자주 사용하지 않나 싶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격언도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뜻도 모르고 쓰기보다는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알고 쓴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자칫 잘못 쓰면 오히려 망신이니까.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은 '암흑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중세에 베스트셀러였던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ADAGIA)』를 근간으로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를 향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 지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아다지아』의 자리를 이제 이름에 걸맞게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이 대신한다.

 


 

이 책도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음을 알게 됐다. 책에 따르면 당시 에라스뮈스가 유려한 문체로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를 보여 준 『아다지아』는 발간되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필독해야 할 교과서로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다. 저자 에라스뮈스는 당시 본격화되던 루터의 종교개혁에, 즉 교회 권력에 대한 루터의 비판에 호의적이기는 했으나 극단적인 신앙을 싫어했다. 그래서 종교 개혁에 반대하는 로마 가톨릭과 찬성하는 개신교 양 세력이 에라스뮈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때문에 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곤경에 처한다.

특히 로마 교황청은 그를 공격하면서 『아다지아』에서 삭제할 부분을 세부적으로 지정해 교구에 지시했으며, 다른 저작물들은 목록을 만들어 작품 자체를 통재로 금지하거나 허용했다. 하지만 지극히 세부적인 해설이 달리 고대 그리스 및 라틴어 격언의 기념비적인 모음집 『아다지아』는 금지도서로 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독을 권장하기도 힘든 책이었다.

 


 

이 책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열한 번째 책이다. 이 책의 키워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향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의 『아다지아』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자, 작가, 정치가 등의 명언들을 한데 모아 1500년에 파리에서 『고전 격언집(COLLECTANEA ADAGIORUM)』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선보였다. 첫 출간 후 사람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받고 읽힌 이 책은 저자 살아생전에 증보판을 거듭 펴냈다. 1508년 에라스뮈스는 항목을 3,000개로 늘리고, 여기에 풍부한 주석을 단 논평들과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주제에 대한 짧은 단상들을 덧붙여 『수천 개의 격언집(ADAGIORUM CHILIADE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후 저자가 세상을 떠난 1536년까지 계속 증보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4,151개의 항목을 수록한 방대한 모음집이 되었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에 실린 항목들은 유럽에서 아주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고, 이제는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표현들이 많이 있다.『아다지아』는 고전·고대 문학에 대한 전형적인 ‘르네상스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고전 작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드러난 ‘시대를 초월한 지혜의 표현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변용과 확장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 휴머니즘의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아다지아』는 고전문학을 더욱 광범위하게 고찰할 수 있는 지적 환경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전·고대의 지혜를 발휘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는 능력이 학문적으로나 심지어 정치적 담론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시대에 출간된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가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책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세의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에라스뮈스는 밝은 눈으로 ‘시대를 초월한 지혜의 표현들’을 걸러내고, 여기에 풍부한 주석을 단 논평과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주제에 대한 짧은 단상들을 덧붙여 위대하고 독보적인 격언집 『아다지아』를 완성했다. 교회의 압력에도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아다지아』는 오늘날 전 세계인의 애독서로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계몽주의자 ‘에라스뮈스의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Nomen Erasmi nunquam peribit).’『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은 로버트 블랜드(Robert Bland)가 펴낸 『Proverbs, Chiefly Taken From the Adagia of Erasmus』 가운데 현재의 삶과 사유에도 여전히 유효한 글들을 뽑아서 엮었다. 이 텍스트는 대부분 헨리 스티븐(Henry Steven)이 1550년에 펴낸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에서 뽑아 편찬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격언들도 같이 묶어 보충해놓은 것이다.

 

Chapter 1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 시기심과 우둔함

Chapter 2 잘난 척도 정도껏! : 허세와 위선

Chapter 3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당신에게 : 사랑과 우정

Chapter 4 가까이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 가족과 행복

Chapter 5 처음은 항상 어렵다 : 희망과 미래

Chapter 6 없다, 그러나 있다! : 신과 운명

Chapter 7 간결하고 분명하게 : 순리와 원칙

Chapter 8 무슨 일이든 지나치지 않게 : 처세의 지헤와 분수

Chapter 9 진퇴양난·절체절명의 순간에 : 사리판단과 선택

Chapter 10 팍스 로마는 그들만의 평화 : 통치와 권모술수

Chapter11 갈망하지만 얻기 쉽지 않은 : 부와 거래

Chapter 12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 전쟁과 애국심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즐겨라’는 말은 가장 유명한 라틴어 격언 중 하나일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송가』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늘을 즐겨라’는 낭만적인 뜻으로 많이 알고 있으나, 오히려 ‘오늘을 열심히 살라’는 경건한 뜻이라고 한다. 다소 와전된 느낌이지만 원문은 “되도록이면 다음 번을 덜 믿고 오늘을 잡아라”는 뜻이다. 오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다.”는 격언과 통한다.

 

현명한 자는 감정을 지배할 것이요, 어리석은 자는 감정의 노예가 되리라.

Animo imperabit sapiens, stultus serviet.

폭식이 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Gula plures quam gladious perimit.

은혜는 은혜로, 원한은 원한으로

Par pari referre

 


 

역자 : 김대웅

 

전주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나와 두레출판사 편집주간, 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충무아트홀 갤러리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교양 시리즈’인 『최초의 것들』, 『영어잡학사전』, 『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 등을 비롯해 『그리스 7여신이 들려주는 나의 미래』, 『인문교양 174』, 『커피를 마시는 도시』 등이 있다. 편역서로는 『배꼽티를 입은 문화』, 『반 룬의 세계사 여행』, 『알기 쉽게 풀어쓴 일리아드·오디세이아』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독일 이데올로기』, 『루카치의 미학 사상』, 『영화 음악의 이해』, 『무대 뒤의 오페라』, 『패션의 유혹』, 『여신으로 본 그리스 신화』,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영어 이야기』, 『아인슈타인 명언』, 『마르크스·엥겔스 문학예술론』, 『마르크스 전기 1·2』(공역),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재미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공역),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르크스 엥겔스 주택문제와 토지국유화』, 『시민불복종』(공역) 등이 있다. 해설서로 『숨겨진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다.

 

역자 : 임경민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신동아』, 『월간 경향』, 『말』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현장들을 취재하고 관련 기사들을 기획·집필하며 자유기고가로 활동했으며, 산하출판사 편집주간을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마르크스 전기 1·2』(공역), 『사랑하는 어머니』, 『에스페란사의 골짜기』, 『폭군들』, 『47』, 『반 룬의 지리학』, 『동물의 권리』,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재미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공역), 『숨겨진 그리스·로마 신화』, 『햄릿과 돈키호테』, 『시민불복종』(공역)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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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독자는 먼저 이 책의 제목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 서평을 시작한다. 세계 인류가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과거 영화를 누렸던 서유럽 중심의 국가들이 힘을 잃어가자 과거 자신들이 패권을쥐고 세상을 이끌어가던 시절에 대한 향수, 누렸던 영화를 되찾으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 20세기 들어 패권의 중심이 미국과 소련으로 바뀌고, 소련이 붕괴된 후 유일 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절대적 힘과 경제력의 우위를 점한 데 대해 미국만을 믿고 살기엔 희망적이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거대한 힘이 다시 올라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EU(유럽연합)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려 했으나 중국의 예상치 못한 도약으로 미국만 믿고 있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21세기는 정보통신과 디지털,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자신들의 위치가 모호한 데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현재의 시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인류 모두의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보편적 가치를 찾아 함께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통계적 세계관과 상대주의적 시각 그리고 범람하는 정보로 인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러다 보니 삶의 불안정성이 클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정신적 표류 상태는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움직임의 일환으로, 서구 사회가 ‘좋았던’ 그 시절, 즉 자신들이 패권을 잡았던 19세기 국민국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음을 질타한다. 그리고 이 회귀 움직임은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 표상의 위기라는 다섯 가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 이론인 ‘신실재론’을 통해 각각의 위기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핀 뒤, 그 속에 자리한 명백한 사실과 보편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고, 삶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옳고 그름의 철학적 기준을 바로세워야 할 때다.

 


 

저자에 따르면 절대적 진리가 지배했던 중세 종교의 시대는 끝났다. 과학과 이성이 약속했던 근대의 화려한 영광도 모두 끝났다. 누구나 느끼고 있다시피, 지금 우리는 구별하기 어려운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포스트모던 사상의 영향을 받아 통계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까닭에, 강한 신조를 가진 사람을 경계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종교와 이성의 절대성을 잃고 정신적인 표류 상태에 놓이게 된 서구 사회는, 자신들이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며 전성기를 누렸던 19세기 국민국가 시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삶의 불안정성을 이겨내기 위해,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차별적인 자국 보호주의로 되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위기를 주제로, 마르쿠스 가브리엘과의 대담을 기획하면서 탄생했다. 이 책에서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를 다룬다.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 그리고 이 네 가지 위기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표상의 위기가 그것이다.

먼저 「가치의 위기」에서는 절대적인 가치를 잃고 표류하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또한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민주주의의 위기」에서는 민주주의의 느림에 주목한다. 또한 ‘다양성을 인정할 때 다양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패러독스를 철학적으로 들여다본다. 「자본주의의 위기」에서는 세계화 현상과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문제 등 오늘날 폭주하는 자본주의가 감추고 있는 악의 잠재성을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테크놀로지의 위기」에서는 현 기술산업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펼치며, 인공지능과 초대형 IT기업과 관련된 이슈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표상의 위기」에서는 이미지가 진실을 덮어 은폐하고 있는 현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표상과 현실 사이의 관계성을 논한다.

저자의 철학적인 논제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은 탈진실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포퓰리즘의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는 오늘날의 세상에 응답하기 위해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철학이라는 것이 사회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미래학자들의 중론이다. 또한 디지털혁명의 결과 완전히 바뀌게 된 사회경제적 체제와 공진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를 이끄는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문제는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진짜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화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기본적으로는 모든 것이 가짜라고 여겨라’ 하는 생각을 전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삶의 중심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고의 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슬라보이 지제크가 ‘위대한 생각 실험’이라 칭한 저자만의 독자적 세계를 보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는 점점 더 빨라지고 무역간 혹은 다자간 협상이라는 명목하에 나라간 부익부 빈인빈도 심화해 가는 중이다. 정치 체계가 다르더라도 자본주의 방식의 경제 개념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그 잣대를 부의 편익과 힘의 불균형이 어디로 치우치느냐에 두게 된다. 이 지점에서부터 차별은 발생하며, 서로간의 경제적 정치적인 혼동이 발행한다고 보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터넷은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플랫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다. 검색 엔진만 봐도 지금은 구글의 독무대이며, 아무리 웹서핑을 해봐도 인터넷에서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침에 트럼프가 우산을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 누구를 해고했는지 같은 인터넷 기사를 몇 분 훑어보고 나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실은 가려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소설을, 드라마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쉬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백일하에 밝혀내는 것인데 지금은 비판적이지 않은 저널리즘이 횡행하고 있고, 이것이 인터넷 사회가 낳은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저널리즘의 힘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세가 실종된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테크놀로지나 과학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데, 과학적 세계관은 과학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과학을 우상화하고 마찬가지로 잘못 이해된 종교와 가깝게 두는 의심스러운 비과학적 사고 탓에 좌초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이를테면 분자나 일식을 설명할 뿐이다. 결국 과학은 인간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인공지능이나 소셜미디어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환상이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지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기계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종이폴더에 나에 대한 출생증명서나 졸업장이 있다고 해서 이것을 지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생증명서나 졸업장이 웹상에 존재하고, 원하는 정보를 불러올 수 있다하더라도 종이폴더와 온라인이나 웹사이에 존재론적인 차이는 없다. 따라서 웹, 프로그램, 알고리즘, 딥러닝 같은 것을 지능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종이폴더 역시 지능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확실히, 다음에 나올 아이디어는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쪽이 될 것이다.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기업은 22세기의 정치 구조를 결정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친환경 핵에너지를 찾아내면 어떻게 될까. 독일은 최근 수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원자력발전의 대체물질을 발 견한다 해도 문제없이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완벽히 제 기능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쩌면 물리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핵융합이 아니라 다른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발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아이디어를 내는 국가는, 어디가 되든지 간 에 22세기를 대표하는 국가로 우뚝 설 것이다.

 


 

우리에게 공통된 문제 중 하나는, 소위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이론가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이 믿는 자본주의 이론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마르크스 의 이론은 너무나 불충분하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에 대한 응답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을 이용해 '한 사람의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사실을 가치로 변환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비즈니스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이점이 된다. 상대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시점에서 당신은 얼마의 금액을 청구할 수 있을지 를 계산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져 있는 경우라면, 그 금액을 청구할 수 없다. 당신은 자신의 제품이 실제보다 훨씬 뛰어난 척을 해야 한다. 사실은 상대를 믿지 못하지만 믿는 척해야 한다. 당신의 제 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자본주의의 '거짓' 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불투명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에는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자제가 반드시 '악'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에는 악의 잠재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 사실을 이유로 대부분의 민주주의 이론가가 '자본주의는 우리를 민주주의 반대 방향으로 끌고가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민주주의에서는 투명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생산 상태를 좌우하는 자본가에게 민주적인 사고 훈련을 받게 하는 일이다.

 


 

표상의 위기는 이미지와 인간과의 관계성을 나타낸다. 표상은 정확한가 부정확한가의 속성을 지닌 현실의 모델이다. 개중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진짜인가 거짓인가 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지의 배후에 있는 진실, 스크린의 이면에 있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매해진다.

스크린의 개념이 잘못되었기에 현실이 스크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삶의 중심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고의 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표상의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후보자가 당선되어 유권자를 대리, 표상하는 입장이 되면 그가 유권자를 위한 일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표상이 아니다. 의회에서 유권자를 표상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교섭 체계에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선 전에 무언가 공약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반드시 공약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상품을 사는 행위가 아니다. 즉, 무언가를 ‘사는’ 것이 아니다. 투표는 어떤 이념에 기여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민주주의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모르면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고,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러나 강한 임팩트를 갖고 있다. 저자 특유의 화법과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중요하고 굵직한 주제를 핵심적으로 담고 있다. 배경 설명을 구절구절 늘어놓거나 자신만이 아는 이론으로 몇 페이지를 할애하며 독자를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다. 다루고 있는 탄탄한 이론과 머뭇거리지 않는 천재 철학가의 사상은 읽는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저자 :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

 

1980년생. 본대학과 하이델베르크대학을 거치며 철학, 고전문헌학, 현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2005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 논문으로 RUPRECHT-KARLS상을 수상했다. 29세에 2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본대학교 철학과에 사상 최연소 석좌교수로 발탁되었고, 인식론과 근현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동 대학의 국제철학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포르투갈의 리스본대학교, 덴마크의 오르후스대학교, 미국의 버클리대학교 등 유수의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서양철학의 전통을 뿌리 삼아 그가 제창한 ‘신실재론(NEW REALISM)’은 21세기 현대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영향과 범람하는 정보로 인해, 무엇이 진실인지, 애초에 진실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때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갈파하며, 현대 사회의 위기와 해결책을 고찰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 외 저서로는 《나는 뇌가 아니다》, 《욕망의 시대를 철학하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 《초예측: 부의 미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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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가수업 3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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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이 책은 작가의 '존재 이유'나 '존재 방법'에 대한 내용임엔 틀림없다. 다만 기대했던 것처럼 쉽게 쓰인 책이 아니다. 강연 내용이어서 이 강연을 들은 청중의 수준이 문학적 지식이 높은 사람이어서인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쉽지만은 않다. 최소한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수준 이상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이해된다. 다만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과 해석을 붙여준 것은 저자의 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말, 즉 주제는 '작가로 사는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자'로 읽힌다. 이를 위해 저자는 1탄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가 문학에 대한 가치관을 안내하고 2탄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가 창작에 대한 가치관을 소개한 바 있다고 밝히고 있어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 한국의 작가들 앞에서 행했던 강연 원고를 소재로 삼아 '좋은 작가'가 되려면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장, 이성의 제국을 탈주하는 언어들〉은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서장을 텍스트로 삼아 강독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근대 이후의 시인들이 인류사 안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현대시의 변천 경로를 설명하고자 한다. 〈3장, 소설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 중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을 소개하면서 소설가가 무엇으로 사는지를 전한다.

1부인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을 시작하며 김형수 저자는 '근대 이후의 작가들은 무엇으로 밥값을 했는가?'에 답하기 위해 글을 준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야기는 '복잡한 문제를 사유하는 방법'부터 시작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강연 원고를 소재로 삼아 출발하는 1부에서는 어떻게 세상과 만나고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 아닌 것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기만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경계해야 할 태도들에 대해 여러 작가들의 말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단순히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관점을 어떻게 익히고 가다듬어야 할지를 보여주면서 ‘좋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철학에서 ‘자기기만’을 찾아내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하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자기기만의 현상이 생긴 것을 해명해 달라는 것, 이게 진정한 비판이에요. 재미있지 않아요? 상대와 내가 그냥 다를 때는 그것이 다른 것일 수는 있어도 잘못한 것은 아니잖아요. 누가 잘못한 것인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한 사람 안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태도가 담겨 있으면 어떤 것하고 상대하라는 말이에요.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상대인지 알아야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죠."(p. 19)

이 문단만 뽑아 적어놓으면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해 저자는 앞의 글 중에 가리타니 고진의 「미(美)와 지배 : 『오리엔탈리즘』 이후(민족문학작가회의 자료집, 1997, 저자 주」의 사례를 들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낱말에는 소위 작가의 존재 이유, 즉 작가들은 왜 그렇게 사는가 하는 문제의식에 다가갈 비상구가 감춰져 있다고 전제한다. 이 내용에 오에 겐자부로와 끌로드 시몽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핵문제를 일본의 문제가 아닌 인류사의 문제로 생각하는 오에 겐자부로와 클레드 시몽이 그것을 부정하는 글을 〈르 몽드〉지에 반론을 게재함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이자 핵 피해국 일본과 2차대전 피해국 프랑스의 국민 감정이 서로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저항하고 반론을 폈던 것.

저자는 어느 쪽을 편들진 않는다. 편을 들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했고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랑스 지식인을 비판한 것에 대한 문제와 이에 반론을 편 프랑스 지식인 클레드 시몽에 대해 "근대(현대)를 살아가는 고뇌가 그런 고뇌가 프랑스에만 있겠는가, 당연히 일본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벗겨내려면 반드시 '복잡한 문제를 사유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모두 이 점에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요지의 강연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즉 어느 쪽 편을 들지 않되 편견을 가지고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좀 더 사유가 필요하다고 양쪽에 비판을 가한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저자가 직접 표현하지 않아 독자의 입장에서) 비판 글을 쓴다면 더 깊은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2부 〈이성의 제국을 탈주하는 언어들〉에서는 근대 이후의 예술과 삶의 관계를 짚어보며 현대시가 형성되는 경로와 치열한 시인들의 미학적 고투 과정을 살펴본다. 오늘의 시인들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현대성이 어떻게 발생하고 그 미학적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낯설게 하기, 불협화, 비규범성, 그로테스크 등의 키워드를 통해 현대시를 읽어낸다. 일상적인 삶에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심화해나가면서 변화하는 사회상이 문학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 작가들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낯설게 하기’라는 말은 들었죠? 시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낱말의 하나일 거예요. 흔히 인간의 의식이 식상한 상태에 빠질 때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바로 이거예요. 처음 대하는 것은 낯선 것이니 초심이란 낯설게 만드는 것을 가리켜요. 매너리즘의 반대편을 뜻합니다."(p. 74)

이 문장은 작가는 '매너리즘'에 빠져선 안 된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입맞춤의 매너리즘을 사례로 꺼내든다. 입맞춤을 처음 했을 땐 심장은 물론 머리에서 발끝까지 떨리는 체험이 담기기 마련이다. 입맞춤이라는 행위 자체에 존재를 요동치게 하는 마술적 떨림이 담겨 있다는 것. 그러나 이를 반복하다 보면 아침에 출근할 때 입맞춤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변하게 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입맞춤의 매너리즘이 거기에 담긴 '떨림의 감정'을 훔쳐서 어디로 달아나버린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이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작가는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떨림이 있는 감정이 시심이고 시를 쓰는 시인의 자세이며, 존재 이유라는 해석이다.

 


 

저자는 또 시 쓰는 사람들은 이성을 절대화시키는 체제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저항한다고 말한다. '이성' '과학' 등이 사실의 진위를 식별하는 사유 형식의 하나일 뿐인데 거기에 절대적인 권위가 부여되다 보니 존재의 진실을 판단할 때 자꾸 모순이 생긴다고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삶에서는 다른 형식의 사유체계도 얼마든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에 설명도 덧붙인다.

"이성의 세계는 까다롭고 완고하고 꼼꼼하고 엄격해서 너그럽지도 않고 자유분방함도 없습니다. 그에 반해 감성의 세계는 대범하고 온후하고 느슨하고 인정이 많아요. 현실의 질서에도 정치, 역사, 학문, 인맥 등 이성이 만들어가는 것들은 그야말로 엄격하고 격식 있지만 실제로는 세속되기 그지없는 위계체계 때문에 숨 막히는 압력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자거리의 뒷골목에서는 은밀히 작동되는 감성의 영토에서는 토착 풍속이나 신앙, 욕망이나 본능, 감정적인 것, 감각적인 것, 원초적인 것, 미개한 것, 음산한 것들이 넘쳐나요. 그래서 거대한 감정의 해방고, 칠정의 카니발이 춤추지만 진정함이 있어요. 바로 그곳에 현대시가 자리를 잡고 개인의 내면에서 들끓는 언어의 광란과 과잉과 함성 속을 소용돌이치게 돼요."(p. 87)

 


 

저자는 현대시의 구조에 대한 설명도 이사도라 던컨의 말을 예로 들면서 해석한다.

"현대 무용의 대가 이사도라 던컨이 '누구도 저 바다를 보고 십년 후를 묻지 않는다'라고 말했어요. 바다는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철썩대면서 부서집니다. 이를 다른 말로 '지속 가능한 세계'라고 해도 될까요? 자연은 늘 이렇게 존재하는데 인간은 어쩌자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을까요. 소위 발전의 신화에 빠진 건데, 사실은 이게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알맹이입니다. 자기 욕망의 확장을 절대화하는 것, 『현대시의 구조』는 현대시가 그런 규범들과 선을 긋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전통과의 예리한 단절이 생겨났고, 문학적인 독창성은 작가의 비규범성에서 그 정당성을 찾았다. 문학은 치유가 아니라 섬세한 말을 추구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선회하는 고통의 언어로 자처했다."(p. 105)

 

저자 : 김형수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 에 소설로 등단했다.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 지금은 신동엽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시인이며 소설가, 평론가이다.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관한 추억』,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조드-가난한 성자들(1,2)』,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외에 『문익환 평전』, 『소태산 평전』 『흩어진 중심-한국문학에서 주목할 장면들』 등이 있다. 작가 수업 시리즈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그리고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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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앤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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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시에 대한 마종기 시인의 애착은 눈물겹다. 먼 미국 땅에서 말도 제대로 잘 하지 못했을 텐데 험난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괜찮은(?) 의사로서 바로 설 때까지 그는 시를 놓지 않았다. 시가, 우리말로 쓴 시가 유일한 위안이었고 탈출구이기도 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그의 선친 마해송 작가는 잘 알지만 마종기 시인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다. 그런데도 몇 년 전 어디선가 그의 시를 읽은 기억이 있어 찾아보았다. 아, 나태주 시인이 쓰고 엮은 책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시』에서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책에 마종기 시인의 시 한 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 시가 바로 「바람의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찾아보니 조용필의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도 마종기 시인의 이 시를 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시인의 허락을 받았다.

그가 이번에 산문집으로 본격 독자 앞에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앞서 독자가 시인을 너무 몰랐다는 미안함, 그의 미국 생활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얘기를 듣고 보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죄송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이런저런 미안함을 갚기 위해서라도 그의 시를 사랑하고 싶다.

 


 

시인 마종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학가인 마해송과 현대무용가인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지금 한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에는 그가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시적 감성을 자극했던 수많은 예술 작품과 모티프들, 그 눈부시던 감동의 순간들과 삶에 대한 성찰, 모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했던 이들과의 예기치 못했던 작별 그리고 시의 행간 속에 고여 있던 뜨거운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숨은 듯 담겨 있다.

1966년 여름 그는 공군 군의관 때 제대를 앞두고 재경문인 한일회담 반대서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공군본부 광장에서 체포돼 몇 달 후 미국으로 가야 했다.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고 떠났다. 미국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출구 없는 감옥이었다. 매일 새로운 생명을 받아내고 또 죽어가는 환자를 보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시신 부검에 참여하며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의 육체를 손상하는 것을 응시해야 했다. 혹독한 수련의 시간 속에서 그는 틈틈이 시를 쓰고 휴일마다 근교의 미술관을 찾아 고독과 향수를 달랬다. 오로지 모국어로 쓰는 시와 예술만이 구원이었다고 술회한다. 아는 사람은 없고 언어도 불편한 타지에서 극한의 인턴 생활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질 때마다 한글로 된 시를 갈망했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마음이 담긴 시는 더욱 빛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지에 있으면서 고국의 언어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고 자는 이로 인해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저자는 첫 번째 이야기로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새겨보며 담담하게 글자로 표현했다. 1장(독자가 편의상 '장(章)'으로 표현함)에서는 한국과 미국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감정들, 가졌던 생각들을 담백하게 들려준다. 2장은 예술에 대한 저자의 여러 생각들을 보여준다. 여러 장르의 예술에 심취하고 온전히 즐기는 저자만의 방법들이 담겨 있다.

3장은 문학과 의학 그리고 종교, 4장은 행복한 여행자란 제목으로 문학, 의학, 종교, 여행과 관련된 저자의 단상들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 5장에서 저자는 예술이 직면한 위기를 조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저자만의 의견을 밝힌다. 시인 마종기를 수십년간 위로하고 지켜준 수많은 예술 작품과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준 예술가들을 만나기 위해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간다.

 


 

시뿐 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을 즐기는 저자의 모습에서 독자로서 배울 점이 매우 많다. 그림 앞에 섰을 때 그림을 이해하고 해석하기보다는 즐기냐 아니냐로 접근하기에 부담감이 없다. 즐길 수 있으면 즐기고 아니면 그림 앞을 떠나면 되는 것이다. 음악을 감상할 때에도 레코드된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의 생음악을 들으려 한다. 오선지 위의 음악에 생명을 불어 넣는 연주자들의 긴장, 초초, 집중, 노력까지 보면서 듣는 것이다. 미술과 음악의 핵심을 꿰뚫는 감상법이란 느낌을 받는다. 시인 마해송은 모든 예술을 대할 때 직접 부딪치고 직접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야 감상법도 자신만의 감상법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 책은 저자의 예술에 대한 가치관뿐만 아니라 문학, 의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공포로 다가오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 제1실에 전시된 25개의 동일한 크기의 자화상들, 오슬로의 고풍스러운 뭉크미술관에서 본 화가의 고통, 영국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본 로댕의 조각품〈키스〉나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 비엔나에서 본 화려 방창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요염한 여인들과 그들을 둘러싼 찬란한 황금빛 색채. 이들 외에도 마종기를 압도한 예술가는 누구였으며 그들의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또한 예술적 영감의 세계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와 그 시절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생소한 오페라 문화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나이와 장르를 초월해 예술적으로 교감을 나눈 사람들과의 이야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의 인연, 문학작품과 의학상식, 미국 현대시의 비밀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오페라 하나에 완전히 감전되어서 그 후부터는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뉴욕에 갈 때마다 오페라 티켓을 미리 예약해서 관람했고 그런 날들은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거의 30년 세월 동안 반복되었습니다(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말고 내가 지켜본 오페라 극장은 단 하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오페라하우스로 마이어베어의 ‘예언자’라는 오페라였지요. 내가 꼭 그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 유럽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바로 이 오페라 극장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들었고 무척 좋아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그 오페라단의 지휘자로 19세기 말부터 10여 년 동안 맡아 오페라단의 수준을 최고급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그의 숨소리는 어떤지 그의 땀방울은 어디에 떨어졌는지를 보고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 「오페라의 황홀」 중에서

 

무엇이, 지친 우리를 이보다 더 위로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한 사람의 선한 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서 다정하고도 결곡한 목소리로 쓰인 글들의 강력한 힘에 대해 순정한 존경을 전한다고 말하는 유희경 시인의 추천사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며 그가 전하는 묵직한 물음 앞에 목이 멘다는 이병률 시인 그리고 선생의 글의 읽으면서 다시 북촌의 언덕길로 그리고 명륜동과 올랜도로, 그 어느 날로 여행을 떠난다는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 봄날 아침에 듣는 투명한 음악 소리처럼 신선하다.

 


 

이 엄혹한 시절, 코로나19 팬데믹의 비극이 온 세상을 뒤덮은 처참한 암흑에서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비명 속에 죽어가고 시신을 덮을 관도, 묻을 땅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구. 살아 있는 사람조차 마주 보고 담소도 주고받지 못하는 날들이 도대체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피하려고만 하는 이 암담한 외면 속에서 무슨 문학이, 무슨 음악 듣기가, 무슨 그림 구경이, 또 무슨 지난날의 동서남북 여행기가 도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야단을 치는 듯해서였다.

거기다가 내가 즐기는 음악이나 그림 감상이나 연극, 영화, 무용 공연이나 잡독의 독서가 뭐 그리 대단한 수준이라고 이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낯간지럽게 책으로 출간하느냐는 질책이 귀에 들리는 듯해서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게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렇게 경계가 다 막힌 경험해보지 못한 창백한 세상이기에, 치기 어린 내 생의 미로가 어쩌면 누구에겐가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잠시나마 푸근하고 편안한 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예술의 전문 분야를 전공하고 깊이 공부한 분의 학문적 분석이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의 생활 중에 만나는 예술의 즐거움,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살면서 나를 살려준 고마운 은인. 젊은 나이에 고국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했던 진한 외로움을 달래주고 힘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준 그 모든 예술이나 독서나 여행을 그냥 친한 이에게 말하듯 순서도 곡절도 이유도 없이 줄줄이 벌려놓은 게 이 책이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꽃 몇 송이를 키우는 볼품없는 꽃나무 화분이고 내가 평생 키운 꽃은 의사라는 내 생업과 밤잠을 설치면서 만들어낸 시 몇 편이 전부인데 그 꽃 화분을 이렇게 오래 편하게 살게 해준 흙과 비료와 단비 같은 물은 바로내가 즐기는 음악 듣기고 그림 보기이고 독서이고 믿음이고 여행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마종기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은퇴한 후에는 연세대 의대의 초빙 교수로 본과 2년생에게 새 학과목인 ‘문학과 의학’을 5년간 가르쳤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 (1991), 『이슬의 눈』 (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 『하늘의 맨살』 (2010), 『마흔두 개의 초록』 (2015) 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 밖에 『마종기 시전집』 (1999),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2004),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과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 『우리 얼마나 함께』 (2013),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14)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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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노동조합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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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단편소설이 많지 않지만 한때 한국문학 단편소설은 전성기라 할 만큼 많은 단편이 쏟아져나온 때가 있었다. 독자가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에는 70년대 전후라고 한다. 그때는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격변기이기도 했고, 워낙 가진 게 없는 나라라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 24시간이 모자라게 일해 수출해야 할 때다. 피폐해진 농촌을 떠나 젊은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가던 때였다. 저임금이지만 일자리는 많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너나 없이 도시로, 특히 서울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일손이 모자라는 공장에서는 각종 혜택을 앞세워 농촌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다. 저임금에 복지혜택도 지금에 비하면 말할 수준도 못 되지만 농촌의 유휴인력은 이것저것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도시의 공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간혹 휴식시간에는 라디오의 음악이나 책 한 권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가 한 권에 있는 긴 장편소설은 잘 읽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안타까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단편소설은 분량이 200자 원고지 70장 내외로서 짧은 시간에 한 가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바쁜 대한민국 사회에 적절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90년 이후에는 단편소설보다는 장편소설, 그 이상의 시리즈로 나오는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소설이 많이 출간된다. 이야기가 압축된 단편보다는 더 긴 시간 삶에 대해 생각하고 스토리에 빠질 정도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탓이리라. 지금은 그래서 작가들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물론 단편은 단편대로, 장편은 장편대로 소설의 맛이 다르다. 그러나 독서 시간을 생각해보면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장편을 읽는 것이 독자들 마음에 맞는 것 같다. 이 소설책 『소비노동조합』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저자 김강의 두 번째 소설집이라고 한다. 저자의 첫 소설집은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라는 제목으로 다채로운 상상력을 보여줬다는 문단의 평을 받았다. 이 소설집도 다양한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 역시 저자의 상상력은 두드러진다. 무인도에 홀로 낙오되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월요일은 힘들다」에서부터 기본소득제가 시행되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소비노동조합」, 통일 이후의 사회는 어떤 식으로 다가올 것인지를 그려낸 「와룡빌딩」 등 현재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는 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담았다.

 


 

표제작 「소비노동조합」은 기본소득제가 시행된 이른바 '황금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2069년 지금으로부터 48년 후다. 소설 속 인물은 기본소득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도된 생산과 소비의 역학,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리를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낸다. 이 같은 배경을 두고 고리대금업자를 화자로 내세운 설정이 흥미롭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채업을 운영하는 ‘나’는 일관된 원칙으로 채무자들을 만난다. 그런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인물인 형진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형진은 ‘나’에게 빌린 돈으로 친구들과 기본소득 인상을 주장하며 기본소득부 장관 집무실을 점거하는 사건을 벌인다. 결국 체포돼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서는 자신의 직업이 ‘소비자’임을 강변한다. 부정수급, 도덕적 해이 등을 말하면서 반대한 그들의 불로소득과 도덕적 해이 등을 눈감는 현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 어차피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이고. 이름이 그게 뭐냐? 소비노동조합이. 소비자는 뭐고 노동조합은 또 거기에 어울리기는 하고? 차라리 시민이나 국민, 연맹이나 회의, 연대 뭐 이런 말을 써야 하는 것 아니야?

― 소비자 맞고요. 노동조합 맞거든요. 제 직업은 소비자거든요.

기본소득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 녀석이 물었다. 먹고 입고 자고, 사채도 빌리고 그러는 것 아니냐 대답을 했다. 먹고, 입고, 자는 비용은 다시 누구에게로 가느냐 녀석이 물었다. 당연히 먹을 것을 만드는 사람이나, 입을 것을 만드는 사람들, 잘 곳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 아니냐 대답했다.

― 글쎄 그 사람들이 누구냐니까요?

녀석은 그 돈이 다시 돌고 돌아가는 곳이 결국은 가진 자들이거나 재벌들이고, 그들이 세금이라는 명분으로 내어놓은 돈으로 다시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소비노동조합」 중에서

 


 

「월요일은 힘들다」는 제목만 보면 직장인의 '월요병'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소설 속 무대는 무인도다. 요일도 자신이 직접 정했다. 섬 밖의 현실 속 요일과 같지 않을 것이다. 힘이 드는 이유는 그가 섬에서 생존을 위해 하는 일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실제 이 소설의 재미난 지점은 이런 설정과 황당한 가능성을 걱정하는 장면들이다.

 

책이라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정말 고맙군.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이었어. 이렇게 말하면 될까? 시대와 세대, 지역을 뛰어넘는 고전이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고? 그 속에 담긴 깊은 통찰과 인간애를 체화해 비로소 완벽해진 나, 그걸 원하는 거야?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서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누군가 묻겠지. 네, 우연히 파도에 밀려온 묵자를 읽으며 그의 겸애사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되는 거야? 혼자 지낸 이 섬에서 그것을 배웠다고? 어느 나라 글자인지도 모르는 그 책으로? 책, 그래, 어쩔 수 없이 책이라면 두꺼웠으면 좋겠다. 불쏘시개로 쓰려면 두꺼운 편이 낫다.

- 「월요일은 힘들다」 중에서

 


 

내 생애에 통일된 한반도를 보다니. 모두들 꿈만 같다고 생각했다. 백 년, 반목과 굴욕의 역사를 지우고 영광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그해 팔월부터 십이월까지 전국은 축제의 공간이었다. 국방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복지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북한의 천연자원을 이용한 재화 생산의 증가와 비용의 감소는 기업의 발전을 이루고 북한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설비의 수요 증가는 일자리와 임금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했다.

- 「와룡빌딩」 중에서

 

등이 굽은 늙은이가 있었다. 바오밥 나무를 닮은 유목의 꼭대기에 앉아 아래를 지나가는 무리를 향해 무어라 소리쳤다. 고개를 들어 늙은이를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무리는 유목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갈라졌고 유목을 지나자 다시 합쳐졌다. 물기둥을 향해 물살을 거슬러 나아가는 무리였다. 물살을 거슬러 가다 물기둥을 만나는 것, 물기둥과 함께 내려가 황금빛 자갈을 흩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다시 물기둥의 끝자락에서 출발하는 것. 전통이냐 본능이냐 이도저도 아니면 숙명이냐. 따져 묻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 「도르다」 중에서

 


 

문학평론가 허희는 책 뒷부분에 「발문」을 통해 저자 김강에게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1907)에 준하는 장편소설 집필에 조만간 착수해야 할 것 같다"며 "『어머니』와 닮은 소설을 쓰라든가,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루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려는 게 아니다. 김강이 매달려왔고, 매달리고자 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고민'을 펼쳐내기에 단편은 어울리는 틀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덕담을 준다. "김강이 내비친 흥미로운 주제 의식과 폭과 깊이만큼 앞으로 그가 전개할 장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저자 김강은 「작가의 말」을 통해 "첫 단편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등단을 하고 나서 소설을 업으로 삼아도 된다는 허략을 받았다"며, "이제는 조금 부지런해지겠다. 나의 언어를 건넬 수 있는 다양한형식을 알게 되었고, 협업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면, 누군가의 겨드랑이에 양 팔을 넣어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알게 되었다. 부지런함으로 이 앎들을 증명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자 : 김강

 

부산에서 태어났다. 2017년 단편소설 「우리 아빠」로 심훈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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